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정신력은 강한 체력에서
기동대 특채 최종 면접을 마치고 나온 준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협회 건물을 나섰다.
‘이제 최종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지.’
딱히 걱정이 되는 일은 없었다.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모든 시험을 완벽하게 치른 그에게 걸림돌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회귀 전의 여러 경험을 살려 면접 역시 순탄하게 진행되기까지 했다.
오히려 협회 측에서 준우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손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종 합격자 발표 후, 협회 교육 센터 입소까지 한 달 정도 걸린댔나?’
비록 시보 기간은 거쳐야 하겠지만.
교육 센터 수료를 하게 되면, 협회 소속 헌터가 되는 셈.
‘망할 놈의 늑대인간. 네놈들 정체를 파헤쳐서, 꼭 내가 뿌리를 뽑는다.’
어떻게든 자신을 죽였던 놈을 찾아내서, 두 번 다신 그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준우였다.
회귀 전 그날처럼, 자신이 죽어 아내가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만 했으니까.
또한.
그토록 허무하게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난 강해져야 해, 여보. 그러니까 양보해 줘.”
“강해져야 한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오그라들게 해?”
체력을 길러야 했다.
물론, 다른 능력치도 중요하지만 체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리고.
체력을 키우는 데는 바이크만 한 게 없었다.
“어제도 하루 종일 바이크 타고, 지금 또 타겠다고?”
“교육 센터 입소 전에 최대한 체력을 기르는 게 좋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무슨 바이크를 그렇게 무식하게 타? 오빠 그러다가 쓰러져.”
무리해서 운동을 하긴 했지만.
이미 준우의 체력은 그 정도로 쓰러질 수준은 아니었다.
‘체력이 빵빵하면, 고강도의 협회 교육 센터 훈련도 거뜬하게 버텨 낼 수 있을 거야.’
슈퍼바이크의 두 번째 아이템 특성, 한계 돌파.
특성 발동 조건은 최고 강도로 바이크를 타는 것이었으며, 이동 거리 5,000km를 달성해서 체력 능력치 레벨을 올릴 수가 있었다.
한 번 달성 시에 1레벨이 상승하며, 열 번 반복하면 한계에 다다라 더 이상은 레벨을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도 열 번이 어디야. 자그마치 체력 능력치를 10레벨이나 올릴 수 있는데?’
현재 그중 다섯 번을 달성한 상태였고.
“나 점심에 햄버거 먹어서 살 빼려면 바이크 타야 되는데…….”
“당신은 10분만 타면 되니까, 양보해 줄 수 없을까? 나는 엄청 오래 타야 돼서…….”
“아니, 이거 내가 살 빼려고 산 건데?”
“……내가 요즘 운동에 미쳤나 봐.”
“얼마나 탈 건데?”
“으음, 저녁 먹기 전까지 한 다섯 시간 정도?”
“다섯 시간은 무슨.”
그래놓고 어제는 도합 열 시간을 타지 않았던가.
과장을 좀 보태, 허벅지가 터져 나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나마 준우 정도나 되니까 멀쩡히 걸어 다니는 거다.
최고 레벨 강도라면, 그보다 아래 수준의 헌터로서는 아마 서 있는 것조차 힘들 터.
“내가 살다, 살다 오빠가 운동에 미친 모습은 처음 보네.”
“술이나 게임에 미친 것보단 낫지 않아?”
“이미 운동을 게임처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왕이면 교육 센터 입소 전까지 체력 능력치를 바이크 한계까지 끌어 올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그게 교육 센터 훈련 중 높은 점수를 받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딱 다섯 시간이야. 어제처럼 다섯 시간만 탄다고 해 놓고, 열 시간 타기만 해. 바이크 확 갖다 버릴 거야.”
“……어쩜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하니?”
바이크에 무아지경이 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다면 다들 선화처럼 말을 할 거다.
“내가 오빠 교육 센터 수료할 때까지만 봐준다.”
준우가 바이크에 탑승했다.
하루빨리 한계치까지 다 타 버릴 생각이었다.
계속 이걸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휘이이잉-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최고 강도인지라 처음에는 다소 버거운 느낌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어느 정도 가뿐해진 것 같았다.
이젠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좋다, 좋아! 오늘도 달려 보자!’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가는 동안.
회전하는 페달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 체력의 한계를 돌파하였습니다. ]
[ ‘한계 돌파 Lv.1’ 효과로는 더 이상 해당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없습니다. ]
기동대 특채 합격 통보와 함께.
