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 계십니까?
레이드 공략 당일.
조금 우려가 되긴 했으나, 송일우가 때맞춰 우리 팀에 합류한 덕에 일정이 알맞게 잘 맞아떨어졌다.
‘아무리 형님이라도 이렇게 쉽게 스카우트를 해 올 줄은 몰랐는데. 이럴 때 보면, 돈이 좋긴 좋다니까.’
송일우의 남은 계약 기간과 인수인계 등 잡다한 일에 대한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지만, 당장 이직을 하는 조건에 대한 금액을 모조리 지불하고 그를 엑시스로 스카우트해 왔다.
‘피스 측에서는 횡재다 싶었겠지.’
3군 공격대장이었던 송일우다.
실력으로만 봤을 때, 그만한 인재는 충분했을 터.
하지만 그의 진가를 알게 되었을 땐,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거다. 차기 헌터 협회 레이더 연구소장을 놓친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쨌든 나한텐 이득이야.’
물론, 송일우 역시 이 결과에 만족하는 듯했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도, 퇴사를 원할 시엔 언제든지 퇴사해도 좋다니. 엑시스 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번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조항이죠. 그나저나 아내분께서는 별말 없으시던가요?”
“제 아내요?”
“아내분께서 일우 씨 현장직에서 일하는 거 달가워하지 않으셨잖아요. 그 때문에 걱정도 많으신 것 같았고…….”
송일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쿡쿡거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락하더라구요? 다른 길드도 아니고 자그마치 엑시스의 스카우트 제안이었으니까, 뭐. 스카우트 금액도 상당했고…….”
역시 돈이 최곤가.
그렇게 생각하려던 사이, 송일우차 재차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제 헌터 인생 최종 꿈이 엑시스 입사였거든요. 아내도 현장에서 물러나더라도, 제가 한 번쯤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짧게나마 엑시스에서 일해 보려는 생각이라고 했다.
송일우의 말마따나, 엑시스라면 모든 헌터들의 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포기하긴 쉽지 않았겠지.
“당장에라도 공부 시작하고 싶었는데, 경제적으로 좀 여의치가 않아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어요. 만약 준우 씨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고민만 하다가 끝났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너무 띄워 주신다.”
“정말입니다! 덕분에 얄미운 동기 녀석에게도 한 방 제대로 먹였구요.”
“얄미운 동기요?”
“꼴 보기 싫은 놈 하나 있었거든요, 하하!”
뭔진 모르겠지만, 송일우가 좋아하니 다행이었다.
이번 미궁 레이드에서 내게 큰 힘이 되어 줘야 할 존재인데, 혹시나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있었으니까.
‘이번 레이드 공략하자마자 퇴사하려나?’
형님께서 스카우트할 때, 피스 길드에 지불한 금액 말고도 송일우에게 따로 계약금을 지급한 걸로 알고 있다.
내게 은혜를 갚겠다며 일단 엑시스 유니폼을 입은 송일우였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으니 아마 아내를 위해 사무직으로 이직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레이드 던전 진입 직전.
우리 팀 마지막 점검을 하던 그때.
“그런데 말이에요.”
“예?”
송일우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마치 대단한 얘기라도 하려는 듯이.
“대체 준우 씨는 정체가 뭔가요?”
“갑자기 그게 무슨……?”
“준우 씨 추천으로 엑시스 비서실이 움직였지 않습니까? 설마, 엑시스의 숨겨진 간부 그런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이전에 진흙 신전에서 만났을 땐 소속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제가 피스 길드 공채 시험 보라고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얼마나 같잖게 들렸을지… 흐음.”
“저,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간부나 그런 것도 아니고.”
아닌가? 대단하긴 한 건가?
하긴, 엑시스 마스터의 사위인데.
“엑시스 길드 마스터님께 딸 하나, 아들 넷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요?”
“그 네 명의 아들 중 하나가 혹시……?”
“무슨 생각하시는 줄은 알겠는데,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꼭 진실을 알려 드리도록 하죠.
일단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당장 중요한 건, 눈앞의 레이드 던전 게이트였으니까.
