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 (20/246)

◈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

엑시스 경기권 지사 내 10층 회의실.

그곳에 전역을 하루 앞둔 강선우가 앉아 있었다.

‘나도 이제 민간인이 될 날이 머지않았어.’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이 나는 형식적인 면접.

길드 매니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얼마 전, 임무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구요.”

그는 앞에 놓여 있던 계약서를 구석으로 밀어냈다.

당황한 강선우가 멀어진 계약서를 힐끗 바라본다.

‘뭐, 뭐야?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지?’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해야 했다.

강선우는 애써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예, 예! 해당 던전이 숨겨진 둥지였는데, 제 밑에 있던 소대장이 욕심에 눈이 멀어 던전 안의 마석에 손을 댔습니다. 그로 인해 히든 보스가 출현했고…….”

군에서 일어난 일은 바깥에 잘 새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는 뜻이다.

부대 안에서 말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사실이 달라지기도 하며, 또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했다.

그때 그 사건 역시 대대장과 말을 맞춰, ‘단순 사고’로 합의를 봤다.

자칫 대대장까지 군복을 벗을 만한 일이었기에, 무난하게 합의가 진행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길드 매니저가 왜 그 일에 대해 묻는 것인지.

그 의도는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마석에 손을 댄 소대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도, 도망을 치는 과정에서 히든 보스에게 가슴을 관통당해 사망했습니다.”

“군에 복무하는 오늘까지, 어떤 사명감을 갖고 계십니까?”

“저, 저 말입니까? 사명감이라, 사명감…….”

생각해 본 적 없는지, 강선우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길드 매니저가 대답을 대신했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켜내는 것.”

“……?”

“저희 엑시스 공격대원들의 사명은 그렇습니다.”

투욱-

길드 매니저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강선우 앞에 내려두었다.

오늘 아침, 엑시스 경기권 지사로 배송 온 택배 상자.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나가 전사의 수정구’였다.

‘저, 저건, 설마……?’

강선우의 볼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사이.

수정구 속 장면들은 재생되고 있었다.

무능한 그의 모습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1소대장! 지금 멍때리고 있을 때야? 지휘관인 날 지켜야 할 거 아냐!

- 병사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지휘관이 살아 있어야, 너희들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거 몰라? 빨리 저놈을 막아!

강선우는 준우의 만류에도 한 치의 고민 없이 마석을 취했으며, 그로 인해 히든 보스가 등장했다.

또한. 지휘관으로서 통솔력을 잃었으며, 수많은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무엇보다 소대장을 자신의 방패 삼아 죽게 만들었다.

‘그, 그때 던전에서의 일이 어떻게 여기에……?’

사색이 된 강선우가 수정구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가 변명을 하기도 전에, 매니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선우 씨는 저희 공격대의 사명과는 괴리감이 있는 분이시더군요.”

“그, 그게 사실은…….”

“죄송합니다만.”

“……?”

“영입 건은 없던 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길드 매니저가 수정구를 챙겨 자리를 떴다.

멍하니 앉아 있던 강선우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를 쫓아 나갔다. 회의실 밖에는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남자가 서 있었다.

“너는 어디서 저런 병신 같은 새끼를 스카우트해선,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어!”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정신 못 차리지? 일 똑바로 안 해?”

매니저가 스카우터를 갈구기 시작했다.

마치 강선우에게 보란 듯이.

“강선우 씨, 전역 아직 안 했지?”

“예, 옙! 내일 전역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카우터에게 수정구를 건네는 매니저.

그가 인상을 구긴 채 말했다.

“수정구는 ADT 헌병대로 보내. 범죄자 새끼 증거라고. 근데, 이거 헌병대로 보내는 게 맞긴 하냐?”

“제가 정확히 알아보고 신속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에휴,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왜 여기 와서 수다를 떨고 자빠져 있는지 모르겠네.”

“그, 그러니까요…….”

번명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려는 건지. 강선우가 입을 오물거렸으나, 길드 매니저는 무시하고 뒤돌아섰다.

“아, 참!”

“예, 선배님!”

“택배 보내온 사람 있잖아. 그 사람 누군지 좀 알아봐 봐.”

