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템빨
미심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차원문 안에서 머리를 내미는 녀석.
빼꼼-
살짝 미소를 내비치자, 미심이의 은신 스킬이 내게 적용됐다.
“사, 사라졌어?”
내 앞에 있던 공격대원이 놀란 눈을 치켜떴다.
아이템을 사용해 던전 안에서 도망을 친 건지, 아니면 은신 스킬을 사용한 것인지. 둘 사이에서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겠지.’
소환사가 은신 스킬을 사용할 리는 없을 테니까.
스윽-
나는 손바닥을 살짝 그어 검에 피를 묻혔다.
미심이의 은실 스킬, 그리고 가방 속의 아이템까지.
‘특성 발동을 위한 조건은 모두 갖췄어.’
마력을 끌어 올린 순간.
쿵! 쿵! 쿵!
어느새 재생된 다섯 마리의 골렘들이 공격대원들을 향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휘익- 휘익-!
재빨리 검을 두 번 휘둘렀다.
여섯 개의 무형의 칼날이 눈앞의 골렘들을 향해 쇄도한다.
콰직!
선두에 있던 골렘의 몸이 부서짐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차례대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무슨……?”
“왜 갑자기 이것들이 알아서 쓰러지는 거지?”
순식간에 쓰러진 다섯 마리의 골렘.
하지만 내가 조금 전에 만들어 낸 무형의 칼날은 총 여섯 개였다.
파지지직!
괴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의도했던 대로, 마지막 하나의 칼날이 배리어에 적중한 것이다.
“……헛!”
송일우가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을 포함한 전열의 공격대원들이 수없이 힘을 가했어도, 여태 아무런 변화가 없던 배리어였다.
한데.
그 배리어에 갑자기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놀랄 수밖에.
스르르륵-
배리어가 무너졌다.
이어 몇 번 더 검을 휘둘러, 남아 있던 골렘들마저 빠르게 정리를 해 버렸다.
꿀꺽-
송일우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가까운 거리.
나는 그의 바로 앞에서 은신 상태를 풀었다.
“……!”
“공격대가 좀 벅차 보여서, 살짝 도와드렸습니다.”
“사, 살짝이요?”
“예, 아주 살짝.”
진짜 검 몇 번 휘두른 게 고작이었다.
다만, 그 검이 S급 무기였을 뿐.
‘템빨이지, 템빨.’
자신들이 전력을 다해 싸웠던 골렘들, 그리고 그 녀석들의 위협 속에서 어떻게든 부숴 보려고 발악했던 배리어.
송일우는 자신들이 애먹었던 모든 게, 불과 1분 안에 종결됐다는 것이 심히 놀라운 눈치였다.
“……일당백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었던 거였나 봅니다.”
“과찬이십니다.”
“이 정도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계신 분이 왜 여태 그걸 숨기신 겁니까?”
“숨긴 적 없는데요.”
“예?”
“대장님께서 전선에 나설 생각 말고 힐 지원에만 신경 써 달라고 신신당부하셔서.”
“……흠, 흠!”
몇 번 정도는 전투에 가담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때마다 나를 만류했던 건 송일우와 대원들이었지, 정작 나는 처음부터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멋쩍은 듯 송일우가 머리를 긁어 댔다.
그는 아까부터 궁금했었는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캬앙-?
부서진 골렘 위에 서 있는 미심이.
녀석은 송일우와 눈이 마주치자, 지루하다는 듯 크게 하품을 했다.
‘소환사라고 했으니, 당연히 은신 스킬은 미심이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려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환 능력에 은신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건, 정말이지 게임 속의 사기 캐릭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었으니까.
“여러 마리의 소환수를 소환하실 수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보통 소환사들은 한 마리만 소환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보통은 그렇다.
능력이 아주 뛰어난 몇몇 소환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날 그 몇몇 소환사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뭐, 착각은 알아서들 하시고.’
나는 씩 웃으며 부서진 배리어 뒤쪽을 가리켰다.
이 던전의 보스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였다.
“그럼, 보스 잡으러 갈까요?”
“아… 예, 옙!”
후방에서 힐만 지원하던 나는 자연스레 선두에 섰다.
