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유부남들의 공감대 (41/246)

◈ 유부남들의 공감대

일반 라이노의 뿔은 마켓에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킹 라이노의 뿔은 예외였다.

킹 라이노의 뿔은 몸에서 뽑혀 나오게 되면 강도가 낮아지거나 부서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석을 비롯한 재료 아이템에도 등급이 있듯이.’

그렇기에 쉽게 구할 수가 없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나야, 망할 놈의 투기장 운영자 덕분에 운 좋게 구하긴 했다만.

‘그때 챙겨 두길 잘했어.’

일반 라이노의 뿔보다, 킹 라이노의 뿔이 확실히 해당 배리어를 부수는 데 효과가 뛰어났다.

가히 진정한 ‘템빨’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통은 물론, 몸뚱이마저 산산조각이 난 강철 골렘.

놈의 뒤에 있던 이중 게이트마저 템빨로 쉽게 공략이 가능했다.

히든 보스로 등장한 놈은 블러드 골렘.

강철 골렘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롭긴 했으나, 그렇다고 딱히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B급 늑대인간도 이 검으로 묵사발을 내 줬는데, 해당 던전의 히든 보스쯤이야.’

던전의 전리품과 보상을 거둔 송일우가 내게 다가왔다.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있었지만, 개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강화서였다.

‘그것도 최상급 강화의 서.’

조금 전, 블러드 골렘을 처리하고 얻은 것이었다.

보통 이 던전에선 강화의 서가 종종 드랍되고는 하는데, 대부분 상급 이하의 강화의 서뿐이었다.

확률적으로 강화를 성공하게 해 주는 다른 등급과는 달리, 최상급 강화의 서는 100%로 강화를 성공하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강화서였다.

비록 해당 던전에서 다른 등급의 강화서는 얻지 못했으나, 이것만으로도 최고의 수확이었다.

‘히든 보스라 그런지, 꽤 좋은 걸 뱉어 내긴 했어.’

고가의 강화서를 하나가 아닌 두 개씩이나.

이 안에 이중 게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내가 탐내던 아이템이기도 했다.

“이건 전부 전준우 씨에게 드리겠습니다.”

“강화서 두 개를 전부 다요?”

“저는 이중 게이트 공략만으로 만족합니다. 애당초 목표는 실적을 올려 승진을 하는 거였고, 이걸로 다음 승진에 관한 실적은 채웠으니까요.”

“하지만…….”

“여기 있는 대원들도 제 뜻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그마치 두 개인 최상급 강화의 서.

탐이 나긴 했으나, 나는 극구 거절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앞서 약속했던 대로 전 제 몫만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단 하나의 강화서만 챙겼다.

내 몫으로 열 배만 가져가기로 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흐음. 이러면, 제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실상, 전준우 씨 버스 탄 거나 다름없는데.”

송일우가 곤란해했지만, 나는 번복할 마음이 없었다.

뭐, 그가 계속 난처해하기를 바라기도 했고.

‘강화서 하나를 더 챙기는 것보단, 멀리 봤을 땐 송일우에게 호감을 사는 게 더 이득이거든.’

장차 레이더 연구원으로서 대성할 송일우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겠다, 앞으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차후 예정된 ‘탐욕의 미궁’ 레이드에서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시간 들여서 던전 공략한 건 여기 있는 여러분들 모두 마찬가지죠. 아무리 실적을 쌓았다고 한들, 그래도 물질적인 보상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 전리품들이 있었지만, 크게 돈 되는 것들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길드와 이윤을 나눠야 하는 자들이었다.

‘강화서 하나쯤은 가져가야, 그나마 돈 좀 만질 수 있을 테니까.’

공격대원들이 반색했다.

다들 송일우의 뜻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내심 강화서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움을 받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시니 저희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준우 씨, 혹시 소속 없으시면 저희 길드 공채 시험 한번 보시는 거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그리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준우 씨가 공채 시험을 보신다면 길드 내에서 조금이나마 입김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피스 길드도 나름 대형 길드에 속하지만, 피스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엑시스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았기에.

‘강화서는 바로 써 보도록 할까.’

아껴둘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원하던 아이템이었고, 어디에 쓸지도 미리 생각해 두었으니까.

[ 아케소의 안개 무늬 하얀 천을 강화합니다. ]

어깨 위의 은실이에게 둘러 준 하얀 천이 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등급이 낮은 강화서였다면 이래저래 복잡한 방법으로 강화 확률을 올려야 했겠지만.

‘최상급 강화서는 무조건 성공이지.’

강화 실패 시, 아이템이 파괴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마저도 할 필요가 없었다.

[ 해당 아이템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 해당 아이템의 특성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절로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해당 아이템의 치유 증폭 특성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은실이의 치유 능력 역시 강화되었을 테니까.

끼이!

녀석도 뭔가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하는 모양.

나는 은실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저희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철수 준비를 마친 송일우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던전 공략이 끝났으니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송일우가 손목의 시계를 슬쩍 확인한다.

그리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집에 가면 와이프한테 혼나겠네요. 오늘 와이프 생일이라 일찍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혼나는 정도로만 끝나면 다행이겠네요.”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이래서 길드가 안 좋다니까.

이런 쪽에 있어서는 출퇴근이 불명확한 길드 소속보다는, 그나마 출퇴근 명확한 협회 소속 공무원이 나았다.

적어도 유부남에게는.

“설마, 현관문 잠가 두진 않았겠죠? 저번에 보니까, 비밀번호 바꿔 뒀던데.”

“가시는 길에 꽃다발이라도 하나 사 들고 가시죠.”