익명으로 온 택배인지라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수정구를 통해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인지했다.

그가 D급 히든 보스를 혼자서 처리했다는 사실이었다.

“알아본 뒤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스카우트해야지.”

이번엔 꼭 제대로 된 사람을 스카우트하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국방부에 신고 전화를 거는 스카우터였다.

* * *

고속도로 위, 달리는 차 안.

수재혁은 김 비서에게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바로 어제 엑시스 경기권 지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알고 보니 그 택배를 보낸 사람 이름이 전준우였라고 하더라?”

“그렇습니다. 동명이인인가 했는데, 조사해 보니 저번에 말씀하셨던 부마스터님의 매제분 되시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할까요? 곧 경기권 스카우터들이 전준우 씨한테 달려들 텐데. 부마스터님께선 서울권으로 데려오려고 그러셨던 것 아닙니까?”

준우가 경기권에 입사를 하게 되면, 준우의 인사권은 경기권 책임자인 지사장에게 주어지기에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재혁은 태연했다.

아무런 걱정 없다는 듯이.

“그냥 둬. 어차피 영입 못 해. 영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그걸 알면 바로 해고시켜 버릴걸? 정작 당사자도 엑시스 입사에 큰 뜻을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마스터, 아니, 회장님과 이야기는 나눠 보셨습니까? 전준우 씨 영입에 대해서.”

“해 봤지.”

“회장님께선 뭐라고 하셨습니까?”

“부마스터직 내려놓고 사직하래.”

“……저도 자세한 내막까진 몰라서 그런데, 혹시 회장님과 전준우 씨 사이에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는 것입니까?”

“나도 그렇게까진 생각 안 했는데, 비슷한 거 같더라고.”

다시 생각해 봐도 끔찍했다.

전준우라는 이름 세 글자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회장실 전체가 금방 타 버릴 만큼 열기가 차오르지 않았던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아버지를 설득할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 일단, 그때까진 다른 길드나 협회로 가지 못하게 붙잡아 둬야 해.’

아까 전, 김 비서의 이야기에 따르면 준우는 D급 히든 보스를 혼자서 처리한 능력자였다.

그에 따른 잠재력과 성장도를 기대했을 때, 이대로 준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김 비서, 저번에 내가 부탁했던 일은 다 끝냈어?”

“전준우 씨에게 보낼 무기 말씀이시죠? 그거라면 이미 무기고에 선별해 뒀습니다. A급 무기 중엔 가장 뛰어난 것들로…….”

“A급?”

“예, 그렇습니다. 저번에 부마스터님께서 A급으로 선별하라고 하셔서…….”

“아아, 내가 그랬었지.”

“왜 그러십니까?”

잠시 고민하던 수재혁이 이내 입을 열었다.

괜히 시선은 창밖 먼 곳을 응시하면서.

“혹시 무기고에 S급도 있나?”

“딱 하나 들어온 게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보내 줘.”

“S급 무기를 말입니까……?”

파격적인 그의 말에 김 비서가 백미러를 살폈다.

그녀의 시야 안의 수재혁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이렇게까지 투자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준우 씨가 부마스터님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괜찮아. 꼭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니까.”

“그럼……?”

“곁에서 우리 선화 잘 지키라고. 그러라고 주는 거지.”

백미러 속 수재혁이 애꿎은 콧등을 긁적였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 하는 그의 행동이었다.

“부럽습니다.”

“뭐가?”

“부마스터님 여동생분 말입니다. 저도 부마스터님 같은 오빠 하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차, 참 나. 이게 뭐 별거라고.”

애써 김 비서의 시선을 피하는 수재혁.

콧등을 긁적이는 그의 손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팔콘의 알은 이미 던전 안에서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친 상태였다. 1회차의 기억에 의하면, 길어도 사흘 안에 부화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태 부화를 하지 않고 있단 말이지.’

미동 없는 팔콘의 알 앞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벌써 며칠째, 집 청소만 하는 중이다.

“어머, 그새 또 먼지가 쌓였네.”

“안 쌓였어. 거기 좀 전에 닦았잖아.”

“오빠 눈엔 이 먼지가 안 보여?”

“안 보여.”

진짜 안 보인다.

