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복 형제
2주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키피들의 임시 보호 기간 동안 기존 보호자가 나타나질 않았고, 자연스레 아이들은 내가 입양을 하게 됐다.
“오복 형제!”
“오, 오복……?”
“얘네 다섯 쌍둥이잖아. 전부 수컷이고!”
“그래도 오복은 좀…….”
입양 절차를 밟은 뒤,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아내는 전부터 생각해 둔 이름이 있었던 모양.
“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별하기도 힘들고, 이름이라도 확실하게 차이점을 둬야 하지 않겠어?”
“그럼, 첫째부터 일복이, 이복이, 삼복이, 뭐 그런 식인 거야?”
“그치! 어때? 귀엽지?”
역시나 이름을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산다는 아내의 철학은 이번에도 적용됐다.
“이, 이게 귀여운 건가. 으음, 뭔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좀 세련된 이름이 좋은데.
말순이와 미심이, 그리고 은실이까지는 양보했지만, 이번에는 꼭 내 뜻대로 한번 지어 보고 싶었다.
“짜잔! 내가 혹시 몰라서 인식표도 미리 만들어 뒀지롱!”
“……잘했네. 색깔로 구별하는 거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내가 손수 만들어 둔 인식표를 꺼내 왔고, 이로써 이름을 다시 짓는 건 불가능하게 됐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다른 이름으로 짓자고 할 수도 없고…….’
나중엔 내가 손수 인식표를 만들어야겠다.
그땐 아내도 별말 못 하겠지.
‘우선 가장 특성 레벨부터 올려볼까.’
현재 내 레벨은 47.
아이들을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하기 위해, 그간 모아 둔 SP를 이용해 가장 특성 레벨을 8까지 끌어 올렸다.
[ ‘일복이’가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됩니다. ]
[ ‘이복이’가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됩니다. ]
…
….
오복 형제의 가족 구성원 등록을 모두 마쳤다.
임시 보호 기간 동안, 가화만사성 스킬로 인해 아이들과의 친밀도는 이미 가족이 되기 위한 수준으로 끌어 올린 상태인지라 딱히 문제 같은 건 없었다.
< 각성자 정보 >
* 이름 : 전준우 / 47
…
…
! [ 가장(家長) ] 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 레벨이 ‘9’ 상승한 상태입니다.
‘이 정도 능력치면, 거의 C급 수준이잖아?’
가족 구성원이 추가됨에 따라, 가족들이 주변에 있는 한 능력치 역시 비례해 상승했다.
‘회귀 전엔 C급에 도달하는 데만 해도 몇 년은 걸렸던 것 같은데…….’
회귀 후인 지금은 고작 몇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보낼 시간도 없이, 모든 것을 등급 한번 올려 보겠다고 발악을 했던 지난날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회귀가 좋긴 좋단 말이야.’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성장 쪽에 있어서는 회귀만 한 게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쭉 가족을 늘려간다면?’
약 15년에 걸쳐 달성했던 S급도, 몇 년 새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더 강해져야 해.’
회귀 전처럼 허무하게 죽을 순 없었다.
나를 위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도.
“오복 형제가 우리 집과 가게를 요새로 만들어 줄 거라고 했었지?”
“그럼, 그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 아이들이 있으면 우리 집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될 수도 있어.”
아내는 여가 시간 대부분을 오복 형제의 스킬 개화에 투자했다.
유대감도 형성하고, 가족으로서 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달까.
단순히 스킬 개화 말고도, 배변 훈련처럼 앞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준수해야 집안의 규칙 같은 것도 교육을 했다.
‘가게 일하랴, 쇼핑몰 알바하랴, 그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어찌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저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아내는 훈련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마냥 좋은지, 오히려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좋아하니까 그걸로 된 거겠지?’
적당한 수준에서 말리고 싶었으나, 세상 행복해 보이는 아내의 얼굴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먼저, 가게부터 요새 작업을 시작해야겠어.’
일주일 정도 훈련을 진행했을까.
이윽고 오복 형제의 ‘보금자리’ 스킬이 개화됐다.
* * *
다음 달에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당장 살고 있는 집에 ‘배리어’를 설치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시간적으로도 효율이 떨어졌다.
“오빠, 오늘부터 가게에서 일할 때 이거 입어.”
“뭐야, 이건?”
출근을 마친 후, 아내가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티셔츠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오복 형제 입양 기념으로 내가 특별 제작한 유니폼이야. 우리 식구가 된 걸 환영하는 의미 같은 거지.”
“오호? 어쩜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응?”
티셔츠를 꺼내 본 나는 말을 잃었다.
흰색 티셔츠에 아내가 직접 오복 형제를 그려 넣은 듯한데, 이게 너무 유아적인 느낌이었다.
