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리어 테스터
키피가 한 마리였다면 모를까.
오복 형제는 총 다섯 마리였다.
때문에, 보금자리 스킬로 인한 배리어 형성 시간 역시 다섯 배로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한 겹 쌓는 데까지 족히 며칠은 걸리겠네.’
키피는 D급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본래 한 겹의 배리어로 막아 낼 수 있는 것도 D급에 준하는 헌터의 능력 수준.
‘하지만, 이걸 겹겹이 쌓아 올린다면…….’
보다 강력한 배리어를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강철 골렘의 파편은 키피들이 복용했을 때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어 있다.
‘상급 마석을 복용하는 것과 같은 효율은 낼 수 없어도, 최소한 중급 마석 정도의 효율은 낼 수 있어.’
고로, 강철 골렘의 파편으로 D급 수준을 뛰어넘는 배리어를 만들어 내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가성비 최고라는 얘기다.
물론, S급이 여럿이서 몰려온다면 뚫리긴 하겠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 축에 끼는 건 가능했다.
“요새를 만든다는 게, 이런 뜻이었어……?”
아내가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
오복 형제의 입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것이 강철 골렘의 파편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한 듯했다.
오복이들은 자신들이 뿜어낸 기운을 손으로 빚어 배리어의 모양을 갖춰 가고 있었다.
‘재미있어하는 것 같네. 이게 얘네들 취미라더니, 진짜 그런 모양이야.’
내가 시킨 일이긴 하지만.
굳이 내가 시키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녀석들끼리 이러고 놀지 않았을까 싶었다.
“먹은 걸 흡수한 뒤에, 그걸 다시 체외로 방출해 배리어를 쌓는 방식이야.”
“아까 그 철이 푸른빛을 띠던데, 그걸 먹어서 지금 이런 현상이 생긴 거고?”
“그렇지. 마석이나 다른 보석을 먹게 되면, 그에 따라 다른 색깔 기운으로 배리어를 쌓는 거지.”
오복 형제가 강철 골렘 파편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보여 줬고. 이젠 그것이 아이들에게 무해하다는 걸 설명해 줄 차례였다.
‘직접 봤으니, 이해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예상대로 아내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하는 것 같았다.
마력이 깃든 물건들은 녀석들에게 이롭다는 설명까지도.
“그럼, 마석이 제일 좋겠다!”
“뭐가 좋아?”
“가장 많은 마력이 깃들어 있는 건 역시 마석이잖아? 오복이들 영양제로도 당연히 마석을 먹이는 게 제일 좋을 테고. 배리어 성능도 그게 최고라며?”
“그렇긴 한데… 너무 비싸, 그건.”
자그마치 억 단위의 마석들이었다.
아무리 기특한 오복이들이라지만, 식비로 억 단위를 지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철 골렘의 파편처럼, 최대한 가성비 좋은 영양식을 찾아보는 수밖에.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애들 영양식으로 마석을 먹일 수 있게 해 줄게.”
말은 자신만만하게 했다만.
매번 식비로 억 단위를 지출하기 위해선 대체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할까.
‘장인어른 정도의 경제력이라면 가능하려나.’
노력하면 되겠지.
인생 2회차인데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오복이들, 스킬 중지.”
“말 안 듣는데?”
“오복이들! 스킬 중지하라니까?”
“듣는 척도 안 하네.”
“얘들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그만 집에 가자.”
역시나 오복이들은 반응이 없었다.
배리어를 빚는 데 무아지경이랄까.
마치 도박꾼이 도박에 홀린 것처럼 배리어를 빚는 것에 잔뜩 심취해 있었다.
몸은 가벼워 보였으며 얼굴은 여태 본 것 중에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
“오빠, 아무래도 얘네 그냥 자기네들끼리 노는 것 같은데.”
“……얘들아, 그만 놀고 집에 가자니까.”
이제야 녀석들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시무룩했다.
강제로 집에 데려가면, 닭똥 같은 눈물이라도 흘릴 것만 같다.
도리도리-
다섯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내젓는다.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다시금 배리어 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만해도 된대도?”
녀석들은 조그마한 손으로 재차 배리어를 빚어 댔다.
마치 레고를 조립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았다.
“거참…….”
며칠 동안 시간을 투자해야 고작 한 겹 쌓는 배리어다.
당장 급한 일도 아니었으니, 시간을 두고 서서히 완성해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녀석들이 집에 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오복이들만 여기에 두고 내일 다시 출근을 해도, 계속 이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배리어 만드는 게 그렇게 재밌어?”
끄덕끄덕-
가볍게 노를 휘젓는 것처럼.
