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식구
일반적으로 팔콘의 깃털은 갈색이다.
부리는 검은색이며, 밖으로 드러난 다리 역시 마찬가지.
눈동자 색만 제외하면 모든 게 어두운 편이었다.
끼이!
하지만.
우리 집 ‘새’ 식구가 된 녀석은 달랐다.
‘……죄다 은빛이라니.’
저번 주에 태어난 요 녀석은 모든 게 다 은빛이었다. 게다가 부리의 끝부분이 휘어져 있고, 눈매가 팔콘에 비해 부드러웠다.
팔콘과는 다른 품종인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또 닮아 있기도 했다.
‘뮤턴트겠지.’
팔콘의 뮤턴트 형태는 나도 본 적이 없는지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냥 색깔이나 생김새가 다를 뿐일 수도 있었기에, 녀석이 보유한 스킬을 확인한 뒤에나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특성 ‘가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특성의 가족 인지 범위가 증가합니다. ]
[ 가족 구성원 목록 슬롯이 추가 개방됩니다. ]
===
가화만사성 스킬과 이전의 던전들에서 쌓은 경험치로 인해 15레벨이 되었다.
9개의 SP가 쌓여 있는 걸 확인 후, 나는 5개를 가장 특성에 투자했다.
다른 특성이나 스킬의 레벨도 올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SP 1개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뮤턴트와의 친밀도를 올려 주는 오브의 특성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알에서 깨어난 몬스터는 처음 본 대상을 주인으로 인식한다는 속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번 주, 녀석이 막 부화했을 당시.
가족이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2개월이었다.
미심이 때와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더 짧았다.
===
[ ‘은실이’가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됩니다. ]
===
녀석은 금방 우리 ‘가족’이 되었다.
가족 구성원 수 역시 그때보다 늘어서, 가화만사성 스킬로 인한 시간 단축 효과가 증폭된 덕분이었다.
이름은 조금 전 내 눈앞에 떠오른 것처럼, 은실이.
은빛 깃털을 토대로 아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역시나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산다는 철학으로.
‘나중에 아이 낳으면, 아이 이름도 이렇게 지으려나.’
이왕이면 방식이 좀 달랐으면 좋겠다.
나는 부디 아니길 바라며, 도마 위의 당근을 썰었다.
타악-!
당근이 반으로 썰리며 칼이 도마를 때렸다.
은실이의 스킬 교육을 하고 있던 아내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오빠, 손 베인 거 아니지?”
“날 뭘로 보고. 내가 이래 봬도 소싯적에 칼질 좀 해 본 사람이야.”
1회차에 그 칼질로 무수히 많은 몬스터를 잡았으며, 엑시스 부마스터까지 올랐었지.
“푸흡, 오빠가 무슨 소싯적에 칼질을 해 봐? 칼 잡는 손 모양부터 어색한데.”
뭐, 칼질이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있겠나.
나는 베고, 도마 위의 놈들은 썰리면 그뿐이다.
“그냥 내가 할게, 오빠. 우리 남편 예쁜 손가락에 흠집 생길라.”
아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괘, 괜찮다니까. 내가 해 볼게! 당신 은실이 교육하느라 바쁘잖아.”
“교육 거의 다 끝났고, 곧 스킬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대로라면, 내일모레 까망이 훈련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가서 좀 쉬고 있어. 내 걱정은 말고.”
“아무래도 오빠 칼 잡는 거 보니까 불안해서 안 되겠어. 예전에도 한번 손 베인 적 있었잖아?”
“그게 언제 적인데. 이젠 예전의 내가 아니라니까?”
“칼 이리 줘. 또 손 베이고 질질 짜지 말고.”
내가 언제 질질 짰다고 그러는지.
가끔 보면 과장을 너무 지나치게 할 때가 있다.
결국 아내에게 칼을 뺏겼다.
마치 내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도마 위를 응시하는 아내.
“잘 봐, 오빠. 칼은 이렇게 쓰는 거야.”
스윽-
아내의 손가락이 베였다.
손끝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민망한지, 아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 따가워.”
소독약과 연고, 밴드를 찾아야 했다.
내가 막 움직이려던 찰나.
끼이-?
은실이가 부엌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아내의 다친 손가락을 빤히 바라본다.
스스슥-
깃털 색깔과도 같은 은빛 기운이 은실이의 주변에 은은하게 모여들었다가 사라지더니.
“……어라?”
동시에, 칼에 베였던 아내의 손끝 상처가 아물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 오빠! 으, 은실이가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는데?”
“치, 치유 스킬?”
나는 멍하니 은실이를 응시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유유히 부엌 밑으로 다시 내려가는 녀석.
‘팔콘의 기선 제압 스킬이 아니라, 치유 스킬이라고?’
회복된 손가락을 바라보던 아내가 문득 나를 쳐다보았다.
상처가 금세 아물었다는 기쁨도 잠시, 아내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근데, 오빠. 이렇게 되면 큰일 난 거 아냐?”