가게 영업 시간을 제외하고 청소만 하는데, 먼지가 쌓일 틈이 있을 리가.

‘이게 다 멍크 때문이다.’

다음 주에 멍크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까망이의 훈련에는 팔콘이 필요했고, 아무래도 비좁은 가게보단 집이 나을 것 같아서 이곳으로 방문해 달라고 했었다.

그게 문제였다.

아내가 한 달에 한 번 할 법한 대청소를 며칠째 연속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보면 집에 무슨 귀빈이라도 오는 줄 알겠네.”

“귀빈이지. 우리 집에 방문한 첫 연예인인데!”

하긴. 일반적인 가정에 연예인이 방문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연예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나저나, 이 아이는 언제 볼 수 있는 걸까?”

청소를 마친 아내가 테이블 위의 알을 살폈다.

얼마 전, 숨겨진 둥지에서 구해 온 팔콘의 알이었다.

저거 때문에 또 던전 다녀왔다고 혼날 뻔했지만.

바로 멍크의 가정 방문 소식을 알리자, 다행히 화제는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보통 사흘 정도면 부화한다고 했는데.”

“이미 사흘은 더 지났잖아?”

설마, 대형 팔콘과 전투할 때 문제라도 생긴 걸까.

그때 가방에 넣어 뒀었다. 워낙 알이 단단해서 깨지진 않았으나, 사실 안쪽의 사정까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빨리 보고 싶은데. 나 새를 키워 보는 거는 처음이거든.”

“나도 그건 처음이야, 여보.”

아내가 설렘에 눈을 반짝였다.

그러다 문득 갑자기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 뭐 하려고?”

“저 아이가 아무래도 사랑이 부족해서 늦게 부화를 하는 것 같아. 오빠 말대로 보통 사흘이면 부화를 한다면서? 근데, 여태 아무런 변화가 없잖아?”

아내가 가져온 건 빨간색 목도리와 산타 모자였다.

산타 모자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썼던 걸로 추정.

그리고, 손에 쥔 목도리는 며칠 전부터 아내가 틈틈이 만들어 완성한 것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마당에, 저걸 누굴 주려고 만드나 했었는데.

‘……나 주려고 만드는 줄.’

조금 기대를 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건 아니었다.

아내는 목도리로 알 주변을 감싸고, 산타 모자를 씌웠다.

“어때, 오빠? 귀엽지?”

“나름 귀엽긴 하네.”

“근데 왜 계속 웃어? 이상해?”

“이상하다기보단…….”

모양새가 좀 우습긴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웃음이 난 건 아니었다.

노력하는 아내의 모습이 기특해서랄까.

“사소하고 작은 거라도 진심을 다 하면, 아이도 그 마음을 간직한 채 태어난다고 예전에 산부인과 선생님이 그랬어. 태교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태교라.

세상에 알 태교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내의 목소리에선 작은 울림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뒤쪽으로 물러났다.

옛 생각에 잠겨 있는 아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내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소를 띠고는 있지만, 뭔가 툭 하고 건들면 눈물을 흘릴 것 같기도 했다.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땐, 저보다 더 잘했었으니까.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고, 아내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네. 얘네들이라도 있어서.’

소파 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잠들어 있는 말순이와 미심이가 보였다.

이 아이들 덕분에 그나마 아내가 유산의 아픔을 빨리 잊어 가는 것 같았다.

마치 그때의 불행을 다시 행복으로 채워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바라보는 아내의 뒷모습이 이전보다 행복해 보이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아가 1회차의 모습보다도.

‘마음의 상처도 천천히 치유해 가면 되는 거야.’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단란하게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라면 말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 나도 아빠가 되어 있겠지.

“어, 어?”

그때였다.

알을 바라보고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아, 알에 금이 갔어! 곧 부화하려나 봐!”

“뭐……?”

“내 태교가 성공한 거 같아! 우와! 이게 되네?”

“그, 그게 진짜 된다고?”

정말 아내의 태교 방식이 효과가 있던 건가.

어쩌면, 아내가 가진 금지옥엽 스킬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능력이 있는 걸지도.

“어디 봐 봐.”

나는 서둘러 알의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씩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녀석.

“……넌 누구니?”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팔콘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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