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포먼스
수중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궁은 복잡했다.
중반부인지라 초반부처럼 꽃길이라는 힌트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송일우라는 맵핵이 있는 이상 준우의 팀은 무난하게 중반부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건, 미궁의 주인뿐.’
약 나흘은 걸릴 거라던 던전 공략을.
자그마치 반나절 만에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장인어른에게 인정받을 기회도, 업턴 미궁을 공략할 기회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해.’
공략에 실패한다면, 실망한 수태광이 준우에게 또 기회를 줄 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이번 업턴 미궁엔 입장한 사람이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 진입이 불가하다는 제한도 걸려 있었다.
‘이제 슬슬 우리 팀원들 덕 좀 봐 볼까나.’
뒤늦게 호수에 도착한 양신우가 수중 장비가 없는 관계로 갈팡질팡 하고 있는 사이.
준우와 신입들로 이루어진 서브 팀은 어느새 던전의 후반부에 들어섰다.
우우웅-
몇 시간쯤 더 걸렸을까.
이윽고, 푸른색 대형 게이트 하나가 서브 팀의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안에 놈이 있다.’
보스 미노타우르스.
녀석의 안식처 앞에 준우가 멈춰 섰다.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여태 잘해 왔잖아요?”
뒤를 돌아보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뭇 경직된 표정의 팀원들이 보였다.
“업턴 던전의 보스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
“보통 일반 던전의 두 배 이상으로 강한 보스라고 들었습니다.”
대부분 업턴 던전 공략이 처음인 자들이다.
주로 신입들로 이루어진 팀원들이니, 당연히 대다수가 처음 경험하는 일일 수밖에.
‘처음이라서 오히려 더 수월할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준우의 계획은 팀원들이 신입일수록 더욱 안정적인 공략이 가능했다.
“무기 꺼낼 필요 없습니다.”
“예……?”
“보스와 전투를 해야 하는데, 무기를 꺼내지 말라니요?”
전투 준비를 하는 팀원들을 향해 준우가 그리 말하자, 팀원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준우는 일관성 있게 대답했다.
“여태 그래 왔듯, 전투 없이 보스를 공략할 겁니다.”
신입들로 팀을 구성한 이유.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우가 샤넬 백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수중 장비 때처럼, 가방을 열면 해결책이 나왔기에 이번에도 팀원들은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마법 함정 스크롤?”
가방에서 준우가 꺼낸 그것을 알아본 팀원 하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우린 이걸 이용해 보스를 무력화시킬 겁니다.”
일전에 준우가 균열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생김새의 마법 스크롤이었다.
단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균열 때처럼 대량 학살용 마법이 아닌 보스전을 위한 단일 대상을 타깃으로 하는 마법이라는 것이다.
“대장님, 질문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마법 함정은 설치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함정을 보스에게 사용하려면, 보스 게이트 안에서 설치할 시간이 필요로 한데…….”
“저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업턴 이전의 미궁에서는 보스 게이트 안에 진입 후, 10분이 경과하면 점진적으로 보스의 능력치가 상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업턴 이후에도 마찬가지라면 공략이 더 까다로워집니다.”
제법 공부를 해온 듯한 팀원이었다.
만약, 준우가 이번 생이 처음이었더라면 고심할 만한 문제였겠지.
하지만.
준우는 인생 2회차였다.
“현재 저희 팀원은 저와 송일우 씨를 제외하고 총 서른 명입니다. 2인 1조로 동시에 마법 함정 설치를 할 계획이며, 그렇게 되면 당연히 시간도 한 명씩 움직일 때보다 절반으로 단축되겠죠.”
고로, 일정 시간이 지나 보스가 강해지기 이전에 함정 설치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되겠지만, 함정의 화력도 1인당 하나를 설치했을 때보다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아니요.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
“여러분들이 제가 일러 준 대로 완벽하게 함정을 설치한다면 말이죠.”
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론상 화력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어찌 시간은 단축시키면서 화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마법 함정 설치법은 엑시스 입사 당시 기초 교육에서 익히 배우셨을 겁니다.”
준우는 말을 이어 가며, 팀원들에게 스크롤과 ‘마력의 붓’을 나눠 주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2인 1조로 하나씩.
“설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기 이 마력의 붓을 사용해 스크롤 내에 적힌 마법 함정 술식을 그대로 발동 위치에 옮겨 적은 뒤, 스크롤을 찢어 버리면 끝이죠.”