“그래야겠습니다. 작년 생일에도 일 때문에 늦는 바람에, 한 달 정도 시달렸던 기억이…….”

나는 돌아서는 송일우를 붙잡았다.

그와 같은 유부남으로서, 왠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랄까.

“그런데, 그 상태로 집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송일우의 팔에 꽤 큰 상처가 있었다.

블러드 골렘을 처리하고 난 뒤, 녀석이 폭발을 하게 되면서 생긴 상처였다.

‘그러게, 뒤쪽에 물러나 있으라니까.’

그럼에도 불구, 나를 도우려다가 다친 그였다.

자신의 팔을 슬쩍 살펴본 송일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헌터인지라 자연 치유가 될 겁니다.”

“아내분이 더 화를 낼 수도 있을 텐데요?”

“예……?”

문득, 회귀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엑시스 입사 초기였는데, 던전에서 제법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선화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지.’

처음으로 아내가 무섭다고 생각했던 때이기도 했다.

병실에 누워 있던 내게 도리어 화를 내며, 헌터 일 같은 거 때려치우라고까지 했으니까.

걱정이 극에 달하면, 사람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경우도 있는 거구나. 새삼 그때 깨달았었다.

“생일에 늦은 걸로도 모자라, 그렇게 다쳐서 오면 아내분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병원에 들를 여유도 없을뿐더러, 들렀다 한들 상처가 순식간에 낫는 것도 아니고…….”

“잠깐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전준우 씨 소환수 능력으로도 이 정도 상처는 커버가 안 되지 않나요?”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조금 전까지의 이야기고, 아이템 강화를 한 지금은 달랐다.

스르륵-

은실이가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동시에, 꽤 큰 상처가 있던 송일우의 팔이 순식간에 아물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허……!”

“아내분께선 생일날 늦게 들어오시는 것보다, 다쳐서 오는 걸 더 싫어하실 겁니다.”

“그새 스킬 레벨이라도 올리신 겁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전준우 씨.”

“별거 아닌데요, 뭐.”

“별거 아니긴요. 덕분에 와이프 잔소리 조금 덜게 되었는데. 저희 와이프가 제가 조금이라고 긁혀서 오면 눈물부터 보이거든요. 고작 이 정도로 제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대장님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대장님은 금방 치유될 상처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내분은 매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을 겁니다.”

“저번에도 오늘과 비슷한 상태로 집에 들어갔었는데…….”

“헌터 일 때려치우라고 하던가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꼭 헌터 일해야겠으면, 차라리 사무직으로 가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시기도 하고?”

“……독심술 같은 것도 쓰십니까?”

“아내분을 위해서라면, 현장직보다는 협회 레이더 연구원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사무직임에도 그쪽은 대우가 좋으니까요.”

“안 그래도 와이프 생각해서 사무직을 고민 중이었는데, 레이더 연구원 쪽은 생각 못 했네요.”

송일우는 막혀 있던 뭔가가 제대로 뚫린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전준우 씨도 결혼하셨습니까?”

“네, 저도 가끔 대장님과 비슷한 경우가 집안에서 생기고는 하죠.”

“어쩐지! 전준우 씨 말에 공감이 팍팍 되더라니!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도 인연인데, 차차 친해지면서 부부 모임 같은 것도 가지면 좋을 듯해서…….”

나는 흔쾌히 송일우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오히려 그와의 친분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오늘 전준우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뭐든 도와주십니까?”

“지옥까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그 문턱까진 같이 가 드리죠. 하하하!”

“약속하신 겁니다?”

“저 다른 건 몰라도,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 약속이면 됐다.

그가 가진 ‘길 찾기’ 능력이라면, 최소한 탐욕의 미궁에서는 백만 대군과도 같은 위력을 낼 테니까.

강화서 하나를 더 얻는 것보다, 이 약속이 내겐 더 의미 있는 것이었다.

‘레이드에서 든든한 아군이 될 사람도 얻었겠다…….’

송일우와 공격대가 떠난 텅 빈 던전.

나는 던전의 보스인 강철 골렘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나도 이것들만 마저 챙겨서 집에 가야지.’

산산조각이 난 강철 골렘의 파편들.

그것들을 차원문 속에 퍼 담았다.

* * *

아케소의 하얀 천 강화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키피의 영입은 할 수 없었다.

코마 상태의 키피들이 남아 있지 않았던 탓이다.

‘어쩔 수 없이, 임시 보호하기로 한 녀석들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차원문 안쪽에서 아이들과 산책을 하던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오빠, 안쪽에 이상한 철 같은 거 잔뜩 있던데?”

“아아, 그거 쓸데가 있어서 좀 가져왔지.”

“저런 걸 어디에 써? 무기 같은 거 만들려고?”

던전에서 수거해 온 강철 골렘의 파편.

단단한 강철이라고는 하나, 재료로 사용해 제조를 하기 위해선 마석 반응을 일으켜야만 했는데.

놈의 파편은 마석 반응을 일으키게 될 시, 투명하게 녹아내려 다시 원복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키피들이 사용할 경우엔 말이 달라지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사용할 곳이 없는 재료였다.

그 말은 곧,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엔 사용할 곳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철로 우리 집과 가게를 최고의 요새로 만들 거야.”

“누가? 오빠가 직접? 손재주도 없는 사람이, 무슨. 내가 도와줄까? 나 요즘 인테리어 공부하는데, 아마 엄청 도움이 될걸?”

“괜찮아.”

“괜찮긴. 오빠도 아니고, 나도 아니면? 따로 업체 부르려고?”

“업체까지 굳이 부를 필요는 없고.”

다음 날.

임시 보호하기로 한 다섯 마리의 키피들이 우리 집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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