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회귀자
나는 유리막 안으로 입장했다.
곧 마력의 파도라 불리는 것이 이 안을 가득 채울 터.
‘얼마나 버텨 주면 귀감이 좀 되려나?’
마력의 파도를 버텨 내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었다.
기동대는 균열 던전인 던전 쇼크에 주로 투입되며, C급 이상의 균열에선 마력의 파도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헌터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효과인데, 장시간 노출되면 체력 소모로 인해 공략이 끝나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지는 경우가 있었다.
뭐랄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걸로도 모자라, 몸의 힘을 앗아 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훈련은 마력의 파도를 계속해서 접하게 함으로써, 그 면역력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후우욱-
마력의 파도가 유리막 안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딜러 계열의 헌터라면 탱커 계열보다 상대적으로 체력 능력치가 낮아, 일반적으로는 회귀 전 엑시스 입사 때의 녀석들처럼 5분 정도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기대하겠습니다.”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녀석도 내가 5분 정도 버틸 거라고 생각할 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쓰러질 것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대인전투술 때 나 정도의 실력이라면 딜러 계열에 특화된 헌터라고 생각했을 거고, 당연히 체력 능력치엔 전혀 투자를 안 했다고 예상했을 테니까.’
딜러 특화라면 체력 쪽은 아이템으로 커버를 하곤 한다.
간혹 체력에 SP를 투자하는 헌터들도 있지만, 던전에서도 탱커 포지션이 있기에 체력 쪽은 그들에게 맞기는 게 대다수였다.
‘한쪽을 특화시키는 게 효율 면에서도 좋을 거고.’
내가 딜러 쪽에 특화됐다는 가정하에.
교육생들의 평균 등급상, 체력 능력치 레벨은 5 이하다.
나의 경우는 능력치에 SP 투자를 전혀 안 했기에 기본 능력치 레벨인 3.
그나마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까지 받을 수가 없어서, 부화부순으로 하나 더 올린 4였다.
‘이걸로는 5분 정도 버티는 게 전부겠지만…….’
슈퍼바이크를 탄 이후의 나는 달라졌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온 결과, 체력 레벨 10을 더 올리지 않았던가.
아마 15분 정도 버티는 수준일 터.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어야만 했다.
‘마력 방출을 사용해, 마력의 파도를 방어할 수 있도록 신체를 강화시키는 거지.’
무기에 마력을 주입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듯, 마력 방출을 사용하게 되면 헌터가 가진 능력의 최소 2배에서 10배에 달하는 능력을 낼 수가 있다.
그걸 이 훈련에 응용하는 것이며.
참고로 이 방법은 아마 웨이브의 면역력을 기른 후에 배우게 될 거다.
우우웅-
방출된 마력이 내 몸을 휘감았고.
동시에 측면으로 얼핏 보이는 교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랍기도 하겠지.
아직 가르치지 않은 걸,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데.
‘마, 이게 K-회귀자다!’
약 3, 40분쯤 지났을까.
기다리는 게 지루한지 교육생들이 하품을 해 댔다.
보통 5분 정도에 쓰러지기 마련인데…….
교관도 이런 나를 계속 기다리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만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웨이브 장치 안에서 빠져나왔다.
이걸로 충분히 귀감이 된 모양이다.
* * *
교관이 그만하라고 안 했으면, 아마 나는 대략 2시간 정도 버텼을 거다.
마력 방출이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면 3시간 이상을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나도 회귀 전만큼 마력 방출 사용이 완벽하진 않단 말이지.’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딘가.
회귀 전과는 시작점 자체가 너무나도 높은데.
이미 교관과 조교, 교육생들은 내가 30분 이상을 버틴 것만으로도 나를 무슨 괴물 보듯이 보고 있었다.
‘나한텐 신경도 안 써 주네, 이제.’
