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눈도장을 찍었다 (57/246)

◈ 눈도장을 찍었다

대인 전투 실습실은 A조의 시험을 거쳐.

어느새 B조의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나는 내가 속해 있는 C조의 시험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열심히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대기자들은 다른 사람의 시험엔 관심이 없었다.

다들 자신들이 습득한 체술을 운용해 몸을 풀거나, 유튜브를 통해 각종 체술 파훼법을 시청하거나, 서로 간 모의 대련을 하며 곧 닥칠 시험에 대비하기에 바빠 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옛 생각이 났다.

회귀 전에 엑시스 입사 당시 나도 저랬었는데.

“긴장되시죠?”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대뜸 물었다.

한 손에 쥔 청심환을 쓱 건네면서.

“혹시 몰라서 하나 더 챙겨왔거든요. 드실래요?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이셔서…….”

“아아, 저는 괜찮습니다.”

표정이 어두운 게 아니라, 회상에 잠긴 것뿐이다.

고생하는 청춘들의 모습에 너무 이입이 됐달까.

“그러지 마시고 하나 드세요. 시험 중에 긴장하셨다가, 나중에 후회하실라.”

“정말 괜찮습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남자는 청심환을 도로 제 입속으로 가져갔다.

그는 입을 오물거리며 내게 물었다.

“쩝쩝, 혹시 협회 시험은 처음이세요?”

“네, 처음입니다.”

“저는 두 번째예요. 작년에는 필기시험에서 떨어졌었는데, 올해는 운이 좋게 필기는 통과했죠.”

“그렇군요.”

“이번 필기시험 난도가 10년간 최고로 높았다고 하더라구요. 어쩐지 작년에 비해 까다로운 문제들이 많더니만…….”

문제가 까다로웠다라.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시험지 가채점했을 때, 한 문제 틀린 것 같았거든.

‘넉살이 좋은 친구네.’

남자는 내게 이런저런 말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앞서 협회 시험에 대한 경험이 있던 탓인지, 마치 선배라도 되는 것처럼.

“첫 지원에 필기 합격하고 실기까지 오신 거면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시험 준비 얼마나 하셨어요?”

예의상 1년 정도는 했다고 말해 줬다.

“이야! 대단하시네요! 공부 비법이 따로 있기라도 한 건가요? 전 죽어라 했는데도 여기까지 5년이나 걸렸는데…….”

“비법요?”

“네, 보통 단시간에 합격하신 분들은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하핫,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실례이려나.”

“으음.”

만약에 이번 면접에서 떨어질 상황에 대비하는 걸까.

남자는 어느새 작은 노트까지 꺼내, 내 말을 받아 적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딱히 없긴 한데, 굳이 비법이라고 한다면…….”

회귀해.

그렇게 말하려다가 애써 참아 냈다.

“……아내의 든든한 지원이랄까요?”

“대체 얼마나 지원을 해 주셨기에?”

“구천오백 정도?”

“헤, 헤엑! 구, 구천오백만 원이요? 부럽습니다! 정말 멋진 아내분을 두셨군요!”

사실은 구천오백 원이었지만, 남자의 오해를 굳이 풀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딱히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고, 정작 내게는 구천오백만 원만큼이나 값진 응원이었으니까.

한참을 떠들어 대던 남자가 내 명찰을 힐끗 바라본다.

“B조 시험 다 끝난 모양이네요. C조시죠?”

“네, 첫 번째 순서예요.”

“첫 번째 순서요? 그럼 상대가 한태평이에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이런! 안타깝게 됐네요. 한태평이면 아카데미 재학 당시에도 대인 전투술로 이름 좀 날린 사람이라, 커뮤니티 내에서도 꽤 유명한데.”

“저도 듣긴 했어요.”

“재학 당시 머리도 비상했는지, 다들 이번 특채 수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뭐, 교육 센터 평가 점수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아니, 수석은 내 거다.

