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사람 잘못 건드렸어 (67/246)

◈ 사람 잘못 건드렸어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의 몬스터들을 전부 제압했다는 것이랄까.

“시, 시발! 놔! 이거 안 놔!”

“진정하십쇼, 팀장님! 현장에서 이러면 징곕니다!”

“징계고 뭐고 간에 김 팀장 저 개새끼가 먼저 나를, 아니, 놓으라니까?”

오진철과 그 팀원들이 최 팀장을 말렸다.

최 팀장은 입술이 터져 피를 줄줄 흘리며 우리 팀장님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여럿이 들러붙어 말리는 탓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시팔. 뒤질라고, 감히 우리 막내를 건드려?”

반면, 우리 팀장님은 자유로웠다.

우리 팀원들은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기에.

“푸하핫, 쌤통이다. 우리 팀장님이 화끈하긴 하다니까?”

“최 팀장 전부터 맘에 안 들었는데. 아주 꼬시다, 꼬셔.”

“근데, 진짜로 최 팀장이 우리 막내 조지라고 명령한 거야?”

오히려 우리 팀은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내 느낌인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한 방이면 끝날 새끼가.”

팀장님이 말했다.

그러자 최 팀장이 발끈한다.

“내, 내가 지금 널 못 쳐서 이러는 줄 알아? 이것들이 지금 날 붙잡고 있으니까, 아니, 이것 좀 놓으라고!”

최 팀장이 자신의 팀원들보다 등급은 높겠으나, 여러 명이 달라붙은 마당에 뿌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야, 최 팀. 내가 딱 말해 두는데.”

팀장님이 최 팀장에게 주먹을 들이민다.

팀원들에게 묶여 있는 게 억울한지, 최 팀장이 부들거렸다.

“한 번만 더 우리 막내한테 개수작 부리면, 그땐 입술 터지는 걸로 안 끝난다. 내가 사표 쓰는 한이 있더라도 너 묵사발을 내줄 거다. 알아들어?”

“허세는! 함 뜨까? 제대로 함 떠?”

“유치한 새끼. 그리고 오진철. 너 예전에 내 밑에 있을 땐 안 그랬는데, 1팀 가서 인성 조졌냐?”

“죄, 죄송합니다.”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데, 그딴 미친 짓을 해?”

“……면목 없습니다.”

기세에 눌린 걸까.

오진철은 자신도 모르게 자수를 해 버렸다.

이래서 기선 제압이 중요한 거구나. 새삼 느낀다.

팀장님이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뭐 해? 여기 정리 끝났으면 보스 잡으러 가야지. 간만에 실적 끌어 올렸는데, 마무리 개같이 할 거야?”

“옙!”

우리는 팀장님을 따라 보스가 위치한 균열 핵 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팀장님의 옆에 서서 묵묵히 걸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사실, 나도 심증만 있었지 물증은 없었다.

대체 팀장님은 어떻게 알아낸 걸까.

불과 그 당시만 해도 현장에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팀장님.”

“감사는 무슨. 막내 너 잘 들어라. 동료들끼리 절대 주먹다짐 같은 거 하지 마.”

“…….”

“나야 뭐 성격이 드러워서 그렇다 쳐도, 막내 너 때는 그러면 안 돼. 출셋길 막혀.”

내 출셋길을 위해 손수 나서줬다는 거다.

감동이다. 사실 아까 통쾌하기도 했고.

“근데, 팀장님은 어찌 아셨습니까? 오진철이 일부러 절 노리고 그랬다는 거.”

“눈치껏.”

“예……?”

“직감이야. 선조치 후보고, 몰라?”

“……그래도 됩니까?”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근데, 내가 직감이 좀 좋거든. 상황도 좀 어색했고, 최 팀이나 오진철이 표정도 마찬가지였고. 뭣보다 오진철이 방패 보면 딱 알지.”

“그런 걸 방패만 보고 알 수 있습니까?”

팀장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오진철의 방패에 튕김이 있었던 부분과 내가 서 있던 지점의 각도, 그리고 미세하지만 튕김이 있을 때 순간적으로 마력에 대한 마찰로 남았던 자국 등등…….

‘……생각보다 섬세하잖아?’

그 짧은 순간에 그것들을 모두 살피다니.

죄송한 말이지만, 보기와는 달리 똑똑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마냥 거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관찰력 또한 뛰어났다. 마력 마찰로 인한 자국이라는 게,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지 않은가.

‘고등급 헌터들도, 장비를 써야 간신히 볼 수 있는 걸 텐데…….’

해당 능력에 특화가 되어 있는 사람일까.

