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백수가 되지 않기 위해 (46/246)

◈ 백수가 되지 않기 위해

탐욕의 미궁 레이드 며칠 전.

준우는 레이드 공략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사려고 마켓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송일우가 가진 스킬 범위를 확장시켜, 길 찾기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지.’

미궁에서 원활한 길 찾기를 위해, 송일우의 스킬 응용에 필요한 아이템마저 구입을 마친 그때.

그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여기!”

두리번거리는 준우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만치 앞에 세워진 고급 수입차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수재혁이었다.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갑자기 찾아와서 불편한가?”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새삼 감회가 남달라서였다.

이맘때쯤 형님이 직접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이 사실이 말이다.

준우가 옆자리에 탔고, 대화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그가 찾아온 이유는 내일 있을 레이드 때문이었다.

“내기… 했다며?”

“아아, 들으셨습니까?”

“자네, 자신 있는 거지……?”

수재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나 당당하던 그가 왜 이리 불안해하는 것인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준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재혁의 입에서는 이상하게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만으로는 안 돼. 무조건 내기에서 이겨야 해.”

“설마, 저와 한배를 타게 되신 겁니까?”

“자네가 그걸 어떻게……?”

“만약 제가 내기에서 지면, 형님께서 부마스터 직을 내려놓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

수재혁이 놀란 눈을 치켜떴지만, 정작 준우는 담담했다.

영입 제안이나 S급 무기를 내어 준 건 아니어도, 회귀 전 역시 그가 준우를 지지하며 편에 섰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장인어른께서 해임시키네, 마네 하셨었으니까.’

그때랑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번에도 준우에게 힘을 실어 주려다가, 얼떨결에 내기에 함께 휩쓸려 버린 것이겠지.

“자네가 내기에서 지면 우린 둘 다 끝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먹서먹하던 두 남자 사이가.

어느새 든든한 아군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설마 진짜로 날 해임시키겠냐만은…….”

“진짜로 해임시킬 겁니다. 다신 길드에 발 못 디디게 할지도요.”

“하, 하하! 자네 농담도 참 살벌하게 하는군.”

“……농담이요? 이게 과연 농담일까요? 장인어른 성격은 형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수재혁이 머리를 박박 긁어 댔다.

준우를 못 믿는 것은 아니나, 일이 커지니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크흠! 서브 팀 공격대장 맡기로 했지? 내가 혹시 몰라서 공격대원은 직접 편성해 뒀어. 최대한 자네가 유리할 수 있도록.”

“공격대원을요?”

“레이드 진입 조건에 맞는 길드 소속 헌터 중 고급 인력들은 대부분 메인 팀으로 편성될 수밖에 없어. 아무래도 메인 팀이 공격의 주축이 될 테니 말이야.”

“그렇겠죠.”

“그래서 해당 인력을 절반으로 나누어 서브 팀으로 편성해 뒀어.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레이드라는 게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던전이니까.”

“흐음…….”

“서브 팀이 메인 팀보다 앞서는 상황이 좀 우스꽝스럽긴 하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우리’가 내기에서 이기는 게 더 중요해.”

“당연히 내기는 중요합니다만…….”

“내가 특별히 신경을 쓰긴 했지만, 너무 그렇게 부담 갖진 않아도 돼.”

부담되진 않았다.

수재혁에겐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장인어른의 눈을 피해, 적당한 수준에서 준우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었다.

메인과 서브, 두 팀이 비등비등한 전력을 갖도록 공격대를 편성해 준 건 준우에게도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엑시스 소속 고급 인력들이 과연 내 명령을 따를까?’

엑시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자부심을 갖는 이들이다.

회귀 후만 따지자면 준우보다 경험도 많을 거고, 텃세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준우를 얕잡아 봤으면 얕잡아 봤지, 갑자기 출신도 경력도 없는 그를 공격대장으로 인정할 리는 만무했다.

‘헌터들 기 싸움이 워낙 심해서 말이지.’

