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것도 키우는 거냐?
고속도로 위.
여러 대의 차량이 각을 맞춰 달리는 게 보였다.
호송 차량이 가운데, 그것을 중심으로 협회 특별 수사팀 헌터들이 탑승한 차량들이 사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라?’
선두에서 달리는 차량 안, 이건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핸드폰 화면 속 기사를 살피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 준우 씨 같은데?’
엑시스의 업턴 레이드 공략에 관한 기사였다.
공략이 끝난 직후, 엑시스의 비서실장이 누군가에게 허리까지 숙여 가며 인사를 건네는 사진이었는데.
‘인사를 받는 사람이 왜 하필 준우 씨냐는 말이지!’
엑시스의 독점 레이드에 참여했다는 것은 엑시스의 길드원이 되었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
게다가, 비서실장이 허리까지 숙일 정도면 이미 내부에서도 귀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증거.
‘……결국 엑시스로 가신 거구나. 나한테 말이라도 한번 해 주고 가시지, 쩝.’
이건형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세상 어느 헌터라도 공무원인 협회 소속보다는 엑시스를 원할 테니까. 물론, 엑시스에 입사할 자격만 충분하다면.
“응?”
순간, 이건형의 눈빛이 다시금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기사가 싹 사라지더니, 이내 새로운 기사로 돌변한 것이다.
< 엑시스의 유망주 송일우, 그는 누구인가? >
준우와 관련된 기사가 전부 송일우라는 사람의 기사로 변해 버렸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보라고?’
포털 사이트 상단에 올랐던 기사는 어느새 하단으로 쭉 밀리기 시작했다.
이어, 조금 전 준우와 관련된 기사가 오보였다는 정정 기사마저 올라왔다.
‘사진 때문에 기자들이 오해를 했던 건가?’
측면에서 찍힌 준우의 사진이었다.
최 비서가 인사를 했던 게 준우가 아닌, 바로 그 옆에 서 있던 송일우였다는 정정 기사였다.
순식간에 언론과 여론이 다시금 송일우에게 집중된 상태.
엑시스가 이런 실수를 다 하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건형이 문득 자신이 봐 왔던 준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흐음, 이 사람이 정말로 준우 씨보다 능력이 뛰어난 헌터일까?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인데.’
그만큼 이건형이 본 준우의 능력은 뛰어났다.
물론, 천하의 엑시스가 괜히 송일우라는 사람을 택하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한때는 수재혁 부마스터까지 직접 나서서 스카우트를 하려 했던 준우가 아니던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이상했다.
적어도, 수재혁과 함께 준우의 영입 전선에 나섰던 이건형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직접 전화해서 물어볼까?’
이건형이 핸드폰 속 준우의 연락처를 살폈다.
이래저래 궁금한 게 많기도 하고, 모처럼 연락을 해 볼 생각이었다.
끼이이익-!
뒤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타이어 끌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오더니.
콰아앙!
이내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백미러 속, 호송 차량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게 보였다.
‘젠장! 일 터졌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속도로를 막 빠져나오는 찰나였기에, 차량들의 속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
늑대 인간을 호송하던 차량이 우측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였다.
아마도 호송 칸 안에서 문제가 생긴 모양.
‘설마, 놈이 제어 장치를 풀고?’
차를 멈춰 세운 이건형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다른 차량을 통해 함께 이동 중이던 헌터들도 무기를 꺼내 들고 호송 차량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
“……호송 차량 내부 인원들과 무전이 끊겼습니다.”
“놈은?”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위치 추적기까지 파괴한 듯싶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건형이 신호를 보냈다.
협회 헌터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호송 칸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놈이 없습니다.”
“돌아 버리겠군.”
호송 칸 안에는 시신들뿐이었다.
모두 내부에서 놈을 감시하던 협회 소속 헌터들의 시신이었다.
‘정말로 제어 장치를 해제하고 도망을 쳤을 줄이야.’
제어 장치는 대상의 마력을 흡수함과 동시에, 모든 능력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는 고급 장비였다.
늑대인간이었던 놈을 생포한 순간부터 장착시켜 뒀고, 놈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게 장치의 효과가 있다는 증거였다.
‘제어 장치로 인해 남아 있는 마력이 거의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 많은 인원들을 그 짧은 시간 안에 상대할 수 있었던 거지?’
헌터 협회 중앙 연구 센터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었다.
녀석의 정체를 밝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여러 검사를 마쳤다.
그 과정에서 마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결과도 받아냈었다.
“본청에 협조 요청해서 수색대 투입시켜 달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수색은 곧바로 진행됐고.