“큰일이라니?”
“팔콘의 기선 제압 스킬이 있어야, 까망이 훈련이 가능하다면서. 그런데, 은실이가 기선 제압 스킬이 아니라 치유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거잖아.”
당장 내일모레면 멍크와 까망이가 집에 방문한다.
자신만만하게 까망이를 훈련 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훈련에 차질이 생겼으니 그 부분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큰일까진 아닌 것 같고.”
“좋은 수라도 있어? 이제 남은 시간도 별로 없는데…….”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있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내겐 ‘포식자’ 칭호가 있었으니까.
* * *
팔콘이 기본적으로 지닌 스킬은 기선 제압.
상대의 능력치를 하향시키는 디버프 스킬이었다.
하지만 은실이의 경우는 반대로 버프에 속하는 치유 스킬을 갖고 있었다. 보유 스킬이 다른 만큼, 녀석이 뮤턴트라는 게 확실해졌다.
‘까망이 훈련 계획이 살짝 틀어지긴 했어도…….’
치유 스킬은 희귀했다.
C급 이상의 던전에서는 치유 스킬을 보유한 힐러의 수요가 높아지는 것에 반해, 항상 공급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힐러를 놓고 경쟁까지 벌이는 사태까지 발생하겠는가.
길드에서 영입을 제안을 할 경우에도, 힐러들은 해당 등급에 비해 높게 평가됐다. 그 정도로 고급 인력, 아니, 조력(鳥)을 얻은 셈이다.
‘멀리 봤을 때, 오히려 잘된 일이야.’
이건형이 알려준 세 곳의 던전 중 마지막인, D급 던전에서도 필히 은실이의 능력이 유용하게 작용할 터였다.
“오, 오빠! 왔다! 왔어!”
현관 벨이 울리자, 아내가 폴짝 뛰었다.
멍크가 까망이와 함께 도착한 것 같았다.
“나 어떡하지? 너무 떨리는데…….”
“너무 떨리면, 그냥 방에 들어가서 숨어 있어.”
“무슨 소리야! 내 인생에 멍크 만날 기회가 또 어디 있다고!”
어련하시겠습니까.
아침부터 메이크업에 의상까지 풀세팅을 유지하고 계시는데.
“안녕하세요, 사장님.”
현관문을 열자 멍크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매니저와 동행했고, 까망이는 켄넬 안에 있었다.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수선화라고 해요. 지, 진짜 팬이에요.”
뭐가 그리 좋은지, 아내는 너무나 수줍어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다.
“아아! 인스타에서 사진으로만 뵀었는데, 하나도 보정이 안 된 사진들이었나 봐요. 이름만큼이나 엄청 미인이시네요. 연예인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어, 어머! 연예인은 아무나 하나요? 멍크 씨처럼 잘생기고, 재능 있는 분들이나 하시는 거지.”
둘이 무슨 소개팅 왔냐?
내가 한 시간 동안 사진 보정 하는 거 다 봤는데.
“집이 엄청 깔끔하네요. 먼지 하나 안 보여요.”
“항상 이렇게 해 두고 살아요, 워낙 청소하는 걸 좋아해서. 방송에서 보니까 멍크 씨도 취미가 청소라고 하시던데?”
“청소하는 거 엄청 좋아하죠. 요샌 까망이 때문에 도통 정리가 안 돼서 불가능하긴 하지만요.”
항상 이렇게 해 두고 살긴.
멍크가 방문한다고 죽어라 청소만 했던 건, 아마 나만이 알고 있을 거다.
‘참자, 참아. 팬 사인회를 위해, 아니, 우리 가게 매출을 위해서.’
그래, 좋아하는 연예인이, 그것도 세계적인 아이돌이 집에 방문하는 경우가 살면서 몇 번이나 있겠는가.
사실 그런 경우가 한 번만 있어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팬들도 있을 텐데.
‘쩝, 수지가 우리 집에 올 일은 없으려나.’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켄넬 속의 까망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켄넬에서 한번 꺼내 볼까요?”
“그, 그래도 될까요? 혹시라도 까망이가 사장을 물기라도 하면…….”
“괜찮아요. 물려야 진행이 가능한 훈련이니까.”
“물려야 진행이 가능한 훈련……?”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멍크가 조심스레 켄넬을 열었다.
동시에, 나는 포식자 칭호의 효과를 사용했다.
===
< 칭호 : 포식자 - 리미트 >
20레벨 미만의 각성자가 최초로 ‘포식자 팔콘’을 제압했을 때 주어지는 단 하나뿐인 칭호입니다.
* ‘동물형’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5분 동안 공격을 가한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50% 감소시킵니다.
===
팔콘의 기선 제압은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다.
스킬이 적용되면, 10%의 능력치 감소 효과가 발생한다.
반면 내가 가진 포식자 칭호의 효과는 ‘동물형’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국한되지만, 대신 능력치 감소폭이 50%로 더 높았다.