단합은 물론, 제대로 된 공략법을 시행하기 위해선 차라리 경험은 조금 부족해도 준우를 잘 따를 만한 신입들로 구성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부족한 경험이야, 내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준우는 정중하게 수재혁의 배려를 거절했다.

대신 자신의 계획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신입 위주로 서브 팀 편성을 해 줄 것을 바랐다.

“아무리 자네라도 신입들 데리고는 레이드 진행이 불가할 텐데? 레이드 던전이 업턴 이전이라면 모를까, 업턴이 된 지금으로선 공략법 또한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고…….”

공략법이야 준우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걱정이 없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고 말이다.

“정 그렇게 불안하시면 혹시 다른 사람 한 명 붙여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피스 길드에 송일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피스 길드의 송일우?”

자신의 팀에 넣어 달라며, 준우가 직접 언급한 이름.

그 이름을 들은 수재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 누구지? 얼마 전에 피스 길드 1군 공격대장 중 하나가 해외로 이직 준비한다던데, 설마 그자인가?”

“1군까지는 아니고, 피스 길드 3군 공격대장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허? 3군 공격대장? 겨우 그런 자를 자네 팀에 넣어달라고?”

수재혁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

차라리 자신이 편성해 준 엑시스 공격대원들이 몇 배는 더 나을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그자의 실력은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레이드는 자네와 아버지가 한 그 내기 때문에 엑시스 소속만이 참여하게 되어 있어. 타 길드의 지원 없이 엑시스의 힘만으로 레이드를 공략할 수 있다고 그랬다며?”

“그 문제야 ‘능력 좋으신’ 형님께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응?”

엑시스 소속이 아니라면.

엑시스 소속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수재혁에겐 그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뭐, 자네 말마따나 어려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이 중요한 시기에 왜 굳이 고작 3군 공격대장인 자를 원하는 건지…….”

“꼭 그자가 필요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형님께서 백수가 되실지도 모릅니다.”

“그, 그 정도의 능력자라고……?”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송일우인지.

그 이유에 대해 준우에게 설명을 전해 들은 뒤.

“형님께서 백수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하죠.”

이어지는 준우의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에.

수재혁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 * *

진흙 신전에서 준우와 인연을 맺은 뒤.

송일우는 당시 그가 했던 말을 자주 떠올렸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당장 퇴사를 하고 싶기는 한데…….’

현장직에서 일하는 자신 때문에 항상 가슴을 졸이는 아내였다.

아무리 퇴근이 늦어져도, 혹시나 자신이 다쳐서 올까 잠도 못 자고 기다리는 아내가 아니던가.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결혼을 했지만, 오히려 아내는 그에 대한 걱정으로 매일 불안감에 살고 있었다.

몬스터를 대적해야 하는 현장직 헌터의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내심 아내에게 미안한 송일우였다.

- 아내분을 위해서라면, 현장직보다는 협회 레이더 연구원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사무직임에도 그쪽은 대우가 좋으니까요.

송일우는 준우가 했던 그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더 늦기 전에, 아내가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이직을 하고 싶었으나.

‘결국, 돈이 문제구나.’

아내는 육아로 인해 잠시 휴직인 상태.

얼마 전에 모아 둔 돈으로 고가의 아파트마저 매입한 탓에 목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내가 일을 관두면,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 것 같단 말이지.’

아내를 위해서 협회 연구원 사무직 시험 공부를 하고 싶지만, 또 그런 아내를 위해 경제적인 것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애처가인 송일우에겐 양쪽 다 고민이었고, 그렇다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도 어려웠다.

‘시험 난도도 높고, 현장직 특성상 여가 시간이 도통 나질 않으니… 쩝.’

남아 있는 돈과 퇴직금으로 합격까지 버텨 볼까, 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가장으로서 무모한 모험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노릇.

“어쩌냐, 송 대장. 미안하게도 내가 먼저 승진하네?”

“……축하한다.”

게다가 바로 어제, 승진마저 동기에게 밀렸다.

하필이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일삼는 저놈에게 밀린 탓에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현장 뛰는 것도 좋지만, 간간이 윗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니까?”