어울리지 않게 탐지 계열이라고 듣긴 했는데,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마력 마찰 자국을 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그게 다 짬이야. 게다가, 최 팀 그 새끼는 예전에 나랑 아카데미 다닐 때도 나한테 그랬었어. 그때하고 수법도 비슷하드만. 아마 그걸 오진철이가 보고 배운 거겠지.”

“아아?”

“오진철이는 내 밑에 있을 때부터 출세에 눈이 먼 놈이었고. 근데 또 깡다구는 그렇게 있는 놈이 아니었거든. 분명 최 팀이 뒤를 봐주겠거니…… 암튼, 뭐 그런 거야.”

“그냥 최 팀장님이 싫으신 거 아니구요?”

“그것도 맞아. 정치권에 들러붙어서 허구한 날 머저리 같은 짓만 하고 다니는데…… 아이고, 내가 막내한테 별의별 얘기를 다 하네.”

“더 해 주십쇼. 궁금합니다.”

팀장님과 최 팀장에 대해 들으며 보스로 향했다.

최 팀장이 정치권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물론 증거가 없는 심증뿐이었지만.

그래도 오늘 사건으로 미루어 봤을 때, 좋지 않은 인간임은 확실한 듯했다.

“근데, 막내 너.”

“예.”

“아까 감사하다고 했는데, 빈말로 퉁칠 거냐? 기여도 보니까, 실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드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뭘 바라고 계시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기왕 데뷔전 멋지게 치른 거, 마무리도 멋지게 해야지.”

“보스 목 가져다드리면 감사 인사 퉁 칠 수 있는 겁니까?”

“그래만 준다면, 내 인생 최고의 퉁이다.”

감사 인사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나는 보스의 목을 쳤다. 우리 팀은 1년 만에 실적으로 1팀을 제쳤고, 팀원들을 나를 한 줄기 빛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팀원들의 환호 속.

민망하게도 명실상부 에이스가 된 나는 첫 출근에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막내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생긴 건 아니다.

현장에서 있었던 팀장님의 폭행 사건이 소문으로 퍼져 나갔고, 당연히 지부장님 귀에도 들어갔다.

정직 처분을 받은 팀장님이 내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정직당했는데, 왜 웃으십니까?”

“크크큭! 넌 안 웃기냐, 막내야?”

“……뭐가 말입니까?”

“그래도 최 팀장 그 새낀 나 한 대도 못 때렸잖아.”

분명 좋은 사람 같기는 한데.

참 이상한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 * *

오진철의 자백으로 현장에서의 일은 빠르게 마무리됐다.

이미 현장에서 김강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한 것 자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자백에 가까웠다. 주변에 다수의 목격자까지 있지 않았던가.

오진철이 김강수의 기세에 눌린 것도 영향이 있을 테지만.

김강수가 눈치를 챈 이상, 그가 물고 늘어진다면 언젠가 밝혀질 일이었기에.

‘김 팀장만 현장에 없었어도…… 내가 분명 현장에 없는 걸 확인했는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젠장!’

김강수, 오진철과 마찬가지로 최 팀장 역시 정직 명령이 떨어지던 날, 그는 집에 돌아와 냅다 술병부터 깠다.

소주를 들이켜자 입안이 아려온다.

망할 김강수에게 한 대 맞은 것 때문이다.

‘아오! 입술 부은 건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하네.’

더욱이 억울한 건, 한 대도 못 때렸다는 거다.

결국 맞기만 한 셈.

‘진짜 이 짓거리도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목표가 승진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대형 길드나 자회사로 이직하기 위한 과정의 수단일 뿐이었다.

‘……길드 관계자랑 자리 한번 만들어 본다더니, 이 인간은 왜 여태 연락이 없어?’

협회가 아니더라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차기 유력 대선 후보라는 경기도지사, 한재호.

정치권의 거물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그 인간 김포 시장 때부터 여태 뒤치다꺼리해 준 게 얼만데, 설마 저번 일로 입 싹 닫는 건 아니겠지?’

한재호의 최측근이었다가.

그의 아들인 한태평을 협회 기동대에 찔러 넣기를 실패하면서, 살짝 서먹해지긴 했다.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협회와 아들을 이용하려 했는데, 그게 틀어지니 마냥 좋을 리만은 없을 터.

그러나 단순히 그 일 하나만으로 최 팀을 쳐 낼 수는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줬던 만큼, 서로의 약점 또한 서로가 쥐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형님.”

- 안 그래도 막 연락하려던 참이었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한재호의 목소리에 최 팀장이 반색했다.

항상 좋은 자리 마련해보겠다며 기다리기만 하라던 사람이, 모처럼 괜찮은 소식을 전해 왔기에.

“정말입니까? 저번처럼 또 헛바람만 잔뜩 들게 하는 것 아니겠죠?”

