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내기 (45/246)

◈ 내기

딸의 가게로 향하던 짧은 시간 동안.

수태광은 생각했다.

자신의 말을 거역한 장남.

그리고 눈엣가시 같은 사위.

두 녀석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간 화력의 반지 특성 사용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건만, 조건이 고작 이거였다니.’

하지만.

지금의 수태광은 장남과 사위를 어찌 처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잠시 뒤로 미뤘다.

[ 조건부 특성 ‘화력 증폭’이 발동됩니다. ]

[ 10초간, 불 속성 특성과 스킬의 위력이 증폭됩니다. ]

얼떨결이긴 하지만, 그간 찾아 헤맸던 화력의 반지 특성 사용 조건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가볍게 테스트를 해 본 결과.

‘마력 방출, 그리고 불 속성 몬스터와의 접촉.’

준우가 가진 부화부순 스킬과 비슷한 개념이랄까.

접촉 시간의 1/10만큼 불 속성 특성과 스킬의 효율을 증폭시키는 게 가능한 아티팩트의 특성이었다.

리미트 아티팩트이면서, S급 아이템인 화력의 반지.

해당 아이템의 특성 사용 조건을 알아낸 수태광은 내심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을 만질수록 화력 증폭 지속 시간이 증가한다, 이거지?’

수태광이 말순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순간, 말순이와 두 눈이 마주쳤다.

“……크흠!”

민망한지 괜히 다른 곳을 응시하며.

한 손을 슬쩍 들어 올리는 수태광.

쓰담쓰담-

그리고는 말순이를 어색하게나마 만져본다.

손길이 나쁘지 않은 듯, 말순이가 해맑게 웃었다.

“……아빠, 언제부터 반려몬을 그렇게 좋아했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선화가 문득 물었다.

화들짝 놀란 수태광이 이내 말순이에게서 손을 떼어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몬스터 따위를?”

“방금 말순이 엉덩이 쓰다듬었잖아.”

“그, 그건 손을 헛디디는 바람에…….”

머쓱함에 횡설수설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바라보며, 준우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느닷없이 장인어른이 찾아왔고, 좋은 소리를 하기 위해 온 것 역시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수태광이 끼고 있는 반지를 발견하고, 어쩌면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력 방출과 불 속성 몬스터와의 접촉. 특성 사용 조건은 매우 간단하지만, 장인어른께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문제였을 거야.’

몬스터는 절대 악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수태광이 몬스터와 접촉을 할 리는 만무.

게다가 속성 특성을 다루는 수태광은 원거리 딜러 계열이었기에 몬스터와 접촉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접촉을 하는 경우가 있었대도, 그게 딱 불 속성 몬스터였을 가능성은 낮았을 테지.’

몇 달 전, 현장에서 완전히 물러난 수태광이었다.

아주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곤 그가 직접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화력의 반지가 귀속 아이템이라는 것까지 고려했을 때, 수태광이 해당 조건을 알아내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분위기가 아까보단 좋아져서 다행이야.’

불같이 성을 내며 가게로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다소 누그러진 수태광의 모습이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달까.

잘하면 탐욕의 미궁 레이드도 문제없이 참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준우였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빠. 늦었지만 나도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부부는 죄송하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눈물 연기를 하긴 했으나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건 정말이지 죄송한 일이었고, 선화 역시 그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전부 부족한 제 탓입니다, 장인어른.”

“부족하다는 걸 아니 다행이군.”

준우가 선화의 짝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혼을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품에서 딸을 보낼 준비가 아직 안 되었던 탓이었다.

“선화 너는 죄송한 걸 안다는 녀석이 애비 말을 거역하고, 집을 뛰쳐나가?”

“그땐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 아빠를 설득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생각이 짧았었나 봐.”

“철없는 짓이라는 건 잘 아는 모양이구나.”

툴툴거리듯 말하는 수태광이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반응이 무난한 편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감정이 조금은 아물기라도 한 걸까.

평소 같았으면 성을 내며, 고함을 쳤을 텐데.

그런 모습과 비교하면 꽤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아마 말순이 덕분이겠지.’

선화 덕분인 것도 있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오 남매 중 유일하게 아버지와 반말을 했던 만큼, 수태광이 유독 아끼던 자식이 선화였으니 말이다.

