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포식자 (19/246)

◈ 포식자

히든 보스 포식자 팔콘은 D등급.

녀석이 사용하는 간파 스킬의 등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당 스킬은 동급 미만의 은신 스킬을 간파할 수 있으며, 만약 동급 이상일 시 간파가 불가능했다.

‘중급 은신은 D등급의 스킬.’

게다가.

중급이상의 은신 스킬부터는 추가 효과가 붙는다.

은신 상태에서 모든 능력치가 1.5배 상승한다는 것.

‘공격 시 은신이 풀려 버리게 되면 1회성이겠지만, 풀리지 않는다면 계속 상향된 능력치를 유지할 수 있어.’

준우는 눈앞에서 허둥대는 팔콘을 응시했다.

지금 상태라면 은신 상태가 유지되는 10분 동안, 놈을 제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녀석이 나를 보지 못한다면, 시선류 스킬도 통하지 않을 거야.’

우연히 놈의 시선이 준우에게 닿았대도, 은신 스킬이 무력화되는 일은 없었다. 은신 스킬은 준우가 아닌 미심이가 사용하는 것이었으니까.

‘미심이만 가방 속에 잘 숨기면 돼.’

미심이가 어떻게 D등급의 은신을 사용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힐 방법은 없었다.

지금으로선 가방 속의 미심이가 품고 있는 마석이 그 힘의 원천이 되었다고 추측할 뿐.

“미심아, 아까 화냈던 거 사과할게.”

캬앙-?

“잘했다고. 너 오늘 집에 가면 특식이다.”

캬아앙!

준우와 미심이와의 대화를 들은 걸까.

허둥대던 팔콘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래 봤자, 우리는 보이지 않을 테니.’

예상대로 녀석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저 멀리 기어가고 있는 강선우가 있는 쪽이었다.

쿵! 쿵!

팔콘이 거대한 발을 움직이며 강선우를 향해 움직였다.

계속해서 쫓던 마석마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주변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왜, 왜 계속 나만 쫓아오는 거야! 마석은 나한테 이제 없다고!”

강선우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심함이 준우에겐 기회였다.

놈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있을 때가 공격하기엔 최적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무조건 급소만 노린다.’

팔콘과의 거리가 조금 벌어졌지만,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준우는 숲의 신발 특성을 사용해 재빨리 몸을 날렸다.

목적지는 팔콘의 몸통 위.

순식간에 올라탄 준우가 놈의 목을 노리며 내달렸다.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려서,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돼. 은신이 풀리면, 승산이 없다.’

상대는 D급 히든 보스.

D급 레이드 보스와 다를 게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푸욱-!

마력이 주입된 준우의 칼이 놈의 목을 파고들었다.

이전의 던전에선 힘을 비축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끼이이이익!

팔콘이 포효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이었다.

‘젠장, 이걸로는 안 되는 건가!’

어지간한 몬스터들이 그렇듯 급소인 목을 노렸음에도 불구,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했다.

펄럭-!

팔콘이 날개를 움직여 몸을 띄운다.

보이진 않아도, 느낄 수는 있었다.

자신의 몸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공중전은 좀 까다로운데.’

순식간에 높이 떠오른 팔콘.

준우는 놈의 몸 위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공중인지라 중심 잡기가 힘든 탓이다.

‘급소를 다시 노려 보는 거야!’

위태롭게 움직여 다시금 자세를 다잡은 준우.

그가 또 한 번 팔콘의 목을 찔렀다.

끼이이익!

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준우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급소를 찔렀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돌겠네! 언제까지 찔러야 하는 거야!’

하지만 좀처럼 놈은 죽질 않았다.

수십 번은 더 찌른 것 같은데, 아직까지 팔팔했다.

오히려 전보다 더 강하게 공중에서 몸을 흔들어 대고 있지 않은가.

‘좀 더 쓸 만한 무기만 갖고 있었어도…….’

문득 무기를 선별해서 보내 준다던 수재혁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것만 미리 받았어도, 이렇게까지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거다.

‘이왕 보내 줄 거면, 빨리 좀 보내 주지!’

날개를 잘라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놈의 날개가 워낙에 단단해 그건 무리였다.