비슷한 생김새의 꼬리를 살랑거리는 녀석들이었다.
단순히 취미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오복이들 덕분인지, 배리어는 사흘 만에 완성됐다.
딱 한 겹이긴 해도, 가게 전체에 배리어가 펼쳐진 상태.
녀석들은 내가 시키지 않아도 가게에만 오면 알아서 취미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거 테스트를 한번 해 보고 싶은데.’
회귀 전엔, 테이머들이 키피들과 함께 실드 건설에 참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배리어의 효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지만, 가게의 안전을 위해 테스트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문제점이 있을지도 모르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 바로 수정을 해 나가야 할 테니까.’
C급 헌터 수준은 되는 나였지만.
한 겹의 배리어가 가진 최대 방어력을 그나마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선,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테스트에 참여해 주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보자, 내 주변에 가장 강한 사람이라면……?’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지인 중에 강함으로 따지자면 역시 그 사람밖에 없었다.
수재혁.
엑시스의 부 마스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테스터야.’
부탁을 한다고 무조건 들어주진 않을 거다.
별것도 아닌 일로 그의 시간을 뺏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나는 곧장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배리어는 우리 가족을 지키는 방어 수단이었지만.
“형님, 제가 선화의 안전을 위해 배리어를 한번 만들어 봤는데. 성능 테스트를 하려면, 형님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아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 아내는 형님께서 아끼시는 하나뿐인 여동생이기도 했다.
‘여동생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실 터.’
아니나, 다를까.
형님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 선화의 안전을 위한 일인데, 당연히 내가 도와줘야지.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헌터’이신 형님이시라면, 보다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 입에 발린 말은 사양하겠네, 하하하!
그래도 호탕하게 웃으시는 걸 보니, 내 아부가 썩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테스트 날짜는 언제가 좋겠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 그럼, 당장 내일 하도록 하지.
과연 배리어가 형님의 능력을 얼마나 막아 낼 수 있을지.
나는 한껏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내일을 기다렸다.
* * *
배리어 테스트 당일.
수재혁은 준우와의 약속을 위해, 최대한 빨리 모든 스케줄을 마쳤다.
‘기특한 녀석. 내 동생을 위해, 배리어까지 제작해?’
하여간, 신통방통한 재주가 많은 준우였다.
김 비서의 가방을 골라 준 것만 봐도, 헌터 능력 외에 여러모로 센스도 좋았고.
‘저번에 추천해 준 와인도 성공적이었지.’
그날을 떠올리니, 수재혁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뭔가 대단히도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모양.
준우를 자신의 밑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헌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매우 도움이 될 만한 인재였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영입만 허락해 주신다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을 텐데…….’
외출 준비를 마친 수재혁이 사무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앞서 약속한 대로, 배리어 테스트를 위한 준우의 가게였다.
“김 비서도 같이 가는 게 어때? 배리어 테스트 끝내고, 선화네랑 술 한잔할 겸.”
“그건 좋습니다만…….”
수재혁이 자연스레 김 비서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게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김 비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진다.
심상치 않은 표정에 수재혁도 사뭇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차, 회사에선 티 내지 말라고 했었지.’
수재혁이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아직 두 사람의 사내 연애는 비밀이었다.
“미안해, 김 비서. 내가 공과 사를 구분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 큰 문제? 설마, 모레 스케줄 생겼어? 갑자기 그것 때문에 같이 여행 가기로 한 계획이 틀어지기라도 한 거야?”
“하아, 부마스터님…….”
“…….”
“요즘 부쩍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아니, 그야 지금은 연애 초반이니까, 좀 더 열정적인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럼, 연애 후반엔 시들시들해지는 겁니까?”
“……그, 그럴 리가!”
다행히도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회장님 호출입니다.”
“아버지께서? 설마…….”
수재혁은 직감했다. 올 게 왔다고.
아마도 자신이 준우에게 S급 무기를 넘겨준 걸 알아차리신 것 같았다. 어쩌면, 레이드 공격대에 그의 이름을 올린 것까지도.
“회장실로 올라가시죠.”
“……그래.”
“올라가서, 괜히 저희 관계 언급하진 마시구요.”
“내가 그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여?”
“요즘은 그래 보입니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수재혁.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회장실로 향했다.
* * *
엑시스 서울 본사 최고층.
회장실 앞의 수재혁이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애꿎은 넥타이만 몇 번 더 만지작거리던 그가 회장실 문을 열었다.
‘이 느낌은 매번 와도 익숙해지질 않는단 말야.’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것은 회장실 내부의 온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열기’다.