아내와 이혼한 후, 집안에서 수태광에게 살갑게 대했던 건 선화가 전부였다.

아들놈들은 애교 하나 없지만, 적어도 딸이었던 선화는 옆에서 수다라도 떨어줬었다.

그런 선화가 지난날을 후회한다며 눈물까지 흘렸으니, 아무리 수태광이라도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밖에.

‘표현이 서툴고 자존심이 강하신 장인어른인지라 그 때문에 여태 멀어져 지냈을 뿐, 장인어른께서도 선화가 보고 싶으셨을 거야.’

레이드나, S급 무기 따위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 비서를 대신해 직접 움직인 것도, 그걸 핑계 삼아 선화를 보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구나.”

수태광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는 지금.

준우는 바로 이때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엊그제 형님께 들었습니다. 탐욕의 미궁 레이드 던전에 업턴 현상이 일어났다구요.”

“네가 상관할 일 아니다. 공격대 편성표에서도 네 이름은 빼 둘 테니, 괜한 오지랖 떨지 않아도 돼.”

“리미트가 걸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리미트 아이템과는 달리, 던전의 리미트는 입장 인원수와 레벨에 제한이 걸렸다는 뜻이었다.

“엑시스 내에 해당 레이드에 입장할 수 있는 헌터가 몇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레이드 공략에 성공하기 위해선, 최소 C급 이상의 헌터로 팀을 꾸려야 하는데…….”

문제는 제한이 걸린 레벨이 100 미만이라는 거다.

그중에서 C급 이상 헌터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엑시스는 타 길드에 비해 대부분 고레벨의 헌터들이 포진되어 있지 않은가.

“당연히 타 길드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레이드 공격대 편성을 할 수 있을 만한 인원은 모집하기 힘들 겁니다. 게다가, 단순히 인원수만 채우는 게 아닌 그만큼 실력 또한 겸비해야…….”

“앞서 말했지 않았느냐. 네가 상관할 일 아니라고.”

“공략에 실패하면, 엑시스는 고작 C급 레이드조차 공략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쓰게 될 겁니다. 지금껏 쌓아 오신 장인어른 명예 역시 실추될 거고요.”

“……해서?”

준우는 수태광에게 인정받는 법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의 호감을 샀었으니까.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레이드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없으니까, 길드 내에서도 고심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느새 수태광은 준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만큼 업턴 현상이 일어난 레이드 던전이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탓이다.

“제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장인어른인 수태광의 약점은 단 두 개다.

하나는 애지중지 키운 그의 유일한 딸인 선화이며.

두 번째는 그가 지금껏 쌓아 올린 길드의 명예였다.

“내게 인정받기 위해 터무니없는 얘기를 늘어놓을 생각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좋아.”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라면, 절 사위로서 인정해 주시는 겁니까?”

준우를 바라보는 수태광의 눈빛.

그의 눈빛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 * *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노발대발했다.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 올린 아내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빠는 왜 거기서 갑자기 쓸데없는 내기를 하고 그래!”

“내가 하자고 했나. 장인어른께서 먼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덥석 물면 어떻게 해! 만약에 내기 지면 어떻게 할 건데?”

“……으음.”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는 아내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애꿎은 말순이를 쓰다듬었다.

“우리 결혼하고 나서, 아빠가 몇 년간 연락 한 통 없었던 거 알지? 그만큼 자존심이 센 분이고 고집도 어마어마하다고.”

안다, 아주 잘 알고말고.

회귀 전에도 겪었던 장인어른이지 않던가.

아내가 장인어른께 가끔 안부차 연락을 했었는데, 그마저도 무시당한 걸로 알고 있다.

그간 우리가 보냈던 명절 선물들도 죄다 되돌아왔었다.

“아빠에겐 농담 삼아 던진 내기가 아니었을 거야.”

“그러셨겠지.”

“그 말은 곧 오빠가 내기에서 지게 되면, 우리 둘은 영락없이…….”

“장인어른 댁에서 살게 되겠지.”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 내기를 받아들인 거야?”

탐욕의 미궁 던전은 업턴 현상으로 인해 난도가 상승한 상태다. 당연히 현재의 보스 역시 이전 보스보다 강해진 상황이었다.

