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가지 조건
최지승은 단단했다.
은빛 실드를 만들어 낸 그의 방패는 백여 마리의 스켈독이 몰려들어도 흔들림이 없었다.
‘내, 내가… 이렇게나 강했다고?’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방패에 마력을 주입해 퍼뜨리는 것조차 어려웠던 그가 아니던가.
‘왜 방패 중심으로 마력을 모아 볼 생각은 못 했던 거지?’
주입식 교육의 폐해였다.
협회나 길드, 아카데미에서도 장비에 마력을 주입할 땐 온전히 퍼뜨려야만 진정한 마력 방출이라고 했었으니까.
정석을 따랐을 뿐이다.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과소평가된 것일 뿐.
아마 같은 방법을 생각해 냈더라도, 방패 강화 스킬을 유지한 채 마력 방출을 사용하는 바보 같은 발상은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해도 어려운 걸, 굳이 스킬까지 써 가면서 집중력을 흩뜨릴 필요는 없었을 테니.’
스켈독이 준우가 말한 범위 안에 모두 들어왔다.
놈들을 버티는 게 얼마나 쉬웠으면, 잡생각마저 하고 있던 최지승이었다.
‘일단, 준우 씨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기는 한데…….’
일순간에 놈들을 몰살시킬 묘책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묘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말해 주지 않았다.
‘영업 비밀이라 하셨지.’
이제 그 영업 비밀이 밝혀질 차례였다.
준우가 함정의 범위를 다시금 점검했다.
“완벽해.”
백여 마리의 스켈독이 보기 좋게 모여 있었다.
깔끔하게 몰살시킬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
[ 마법 함정 ‘홀리 체인’을 발동하시겠습니까? ]
…
….
같은 홀로그램 스무 개가 눈앞에 떠올랐다.
헌터 마켓에서 구입하여 설치한 마법 함정이었으며, 지금처럼 몬스터가 한 곳에 몰려 있을 때 최고의 효율을 내는 마법이었다.
‘그것도 마수에겐 치명적인 신성 속성 마법.’
파지지직-
함정을 발동시키기 무섭게, 선두의 스켈독이 번개에 감전된 듯 쓰러진다.
놈이 쓰러지자마자 굵은 빛의 줄기는 다른 놈들에게 연달아 옮겨붙었다.
파지지직-
이어 후미에서도 한 놈이 쓰러진다.
사방에서 스무 개의 홀리 체인 마법이 차례대로 발동되기 시작했고, 빛의 줄기들은 빠른 속도로 놈들을 잠식하며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백여 마리의 스켈독이 전멸했다.
전멸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5초.
“우와아! 이,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설마, 신성 속성 보유자야?”
“그런 사람이 왜 용병을 해? 신성회 성직자로 있어야지.”
“그럼, 그냥 마법 함정 설치한 건가?”
최지승은 기동대원들과 용병들이 떠드는 소리를 뒤로한 채, 서서히 실드를 거뒀다.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김빠지는군.’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조금 전, 준우가 보여 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니.
“대장님 덕분입니다. 잘 버텨 주셨어요.”
“제,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다 준우 씨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요.”
그의 영업 비밀이라는 게 무척 궁금했다.
위력이 그만큼 상당하지 않았던가.
‘아까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함정을 설치한 걸까.’
잠시 그렇게 생각했던 최지승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전 파괴력이라면, 마법 함정을 최소 스무 개 이상은 설치해야 해.’
숙련된 기술자도 최소 개당 10분은 걸리는 일.
스무 개 이상을 설치했다고 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최지승은 준우가 숙련된 기술자 이상의 숙련도를 가진 회귀자라는 것을 모를 테니까.
그렇다면, 설마 진짜로 신성 속성 보유자일까.
그런데 왜 성직자가 아니라 용병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일일이 캐묻는 것도 실례겠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결국 참기로 했다.
헌터들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공개하지 않는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준우 씨 덕분에 제가 가진 스킬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라니요. 어차피 제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알게 됐을 겁니다.”
“흐음, 과연 그랬을까요?”
