소설리스트

72화.기도라도 한번 해봐요 (72/246)

◈ 기도라도 한번 해봐요

사무실 옆 숙직실.

김강수 팀장이 시끌벅적한 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잠 좀 자자, 잠 좀!”

새벽까지 술을 마신 탓에 아직 숙취가 덜 풀렸다.

그는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숙직실 밖으로 나갔다.

“……뭐야? 쟤네들이 왜 저기 있어?”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준우와 이선호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팀 내 당직도 없다.

“설마,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일하려고?”

그게 아니면 사무실에 출근할 일이 없지 않은가.

김강수의 부은 눈이 기분 좋게 휘어졌다.

‘새끼들. 기특하단 말이지.’

그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준우와 이선호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티, 팀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오늘 일요일인데.”

“숙직실에서 잤지.”

준우가 멍하니 두 눈을 꿈뻑거렸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집을 두고 왜 숙직실에서 주무세요?”

반면 이선호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한 듯했다.

“새벽까지 술 마셨거덩.”

“사모님이 허락하신 겁니까?”

“허락해 줬음 내가 왜 숙직실에서 잤겠냐? 안 해 주니까 당직 선다고 숙직실에서 잤지.”

“……그렇게까지 해서 꼭 마셨어야 했습니까?”

준우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이 뭐라고, 예쁜 아내를 두고 외박을 한단 말인가.

차라리 선화의 미모에 취하고 말지.

“우연히 옛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 가지고. 근데, 너흰 일하러 나온 거냐?”

“협회가 보유하고 있는 던전 좀 공략할까 해서요.”

용병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헌터들이 협회의 의뢰를 받아 던전을 공략하고는 한다.

협회 소속 헌터 역시 당연히 가능한 일이었으며.

부서와 팀에 상관없이 던전을 공략할 경우, 해당 팀원이 속한 팀과 개인에게 실적이 주어지기도 했다.

“많고 많은 날 중, 하필이면 일요일에?”

“한창 열심히 할 때니까요. 이렇게라도 실적을 조금씩 쌓아 간다면, 이번 분기에 저희 팀이 1팀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준우의 목적은 레드 독의 입양이다.

처남을 방어하기 위한.

하지만, 대답은 전혀 다르게 했다.

이런 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법이었으니까.

“키야! 우리 막내는 진짜 내가 다 본받고 싶다니까!”

김강수도 준우의 대답을 마음에 들어 했다.

어찌 예쁘지 않을 수가 없겠는가.

팀을 위해 휴일까지 반납하는 저 자세가 말이다.

“사실, 이선호 탐지가 먼저 제안을 해 왔어요. 조금이라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데, 던전 공략해 볼 생각 없냐고.”

준우가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김강수가 의외라는 듯 이선호를 바라보았다.

“선호 네가?”

“어, 그, 그게…….”

이선호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본인은 준우가 원하는 던전을 찾아 주기만 했지, 같이 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팀장의 질문에 대답도 완벽하게 잘해놓고 왜 이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인지…….

“……선호 너 많이 컸다? 맨날 현장에선 민폐만 끼칠 것 같다고 나서기 꺼리더니, 뒤에서는 팀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게 아니라…….”

“아니긴, 인마. 오늘 보니까 딱 알겠네! 가끔 네가 전투 관련 서적 보고 있는 거 봤다. 그런 거 숨어서 안 해도 돼. 기특한 짓이니까 앞으로는 대놓고 해라.”

이선호가 멍하니 두 눈을 껌뻑였다.

‘……팀장님께서도 알고 계셨구나.’

조금 감동이다.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주니까.

“선배들한텐 던전 공략해 보겠다고 말도 못 하더니, 그래도 후배가 좀 낫긴 한가 보네. 아무튼. 잘했다, 이선호.”

“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던전은 어디로 가려고? 제일 막내들끼리 보내는 건 나도 영 불안한데, 기왕이면 안전하게 E급 정도로 가지?”

김강수가 이선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을 하지 않자, 준우가 이선호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빨리 대답하라는 뜻이다.

“아, 안 그래도 ‘어지러운 동굴’로 가려고…….”

“적당히 잘 골랐네.”

“이선호 탐지님가 레이더를 이용해 적당한 곳을 추천해 줬습니다.”

“이야, 이선호. 나름 선배라고 후배도 챙기고 말이야.”

기분이 한껏 좋아진 김강수가 갑자기 자신의 사물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꺼내왔다.

“선호, 너 이거 가져가서 먹어라.”

“이, 이게 뭡니까……?”

“저번에 장모님이 용돈 줘서 고맙다고 선물로 주시더라. 근데, 나한텐 영 안 맞는 것 같아서.”

“제가 감히 이걸 받아도 될는지…….”

“내가 던전 같이 가 주고 싶은데, 지부장님이 당분간 현장 뛰지 말라 해서. 알잖냐, 저번에 현장에서 최 팀장이 죽빵 날려 가지고…… 아무튼, 미안해서 그런 거니까 가져가서 먹어.”

