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서
던전 소멸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남짓.
나는 눈앞의 놈이 ‘몬스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말로 히든 보스였다면, 던전 소멸 홀로그램이 사라졌을 테니까.’
길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왼쪽 손과는 달리.
비교적 발톱이 짧은 오른손엔 검을 쥐고 있는 놈이다.
무기를 사용하는 늑대인간?
여태 그딴 건 본 적이 없었다.
‘늑대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하긴 하지만…….’
해당 몬스터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눈앞의 이놈처럼 두 눈이 보라색도 아니었다.
게다가.
보통 몬스터는 인간을 발견했을 때, 기다림이 없었다.
발견하는 즉시 공격부터 하기 마련인데.
‘이놈은… 틈을 보고 있어.’
마치 사람과 사람이 대련하듯이.
상대를 탐색하고, 수시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늑대인간이 아닌 진짜 사람처럼 말이다.
‘그 새끼랑 너무 비슷해.’
회귀 전에 날 죽였던 그놈.
이런 녀석을 마주한 건 그때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놈과 동일한 녀석은 아니었다.
동족일 수는 있어도, 생김새와 분위기가 묘하게 다르며 털의 색깔 또한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눈 속의 달 문양도 달랐다.
회귀 전 놈이 보름달이라면, 이 녀석은 초승달이었다.
‘어쨌거나 그놈에 대한 유일한 단서가 될지도 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포해야 한다.’
놈은 자신이 빠져나온 게이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날카로운 보라색 눈동자를 내게 흘렸다.
[ 미심이가 당신에게 전용 스킬 중급 은신을 사용합니다. ]
한 번 남아 있던 미심이의 은신 스킬을 부여받고.
1.5배 상승한 능력치로 달려드는 놈과 대적했다.
‘은신을 간파하는 것 같은데.’
놈은 내 공격을 정확히 피했다.
시선 역시 완벽하게 내게 닿아 있었다.
종족 특성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은신으로 몸을 숨기는 건 녀석에게 의미가 없는 듯했다.
슈웅-!
나는 마력을 주입한 검으로 놈의 다리를 노렸다.
하지만 검은 놈의 다리를 베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이 놈의 피부를 뚫지 못한 것이다.
‘신체 강화 능력인가?’
이번엔 마력을 온몸에 퍼뜨렸다.
그다음, 측면에서 냅다 놈을 밀쳐 버렸다.
쿠우웅!
놈이 동굴 벽면에 처박혔다.
그러나 별 충격이 없는 것 같았다.
크르륵!
먼지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키는 녀석.
나는 그런 놈의 앞을 막아섰다.
“너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 미안한데, 그냥은 못 보내.”
숲의 신발을 사용한 나와 속도마저 비등한 놈이었다.
최대한 전력을 다해 상대를 해야만 했다.
크륵!
기합을 넣으며 놈이 달려든다.
녀석이 내지른 검을 그대로 맞받아쳤다.
퍼억!
이후엔 가슴을 발로 찬 뒤, 검의 방향을 틀었다.
목표는 녀석의 옆구리.
‘신체 강화 능력을 사용한다 해도, 강화에 허술한 곳이 있기 마련이지.’
마력을 주입한 검이 놈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하는 찰나.
반 바퀴 회전한 녀석이 왼팔로 내 검을 막는다.
쐐애액!
이어 오른손의 검으로 내 어깨를 노렸다.
재빠르게 검을 회수해 공격을 막아냈지만, 나는 의아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단순히 검을 내지르는 게 아니라, 제대로 검술 훈련을 받은 듯한 움직임이야.’
예상은 했지만, 칭호 효과 역시 적용되지 않았다.
아까부터 하고 있던 생각인데.
이 녀석, 본 모습은 진짜 사람일지도.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C등급인 녀석이야.’
협회에서 쓰는 것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구입해 놓은 등급 측정기가 있었다.
그걸 통해 녀석의 능력치를 확인해 본 결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죽이지 않고 생포하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네.’
검을 주고받던 녀석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동굴 벽 쪽으로 몰아넣었다.
크륵!
다시금 녀석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으려는 순간.
등 뒤의 벽을 타고 회전한 놈이 용케 이번에도 공격을 피해 냈다.
슈욱!
