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함정 (17/246)

◈ 함정

‘곧 공병 부대가 도착할 터.’

평소라면 던전 내 몬스터들을 일일이 상대했겠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시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자칫 공병 부대가 보스를 처리하기 위한 포석을 마련해 주는 꼴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팔콘의 알. 최대한 빨리 그것만 가지고 나가는 거야.’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지 않고, 전투를 피한 뒤.

보스인 ‘나가 전사’에게 직행하여 팔콘의 알을 얻기 위한 조건만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캬앙-?

가방을 열자, 미심이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답답했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털어 대는 녀석.

“네가 날 좀 도와줘야겠다.”

은신 스킬로 몸을 숨긴다면, 몬스터들의 눈을 피해 보스까지 있는 곳까지 달려가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미심이가 은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하루 세 번이다.

지속 시간이 회당 1분이기에, 지금으로서는 총 3분 동안만 은신 상태로 이동이 가능한 셈이었다.

‘빠르게 보스를 찾기 위해선 지속 시간을 늘려야 해.’

마력이 전부 소진되지 않는 한, 숲의 신발 특성은 계속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속시간이 최소 10분 이상은 필요할 것 같았다.

“미심아, 이거 한번 먹어 볼래?”

나는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열흘 전, 소금물에 담가둔 다섯 개의 열매였다.

< 붉은 하늘의 열매 >

성장을 촉진시켜 주는 신성한 열매.

일반 하늘의 열매보다 효과가 매우 뛰어납니다.

! 복용 효과는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운 좋게 최초 보상으로 얻어 낸 ‘보약’.

무려 스킬 레벨을 한 단계 올려 주는 효과를 지녔다.

캬앙!

열매 하나를 꺼내자, 미심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소금물에 담가 둔 탓에 짠 냄새가 심해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먹고 싶은 생각이 영 없는 모양.

“내가 가족들 주려고 얼마나 힘들게 얻어 낸 건데. 몸에 좋은 거니까, 먹어.”

나는 열매를 반으로 갈랐다.

열매 안의 과즙이 터져 나오며, 짠 냄새마저 없앨 만큼의 달달한 향기가 퍼졌다.

캬앙-?

미심이가 다시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한입에 그걸 집어삼켰다.

“사실, 맛은 별로 없을 거야.”

단맛이 짠맛을 잡아 주긴 하겠으나, 그리 조화로운 맛은 아닐 것이다.

캬앙!

역시나 맛은 없었는지 미심이가 날 노려보았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쓴 법.

그래도 용케 뱉지 않고 삼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꿀꺽-

열매가 완벽히 미심의 목 안으로 넘어간 순간.

녀석의 몸 주변으로 붉은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붉은빛은?”

내 기억 속엔 열매 복용 시 빛이 난다는 효과는 없었다.

나 역시 이전에 해당 열매를 먹어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의 미심이처럼 몸에서 붉은빛이 나진 않았다.

[ 미심이의 ‘은신’ 스킬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 미심이의 성장 정도가 최대치에 도달합니다. ]

[ 미심이가 ‘변이’ 상태에 돌입합니다. ]

“변이……?”

홀로그램이 말해 주듯, 붉은빛은 미심이가 변이 중이라 그런듯했다.

하지만, 1회차 당시에도 반려몬 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미심이가 가족 구성원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인가.

가화만사성 스킬 설명에 따르면, 가족들은 서로 교감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이것도 성장의 일부일지도.’

일단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몇 번 더 겪어 본다면 모를까,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미심이가 당신에게 전용 스킬 은신을 사용합니다. ]

[ 은신 효과는 5분간 지속됩니다. ]

스킬 레벨이 오른 덕분에 지속 시간이 충분해진 상황.

나는 숲의 신발을 사용해 단숨에 보스를 향해 내달렸다.

* * *

해당 던전의 보스가 위치하는 장소는 붉은 나뭇잎을 가진 거대한 나무의 아래다.

던전 내 가장 큰 나무이기도 하며, 나뭇잎 색깔 또한 상대적으로 특이했기에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5분 좀 안 걸린 것 같긴 한데.’

던전 내 지형이 변경된 탓에 나무를 찾는 데 시간이 조금 소요됐다.

하지만, 미심이의 은신 스킬로 인해 몬스터와 전투를 하지 않고 이곳까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숲의 신발 덕도 충분히 봤다.

