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흙 신전
공격대장 뒤에 있던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가방으로 인한 난해한 룩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를 의심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들은 더욱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힐러는 무슨. 세상 어떤 힐러가 혼자 던전을 찾아다녀? 그냥 던전 공략 끼워 달라고 거짓말하는 거겠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대체 왜 하는 거야? 아까부터 이상한 사람 같더니만…….”
네가 힐러면 나는 신이다!
마치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도 같았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
엑시스 만큼의 초대형 길드는 아니지만, 나름 대형 길드에 속하는 피스 길드였다.
그런 피스 길드에서도 몇 없는 힐러인데.
뜬금없이 난해한 패션으로 나타난 내가 힐러라고 언급하니, 당연히 못 미더울 수밖에.
‘그래도 사실인 걸 우째?’
공격대장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여전히 의심 섞인 표정이었으나, 상황이 많이 급했는지 대원들처럼 섣부른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증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증명만 한다면, 함께 던전 공략에 참여해도 된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볼 때는 언제고.
힐러임을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힐러가 아닌 ‘소환사’로서의 컨셉을 잡아 볼 생각이었다.
‘고수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법.’
대부분 헌터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아내가 아닌 이상 내 능력을 죄다 까발릴 생각은 없었다.
‘소환사라는 건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함께 다니는 반려몬이 특성이나 스킬을 사용한다는 건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뭐야? 너 팔뚝에 상처 치유됐잖아?”
“네 몸에 있는 상처도 마찬가지야! 이 정도면 최소 E급 힐러 수준 아냐?”
하나둘 대원들의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다.
모두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은실이의 능력이었다.
“은실가 누구야? 은실이가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는데?”
“저 사람이겠지! 아까 힐러라고 했잖아?”
급격한 태세전환이 이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공격대에 힐러만 있다면, 불가능한 던전 공략도 가능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상처가 치료된 대원들의 반응.
그 모습을 살피던 공격대장이 내게 물었다.
“혹시 헌터님 성함이 은실입니까?”
“……아뇨. 저는 전준우라고 하고요.”
난해한 룩 때문인가.
공격대장이 은실이라는 이름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아이가 은실이입니다.”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손끝으로 향했다.
합성에 성공한 아케소의 하얀 천을 두르고 있는 은실이.
녀석이 그들의 시선에 보답하듯 날개를 세게 펄럭인다.
끼이!
천천히 하강한 은실이가 내 어깨에 안착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란 듯이 공격대장에게 물었다.
“증명된 거죠?”
“……허! 소환사셨군요.”
힐러라는 게 반 정도만 사실이었다.
힐러를 소환할 수 있는 소환사 컨셉일 뿐.
하지만, 전투형이 아닌 치유 능력을 가진 소환수를 소환할 수 있는 소환사도 힐러 만큼 드물었다.
“비록 힐러는 아니시지만, 이 정도 능력이라면 도움이 될 거란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군요…….”
그래, 이거 보여 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던전 공략을 진행해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전리품과 보상에 대한 이익 분배는요?”
“전준우 씨 몫은 확실하게 나눠 드리겠습니다.”
“보통 힐러들은 다른 헌터들보다 더 받죠? 길드도 그렇고, 용병단에서도 통상 다섯 배는 더 쳐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끄응.”
갑과 을이 뒤바뀐 순간이었다.
처음엔 내가 부탁을 하는 입장이었으나, 힐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 이상 아쉬운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다.
‘나야 던전 하나 공쳤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공격대장은 그렇지 않을 거다.
레이드 팀의 힐러들이 복귀할 때까지도 기다리지 못할 만큼, 급해 보였던 상황이었지 않았던가.
“여, 열 배 드리겠습니다.”
힐러 몫이 통상 다섯 배라고 말한 건 거짓말이었다.
보통 열 배 정도였고, 공격대장이 수를 쓰는지 아닌지 보기 위함일 뿐이었다.
‘나름 정직한 사람인 것 같기는 하네.’
공격대장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공격대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겠지.
“피스 길드 제 3공격대 A팀장 송일우입니다.”
“송일우……?”
