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우린 아직 신혼이라고 (70/246)

◈ 우린 아직 신혼이라고

몇 시간 전.

동혁이가 막 잠자리에 들었을 때다.

“아빠. 다음 달에 참관 수업인가? 그거 올 거야?”

“일이 워낙 바빠서 잘 모르겠구나.”

“잘 대따.”

수태광은 의아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이 오시길 바랄 텐데, 못 갈 수도 있는 상황이 잘됐다니.

“애들이 할아버지라고 놀릴까 바 걱정해꺼든.”

“…….”

수태광이 애써 미소를 내비쳤다.

섭섭하긴 하지만, 이맘때쯤 아이들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염색하고 가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할아버지 같을걸?”

“……다른 아이들은 다 부모님이 오실 텐데, 서운하지 않겠느냐?”

“심 비서 아저씨보고 대신 오라고 하면 대지.”

“…….”

이혼 전, 그러니까 아내와 별거 전에 얻은 막둥이다.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 수태광 본인을 쏙 빼다 닮은 아이였다. 아들놈들 중 수태광의 DNA가 가장 많이 몰린 것 같달까.

선화가 유일한 딸이라 예쁨을 독차지했다면.

동혁이는 수태광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아서 수태광의 예쁨을 받고 있었다.

가끔 오늘처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수태광 본인을 닮았다.

“아빠.”

“응?”

“나 내일 심 비서 아저씨랑 거기 가기로 해써.”

“어딜?”

“킹 에그 보러 말이야.”

순간, 수태광의 눈빛이 흔들렸다.

막둥이가 말하는 ‘킹 에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 사실 킹 에그가 말이다…….”

“요즘 숙제가 너무 많아서 자주 못 갔잖아.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가서 킹 에그랑 놀아도 대지?”

준우에게 건네준 신비한 알.

동혁이가 말하는 킹 에그란 바로 그것이었다.

애기 때부터 가끔 시간이 나면 보여 주곤 했었는데.

‘……다른 사람 줬다고 하면 난리를 피우려나?’

막둥이에겐 애착 인형 같은 존재였다.

엄마의 부재 탓인지, 애착이 그쪽에 생긴 거다.

하지만 그건 엄청 어렸을 때 얘기고.

이제 곧 10살을 바라보는 막둥이였다.

애착 같은 건 이제 사라졌을 터.

수태광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이니, 고작 알 따위쯤에 남은 미련은 가볍게 털어 낼 수 있으리라.

‘암, 내 아들이라면 그깟 알 따위에 난리를 피울 리가 없을 게야.’

수태광은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킹 에그는 누나에게 줬다.”

“뭐어어어어?”

“누, 누나에게…….”

“뭐어어어어어!”

“……그렇게 됐다.”

“나한테 약속해쓰면서! 나중에 킹 에그 부화하면 꼭 나한테 키우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쓰면서어어어!”

동혁이가 쌍심지를 켜고 분노를 표출했다.

수태광 주니어다운 화끈한 반응이었다.

“……진정하고. 내가 다시 가져다주마.”

“진짜로?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이 애비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느냐.”

“옛날에 엄마가 그랬는데. 아빠가 엄마한테 꼭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근데 엄마가 집 나갔으니깐, 거짓말한 거 아니야?”

기억력도 좋지.

참 똘똘한 아들내미가 아닐 수 없었다.

“……미안하다. 아무튼 이번엔 꼭 약속 지킬 테니, 오늘은 이만 자거라. 시간이 너무 늦었다.”

수태광이 방 불을 끄고 나갔다.

어둠 속, 동혁이가 핸드폰을 꺼내 든다.

‘아빠가 거짓말하는 것 같단 말이지.’

엄마와의 일로 미루어볼 때.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아빠가 그랬찌. 자기 건,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동혁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심 비서 아저씨. 우리 누나 집에 가요!”

- 지, 지금 이 시간에 말입니까, 도련님?

“네에! 꼭 가져올 게 이써요!”

- 회장님께 일단 허락을…….

“아빠 조금 전에 다시 회사 간 거 같아요. 그리고 아빠한텐 비밀이에요. 비밀 지켜 줄 수 있죠?”

- 하아, 제게 왜 이런 시련을…….

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질책이 있을 거다.

심할 경우, 해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덜컥 거절하기가 망설여졌다.

막무가내인 꼬맹이이긴 해도, 마음은 여린 아이니까.

‘회장님은 일로 바쁘시고, 형제분들도 도통 도련님을 신경 쓸 여유가 없으시니…….’

엄마라도 곁에 있어 줬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라도 도련님께 맞춰 드려야겠지.’

아직 어린아이이며.