아까와는 달리, 이젠 어느 누구도 나를 만류하지 않았다.
* * *
보스가 위치한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
나를 보호하던 후열의 공격대원들이 눈치를 살폈다.
힐끗거리며 입을 달싹거리는 것이, 궁금한 게 잔뜩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궁금한 게 많긴 할 거야.’
골렘들과 배리어를 순식간에 부숴 버렸으니까.
하지만 섣불리 물을 수는 없을 거다. 헌터에게 가진 능력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예의였기에.
“혹시, 그 검 말인데요…….”
입을 오물거리던 공격대원이 내게 물었다.
능력 말고 검에 대해서라도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니까, S급 무기던데 그런 건 얼마쯤 해요?”
“글쎄요. 저도 선물 받은 거라.”
“서, 선물이요? 세상에 S급 무기를 누가 선물씩이나!”
옆에 있던 공격대원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리고는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S급 무기인데 부르는 게 값이겠지. 쪽팔리게 그런 것 좀 묻지 마.”
“궁금하니까 그렇지. 아까 이 검 몇 번 휘두르니까, 골렘들이 픽픽 쓰러졌잖아?”
“그래서? 네가 그 검 사용하면, 너도 아까 전준우 씨처럼 할 수 있을 줄 알고?”
“안 될 게 뭐야?”
“안 돼. 특성에 조건이 붙어 있으니까.”
“그럼 조건만 알아내면 되는 거 아냐?”
“어떻게 알아내게? 설마, 전준우 씨한테 물어보려고?”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공격대원이 어색하게 웃는다.
“……에이, 설마. 내가 무슨 도둑놈도 아니고.”
해당 특성의 조건을 갖추는 것도 헌터의 능력이었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과 시도를 했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지금쯤이라면, 조건에 대한 정보만 팔아도 몇백억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무렵.
송일우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스에 거의 다 도달한 것 같네.’
나를 앞질러 나간 그가 뒤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딘가 모르게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너희들 뭐 해? 당장 빨리 안 뛰어와?”
“아까 대장님께서 전준우 씨 보호에만 집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에라이! 그건 아까 얘기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잖아!”
“하긴. 오히려 보호받을 사람은 전준우 씨가 아니라, 우리가 됐으니… 갑니다, 가요!”
송일우가 왜 이리 급한 것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보스를 잡아야만 갈 수 있는 장소에 이중 게이트가 있는 것이겠지.
‘그 전에, 보스를 잡으려면 또 배리어를 부숴야 하고.’
조금 전 보스에게 향하는 마지막 길목에도 배리어가 있었다면, 잠들어 있는 보스를 깨우기 위한 조건 역시 배리어를 부수는 일이었다.
문제는 해당 조건의 배리어가 지금까지 부쉈던 배리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단단하다는 것.
송일우가 급한 것도 이해가 됐다.
비록 이전처럼 근처에 골렘은 등장하지 않겠지만, 배리어를 부수는 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테니.
‘그사이에 이중 게이트가 사라진다면, 상심이 크겠지.’
나는 공격대보다 조금 늦게 해당 위치에 도착했다.
보스를 보호하는 배리어 앞에서, 부랴부랴 챙겨 온 짐을 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전준우 씨는 여기서 잠시 쉬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무기 특성도 사용하셨고, 소환수들까지 다루느라 마력 소모도 엄청 심하셨을 텐데.”
“그래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기가…….”
“보스전을 대비해, 마력 관리를 좀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이 배리어를 부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서 왔으니까요!”
송일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어 보였다.
워낙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던지라,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준비 다 됐으면, 바로 시작하자.”
공격대는 조금 전 꺼낸 무언가를 사용해 배리어 중심을 때려 댔다.
‘라이노의 뿔.’
이 던전의 공략법 중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보스를 보호하는 배리어를 부숴야만 보스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 배리어가 특성이나 스킬로 인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물리적인 충격으로만 부술 수 있는 배리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체나 도구를 써야만 했는데.
‘라이노의 뿔을 사용하면, 보다 힘을 덜 들일 수 있어.’
해당 배리어를 부수는 데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게 바로 라이노의 뿔이었다. 다이아몬드의 열 배 정도로 단단했으니까.