온전히 방패의 중심부로 마력을 집중시키면.
방패 강화 스킬이 확산의 매개체가 되어, 자연스레 방패 전체에 마력을 퍼뜨려 준다.
방패는 그렇게 쓰는 거다.
준우가 엑시스에 입사해 훈련을 받을 당시, 최고의 탱커라 칭송받던 수비대장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저 그 말을 최지승에게 전해 준 게 전부야.’
앞서 말했듯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일.
다만, 준우가 그걸 조금 더 앞당겨 줬을 뿐이다.
“준우 씨. 다음 작전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예……?”
최지승이 눈을 껌뻑거리며 준우를 바라보았다.
뒤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작전 지휘관은 대장님이신데요? 왜 그걸 저한테 물으시는지…….”
“아아, 이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무래도 마법 함정의 임팩트가 상당했던 모양.
얼떨결에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준우였다.
‘그래도 사람들이 믿고 따라 주니, 앞으로는 훨씬 더 수월해지겠어.’
최지승이라는 든든한 방패를 선두로 일행들이 움직인다.
목적지는 준우의 두 번째 함정이 위치한 장소였다.
* * *
< 균열 던전 - 일반 기여도 >
1위. 전준우 61.8%
2위. 홍민철 27.7%
3위. 최지승 3.6%
…
….
A팀 기동대장 홍민철이 인상을 확 구겼다.
조금 전, 1단지의 두 번째 보스를 처리한 뒤 기분 좋게 기여도를 확인했건만.
‘……내가 왜 2위지?’
불과 첫 번째 보스를 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1위였다.
게다가 2위인 전준우라는 사람과 4% 이상 차이가 났었다.
한데.
어느 순간 그가 자신을 따라잡았다.
그것도 두 배나 넘는 수치로.
‘흐음, 이건 너무 허무한데.’
다소 무리까지 해가며 광역 스킬을 난사했던 이유.
균열 던전에서 기여도 1위를 차지해, 희귀 보석인 ‘송곳 무늬 마노’를 보상으로 얻기 위함이었다.
협회 소속 헌터이기에 던전 부산물과 전리품은 당연히 국가의 것이 되겠지만, 공략 보상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에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껏 낸 결과만으로도 성과 수당이 지급될 테지만, 보상 아이템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기왕 작전에 투입된 김에, 보상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은가.
‘보스 기여도라도 노려봐야 하나.’
일반 기여도와 마찬가지.
균열 던전에서 보스 기여도가 가장 높으면, 그 역시 뛰어난 보상을 얻을 수가 있었다.
“에이, 여기도 다 끝났네.”
“홍 대장님 오셨습니까.”
보스 기여도를 노리기 위해 2단지로 향했지만, 1단지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얼추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
“최 대장, 혹시 전준우라는 사람이 그쪽 팀에 소속되어 있었어?”
“예, 아까 홍 대장님께서도 보셨을 겁니다. 이번 작전 수행에 지원한 용병들 중 한 분입니다.”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인지라, 당연히 협회 소속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2단지 내, 두 마리의 보스를 모두 처리하신 것도 그분이십니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고?”
홍민철이 직접 용병들에게 위험 사항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던가. 그들을 B팀으로 안내한 것도 본인이었다.
‘좀 이상하네. 용병들 중에 나보다 높은 기여도를 차지할 만큼의 실력자는 없지 않았었나?’
균열 던전은 아직 공략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협회가 앞서 찾아낸 네 개의 균열 핵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협회의 헌터들이 재차 균열 핵 수색에 나선 사이.
홍민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최지승에게 물었다.
“근데, 자네는 왜 방패를 들고 있어? 검은 어디 팔아먹고.”
“아아, 저 검 접었습니다. 이참에 탱커로 전향해 보려구요.”
“느닷없이 갑자기 웬 탱커야……?”
“이제야 제 적성을 찾았지 뭡니까, 하하핫!”
시큰둥한 표정의 홍민철이였다.
포지션을 전향하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균열 핵을 찾았습니다!”
그때였다.