“예,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내가 아는 이름이니까 그렇지.
‘어쩐지, 아까 낯이 익더라 싶더니만.’
송일우라는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실제로 마주친 건 스쳐 지나가듯 몇 번 인사를 나눈 게 고작인지라, 얼굴까진 선명하게 떠올리기까진 시간이 좀 걸린 듯싶다.
15년 전의 젊었을 때 모습이기도 하고.
아무튼. 얼굴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통해 업적마저 떠오른 건 참 다행이지 싶었다.
‘헌터 협회 레이더 연구소장 송일우.’
이름 앞에 직급을 붙이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50대였던 그의 얼굴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 같기도.
‘그래서 계속 급해 보였던 거구만.’
송일우가 해당 던전에서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제 몫으로 열 배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던전을 꼭 공략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 * *
송일우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회귀 전, 레이더 연구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봤을 땐 오른쪽 얼굴이 반쯤 함몰된 상태였으니까.
‘이중 게이트 안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했었지.’
그래서 얼굴만으로는 기억이 나질 않았던 거다.
‘송일우가 급했던 이유는 아마, 이 던전 안에 이중 게이트가 생길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는 탐색 계열 헌터였다.
이중 게이트의 예견은 협회의 레이더로도 불가하지만, 그에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모든 던전의 이중 게이트를 감지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소멸이 임박한 던전 인근에서는 그걸 감지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던전은 공략 횟수에 따라 소멸하거나 리셋이 되는데, 그 횟수가 전부 다르고 가늠할 수 없어서 송일우가 이중 게이트를 감지하는 것도 운이 많이 따라 줘야만 했다.
‘이번엔 운이 좀 따라 준 모양이네.’
아마 승진을 위한 공을 세우는 게 목표일 터.
발현 후 지속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중 게이트였기에, 힐러가 없음에도 무리하게 던전 공략을 진행한 걸 것이다.
‘히든 보스가 등장하니만큼 보상은 보다 좋을 거고, 보상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히든 보스를 공략했다는 것만으로도 실적 쌓는 데는 훨씬 유리할 테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내게도 보다 좋은 보상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는 거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말이다.
‘그런데, 탐색 계열 헌터치고는 전투 능력이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공격대원들도 자신들끼리 합이 잘 맞았다.
전투 중에도 대열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고, 공격 진형에 맞춰 매뉴얼적으로 눈앞의 몬스터를 상대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명, 3-5-2 포메이션.’
진흙 신전, 해당 던전에서 주로 쓰는 진형이었다.
“배리어를 뚫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5분 정도 더 소요될 것 같습니다, 대장님!”
“후열은 문제없겠지?”
“이상 없습니다! 전준우 씨의 안전 역시 문제 없구요!”
진흙 신전은 던전 공략을 위해 길목마다 존재하는 ‘배리어’를 파괴해야만 한다.
배리어를 부수지 않는 한, 골렘들은 범위 내 땅에 존재하는 진흙 속에서 계속해서 재생되기에 배리어와 골렘들을 동시에 노려야만 했다.
‘전열은 배리어를 파괴하는 데 집중하고, 중열은 양측으로 나뉘어 전열을 보호함과 동시에 달려드는 골렘을 상대하는 아주 전형적인 진형…….’
그리고 후열은.
나를 보호해 가며 싸우고 있었다.
‘굳이 날 보호할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지.’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은실이는 열심히 머리 위를 떠돌며 그들에게 치유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고, 나는 그저 구경만 하는 중이었다.
힐러가 없는 상황에서 던전 공략에 실패했던 탓인지, 그들은 어떻게든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만약 내가 다치게 되면 던전 공략은 말짱 꽝일 테니까.’
게다가, 나를 소환사라고 생각하는 탓에 전투 능력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좀 도와드릴까요?”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아, 안 됩니다! 그러다가 전준우 씨께서 다치시면 저희도 무척 곤란해집니다! 자칫 소환수가 역소환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힐러가 안전해야 저희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전선에 나설 생각은 절대 마시고, 지금처럼 계속 소환수 관리만 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나 아까와 같은 대답들뿐이었다.
