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템복 터졌다
경매장 오픈 때까지 시간이 제법 여유로운 상황.
나는 조금 앞서 헌터 협회 경기 지부에 도착했다.
이건형이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였다.
‘굳이 마중까지 나와 있을 필요는 없는데.’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건형이 보였다.
나는 가볍게 그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 그의 안내에 따라 건물 회의실로 향했다.
“준우 씨 덕분에, 이번 사건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네요.”
“하하!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준우 씨와 함께 현장에 투입하게 되면서, 앞으로도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내 영입과 관련된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건형.
어쩐지 이 얘기가 꽤 길어질 듯한 예감이 든다.
아무래도 화제를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참! 투기장에서 사용하고 남은 코인 말입니다. 일단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왔거든요.”
“새로 취임하신 지부장님께서 갖고 계신 코인 전부 현금으로 교환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부 다요……?”
그게 다 얼만 줄 알고?
절대 협회에서 감당 못 할 텐데.
“네, 전부 다. 한나 씨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성재원을 찾아내기 위해, 탐색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투기장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 과정에서 준우 씨의 개인 자금 역시 사용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새로 취임하신 지부장님께 보고를 드렸구요.”
탐색 작전이라.
과정은 조금 다르긴 한데, 맥락은 비슷했다.
“그래도 이걸 다 교환해 주시는 건 조금 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투기장에서 회수한 불법 자금에서 준우 씨 몫을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민간인이 사건 해결에 기여한 만큼, 포상금의 개념도 더해진 것 같구요.”
“저도 양심이 있지,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별것 아니니, 그렇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업무 처리 비용도 추가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협회 소속 헌터들 업무 처리 비용이 그 정도였던가.
하지만, 난 협회 소속이 아니었다.
사실상 이런 걸 바라고 움직인 것도 아니고.
“협회 소속 헌터들은 현장 나갈 때, 따로 생명 수당이 붙어요. 하지만, 준우 씨는 그것마저도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신 경우 아닙니까?”
“아아! 생명 수당이 엄청 센 모양이네요.”
“아무렴 생명 수당인데요. 지부장님께서도 거기까지 다 감안하시고 내린 결정일 겁니다.”
길드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협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야, 저도 정말 부담 안 가집니다?”
“물론입니다! 여기 서류에 사인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공무원인지라, 이런 거 안 받아 놓으면 나중에 문제가 좀 되거든요.”
“서류요?”
“조금 전 제가 말씀드렸던, 코인 현금 전환과 업무 처리 비용에 대한 약속 같은 거죠. 그런 내용의 형식적인 서류일 뿐입니다.”
“사인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팀장님. 이런 것까진 바라지 않았는데…….”
“아유!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나중에 협회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분께서 뭐 이런 걸로.”
이건형이 으쓱거리며 웃는다.
설마, 날 영입하기 위한 뇌물 같은 걸까.
“가져오신 코인은 어디에……?”
나는 회의실 한쪽에 세워 둔 캐리어를 끌고 왔다.
참고로 캐리어는 총 세 개였다.
“그 캐리어는 뭔가요?”
“이거요?”
“짐이 많으신 것 같아서 옮겨 드리긴 했는데, 아까부터 궁금했었습니다.”
“코인이 이 안에 있어서요.”
“왜 코인을 굳이 캐리어에……?
“가져오기 불편해서. 이거 다 코인이거든요.”
“예, 예……? 이, 이 안에 든 것 전부 다요?”
그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말을 잇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총 408,000코인입니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40억 8천만 원 정도 될 것 같네요.”
“…….”
만약 투기장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따라 배팅하지 않았다면, 죄다 역배로 돈을 땄을 거다.
그럼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가 되어 있었을 거고.
“……어, 얼마라구요?”
“40억 8천만 원.”
“케, 케켁! 자, 잠시만요!”
이건형이 황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말하는 걸로 보아, 지부장과 통화를 하는 듯했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그가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준우 씨. 잠시, 저랑 같이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요?”
“네, 지부장님께서 직접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그러죠.”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뭐랄까.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어쩌면, 아케소의 하얀 천을 쉽게 얻어 낼 수 있을지도.
