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한 알
장인어른께서 날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환한 미소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섬뜩했다.
‘……이, 이런 게 진짜 살인미소지.’
마력을 끌어올린 것인지 술기운마저 모두 날린 상태.
부글부글 끓던 술잔의 술은 싹 증발해 버린 후였다.
‘설마, 나도 증발시켜 버리는 건 아니겠지?’
협회 기동대에 간다던 내 결정을 납득하실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비록, 내 뜻을 존중하겠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자칫, 장인어른하고 다시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어.’
여기서부터 말 잘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앞으로가 진짜다.
물론, 협회 기동대를 택한 이유가 있는 만큼.
장인어른을 만족시킬 대답도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그러니까, 아까 그 늑대 새끼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장인어른.”
일단,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언급했다.
실드 스테이트 균열 던전에서 있었던 일부터 차근차근.
놈의 몸 내부에서 꺼낸 연락망인 수정구를 통해, 배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말씀을 드렸다.
아무런 근거 없이 내 주장을 펼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복수를 위해 저희 집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저에 대한 원한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계속해 보게.”
“놈의 배후까지 움직여 그 원한을 풀려고 할지도 모르지요. 그런 일이 일어나서야 안 되겠지만, 어쩌면 다음번엔 제가 아닌 선화를 노릴지도 모릅니다.”
“감히 내 딸을……!”
비약이긴 하지만,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회귀 전에 나를 죽인 놈의 진짜 목적은 아직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저는 제가 직접 놈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고, 또한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게 자네가 협회 기동대에 지원하려는 이유인가?”
“예. 해당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 수사대 인원을 협회 기동대에서 충원한다고 하더군요. 사건과 관련된 정보 역시 특별 수사대 외엔 공유가 되지 않구요.”
늑대인간을 이건형의 편에 보냈을 때.
그와 잠시 몇 마디를 나눴었다.
-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준우 씨에게 놈과 관련된 정보를 전해 드리고 싶지만, 협회 지침이 그러하여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늑대인간을 맨 처음 대면하고, 놈을 잡아들인 나에게도 정보를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쉽게 말해.
이 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수사를 한다는 뜻이다.
‘뭐, 억울하긴 해도 어쩔 수 없지. 난 민간인이니까.’
놈에게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어 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선 특별 수사팀을 제외한 협회원들에게도 공유가 안 되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해당 사건을 협회에서 특별 사안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추측할 뿐.
‘뭐가 됐든, 협회 소속이 아닌 것보다는 낫겠지.’
접근성만 놓고 봐도 훨씬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놈을 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나중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협회를 나와도 되는 거고.’
하지만, 장인어른께서는 여전히 납득을 하시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난 자네가 고생을 사서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협회의 일은 협회에 맡기면 되지 않나?”
“협회의 일이 아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화의 안위가 걱정이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당장 엑시스 원에 자네를 VIP 고객으로 등록해도 되는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내 집에 들어와 살면 지금보다는 안전할 수 있을 테니까.”
엑시스 원은 엑시스 계열사 중 하나였다.
이 나라 최고의 보안 업체랄까.
“괜한 짓 하지 말고, 그냥 엑시스로 들어와.”
회귀 전의 일들까지 언급할 수는 없다.
과연 장인어른께서 믿어 주실지도 의문이고.
‘역시, 이 방법밖에 없는 건가.’
회귀자면 회귀자답게,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먹어야지.
훗날 완성될 장인어른의 ‘자서전’ 속 내용을 써먹어 볼 생각이었다.
“헌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엑시스의 창립 취지도 던전과 몬스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자 함이었지요.”
“그래서……?”
“이번 일은 저와 제 가족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해야 할 존재는 당연히 저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계속해보게.”
“제 가족 하나 지킬 수 없는 놈이, 과연 엑시스에 입사한다 한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허?”
여기까지 모두 장인어른의 자서전에 있었던 내용이었다.
고로, 장인어른의 가치관인 셈.
‘비록, 장인어른께서는 가족을 지키지 못한 후회로 인해 그런 문장을 남기셨겠지만…….’
장모님과 이혼하신 게 영향이 컸던 걸로 추측된다.
아마, 오직 일만 좇던 불같은 성격의 자신 때문에 장모님이 떠나셨다고 생각하셨겠지.
“가족을 위해 직접 사건을 파헤치겠다?”
“저와 제 가족을 위협한 놈을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습니까. 직접 뿌리를 뽑아야지요.”
“……끄응!”
장인어른께서 답답한 듯 관자놀이를 눌러댄다.