방 전체를 뜨겁게 감싸고 있는 열기.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자연스레 방의 주인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굳이 보안 설비 같은 게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열기였다. 그나마 수재혁이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랄까.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구요.”
엑시스 회장, 수태광.
이름만큼이나 근엄한 명패 앞에서 수재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얼빠진 짓을 하고 다녔더구나. 요즘 연애라도 하나? 정신이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 같은데.”
“…….”
뜨끔했지만, 용케 표정 관리를 해내는 수재혁이었다.
분위기가 썩 좋지도 않은 마당에 괜히 트집거리를 하나 더 만들어서 좋을 건 없었다.
“기껏 부마스터 자리에 앉혀 뒀더니…….”
수태광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의 장남을 향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서류를 가리켰다.
“계속 ‘그 녀석’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있었단 말이지?”
수재혁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하실 수 있을 테니까.’
아마, 수태광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인 최 비서가 몰래 자신을 감시했을 터.
“서울권 공격대 무기고에서 S급 무기까지 꺼내 보내고.”
“…….”
“게다가 탐욕의 미궁 레이드 공격대 편성표에도, 감히 그 녀석 이름을 올렸다?”
“…….”
얼굴 곳곳에 가득한 흉터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만 같은 강한 열기.
가히 화마(火魔)라는 다른 이름에 필적한 위압감이었다.
“내가 분명 저번에도 그 녀석에게는 신경 끄라고 말했을 텐데.”
순간, 수태광의 미간이 좁혀졌다.
방 안을 에우던 열기가 더욱 짙어졌다.
“공격대 무기고도, 레이드 편성에 관한 것도 모두 부마스터인 제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내가 너를 부마스터 자리에 앉힌 건 엑시스를 위해서다. 그 모든 권한들 역시 엑시스를 위해 주어진 것이지, 고작 그딴 녀석이나 보좌하라고 주어진 게 아니란 말이다!”
“엑시스를 위해 투자한 것이었습니다. 엑시스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라 판단했고, 이번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공략한다면 아버지께서도 역시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을 하실 수…….”
“최 비서에게 듣자 하니, 현재 C급 수준이라면서? 그 정도 수준의 헌터는 엑시스에 차고 넘쳤어!”
“하지만, 다양한 스킬을 구사할 수 있는 헌터입니다. 게다가 회장님의 사위이지 않습니까?”
“사위? 사위라고? 누가 내 사위야!”
수태광의 역정과 함께 그의 눈동자가 빨갛게 변했다.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이제 인정하실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능력이 있는 헌터를 회장님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놓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개인적인 감정? 네 여동생을 데리고 도망친 도둑놈이 너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준우가 선화를 데리고 도망친 게 아니라, 회장님께서 결혼을 반대하시니 선화가 집을 나간 거겠죠.”
“허? 감히 내 앞에서 그놈 편을 들어?”
“선화 편을 드는 겁니다. 회장님 말씀처럼, 하나뿐인 여동생인데 저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태광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자신의 장남이 꽤 많이 성장하긴 한 것 같다.
예전엔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못 하던 아들이었는데.
“쯧쯧, 못난 놈. 엑시스의 후계자라는 녀석이 그렇게 정이 많아서야…….”
“회장님을 닮아서 그런가 봅니다.”
“빌어먹을 자식. 네가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선화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집을 나가는 거 아니냐? 장남이 물러 터졌으니까, 밑에 있는 녀석들까지 그 모양이지.”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항상 이런 식이기에 수재혁도 그러려니 했다.
“공격대 편성표에서 그 녀석 이름 빼고, 무기고에서 빼돌린 것도 도로 가져와.”
“회장님, 그건 제 권한입니다.”
“네 권한 위에, 내 권한이 있다. 시키는 대로 해.”
“…….”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준우에겐 쌀 한 톨도 주고 싶지 않은 수태광이었다.
그에겐 그저 하나뿐인 딸을 데리고 도망친 도둑놈이었을 뿐이니까.
준우에게 돈을 줘야 한다면, 그 돈을 차라리 분쇄기에 넣고 갈아 버릴 그였다.
“못 하겠다? 네가 못 하겠다면, 내가 직접 하지.”
“아, 아버지!”
수태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느새 새빨간 화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거, 일 났군…….’
회장실을 나선 아버지가 어딜 가셨는지는 굳이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준우의 가게로 향한 것이겠지.
⌜ 형님, 곧 도착하십니까? ⌟
그때, 준우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배리어 테스트 준비가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한숨을 내쉰 수재혁이 힘겹게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답장을 보냈다.
⌜ 도망쳐. ⌟
배리어 테스터가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