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스포트라이트 (51/246)

◈ 스포트라이트

레이드라는 게 무엇인가.

짧으면 며칠씩, 길게는 몇 달씩 걸쳐서 공략하는 대규모 던전이었다.

온갖 몬스터와 변수에 대응해야 하기에 헌터로서도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며.

보스를 상대할 땐 항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팀원들과 합을 맞추며 오랜 시간 전투에 임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일반 던전에 비해 유독 유의할 점들이 많은 것이 바로 레이드였다.

퍼어어엉-!

한데.

그런 레이드 보스의 머리가 일격에 날아갔다.

“퍼, 퍼엉이라고……?”

팀원 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떴다.

시야에 보이는 거대한 미노타우르스가 머리를 잃은 채,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쿠우웅!

이어, 놈의 거대한 몸마저 무너져내렸다.

자신의 미궁에 발을 디딘 침입자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거 레이드 맞아……?”

“게임 튜토리얼 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헛것을 봤나, 할 정도로 허무하게 죽어 버린 보스.

여기 있는 팀원들 전원이 덤볐어도 몇 시간 이상은 지속되었어야 할 보스와의 전투였다.

마법 함정으로 인한 썬더 볼트 열다섯 개가 놈의 머리에 꽂힌 걸로 그 시간을 대폭 단축하긴 했으나, 그래도 이건 너무 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을 위한 퍼포먼스로는 충분했겠지?’

준우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나름 만족했다.

일부러, 보이지 않는 검도 사용하지 않았다.

‘무기를 쓰는 것보다, 맨손이 더 임팩트 있을 테니까.’

이만치 했으면, 장인어른께도 그 임팩트가 충분히 전해졌을 거라 믿었다.

툭- 툭-

맨손으로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터뜨려 버린 준우가 손에 묻은 핏기를 털어 냈다.

“다들 무사하죠?”

그리고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멍한 표정으로 준우를 쳐다보다가,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팀원들.

무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보스 게이트 안에 진입 후,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5분간 함정을 설치한 것뿐이었으니까.

정작 보스와 전투를 해 본 것은 준우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도 제대로 된 전투가 맞는 것인지 의아했지만.

“대, 대장님. 방금 그거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냥 주먹 한 방에 보스 머리가 터져 나갔잖아요?”

준우가 씩 웃어 보였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팀원들이 치켜세워 주는 게 썩 나쁘지가 않아서다.

“저 녀석 머리가 커서 맞추기가 쉬웠어요.”

“그,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

마법 함정은 거들 뿐.

준우가 사용했던 막대한 버프나 디버프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이런, 족히 나흘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공략이 너무 빨리 끝나 버렸네요.”

“와이프한테 3박 4일간 출장 간다고 했는데……쩝.”

유부남들은 어딘가 모르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번 레이드를 3박 4일간의 우정 캠프라고 생각하고 온 것처럼.

“아쉬울 게 뭐 있어? 3박 4일간 출장 간다고 했으니, 지금 3일을 번 거잖아?”

“잠깐만, 맞네? 3일이 공으로 생긴 거잖아?”

“우린 3일간 자유라고, 이 사람들아!”

하여튼 유부남들이란.

마냥 외박이 좋은지, 붕 떠 버린 3일에 아쉬움이 번졌던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물론, 준우만은 예외였다.

‘이번에 레이드 간다고 선화가 걱정 많이 했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떡볶이라도 좀 사 갈까?’

이런 사람들도 있고, 저런 사람들도 있는 법.

준우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요즘 어떤 떡볶이가 핫한지 검색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맛있어 보이네. 선화도 좋아하겠지?’

배달 어플 리뷰 사진들을 보며 던전 밖으로 향하는 도중.

힐끗 옆쪽을 살펴본 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귀가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커넥터의 모습 때문이었다.

자신이 커넥터라는 것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잊었는지, 양쪽 귀를 막아 가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귀를 막는다고 들리지 않는 스킬이 아님에도.

‘장인어른께서 크게 소리라도 치시나?’

그저 준우의 추측이었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 조금 전 그게 영상 전송 오류가 아니라고?

- 그럼, 내가 지금 본 게 정말 사실이라는 건가!

- 주먹 한 번 휘둘러서, 보스 머리를 터뜨렸다는 게?

수태광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조금 전 준우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믿기 힘든 장면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사실로서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다.

정말로 영상 전송 오류가 아니라면, 자신의 사위가 그야말로 거물의 헌터임에 분명했으니까.

“……모, 모두 사실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거짓을 말씀드리겠습니까.”

스쳐 지나가듯 낮게 중얼거리는 커넥터의 목소리.

준우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먼저 던전을 나섰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되돌아 나온 던전 게이트.

그 앞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 * *

레이드 시작 전부터 인근에 기자들이 몰리긴 했다.

그런데, 레이드를 끝내고 늦은 저녁이 된 지금은 그 수가 배에 달하는 것 같았다.

‘뒤늦게 정보를 입수하고 더 몰려든 건가?’

자체적으로 냄새를 맡고 달려온 기자들도 있을 거고.

어쩌면, 엑시스 측에서 기자들을 더 불렀을 수도 있다.

‘이번 업적을 더 큰 업적으로 만드는 데는 언론과 여론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을 테니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업적은 더욱 크게 부풀려서,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만드는 것.

