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구천오백 원의 가치 (56/246)

◈ 구천오백 원의 가치

드래곤을 길들이기 위해선 먼저 기초 공사가 필요했다.

일단은 녀석을 우리 가족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 대상이 당신을 가족으로 인지하지 않습니다. ]

[ 대상과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

신비의 알에 가장 특성을 사용해 본 결과였다.

기분이 좋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장인어른에게 처음 해당 특성을 사용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그때는 나를 혐오하고 있다는 홀로그램까지 더해져 있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정도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특성이 적용된다는 건 선화의 금지옥엽 스킬 역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겠지.’

영국 왕실이 알을 부화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년.

테이머의 도움을 받긴 했겠으나, 부화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화를 시킬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화만사성 스킬로 녀석이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줄인 다음, 가족들 간의 교감을 통해 알 안에 잠들어 있을 드래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거야.’

중요한 건 성장이라고 판단했다.

어쨌거나, 녀석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해야 알을 부수고 나올 테니까.

또한.

내게 가장 특성이 있는 이상, 최소한 영국 왕실이 부화시키는 데 걸렸던 10년보다는 빠를 것이다.

장인어른과 형님만 해도,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불과 한 달 만에 대폭 줄지 않았던가.

‘서두를 필요 없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야.’

용의 알이 내 손에 들어온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다.

가히, 로또에 당첨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드래곤은 부화하게 될 터.

그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을 찾아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일단 그건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기동대 특채 서류 마감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

당장 내겐 그게 더 급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러다 내가 최초의 드래곤 테이머가 되는 거 아냐?’

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휴일 아침임에도 불구,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협회 기동대 특채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 계획을 곧장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 * *

얼마 전, 협회 기동대 서류 접수를 마쳤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내일이면 벌써 서류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120대1? 경쟁률이 사상 최고라고 했나.’

나는 발표를 하루 앞두고 아내와 함께 쇼핑을 나왔다.

아내는 내가 긴장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기분을 환기시킬 겸 쇼핑을 나온 걸로 착각을 한 듯했지만…….

‘……뭐, 서류 전형쯤이야.’

정작 나는 딱히 긴장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서류에 적어 낸 이력들이라면, 서류 담당자들도 나를 합격시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회귀 전엔 자주 못 했던 데이트를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내겐 행복한 일이기는 했다.

“어? 오빠, 우리 잠깐만 저기 들렀다가 가자!”

“……?”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새로 산 옷들이 가득 담긴 쇼핑백을 들고, 아내를 따라 쇼핑몰 바깥쪽으로 향했다.

“아직도 이런 게 있긴 있구나.”

“마침 잘됐어, 오빠. 안 그래도 소원빌 게 있었거든.”

“……소원?”

아내가 양손을 모아 소원을 빌기 시작했고.

나는 정면의 야외 분수대를 빤히 바라보았다.

‘쩝, 여기에 소원을 빈다고 효과가 있으려나.’

분수지 안쪽에 수많은 동전들이 들어 있었고, 주변에도 미처 분수지 안쪽까지 닿지 못한 동전들이 잔뜩이었다.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며, 분수지 안에 동전을 집어 던져 넣는 그것. 요즘에도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거 너무 옛날 감성 아니야?”

“난 옛날 감성이 좋더라.”

“좋으면 해야지. 무슨 소원 빌었어?”

“당연히 비밀이지! 말하면 소원 안 이뤄져.”

주섬주섬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낸 아내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집중할 때 나오는 아내의 습관 같은 거였다.

투욱-

아내가 가볍게 동전을 내던졌다.

그러나 동전은 분수지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떨어졌다.

“에잇, 다시!”

“…….”

“다시, 다시!”

총 열 번이나 동전을 던져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실패였다.

“그냥 가자, 여보. 어차피 그거 소원 안 이뤄져.”

“무슨 사람이 이렇게 감성이 없어?”

“동전 넣으려다가, 전 재산 다 날리겄다.”

아내의 얼굴이 뾰로통해졌다.

오기가 생긴 건지, 어떻게든 동전을 넣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소원 꼭 이뤄져야 한단 말이야.”

“무슨 소원인데?”

“그야 당연히 오빠 서류 합격하게 해 달라는 소원이지!”

“말하면 소원 안 이뤄진다며?”

“몰라! 아무튼 찜찜해서 이대로는 못 가!”

설마, 소원이 내 서류 합격일 줄이야.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지는 대답이다.

‘굳이 소원 같은 거 안 빌어도 합격일 텐데.’

자랑이라면 자랑이겠지만, 이미 내 서류는 완벽했다.

얼떨결에 회귀 후 내 행보가 모두 가산점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회귀 직후 아파트 던전 쇼크에서 사람들을 구했을뿐더러.

