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빠가 최고야
숲지기에게서 낮은 확률로 드랍되는 전리품 중 하나.
이걸 얻을 거라고 생각은 못 했지만, 어쨌거나 뭔가를 얻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사실이었다.
< 숲의 신발 - 유니크 >
* 등급 : E+
* 속성 : 땅
* 효과 : [ + 민첩 Lv.1 ]
* 특성 : [ 빠른 발 ]
‘다음 던전에서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겠어.’
이건형이 알려 준 세 곳의 던전.
두 곳의 던전은 오늘 공략한 붉은 하늘의 숲보다는 난도가 있는 곳들이었다.
때문에, 지금의 나로서는 공략하기엔 위험이 따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중 한 곳은 숲의 신발이 가진 특성을 사용한다면, 보다 쉽게 공략이 가능할 것 같았다.
‘원래, 이걸 얻으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내가 붉은 하늘의 숲 공략에 나선 이유는 그곳에서 등장하는 ‘칩멍크’를 입양하기 위함이었다.
작고 귀여운 다람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게의 마스코트가 된다면, 무척이나 잘 어울릴 것 같은 녀석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양에는 실패했다.
던전이 공략된 이후, 코마 상태로 살아남은 녀석들이 단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심이 때가 운이 좋은 편이었지.’
원래 코마 상태로 살아남는 몬스터들은 극히 드물다.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가족들 보약은 챙겼으니까…….’
나는 식탁 위에 올려 둔 다섯 개의 열매를 응시했다.
딸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보다 더 진한 붉은빛을 띠는 열매랄까.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아내가 열매에 관심을 보였다.
“무슨 산책을 이렇게 오래 하나 했는데, 이거 사려고 나갔다가 온 거였어?”
“사 온 건 아니고. 이 팀장님 잠깐 만났는데, 주시더라고.”
“협회에서 일하시는 그분?”
던전에 다녀왔다는 얘기는 뺐다. 당연히 던전 공략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이라는 사실도.
애들 데리고 거길 다녀온 걸 알면, 난 분명히 혼날 테니 말이다.
“뭐랄까. 애들 몸에서 탄내도 조금 나는 것 같고, 흙냄새도 좀 많이 나는 것 같단 말이야. 설마, 애들 데리고 던전 다녀온 건 아니겠지?”
“내, 내가? 에이! 내가 애들 위험하게 그런 짓을 하겠어?”
하마터면 표정 관리가 안 될 뻔했다.
참 눈치도 빠르시지.
어쩌면, 이미 눈치를 챘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아내가 더 캐묻기 전에 화제가 전환됐다.
테이블 위 아내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기 때문이다.
“어……?”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표정이랄까.
“……대, 대박!”
“뭐가? 갑자기 뭐가 대박인데?”
“머, 멍크가 내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했어! 세,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멍크가 뭐야.
내가 아는 그 칩멍크인가.
뭔진 모르겠지만 딱 하나는 잘 알겠다.
의아해 보였던 아내의 얼굴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는 거.
“오빠, 몬스터 멍크 알지?”
“다람쥐 말하는 거?”
“아이! 그거 말고! 아이돌 그룹 몬스터 멤버 멍크 말이야!”
아내가 검색까지 해 가며 멍크의 사진을 보여 줬다.
사진을 보니 뒤늦게 누군지 기억이 났다.
‘멍크가 이 멍크였구만.’
새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오뚝한 코와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눈매.
“무슨 남자가 이렇게 삐쩍 말라 가지고는…….”
순간, 찌릿하게 쏘아지는 아내의 눈빛.
꼭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듯했다.
“마른 게 뭐가 어때서? 잘생기기만 했구만. 우리 오빠한테 그런 막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결혼하기 전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했는데.
얘하고 나는 너무나 다르게 생기지 않았나?
“하? 우리 오빠? 좋겠네. ‘우리 오빠’가 둘씩이나 있어서.”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머쓱한지 아내가 살며시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괜히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왜 갑자기 멍크가 날 팔로우했지? 원래 연예인들은 아무나 팔로우 잘 안 하는데.”