만약, 자기 자신이었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말을 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지금의 장인어른처럼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가정을 지켜 낸 뒤, 좋은 남편이자 가족으로서 엑시스에 입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자넨 절대 나처럼 되면 안 돼. 난 내 가정을 지키지 못했거든.”
“……?”
“절대 선화를 곁에서 떠나보내지 말라는 뜻이야.”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게 자네만의 가정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나도 이쯤에선 이해를 해야 하는 거겠지.”
장인어른께서 핸드폰을 꺼냈다.
곧장 최 비서님을 호출했고, 그가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가 봄세. 오늘 즐거웠네.”
“벌써 가시려구요……?”
고개를 끄덕인 장인어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자 최 비서님의 모습이 보였다.
최 비서님이 술에 찌든 형님을 부축했고.
뒤따라 현관을 나서려던 장인어른이 순간 멈칫했다.
“……얼마나 걸리겠나?”
문득, 뒤를 돌아 내게 묻는 장인어른.
그리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늙은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게.”
장인어른께서 다시금 아공간을 열었다.
날 이해하고, 응원하겠다는 뜻일까.
“이건 마땅히 내가 쓸데도 없고, 버릴 데도 없으니 여기 두고 가겠네.”
뭐지?
갑자기 우리 집에 뭘 버리신다는 걸까.
투욱-
현관 앞에 커다란 기계 장치 하나를 내려놓고는, 장인어른께선 그렇게 우리 집을 나섰다.
“……배웅은 괜찮네, 크흠!”
평범한 기계처럼 보이지 않은 걸로 보아,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버리려는 물건은 아니었던 모양.
그럼에도 뭐가 그리 부끄러우신지 괜히 헛기침을 하시며, 줄행랑치듯 사라지셨다.
“뭐야, 저거? 아빠가 주고 간 선물인가?”
“응원 선물 비슷한 것 같긴 한데…….”
나는 잠시 멍하니 기계 장치를 바라보다가, 아내와 함께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선물로 준비하신 게 돈 가방이 전부가 아니었나?’
앞서 받았던 돈을 돌려드렸다.
한데, 또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셨던 것 같다.
‘안에 뭐가 들었으려나’
기계에 대해선 잘 모른다.
게다가 외형이 강철과도 같은 것으로 깔끔하게 마감이 되어 있어, 보이는 것도 은색의 겉모습이 전부다.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 흔한 버튼 같은 것도 없었기에.
툭-
그때, 아내가 표면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웅-
장치가 움직이며 표면에 붉은 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 선이 그린 모양을 따라 여러 개의 작은 정육면체로 나누어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알? 은실이처럼 깜찍한 아이가 요 안에 있는 걸까, 오빠?”
내용물을 확인한 아내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알은 알인데…….”
용의 알이었다.
영국 왕실에서 최초로 부화에 성공했던 바로 그것.
어쩌면.
이번엔 내가 최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 *
국가별로 번역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언급한 용이라는 것은 던전에서 등장하는 드래곤(Dragon)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장인어른이 두고 가신 기계 장치 안에는 드래곤이 잠들어 있는 ‘신비한 알’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걸 우리한테 주신다고? 왜지?’
아마, 10년 전쯤 되려나.
런던에서 대형 균열인 크레비스 때, 왕실에서 하사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 알에 뭐가 잠들어 있는지 정확히 모르시긴 할 거다.
하지만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대감이 있듯, 쉽게 누군가에게 내어 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그마치 영국 왕실에서 하사받은 건데…….’
크레비스 보상으로 얻은 신비한 알은 두 개.
영국 왕실은 부화에 성공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실패했다.
신비한 알의 주인이었던 장인어른께서 몬스터 알 부화시키는 데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부화시키는 방법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나도 모르고.’
영국 왕실에서 그런 고급 정보를 공유할 리가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영국에서 알의 부화에 성공한 날, 장인어른께서 갖고 있던 알은 깨져 버렸다는 거다.
‘그 안엔 죽은 드래곤의 사체만이 있었지.’
동시에 얻은 두 개의 알.
신비한 존재인 만큼 그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겠으나.
어쩌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알에서 대체 어떤 아이가 태어나려나, 오빠?”
조금 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신비한 알을 마주하고 앉았다.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을 보니, 벌써부터 알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은실이처럼 조류려나?”
“흐음, 글쎄.”
“아니면 말순이처럼 몸집이 커다란 강아지? 그게 아니라면, 미심이처럼 특별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일까? 설마, 오복이들처럼 여러 마리가 태어나는 거 아냐?”
