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소원을 말해 봐 (52/246)

◈ 소원을 말해 봐

수태광은 죽마고우와의 술자리를 파하고, 황급히 회장실로 복귀했다. 회장실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장남이 보였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아버지, 아니, 회장님께서는요?”

“내가 내 방에 온 게 뭐 잘못되었느냐?”

“오늘 친구분이랑 약속 있다고 들어서요.”

“부마스터라는 놈이 할 일이 지독히도 없는 모양이구나. 내 뒷조사나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최 비서님께 여쭤본 겁니다. 본사로 가셨다고 하기에, 저도 바로 이쪽으로 온 거구요.”

부자가 서로를 빤히 응시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서둘러 회사로 향한 목적이 같은 이유인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 기사 뜬 거 보니까, 레이드는 가뿐하게 공략한 듯하고…….”

수재혁은 슬그머니 준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도 부마스터 직에서 해임될 일은 없을 거고.”

“나가.”

“……직접 최 비서님을 보내서 언론까지 집중시키신 걸 보니까, 사위로 인정할 마음도 있다는 거겠죠?”

느닷없이 엑시스 회장의 사위라고 밝힐 수는 없는 노릇.

그간 딸의 결혼 사실과 사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갑자기 밝히게 되면, 준우의 집안과 출신에 대해 언론과 여론에서 물고 늘어질 게 뻔했다.

어쩌면, 온갖 허무맹랑한 루머까지 생길지 모른다.

그로 인해 선화 역시 수태광에게 툴툴거릴 터.

‘길드 이미지도 있으니, 언론 발표는 미루시려는 것 같고…….’

당장 준우가 세운 공이나, 능력이나 뛰어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수태광은 길드 이미지에 티끌만 한 타격조차 없을 만큼 완벽한 순간에 언론 발표를 하려는 것이었다.

준우와 길드에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혹여 기이한 루머가 돌더라도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헌터.

그런 헌터로 준우를 만들고자 함이었다.

오늘처럼, 조금씩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켜 헌터로서 준우의 능력을 보다 돋보이게 하려는.

‘일단은 엑시스의 유망주쯤으로 발표를 해 두고, 천천히 기회를 보면 되겠지.’

유망주라는 말로 차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이다.

잘하면 장남만큼의 능력을 가진, 자신을 이어 엑시스 내 S급 헌터로서의 자질도 갖췄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정작 당사자인 준우는 엑시스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음에도, 수태광은 나름의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녀석들 둘 다 S급 헌터가 된다면, 엑시스는 세계 최초로 S급 헌터를 세 명 이상 보유한 길드가 된다.’

생각에 잠긴 수태광이 괜히 코를 만지작거린다.

부전자전, 수재혁과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이었다.

“제가 뭐랬습니까? 그 녀석 보통 놈 아니라고 했죠?”

“기대에 못 미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은 능력을 갖고 있긴 하더군.”

“사실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면서, 아닌 척하시는 거 다 티 납니다.”

움찔한 수태광이 수재혁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괜히 큰 소리로 악을 썼다.

“내 방에서 나가라니까, 이 자식아!”

“안 그래도 지금 막 나가려고 했습니다.”

끝까지 싱글벙글한 수재혁이었다.

이쯤 되니, 회장실을 찾은 이유도 준우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아버지를 꼭 한번 골려 주고 싶어서인 것 같기도 했다.

“아, 참!”

나가려던 수재혁이 멈칫했다.

“레이드 보급 담당자한테 들은 건데. 보급품으로 지급된 귀환석이 하나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한 명이 귀환석 보급을 받지 않았다는 건가? 누가?”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회장님 사위죠.”

“……?”

대체 무슨 이유로?

업턴 레이드인지라, 위험이 닥칠 상황을 대비해 특별히 고가의 귀환석까지 보급해 줬거늘.

“설마, 귀환석을 보급받지 않은 이유가……?”

“그만큼 공략에 자신이 있었다는 거겠죠. 위험 같은 건 절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수태광이 헛웃음을 쳤다.

‘정말 그 정도로 확신이 있었다고?’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준우에겐 귀환석보다 뛰어난 샤넬 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샤넬 백을 이용해 집으로 도망치면 장땡이었다.

선화가 그 위험하다는 레이드가 준우를 그냥 보냈겠는가.

도망칠 구석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을 뒤로하고 애써 보내 준 거지.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수태광은 준우의 능력을 더욱 높이 살 수밖에 없었다.

‘하긴, 마법 함정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미노타우르스를 일격에 처리할 만한 능력이라면…….’