엄마의 품이 한창 그리울 때다.

비록 심 비서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겠으나, 이런 것으로 조금이나마 빈자리를 채워지길 바랐다.

- 가시죠, 도련님. 비밀은 지켜 드릴 테니까.

역시 심 비서 아저씨!

동혁이는 그렇게 소리치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 * *

현관 밖, 비서님이 내게 굽실거렸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집에 찾아온 게 미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는 입 모양으로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죄송한 걸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딱히 별다른 수가 없었다는 것이겠지.

‘대충 보니, 무슨 상황인지 예상은 간다만…….’

나는 눈앞의 수태광 주니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간 장인어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관계로, 수태광 주니어 역시 자주 보지 못했었다.

‘결혼식 때 보고 못 본 거 같은데. 그새 많이 컸네.’

회귀 전, 엑시스에 막 입사했을 때.

나를 참으로 깔보던 녀석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그저 그런 헌터였고, 수태광 주니어는 장인어른과 똑같은 불 속성 특성을 다루는 천재였으니까.

‘……세상에 몇 없는 속성 특성을 가진.’

당시엔 중2병을 앓고 있던 처남이었고, 워낙 솔직한 성격 탓인지 볼 때마다 잔소리까지 하기도 했다.

엑시스에 있을 실력이 아니다, 그 실력으론 고블린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는다, 등등.

좋게 말하면 솔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진 거고.

“내 알 내놔!”

처남이 내게 소리쳤다.

회귀 전엔 중2병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애다.

중요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루기가 까다로운 건 마찬가지고.

장인어른께서 막내라고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이겠지.

일이 바쁘신 탓에 자주 봐주지 못한 것도 있겠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장모님의 부재일 거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엄마의 빈자리는 그만큼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나도 이해는 한다. 비록 처남이 막무가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건 좀 그렇다.

오늘처럼 한껏 오른 흥이 깨지는 게 영 달갑진 않으니…….

“오랜만이네, 처남.”

“배신자! 엑시스가 아닌 협회에 가 버린 배신자!”

저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을까.

장인어른께서 말해 줬으려나.

“배신자, 내 알을 내놔라!”

우리 처남이지만.

장인어른을 너무 똑 닮았다. 장인어른 어린 시절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각성은 못 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 막내 처남은 자신감이 넘쳤다.

재벌 자제고, 아빠가 엑시스 수장에, 큰형이 엑시스 부마스터인데 세상에 뭐가 두렵겠는가.

하지만.

이 개구쟁이 막내 처남에게도 두려운 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내 편이다.

“야! 수동혁! 이 쥐똥만 한 게 누구 앞에서 큰 소리야!”

“누나도 배신자야! 감히 내 알을 훔쳐 가?”

“말버릇 봐라?”

“킹 에그를 누나가 훔쳐 갔짜나아아아!”

“오랜만에 봐서 좀 좋게좋게 대해 주려 했는데, 아직도 버르장머리가 없네, 이게!”

선화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처남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키운다.

“회초리 어딨더라.”

“……회, 회초리?”

순간, 처남이 움찔한다.

좋지 않은 옛 기억이라도 떠오른 걸까.

선화가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회초리가 될 만한 걸 찾는 모양이다.

‘우리 집에 회초리가 있을 리가 없…… 있네?’

어디선가 효자손을 가지고 나타났다.

게다가 다른 한 손에는 뿅망치까지 들고서.

“매형한테 사과해.”

선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막내 처남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효자손과 뿅망치를 번갈아 바라본다.

“……미, 미안합니다, 매형.”

“목소리 크게 안 해?”

“매형, 미안합니다!”

“자식이 말이야. 아빠가 오냐오냐해 주니까, 세상에 무서운 게 없지? 콱 이걸 그냥!”

무서운 거 있는 것 같은데.

……바로 당신.

“한 번만 더 이렇게 버릇없이 행동해 봐. 그러면 그땐 누나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응.”

“경고했다, 내가.”

“……으, 응.”

“알아들었으면 가봐. 너 아빠한테 말은 하고 나온 거야?”

그때, 현관 밖의 비서님이 손사래를 친다.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아무래도 몰래 나온 것 같다.

선화가 답답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비서님, 얘 데리고 얼른 가 주세요.”

“넵, 아가씨!”

비서님이 처남을 데려가려고 다가온 순간.

처남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내일 또 올게요. 알 찾으러.”

누나한테 안 되니까, 일부러 나한테 말하는 건가.

알 줄 때까지 계속 오겠다는 뜻이다.

“야!”

“……아빠가 원래 나한테 주기로 했딴 말이야.”

“그럼 아빠한테 가서 따져!”