이후 교관과 조교들은 내게 좀 무심한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르칠 게 없었기에 다른 교육생들의 교육에 더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웨이브 면역력 키우기, 나아가, 마력 방출 응용법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라 판단했는지 내게는 그저 한 번만 시켜 본 뒤, ‘너무 잘하시는데요?’라는 칭찬만이 전부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잘해서 그런 것이니 뿌듯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첫 번째 훈련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훈련이 끝나기 무섭게 교관에게 달려갔다.
“혹시 다음 훈련 시작 전까지 핸드폰 사용 가능할까요?”
“아아, 물론이죠. 저 앞에 서 있는 조교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교관이 머쓱하게 웃었다.
나를 엿 먹이려다가 실패한 게 민망했을 거다.
“아직 훈련이 남아 있어서, 그때까지 못 받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오늘 아침에 제가 와이프한테 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사과를 해야 했거든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으려나…….”
“와이프요? 결혼하셨습니까?”
결혼했다는 내 대답에 교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자친구의 칭찬 때문인지, 은근히 나를 견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내와 다퉜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냥 눈앞의 교관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 호의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서 꺼낸 말이었다.
“흐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보단 손편지를 쓰는 게 낫겠어요. 혹시 노트하고 펜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노트하고 펜이라면 얼마든지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교관은 서둘러 노트와 펜을 챙겨 왔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내게 물었다.
“……그, 그 손편지라는 거 여자들이 좋아합니까?”
“교관님도 여자친구한테 잘못하신 일 있으세요?”
“아, 아니요.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제 와이프는 좋아하더라구요. 저번에 한번 물어보니까, 보통 남자들 글씨체가 삐뚤빼뚤 못났잖아요? 그런데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꾸역꾸역 한 글자씩 적어서 마음을 전하는 게, 더 진심이 느껴지고 귀엽기도 하댔나?”
“아하?”
“아무튼, 뭐 그러더라구요.”
“그렇단 말이지요?”
“손편지 한 번도 안 써 보셨어요?”
“제가 글씨체가 많이 못났거든요. 오히려 여자친구가 싫어할까 봐서.”
“보이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마음이 중요한 거지.”
사람을 겉모습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근육질에 태닝한 몸은 감성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이는 교관이었다.
어쩌면, 손편지 같은 게 낯간지럽다고 생각했을 수도.
“오늘 훈련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관님.”
“아아…… 가, 감사합니다. 교육생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물론, 손편지가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잘 화해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내가 교관과 조교의 화해를 바라는 이유는 하나다.
마음 같아서는 내게 꼽을 주려고 한 교관을 한 대 때려 주고 싶기도 했지만…….
‘……그놈의 가산점 때문에.’
매주 차 훈련이 끝나면, 각 과목 담당 교관들이 한 명의 교육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그걸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우리 선화가 친구들에게 자랑했다지 않은가.
내가 이미 수석 합격했다고.
‘아내를 친구들 사이에서 뻥쟁이로 만들 수는 없지.’
가산점 때문에 먼저 나를 멸시한 교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해도.
선화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교관이 내게 품은 적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손편지가 먹히면, 나한테 좀 호감을 갖지 않겠어?’
뭐, 손편지가 안 먹히면 어쩔 수 없겠지만.
훈련 성과가 제일 뛰어나니까 가산점은 나한테 줄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아주 만약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그 경우를 대비해 살짝 어필을 해 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1주 차 훈련이 모두 끝이 났다.
“본관 게시판에 가산점 받은 교육생 이름 떴다는데요?”
오늘 훈련을 기다리는 도중, 한 교육생이 말했다.
나는 서둘러 본관 게시판이 걸려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이건, 뭐 예상은 했지만, 살짝 현타가…….”
“5번 교육생님이 싹 쓸어 버렸네.”
교육생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게시판의 각 과목 가산점을 받은 학생들의 이름을 살폈다.