“아, 참! 그런데, 김 비서님이라는 분이 절 스카우트하실 때 이상한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레이드 시작을 위해, 바리케이드 안으로 움직이는 사이.
송일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부끄럽게도 제가 무슨 이번 레이드에 꼭 필요한 존재라구요. 피스에서도 고작 3군 공격대장 직을 맡고 있던 저인데, 제가 업턴 레이드에서 과연 도움이나 될지…….”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아무래도 착각을 한 것 같다고 했죠.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제가 엑시스에 스카우트 될 만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계약서에 도장 찍으셨습니까?”
“문제가 생길까 머뭇거리긴 했는데, 전용 스킬로 ‘센싱(Sensing)’만 보유하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기에…….”
송일우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사실, 아내를 위해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최선이었으니까요.”
이 사람의 삶의 중심엔 아내가 있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단 말이야.’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센싱 스킬을 이용해 송일우 씨가 복잡한 미궁을 풀어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아무래도 준우 씨도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센싱은 그런 스킬이 아닙니다.”
“아뇨, 그런 스킬 맞습니다. 응용하면 가능할 테니.”
“응용이요? 전 응용 같은 거 못 하는데……?”
“괜찮습니다. 제가 응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스킬 주인인 저도 모르는 걸, 준우 씨가요?”
회귀자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겠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입할까요?”
레이드 출정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고.
나는 엑시스의 신입들로 이루어진 팀원들과 함께 게이트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 * *
[ 던전 ‘탐욕의 미궁’에 입장합니다. ]
[ 일정 시간 경과 후, 미궁이 변화합니다. ]
게이트 입장과 동시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다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갈림길이었다.
“어느 쪽으로 갈 텐가?”
“저희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메인 팀 공격대장 양신우가 내게 물었다.
엑시스 내 해당 레이드 진입 조건에 맞는 헌터 중 가장 레벨이 높다고 했던가.
‘……날 얕보는군.’
그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날 위아래로 훑으며 실소를 머금는 것이, 날 영락없는 촌뜨기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장인어른께서 날 지방 공격대 출신으로 소개했다고 했나.
그 때문에 자신의 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지방에 비해 수도권이 확실히 던전 발현 비율이 높긴 하니까.’
경험에서 나오는 짬은 수도권 출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 던전에 리미트가 걸린 탓에, 나 같은 지방 출신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번 레이드에 참여시킨 걸로 알고 있을 거다.
“괜한 객기 부리지 말고, 먼저 고르는 게 좋을걸? 선배로서 말해 주는데, 미궁류 던전은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좌우하기도 하거든.”
“흐음…….”
처음 길 선택하는 거야 어차피 운인데, 무슨.
마치 본인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럼 저희 서브 팀은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굳이 왼쪽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왼쪽 길에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게, 유독 예뻐서요.”
“뭐, 뭣? 푸하하하!”
장인어른의 설정상, 나보다 몇 기수 높다고 했었나.
선배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반말이 참 자연스러운 자였다.
“재미있는 후배님이시구만. 목숨을 고작 꽃 따위에 걸다니 말이야.”
“꽃길만 걷고 싶어서.”
“하하핫! 후배님이 좋다면야,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서브 팀 전력으론 보스를 상대하기 버거울 테니, 보스 방이 나타나면 곧장 신호 주도록 하고.”
“상대할 수 있으면 상대해도 되겠죠?”
“원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객기는 부리지 않는 게 좋아. 수도권의 던전들은 지방과는 차원이 달라. 괜히 실적 한번 세우려다가 팀원들 저승길 보내진 말라고.”
팀원들 저승길 보내기는.
우리 팀원들은 전부 꽃길만 걷게 될 텐데.
“그럼, 살아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군.”
양신우가 메인 팀을 이끌고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들과 반대인 왼쪽 길로 향하며, 잠시 지난날을 회상해 봤다.
‘양신우? 내가 엑시스 입사했을 땐 듣도 보도 못했던 이름인데…….’
엑시스에서 쫓겨난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은 언젠가 큰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존재 자체를 모를 만큼, 먼 지방으로 발령 났다거나 했겠지.
10분쯤 걸었을까.