아내의 응원도 응원이지만, 꼭 수석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기동대 팀장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 둬야 하니까.’

내 상관이 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팀장급의 추천서가 필요했다.

‘특별 수사팀에 지원할 수 있는 추천서.’

늑대인간 놈의 수사를 전담하는 특별 수사팀.

그것이 내가 기동대에 들어가려는 진짜 이유이지 않은가.

최종 합격이 되더라도 시보 기간을 거쳐야 할 텐데.

팀장급들이 막내인 내게 눈길을 줄 리는 만무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날 각인시켜 줄 수밖에.’

실력을 보여 줌에 있어서, 대인 전투술 시험은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 C조, 시험장으로 입장하겠습니다.

내 순서를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고.

잠시 후, 나는 시험장 위에서 나의 상대를 마주했다.

한태평.

실력이 뛰어나다고 익히 들었는데.

‘이건 너무 기대 이하잖아?’

대충 봐도 마력을 통해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내 눈에 한태평은 그저 수석을 위한 제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 *

김강수는 헌터 협회 경기 지부 고인물에 속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고인물이 되기엔 경력이 아직 그 정도까지 미치지는 못했지만, 선배들과 동기들이 대부분 길드로 이직을 해 버린 탓이다.

고인물이 있으면, 썩은 물도 있기 마련.

김강수는 시험 감독관 자리에 앉아 있는 썩은 물을 응시했다. 아주 잔뜩 썩어서 더러운 꼬린 내가 나는 물을.

‘……최 팀장. 네가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사고를 쳐.’

유일하게 남은 동기 중 한 명인 최 팀장.

그가 협회에 들여서는 안 될 인물을 들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C조의 시험 시작 직전.

멀리서 시험을 지켜보고 있던 김강수가 문득 물었다.

“이건형이. 저거 그냥 두고 볼 거냐?”

“당장 방법이 없는데, 뭐 어쩝니까.”

“한태평 저 사람 범죄자야. 그런 사람이 공무원이 된다는 게 말이나 돼?”

“저도 답답하긴 한데, 따지고 보면 아직 범죄자는 아니잖습니까. 증거도 없고.”

“네가 저 자식 기억 읽는 건 안 영 안 되겠냐?”

“몇 번 시도해 봤는데, 등급 차이 때문인지 단시간 내 기억을 읽어 내는 건 아예 불가능해요. 스킬 범위 내에서 최 팀장님과 하루 정도 이상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모를까.”

“저 눈치 빠른 녀석이 잠자코 당해 줄 리는 없고.”

“단순 등급 차이 때문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티팩트라도 갖고 있는 건지, 스킬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계속 끊김이 생기더라구요.”

“흐음, 한나랑 조사 중인 건?”

“아직 증거라고 내놓을 만한 정도는 안 됩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중간하게 덤볐다간 되레 당할 수도 있어요. 자칫 팀장님 모가지 날아가는 수도 있다구요.”

“시팔,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말년에 기동대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데.”

“기동대에서 수사과로 강등된 저 때문이겠죠.”

수사과나 기동대나 몸이 힘든 건 마찬가지나.

기동대가 절대적으로 더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걸 아는 놈이 말을 그따구로 해?”

“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저희 지부에 인재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실력 있는 팀장님께서 지금 절 대신해서 기동대를 맡고 있는 거고.”

“……칭찬이지?”

“그럼요. 아무튼, 증거는 최대한 더 확실하게 만들어 볼 테니 그때까지만 좀 참으세요.”

“끄응!”

작년 말쯤, 수사과에 신고 접수가 하나 들어왔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한 학생이 동급생인 한태평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신고였는데,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당사자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했다는 말로 끝나 버린 해프닝이었다.

경기도 내 헌터 아카데미에서의 일이자, 당사자들이 헌터였던 만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당연히 해당 지역의 협회에서 담당하며.