대부분의 교관들이 내게 가산점을 부여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실전 훈련과 이론 교육 역시 내가 뛰어났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회귀 버프 받고 이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체력 훈련인 웨이브 담당 교관은…….
‘오호! 손편지가 먹힌 모양인데?’
그 역시 내게 가산점을 부여했다.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아져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 여보, 친구들한테 가서 더 자랑해도 될 것 같아.
- 마님 : 올ㅋㅋ 아빠한테도 해도 돼?
글쎄, 장인어른 스카우트를 걷어찬 마당에.
과연 그 사실을 좋아하실진 모르겠다.
* * *
2주 차 훈련이 시작됐다.
오늘 처음 접하는 이 과목은 모든 훈련을 통틀어 가장 배점이 많은 과목이었다.
‘균열 핵 탐지.’
비록 1주 차엔 준우가 가산점을 모두 쓸어 담았지만, 배점이 큰 만큼 이 과목 하나로 최종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잠시 후.
교육이 시작됐다.
“기동대가 주로 투입되는 던전이 균열 던전인 만큼, 기동대에게 있어서 균열 핵 탐지는 매우 중요한 과목입니다. 만약, 사전에 균열 핵을 미리 탐지했을 경우 균열 던전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요.”
전투를 하지 않고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균열 핵 탐지였다.
“협회의 레이더에 균열 반응이 발견되면, 해당 지역에 균열 탐지 장치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균열 탐지 장치를 사용하여 범위 내에 있는 균열 핵의 정확한 위치를 찾죠.”
교관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기동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과목인 만큼 천천히 그리고 상세하게.
“탐지 장치의 단점은 설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B등급 이상의 균열부터는 균열 핵 폭발까지 시간이 촉박하여, 탐지 장치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 고등급 균열일수록 마력 반응이 높다.
때문에, 탐지 장치를 사용하는 것보다 시간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 방법을 익히는 것이 오늘의 훈련이었다.
“탐지견과 함께 균열 핵을 수색하는 것. 그게 제가 여러분께 교육할 내용입니다.”
교관이 등 뒤로 넓은 견사가 보인다.
탐지견이라고 불리는 노멀 독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 전에 먼저 여러분의 파트너가 될 탐지견을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파트너가 될 탐지견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이 또한 기동대원으로서의 자질 중 하나였다.
한시가 급한 상황 속에서 신속하게 균열 핵을 찾아내려면, 최대한 뛰어난 탐지견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야 했으니까.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다른 교육생들에게 뺏기지 않으려면, 빨리 움직이셔야 할 텐데요?”
교관의 재촉에 교육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나를 운용해 탐지견들을 살핀다면, 대략적으로 해당 탐지견이 가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4주 차 평가에서 역시 포함되는 부분.
‘으음……?’
교육생들의 모습을 살피던 교관이 순간 멈칫했다.
다들 탐지견과 교감을 하는 중인데, 제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교육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1주 차 과목 가산점을 모두 받아 낸 준우였다.
그렇기에 담당 교관 역시 탐지견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준우는 미동이 없었다.
가만히 한 곳만을 응시할 뿐.
‘다른 교육생들과는 달리 신중하다 이건가? 이미 교감을 시작하고 있는 교육생들이 있는 만큼, 오래 고민할수록 뛰어난 탐지견들은 놓칠 수밖에 없을 텐데.’
이윽고 준우가 걸음을 움직였다.
수십 마리의 탐지견들 사이를 묵묵히 걸어, 견사 가장 구석에 있는 한 탐지견에게로.
준우가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엎드린 채 거들떠보지도 않는 녀석.
‘하필이면 제일 까다로운 아이를 골랐네.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없지만, 만약 된다고 해도…….’
내심 걱정스런 마음에 교관의 시선이 준우를 향했고.
그런 준우는 눈앞의 탐지견을 빤히 응시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나이가 많아 보이고.
멀쩡한 왼쪽 눈에 비해, 오른쪽 눈의 상처가 유독 눈에 띄는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