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식을 위하여
한재호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수태광과 만났던 그 날의 일을.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회장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던 것 같은데…….’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다.
최성국을 소개한 순간부터 문제가 생겼지.
“……죄송합니다, 형님. 당시 일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화마로 인한 공포가 전부다.
화마의 감옥의 여파였다.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계속해서 캐물은 결과.
뒤늦게 현장에서 신입 헌터 한 명을 골려 주려다가, 정직을 당한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신입 헌터가 준우였기 때문에 일이 커진 것이라는 건 알 수 없었다.
“이, 이런 미친! 그런 일을 내게 숨겼다고?”
“죄, 죄송합니다. 협회 내의 일인지라, 설마 회장님께도 그 소식이 들어갈 줄은…….”
“멍청한 자식! 엑시스 회장 정도면, 이 바닥 일은 거의 다 꿰뚫고 있는 거 몰라?”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최성국을 유능한 헌터로 포장하여 수태광에게 센터장으로 추천까지 하지 않았던가.
수태광이 노한 이유는 사건의 피해자가 준우였기 때문이었지만, 한재호가 그러한 사실까지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을 터. 젠장, 이런 버러지 같은 새끼 하나 때문에……!’
최성국이 상황을 타파하려 능글맞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의 술병을 들어 한재호의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술 한잔 받으시고, 노여움을 좀 푸셨으면…….”
2년 동안 공들였던 사업이 날아갔다.
그런데, 그걸 술 한 잔으로 풀라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더 열이 뻗친다.
쫘아악-!
한재호가 최성국의 뺨을 후려쳤다.
얼마 전 김강수에게 맞은 곳, 또 그쪽이었다.
“지, 지금 저 치신 겁니까?”
“내 방에서 나가 이 새끼야!”
그간 서로의 뒤를 봐주던 두 사람이.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적으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 * *
< 경기도지사 한재호, 과거 음주 운전 전력 드러나 >
< 한재호의 장남 한태평, 기동대 특채 비리 >
< 유력 대선 후보자의 추락은 어디까지? 이번엔 조폭들과 연루 >
< 협회 소속 최 모 팀장 헌터, 억대 뇌물 수수 혐의로 입건 >
< 최 모 팀장, ‘한재호의 살인 청부’ 언급 >
…….
…….
한동안 세간이 떠들썩했다.
일명 ‘한재호 게이트’라고 불리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폭로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한재호와 최 팀장이 있었다.
기사들을 보아하니 그간 서로 잘 돌봐 줬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돌아선 건지.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네.’
사람이란 게 참 무섭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친했던 사람들이 서로 물고, 헐뜯는 것만 봐도 그렇다.
‘뭐, 끼리끼리 어울리는 거겠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나마 상관이 있다면, 최 팀장 말고도 협회 내에 정치권과 연관되어 있던 헌터들이 다수 색출되었다는 것이랄까.
덕분에, 보다 쾌적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우리 팀 분위기도 무척이나 좋았고.
“크크큭! 최 팀 머저리 같은 새끼. 내가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공무원 새끼들이 어떤 부류인 줄 알아? 정치하는 놈들 똥 닦아 주는 새끼들이야.”
우리 팀장님으로서는 그간 벼르고 있던 최 팀이 자멸했으니, 손 안 대고 코를 푼 셈이었다.
“정직 해제되자마자 이런 희소식이라니!”
“이게 다 우리 막내 덕분 아니겠습니까.”
“막내가 아니라 에이스라고 부르시라니까요, 부팀장님.”
어떻게 갑자기 얘기가 내 쪽으로 빠져?
참 이상한 사람들일세.
“그렇지, 이게 다 우리 막내 덕분이지!”
정직은 해제됐고.
얄미운 최 팀장까지 모가지가 날아갔겠다.
한껏 흥이 오른 팀장님이 내 어깨에 손을 걸쳤다.
나는 살며시 팀장님의 손을 내려놓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전 이번 사건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인마. 집안에 사람 하나만 잘 들어와도 일이 술술 풀린다는 말이 있어.”
“그렇습니까?”
“너 들어오고 우리 1년 만에 처음으로 실적 최고점 찍었지, 최 팀 새끼는 인생 종 쳤지, 이 정도면 네가 우리 팀의 복덩이가 맞지 않겠냐?”
“팀장님 정직 처분받았던 건요?”
“한동안 푹 쉬었으면 됐지. 몰라, 시팔! 아무튼 기분이 너무 좋다! 그거면 된 거 아니겠냐, 크크큭!”