이건형은 마비된 도로 위의 시민들을 혹시 모를 위험에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녀석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준우가 생포해 준 놈을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 버리다니.
얼굴을 찌푸린 이건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준우 씨를 볼 면목이 없군.’
달이 떠오른 밤하늘.
협회의 품에서 벗어난 늑대인간은 독기를 품은 채 준우를 찾아 내달리고 있었다.
* * *
웨어울프(Werewolf) 헨더.
그는 보름달 아래의 건물들을 뛰어넘으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놈!’
이름은 모른다.
기억하는 것이라곤, 균열 속 놈과의 전투에서 유일한 흔적인 ‘냄새’가 전부였다.
‘이곳에 도착해서 여태 한 일이라고는 갇혀 있었던 것뿐이라니. 이게 전부 다 그놈 때문이다.’
헨더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날카로운 송곳니는 금방이라도 상대를 찢어 죽일 만큼 번뜩였다.
‘그간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면…….’
찢어발겨도 부족했다.
황명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균열 속 터널을 힘겹게 지나 여기까지 도착했거늘, 난데없이 등장한 준우에게 통신구를 뺏겨 버렸다.
체내에 숨겨 뒀는데, 그걸 어찌 알았는지.
그 때문에 이곳에 미리 와 있던 조직원들과 연락할 유일한 방법마저 사라져 버렸다.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하려면, 통신구가 있어야 수월해.’
게다가 통신구는 단순히 연락의 용도가 아닌, 균열 속 터널을 열 수 있는 키(Key)이기도 했다.
각자 키를 가진 조직원들이 이 땅에 모여 완수해야 할 첫 번째 목적은 이곳의 각성자들이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일단, 어떻게든 통신구부터 되찾아와야 한다.’
헨더는 건물 사이를 연달아 뛰어넘으며 다짐했다.
준우를 죽이고, 통신구를 반드시 되찾아 오겠다고.
비록 저번에는 준우에게 처참하게 당했지만.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며칠 뒤면 곧 보름달이 뜰 테니까.’
웨어울프라는 종족은 달의 형상이 보름달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가진 능력의 최대 2배 가까운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보름달에 인접할수록 마력이 회복되는 속도 역시 증가한다.
그것들이 바로 제어 장치를 착용했음에도 불구, 헨더가 호송 칸 안에서 나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호송 칸 안의 결계까지 쉽게 깨부수고서.
‘시기도 아주 적절했어. 용케 보름달에 가까워진 와중에, 정밀 검사인지, 뭔지, 그런 이유로 그 감옥 같은 곳 밖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때였으니.’
내부에 있을 때보다, 외부에 있을 때가 훨씬 협회 통제에서 벗어나기가 용이했다.
헨더는 협회 건물 안에 잡혀 있을 땐, 제어 장치에 완벽하게 통제되는 척을 하며 협회원들을 방심하게 만들었고.
갇혀 있던 중에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뒀다.
‘놈의 냄새를 각인을 사용해 기억해 뒀지.’
제어 장치를 착용했다고는 하나, 모든 마력이 바닥을 치진 않는다.
90% 이상의 마력은 흡수되지만 10%가량의 마력은 지속적으로 운용이 가능했다.
일반 헌터들의 특성이나 스킬이 아닌, 종족 특성인 ‘각인’을 유지하기엔 충분한 수준.
유독 후각이 발달한 웨어울프였으며.
각인이 유지된 이상, 그 감각은 월등히 높아진다.
‘……이쯤인가?’
이윽고, 며칠이 더 흘러.
밝은 보름달이 뚜렷하게 떠오른 밤.
파앗-!
지면을 박찬 헨더가 상가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냄새를 추적해온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저기군.’
오직 냄새만으로 쫓아온 목표물의 위치가 눈앞에 보인다.
준우가 살고 있는 아파트였다.
‘목을 물어뜯어, 단숨에 숨통을 끊어 주마.’
헨더는 준우의 집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수태광 역시 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같은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 * *
최 비서가 백미러를 힐끗 바라보았다.
모처럼 나란히 뒷자리에 앉은 부자의 모습이 다소 어색해 보였으나, 이상하게 한편으론 또 친근하게 보이기도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오히려 가까워 보이는 느낌이랄까.
“너는 옷차림이 그게 뭐냐?”
“제 옷이 왜요. 오히려 아버지, 아니, 회장님 옷차림이 더 이상한 것 같은데요.”
“내 옷차림이 뭐?”
“무슨 시상식 가세요? 딸 집에 가는데 웬 턱시도입니까.”
순간, 최 비서가 움찔했다.
수태광이 비장한 표정으로 오늘 사진 촬영이 있을 예정이라기에, 자신이 직접 추천해 준 의상이었기 때문이다.
