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실이 좋은 덕분에
준우가 마켓에서 구입해 온 물건들은 단연 자이언트 비의 침뿐만이 아니었다.
“그거, 수중 장비 아닙니까……?”
송일우가 놀란 표정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나머지 팀원들도 마찬가지. 다들 적잖이 놀란 눈치다.
“수중 장비 맞습니다. 미궁의 중반부를 넘어 보스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 호수 내부로 진입해야 하거든요.”
대체 호수가 있을 거란 사실은 어찌 알고 미리 준비를 해 온 것일까. 게다가 호수 안에 길이 있다니.
“메고 있는 가방만 명품이 아니라, 사람도 명품이네.”
“말 그대로 인간 샤넬이다, 인간 샤넬!”
팀원들은 샤넬 백에서 계속해서 수중 장비를 꺼내는 준우를 바라보며,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가히 준우를 헌터계의 ‘명품’으로 칭송하기까지 했다.
호수 내부에 길이 있다는 준우의 말은 의심치 않았다.
아마 앞서 보여 준 그의 능력들 때문이었을 터.
준우의 이런 능력에 궁금증을 갖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으나, 정작 묻지는 않았다.
‘공략법은 헌터에게 있어서 영업 비밀이나 마찬가지.’
염치없이 그걸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대놓고 정보를 달란 소리였으니까.
무엇보다 준우가 가진 능력이 특성이든, 스킬이든, 나아가 회귀이든 간에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업턴 미궁을 아주 무난하게 공략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분들 것까지 챙겨 왔습니다. 다들 이걸 착용해 주시죠.”
팀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중 장비를 건네받았다.
이것도 직접 구매하신 걸 텐데, 그냥 받아도 될는지.
팀원들의 표정을 읽은 준우가 웃으며 말했다.
“레이드만 공략한다면 수중 장비값은 벌어들이고도 남습니다. 공격대장으로서 수월한 공략을 하기 위해 사 온 것들이니, 괜한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캬아! 우리 대장님은 속도 참 깊으시네.”
“공략 보상받으면, 저희 몫 조금씩이라도 떼서 대장님께 드립시다!”
“당연히 그래야죠! 수중 장비도 장비지만, 대장님 덕분에 전투 한번 없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준우는 딱히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굳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자, 그럼 가 볼까요?”
팀원들 모두 수중 장비 착용을 끝냈다.
준우에 대한 신뢰도 신뢰지만, 만약의 경우 미리 보급받은 귀환석을 사용하면 되기에 다들 호수 내부 진입에 거부감은 없는 듯했다.
“그럼 진입 시작하겠…….”
막 호수 내부로 진입하려는 그때.
“……준우 씨?”
송일우가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긴 모양.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무래도 호수 내부로 진입하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흐음, 혹시 센싱 스킬의 위력이 수중에선 약해지기 때문일까요?”
“예상하고 계셨군요.”
레이드 시작 후, 준우에 대한 신뢰가 누구보다 컸던 그였다. 다들 그의 능력에 놀라는 와중에도 송일우만은 나름 침착했다.
준우라면 이 정도 능력은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부터 줄곧 생각해 왔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리 그가 있더라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 역시 예상하고 계셨다면…….’
순식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예상을 하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대응책도 있을 것 아닌가.
“걱정 마세요. 센싱 스킬의 위력이 수중에서 약해지는 이유는 스킬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마력의 양이 부족해서입니다. 그것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혹시, 제가 가진 마력 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겁니까?”
준우는 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있잖습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한 표정.
거기에 웃음까지 내비치니, 송일우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제가 마력 방출을 사용해, 송일우 씨에게 제가 가진 마력을 주입시킬 겁니다. 제가 가진 마력까지 센싱에 더한다면, 물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준우가 언급한 방법은 상급 헌터들이 사용하는 고급 기술임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놀랍지가 않았다.
이제는 뭔가 당연하게 느껴진달까.
“하, 하지만 그렇게 하시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더 큰 문제라니요?”
“준우 씨 말대로라면 미궁 중반부인 호수를 넘어서면, 보스에게 도달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저희 팀의 최고 전력은 공격대장인 준우 씨인데, 준우 씨께서 마력을 낭비하게 되면…….”
대체 보스와 전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송일우의 걱정이자, 더 큰 문제였다.
“아아, 그거.”
준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한 줌의 마력만 남아 있다면, 보스 처리하는 것쯤이야 문제도 아니죠.”
준우에겐 계획이라는 게 있었고.