협회 소속 헌터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래? 역시 협회 장비가 좋긴 좋구만.”
“그, 그게, 저희가 찾은 게 아닙니다.”
“협회가 찾은 게 아니면? 그걸 누가 찾아?”
“전준우 용병님께서…….”
기여도 1위를 뺏어간 그 남자의 이름이 언급됐다.
홍민철이 서둘러 균열 핵이 발견된 아파트 13층으로 달려갔다.
‘이런 곳에 균열 핵이 생겼으니, 찾기가 까다로웠을 수밖에.’
13층 아파트 배전함 앞에 거대한 붉은 게이트가 빛을 내고 있었다. 균열핵이 폭발하면서 게이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사람이 전준우…….’
뒤돌아본 준우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홍민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찾아내신 겁니까?”
“협회에서 이쪽 동 배전함은 살펴보지 않았다길래, 혹시나 해서 뒤져 봤습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여기까지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였다.
그 전에 균열 핵이 폭발을 시작했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걸 이렇게 쉽게 찾아내?’
홍민철의 두 눈에 이채가 발했다.
대단하게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대단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돼. 기여도 1위라는 수치가 이자의 능력을 말해 주고 있잖아?’
곧 기동대 특채 공고가 있을 예정이었다.
용병이라면 길드에 소속되어 있진 않을 터, 탐내 볼 만한 인재라고 판단했다.
“어, 어? 저, 전준우 씨! 지금 거기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때, 홍민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준우가 붉은색 게이트 안에 발을 디디려 했기 때문이다.
“아까, 최지승 대장님께서 보고 후엔 게이트 진입을 해도 상관없다고 하셔서.”
“그게 아니라, 게이트에서 검붉은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보스가 위치한 안쪽에 ‘안개’가 깔려 있다는 뜻입니다.”
종종 마수들이 등장하는 던전에 검붉은 안개가 깔리곤 하는데, 흡입하게 되면 각종 어둠 속성 상태 이상을 초래했다.
“입고 계신 전투복만으로는 안개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혹시 몰라 아까 저희가 신성회에 아이템 지원을 요청해 뒀으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면…….”
“으음. 안개만 파훼할 수 있다면 진입해도 되는 거죠?”
“예, 뭐 그렇습니다만. 만일의 사태가 생긴다고 해도, 저희 협회에선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것만 인지하고 계신다면, 먼저 진입하셔도 좋습니다.”
보고를 해야 한다는 최지승의 말에도, 군말 없이 기다려 준 이유였다.
협회가 진입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에게 들었으니까.
‘자칫, 마지막까지 보스를 두고 경쟁할 뻔했어.’
준우에겐 협회가 발견한 네 개의 균열 핵 중 해당 게이트가 포함되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럼, 먼저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준우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향했다.
홍민철은 놀라기보단,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괜찮겠죠……?”
“왠지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스 기여도 순위도 저 사람한테 뺏길 느낌인데.”
최지승과 홍민철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준우는 게이트 안쪽에서 검을 움켜쥐었다.
‘안개는 이걸로 충분히 막을 수 있어.’
S급 무기인 보이지 않는 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두 가지 특성 모두를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개중 하나는 지금도 갖춰진 상태였다.
‘유독 조건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총 세 가지 조건.
첫 번째는 검에 마력을 주입시키는 것.
두 번째는 사용자의 피를 검에 묻히는 것.
‘세 번째는… 은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
무기가 가진 모든 특성을 사용하기 위해선 공통적으로 은신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방 속 미심이가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순간, 준우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반짝인다.
[ 조건부 특성 ‘암막’이 발동됩니다. ]
[ 어둠 속성 상태 이상에 면역됩니다. ]
저만치 앞에 검붉은 안개가 준우를 향해 다가온다.
안개 속에 커다란 실루엣의 녀석이 눈을 번뜩였다.
‘이놈만 잡으면, 검의 두 번째 특성도 사용할 수 있다.’
암막은 은신이 유지되는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지만.
미심이의 은신 사용 횟수는 아직 한 번 더 남은 상태.
지면을 박찬 준우가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