“너처럼 후줄근한 복장보단 내 의상이 훨씬 나은 것 같구나. 모처럼 동생 집에 방문하는 건데, 부마스터라는 놈이 격식을 차려야지!”
“동생 집에 가는데 무슨 격식을 차려요. 그리고, 지금 상황하고 부마스터 직책은 딱히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쯧쯧, 그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선화의 생일 파티에 가는 길.
부자는 출발 때부터 별것도 아닌 걸로 서로 툴툴거리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만. 회장님 때문에 선화 생일 파티도 미뤄졌잖습니까.”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갑자기 VIP께서 급하게 호출을 하시는데?”
“내기에서 진 대가로 생일 파티 가기로 한 건데, 회장님 멋대로 약속 시간 늦추고 그러면 내기가 무슨 의미가 있습…….”
“내려.”
“……?”
“계속 시끄럽게 할 거면, 내 차에서 내리라고.”
“안 그래도 내릴 생각이었습니다.”
타이밍 좋게 준우의 아파트에 차량이 도착했다.
수재혁이 달아나듯 먼저 차에서 내렸고, 점잖게 내린 수태광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 재혁이 너.”
“예?”
“전 서방한테 계속 길드에 있는 장비들 퍼 주지 마라. 네 마음은 알겠다만, 처음부터 그렇게 잘해주면 나중에 버릇 나빠진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가방 말이다. 전 서방이 가지고 있던 가방.”
샤넬 백을 말하는 것이었다.
커넥터를 통해 차원문 능력을 보았고, 당연히 아티팩트라고 판단했다. 그것도 꽤나 고급의 아티팩트.
“제가 준 거 아닙니다.”
“그럼?”
“스스로 구했겠죠.”
“그런 아티팩트를 대체 어디서 구했다는 거야?”
“모릅니다. 아무튼, 정말로 제가 준 건 아닙니다.”
“그렇단 말이지……?”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런 아이템을 또 어디서 구했는지.
하여간, 여러모로 신통방통한 녀석이었다.
“오셨습니까, 장인어른.”
그때였다.
저 멀리 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의상이 아주 멋지십니다. 선화 생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네요.”
“흠, 흠!”
수태광이 수재혁을 힐끗 노려본다.
자신의 의상을 나무라던 아들과는 다르게, 사위의 칭찬에 어깨가 한층 올라간 느낌이었다.
“자네가 보는 안목이 좀 있군. 누구와는 달리 말이야.”
“그나마 안목이라도 있으니, 장인어른의 귀한 따님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아, 아부는 적당히 하게.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수태광의 광대는 씰룩이고 있었다.
“그건 뭔가?”
“생일 파티 시간이 밤으로 미뤄져서, 술을 좀 사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용케 장인어른과 타이밍이 잘 맞았네요.”
“소주?”
“예, 빨간 걸로다가. 맥주도 있습니다?”
“크으, 내가 소맥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흠, 흠! 일단 들어가세.”
회귀자인 준우는 양주나 와인보다는 소맥을 즐기시는 장인의 술 취향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적당히 아부를 떠는 걸 좋아하신다는 것까지도.
세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준우의 집이 위치한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고.
“……음?”
문이 열리기 무섭게 수태광이 미간을 찌푸렸다.
인상을 구긴 것은 수재혁도 마찬가지.
또한, 준우 역시 이질감을 느꼈다.
‘누군가 있다.’
동시에 세 남자의 시선이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유독 마력이 강하게 감지되는 곳이었다.
크르륵!
비상계단 쪽에서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재혁이 스킬을 사용해, 놈의 발을 얼게 해 움직이지 못하게 묶은 것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놈이 피워 올린 마력이 명백히 적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끼익-
비상계단 문을 연 수태광이 안에 있는 놈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그놈, 헨더를 향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이보게, 전 서방.”
“예, 장인어른.”
“이젠 하다 하다 늑대 새끼도 키우나?”
“그럴 리가요.”
헨더를 마주한 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복수 비슷한 걸 하기 위해 찾아온 것 같은데, 날을 아주 잘못 골랐기 때문이었다.
‘협회 호송 차량이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설마 했었는데, 진짜로 저놈이 탈출했을 줄이야.’
중요한 건, 준우가 오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인어른과 형님,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헌터 두 사람이 그의 곁에 있었다.
“딱 봐도 늑대 새낀데?”
“늑대 새끼라기보단…….”
준우가 불쌍하단 시선으로 헨더를 훑었다.
“……그냥 나쁜 새끼입니다.”
헨더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제 발로 지옥에 방문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