재수 없는 최 팀이 사라진 건 단연 팀장님뿐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좋은 일인 것 같았다.
다들 최 팀장의 권력에 당한 게 많았던 모양.
부팀장님이 은근슬쩍 팀장님께 다가와 물었다.
“기분도 좋으신 것 같은데, 소박하게 회식합니까?”
이 사람은 회식을 참 좋아한다.
전생에 회식 한번 제대로 못 해서 한이라도 됐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팀장님이 소고기 쏘신다고 했는데 안 쏘셨잖아요?”
“맞아. 준우 씨 첫 출근날에 갑자기 비상 터져 가지고!”
팀원들도 부팀장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들고 일어섰다.
회식보다 종목이 소고기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흐음, 회식이라…….’
나도 나쁘진 않았다.
팀장님 기분이 한껏 올랐을 때, 부탁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 수사팀 추천서.’
내가 협회에 들어온 이유였다.
수석으로 기동대 특채에 합격을 했고, 저번 비상 때 실력까지 제대로 보여 줬다. 이 정도면 추천서를 받기엔 충분하다고 판단됐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내가 특별 수사팀에 지원하는 걸 팀장님이 원치 않으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두 가지 일을 겸업해야 하는 거니까.’
말 그대로 특별 수사팀이기에, 해당 사건이 종결되면 원 소속인 기동대 1군 3팀으로 완전히 복귀를 하겠지만.
사건이 지속되는 동안은 겸업을 해야 했으며, 내 업무 역시 특별 수사팀의 사건이 주를 이루게 된다.
고로.
해당 기간 동안 기동대 출동에서 내가 빠지게 되는 일이 간혹 생길 수도 있다는 거다.
‘내 자랑이기에 조금 낯부끄럽긴 하지만, 팀장님께서 나를 우리 팀의 실적을 올릴 유일한 빛이라며 격하게 아껴 주시기도 하고…….’
때문에, 추천서를 안 써 줄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보면 나라는 인력을 특수팀과 반으로 나눠야 하는 거니까.
3팀에 들어온 건 이 팀의 마인드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나를 예쁘게 봐 줘서 추천서를 쉽게 써 줄 거다, 라는 이유도 있었는데.
‘날 너무 좋게 봐 준 게 독이 될 수도 있을 줄이야.’
아무튼.
최대한 팀장님 기분 좋을 때 얘기를 해 보는 거다.
기왕이면 술이 좀 들어갔을 때면 더 좋고.
“미안하지만, 회식은 불가다.”
한데, 팀장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러면 좀 곤란해진다. 술이 좀 들어가 줘야 가능성을 그나마 높일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에에? 저번에 소고기 산다고 하셨으면서, 그새 마음 바뀌신 겁니까?”
“와아! 에이스가 실적 올리고 나니까, 바로 발 빼시는 거예요?”
팀원들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팀장님의 이어진 한마디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마누라가 금주령 내렸다.”
“이런, 왕명이 떨어지다니…….”
“사모님께서 또…….”
조금 전까지 기분이 잔뜩 좋아 보이시던 팀장님께선 금세 시무룩해지셨다. 인생의 낙을 잃으신 것 같다고나 할까.
이해는 한다.
팀원들 말로는 팀장님이 엄청난 애주가라 했었으니.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풀이 죽을 줄은 몰랐다.
“얘들아, 내 말 명심해라. 훗날 결혼을 할 때가 오게 되거든, 결혼의 장단점을 꼭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유부남들 하는 말 들어 보면 죄다 단점들뿐이던데. 팀장님이 생각하셨을 때 장점은 뭡니까, 그럼?”
“……나도 아직 찾는 중이다.”
사모님의 금주령 때문일까.
팀장님의 떠나간 흥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추천서를 받을 수 있는 확률도 점차 낮아졌다.
하지만.
기회는 또 한 번 찾아왔다.
* * *
금주령 하나로 침울해진 사내 분위기.
우울한 팀장님의 목소리에 다시 생기가 돋은 것은 퇴근이 두 시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타악!
팀장님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우리를 쓱 훑는다.
‘……뭐지? 갑자기 또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이상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랄까.
“마누라 친정 간대!”
이윽고 입 밖으로 나온 팀장님의 한마디.
그 한마디에 사내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오오오오옷!”
“왕께서 동맹국에 친히 원정을 가신 겁니까!”
팀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회식보단 역시나 소고기가 원인인 듯싶다.