내가 나서려고 하는 척만 해도, 이들은 난리 법석을 피우며 나를 만류했다.
‘참 고맙기도 하지.’
아직 위험해 보이는 상황은 없었다.
벅찰 듯싶으면, 그때 나서서 싹 쓸어 버려도 되겠지.
“후우, 여긴 얼추 정리된 것 같고…….”
배리어를 파괴한 송일우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전준우 씨, 괜찮으시죠?”
“보시다시피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
한 것도 없는데, 칭찬이라니.
아깐 내 패션을 워낙 꺼려 하는 바람에 앞으론 정장이라도 입고 던전을 드나들어야 하나 싶었는데.
‘힐러가 귀족이긴, 귀족이구나.’
소환사라고 하긴 했으나, 지금 내 포지션은 명백한 힐러.
이렇게 계속 힐러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우리 은실이가 고생이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녀석은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던전의 하늘을 누비는 표정이 자유를 만끽하는 신선과도 같달까.
녀석에겐 좁은 집 안에 있는 일이 많았던 탓인지, 이렇게 바깥에 나오면 유독 좋아하고는 했다.
‘이번 배리어는 이전 것들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데.’
어느새 보스로 향하는 길목의 마지막 배리어였다.
배리어의 크기도 크기지만, 배리어를 만드는 녀석들도 이전보다 움직임이 훨씬 더 빨랐다.
마치 비버처럼 방어 수단인 배리어를 만들어 터전을 보호하는 녀석들.
‘저 키피들이 진짜 문제지.’
키피를 입양하는 것.
내가 이 던전을 공략하려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음 주부터 투기장에서 구출해낸 키피들을 임시 보호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과연 내가 입양하게 될지는 확실치 않다.
‘이전 보호자가 나타나면 돌려보내야 하니…….’
그래서 던전 유기몬을 입양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입양을 할 생각이었다.
우리 집을 최고의 요새로 만들어 줄 녀석들이기에.
녀석들이 적군일 때는 난감하지만.
아군이 되면 최고의 방패나 다름없었다.
“배리어 상태는 어떻습니까!”
“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 최소 10분은 더 걸릴 것 같아!”
“10분이요? 이대로 가면, 이쪽도 조금 벅찰 듯싶은데…….”
배리어가 단단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키피들이 계속해서 부서진 배리어를 복구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마지막 관문인 만큼, 골렘들이 재생되는 속도도 빨라.’
고로 지금까지와는 달리.
공격대가 다소 벅차 보였다.
“아무래도 이젠 저도 가담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전준우 씨는 여태 해왔듯이 소환수 관리만 잘 해 주시면 됩니다! 혹시라도 힐 수급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흡!”
공격대원 하나가 대답을 하다가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 쓰러뜨렸던 골렘이 곧장 재생을 마치고 달려든 탓이다.
“놈들의 재생 속도가 너무 빨라졌어요! 빨리 배리어를 뚫지 않으면, 전준우 씨마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골렘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일단 전준우 씨는 최대한 후방으로 모시도록 한다!”
송일우가 소리쳤다.
이 와중에도 내 안위를 걱정해 주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엔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아주 살짝’ 만 도와줄 생각이다.
죽어라 나를 보호해 준 그들을 배려해, 송일우와 대원들이 너무 허탈해하지 않도록.
나는 그들이 분주한 틈을 타.
샤넬 백을 이용해 작은 차원문을 만들어 냈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넣어 뒀던 것 같은데……?’
차원문 내부의 주변을 몇 번 더듬고 난 뒤.
보이지 않는 검이 내 손에 잡히는 게 느껴졌다.
“히, 힐러 포지션 아니셨습니까?”
검을 꺼내자 공격대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는다.
소환사라고 말하긴 했으나, 현재 내 포지션이 힐러이긴 했다.
“그렇긴 한데, 그건 서브 포지션이구요.”
“서브 포지션이요……?”
굳이 짜 맞추자면 서브 포지션이 더 있기도 하고.
아무튼, 주 포지션은 사실 이거다.
‘메인 딜러랄까.’
배리어 하나 부수는 것쯤이야.
나는 손에 쥔 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