슈퍼바이크 역시 더 이상 탈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협회 교육 센터 입소 당일이 되었다.
준우는 입소식 장소인 교육 센터 대강당으로 향했다.
< 강한 정신력은 강한 체력에서 나온다 >
곳곳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표어 중.
유독 하나의 표어가 준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쩐지, 정신도 맑아진 느낌이 들더라니.’
슈퍼바이크를 통해 체력 상승을 이뤄 낸 덕분일까.
정신력마저 월등히 강해진 느낌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준우였다.
형식적인 입소식이 끝나자 곧장 훈련 과정과 진행 방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첫 번째는 바로 체력 훈련.
체력 훈련이라는 소리에 교육생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건 내 전문이지.’
오직 준우만은 표정이 유독 밝았다.
비로소 슈퍼바이크로 단련된 체력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 * *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조교들이 훈련과 평가 방식에 대해 일러 주었다. 형식적인 것들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평가 부분이었다.
‘100점 만점 중 70점 이하는 퇴소 조치라.’
그 말은 즉, 최종까지 합격을 했어도 교육 시 자격 미달인 자는 합격이 취소된다는 뜻이었다.
수료식 때 최종적으로 수석 합격자가 결정되는데, 그 역시 교육 센터의 점수가 반영된다고 했다.
‘저번 기수에도 딱 한 명 퇴소자가 있었더랬지.’
최종까지 합격한 마당에 여기서 퇴소를 당했으니.
그 쓰라린 심정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을 터.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조교들은 훈련복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밖에 체력 훈련인 ‘웨이브’에 대한 설명과 장비 사용법도 세세히 알려 주었다.
훈련 중에 부상자가 나와서는 안 되기에, 그들은 몇 번이고 안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체력 훈련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오전엔 설명만 하다가 끝나 버렸네.’
점심을 먹고 나온 나는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작년까지는 합숙 훈련을 진행했었기에 훈련 기간 중 교육생들이 사용하던 숙소였는데, 지금은 출퇴근을 하니 대기실 정도로 쓰이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뭘 잘못했는데?”
식당을 막 벗어나려는 찰나.
건물 뒤쪽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어딘가 모르게 잔뜩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했다.
“내, 내가 틈틈이 자주 연락한다고 해 놓고서, 어제 술 먹다가 갑자기 연락 끊긴 것 때문에 그런 거잖아.”
이어 남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자와는 달리 잔뜩 주눅 든 목소리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니?”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내가 그냥 확 나가 죽을까? 응? 네가 나가 죽으라고 하면 바로…….”
“지금 장난쳐? 분위기 파악 안 돼?”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지? 내가 오빠한테 듣고 싶은 건, 미안하단 말이 아니라고.”
“그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건데!”
“화내는 거야 지금? 잘못한 건 오빤데, 왜 오빠가 나한테 화를 내?”
“미, 미…….”
“또 미안하다고 하려 그러지? 내가 분명히 조금 전에 미안하단 소리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으음.
건물 뒤쪽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만.
대충 상황은 알겠다.
직접 가서 얼굴까지 확인할 용기는 없다만, 아마 교육생들 중에 커플이 있는 모양이다.
‘괜히 불똥 튈라. 그냥 가야지.’
커플 싸움에 얽혀서 좋을 건 없다.
교육 센터 입소까지 해서 저러는 거면, 여자 측에서 화가 아주 많이 났다는 건데…….
‘그러게 연락 자주 한다고 했으면 했어야지, 이 사람아.’
숙소에 돌아온 나는 문득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 연락 문제로 싸우는 커플의 목소리가 떠올라서다.
나 역시도 훈련 중에 틈틈이 연락하겠다고 했다.
지금 입소하고 한 번도 안 했고.
‘흐음…….’
괜히 찔려서 카톡 메시지를 보내 봤다.
- 나 : 점심 먹고 잠깐 쉬는 중. 뭐 해, 여보?
- 마님 : 카페임ㅋㅋ 오늘 친구들 만난다고 했잖아
- 마님 : 내가 친구들한테 오빠 기동대 특채 수석 합격했다고 자랑해썽ㅋㅋㅋㅋ
어라? 아직 자랑하면 안 되는데.
자칫 교육 센터 점수가 많이 안 나오면, 수석을 다른 교육생에게 뺏길 수도 있다.
뭐, 내가 그렇게까지 모자라진 않겠다만.
- 나 : 수석 아직 결정 안 났는데. 교육 센터 수료까지 해야 최종 결정 남.