- 장인어른께서 제게 이번 레이드 서브 팀의 공격대장 자리를 주신다면, 메인 팀보다 빠르게 보스를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한데, 실패하면?

패기 좋게 장인어른께 덤벼든 만큼.

실패할 경우의 대가도 컸다.

- 실패한다면, 내 집에 들어와 살 수 있겠나?

쉽게 말해 데릴사위.

아내와 함께 장인어른 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선화를 곁에 두고, 보살피고 싶어 하기에 그러는 것이겠지.’

장인어른에겐 아직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딸이었다.

또래에 비해 이른 나이에 결혼하기도 했고, 유독 아꼈던 자식이었으니까.

“난 아빠랑 같이 못 살아. 아마 통금 생길걸?”

“결혼까지 했는데, 이 나이에 무슨 통금?”

“오빠가 몰라서 그래. 오빠까지 통금 생길 수도 있어.”

“에이, 설마……?”

아내의 눈빛에 흔들림이 없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는 뜻이다.

“걱정 마. 내기에서 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나도 장인어른 집에 들어가 사는 건 반대다.

뭔가, 왜인지 모르게 숨이 턱 막힐 것만 같달까.

“아까 대충 들어보니까, 엑시스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조건의 던전이라던데? 정말 내기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아주 좋은 수가 있거든.”

내기 조건은 엑시스 소속 헌터가 공격대장을 맡은 메인 팀보다, 내가 공격대장을 맡게 될 서브 팀이 더 빠르게 보스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회귀까지 한 지금에야 딱히 어렵지도 않은 일이지.’

게다가, 내겐 든든한 ‘조력자’까지 있었다.

미궁에서 유독 강점을 발휘하는 송일우가 바로 그였다.

인간 맵핵인 그가 있는데.

그깟 미궁쯤이야.

“오빠, 설마 나 때문에 그 내기 받아들인 거야?”

“응?”

“아빠랑 내 사이 멀어진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서 아빠한테 인정받는 거에 집착하는 거냐구. 만약 그런 거라면 오빠가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그게 가장 우선순위이긴 한데.”

사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장인어른에게 인정받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

[ ‘수태광’을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할 경우. ]

[ 모든 능력치 레벨이 ‘10’ 상승합니다. ]

장인어른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장 특성을 사용했었다.

예전엔 나를 혐오하고 있고, 가족으로 인지하지 않는다는 홀로그램만이 보였었다.

거기에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마저 예측할 수 없다는 설명까지도.

‘하지만, 지금은 시간 예측 정도는 가능해졌어.’

물론, 아직도 10년은 넘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내겐 그때와는 달리 해당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상태였다.

‘가화만사성 스킬을 사용한다면, 좀 더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을 거야.’

우리 집 안에서 장인어른과 가족들과의 교감이 생기면, 장인어른이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 또한 단축이 가능했다.

‘장인어른이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된다면…….’

지금의 경우.

단번에 B등급까지 등급을 상승시킬 수도 있었다.

왜 다른 가족들에 비해 많은 능력치가 오르는 건지, 왜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 상승이 이뤄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가족 구성원이 될 장인어른의 능력치가 그만큼 비상식적으로 높고, 가족이 되기엔 너무나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

‘테스트를 해 보면 알겠지. 이번 기회에 그 이유도 알아봐야겠어.’

시간이야 반려몬에 비해 오래 걸리겠지만, 겸사겸사 장인어른과의 친밀도를 올려서 나쁠 건 없었다.

‘가화만사성 효과로 가족이 되기까지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일단 우리 집에 오시게 만들어야 하는데…….’

당장은 무리다.

그간 담쌓고 지냈는데, 초대한다고 해서 오실 리가 없었으니까.

- 만약, 자네가 내기에서 이긴다면 내 능력이 닿는 한해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도록 하지.

나는 마지막에 장인어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실패의 대가가 큰 만큼 성공의 대가 또한 컸다.

기가 막힌 소원을 빌어볼 생각이다.

과장을 좀 보태, 장인어른의 능력이 닿는 소원이라면.

적어도 이 나라에선 램프의 요정 지니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무슨 소원을 빌어 볼까.’

바로 내일.

나는 곧장 완벽한 레이드 공략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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