빠른 발 특성으로 인해 이동 속도만큼은 C급 헌터와 맞먹는 수준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추릅-

나무 아래, 나가 전사가 혀를 날름거렸다.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녀석이 맛있는 걸 먹는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다.

근처에 인간이 나타났다면, 아무리 수면 중이라도 감지를 했을 터.

‘하지만, 내가 아직 은신 상태라 감지 못할 테고.’

그래도 흉측하게 생긴 손에는 삼지창이 쥐어져 있었다.

언제라도 적을 발견하면 창을 휘두를 수 있도록.

‘선빵필승.’

무조건 이기리란 법은 없어도 유리한 건 사실이었다.

비록 공격 시에 은신이 풀리겠지만, 선빵은 확실히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우웅-

나는 가방에서 꺼낸 주방 칼에 마력을 주입시켰다.

그리고는 단숨에 수면 중인 녀석을 향해 내달렸다.

푸욱-!

망설임 없이 나가 전사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어차피 몰래 선빵 치는 거, 이왕이면 급소를 노렸다.

쿠아아악!

하지만 녀석은 죽지 않았다.

아직 체력이 남았는지 손에 쥔 삼지창을 허공을 향해 휘둘러 댔다.

휘익! 휘익! 휘익!

그러나 죄다 헛방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전혀 나를 노리지 못하고 있었다.

커다란 뱀의 꼬리 역시 주변을 공격하고는 있었으나, 역시나 엄한 곳에 휘둘러 댈 뿐 영양가가 없는 행동들이었다.

쿠오오오!

뭐가 그리 분한지 포효하는 나가 전사.

선빵을 치고 몇 걸음 뒤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는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저 녀석, 왜 저러지?’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왜 공격을 안 하는 걸까.

어쨌거나 내겐 좋은 상황이었다.

나가 전사에 애꿎은 곳에 힘을 낭비하고 있었으니.

‘어라?’

다시금 공격을 가하기 위해 주방 칼을 움켜쥔 찰나.

나는 내 손이 아직도 흐릿한 상태라는 것을 인지했다.

이것은 즉.

아직 은신 상태가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내 눈에는 흐릿하게 보일지라도.

나를 제외한 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공격을 가했는데도, 은신 상태가 풀리지 않았다?’

조금 전의 홀로그램을 떠올렸다.

미심이가 내게 은신을 사용했을 때의 홀로그램.

[ 은신 효과는 5분간 지속됩니다. ]

공격 시 해제된다는 문구가 없었다.

설마 이것도 은신 스킬 레벨이 오른 덕분일까.

‘은신 스킬은 레벨이 오르면, 지속 시간만 증가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몬스터의 경우는 다른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미심이가 뮤턴트이기에 그런 걸 수도.

아무튼.

중요한 건, 나가 전사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푸욱! 푸욱! 푸욱!

나는 나가 전사의 주변을 돌며, 녀석의 급소 곳곳에 칼을 찔렀다.

쿠아아악!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니, 녀석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치껏 위치를 파악해 반격을 하려고 하면, 숲의 신발을 사용해 멀찍이 물러나면 그만이었다.

‘이거 원, 묶어 놓고 패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네.’

E급 던전의 보스지만, 보스는 보스다.

그런 보스를 이토록 쉽게 죽일 수 있게 될 줄이야.

털썩-

기다란 뱀의 꼬리가 먼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과 머리마저 떨어진다.

숱하게 칼을 찌른 결과였다.

[ 보스 ‘나가 전사’를 제압했습니다. ]

[ 공략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나는 나가 전사의 사체를 살폈다.

살짝 기대했건만, 숲의 신발과 같은 효율 좋은 전리품은 드랍되지 않았다.

‘아쉽긴 해도 뭐, 팔콘의 알이 목적이었으니까.’

효율이 좋은 건 아니지만, 사체 안에서 아이템을 하나 얻기는 했다.

< 나가 전사의 수정구 >

거창해 보여도 그리 엄청난 건 아니었다.

사용을 하게 되면, 1시간 동안 사용자가 바라보았던 모든 장면들을 수정구 속에 기록시켜 주는 아이템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1시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저장할 수 있게 해 주는 거다.

