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겨진 둥지
멍크와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뒤, 대화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딱히 들을 필요가 없기는 했다. 멍크가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왔는지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품에 안고 있는 까망이 때문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까망이의 교육과 훈련이 목적이었다.
“저 아이, 그러니까, 미심이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훈련사 말로는 뮤턴트는 훈련시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영상 속의 미심이는 보호자분 말씀을 곧잘 듣더라구요.”
“훈련을 잘 시켰으니까요.”
“미심이는 뮤턴트 아닙니까?”
“보시다시피 뮤턴트죠.”
“그런데, 어떻게 훈련을……?”
말을 이으려던 멍크가 애써 뒷말을 삼켰다.
훈련사도 하지 못하는 뮤턴트 훈련법이라면, 그만큼 고급 정보라고 인지했을 터. 대놓고 그걸 알려 달라는 게 염치가 없어서일 것이다.
멍크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가 품에 안고 있던 까망이와 눈이 마주쳤다.
“라이브 방송에서 봤어요. 실제로 보니 더 귀엽네요.”
자연스레 까망이에게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란 멍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 낯선 사람이 만지려고 하면 물어요!”
“문다구요?”
“지금은 아니지만, 저도 처음에 여러 번 물렸었어요. 매니저 형도 여태 까망이 털끝 한번 못 건드리는 중인데…….”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그가 소리치기 전에 이미 나는 까망이를 향해 손을 뻗은 상태였고, 녀석은 멍크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처럼 내 손등을 핥고 있었다.
“이렇게 순한 아이가 사람을 물었다니. 믿기지 않네요.”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참.”
“다행히 제가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나는 간식을 찾아 까망이에게 건네주었다.
낯선 사람이 주는 간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던 녀석이, 주는 족족 맛있게 잘 받아먹고 있었다.
‘돌연변이의 빛나는 오브, 이것 때문이겠지.’
멍크가 가게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미리 준비를 해 뒀다.
당연히 까망이와 함께 올 거라는 생각에, 마감 직전부터 소지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업계 최고라는 훈련사분보다 훨씬 나으시네요. 그분도 훈련 진행하면서 까망이한테 여러 번 물리셨었는데.”
훈련사와 조금 전의 내 행동을 비교하는 듯, 멍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결심을 굳힌 그가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사장님께서 저희 까망이를 훈련을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사례는 얼마든지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뮤턴트를 길들이는 게 워낙 까다로운 일이라서요. 가능은 하겠지만, 가게를 운영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을 도맡아서 한다는 게…….”
부담이 된다는 말은 애써 삼켰다.
그저 뉘앙스만 풍기며 튕기는 거다.
‘까망이 훈련이야 어렵지 않지.’
녀석처럼 영악하고, 활발한 아이들.
거기에 기까지 센 녀석들은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돈이 많을 테니, 당연히 사례도 돈으로 할 거다.
그러나 훈련사의 의뢰비는 업계 규정으로 한정적이었다.
물론, 의뢰비를 최대치로 받는다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겠으나, 이왕 받는 거면 좀 더 내게 필요한 걸 얻어내고 싶었다.
“까망이 훈련만 성공적으로 해 주신다면, 제 능력이 닿는 한 어떤 사례든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의뢰비 말고 다른 걸 원하신다면, 그 또한 이 자리에서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요?”
“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요.”
내가 튕긴 덕분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일까.
멍크의 진심이 느껴졌고, 눈빛은 간절했다.
‘현재로선, 가히 업계 최고도 못 한다는 뮤턴트 훈련.’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멍크가 굳이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사례라면, 썩 나쁘진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시간을 조금 쓰긴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보름쯤 뒤에 까망이와 함께 다시 방문을 해 주세요. 그땐 가게가 아닌, 저희 집으로요. 저도 그동안 훈련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둘게요.”
“집이요?”
“가게가 비좁은지라, 그게 좀 더 효율적이라서요.”
“아,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멍크는 기꺼이 내 조건을 받아들였다.
내가 큰돈을 요구할 줄 알았는지, 오히려 별것 아니라는 듯 가벼운 표정으로 말이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머, 멍크 어디 갔어! 설마, 간 거야?”
어느새 가게에 복귀한 아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멍크가 보이질 않자, 실망이 잔뜩 번진다.
“아까 갔지. 근데, 그새 집까지 다녀왔어?”
“같이 사진 찍으려고 쫙 빼입고 온 건데…….”
화장은 물론, 옷까지 갈아입고 왔다.
평소에 뿌리지 않던 향수까지 뿌리고서.
그야말로 풀세팅이었다.
“아쉬워하지 마. 또 볼 일이 있을 테니까.”
“내가 멍크 볼 일이 뭐가 있다고…….”
“우리 가게에서 팬 사인회 하기로 했어.”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물론, 까망이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는 조건이다.
그리고 그걸 해내기 위해선 나 역시도 준비할 게 있었다.
돌연변이 친구 특성이 있는 오브.
그것만으로는 영악한 까망이를 훈련시키기엔 부족했다.
조그만 게 본능까지 뛰어난 녀석이 아니던가.
‘팔콘(Palcon)이 필요해.’
칩멍크의 천적.
맹금류 중, 유일하게 반려몬 허가를 받은 몬스터.
그 녀석을 새로운 가족으로 입양하러 갈 생각이었다.
* * *
던전을 찾는다는 것은, 공략을 나서는 헌터들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개인 사업자의 던전 입장료 혹은 임대료는 비싸고.
길드가 독점한 던전은 돈 외에도 다른 조건이 붙는 경우가 허다했다.