“귀엽지?”
“……엄청나네.”
과하게 귀엽다. 그게 문제였다.
세상에 아내 눈에 귀엽게 보이지 않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민트색 티셔츠…….’
일단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아니었다.
박시한 느낌의 티셔츠인지라 이게 나한테 잘 어울릴까, 싶기도 하고.
게다가 오복 형제 캐릭터가 화룡점정이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마치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의 느낌 같은…….
미키 마우스는 티셔츠에 한 마리만 그려져 있기라도 하지, 오복 형제 캐릭터는 자그마치 다섯 마리였다.
“근데, 꼭 이거 입고 일해야 되는 거야?”
“창피해……?”
“창피하다기보단…….”
“내가 오빠 주려고 특별 제작까지 한 건데…….”
“너무 귀여워서 그렇지. 사람들이 날 너무 어리게 보면 어쩌지? 하하… 하하하!”
“그치? 역시 우리 오빠가 안목이 있다니깐. 아, 참! 그리고 이 티셔츠 조강지처 스킬 사용하는 데 염원 레벨 2밖에 안 든대!”
“그, 그래?”
아내가 애정을 갖고 직접 만든 티셔츠이기에 가능한 일인 듯싶었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조강지처 스킬이 적용되면, 이 티셔츠도 샤넬 백처럼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되려나?’
영 내 스타일의 티셔츠는 아니지만.
당장 이걸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오복 형제 기념 티셔츠로 갈아입고 영업을 시작하자, 아내는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새 작업은 마감 후에 하는 게 좋겠지.’
멍크 덕분에 가게는 여전히 바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70~80% 정도는 매출 유지를 하고 있달까.
“푸흡!”
첫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실소를 터뜨렸다.
시선이 내가 입고 있는 오복 형제 기념 티셔츠로 향해 있었다.
‘……아무래도 이거 나랑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하지만 유니폼을 벗을 수는 없다.
아내가 실망할 테니까.
“흠, 흠!”
“사장님, 유니폼이 너무 잘 어울려요.”
지금 놀리는 건가.
손님은 내게 그 한마디를 건넨 뒤,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봐, 오빠. 손님들도 잘 어울린다고 하잖아.”
“응…….”
“자신감을 가져. 어깨도 좀 펴고! 오픈 때부터 왜 이렇게 기가 죽어 있어?”
“감히 옷의 무게를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지 않나, 싶어서.”
“좋다는 뜻이지?”
“아이, 그럼! 그만큼 옷이 너무 대단하다는 뜻이랄까.”
오복 형제 기념 티셔츠니까 상시 유니폼은 아니겠지.
어느 정도 기념의 의미가 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 그땐 평범한 유니폼으로 다시 바꾸든지 해야겠다.
“어? 그런데 그 유니폼은 팔지 않는 건가 봐요?”
그때, 손님이 물었다.
아까 내 유니폼을 보고 피식했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유니폼이요? 설마, 이거요?”
“네, 네! 사장님이 입고 계신 유니폼. 보통 다른 매장 가면 유니폼도 굿즈로 판매하던데?”
“……이걸 사시려구요?”
“일부러 가게 마스코트 그려 넣으신 거 아니에요? 사장님처럼 데일리로는 입기 좀 그렇고, 집에서 잠옷으로 입을까 해서요, 헤헤.”
손님이 발아래를 응시했다.
겉모습은 살짝 큰 땅다람쥐와 비슷하지만, 귀는 작고 꼬리는 배의 노와 같이 편평하게 생긴 오복 형제들이 보였다.
비버와도 같은 생김새의 녀석들은 가게라는 새로운 환경이 썩 마음에 드는 듯, 이곳저곳을 누벼 대고 있었는데.
‘그저 단순히 누비기만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마치 강박이라도 있는 것처럼,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을 정돈하고 있었다.
시키지 않은 일임에도, 조그마한 손을 이용해 딱딱 각을 맞추는 중이랄까.
“얘들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요. 그래서인지, 그 티셔츠도 더 귀엽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
와아, 이걸 진짜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긴 하구나.
내가 모르는 여자들의 감성 같은 게 있는 건가.
어쩌면, 오복이들의 행동이 한몫한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감사한데, 해당 유니폼은 판매용이 아니라서요.”
순간, 옆에 있던 아내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특별 제작 해 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해 드릴까요?”
응? 갑자기?
“하지만, 저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면…….”
“대량으로 제작해서, 손님 말씀대로 굿즈로 판매할 생각이었거든요. 그 부분은 염려치 않으셔도 돼요.”
“진짜요? 그럼, 저 예약해 놓고 갈게요!”
아뿔싸.
설마 이 모든 게 아내의 계획이었던 건가.