자연스레 연계한 공격이 내 어깨를 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여태 해 왔던 것처럼 흘려 버리거나 받아치면 그뿐이었다.
‘어……?’
한데, 놈의 검이 내 어깨를 관통했다.
피가 튀어 오르며 시야가 가려지는 사이.
그 틈으로 놈이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움직임이… 더 빨라졌어?’
서둘러 멀쩡한 한쪽 팔로 가드를 올렸다.
시야가 좁아진 틈을 타, 놈이 달려들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빠각!
팔 어딘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으로 붕 떠오른 몸에 속도가 붙었다.
콰아아앙!
벽에 부딪힘과 동시에 머리 위로 흙먼지가 쏟아졌다.
단순히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라, 놈의 힘도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쉬익-
피에 엉겨 붙은 흙먼지 사이로, 놈이 또다시 비웃음을 내비쳤다. 마치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몸집이 커졌어…….’
회귀 전의 놈에게선 보지 못했던 능력이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다시 녀석과 마주 섰다.
‘……등급도 B급으로 상승했다라.’
등급 측정기의 능력치 역시 달라졌다.
신체 강화 능력으로도 모자라, B등급으로 상승한 놈의 능력치.
저벅저벅-
녀석이 내 숨통을 끊으려는 듯 다가온다.
능력치 차이가 벌어진 이상, 근접전에선 자신이 완벽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
사실상, 그게 현실이기는 했다.
똑같이 검을 사용해 근접 전투를 해야 한다면, 당연히 능력치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유리할 테니까.
하지만, 저놈이 비장의 한 수를 남겨 뒀듯이.
내게도 아직 남아 있는 한 수가 있었다.
“……내가 또 너 같은 놈한테 죽을 줄 알고?”
얼굴에 묻은 피와 흙먼지를 닦아 냈다.
눈앞에 홀로그램이 반짝이고 있었다.
[ 송곳 무늬 그립, 합성 완료 ]
무식하게 달려드는 놈의 공격을 간신히 흘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쌓여 있던 먼지와 흙을 발로 차올렸다.
크륵-?
놈의 시야가 아주 잠깐이라도 흐릿해진 사이.
숲의 신발을 이용해 최대한 멀리 거리를 벌린 후, 잠시 몸을 숨겼다.
‘됐다!’
재빨리 검의 그립을 교체해 냈다.
관통당한 어깨 때문인지, 힘을 줄 때 고통이 제법 잇따랐지만 나름 참을 만했다. 그나마 은실이의 치유 스킬이 있었으니까.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검에 묻혔다.
검에 마력은 아까부터 주입 시킨 상태였고, 은신 역시 여태 유지 중이었다.
‘두 번째 특성 발동을 위한 조건은 네 가지.’
세 가지 조건은 암막 특성과 동일했으며.
이윽고, 송곳 무늬 그립을 사용하는 것으로 네 번째 조건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크륵!
나를 찾아낸 놈이 이빨을 드러낸 그 순간.
녀석이 나를 비웃었던 것처럼, 나는 놈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내비쳤다.
[ 조건부 특성 ‘무형의 칼날’이 발동됩니다. ]
근접전은 끝이다.
이제부턴 원거리 전의 시작이었다.
물론, 나 혼자만.
슈웅- 슈웅- 슈웅!
검 끝에서 소환된 칼날이 놈을 향해 쇄도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세 개의 칼날이 뿜어졌다.
마치 마격과도 같은 형태와 파괴력을 가진 기술.
크륵!
당황한 놈이 발톱과 검으로 가드를 올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안 보이지?”
아마 보이지 않을 거다.
특성의 이름이 무형의 칼날이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검이라는 무기의 이름과 찰떡인 특성이었다.
크르르륵!
반격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칼날은 연달아 쏘아졌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만큼 그 속도가 빠른 것일 뿐.
휘익- 휘익- 휘익!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칼날이 소환되고.
녀석은 어느새 자리에서 밀려,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동굴 구석까지 몰려 버렸다.
S급 무기의 진가가 바로 이것이었다.
등급의 차이조차 상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무기.
쉬이이익-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거친 숨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먼지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놈에게 다가갔다.
반격할 기미조차 주지 말아야만 했다.