- 이번 주에 좋은 자리 한번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자네도 어느덧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언제까지 공무원으로 박봉 받아 가며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 건 형님뿐이십니다. 안 그래도 요즘 여러모로 힘들었거든요.”

김강수에게 맞던 그 순간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습관처럼 이가 갈렸지만, 애써 참아냈다.

- 자네, 내가 몇 년 전부터 경기도에서 사업 하나 진행하고 있는 거 알지?

“헌터 훈련 센터 유치하는 거 말입니까? 하지만, 그거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해서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 내가 직접 발로 뛰며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지. 자그마치 2년이 넘도록 걸렸어. 보통 이런 일에 잘 나서지 않으시는 분인데, 내 노고를 알아주셨는지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보자고 하더군.

“제 자리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도 혹시 그분의 회사인 겁니까?”

- 엑시스 수태광 회장님이시라네.

“커, 컥! 에, 엑시스 말입니까?”

이 나라 최고의 길드이자 기업이다.

엑시스라는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최 팀장의 눈이 번뜩였다.

벌써부터 공무원 때려치우고, 꽃길 걸을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누비기까지 했다.

“이번 주에 미팅 성사되면 다시 연락하겠네. 자네도 이번에 눈도장 찍어 두는 게 좋지 않겠나?”

한재호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아직 기정된 사실이 아님에도, 엑시스라는 이름은 최 팀장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저는 평생 형님을 위해 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말입니다!”

- 허허, 이 사람 참. 빈말이라도 듣기 참 좋구만.

헌터 훈련 센터 유치만 성공하면.

언론과 여론이 한재호 쪽으로 기우는 것은 물론,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만은 아닐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어쩌면, 청와대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기분 좋은 상상에 최 팀장이 히죽거렸다.

* * *

미팅 장소로 향하는 차량 안.

뒷자리에 앉아 있던 수태광은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 ……그런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큰 사고는 아니었으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선배님.

헌터 협회 경기 지부장 오동수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젊었을 적 같은 용병단에서 활동했던 수태광의 후배로, 그에게만 준우가 자신의 사위라는 사실을 살짝 귀띔해 준 탓이다.

얼떨결에 나온 말이었다.

아닌 척하면서도 수석으로 합격한 사위를 자랑하고 싶어서랄까.

그때부터 가끔 오동수를 통해 준우의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굳이 그렇게 보고하는 것 마냥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음에도 말이다.

‘전 서방이 너무 잘난 것도 문제란 말이야. 주변에 시기하는 놈들이 생기기 마련이니…….’

이번에는 작은 사고로 끝이 났지만.

만약 큰 사고가 벌어졌다면 준우는 물론, 선화의 마음까지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팀장이란 놈 이름이 최성국이라 했었나. 언젠가 내 눈에 띄면 따끔하게 경고를 해 줄 필요는 있겠어.’

수태광이 은근슬쩍 핸드폰을 꺼냈다.

처음으로 사위에게 먼저 연락을 해 볼까 해서다.

갑작스레 오동수와의 대화가 떠오름으로써 사위 생각이 나기도 했고, 일전에 데뷔 30주년 기념으로 정장을 선물 받지 않았던가.

그때, 괜한 창피함에 고맙단 말도 못 한 일이 생각났다.

‘상태 메시지 바꿔 놨는데 봤으려나, 끄응.’

핸드폰 화면 위 방황하던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여 본다.

전화는 왠지 낯부끄럽고, 메시지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나: 별일 없나?

그러나 답장이 없다.

5분이 지나도록 답장은 없었다.

“에잇, 젠장할……!”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

최 비서가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수태광이 헛기침을 하며 손을 휘휘 저어댔다.

답장이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수태광의 시선이 핸드폰 화면으로 향했다.

- 나를 존경하는 사위: 저야 별일 없습니다.

- 나를 존경하는 사위: 장인어른께서도 강녕하시지요?

- 나: 바쁜가?...

- 나를 존경하는 사위: 아닙니다. 여유 있습니다.

- 나: 답장이 늦기에...

- 나를 존경하는 사위: 이런, 죄송합니다ㅜㅜ

- 나: 울지는 말게... 혼을 내려는 것은 아니었으니...

준우에게서 변명이 전해져 왔다.

퇴근 준비를 하느라 미처 핸드폰을 못 봤다고.

그사이, 어느새 차량은 미팅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 나: 정장 선물 잘 받았다네ㅋ

사위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수태광은 나름 신경을 써서 마지막 문자를 날렸다. 딱딱해 보이지 않게끔, 나름대로 웃음까지 섞어서.

미팅 장소인 경기도의 한 고급 한 식당.

수태광이 예약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앉아 있던 두 남자가 그를 반겼다.

“자리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

한재호가 최대한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운 좋게 자리가 마련되긴 했으나 아직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고, 중요한 건 수태광의 투자를 받는 것이었다.