* * *
새로 취임한 헌터 협회 경기지부장 오동수.
내겐 차기 헌터 협회장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취임 소식을 들었는데, 화면보다 실물이 더 나은 인물이었다.
특유의 강인한 인상도 실물이 훨씬 강렬하게 느껴졌다.
“죄,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저희 팀에서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사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현장이 워낙 어수선했을 테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다가, 코인 전액을 환전해주겠다고 결정을 한 것은 저이지 않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지부장은 이건형을 다독였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인자한 미소는 보는 사람마저 편안하게 만들었다.
‘원래 이렇게 자상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나?’
산검(山劍).
그에게 붙은 별명만큼이나 산처럼 우직한 성격과 차갑고 강인한 인상만이 내 기억 속의 전부였다.
한데.
동료이자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였다.
집 밖에서와는 달리, 집 안에선 한없이 따뜻한 아버지의 느낌이랄까.
‘내가 앞에 있어서 그런 건가.’
내가 모르는 그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오동수가 헌터 협회장이 된 이후로 길드로 이적하는 협회 헌터들의 수가 줄어든 걸 보면, 그의 이런 모습이 영향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전준우 헌터님에 대해서는 취임하자마자 이 팀장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천하의 엑시스가 탐내는 인재이자, 복합적인 스킬 능력을 구사하시는 유일무이한 분이시라고.”
“과찬이십니다. 제가 좀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어서.”
“허허! 겸손하시기까지. 이런 훌륭한 분에게 제가 큰 실수를 하게 된 것 같아,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죠. 지부장님께서 이 팀장님의 실수를 나무라지 않듯,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협회는 40억이 넘는 액수를 내어 줄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투기장에서 회수한 자금이 상당하겠지만, 그건 협회의 자금이 아닌 국가에 환수되어야 할 불법 자금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리 투기장에서 많은 코인을 벌어들였다고 한들, 같은 이유로 현금 환전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내가 투자한 금액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쓰였던 만큼 해당 금액에 포상금 차원의 액수를 더 얹어서 주려고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금액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겠지.’
혹시나 했는데, 일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모양.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내놓았다.
지부장의 직인이 찍혀 있는 서류이며, 그렇기에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였다.
“흐음?”
“제가 이 서류를 갖고 있으면, 훗날 문제가 될 수 있지도 않겠습니까. 물론, 제가 이걸로 소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지부장님이 파기하시는 게 심적으로 편하실 테죠.”
“허허…….”
이 서류가 내게 헛바람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다.
내가 가진 모든 코인을 전부 현금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원래는 투기장에 사용했던 원금만 받아 갈 생각이긴 했는데…….’
하지만, 얼떨결이긴 해도 기회가 찾아온 셈.
이걸 냅다 박차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투기장에서 돈을 목표로 했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해 배당률을 낮추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서류가 있다면, 협회에서 40억이란 큰돈을 받아 낼 명분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요.”
“협회는 국가 기관이며,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죠. 그 돈은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해 더 좋은 곳에 써 주시길 바랍니다.”
“이 팀장이 전준우 헌터의 영입에 목매는 이유가 단지 실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를 바라보는 지부장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호감이 더 큰 호감이 된 느낌이랄까.
‘적어도 내가 아는 오동수라면, 절대 날 빈손으로 돌려보내진 않을 거야.’
우직하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또한,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국민들과 약속한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 내는 자가 아니던가.
“이번 일은 명백한 제 실수였습니다. 이전 지부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해임되고, 취임하자마자 정신없이 인수인계를 받긴 했으나, 모두 핑계일 뿐.”
아니나 다를까.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과의 의미로 제가 전준우 헌터님에게 약소하게나마 선물이라도 하나 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앞서 말했듯 요행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회수한 불법 자금 액수도 상당하고, 협회 임원까지 연루되어 있던 큼지막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에 공헌하신 분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연달아 거절했지만.
그가 날 붙잡을 것이라는 건 직감하고 있었다.