‘배리어 부수기엔 최적이긴 하다만…….’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물론, 다른 그 어떤 아이템보다는 낫겠지만 말이다.
깡! 깡! 깡! 깡!
경쾌하지만 가벼운 소리가 들려온다.
공격대원들이 라이노의 뿔을 이용해 배리어를 때려대는 소리였다.
“대장님, 이거 대체 언제 부서집니까?”
“하루 종일 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요.”
대원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라이노의 뿔을 이용해 배리어를 때려도 작은 금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부서진다.”
송일우가 확신에 찬 어조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공략법을 숙지하고 있는 모양.
“대장님 말이 맞아. 너희들은 이 던전 공략이 처음이겠지만, 저번에도 이렇게 해서 부수긴 했었어.”
“그땐, 얼마나 걸렸는데?”
“빠르면 두 시간. 늦으면 세 시간 정도.”
“하아…….”
막노동 일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대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한숨은 어느새 거친 숨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송일우의 표정은 어두워져만 갔다.
‘이중 게이트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경쾌한 그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깡! 깡! 깡…….
하지만, 점점 소리가 작아졌다.
대원들이 막노동에 지쳐 힘이 빠진 것일 터.
“허억! 허억!”
“우엑! 이, 이거 진짜 부서지는 거 맞지?”
온 힘을 다해 뿔질을 해 대던 대원들 중엔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골렘들을 상대하는 일보다, 이게 더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깡! 깡…….
시간이 더 흐를수록 경쾌한 소리는 줄어갔고, 하나, 둘씩 지쳐서 주저앉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대, 대장님,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됩니까?”
“미안하지만, 당장 그럴 시간이 없다. 힘이 들긴 하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빈혈 증세 옵니다. 시야도 흐릿해지는 것 같고…….”
쉬고 있으라는 송일우의 배려는 고마웠다만, 기다리는 게 영 지루했다. 이중 게이트가 소멸하는 건 나도 원치 않았고.
“이 뿔이 배리어 부수는 데 최적의 아이템이긴 한 건가? 템빨치고는 너무 효과가 약한데.”
한 공격대원이 의문을 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배리어가 부서지기 전에, 자신이 먼저 부서질 것 같을 테니.
‘템빨 받은 것 치곤 좀 약하긴 하지.’
아무래도 더 이상 기다려 주긴 힘들 것 같다.
집에 가서 아내와 저녁 식사도 해야 하고.
스윽-
나는 샤넬백에서 뿔 하나를 꺼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차이가 있다면 일반 라이노의 뿔이 아닌 ‘킹 라이노의 뿔’이었다.
얼마 전, 불법 투기장에서 얻어 낸 뿔이다.
투기장 운영자였던 성재원이 보스방과 연결해 둔 포탈, 그 안에서 등장한 킹 라이노에게서 뽑아낸 바로 그것.
‘템빨에도 급이라는 게 있지.’
내가 가진 S급 무기처럼.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킹 라이노의 뿔을 배리어에 내리꽂았다.
쾅! 쾅! 쾅!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아닌.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쾅쾅… 이라고?”
“깡깡깡이 아니라?”
지쳐 있던 공격대원들이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킹 라이노의 뿔을 세 번 더 내리꽂았다.
쾅! 쾅! 쾅!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배리어가 무너져 내린다.
너무나 쉽게 무너진 탓에 공격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같은 템빨이라도 그 차이가 확연히 달랐을 테니까.
“……우리 지금까지 뭐 한 거야?”
“뻘짓 한 건가.”
공격대원들이 중얼거렸고.
나는 무너져 내린 배리어의 안쪽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강철의 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여기 있는 모두를 합쳐 놓은 것보다 커다란 크기의 구.
‘강철 골렘.’
배리어가 깨짐과 동시에 커다란 강철의 구는 골렘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 던전의 보스가 등장한 것이었다.
“다, 다들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응?”
예상보다 빠른 보스의 등장에 당황한 송일우.
나는 그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전보다 더욱 강렬한 굉음이 울려 퍼진 동시에.
‘이게 진짜 템빨이지.’
무형의 칼날이 골렘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