- 마님 : 헐? 이미 친구들한테 다 말해 놨는데ㅠㅠ
- 마님 : 그럼 어케?
어떡하긴.
교육 센터 평가 최고점 맞아야지.
잠시 후, 난 핸드폰을 반납했다.
본격적인 체력 훈련이 시작됐다.
* * *
환복을 마치고 교육장에 집합했다.
눈앞에 커다란 유리막으로 만들어진 웨이브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랗고 투명한 유리막으로 만들어진 공간.
일명 웨이브라고 불리는 체력 훈련 장치였다.
‘엑시스 막 입사했을 때 꽤 자주 하던 훈련이었는데.’
준우는 눈앞의 유리막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처음 해당 훈련을 했을 때 얼마나 얼을 탔는지.
‘그땐 단 5분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
유리막 안에 들어가 마력의 파도를 버텨내는 훈련이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아마 10분 이상 버텨 냈던 신입들은 없었던 것 같다.
준우가 잠시 회상에 잠겨 있던 사이.
안전이 중요한 만큼, 주의 사항에 대해 다시금 설명하던 조교의 말이 끝이 났다.
훈련을 진행할 교관이 도착하기까지 약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생겼다.
“5번 교육생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여자 조교였는데 입소 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제 얘기를요?”
“네, 센터 내에 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실기시험에서 활약이 엄청났다고 하시던데요?”
“아아, 그런 게 소문이 나기도 하는군요.”
“기대할게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해서, 부디 수료까지 수석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특별한 응원 같은 건 아니었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다른 교육생들에게도 번갈아 가며 응원의 말을 전하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저것도 조교들의 역할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들 역시 교육자이며, 자신들이 교육한 교육생들이 조기 퇴소를 하는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목소리가 왜 낯이 익지.’
교관이 도착했다.
모여 있던 조교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들이 섞여 들어왔다.
“5번 교육생 잘생기지 않았어?”
“그러니까, 요즘은 면접 볼 때 얼굴도 보나?”
“아무렴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는 건데. 면접 때 잘생기면 아무래도 가점이 있지 않을까?”
수군거리는 작은 소리일 뿐이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내 신체 능력치가 좋은 탓에 얼떨결에 들려 버렸다.
“나라도 조건이 다 똑같으면, 잘생긴 사람 뽑지.”
그때, 누군가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까 내게 응원의 말을 전하던 그 여자 조교였다.
목소리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었는데…….
‘……아까 그 커플.’
식당 뒤에서 싸우던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교육생인 줄 알았는데, 조교였구나.
근데, 왜 단상 위의 교관이 날 노려보고 있는 걸까.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교육생들 전원 본 교관 앞으로 집합.”
교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도 낯이 익었다.
어쩐지, 미안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목소리랄까.
‘……아까 그 커플.’
날 노려봤던 이유도 아주 잘 알겠다.
아무래도 내 외모를 가지고 칭찬하던 여자 친구의 말을 들었던 모양.
설마, 연애 싸움 불똥이 나한테 튀는 건 아니겠지.
“일단 교육생들의 기본 체력 능력에 대해 테스트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교육생들을 훑던 교관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5번 교육생이 이번 시험 최고점이라죠?”
“……그런 것 같습니다.”
“5번 교육생 먼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육생 앞으로.”
순서대로면 1번부터 해야지, 왜 5번부터지?
이 자식, 진짜로 지금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가.
“대인 전투술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근력과 공격력을 기반으로 하는 시험에서 그러한 활약을 보여 주신 것이라면, 아마 뛰어난 딜러 계열의 헌터라는 것이겠죠.”
“…….”
“체력 훈련인 웨이브는 그와 정반대되는 방어력 중심의 훈련입니다. 하지만, 수석 후보자라면 해당 훈련에서 또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내가 싫어서 떠들어 대는 걸로 밖에 안 들렸다.
보통 같은 경우는 딜러 계열 헌터들이 웨이브 훈련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딜러들은 대부분 능력치를 공격력 바탕이 되는 쪽에 투자하기 마련이니까.’
고로, 눈앞의 교관은 지금 날 엿 먹이려고 하는 거다.
이해는 한다. 여자 친구랑 싸운 마당에, 그 여자 친구가 내게 칭찬을 했으니 화가 날 만도 하겠지.
그래도 그렇지, 이 자식아.
교관이라는 놈이 교육생한테 이러면 쓰겠냐.
“여기 있는 교육생들에게 귀감이 되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5번 교육생님.”
그래, 원한다면 귀감이 되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