준우가 슬쩍 쇼핑백 안을 살펴본다.

팩에 들은 녹색 즙이 한가득이다.

‘저걸 진짜로 그냥 준다고?’

평범한 즙 같은 게 아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고, 김강수의 장모님이 힘들게 구한 걸로 보이는데…….

‘……나름 영약인데, 저거.’

이선호의 기를 살려 주고자 했던 몇 마디 말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준우도 이선호에게 레이더 요청을 할 일이 많을 테니, 선배인 그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한데.

그게 영약으로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 이걸 진짜 제가 받아도 될지…….”

준우가 머뭇거리는 이선호의 옆구리를 재차 찔렀다.

주는 건 좀 그냥 받아요. 그런 뜻이었다.

* * *

이선호는 얼떨결에 나를 따라 던전으로 향했다.

애당초 던전 위치만 알려 주고 빠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팀장님이 영약까지 건네며 반강제로 보내 버린 탓이다.

‘내가 좀 띄워 준 탓이기도 하겠지만.’

던전 어지러운 동굴 입구.

아까부터 입을 옴짝달싹하던 이선호가 힘겹게 말을 걸어온다.

“고, 고마워요, 준우 씨. 제가 괜히 공을 가로챈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에이, 공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요. 그냥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그래도…….”

“이선호 탐지님께서 던전 찾아 주셨으니, 제가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선호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득이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을 더 레이더 요청을 할지도 모르는데.’

덕분에 팀장님에게 영약까지 받아내지 않았던가.

엄청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흔한 건 아니었다.

‘라이즈’라는 풀로 만든 녹즙.

체내 마력을 저장하는 코어를 확장시켜 주는 효과를 가진 영약이랄까.

고등급에 갈수록 복용 시에 효과가 떨어지긴 해도, 저등급일 때는 효과가 상당히 좋다.

“우, 우엑!”

내 말을 듣고 녹즙을 마시던 이선호가 헛구역질을 한다.

몸에 좋은 모든 게 그렇듯, 맛이 없기 마련이기에.

쓴맛이 유독 강하고 냄새가 특히나 고약하다.

“켁, 켁! 이거 팀장님이 먹기 싫어서 저희 주신 거 아니겠죠?”

“팀장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것도 같긴 한데. 아마 이걸 복용하기엔 등급이 높아서가 아닐까요?”

“근데 왜 하필이면 저에게 주셨을까요?”

“그만큼 이선호 탐지님이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저, 저한테요?”

녹즙은 싹 다 복용하게 했다.

한 번에 복용해도 부작용은 없고, 오히려 효과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준우 씨는 이거 안 먹어도 돼요? 같이 나눠 먹재도 싫다 하시고. 몸에 좋은 거라면서 왜 저한테만…….”

설마 의심하는 건가.

내가 독이라도 먹이는 걸까 봐?

“저한텐 효과가 그리 없어요. 제가 등급이 좀 높아서.”

“근데, 저한테도 그리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요…… 죄다 먹었는데도 몸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으음, 이상하네.

효과가 바로 있어야 정상인데.

나는 마력을 운용해 이선호의 체내를 살펴봤다.

정확히는 헌터의 마력 저장소라 할 수 있는 코어를 살핀 것이다.

‘코어 자체에 잔구멍이 있는 게 문젠데, 이거.’

마력은 체내를 순환하며 코어에 마력을 저장한다.

코어를 지나치며, 조금씩 쌓여 가는 거다.

그런데 이선호는 다른 대부분의 헌터들과는 달리 코어에 틈이 존재했다.

간혹 몇몇 헌터들에게서 보이는 현상인데, 안타깝게도 코어의 크기 또한 너무나도 작다.

미안한 말이지만, 평균 이하라는 뜻이다.

추측하건대, 아마 여태 코어를 마력으로 꽉 채워 본 적도 없을 거다. 아무래도 새어 나가는 틈이 존재하니까.

“흐음, 이선호 탐지님 혹시 저 따라서 한번 해 보실래요?”

“……어떻게요?”

“이렇게.”

나는 양손을 쫙 펴서 맞닿게 했다.

그리고는 따라 하라는 듯 이선호를 바라보았다.

“기도하듯이?”

“맞아요. 기도하는 것처럼. 앞으로 마력 방출 연습하실 때, 그 상태로 해 보세요.”

이선호가 멍하니 두 눈을 뻐끔거렸다.

마치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선호 탐지님 코어에 잔구멍이 많거든요. 그게 마력 손실의 원인일 거예요. 때문에, 영약으로 코어가 확장되었다고 해도 쌓이는 마력이 적으니 체감을 못 하는 거죠.”

“아……?”

“알려드린 자세로 마력 방출을 연습을 하면, 적어도 새어 나가는 것보단 쌓이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반복 학습을 하다 보면, 코어의 잔구멍들도 막을 수 있을 거구요.”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기 마련이다.