복잡한 술식들인지라, 하나하나 확인하며 옮겨 적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준우도 그걸 일일이 다 외우기 힘들 정도로.
마력 방출을 사용해야만 설치를 완료할 수 있기에, 대부분의 팀원들은 자신들만의 능력으로 설치가 불가하다.
‘그래서 마력의 붓을 사 왔지.’
적어도 마법 함정을 설치할 때는 마력 방출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마력의 붓이었다.
돈이 들긴 했으나, 돈이 들면 어떠랴.
자그마치 장인어른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얻을 수 있을 텐데.
“술식을 옮겨 적는 것만 주의하면야, 방법 자체는 아주 간단합니다만…….”
팀원들이 준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 대단한 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번엔 술식을 역순으로 적어야 합니다.”
“술식을… 역순으로요?”
팀원들이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커넥터만은 의아함이 아닌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대장님께서 직접 서브 팀 인원 전부를 신입으로 구성해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고 들었는데…….’
공격대 편성이 진행될 당시.
당시 담당자에게 우연히 듣게 된 사실이었다.
메인 팀 인원 절반을 서브 팀에 넣어 준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극구 거절했었다고.
‘……설마, 이유가 그것 때문인 건 아니겠지?’
커넥터가 헛웃음을 삼켰다.
만약 그 이유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때문이라 한들, 아무나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계획에 대한 확신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던전에서, 신입들로만 이루어진 팀을 이끌고 계획을 실행한다는 것은 확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숨겨 둔 수가 있다던가.
물론, 커넥터 입장에선 비장의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냥 납득이 되지만은 않았다.
‘이걸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 할지.’
준우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커넥터는 그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대가 되기도 했다.
만약 이 계획을 성공시킨다면, 준우가 탐욕의 미궁 레이드를 최단 시간 공략으로 이끈 최초의 공격대장이 되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업적을 세우는 거나 다름없지.’
그것도 그냥 레이드가 아닌.
자그마치 업턴 레이드에서 말이다.
“서둘러 끝내고 집에 갑시다. 슬슬 배도 고파오는데.”
준우를 필두로 팀원들이 보스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커넥터 역시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그의 뒤를 따랐다.
* * *
썬더 볼트(Thunderbolt).
함정이 발동되면, 일순간 하나의 대상에게 커다란 벼락을 떨어뜨려 일격만으로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함정을 모두 설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
확실히 사람이 많은 덕분에, 일전의 균열 당시 준우가 혼자 여러 개의 함정을 설치했을 때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른 속도였다.
[ 업적, ‘괴짜 함정술사’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
[ 업적 효과로 해당 마법 함정 위력이 2배 상승합니다. ]
게다가.
팀원들이 버프까지 받아 버린 상황이었다.
“허! 술식을 역순으로 옮겨 적으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요.”
“2인 1조로 움직인대도, 화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겠구요!”
반응을 지켜보던 커넥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괴짜 함정술사 업적의 조건은 단순히 술식을 역순으로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100레벨 미만의 각성자여야만 하지.’
준우가 신입들로 팀을 구성한 진짜 이유.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명령을 잘 따라서 움직여 줄 사람들을 뽑으려고 한 것만은 아니었다.
‘팀원들 레벨이야, 명단을 살피면서 100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테고.’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대체 괴짜 함정술사 업적 조건은 어떻게 안 거지?’
업적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갖가지 행위를 반복, 혹은 시도하여 숨겨진 업적을 파헤치는 집단이랄까.
지금도 그렇지만, 업적이라는 게 대단히 이롭게 작용되는 것이기에 세계 곳곳에 이런 업적을 정보료를 받고 판매하는 길드가 따로 있기도 했다.
‘괴짜 함정술사 업적은 얼마 전에 공략 본부에서 사들인 정보들 중 하나인데…….’
거액을 주고 여러 개의 업적에 대한 정보를 건네받는 방식이었고, 그중 하나가 괴짜 함정술사였다.
한데, 그걸 어찌 준우가 알고 있는 것인지.
국내에 해당 업적 길드와의 거래처는 엑시스가 유일하다.
또한.
현재로서 엑시스 내에서도 아직까진 공략 본부 소속과 임원급들밖에 모르는 고급 정보였다.
‘설마, 뒤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길드 임원급 중에 스파이 짓을 하는 놈이 있다거나…….’
준우가 커넥터를 힐끗 살폈다.
이미 그의 눈엔 커넥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업적에 관한 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공략 본부인 만큼, 아마 정보가 누설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일 터.
