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격자
투기장에 입장하기 위해선 회원권이 필요하다.
보통은 호객꾼들에게서 얻지만, 기존 회원이 다른 사람을 그들에게 추천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쌓여 간 회원들이 약 천여 명.
수시로 투기장을 다른 던전으로 옮겨 가기도 하지만, 로열 파트너스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해 온 탓에 그동안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 시발! 내, 내 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분명 솔리스가 이길 것 같다고 했잖아!”
“이길 것 같다고 했지, 이길 거라고 확신은 안 했어! 그리고, 내가 언제 거기에 배팅까지 하라고 했어?”
관중석이 난리가 났다.
배당률은 낮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솔리스에 배팅을 했던 상황이었다.
한데, 역배인 마이티가 승리한 것이다.
준우는 씩 웃으며 다음 경기 배팅을 위해 움직였다.
‘결국, 싸움은 체력전.’
은실이의 스킬로 마이티를 계속 회복시키면서 조작된 경기 결과를 뒤집었다.
투기장 측에서 눈치를 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조작에는 조작이야.’
오히려 투기장 운영자를 꾀어 내기엔, 녀석들이 눈치를 채게 하는 것도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형씨, 이번에는 어느 쪽이 이길 거 같은가?”
“왜요?”
“형씨가 보는 눈이 좋은 듯해서 말이야. 나도 덕 좀 볼 수 있을까 하는데…….”
몇몇 사람들이 준우에게 몰려들었다. 잘된 일이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놈들을 흔드는 게 더 쉬울 테니까.
“이번에도 역배로 가시죠?”
“혹시, 이유를 좀 들어 볼 수 있겠는가?”
“보통은 기세라고 하죠. 저한테 몬스터의 기세를 볼 수 있는 칭호가 있는데, 다음 경기 역시 역배 쪽이 기세가 더 좋아요.”
“오호라! 투기장에 아주 탁월한 칭호를 가졌구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칭호의 능력이라고 둘러대긴 했으나 기세를 볼 수 있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준우는 용케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때는 S급 헌터로서 수많은 던전 안의 몬스터들과 마주했던 그가 아니던가.
‘대진표상의 두 몬스터는 뮤턴트로 동일하지만, 지는 쪽은 모두 코마 몬스터라는 것.’
특성과 스킬을 잃은 코마 몬스터가 일반 몬스터를 상대해서 이길 수 있을 리는 만무.
둘 중 한 마리는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면, 코마 상태의 녀석들이 이기는 편이 나았다.
“이번에도 형씨가 맞추면 내가 술 한잔 거하게 사지! 그런데, 자네는 얼마나 걸 건가?”
“당연히 올인이죠. 저는 확신하거든요.”
“허허…….”
옆에서 준우의 말을 듣고 있던 직원들.
그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지, 저 자신감은? 이 승부는 분명 조작이잖아. 그런데, 왜 이번에도 저 사람이 맞출 거 같지?’
순간, 직원과 준우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준우의 확신에 가득 찬 눈빛에서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하지만 직원들의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조작된 결과와는 달리, 준우의 배팅이 성공한 것이다.
‘이,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조작된 경기가 어떻게 계속 뒤집어질 수 있는 거냐고!’
다음 경기, 그리고 또 다음 경기.
경기가 거듭될수록 준우의 코인은 불어났고, 그에게 붙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 갔으며, 그들 모두 배팅에 성공했다.
사람들이 많이 붙어서 역배는 더 이상 역배가 아닌 게 됐다.
그에 따라 당연히 배당률 또한 낮아졌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어찌 됐든 돈을 땄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남은 건, 딱 한 경기. 슬슬 움직임을 보일 텐데?’
한두 번이야 우연이라고 쳐도.
그게 다섯 번이나 연속이 되어 버린 이상, 투기장 측에서도 절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내를 살피는 준우의 시야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다들 엄청 다급해 보였다.
“……전준우 씨.”
“예?”
“혹시, 아까 말했던 칭호 말인데요. 이름이 타짜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운을 좀 좋게 해 주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운도 이렇게까지 좋으면 실력이지 않나요?”