의뢰를 통해 협회 관리하에 있는 던전 위치를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공정성과 형평성, 그리고 안전을 위해 등급과 인원에 까다로운 제한이 붙었다.
‘운이 좋게 자신의 조건에 맞는 던전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던전이 아닌 경우가 다반사지.’
하지만 준우의 경우는 예외였다.
이건형이 그가 필요로 할 만한 던전만을 쏙쏙 골라서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준우는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산으로 향했다.
이건형이 알려 준 세 곳의 던전 중 ‘숨겨진 둥지’라는 던전이 위치한 곳이었다.
‘숨겨진 둥지는 E급 던전.’
붉은 하늘의 숲과 같은 등급이지만, 같은 등급에서는 난이도가 상급으로 꼽히는 곳.
그렇기에, 두 개의 E급 던전 중 이곳을 후에 공략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보다 안정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말이다.
“이 던전은 좀 위험하거든?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가방 안에서 나오면 안 돼.”
캬앙-!
미심이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준우는 서둘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을까, 최대한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게이트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던전을 발견한 사람들이 또 있었던 모양.
‘그새 이 던전이 몇몇 헌터들 사이에서 공유된 건가.’
숨겨진 둥지에서 준우가 원하는 건 코마 상태의 팔콘이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팔콘을 입양하는 것이었지만, 정확히는 ‘팔콘의 알’을 필요로 했다.
‘팔콘이 코마 상태로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낮지만, 조건만 갖춘다면 알은 무조건 얻을 수 있어.’
무조건, 확률 100%였다.
그걸 알기에 멍크에게 까망이를 훈련시킬 수 있다는 확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팔콘의 ‘기선 제압’ 스킬이 있다면, 까망이 훈련쯤이야 미심이와 말순이보다 훨씬 더 쉬울 테니까.
‘사람들이 많은 게 영 신경 쓰이네.’
문제는 던전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알을 얻는 과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숨겨진 둥지에 가시려고 하는 건가요?”
“네, 여기 모여 계신 분들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하지만 다들 던전에 입장하질 못하고 있죠. 보시다시피.”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남자.
준우는 그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들 던전을 공략하러 온 헌터들인 것 같은데, 게이트 앞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틀 전, 던전이 공략된 이후에 내부 지형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지형이 바뀌어요?”
“네, 간혹 그런 경우가 있죠. 아무튼, 그것 때문에 던전 초입 이후부턴 진행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에요. 절벽과 절벽 사이를 건너가기 위해선, 다리가 필요하거든요.”
결국, 건너가지 못해서 다들 이러고 있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준우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마침 잘됐네.’
게이트 앞에 사람들은 많으나, 저 사람들 모두 던전 공략을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
‘방해받지 않고, 팔콘의 알을 구할 수 있겠어.’
준우는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힐끗거린다.
“여기 줄 서 있는 거 안 보입니까?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대놓고 새치기 하깁니까?”
“새치기요? 이게 무슨 줄인데요?”
“당연히 꼬리 잡는 줄이죠. 조금 있으면, ‘ADT’ 공병 부대가 도착할 건데, 이런 식으로 새치기하면 곤란합니다.”
ADT(Attack Dungeon Team).
군 특수 부대로 던전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군에 신고를 한 듯했다.
공병부대가 절벽과 절벽 사이에 다리를 놓을 터.
이후 군 통제하에 공략이 진행될 거고, 여기 있는 헌터들은 혹시라도 군의 협조 요청이 있을 시 그들과 함께 공략을 진행하려는 것이다.
그걸 바로 꼬리 잡는다고 표현하고는 했다.
군의 목적은 오직 국가와 국민의 수호인 만큼, 자신들을 돕는 헌터들에게 전리품과 보상 일부를 나눠주는 것에 그리 거부 반응이 없었다.
“꼬리 잡을 생각 없으면 그냥 들어가도 되죠?”
준우가 줄을 선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준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자네가 말해 주지 않았어? 던전 안에 다리 놔야 한다고?”
“말해 줬어요. 그거 때문에 던전 공략 진행 못 한다는 것도.”
“근데, 저긴 뭣 하러 들어가? 차라리 사람 더 몰리기 전에, 줄 서는 게 낫지 않나?”
“모르죠. 의심이 많아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걸 수도.”
“쯧쯧, 들어가 봤자 어차피 다시 나오게 될 텐데. 괜히 시간 낭비를 하는구만.”
사람들은 던전 안에 진입한 준우를 씹어 댔다.
길어야 1분 안에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준우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안 나오는데……?”
“설마, 절벽 뛰어넘은 거 아닐까요?”
“그렇게 등급이 높은 헌터처럼은 안 보이지 않았어?”
사람들이 다시금 웅성거리는 사이.
저 멀리 ADT 공병 부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던전에 입장한 준우가 정면을 응시했다.
드높은 절벽 위에 서 있는 그의 맞은편에, 또 하나의 광활한 절벽이 우뚝 서 있었다.
‘던전 공략 진행이 불가능할 만하네.’
준우는 절벽 끝에 서서 발밑을 살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자칫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 만큼.
‘대략, 15m쯤 되려나.’
절벽과 절벽 사이의 거리를 살펴본 결과.
오차 범위를 감안하더라도 20m 안팎이었다.
‘곧 공병 부대가 도착한다고 했었지.’
던전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준우가 팔콘의 알을 얻는 과정엔 방해가 된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만족시키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니까.
‘그럼, 공병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공략해 버리면 되겠네.’
준우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맞은편 절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숲의 신발 특성 ‘빠른 발’을 사용합니다. ]
[ 30m 내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찰나의 순간.
공중으로 떠오른 준우가 반대편 절벽에 안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