‘괜히 번거로워질 수 있으니까.’
털썩-
놈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신체 강화 능력을 사용했다 한들, 무차별 폭격엔 장사 없었다. 가히 S급 무기의 특성이 아니던가.
“……대체 너 정체가 뭐냐.”
놈의 몸 곳곳에 칼날에 찢겨 나간 상처가 수두룩했다.
칼날을 막아 내느라 마력을 소진한 탓인지, 신체 강화 능력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듯했다.
크르륵-
“행동은 사람처럼 하더니, 말은 못 하는 거야?”
크르륵-
“……미치겠네.”
이래서야 도통 대화가 되질 않는다.
푸욱-
나는 놈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오오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영어든, 한국어든, 뭐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로 말을 하진 못하는 것 같았다.
‘응……?’
그런데, 놈의 복부를 파고든 검 끝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 같은 거랄까.
녀석의 살을 살짝 도려내 안에 있는 걸 꺼냈다.
울컥하는 놈의 신음과 함께, 주먹만 한 붉은색 ‘수정구’가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크르르륵!
간신히 정신 줄을 잡고 있던 녀석이 내게 으르렁거린다.
재생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건지, 몸의 상처가 조금씩이나마 회복이 되고 있는 놈이었다.
퍼억!
나는 그런 놈의 머리를 세게 걷어찼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 아직 죽일 생각은 없었다.
생포를 해야 하니, 잠깐 기절을 시켜 둔 것뿐.
“……그나저나. 뭐지, 이게?”
놈의 몸에서 꺼낸 붉은색 수정구.
아직 정확히는 뭔지 모르겠지만, 몸 안에 숨겨 놓을 만큼 중요한 물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회귀 전, 나를 죽였던 놈의 단서가 될지도.
* * *
어두운 방 안.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단장님, 가져왔습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붉은색 수정구를 올려 두었다.
또 다른 남자가 수정구를 손에 움켜쥔다.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청년.
이곳의 단장이라 불리는 추장현이었다.
“실드 스테이트에서 발생한 균열은?”
“조금 전에 공략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통신구에 연락은 없었고?”
잿빛 청년이 붉은색 수정구를 응시하며 물었다.
자신들의 단원이 균열 속의 ‘다리’를 통해 이 땅에 도착했을 경우, 통신구를 통해 생존해 있음을 알려야만 했다.
“설마, 중간계를 넘어오는 도중에 사망한 게 아닐까요.”
“그랬을 수도 있지. 대부분 그랬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균열 공략을 한 협회 헌터들에게 발각되어 사망했다거나…….”
“그건 가능성이 좀 낮아. 우리 웨어울프 종족 특성상, 광폭화를 사용하게 되면, 이쪽 기준으로 최소 한 등급은 상승한 능력치를 가지게 돼.”
의아한 표정의 추장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보냈을 ‘판테온’ 단원이라면, 최소 C급 이상은 됐을 텐데.”
광폭화를 사용하여 몸집을 불렸을 시, B급 수준.
이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번 균열 던전 공략 중에 그와 대적할 능력을 가진 협회 소속 헌터는 없었다.
“역시 중간계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는 건가…….”
그때였다.
추장현이 손에 쥐고 있던 수정구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오! 시, 신호가 왔습니다!”
“다행히도 여기까지 잘 도착한 단원이 있는 모양이군.”
“접선 위치를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추장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리에 회합을 하기 위해선, 보안을 철저하게 해야만 했다.
이 수정구는 이들만의 언어로 접선 위치를 보내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수정구 역시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들의 ‘신기술’로 만들어 낸 보안 체계가 갖춰져 있는 수정구였고, 현재 이 땅의 기술로는 만들어 낼 수조차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즉, 누군가 수정구를 가로챘다고 하더라도.
보안을 뚫지 않는 한, 신호를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호를 보낸 건 이들의 단원이 아니었다.
“어라? 이게 되네?”
방 안에서 수정구를 만지작거리던 준우.
그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설마 했는데…….”
추장현에겐 그들만의 신기술일지 몰라도.
자그마치 준우는 15년 뒤의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고작 이따위 것도 나름 보안이라고 해둔 건가?”
적어도 준우에게 있어선, 개발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된 허접한 보안 시스템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