“짜잔! 이제 회식할 수 있다!”
팀장님이 핸드폰 화면을 팀원들을 향해 내비쳤다.
조금 전, 사모님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 보였다.
- 장모님 딸: 나 친정에 좀 다녀올게.
- 나: 지금 바로?ㅋㅋ
- 장모님 딸: ㅇㅇ
- 나: 진짜로?ㅋㅋㅋㅋㅋ
그런데.
문제는 뒤늦게 도착한 문자 하나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는 거다.
- 장모님 딸: 친정 간다니까 왤케 좋아해?
- 장모님 딸: 기분 나쁘네. 안 갈래.
부팀장님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팀원들의 표정도 다시금 굳어진다.
“왜들 그래? 이따 회식 갈 수 있다니까…… 히익! 이게 뭐야?”
“누가 답장을 저런 식으로 보냅니까. 대놓고 친정 가라는 것밖에 더 됩니까, 저게? 참 센스 없으시네.”
“……젠장할.”
“오늘도 회식 물 건너간 것 같네요.”
“어쩐지 너무 호들갑 떠신다 했습니다.”
팀장님이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쥔다.
보물 싸듯 양손으로 쥔 핸드폰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진다.
‘……왜 떨고 있는 거야?’
어떻게든 이 상황을 다시 좋은 쪽으로 살려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좀처럼 마땅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누가 이것 좀 살려 봐.”
팀장님의 애처로운 시선이 팀원들을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그냥 퇴근 후 바로 집에 들어가세요. 괜히 이상한 말만 더 늘어놨다간, 퇴근 후에도 편치 못할 겁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긴 너무 아깝지 않아? 할 수 있는 데까진 최선을 다해서…….”
“씁! 핸드폰 만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팀장님께서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털썩-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는 팀장님.
회식이 뭐라고 이토록 안타까워하는 것인지.
마치 눈앞에서 대어를 놓친 것처럼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하다못해 가여워 보이기까지 한달까.
“그냥 담백하게 말해 보는 게 어때요? 좋아한 거 아니라고.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문자 내용 딱 보니까 좋아한 거 엄청 티 나드만. 그게 먹히겠어?”
“아니면, 배려하는 느낌으로다가 같이 가자고 해 보는 건…….”
“그러다가 진짜 같이 가자고 하면? 팀장님 연차 싹 날리고 끌려가는 꼴인데?”
“에휴. 전 모르겠습니다. 결혼을 해 봤어야 알지.”
“저도 사실 모태 솔로라…….”
보다 못한 팀원들이 조심스레 말을 던졌지만.
이내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임을 깨달은 듯했다.
“팀장님, 저 한번 믿고 핸드폰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팀장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이 책임지고 이 상황을 좋은 쪽으로 끌어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회식을 위해서 어떻게든.
“부팀장, 내가 좀 의아해서 그러는데.”
“뭐가 말입니까?”
“대체 뭘 보고 믿어 달라는 거야? 너 이혼했잖아?”
“……그래도 결혼은 팀장님보다 일찍 했습니다.”
“닥치고. 너도 빠져.”
그때였다.
유일한 여직원인 고진희 대원이 문득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준우 씨 유부남인데?”
“뭐라고?”
“우, 우리 막내 결혼했었어?”
순간, 모든 시선이 내게 모였다.
뭔가 이럴 것 같아서 이 상황에 최대한 안 끼려고 했는데.
“네, 뭐. 아직 신혼에 속하기는 한데…….”
“역시 우리 에이스!”
갑자기 뭔 소릴까.
팀장님께서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신다.
그리고는 전장에 나가는 용사에게 검을 들이밀 듯,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건네셨다.
“네가 한번 이 상황을 반전시켜 봐.”
표정이 너무 비장해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네가 우리 팀 에이스잖냐?”
“으음, 제가 이 상황에서도 에이스인 겁니까?”
“한번 에이스는 영원한 에이스다.”
어쩌면 회식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추천서는 확실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나를 바라보는 팀장님의 눈빛엔 기대감이 가득했기에.
“상황 반전에 성공하면, 부탁 하나 들어주십니까?”
“자신 있나?”
회귀 전의 세월이 묻어 있는 나다.
엑시스에서 일만 한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수많은 유부남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들의 수많은 경험과 사연들이 내게도 남아 있다고 믿는다.
자신 또한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 능력이 닿는 한해 뭐든지 들어주도록 하지.”
“약속하신 겁니다.”
나는 팀장님의 핸드폰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