“흥!”

“이 자식이! 너 진짜 혼나 볼래?”

선화가 뿅망치를 들어 올리자, 처남이 도망치듯 현관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닫히는 문 사이로.

메롱-

선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최악의 적수를 만난 느낌이다.

“여보.”

“응?”

“설마, 처남이 내일 또 오는 건 아니겠지?”

오는 건 상관없다. 놀러 올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너무 ‘자주’ 오는 건 조금 곤란하다.

“내가 윽박질렀으니 대충 알아들었을 거야.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오빠.”

다음 날, 토요일 오후.

“이번엔 진짜로 알을 찾으러 왔따!”

처남이 또 우리 집에 찾아왔다.

회초리를 방어하려는 듯 엑시스 전투복까지 챙겨 입고서.

아무래도 이 고집을 꺾으려면.

나도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 * *

선화는 장인어른과 열을 내며 통화 중이다.

처남을 계속 우리 집에 보내면 어떻게 하냐면서.

- ……나도 그놈 고집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래도 그렇지! 아빠가 애를 혼내서라도 막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러자 소파 위에 앉아 있던 처남이 소리쳤다.

“법적으로 아동 체벌은 금지가 되어 있따!”

오호! 역시 똘똘하긴 하다.

벌써부터 법에 대해 언급하다니.

얼마 전에 저 법이 개정됐나, 그랬을 텐데.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체벌은 금지!”

“우리 처남 엄청 똘똘하네.”

“흥!”

……역시 우리 처남.

참 일관성이 있단 말이지, 누구처럼.

- ……기왕이면 선화 네가 동혁이한테 적당히 좀 맞춰 주는 게 어떠냐. 동혁이가 왜 그러는지는 너도 잘 알 테니. 아무래도 엄마의 빈자리가 크다 보니, 괜한 곳에 애착이 생겨서 그런 것 같은데.

“나, 나도 이해는 해. 이해는 하는데…….”

- 미안하구나. 내가 네 엄마랑 갈라선 책임이 너희들에게까지 전해진 것 같아서.

“아이, 또 말을 그렇게 해.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아빠도 그런 걱정은 하지 말어.”

장인어른과의 통화가 끝이 났다.

짧게 한숨을 내쉰 선화가 처남을 응시했다.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래도 선화가 클 때는 장모님이 곁에 계셨겠지만, 처남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수동혁. 지금 너 때문에 곤란해진 사람이 몇 명이야? 심 비서님도 난처한 상황이잖아, 그치?”

“심 비서 아저씨는 내가 지킬 거야. 심 비서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옆에 있던 심 비서님이 안도의 미소를 내비쳤다.

조금 전 장인어른께 모든 사실을 말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는 걸 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장인어른께서도 심 비서님이 처남을 생각해서 그랬다는 걸 아실 테니까.’

선화는 이전과는 달리 조곤조곤히 말을 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탓이라고 생각을 하니, 괜히 미안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매형 내일 출근해야 해서 오늘 좀 쉬어야 돼.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와. 오늘은 일단 가고. 알에 관해서는 누나가 매형이랑 잘 얘기해 볼 테니까.”

“내일은 일요일인데?”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사람 많아.”

“공무원은 일요일에 출근 안 하는데.”

“다, 당직이 있을 수도 있잖아!”

“거짓말 치시네, 헤헤.”

이윽고 선화의 뿅망치가 움직였다.

‘뿅!’ 소리를 내며 그대로 처남의 어깨를 강타.

“아동 체벌! 신고할 거다!”

뿅! 뿅! 뿅! 뿅!

드디어 처남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걸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계속 처남이 불쑥 찾아오는 걸 막아야만 했다.

최대한 상처받지 않게, 잘 타일러서 말이다.

‘……알은 내어 줄 수 없고.’

자그마치 드래곤의 알이다.

처남이 각성을 했더라도, 감당하긴 힘들 거다.

오히려 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애는 애니까, 다른 걸로 관심을 끌어 볼까.’

처남이 들이닥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부부 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처남, 누나랑 그만 티격태격하고. 알 말고 다른 건 어때?”

“다른 건 필요 없어…… 요!”

하여튼, 고집하고는.

그래도 이맘때쯤 애들이라면 관심사 정도는 훅훅 바뀌겠지.

“그래? 정말 필요 없어?”

나는 샤넬 백을 가져왔다.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벌써부터 처남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우우웅-

거실에 차원문이 생성됐다.

동시에 처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오오오…… 대박 쩐다!”

더 쩌는 거 보여 줄 테니까.

우리 집에 너무 자주 오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우린 아직 신혼이라고, 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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