계속 아닌 척하긴 해도, 내심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수태광이었다.

수재혁이 방을 나서고 몇 분쯤 더 지났을까.

준우를 데려오라 보냈던 최 비서가 돌아왔다.

“회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최 비서의 뒤를 따라 준우가 회장실에 입성했다.

수태광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준우.

‘요 녀석 봐라?’

그런 준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수태광의 눈매가 호기롭게 휘어졌다.

무슨 소원을 빌어 볼까나?

능글맞게 씰룩이는 준우의 표정이…….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 * *

수태광의 시선이 맞은편에 닿았다.

준우의 얼굴을 빠르게 훑은 그는 확신했다.

‘소원이야, 뻔하겠지.’

내기에서 이길 경우,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약속.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준우가 과한 소원을 언급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간 자신과 준우의 사이를 미루어 봤을 때, ‘적당한’ 수준의 소원일 것이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엑시스에 입사하고 싶을 터.’

뭐, 과한 걸 원한다면 거절하진 않겠지만.

자신에게도, 준우에게도 가장 적당한 수준의 소원이었다.

헌터라면 엑시스 입사를 누구나 꿈꾸지 않는가.

그 이유를 대자면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눈앞의 준우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하게. 약속은 약속이니까.”

장남이 준우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자신에게 가로막혀 그간 진행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기꺼이 수락해 줄 마음이 있었다.

“정말 능력이 닿는 한 다 들어주십니까?”

“그래.”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니까!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해야 쓰나?”

“흐음.”

“부담 갖지 말고 말해도 좋네. 뭐, 썩 내키지는 않지만 자네가 엑시스 입사를 원한다면 내가 1군 공격대에도 넣어 줄 수 있고…….”

이번에도 내심 좋으면서 아닌 척하는 수태광.

그가 인심 쓰듯 말했지만, 준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전혀 의외의 소원이었다.

“생일 파티…….”

“뭐?”

“……생일 파티에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갑자기 생일 파티라니.

“조금 있으면 선화 생일이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

아마 선화 생일인 걸 깜빡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진짜 모르고 있었을지도.

스윽-

준우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꽤 오래된 사진이었다.

“이건…….”

“선화가 일곱 살 생일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하더라구요. 온 가족이 함께 사진 찍은 마지막 생일이었다고.”

“…….”

수태광이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진 속엔 일곱 명의 가족이 모두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모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과 아내는 별거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이혼을 했고.

자식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너무나도 바쁜 탓이다.

“항상 생일마다 이때를 그리워하고는 했습니다.”

“해서?”

“물론 가족 모두가 모일 수는 없겠지만, 이번 생일만이라도 장인어른께서 선화 생일에 참석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말 그거면 되겠는가?”

“예, 그게 제 소원입니다.”

딸의 생일을 잊고 살 만큼 바빴다.

지금의 엑시스를 만들고자, 모든 시간을 일에 투자했다.

회귀 전, 준우가 그랬던 것처럼.

일에 미쳐 사느라 가족에 소홀했고, 아내와 이혼까지 한 수태광이었다.

아마, 딸의 생일에 함께 있어 준 것도 준우가 건넨 사진 속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았다.

“후회하지 않겠나?”

“후회를 왜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날에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인데요.”

결혼 반대 이후 딸과 멀어져 지낸 탓에, 딸과 식사를 한 건 더 오래된 듯했다.

“사진도 함께 찍어 주셔야 합니다.”

“……그야 어렵지 않네.”

“사진 속 예전 장인어른의 모습처럼, 고깔모자도 써 주셔야 하고요.”

“고, 고깔모자를? 내, 내가 이 나이에?”

당시에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썼던 고깔모자다.

일곱 살의 어린 선화가 울고 불며 애원하기에, 사진 한번 찍어 준 거였다.

“내기에서 이긴 소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깔모자는 안 되겠지요……?”

“……쓰겠네.”

내기는 내기다.

소원은 소원이고.

‘엑시스 입사를 하게 해 달라고 할 줄 알았건만, 이게 무슨…….’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 수태광이었지만, 그 속을 모르는 준우는 원하는 걸 이뤘는지 표정이 아주 밝았다.

“선화가 걱정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이만 가 보게.”

“예, 장인어른.”

싱글벙글한 준우의 표정.

아까 전, 수재혁의 표정과 비슷했다.

‘꼴도 보기 싫은 것들, 쯧쯧.’