“그럼, 실력이라고 해 두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그때였다.
[ 마지막 경기가 1시간 지연됨을 알립니다. ]
갑자기 경기가 지연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투기장 운영자는 여태 움직임이 없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저희가 직접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네?”
“똥줄 타는 놈이 알아서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준우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정한나가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자, 투기장 직원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저희 사장님께서 회원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준우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성재원은 조금 전 전화를 받고 급히 투기장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웬 타짜 같은 놈이 나타나, 자신이 운영하는 투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내가 짜 놓은 반대로만 죄다 배팅한단 말이지?’
다섯 번 연속이나 그랬다면, 필히 우연은 아닐 터.
더군다나 문제는 다른 회원들까지 놈과 같은 쪽에 배팅을 하는 바람에, 돈을 잃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래선 장사가 되질 않는다.
회원들이 돈을 잃어야,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었다.
‘놈 때문에 이미 흐름은 끊겼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 마지막 경기도 그놈이 뒤집을 거야.’
초반에 회원들이 돈을 딸 수 있게 만들어 주고.
큰 판에서 흐름을 꺾어 이익을 취하는 설계였다.
그런데, 놈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를 이길 수 있게 만들면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설계자 본인도 흐름을 읽을 수가 없는 상황이랄까.
“놈이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겁니다. 스킬은 사용할 수 없으니 아이템이나 칭호 같은 걸 사용해서…….”
“그런 것쯤은 나도 유추할 수 있어.”
“……아아, 옙!”
“문제는 놈이 어떻게 알고 내가 설계해 놓은 반대로만 척척 골라 먹느냐는 거지. 마치, 결과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순간, 김동수가 괜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무실에서 사라졌던 장부가 문득 생각나서였다.
‘서, 설마, 누군가 내 장부를 빼돌린 다음 여기서 한탕 치려고… 아니겠지?’
눈치를 살피던 김동수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러다 장부라도 가져오라고 하면 큰일이다.
“그런데, 놈은 왜 만나 보려고 하시는 겁니까?”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 던전에서 수작질을 부린 놈이야. 아이템을 사용했다면 뺏으면 되겠지만, 칭호라면 뺏을 수도 없어.”
“저희 쪽으로 회유하려 하시는 거군요.”
“쓸모가 많을 테니까. 오늘처럼 변수가 생긴대도 대응하기 쉬울 거고.”
갑자기 경기 일정이나 대진표를 바꿀 수는 없다.
회원들이 의심을 할 테고, 자칫 조작에 관한 이야기가 떠돌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기 오는군. 생각보다 엄청 젊네?”
“사장님이랑 비슷한 또래로 보입니다.”
성재원이 먼저 와 있었던 콜로세움 최상층.
뒤늦게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는 그놈의 모습이 보였다.
“……어?”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아, 아닙니다.”
놈이 점점 가까워지자, 김동수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긴가민가했는데 거리가 좁혀질수록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이라는 것을.
‘저, 저 사람이 여기서 왜 나와……?’
미팅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
반려몬 케어샵 사장인 준우였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해. 느닷없이 투기장 판이 흔들린 것도 그렇고, 장부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준우를 다시 만나게 되니 이제야 싸늘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걸 느꼈을 땐 이미 늦었다.
‘잡았다, 요놈!’
성재원의 얼굴을 확인한 준우가 지면을 박찼다.
타깃을 확보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사, 사장님!”
“크윽!”
어느새 준우가 성재원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직원들마저도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뭐 해요, 정한나 씨. 현행범 수갑 채워요.”
“네, 네!”
그녀가 마력 수갑을 꺼낸 찰나.
김동수를 필두로 직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뻐억-!
준우가 방향을 틀어 김동수의 안면을 강타했다.
“커흑!”
한 손엔 성재원의 멱살을 쥔 채, 가볍게 움직이는 준우.
달려들던 직원들이 멈칫했다. 실력 차를 직감한 것이다.