정말로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오빠, 방금 든 생각인데 이거 굿즈 판매 가능할 것 같아. 매출이 높진 않겠지만, 가게 이미지를 위해서 이런 거 한두 개쯤 갖고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가게에 도움이 된다면야 찬성이지.”
“홍보용으로 오빠랑 내가 계속 입고 있으면, 매출도 썩 나쁘진 않을 것 같고.”
“계속 입는다고? 상시용으로?”
“왜? 싫어?”
“아니, 미친 듯이 좋아.”
“가게를 위해서야, 가게를 위해서. 알지?”
우리 선화 하고 싶은 거 그만해.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으나, 겨우 참아 냈다.
‘……굿즈 매출 저조하면, 그때 가서 유니폼 다른 걸로 바꿔 달라고 말해 볼까?’
회귀 전에는 해 주지 못했던 만큼.
이번에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도록 해 줄 수밖에.
생각보다 오복 형제 티셔츠에 관심을 갖는 손님들이 더러 있었다.
덕분에, 갑작스런 아내의 굿즈 판매 계획도 이대로 진행될 것 같고.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다.’
나는 발아래 오복 형제를 흘낏 노려보았다.
물론, 진심으로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가게를 요새로 만들어 줄 아이들인데, 원망할 수야 있겠는가. 그저 잠시 유니폼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을 뿐이다.
마감 후.
나는 아내의 샤넬 백을 어깨에 걸쳤다.
갸웃-?
일복이가 내 패션이 난해한지 갸우뚱거린다.
오복 형제 티셔츠에 샤넬 백, 그래 몬스터 눈에도 이상해 보이긴 하겠지.
스르륵-
샤넬 백을 이용해 차원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강철 골렘의 파편들을 꺼냈다.
갸웃-?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던 일복이가 내가 손에 쥔 파편을 향해 다가왔다.
나머지 형제들도 파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어느새 내 주변으로 오복 형제가 모두 모였다.
“어때? 입맛 좀 돌지?”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
오복 형제가 일제히 파편을 향해 얼굴을 파묻었다.
와그작! 와그작!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파편을 먹어 댄다.
순식간에 파편을 먹어 치운 오복 형제가 또 없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영양식 주는 보호자는 나밖에 없을 거다. 복 받은 줄 알아라.”
키피들은 잡식이다.
가리는 게 거의 없으며, 특이하게도 마석 혹은 오팔, 마노 등의 보석을 즐겨 먹기도 했다.
‘마력이 깃든 보석들이 이 녀석들 힘의 원천이지.’
강철 골렘의 파편 역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마석이나 다른 보석만큼 많은 양의 마력은 아니었으나, 키피들에겐 가성비 최고인 영양식이었다.
‘오복 형제라면, 이것만으로도 최강의 배리어를 만들 수 있을 거고.’
나는 잔뜩 부푼 마음을 뒤로한 채, 차원문 안에서 파편을 좀 더 꺼냈다. 꺼냄과 동시에 오복 형제가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오복 형제의 보금자리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에너지 충전 같은 과정이랄까.
“아이구, 잘 먹네. 예쁘다, 내 새끼들.”
그렇게 몇 번 더 파편을 꺼내 먹이고 있을 때였다.
쫘악!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등짝이 화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앗, 따가워!”
“미쳤어! 미쳤어!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긴. 영양식 먹이고 있는…….”
“그거 철이잖아! 그런 걸 애들한테 왜 먹여? 애들 죽이려고 환장했어? 설마, 내가 만든 유니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애들한테 복수하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엔 말이 너무 길어진다.
그 사이에 아내의 등짝 스매싱이 몇 번 더 이어질지도 모르고.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르겠지.’
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오복 형제와 함께 가게 입구 쪽으로 향했다.
“얘네들은 원래 이런 걸 먹고 산다고. 사료 같은 것보다 건강에도 훨씬 더 좋아.”
“……세상에 철을 먹는 몬스터가 어디 있어.”
“있다니깐?”
사람 잡아먹는 몬스터도 있는데, 철이 대수랴.
당장 오복 형제들 몸 상태에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 주지 않는다면, 아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오복이들, 각자 위치로.”
영양식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오복 형제들은 이전의 훈련 때보다 확실히 각이 잡혀 있었다.
척! 척! 척!
그래, 너희들도 밥값은 해야지.
제 알아서 입구 앞에 차례대로 서는 녀석들.
“오복이들, 전방의 입구를 향해 스킬 개시!”
오복 형제가 일제히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짐과 동시에, 내 눈앞에도 다섯 개의 홀로그램이 연달아 떠올랐고.
[ 일복이가 전용 스킬 ‘보금자리’를 사용합니다. ]
[ 이복이가 전용 스킬 ‘보금자리’를 사용합니다. ]
…
….
우리 가게에는 배리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