하지만, 준우가 떠나고 방 안에 홀로 남은 수태광의 입가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쓸데없는 소원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자신의 딸을 위해 소원을 사용한 준우의 마음이 썩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최 비서.”

잠시 후.

수태광의 호출에 최 비서가 회장실로 올라왔다.

“회장님 기분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당연히 전준우 씨 영입 덕분이겠죠?”

“엑시스에 입사하겠다는 말은 안 하더군.”

“예?”

“일이 곤란하게 됐어. 저 녀석이 당연히 입사할 줄 알고, 언론까지 집중시켜 뒀는데…….”

레이드 공략 후, 수많은 기사가 떴다.

대부분 준우에 대한 관심이었다.

< 엑시스 비서실장이 고개 숙인, 그는 누구인가? >

기자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선 최 비서가 적당히 관심만 받게끔 조치를 해 뒀다.

회장님의 뜻을 따라, 궁금증을 최대한 유발한 뒤.

입사가 확정되면 유망주쯤으로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준우의 능력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증명시킨 뒤, ‘알고 보니, 회장의 사위였다!’라는 깜짝 발표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기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자네가 잘 둘러대게.”

“……?”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간, 다소 비장한 표정을 짓는 수태광.

무언가 대단한 게 떠오른 듯했다.

“10년 전쯤에 영국 왕실에서 하사받은 것 있지 않나.”

“영국 왕실에서라면…… 아아!”

잊고 지냈던 것인지라, 최 비서도 뒤늦게 떠올랐다.

런던에서 대형 균열인 크레비스 때, 수태광이 직접 공격대를 이끌고 지원을 하여 큰 공을 세운 포상으로 얻은 것이었다.

“신비로운 알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거라면 현재까지도 특수 제작한 온실에서 보관 중입니다.”

‘신비로운 알’.

두 개의 알이 크레비스 공략 보상이었다.

하나는 영국 왕실에서 보관 중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가장 큰 공을 세운 수태광에게 하사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도에 예민하다고 하여 일단 특별 제작해 둔 온실에 그대로 보관 중이긴 한데…….’

10년째 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온도 관련 외에는 애정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설명밖에 없는 기이한 알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내가 갖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신비한 알이라는 이름만큼, 그 안에 신기한 게 들어있긴 할 거다.

하지만, 분명히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몬스터라면 수태광이 질색하는 것 중 하나였고, 때문인지 지금까지 무관심 속에서 말 그대로 보관만 하고 있는 상태.

“휴대용으로 온실 제작이 가능하겠지?”

“휴대용으로 말씀이십니까?”

10년 전에 제작한 특수 온실이다.

당시엔 알의 예민함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온실을 휴대용으로 제작하는 건 무리였으나, 지금은 충분히 가능했다.

“시간이 며칠 걸리긴 하겠습니다만…….”

“그럼 휴대용 온실 제작되는 대로 내게 보고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한데…….”

눈치를 살피던 최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10년간 잊고 지내던 걸 갑자기 언급하니, 궁금증이 일었던 탓이다.

“……신비한 알을 누군에게 주려고 하시는 겁니까?”

알 따위엔 관심이 없는 수태광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영국 왕실에서 하사받은 것이었다.

필히 선물을 하려는 대상이 보통 인물은 아닐 터.

“혹시 회장님 사위분께……?”

“…….”

순간, 최 비서는 아차 싶었다.

그 앞에서 준우를 ‘사위’라고 호칭하는 것은 금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경거망동하여 실수를…….”

“괜찮네. 뭐, 고작 그런 게 실수라고.”

“……예?”

수태광이 괜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뭇 어색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저번에 보니까 전 서방이 반려몬? 그딴 걸 참 좋아하는 모양이더라고. 그 알도 애정을 갖고 보살펴야 한다는데, 나한테는 그런 재주가 없고…….”

“아?”

“……녀석이나, 선화 정도의 애정이라면 내가 10년간 부화시키지 못했던 걸 해낼 수 있을 것도 같고 말이야. 그냥 애물단지 떠넘기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네.”

묻지도 않았는데,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수태광이었다.

‘조금 전에 분명히 ‘전 서방’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최 비서가 진짜 놀란 것은 준우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사위라고 언급만 해도 열을 내셨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전 서방이라고 부르다니.

“괜찮으시겠습니까? 대형 균열 보상인 만큼, 알 안에 들어 있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고 판단됩니다만…….”

“크흠! 가족한테 주는 것이니, 그런 건 상관없네.”

게다가, 엑시스 회장 클라스가 있지.

생일 파티 하나로는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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