불법 투기장 운영자까지 직접 내 손으로 잡아넣었다.

‘게다가, 실드 스테이트 균열에서도 가장 높은 기여도를 달성했지.’

자질구레한 것들이 더 있었지만, 그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서류 합격선은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오빠,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동전 좀 바꿔 올게!”

물론, 아내는 그걸 모르는 듯했지만 말이다.

미리 말해 주려 했지만, 서프라이즈가 더 멋있어 보일 것 같아서 합격할 때까지 참고 있는 중이었다.

참고로.

지금은 아내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냥 지켜보는 거다.

‘참나, 헌터 일 하는 거 반대한다고 할 땐 언제고.’

위험해서 안 된다고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찬성이었고, 오히려 응원까지 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내의 생일 파티 때.

장인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협회에 가겠다는 내 진심이 느껴졌다나.

‘장인어른께서 직접 날 스카우트하려고 했던 모습이 컸어. 그것 때문에 선화도 내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것 같으니까.’

무엇보다 내 진심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한 번뿐인 삶, 오빠가 하고 싶은 일은 해 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않겠냐면서.

- 대신, 샤넬 백은 항상 메고 다녀야 해!

안전을 위해 언제든지 차원문을 통해 집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샤넬 백 착용에 대한 말을 귀가 닳도록 하긴 했지만 말이다.

“잘 봐! 이번엔 내가 꼭 동전 넣어서, 오빠 합격시켜 줄 테니까!”

어느새 동전을 바꿔 온 아내가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좀 더 진지하게 동전 던지기에 임한다는 뜻이려나.

그러나 결과는 아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수십 번을 던졌지만, 단 하나도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다.

“……나 눈물 날 것 같아, 오빠.”

“뭐, 이런 걸로 눈물이 다 난다냐.”

하지만 아내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고작 분수지에 동전 집어넣는 게 뭐라고, 이렇게 집요하게 달려드는지.

“나 오늘 이거 못 넣으면, 진짜 집에 안 가!”

“……동전 얼마나 남았어?”

“다섯 개!”

연달아 네 개를 더 던졌지만, 역시나 허탕이다.

이쯤 되면 이쪽엔 재주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물러날 법도 한데, 아내의 집요함은 여전했다.

“이제 남은 동전 없지 않아?”

“……아직 한 발 남았어.”

영화의 대사까지 인용하니 그럴듯해 보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까지 비장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나?

‘좀 도와줘 볼까?’

지갑 속에 있던 지폐를 모두 백 원짜리로 교환해 왔었다.

현금이라고는 9천 원이 전부였지만, 던진 횟수로 치면 앞서 던진 것까지 합해 약 백 번 가까이 던졌다는 거다.

‘마력을 사용해서 티 안 나게 살짝만…….’

분위기상, 동전 못 넣으면 진짜 집에 못 갈 것 같았다.

어쩌면 현금을 인출해 그것까지 죄다 동전으로 바꿔 버릴지도.

투욱-

순간, 아내가 마지막 동전을 던졌다.

동시에 나도 마력을 살짝 피워 올렸다.

스르륵-

티가 나선 안 된다.

아내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

아내가 느끼지 못하면서도, 동전은 분수지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적당하고 섬세하게 마력을 운용했다.

휘잉-

마력이 동전의 방향을 살짝 틀어 주었고.

퐁당-!

백 원짜리 동전이 분수지에 정확히 들어갔다.

동시에 아내가 폴짝 뛰며 내게 안겼다.

“돼, 됐다! 됐다, 오빠!”

“이야, 이게 되네?”

“거봐, 내가 뭐랬어? 될 거라고 했지? 끈기를 갖고 임하면 세상에 못 할 게 없다니까?”

“대단하다, 내 마누라. 스나이퍼로 전향해도 되겠어.”

“에헴! 아무튼 오빤 이제 합격이라고! 축하해, 오빠!”

“……전부 당신 덕분이지.”

별것 아닌 일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였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오늘 일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할 것만 같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있는 거니까.’

뭔들 어떠랴.

아내가 행복해하면 됐지.

“이제 집에 가자 오빠!”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완전! 오빠 서류 합격하면, 다 내 덕인 거 맞는 거지?”

그쯤이야.

여태 동전 넣느라 고생했는데, 그거 하나 인정 못 해 주겠는가.

나는 미소로 화답하며, 아내의 손을 맞잡았다.

동전을 던지는 내내 잔뜩 긴장을 했는지, 작은 손이 어느새 차가워져 있었다.

그만큼 날 위해 간절했다는 뜻이겠지.

순수한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동전 얼마나 썼지?”

“으음, 구천오백 원 정도? 지갑에 있는 현금이 그게 다였거든. 만약 그걸로 안 됐으면, 현금 뽑아 와서라도 어떻게든 성공시켰을 거야.”