“…….”

“오늘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는데, 동기들 다 같이 회식이나 할까? 내가 승진 기념으로 한 턱 내도록 할게. 어때?”

얼마나 있는진 모르겠지만, 꽤 있는 집 자식인 동기였다.

적어도 윗사람들과 어울리며 금전적인 로비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는 녀석.

입사 당시에도 제 입으로 잘 산다고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녔던 자였던지라, 잘난 척은 어지간히 적응된 상태였다.

‘송일우, 이 미련한 놈아. 기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스로 만드는 거다. 실력이 있다 한들, 너처럼 멍청하게 실적만 채운다고 승진이 되는 줄 아냐?’

길드에 성실한 사람은 차고 넘쳤다.

실력과 실적이 전부인 그들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누룰 수 없다면, 돈의 힘이라도 빌려야만 했다.

돈 역시 자신이 가진 능력 중 일부이기도 하니까.

동기는 인심 쓰듯 송일우를 토닥였다.

당사자는 태연하나, 마치 그를 위로하는 것처럼.

“너도 빨리 위로 올라와라. 언제까지 3군에 머물러 있을래? 그러다 거기 계속 고이게 된다?”

“……그래도 너처럼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말은 똑바로 하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하는 거 아니냐?”

실력은 송일우가 우위다. 실적 또한 마찬가지.

다만, 윗사람들에게 로비할 능력이 떨어졌을 뿐이다.

‘요행과 편법을 바라면 오래 가지 못하는 법.’

마음 같아서는 확 고발이라도 해 버릴까 했으나, 애써 참았다.

그와 똑같이 치사한 짓을 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룬 결과는 언젠가 무너질 거라는 것을 잘 알기에.

“말을 말자.”

“새끼,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면 될 것을.”

퇴근길, 송일우는 동기들과 갈라서려고 했다.

딱히 술이나 밥을 얻어먹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김에 아내와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야, 송일우. 회식 안 가냐? 내가 산다니까?”

“됐다. 그냥 집에 갈란다.”

“푸흡, 설마 삐치기라도 한 거야? 사내새끼가 속이 좁아서는. 그래서 엑시스로 이직이나 할 수 있겠냐?”

한때는 그런 꿈이 있었다.

피스에 입사할 때만 해도 꾸준히 경험을 쌓아, 이 나라 최고의 길드라는 엑시스로 이직할 것이라고.

“너 그런 식으로 해선 엑시스 이직은 꿈도 못 꿀 것 같은데. 내가 나중에 먼저 엑시스 이직하면, 그때 줄이라도 만들어 줘? 크큭!”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

항상 그랬고, 오늘도 꼴 보기 싫은 동기 녀석의 태도를 송일우는 가볍게 무시한 채 뒤돌아섰다.

우우웅-

그때였다.

송일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

전화를 받으려는 찰나.

저만치 맞은편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화를 받고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자신의 핸드폰과 송일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눈치껏 자신이 전화를 건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혹시, 송일우 씨 되시나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앞서 문자 남겼었는데, 못 보셨나 보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명함을 건네는 그녀.

김 비서는 명함을 살펴보는 송일우의 표정을 살폈다.

“에, 엑시스 비서실?”

그 한마디에 비아냥거리던 동기와 그 무리의 시선이 일제히 송일우에게 쏠렸다.

“제, 제 번호는 어떻게……?”

“전준우 씨가 알려 줬습니다.”

“전준우 씨요? 아,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느닷없이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온 것도 의아했지만, 더 의아한 것은 엑시스 비서실에서 왜 자신을 찾아왔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언제 퇴근할지도, 회사에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기다리면서까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엑시스 비서실에서 저는 왜 찾아오신 겁니까?”

“그건…….”

“호, 혹시 제가 엑시스에 밉보일 행동이라도 한 건가요? 제가 그리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죄지으면서 살진 않았는데…….”

“그런 게 아닙니다.”

김 비서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심이 담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전준우 씨 추천으로 송일우 씨를 엑시스에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송일우를 얕잡아 봤던 동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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