당시 신고 접수를 받았던 사람이 정한나였다.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아카데미 내 해당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 도는 것을 입수한 정한나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몇 번 만나 본 결과 정황상 폭행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꽤 오래된 기억이라 이게 장면이 너무 끊긴단 말이지.’

정한나와 함께 피해자를 만났던 이건형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기억 속 장면을 증거로 만들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 그의 능력만으로는 증거로서 효력은 없을 듯했다.

피해자의 몸에 폭행의 흔적으로 보이는 작은 상처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피해자가 아카데미 실습 중에 다친 것이라고 발뺌을 하니 그마저도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증인들이라도 나서 주면 좋을 텐데.’

피해자가 합의를 봤는지, 아니면 무슨 협박이라도 받았는지 입을 싹 닫았고. 해당 사건을 다뤘던 소수의 기사들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문이 허다하던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

학생들도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 한태평이 아버지가 힘을 써 준 걸까.’

차기 유력 대선후보인 한태평의 아버지 한재호였다.

자신의 아들을 기업인 길드가 아닌, 국가직인 협회로 집어넣으려는 것도,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라는 말도 있고.

“난 분명 최 팀장 저 새끼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본다. 예전부터 한재호랑 밀접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고, 폭행 사건 때 당시 피해자나 증인들 입 막으려면 한재호 정도 능력은 있어야…….”

“티, 팀장님. 목소리 좀 줄이세요. 다른 사람들이 듣겠습니다.”

“흠, 흠. 아무튼, 한태평이가 시험 치는데 최 팀장이 감독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냄새가 구려.”

“최 팀장님께서 한태평이 서류 심사 때 만점 주긴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런 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한태평의 서류나 실력은 그만한 점수를 준대도 의심을 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결국, 심증은 있으나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

앞서 언급했듯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덤볐다가는 죄다 모가지 날아가는 수도 있었다.

그만큼 상대가 거물이지 않은가.

“일단, 나는 저 새끼부터 시험에서 떨어졌으면 좋겠어. 우리 협회가 정치하시는 놈들을 위해 이미지 소비해서야 되겠냐?”

김강수가 시험장 위에 올라선 한태평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애국심 하나 갖고 여기 남아 있는데, 이런 꼴 보려고 남아 있는가 싶기도 하고…… 에휴.”

이건형이 김강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한태평의 뒤를 이어, 준우가 시험장 위에 올라섰다.

“한재호 부자를 당장 잡아넣을 수는 없어도, 일단 한태평을 시험에서 떨어뜨리는 건 잘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수로?”

“이번 실기에서 떨어뜨려야죠.”

“떨어뜨리긴 개뿔. 저 새끼 대인 전투술에 특화된 놈이라더만.”

기동대원이라면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

이번 특채 지원자들 중, 수석 가능성이 높은 자는 한태평이라고.

실력으로나, 구린 정도로나.

아카데미에서는 이름 좀 날린 그였으니까.

“이번에 서류 들어온 거 보니까, 한태평이 잡을 만한 놈은 영 없던데?”

“있습니다.”

“시팔, 있기는 누가 있어? 저 새끼한테 죄다 처발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때였다.

시험이 시작됨과 동시에.

퍼억-!

둔탁한 굉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자연스레 김강수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어라…….”

한태평의 복부를 강타한 준우가 그곳에 서 있었고.

“……날아가네?”

복부를 강타당한 한태평은 시험장 위에 붕 떠서, 김강수의 말대로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쿵!

시험장 위를 날던 한태평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장외의 감독관들이 앉아 있는 곳 바로 앞에.

“……푸흡!”

김강수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코앞에서 바닥을 나뒹구는 한태평을 직관하는 최 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기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한 자의 낙관적인 얼굴이랄까.

“아이고, 꼬시다!”

김강수는 최 팀장이 있는 쪽을 향해 입을 삐쭉거린 뒤.

시험장 위에서 손을 털고 있는 준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건형이.”

“예?”

“나 쟤 마음에 든다.”

준우를 바라보던 김강수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소리 뒤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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