“하여튼 고집은.”

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이었지만.

적어도 오늘의 내겐 억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액수였다.

어쨌거나.

투자를 했으니 성과는 있어야 할 터.

‘최종까지 수석으로 합격해 주든지 해야지.’

고작 구천오백 원을 투자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보답으로 안겨 줄 생각이었다.

* * *

예상대로 서류 전형은 거뜬히 통과했다.

필기시험 역시 가볍게 패스할 수 있었다.

‘이번 필기시험 난도가 높다고 설레발친 것치고는 좀 약한 편이었어.’

회귀 전에 엑시스 임원급들은 수시로 기본적 소양에 대한 시험을 치르곤 했기에 딱히 어렵진 않았다.

아니, 내겐 오히려 쉬운 편이었다.

엑시스 임원급들의 그 기본적 소양이라는 게, 협회 기동대 필기시험만큼의 난이도에 견주는 정도였으니까.

‘내가 한때는 기동대 시험 문제 자문까지 참여했는데, 떨어지면 쪽팔린 거지.’

아무튼.

예상했던 대로 앞선 시험들은 만족스레 끝났으며.

오늘은 실기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기동대 필드 지원자들만 보는 시험.

거창하게 풀이할 것 없이 쉽게 ‘대인전투술’이라 불리는 과목이었다.

‘오늘은 몸 좀 쓰겠군.’

토너먼트 형식이었고, 필기시험에 통과한 지원자들을 무작위로 배치해 조를 추첨한다.

최종 합격 후 교육 센터 평가 점수까지 합하여 수석 합격자가 정해지긴 하지만, 이번 실기시험 역시 수석에 아주 많은 점수를 차지하긴 했다.

‘당연히 특성과 스킬, 아이템 사용은 금지일 거고.’

오로지 마력을 이용한 체술만 허용된다.

대인전투술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오랜만이라 그런가. 묘하게 설레네.’

회귀 전, 엑시스 훈련 교관으로 있을 때 자주 했었다.

당시엔 주로 신입들 훈련을 도맡았는데, 처음 맡았던 신입들은 유독 패기가 좋은 녀석들이었다.

패기가 얼마나 남달랐는지, 훈련 교관인 나조차도 깔보는 놈들이 있었다.

‘엑시스에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헌터라도 된 것 같았겠지.’

대인전투뿐만 아니라, 모든 전투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방심이다.

상대를 얕잡아보는 순간 역습을 당하기 마련.

그래서 된통 먹여 줬다. 신입의 패기는 그저 패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선배이자, 교관의 도리였으니까.

‘그때, 손맛 좋았는데.’

합법적인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훈련일뿐이었다. 그렇게 내게 가르침을 얻고 승승장구하던 녀석들도 꽤 있었고.

‘이 시험을 보는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패기 넘치는 녀석들이 있으려나…….’

나는 헌터 협회 경기 지부에 도착해, 곧장 시험이 치러지는 지하 대인전투 실습실로 향했다.

‘아직 시험이 시작되기까진 여유가 있네.’

조편성을 재차 확인해 볼 겸, 대진표를 살펴보는 도중.

“어머, 전준우 씨?”

“오랜만이네요, 정한나 씨.”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정한나가 서 있었다.

회귀 전엔 건형이 형님의 전처이자, 아마 현재는 아직도 형님을 짝사랑하고 있을…….

아무튼.

예전에 나와 함께 불법 투기장 사건을 함께 했던 협회 소속 헌터였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전준우 씨네요?”

“진짜 전준우라니요?”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에 전준우 씨 이름이 있길래, 긴가민가했거든요. 동명이인인가? 뭐, 그런?”

“아?”

“전준우 씨라면 당연히 상위급 길드로 가실 줄 알았는데, 협회 기동대에 지원하실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하고 있었달까요?”

나는 정한나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들어 보아하니, 그녀가 오늘 시험 안내를 맡았다고 했다.

“전준우 씨는 예선 몇 조예요?”

“C조요.”

“가만 보자, C조면…… 어, 어? C조요?”

“네. C조 맞는데, 무슨 문제라도?”

정한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C조면 한태평 씨가 있는 조인데.”

낮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되물었다.

“한태평?”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공무원 신분상 제가 구체적으로 떠들어댈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헌터 아카데미에서 대인전투 과목으로 이름 좀 날렸던 사람인데…….”

“오호?”

숨기는 게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일단, 나는 대인전투 좀 한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질이 나쁜 사람이에요.”

정한나가 왜 이렇게 표현하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그녀가 아니긴 하나,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쉽게 평가할 수는 없었다.

일단 직접 겪어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한태평이라. 만약, 진짜 질 나쁜 놈이면…….’

태평하게 때려 줘야지.

물론, 합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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