‘만약 캐물으면, 형님이 알려 줬다고 해야지.’
하지만, 준우는 미리 그에 대한 대답도 생각해뒀다.
‘장인어른이 엑시스 길드 마스터인데, 뭐 큰 문제 생기겠어?’
어깨를 으쓱인 준우가 정면을 응시했다.
커넥터 역시 궁금한 게 많았지만, 미처 그걸 캐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어둠이 가라앉은 커다란 벽들 사이로.
한 남자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주, 준우 씨이이이!”
송일우였다.
계획한 퍼포먼스에서 보스 미노타우르스를 함정이 설치된 곳까지 끌어낼 ‘미끼’ 역할이었다.
‘보스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다른 인원들은 함정을 설치하는 중이었던지라, 미끼 역할은 송일우에게 맡겼다.
발이 빠른 편이기도 하지만, 팀원들 중에선 레벨이 가장 높아 능력치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송일우 씨를 보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보스 게이트 진입 후 10분이 지나면 보스가 강해지기 시작하기에, 그걸 감안하여 미리 보스를 유인해야 했던 탓이다.
쿠웅- 쿠웅- 쿠웅-
송일우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발자국 소리.
이내, 미로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황소 미노타우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잡히면, 저 죽습니다! 아내 혼자 두고 저 먼저 죽을 순 없다구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송일우였지만, 잡히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아는 준우였다.
미노타우르스가 힘 하나는 좋기는 해도 민첩성은 유독 뒤떨어지는 놈이었으니까.
쿵! 쿵! 쿵!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놈이 콧김을 뿜으며 송일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앗-!
송일우가 높이 도약하여 가볍게 손길을 피했고, 자연스레 놈은 그런 송일우를 잡으려 재차 발을 굴렀다.
그때였다.
놈의 발이 함정이 설치된 곳에 안착한 것은.
콰아아아앙!
멀쩡한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강력한 벼락이 냅다 미노타우르스의 정수리를 관통했다.
크으으으!
놈이 고개를 좌우로 턴다.
‘역시 한 방으론 안 되는 거겠지.’
준우가 웃으며 미노타우르스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래서, 더 많이 준비했어.’
놈이 발을 디딜 때마다.
콰아앙!
벼락이 계속해서 정수리를 관통했다.
한 방이야 버틸 수 있겠다지만, 그게 겹쳐지면 아무리 레이드 보스라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서서히 몸을 비틀거리기도 하고.
눈동자가 멍하게 풀리기도 하며.
본래 둔했던 움직임은 점점 더 느려졌다.
“마지막 함정까지 모두 발동됐는데…….”
“놈이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 미노타우르스는 눈앞의 먹잇감들을 향해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바로 지금이, 준우가 나설 때였다.
팀원들에게 잡다한 일까지 시켜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빼꼼-
샤넬 백을 사용해 미심이를 불렀다.
미심이의 중급 은신 스킬을 받아, 능력치를 1.5배 상승시키기 위함이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놈의 기준으로 미노타우르스와 남은 거리는 약 열 보.
은신을 사용한 준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아내의 힘’ 효과를 사용합니다. ]
[ 10초간 모든 능력치가 5배 상승합니다. ]
그리고, 몇 달간 모아 온 부화부순의 모든 지속 시간을 소모한 나름의 원기옥이었다.
‘그래도 부족해.’
놈의 기준으로 남은 거리는 약 다섯 보.
준우가 놈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 히든 피스 ‘안내자’ 버프를 적용됩니다. ]
[ 버프로 인해 60분간 모든 능력치가 2배 상승합니다. ]
미궁에서 단 한 번도 길을 헤매지 않고 보스와 대면하게 될 시, 얻을 수 있는 히든 피스였다.
‘아주 살짝 더 부족하긴 하지만…….’
미노타우르스가 준우를 발견하고 주먹을 뻗었다.
은신을 감지하는 듯했으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능력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은신이었으니까.
스윽-
준우는 숲의 신발을 사용해, 놈의 주먹에 스치며 움직였다.
일부러 옷깃이 닿게 하기 위해서.
[ 동물형 몬스터 ‘미노타우르스’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
[ ‘미노타우르스’의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
포식자 칭호로 화룡점정.
숱하게 쌓아 온 버프의 마지막은 놈을 향한 디버프였다.
‘이젠 충분해.’
준우가 장인어른을 위해 계획한 퍼포먼스.
그건, 레이드 보스를 단 한 방에 터뜨려 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