찌직!
내가 손에 간식을 쥐자, 까망이가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간식을 지금 줄 수는 없었다. 이건 훈련의 보상으로, 잘했을 때 칭찬의 용도로만 줘야 했다.
찌찍!
까망이가 폴짝 뛰어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사납게 이빨을 드러낸다.
콰득!
“사, 사장님!”
“오빠! 괘, 괜찮아?”
까망이가 내 손을 냅다 물었고, 멍크와 아내가 화들짝 놀랐다. 특히나 멍크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처음 나를 마주했을 때의 살갑던 모습은 없었다.
돌연변이 오브의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훈련의 효율을 위해 다른 곳에 뒀으니.
“이렇게 간식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사람을 무는 반려몬들은 거의 없어요. 보통 손에 쥐고 있으면 손이나 발, 혹은 코를 이용해 툭툭 건드리는 게 고작이죠.”
물론, 모든 칩멍크가 까망이와 같은 건 아니다.
대부분은 입질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협회에서도 반려몬 허가를 내 줬겠지.
하지만 까망이는 바로 내 손을 물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몬스터들이 갖고 있는 본능 때문이었다.
‘사람에 대한 적대감.’
코마 상태의 몬스터들은 본능마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 경우지만, 간혹 까망이처럼 유독 본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기도 했다.
같은 품종의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도 성향이 다른 것처럼, 까망이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이런 특이 케이스는 평범한 방법으론 훈련이 불가해.’
얕보이면, 언젠가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땐 단순히 무는 것 정도로 안 끝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렇게 물렸다고 해서 겁을 먹고 바로 간식을 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본능이 뛰어난 몬스터들은 사람에 대한 적대감도 높지만, 간혹 멸시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쉽게 말해, 영악한 요 녀석이 사람을 하대한다는 거다.
사납게 굴면 주겠지. 넌 내 밑이니까.
계속 그런 인식을 심어 주면 곤란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어렸을 때는 더욱더.
자칫 이게 습관이 되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찌직!
까망이가 나를 노려본다.
시선이 간식을 쥔 내 손으로 향했지만, 녀석은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 어? 이번엔 물지 않네요?”
다소 놀란 듯 멍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상황에 몇 번씩 더 손을 물렸던 경험이 있었을 터.
“물지 않는 게 아니라, 못 무는 걸 겁니다.”
“왜요……?”
“무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깨달은 것 같네요.”
포식자 칭호의 효과였다.
까망이가 날 물게 됨으로써, 녀석의 능력치가 50% 감소했을 거다.
본능적으로 그걸 느꼈을 거고, 물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1회차에 얼핏 듣고 따라 하긴 한 건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네.’
공격성이 짙은 반려몬을 훈련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그때, 유튜브로 스쳐 지나가듯 봤던 게 도움이 됐다.
칭호 효과를 사용하는 조건이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팔콘의 기선 제압보다 포식자 칭호로 인한 능력치 감소 폭이 컸기에, 학습 효과가 더 빠르긴 한 것 같았다.
찌직-?
다시 간식을 손에 쥐었지만, 까망이는 얌전했다.
오히려 이번엔 물지 않고 기다리기까지 한다.
“대, 대단하시네요. 업계 최고라는 훈련사도 까망이한테 엄청 물렸었는데, 사장님은 고작 한 번 물린 것만 빼고…….”
“앞으로 훈련하면서 몇 번 더 물릴 거예요, 아마. 그래도 업계 최고라는 그분보단 덜 물리겠지만요.”
“그런데, 무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걸 어떻게 깨달은 걸까요? 까망이가 사장님을 물었을 때, 분명 사장님께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시지 않으셨는데…….”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어요. 영업 비밀이라.”
“……아아, 영업 비밀.”
모든 학습은 반복이 중요하다.
반복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혹은 대상을 무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 줘야만 했다.
분명히 또 물 수도 있다.
그때마다 계속 안 된다는 걸 강하게 말해 줘야 한다.
칭찬할 땐 그것 또한 아끼지 말아야 하고.
“잘했어. 너 아주 착한 아이구나?”
나는 그제야 까망이에게 간식을 건넸다.
기다렸다는 듯이 맛있게 잘 먹는 녀석이었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훈련을 한다면, 까망이도 곧 좋아질 수 있습니다.”
“까망이 훈련이 어느 정도 완벽하게 끝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오늘처럼 저희 집에 방문하는 식으로 훈련을 진행하면 한 달 정도, 까망이를 저희 집에 맡겨 주시면 열흘?”
“열흘… 조, 좋아요! 그럼 사장님 믿고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까망이를 위해서요!”
“그렇게 하시죠. 그럼 멍크 씨도 그때 맞춰서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준비요?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 건지?”
이 사람이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
약속해 놓고 그새 까먹었나.
“저희 가게에서 팬 사인회 하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