보통 전자 기기가 먹통인 상급 던전에서 협회나 경찰이 탐구 혹은 수사 목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이제 슬슬 팔콘의 알을 구하러 가 볼까.’

던전이 공략되면서 코마 상태의 몬스터들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은 극히 드물다.

아마 둥지를 지키는 팔콘들도, 다른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소멸했을 터.

그러나 방심해선 안 된다.

이 던전이 동급 던전 중 난도가 높기로 소문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팔콘의 둥지 안에 있는 알을 빼내게 되면, 숨어 있는 보스가 등장하게 되지만…….’

나로서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히든 보스.

타 던전에 비해 특수한 경우이자, 던전 이름이 ‘숨겨진 둥지’인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히든 보스를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알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했다.

‘바로, 이걸 사용하는 거지.’

사체에서 얻은 아이템은 수정구가 전부지만, 공략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이 하나 더 있었다.

< 팔콘의 알 모형 >

내가 필요로 했던 아이템.

이 모형을 팔콘의 알과 바꿔치기할 생각이었다.

* * *

울창한 나무들이 즐비한 지점.

나는 고개를 올려다, 나뭇가지 사이를 살폈다.

팔콘의 둥지가 그곳들에 다수 놓여 있었다.

모든 나무에 둥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던전 리셋까지 40분 정도 남았나.’

최대한 빨리 알만 바꿔치기한 뒤,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파앗-!

지면을 박찬 나는 한 그루의 나무 위로 올라섰다.

팔콘의 둥지 안, 다섯 개의 알이 눈에 들어왔다.

“……!”

보통 팔콘의 둥지에는 여섯 개의 알이 존재했다.

한데, 여긴 다섯 개의 알과 다른 것 하나가 들어 있었다.

‘마석이잖아?’

상급 마석이었다.

품질로 보아, 최소 4억의 가치가 있는.

낮은 확률이지만 간혹 던전에서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그 확률은 지형이 변경된 던전 속에서 상승하는 경우가 있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같을 때 상급씩이나 되는 마석이…….’

하지만 가져갈 수가 없었다.

둥지의 알은 모형으로 바꿔치기를 할 수 있으나, 마석은 그게 불가능했다. 마석을 빼내는 순간, 히든 보스가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함정 같은 거지.’

내가 히든 보스를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된다면, 당연히 마석을 손에 쥐었을 거다.

그랬다면 굳이 번거롭게 나가 전사를 처리한 뒤, 알 모형을 구하지도 않았을 거고.

‘마석 때문인지,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막 엑시스 공격대에 들어갔을 무렵.

당시 내가 사수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 내가 예전에 피스 길드 공격대에 있었을 때, 마지막 임무 장소가 숨겨진 둥지였거든? 혹시, 거기 히든 보스 등장하는 거 알아?

- 히든 보스요?

- 팔콘의 둥지에서 마석이 발견됐었는데, 공격대장이 그걸 손에 딱 쥐니까, 갑자기 머리 위에 비행기만 한 대형 팔콘이 나타나더라고!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내가 직접 히든 보스와 전투를 해 본 결과, 비행기만 하다는 건 조금 과장되긴 했다.

하지만, 그만큼 강한 녀석임은 분명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돈도 좋지만,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당시 공격대장도 마석을 목적으로 던전 공략에 참여했다가 함께했던 부대장과 대원들 일부를 그곳에서 잃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공격대장이었던 그가 던전 공략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이지.’

나는 둥지에서 알을 빼낸 뒤, 모형으로 바꿔치기했다.

경험상 이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면 차마 히든 보스가 알아차리지 못할 터.

팔콘의 알도 챙겼겠다.

목적을 이뤘으니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빠르게 발을 움직인 나는 던전 밖을 향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이곳을 향해 군인들이 다가오기 전까지만 해도.

‘던전은 공략됐는데, 왜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뒤늦게 던전에 도착한 공병 부대였다.

저 앞의 외진 곳에서, 장교로 보이는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넘으며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지난날의 회상 때문인지,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제발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나네.’

그들과 거리가 좁혀지자.

대위 직급을 달고 있는 자의 손에 쥐어진 뭔가가 보였다.

‘그때 공격대장이었다던 그놈 말고, 또 여기서 마석을 탐내는 놈이 나타날 줄이야.’

꽤 강한 빛을 뿜어 대고 있는 그것.

마석 탐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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