만약 공략에 실패했다면 모를까, 업턴 미궁을 말도 안 되는 기록으로 공략한 마당에 이걸 굳이 감출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기자들을 끌어모아 기사를 내보내는 게 여러모로 엑시스 측에선 이득이었다.

‘아마, 장인어른께서 커넥터를 통해 던전이 무난히 공략될 거라는 걸 짐작하셨겠지.’

아직 뵙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좋아하고 계실 장인어른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물론, 그 신나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시진 않겠지만.

“양신우 씨,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공략 예상 시간이 약 나흘 정도라고 들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공략을 끝냈습니다. 현재 소감이 어떠십니까?”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소란이 일었고.

준우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좋댄다.’

메인 팀 공격대장으로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양신우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들은 레이드 팀 편성상 당연히 메인 팀이 보스를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정작 보스를 처리한 준우의 서브 팀은 던전 깊숙이 들어가 있던 탓에, 중반부에 머물고 있던 메인 팀보다 복귀가 늦었다.

‘기자들도 참, 우리가 보스를 잡고 늦게 나온 거라고는 생각 못 하나?’

인터뷰를 양신우에게 뺏겨서 샘이 난 게 아니다.

준우 본인은 인터뷰를 하건 말건 딱히 관심이 없었다.

양신우가 메인 팀 공격대장이기도 했지만, 전부터 언론에 이름을 알렸던 헌터이지 않은가.

지방 출신으로 둔갑한 준우가 표면상 밀릴 수밖에 없었기에, 기자들의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 고생한 팀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웠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대장님께서 혼자 다 하셨는데요, 뭘.”

“저쪽에 카메라 뺏긴 건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길드에선 여러분들 성과를 알고 있을 테니, 아마 확실하게 보상을 해 줄 겁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뺏긴 게 못내 아쉬운 듯, 팀원들도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인지 팀원들에게 더욱 마음이 쓰이는 준우였다.

“만약 길드에서 합당한 보상을 안 해 준다면, 제가 확 엑시스 회장실에 불이라도 질러 드리죠.”

“하하하! 끝까지 대장님 덕분에 웃습니다!”

농담이긴 했지만, 진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없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아 내 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흠, 흠!”

양신우가 눈치를 살피며 준우의 팀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어딘가 모르게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괜한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

“선배로서 후배의 공을 가로채려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카메라가 우리 쪽으로 몰렸을 뿐이야.”

“딱히 괘념치 않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조금 전 인터뷰 중에 마치 메인 팀이 공략한 것처럼 말하는 걸 다 봤는데, 이제 와 아닌 척하는 모습이 영 별로였다.

“이번 레이드는 우리의 메인 팀의 공보다 서브 팀의 공이 더 컸다고 기자분들께 말씀해 뒀어.”

“서브 팀의 공이 더 큰 게 아니라, 거의 서브 팀이 다 했을 텐데.”

“그,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결국, 우리는 같은 엑시스 길드원이잖아?”

준우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공은 서브 팀이 다 세운 와중에, 마치 자신이 거들어 준 것처럼 으스대는 꼴이라니.

“아무튼! 인터뷰 마무리 잘하라고. 어쩌면 업계에 이름을 날릴 절호의 기회인데, 이렇게 놓칠 수는 없지 않잖아?”

“기회는 또 오지 않을까요.”

“선배로서 충고하는데, 기회라는 게 그리 자주 오는 게 아니야. 이런 업적을 세울 기회가 그리 흔한 줄 아나? 지방에서야 작은 일로도 기회가 올 수 있겠지만, 수도권에서는…….”

기회는 찾아오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적어도 준우에겐 그러했다.

“……이건 비밀인데, 자네한테만 특별히 얘기해 주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회장님 죽마고우야. 그러니, 혹시라도 나중에 내 도움받을 일 있으면 말하라고.”

“도움받을 일이요? 제가요?”

“내가 이번에 후배님 능력을 높이 샀거든.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지.”

어쩐지.

뭘 믿고 이렇게 거들먹거리나 했더니.

준우에게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회장님 죽마고우니까, 알아서 기라는 얘기처럼 들려왔다. 아마 여태 양신우가 보여준 행실 때문인 듯했다.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우리 장인어른이 회장님인데.’

당연히 준우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지만.

‘선화 기다리겠다. 빨리 떡볶이나 사러 가야지.’

양신우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은 준우가 뒤돌아섰다.

인터뷰는 자신이 아닌 팀원들에게 양보했다.

끼이익-

느닷없이 차량 한 대가 멈춰 선 것은 바로 순간이었다.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비켜섰다.

‘최 비서님……?’

준우에겐 낯이 익은 중년 남자였다.

한평생 장인어른의 수족으로 일했던 사람이기에, 회귀 전에도 자주 뵙기도 했었으니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차갑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입이 무겁고 장인어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기도 했다.

“아이고! 최 비서님, 아니십니까?”

최 비서를 알아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양신우였다.

양신우는 제 손님을 맞는 것처럼 서둘러 최 비서의 곁으로 다가갔다.

“혹시 회장님께서 절 찾으시던가요? 안 그래도 아버지랑 회장님께서 약주 하고 계신다고 들어서 그쪽으로 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고생 많았네.”

최 비서는 사무적으로 말을 뱉은 뒤.

차갑게 양신우를 지나쳐, 준우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꾸벅-

준우에게 허리까지 굽혀가며 인사를 건네는 최 비서.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뭇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의 말과 태도에 양신우의 표정이 부러움으로 무너졌고.

기자들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준우에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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