그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한 팀원들이 있었으니까.
‘뭣보다, 기가 막힌 한 방을 준비해 놨거든.’
준우가 속으로 히죽거렸다.
장인어른을 위해 준비한 퍼포먼스를 떠올리니, 금방이라도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 전용 스킬 ‘부화부순’의 지속 시간이 최대치입니다. ]
[ ‘아내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스킬 창의 설명을 읽어 보는 준우.
현재 스킬 레벨의 부화부순 지속 시간이 최대치에 달했을 때 얻은 히든 스킬 같은 개념이랄까.
‘레이드가 예정되어 있던 탓에, 여태 해당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아껴 두고 있었지.’
비록 지속시간을 한 번에 모조리 소모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그것으로 보스 미노타우르스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의 힘을 사용한 공격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어.’
그 전에 계획대로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보스의 체력을 소모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자그마치 리미트가 걸린 던전에서, 다소 불리한 조건으로 보스를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게 다 아내 덕분이지.’
아내와 접촉함에 따라 늘어나는 부화부순의 지속 시간.
TV 볼 때 항상 붙어 있고, 틈틈이 포옹도 하고, 손도 잡고, 그리고 또…….
아무튼, 그렇게 원기옥 비슷한 걸 쓸 수 있게 됐다.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 그 덕을 제대로 보고 있달까.
‘후딱 끝내고 집에 갈게, 여보.’
준우는 자신의 계획 일부를 송일우에게 전했다.
다소 불안해하는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풍덩-!
이어, 솔선수범으로 가장 먼저 준우가 입수를 했다.
풍덩! 풍덩! 풍덩!
준우에 대한 신뢰가 작은 두려움마저 없앤 것일까.
팀원들은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준우의 뒤를 따라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술잔이 부딪친다.
수태광과 양동철은 좌측면에 떠 있는 작은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며, 술을 삼켰다.
메인 팀과 서브 팀.
양 팀에 배치된 커넥터가 전송한 영상을 응시하던 양동철이 잔뜩 인상을 구겼다.
“이젠 자네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술이 그리 쓰게 느껴지나 보군.”
“술이 쓰긴. 아들놈 하는 짓 때문에 열 받아서 그러지.”
용케도 지름길을 발견한 양신우였지만, 결국 서브 팀엔 뒤처진 상태였다. 아직 중반부인 호수까지도 도달 못 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지 않나. 나는 신우 녀석, 저 패기가 아주 마음에 들어.”
“패기는 개뿔. 자넨 저게 패기로 보이나? 무식한 객기지. 처음부터 서브 팀 대장 따라서 꽃길로 갔으면 좀 좋아?”
어려서부터 하도 헌터가 되고 싶다기에, 양동철은 친구인 수태광의 엑시스에 아들을 꽂아 넣었다.
엑시스 산하의 훈련 기관에서 강도 높은 훈련까지 받은 아들이었고, 동레벨대에선 나름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자 함 때문인지, 아버지인 양동철의 눈엔 그런 아들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서브 팀 공격대장이 지방 출신이라며? 수도권에 비해 거긴 훈련 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하지 않나?”
“그렇지.”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은 놈이 지방 출신한테 밀려서야, 원… 쯧쯧.”
수도권과 지방을 차별하는 게 아닌.
해당 지역의 훈련 환경을 비교해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다 한들 타 길드와 비교했을 땐 모두 최고급에 속했다.
“애당초 내가 헌터 같은 건 하지 말고, 내 사업이나 물려받으라니까는. 하여튼 저놈의 똥고집!”
야박한 아버지였다.
어쩌면,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그런 걸지도.
연신 열을 내는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태광은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법이긴 제법이야.’
준우의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였다.
공략 방법이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내기를 받아들였을 땐, 그저 순간의 객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용케도 잘 헤쳐 나가고 있었다.
아니, 너무나도 완벽하게 나아가고 있다.
‘공략본부의 예상 소요 시간은 나흘. 한데, 고작 몇 시간 만에 중반부까지 지나쳤다?’
길을 잃고 헤매야 미궁이지.
준우처럼 헤매지 않고 정답만 찾아가는 이상, 그건 더 이상 미궁도 아니었다. 당연히 시간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마음 같아서는 공략법을 어찌 알았는지 묻고도 싶었다.
하지만, 필히 이만한 정보라면 거액의 돈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 얻어 냈을 터.
그만한 고급 정보를 캐묻는 건 같은 헌터로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내기를 한 보람은 있군.’