“……잘 모르겠네,”
“알이 작으니까 당연히 작고 귀여운 아이가 태어나겠지? 손바닥 두 개 합친 것보다 살짝 큰 사이즈면, 어떤 아이가 됐든 너무 귀여울 것 같지 않아?”
나는 괜히 다른 곳을 응시했다.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알이 작고 예뻐서 그런지, 당연히 귀여운 녀석이 태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아내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와 전혀 다른 녀석이 태어날 것이기에, 나는 일단 말을 아끼기로 했다.
‘……드래곤은 귀여움과 거리가 너무 멀어.’
A급 이상의 던전에서만 등장하는 녀석이며.
파괴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몬스터들의 끝판왕.
그런 존재가 바로 드래곤이었다.
“아무래도 빠를수록 좋겠지?”
“뭐가?”
“새 식구를 맞이할 준비 말이야!”
무슨 준비를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행복해하는 아내 모습 때문인지, 말릴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뭐, 처음엔 작고 귀엽게 보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유아기의 드래곤이 태어나긴 할 테니까.
그러나.
빠르게 성장을 하는 드래곤이라면…….
흐음, 아내의 실망은 이루 말하기 힘들 거다.
어쩌면 알에 대한 공포증이 생길 수도 있었다.
“예전에 말순이가 쓰던 켄넬 있는데, 부화하면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게 할까? 아니다, 그냥 새 걸로 사는 게 좋겠다!”
뭘 사든지 간에 드래곤이 지낼 만한 집은 마련하기 힘들 것이다. 몸집이 워낙 커야지.
‘차원문 내부 정도면 적당하긴 하겠어.’
만약, 드래곤을 길들이게 된다면 당장 녀석이 지낼 만한 장소는 그곳밖에 없었다.
아공간이자, 숲의 모습을 하고 있는 차원문 내부는 아무리 몸집이 큰 드래곤이라도 활동하는 데 무리는 없을 테니까.
“오빠도 좋지? 새 식구 생기는 거?”
“당연하지.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겠어?”
아내의 질문에 대한 답은 거짓이 아니었다.
만약, 드래곤이 정말로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유년기의 드래곤이라도 어지간한 공격대 하나보단 훨씬 위력이 뛰어나. 잘 성장한 드래곤이라면 S급 헌터 이상의 힘을 가질 수도 있을 거고.’
문제는 과연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하여, 반려몬 허가가 나느냐 하는 것.
‘그게 과연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가능할까?’
영국은 가능했다.
크레비스를 잠재우고 얻어낸 알에서 태어난 드래곤이었던 만큼, 국가의 수호신 격으로 자리매김했었으니 말이다.
‘그 이전에 세계에서 제일 뛰어난 테이머가 영국인이었지.’
영국 왕실에서 신비한 알을 부화시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뒤다. 슬슬, 테이머들이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길들이기에 성공한다면, 협회를 통해 어찌어찌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아니라면, 차원문 안에서 드래곤을 생활하게 하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소환사의 능력으로 둔갑시켜도 된다.
역시나 가장 좋은 방법은 법적 문제가 없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이 고민에 대한 전제조건도 일단은 드래곤 길들이기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영화로만 봤다.
회귀자인 나도 직접 해 본 적은 없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영국 왕실의 수호신이 우리 집을 지키게 되는 셈.’
아내를 포함한 우리 가족.
나아가, 우리 집을 지키는 경비용(龍)이 생기는 거다.
‘경비견보다는 훨씬 낫겠지.’
상상 그 이상의 효율을 낼 것임이 분명했다.
고로, 나는 드래곤을 길들이기에 매우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아내의 취향과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녀석이다.
하지만, 이번엔 내 취향 한 번쯤 존중해 줄 때도 된 것 같다.
‘이름은 용식이가 좋으려나?’
우리가 죽고 나서도 몇백 년은 더 살 정도로 수명이 길기에, 굳이 촌스럽게 이름을 지어야 오래 산다는 작명법을 적용시킬 필요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이름은 아내의 취향에 양보하기로 했다.
우리 집 반려몬들하고 이름의 격차가 너무 심하면, 뭔가 거리감이 생길 것 같달까.
‘일단, 드래곤 길들이기를 한번 해 볼까.’
딱히 거창한 방법 같은 건 없다.
영국 왕실에서처럼 내가 고등급 테이머도 아니고.
‘아마, 이걸로 되겠지?’
그저 나의 특성과 스킬을 믿고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녀석이 우리 ‘가족’이 된다면, 드래곤 길들이기도 그리 어렵진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