그의 투자를 받아 꼭 엑시스의 이름으로 경기도에 헌터 훈련 센터를 유치해야만 했다.

엑시스가 아닌 다른 이름은 한재호의 대선 행보에 별 도움이 되질 않았기에.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수태광의 시선이 옆에 있는 최성국에게로 향했다.

“혹시 이쪽이 훈련 센터장으로 추천한다는……?”

“맞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그 친구입니다.”

“헌터 협회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던?”

“예, 그렇습니다. 워낙에 성실하고 유능한 친구라,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한번 회장님 같은 훌륭하신 분께 소개를 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사드리게, 최 팀장.”

최성국이 미리 준비해 둔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을 손에 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수태광의 분위기 하나만으로 잔뜩 긴장한 탓이다.

“초,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수태광이 명함 속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 헌터 협회 경기 지부 >

기동 1팀 대장: 최성국

수태광이 명함 속 이름과 눈앞의 최성국을 다시금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동수를 통해 듣게 되었던.

준우에게 못난 짓을 했던 그 작자의 소속과 직책, 그리고 이름까지 모든 게 다 똑같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최성국입니다!”

순간, 수태광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가늘게 휘어지는 그의 눈매에 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어딘가 모르게 갑자기 분위기가 삭막해진 느낌 때문이었다.

취이익-

수태광이 손에 쥐고 있던 최성국의 명함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고작 이런 자를 제게 센터장으로 추천한다고 하신 겁니까?”

“무, 무슨 문제라도……?”

한재호는 최성국의 정직 처분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에, 수태광의 반응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굳이 알려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여 숨긴 탓이다.

“……협회 내에 도지사님 뒤를 봐주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는 하던데, 이자가 그중 한 명일까요.”

“그, 그건 루머입니다!”

“헌터 교육 센터도 도지사님의 대선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으나, 국가를 위한 인재 양성이라는 그 취지가 좋아 고려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한데…….”

“저, 저는 정말이지 좋은 의도로만 회장님께 말씀드린 겁니다!”

“껄껄, 그렇습니까?”

수태광이 웃으며 되물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에서 묘한 공포가 느껴진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언급하셨던 이야기는 그저 정치적인 공격일 뿐이고…… 흐익!”

한재호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수태광의 어깨 위로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기가 자신에게까지 전해진다.

자칫, 여기서 괜한 소리를 더 했다간 이곳이 모두 불바다가 될 것만 같았다.

쉬이이익-

수태광의 정장 어깨 부분이 조금씩 타들어 간다.

품위를 잃지 않으려 나름 여유를 가지려 했으나, 최성국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사위의 노고가 겹쳐졌다.

자신의 사위에게 해를 가한 놈.

그로 인해 자신의 딸에게도 상처를 줬을지도 모를 놈.

적어도 수태광에게 눈앞의 최성국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허업!”

두 눈을 치켜뜬 최성국이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새 붉게 변해 버린 수태광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순간, 수태광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시간 붉은 시선이 최성국의 몸을 장악했다.

‘저주: 화마의 감옥’.

환각을 일으킴과 동시에 고통마저 주는 스킬이며.

능력치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 효과 역시 커지는 스킬이었다.

저주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저주를 겪는 당사자에겐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너, 너는……?”

최성국의 환각 속, 거대한 화마가 보인다.

화마는 기이하게도 준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이 아닌 괴물의 모습과도 같달까.

카아아아악!

화마가 최성국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

금방이라도 고막이 찢겨 나갈 듯한 괴성에 최성국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화르르륵!

화마가 최성국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온몸의 살점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자신의 몸엔 오직 까맣게 타 버린 뼈만이 남았다.

“아아…… 아아…… 사, 살려 줘, 제발! 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그, 그러니까 제발 살려만 줘!”

공허한 공간 속.

최성국은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었다.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고통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불에 타서 죽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 한 번만 더 내 눈에 띈다면.

준우의 모습을 한 화마가 말을 이었다.

- 그땐, 남아 있는 그 뼈까지 모조리 다 태워 버릴 것이다.

억겁과도 같았던 찰나의 저주가 끝이 났다.

화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최성국이 오한이라도 걸린 듯 미친 듯이 떨려 왔다.

“자, 자네, 갑자기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리나……?”

한재호가 물었다.

어느새 최성국의 온몸이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안을 거둔 수태광이 도지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지사님.”

“예, 예……?”

한재호가 흠칫 몸을 떨며 괜히 뒷걸음질을 친다.

“오늘은 식사를 할 기분이 아니군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죠.”

냉정하게 뒤돌아선 수태광이 먼저 자리를 떴다.

2년간 공들였던 훈련 센터 투자 건이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수태광이 떠나자 안도감이 느껴지는 한재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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