또다시 높은 벽으로 가려진 세 갈림길이 나타났고, 나는 팀원들을 멈춰 세웠다.
“……?”
갑자기 내가 선두에서 걸음을 멈추자, 송일우를 비롯한 팀원들이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해서 갈림길이 나타날 겁니다. 아까는 두 개, 그리고 지금은 세 개의 길뿐이지만, 앞으로는 네 개, 다섯 개, 계속해서 늘어날 테죠.”
업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해당 던전 공략법을 사용할 수 있겠으나 그 역시 현재로선 무리였다.
“던전에 진입했을 때 보았듯,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미궁은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습니다.”
신입들로 이루어진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로 신입들이라고는 하나, 개중에는 레이드 혹은 일반 던전 경험이 있는 자들도 존재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 이래저래 아는 척하는 메인 팀 인원들보단, 차라리 우리 팀원들이 훨씬 낫지.’
그래야 내 계획을 실현하기가 더 쉬우니까.
다른 건 몰라도, 메인 팀 인원보다는 그나마 다루기가 수월하다는 게 강점이었다.
“해당 던전의 업턴 현상이 최초이긴 하나, 공략 본부에서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언급한 클리어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약 나흘입니다.”
“흐음, 나흘…….”
“앞서 듣긴 했는데, 막상 와 보니 막막하네. 나흘 동안이나 여기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팀원들이 웅성거렸다.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딱히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대장님.”
그때였다.
팀원들 중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공략 본부의 예상 소요 시간을 단축할 방법이 있습니까?”
다른 이들과 달리 유독 여유가 있어 보이는 남자.
긴장한 듯한 표정과는 달리,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대장님 말씀대로라면 저희는 계속해서 앞으로의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아까처럼 단지 꽃길이 좋아서와 같은 판단으로 길을 나서신다면…….”
“그런다면?”
“저는 대장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오호! 패기 보소.
그냥 신입은 아니라는 건가?
‘아무래도 저 사람이 커넥터인가 보군.’
아직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아까부터 계속 마력을 사용하고 있는 게 느껴졌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구만.’
공략 본부의 조직원으로서, 보통 던전 공략시에 필수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게 ‘커넥터’였다.
그들의 역할은 던전 내부의 지형과 패턴을 숙지하고 조사하며, 해당 결과를 공략 본부에 제공하는 역할이었다.
커넥터는 필수적으로 자신이 직접 본 것을 영상으로 전환해,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장인어른이 저 사람을 통해 지금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고.’
아마 메인 팀에도 커넥터가 있을 거다.
모든 던전은 아니겠지만, 이번 레이드처럼 최초로 업턴 현상이 일어난 던전이라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겠지.
게다가.
나랑 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보스 게이트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뒤늦게 커넥터에게 답변을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얘기 같지만, 이제 곧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만약 커넥터의 눈을 통해, 장인어른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나 역시 조금 더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사실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건가요?”
어쩌면.
지금 저 대사도 장인어른이 직접 명령한 걸지도.
그렇다면, 대답해드려야지.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결과를 낼 마음은 없다.
‘그땐 장인어른께 인정받는 걸로 끝났지만, 회귀까지 했는데 고작 인정만 받을 수는 없잖아?’
당시엔 전투 능력만 입증했지만.
이번엔 스킬 응용법과 던전에 관한 지식도 뽐낸다면?
멍석까지 깔아 주셨는데, 재롱 한번 제대로 피워 봐야지.
인정이 아니라 감히 애정을 이끌어 내 볼 생각이다.
“증명이야 쉽습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송일우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여기 계신 송일우 씨의 센싱 스킬로 미궁에서 길을 찾을 겁니다.”
“그, 그런 게 가능하다고?”
“정말입니까? 센싱은 몬스터의 수를 감지하는 능력인데, 어떻게 그걸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커넥터와 눈이 마주쳤고.
화답의 의미로 활짝 웃어 주었다.
스윽-
그리고는 메고 있던 샤넬 백을 열어, 미리 마켓에서 사 온 것들을 꺼냈다.
일제히 내 손에 시선을 집중한 팀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보고 계십니까, 장인어른?’
부디 보고 계시길.
스킬 응용법의 진수를 보여 드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