리미트 던전이라고는 하나, 천하의 엑시스가 공략 못 할 던전은 아니었다.
비록 리미트 조건에 맞는 인원들을 육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곤란한 일이었을 뿐.
어찌어찌 공략이야 하겠지만, 기존에 C급이었던 던전을 공략하는 데 보다 많은 시간을 쏟는다면 길드의 명예가 실추될 수밖에 없었다.
엑시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너무나도 컸으니까.
다른 길드라면 그것마저도 이해를 해 주겠다만.
엑시스라면 쉽게 해결을 해야 할 만큼, 길드가 가진 명성이 높은 탓에 이해 못 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기 삼아 준우에게 한번 기회를 줬다.
안 되면, 그때 가서 차선책을 쓰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준우의 패기가 호기심을 자극한 게 가장 크긴 했지만.
“근데, 저 친구 말인데.”
수태광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좌측면 서브 팀 화면을 가리킨 양동철이 물었다.
“혹시 결혼했나?”
“……그건 나도 모르네. 한데, 그런 건 갑자기 왜 묻나?”
양동철도 준우가 수태광의 사위라는 사실을 모른다.
결혼 당시, 준우가 오죽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죽마고우인 양동철에게도 딸의 결혼을 숨겼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평생 숨길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준우를 사위로 인정하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 믿으며.
“내가 헌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실력이 출중해 보이거든. 저 정도 실력자라면 엑시스 내에서 어느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지?”
갑작스런 친구의 관심이 놀라웠던 탓일까.
수태광이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을 다시금 내려두었다.
“글쎄. 여기서 노력한다면, 임원급 정도는…….”
“그렇단 말이지?”
수태광은 객관적으로 준우를 평가했다.
적어도 지금은 거짓 하나 없이 솔직하게.
“한마디로 미래가 창창한 친구라는 거네?”
“……그러니까 갑자기 왜 저 친구에 대해 궁금해하는 거냐고 묻고 있지 않나.”
“혹시 선 자리 한번 봐 줄 수 있나?”
“저, 저 친구랑? 누구를?”
“당연히 우리 딸이지! 엑시스에서 미래가 창창한 친구라며? 내가 우리 사위로다가…….”
“미, 미친 소리를!”
“……?”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게! 아무리 자네가 내 죽마고우라도, 내 참을 수 없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는가?”
“……뭐?”
수태광이 당황했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해 버린 것이다.
정작, 양동철은 준우가 사위라는 것을 모름에도.
“왜 나한테 화를 내냐니까? 내가 무슨 못 할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네 회사 직원 하나 사위로 만들어 보겠다는데! 그게 그리 잘못됐나!”
“그,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급이 안 맞으니…….”
“급이 안 맞다니? 우리 집안이 고작 엑시스 직원 하나보다 못하다는 뜻인 게야?”
“오해하지 말고, 일단 내 말을…….”
“내가 자네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정통 있는 가구 사업을 대대로 쭉 이어 오고 있는데, 그걸 무시하기나 하고!”
“끄응!”
수태광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술기운이 오른 양동철과는 대화가 안 통하는 듯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자신도 모르게 먼저 화를 낸 것은 수태광 본인인 것을.
“자네! 잘 나간다고, 친구 무시하고 그러지 말어!”
“무시한 거 아닐세. 아무래도 내가 오해를 하게끔 말을 한 것 같으니, 사과하겠네. 노여움 풀고 술 한잔 받게나.”
자존심 센 수태광이 먼저 사과까지 했다.
그가 자세를 낮추자, 양동철도 못 이기는 척 술잔을 받았다.
이러한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두 사람이었다.
아마, 어려서부터 비슷한 상황이 자주 있었던 탓일 터.
우우웅-
언제 티격태격했냐는 듯, 다시금 술잔을 부딪치던 그때.
서브 팀 화면 속 푸른빛 대형 게이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전투 한번 하지 않고 보스까지 도달했군.’
수태광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여태까진 전투 없이 준우의 정보력으로 무난하게 보스에 도달했다.
‘하지만, 리미트 던전에서 진짜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다.’
리미트로 인해 던전의 공략 기준에 부족한 헌터들.
일반 던전에서조차 보스가 공략의 가장 큰 걸림돌인데, 리미트 던전에선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까진 너무나도 쉽게 왔다만.
‘자, 이제 보스는 어찌 처리할 테냐……?’
걱정 반, 기대 반.
여러 감정이 뒤섞인 수태광의 눈빛이 화면 속 준우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준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