더군다나 이런 주방 칼로는 시도조차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푸욱! 푸욱! 푸욱…….

준우가 얼마나 더 급소를 향해 칼을 찔렀을까.

팔콘이 더욱 분주하게 날개를 펄럭였다.

고통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자.

놈을 제압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근데, 이거 너무 높아지는데.’

문제는 놈이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버렸다는 것.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지상에서 기어가고 있는 강선우가 개미처럼 보일 정도다.

만약 여기서 떨어진다면, 최소 중상을 입을 수도 있을 만큼.

‘설마, 날 떨어뜨리려고……?’

아니나, 다를까.

팔콘이 몸을 반대로 뒤집었다.

“으학!”

가까스로 놈의 깃털을 잡았으나.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고작이었다.

‘떠, 떨어진다!’

팔콘이 몸을 거세게 흔들어 대는 것과 동시에 준우는 잡고 있던 놈의 깃털을 놓치고야 말았다.

준우와 거리가 조금 벌어진 그 순간.

놈이 발악하듯 펄럭이는 날개가 준우를 후려치고 말았다.

“크윽!”

재빨리 가드를 올려 충격을 완화시키긴 했지만, 팔콘과의 거리가 너무나 벌어져 버렸다.

숲의 신발 특성 범위에 닿지 않는 거리였다.

준우의 몸이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바람마저 날카롭게 느껴지는 속도.

이대로 지면에 부딪힌다면, 전투 불능 상태가 될 것임엔 분명했다. 그 이후엔 결국 팔콘의 먹이가 되어 버릴 테고.

‘정신 차리자.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집에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불행을 안겨 주고 싶지는 않았다.

공중전이 까다롭기는 해도, 1회차에 숱하게 경험했던 전투였다.

제법 크긴 하지만 고작 새 한 마리와 싸우다가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일단, 착지부터 안전하게 하고.’

지상의 울창한 나무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준우는 숲의 신발을 사용해 나무 위에 안착했다.

‘이제 문제는 저 위에 있는 놈인데.’

쉬지 않고 찔렀던 준우의 칼질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겁에 질렸는지는 몰라도 놈이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숲의 신발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도망을 칠 수도 있었다.

녀석이 몸을 사리고 있는 이때라면, 충분히 마석을 가지고도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하지만 준우는 이렇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거의 다 끝나 가는 마무리 단계이지 않은가.

승기는 이미 잡았다.

게다가 놈은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황.

‘놈을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게 만들어야 돼.’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준우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투욱-

미심이에게 마석을 뺏어서, 그걸 바닥에 던졌다.

준우의 소유를 벗어난 마석은 은신이 풀린 상태.

캬앙! 캬앙! 캬앙!

반짝이는 걸 뺏겨 버린 미심이가 반항하듯 짖어댔다.

잠시나마 소중했던 마석인지라, 목소리가 애처롭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되찾아올게.”

준우는 미심이를 어쩔 수 없이 힘으로 잡아 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석을 가지러 튀어 나가면, 팔콘의 먹이가 되어 버릴 테니까.

‘온다!’

바람 소리가 강해진다.

지면의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

파앗-!

준우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숲의 신발을 사용해 재빨리 마석부터 수거한 뒤.

머리 위 놈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약 20m.’

숲의 신발을 사용할 수 있는 거리는 충분했다.

지면을 박찬 준우가 이번엔 놈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끼이이이익!

낚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걸까.

팔콘은 늦게나마 날개를 펄럭여 댔다.

또다시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는 녀석.

“날면 뭐 해. 곧 추락할 텐데.”

준우가 놈의 목덜미로 향했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놈의 급소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칼을 찔러 넣자.

[ 해당 던전 최초로 ‘포식자 팔콘’을 제압했습니다. ]

[ 칭호 ‘포식자’를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이윽고 거대한 그놈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 * *

던전 초입, 절벽 사이에 만들어진 다리.

2소대와 3소대가 염력으로 주변의 나무와 돌을 움직여 유지하고 있는 다리였다.

하지만 그 다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조금 전, 던전 내부 쪽에서 들려왔던 소리 때문이었다.

“다들 바짝 긴장해!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대장 강선우가 1소대와 함께 던전 내부로 진입했다.