실수이긴 하나,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또한 지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내 영입과 관련하여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포상금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하지만…….”
“40억이라는 큰돈은 무리겠지만, 능력이 닿는 한해 원하는 선물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이니, 부디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이쯤 되면, 못 이기는 척 받아 주는 수밖에.
‘나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우리 집은 대가족이다.
식구는 점점 더 많아질 거고 앞으로 더 늘어날 거다.
‘식비만 해도 엄청날 텐데, 이런 식으로라도 아껴 봐야지.’
나는 고민하는 척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가 오늘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서.
“휴우! 뭐, 어쩔 수 없죠. 그렇게라도 해야 지부장님께서 마음이 놓이신다면야…….”
“말씀해 보시지요.”
“아케소의 하얀 천이라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만.”
“아케소의 하얀 천이라?”
“오늘 예정된 경매에 나올 물품입니다.”
이건형이 옆에서 경매 물품 목록을 건네며 거들었다.
목록을 쓱 살피던 지부장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40억에 비하면 아마 소박한 수준일 터.
충분히 그의 능력으로 감당이 가능할 거라 판단했다.
“이 팀장이 따로 준비해서, 전준우 헌터님께 전해 드리도록 하세요.”
경매에 나왔으면 최소 4억은 받았을 아이템.
그걸 서류 한 장으로 낙찰받은 순간이었다.
* * *
화장실에서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친구를 만나러 외출한다더니, 아내가 안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나는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을 뒤졌다.
투기장에 사용했던 원금 2천만 원에, 추가로 얻어 온 아이템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
< 아케소의 하얀 천 - 리미트 >
* 등급 : A
* 속성 : 빛
* 효과 : [ + 체력 Lv.5 ] [ + 마력 Lv.5 ]
* 특성 : 없음
===
한눈에 봤을 때.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한정판 아이템치고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이 아이템을 처음 봤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인생 2회차란 말이지.’
F급 아이템도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그 흔한 특성이, 해당 아이템엔 단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리미트 아이템임에도 불구, 경매장 예측 가격 4억이라는 과소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그 가격마저도 단지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희귀성 덕분이었다.
그러나, 1회차 당시.
해당 아이템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미즈키에 의해 그 진가가 드러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가 아케소의 하얀 천에 숨겨진 특성을 개방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치유 증폭이라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특성.’
자동 발현되는 특성으로 치유 스킬의 회복량을 늘려 주는 효과였다.
나아가, 특성 레벨을 높일 수만 있다면 거기에 ‘실드’ 효과까지 더하는 게 가능했다.
‘레벨을 최대로 높인다면, 실드보다 더한 것도 가능하고.’
숨겨진 특성의 개방을 위한 조건은 합성.
하나뿐인 리미트 아이템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합성 확률을 100%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문제가 존재했다.
하지만.
‘합성 보조제 공식’을 알고 있는 나라면.
‘딱히 그것도 문제가 되진 않지.’
보조제야 하나하나 구해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미 아케소의 하얀 천은 내 수중에 들어왔으니.
“은실아! 잠깐만 이리 와 봐!”
내 목소리를 인지한 은실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내 앞에 앉은 녀석의 머리에 천을 씌웠다.
“생각보다 엄청 잘 어울리는데?”
나름 귀여워 보였다.
뭔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깜찍한 새 같기도 하고.
“오빠, 금방 왔네?”
“조금 전에. 이거 봐, 은실이 귀엽지?”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곧장 핸드폰을 챙겼다.
그리고는 은실이의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 참! 오빠 택배 왔는데.”
“택배?”
“큰오빠가 보냈더라구. 오빠 방에 가져다 놨어.”
택배라고?
형님이 보낼 만한 선물이라면, 그것밖에 없을 텐데?
‘이왕 보내 줄 거 빨리 좀 보내 주지. 한참 기다렸네!’
허겁지겁 방으로 향한 나는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커다란 택배 상자였다.
쓸 만한 무기를 보내 준다던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상자를 뜯었다.
“이야, 이걸 진짜 나한테 준다고?”
오늘 하루, 아이템 복이 터져도 아주 제대로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