몇 번이고 코어를 꽉꽉 채우다 보면, 코어의 틈도 조금씩이나마 아물게 될 터였다.

“……그, 그래도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못 미더울 만하다. 모양새가 워낙 이상하니까.

나도 회귀 전에 처음 봤을 때, 진짜로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효과는 확실하게 있을 거예요. 물론, 단기간에 효과를 보긴 힘들겠지만요. 한 달 정도 하면 그때부터 조금씩 체감이 되려나?”

회귀 전, 신성회주에게 직접 들었다.

신성회 성직자들이 자주 기도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마력도 신성력과 비슷한 이치다.

양손으로 고리를 만들어, 마력이 한 번이라도 더 순환할 수 있게끔 만드는 거랄까.

“한번 믿어 보세요. 거짓말 아니니까.”

“저 무교인데.”

“아니요. 신 말고 저를 믿어 보시라구요.”

“흐음. 죄송하지만, 아무리 준우 씨 말이라도 이건 믿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터무니없어 보이는 방법이긴 하죠. 근데, 저도 한때는 자주 사용하곤 했었다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과장 좀 보태자면, 사이비 종교인처럼 보일지도.

안 믿는 것도 이해는 한다. 게다가 한 달 동안 틈틈이 기도 자세를 취해야 하니, 수고스럽기도 하겠지.

어쨌거나, 이선호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알려 줬다.

안 믿는 눈치지만, 안 믿겠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던전 공략부터 바로 시작하도록 할까요?”

게이트 앞으로 다가가 옆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당연히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던 이선호는 그곳에 없었다.

“이선호 탐지님?”

“…….”

뒤를 돌아보자, 아까 그 자리에서 두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하고 있는 이선호의 모습이 보였다.

“이선호 탐지님!”

“……네? 아아, 맞다! 던전 공략해야지.”

안 믿는다면서?

이선호가 맞대고 있던 손을 떼어 내며 어색하게 웃는다.

* * *

어지러운 동굴은 E급 던전이었다.

현재 내 등급은 C급에서 B급을 바라보고 있다.

고로, 나의 수준에 못 미친다.

보이지 않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지니, 던전 진행이 당연히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이선호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레이더 탐색만 도움받고 공략은 나 혼자서 할 생각이기도 했지만.

‘이 앞이 보스의 안식처겠지.’

긴 터널과도 같은 동굴을 빠르게 통과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는 거다.

- 리틀 장인어른: 우리 언제 만나요?

- 리틀 장인어른: 내가 또 누나 집으로 가까요?

- 리틀 장인어른: 답장 왜 안해요 매형!!!?

- 리틀 장인어른: 내일까지 연락 업쓰면 말순이 우리집에 데리고 간다요?ㅋ

던전 진입 전, 처남에게서 온 메시지들.

그저 문자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시끄럽다.

‘……성격 급한 것도 장인어른이랑 똑같다니까.’

만약 오늘 입양을 못 한다면.

입양할 때까지 계속 처남에게 시달려야 할 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꼭 입양에 성공해야 된다.’

눈앞의 안식처가 레드 독이 출현하는 유일한 장소다.

아마 약 열 마리 정도의 레드 독이 던전 보스인 리치 환술사를 지키고 있을 거다.

기동대 첫 출동 때 봤던 그 리치였으며.

당시엔 잡몹이었던 놈이 여기선 보스 노릇을 하고 있었다.

레드 독은 녀석의 환술에 걸려 마수화가 된 상태.

보스인 리치 환술사만 잡으면 던전은 쉽게 공략이 끝나겠지만, 그렇게 되면 레드 독을 포함한 던전 내 모든 몬스터가 소멸한다.

낮은 확률로 코마 상태의 유기몬이 남겠지만.

말 그대로 낮은 확률이기에 확실치가 않다.

‘때문에, 보스 공략 전에 수를 써놔야 해.’

샤넬 백에서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미리 구입해 둔 합성의 서와 탐욕의 미궁 레이드에서 정산받은 전리품들이었다.

“……뭐 하시려구요?”

이선호가 물었다.

던전 진입 직후부터 양손을 계속 맞대고 있는 그 모습이 신앙심 깊은 성직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말 안 믿는다면서, 그에 대한 불신보다 더 나은 헌터가 되고자 하는 간절함이 더 컸던 모양이다.

“안식처 안에 있을 레드 독을 구조할 겁니다.”

“구조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던전을 공략하고도 소멸되지 않게 미리 예방을 하는 거죠. 지금 합성해서 만들 아이템으로.”

“……그런 게 가능하긴 해요? 던전 시스템 자체에 모순인데.”

“이선호 탐지님이 지금처럼 간절하게 기도만 해 주신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이, 이건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동굴 안이 추워서 손이라도 데워 볼까 해 가지고…… 흠, 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민망한 변명일 거다.

창피했는지 이선호가 괜히 양손을 만지작거렸고.

나 역시 빠르게 손을 움직여 아이템 합성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