혹시나 내부에 민간인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한데, 그쪽에서 몬스터와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1소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직접 살펴보는 수밖에 없었다.

“소, 소대장님!”

“무슨 일이야?”

울창한 나무들이 있는 곳에 막 진입했을 무렵.

한 병사가 하늘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 저기, 뭔가가 오고 있습니다!

“온다니? 뭐가… 흐이익!”

저 멀리 2소대장의 눈에 비친 그것.

거대한 팔콘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최소 레이드 보스 아냐?’

덩치로 보아 충분히 그럴 만했다.

만약 그렇다면,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 있는 소대장 둘은 E급.

나머지 일반 병사들은 F급이었다.

일반 던전에 레이드 보스가 등장할 리는 없겠지만, 그와 비슷한 힘을 가졌다면 필히 전멸일 것이다.

“다, 다들 흩어져! 어서 피해!”

염력 스킬을 사용해 하강 속도라도 줄여 보려고 했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녀석을 잡기엔 이미 늦었다.

쿠우우웅!

거대한 몸이 지상에 떨어졌다.

흙먼지가 일며, 시야가 흐릿해진다.

“콜록, 콜록! 다, 다들 무사해?”

“켁, 켁… 2소대 이상 없습니다!”

“3소대도 이상 없습니다!”

흙먼지가 걷히고 분대장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도 다들 잘 피한 모양이었다.

꿀꺽-

2소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시야가 트이자, 눈앞에 떨어진 놈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레이드 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대한 녀석.

‘미, 미치겠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놈은 잔뜩 독이 오른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을 잡아먹을 것처럼.

‘싸워야 하나……?’

2소대장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투를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레이드 보스급이라면, 자칫 주변의 일반 병사들이 죽을 수도 있다.

‘그, 그럼 도망쳐야 하나?’

중대장과 1소대는 아마 이놈에게 당한 것 같았다.

한데, 아주 만약 살아 있다면?

살아서 부대에 복귀를 한다면?

‘재수 없으면 징계를 받을지도 몰라! 젠장!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시련을!’

괜히 3소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하느님. 부디 제게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2소대장이 목에 걸린 십자가를 쥐고 기도했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기라도 한 것일까.

스르륵-

아무것도 없었던 팔콘의 머리 위.

흐릿하게나마 사람의 신형이 보였다.

“어어……?”

흐릿하던 준우의 신형이 뚜렷해졌다.

동시에 2소대장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놈 죽었으니까.”

“……오오, 할렐루야.”

준우가 피식 웃으며 팔콘의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저 멀리 한 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어오는 강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동료를 방패 삼아 목숨을 부지한 쓰레기 같은 놈.’

강선우가 소대장을 방패 삼는 걸 멀리서나마 보았다.

1회차에도 아마 그런 식으로 목숨을 연명해 가며, 겨우 여기서 살아남았을 것이리라.

준우가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더라면 아마 구할 수도 있었을 거다.

다만, 의식을 잃은 병사들을 숨겨 주느라 미처 그럴 여유까진 없었던 게 안타까울 뿐.

‘저런 머저리 같은 놈이 또 엑시스에 입사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장인어른과 형님.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운영하는 길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내를 위해서라도 그곳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걸 준우는 원치 않았다.

거리가 가까워진 강선우와 준우의 눈이 마주쳤다.

강선우는 준우의 시선을 무시한 채, 병사들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뭣들 해! 들것부터 가져와야 할 거 아냐!”

“목소리 줄여요. 뭘 그리 잘했다고 큰소리야.”

“뭐, 뭣……?”

“당신 때문에 죽어 나간 사람이 몇인데.”

준우가 강선우의 발을 살짝 건드렸다.

부축을 받던 그가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쿵!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강선우는 냅다 바닥에 코를 들이받았다.

바닥의 흙이 코피로 젖었고, 들어 올린 얼굴은 흙과 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이, 이런 썅!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이쿠, 이건 실수.”

웃으며 뒤돌아선 준우가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마석 말고, 이곳에서 얻은 또 하나의 전리품.

‘그리고 이건, 당신의 죄를 증명할 증거.’

사용자가 봤던 것들을 기록하는 ‘나가 전사의 수정구’.

그곳엔 1시간 동안 준우가 보았던 모든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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