“상황 판단이 빠르네? 다들 그렇게 멍청하진 않은가 봐.”
준우는 성재원을 흔들어 보였다.
종이 인형처럼 움직이던 성재원이 준우를 노려본다.
“푸핫! 설마, 날 꾀어 내려고 이 모든 일을 벌인 거야?”
“보다시피.”
“누군진 모르겠지만,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개소리는 협회 조사실 가서 하세요.”
“크큭, 너 따위는 나 절대 못 잡아.”
“이미 잡혀 놓고 무슨.”
“……내기할까?”
누가 도박꾼 아니랄까 봐, 내기는.
준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전준우 씨!”
그때였다.
정한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스스슥-
어느새 준우의 등 뒤에 열린 포탈.
그곳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포탈 생성기?’
거대한 뿔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킹 라이노.
이 던전의 보스인 놈이 갑작스레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용케 놈의 공격을 피하긴 했으나 멱살을 잡고 있던 성재원을 놓치고야 말았다.
‘보스 방과 연결되어 있는 포탈이었나?’
해당 던전이 공략이 안 된 상태이기에, 보스가 살아 있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한데, 그런 보스를 이렇게 활용할 줄이야.
“내가 빠져나갈 구멍 하나 안 만들어 놨겠어?”
준우에게서 풀려난 성재원이 또 다른 포탈을 만들어 냈다.
동시에 킹 라이노가 재차 준우를 노리고 달려든다.
‘놓치면 안 돼!’
정한나가 성재원을 붙잡기 위해 달렸지만, 그 앞을 그의 직원들이 가로막았다.
킹 라이노를 아군이라고 생각했는지, 아까와는 달리 기세가 등등해진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정한나도 헌터는 헌터였다.
비록 전투형은 아니어도 밀릴 리가 없었다.
콰앙!
직원들을 상대하던 정한나의 뒤로 굉음이 울려 퍼진다.
직원 셋을 처리해낸 그녀가 다급하게 그쪽으로 달려갔다.
“저, 전준우 씨!”
“저는 괜찮아요.”
“미안해요! 아까 그놈 놓쳤어요. 어떻게든 잡아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잖아요. 그놈한테 추격자 붙여 뒀으니까,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추격자를 붙여 놨다는… 어, 어머! 피 나요, 피!”
킹 라이노의 뿔에 정통으로 들이받혔다면, 아무리 준우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치명상은 피한 모양.
준우는 정한나에게 강제로 이끌려, 킹 라이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잠시 몸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팀장님하고 협회 헌터들 조금 전에 던전 진입했대요. 일단 여길 벗어난 다음에 그쪽하고 합류하는 게 좋겠어요.”
“저희가 여길 뜨면, 저놈이 다른 사람들 공격할 텐데요.”
킹 라이노의 등장에 투기장 내 사람들이 도망을 치는 중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일반인이며, 놈이 난동을 부리게 뒀다간 그들이 다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희 둘이 함께 덤벼도 상대가 안 돼요. 킹 라이노는 자그마치 C급 보스라구요!”
“저 믿으세요. 아까도 정한나 씨가 안 된다고 했는데, 됐잖아요.”
“지, 지금은 그때랑 상황이 달라요! 방금 공격도 제대로 못 피했잖아요! 무모하게 그러지 말고, 이번엔 제 말 들어요!”
“못 피한 게 아니라, 안 피한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일부러 살짝 빗겨서 맞아 준 거라구요.”
준우가 다시 킹 라이노의 시야로 진입했다.
크게 휘파람을 불자, 아래층으로 향하던 놈이 인기척을 느끼고 다시 방향을 틀었다.
쿠오오오!
놈이 포효하며 거세게 발을 구른다.
또다시 준우를 향해 돌진하기 위해 시동을 거는 거다.
준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놈의 정면에 섰다.
그리고는 조금 전 떠올랐던 칭호 효과를 재차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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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형 몬스터 ‘킹 라이노’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
[ ‘킹 라이노’의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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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킹 라이노도 ‘포식자’ 앞에선 한낱 피식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