“얼마 전에 미심이 사진 올렸지? 아마 그거 때문일 수도.”
“미심이 때문이라니?”
“멍크, 그 사람이 반려몬을 엄청 좋아하거든. 특히 미심이처럼 뮤턴트인 아이들이라면 환장을 하지.”
“진짜?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혹시 오빠도 멍크 팬이야?”
“……아니. 난 연예인 수지 좋아해.”
그냥 뒤늦게 멍크가 누군지 기억이 났고.
1회차의 기억 속에서 뭔가가 떠올랐을 뿐이다.
아내가 한때 엄청나게 좋아했던 아이돌이었지.
“얼씨구? 수지?”
“뭐, 당신이 멍크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거지.”
아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
….
한데, 테이블 위의 핸드폰이 계속 진동을 울려 댔다.
무슨 모닝콜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
“……계정 해킹당했나? 팔로워 수가 자꾸 느는데?”
잘난 너희 오빠 때문이겠지.
멍크의 팔로잉 목록을 보고, 그의 팬들이 아내의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한 걸 거다.
‘이거 잘하면, 도움이 좀 되겠는데.’
가게를 살리는 데 이용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의 그 ‘잘난 오빠’를 말이다.
‘어디 보자. 멍크 생일이 언제였더라?’
나는 아내의 또 다른 오빠 녀석의 생일을 검색해 봤다.
* * *
던전 공략 보상으로 얻은 붉은 하늘의 열매는 당장 섭취가 불가했다. 섭취를 위해선 부작용을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열흘 동안만 소금물에 절여 놓으면 돼.’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방법 자체는 아주 간단했다.
그저 열흘이란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
“오빠, 이것 봐! 하루 만에 팔로워가 백 명이나 늘었어!”
멍크 덕분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으며, 팔로워가 자그마치 천만 명 이상이었다.
‘따지고 보면, 미심이 덕도 있지. 미심이 사진 덕분에 멍크가 계정을 팔로우한 거니까.’
멍크와는 별개로 미심이를 보기 위해 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전보다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조금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눈에 띌 만큼 확 늘어난 건 아니지만, 멍크의 팬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가게를 구경하러 오는 정도.
하지만 며칠이 더 지난 지금.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
역시나 대부분은 멍크의 팬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아내 인스타 계정이 개인 계정이 아니라서.’
가게 홍보 용도로 만들어진 계정이었다.
만약, 개인 계정이었더라면 사생팬들에게 뭇매를 맞게 되었을 수도 있다.
“오빠. 그런데, 이것들은 다 뭐야?”
“내가 며칠 전에 발주 넣은 것들이야.”
“이걸 전부 다 주문했다고? 뭔데, 이렇게나 많이 넣었어?”
“반려몬 사료하고 치장 용품들.”
“아직 가게에 재고가 한참 많은데…….”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게에 도착한 물류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부피가 상당한 상자가 도합 스무 개.
내용물을 확인하는 아내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져만 갔다.
“오빠, 이거 아무래도 반품해야 할 것 같아. 사료들은 죄다 고단백 위주고, 치장 용품들은 크기가 너무 작잖아.”
“일부러 그렇게 주문한 거야.”
“……왜?”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다른 가게와 마찬가지로 우리 가게의 주 소비층은 가장 흔한 반려몬 품종들이었다.
대개 녀석들은 단백질보다 탄수화물 위주의 사료를 먹는다.
때문에, 판매가 되는 사료도 주로 탄수화물 비중이 높은 것들이었다.
녀석들의 몸집이 하나 같이 크기에 치장 용품 또한 판매율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컹컹-!
그래, 지금 내 눈앞에서 짖어대는 말순이 정도.
딱 저 녀석의 식성과 몸집을 닮아 있는 반려몬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그렇기에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제 곧 없어서 못 팔 만큼 부리나케 팔리게 될 터.
“어? 멍크 라이브 방송한다!”
“맞다! 오늘 생일 기념 라이브 방송한다고 그랬는데!”
나는 재빨리 아내의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렸다.
아내가 더 의문을 품기 전, 타이밍 좋게 녀석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해 줬다.
‘멍크의 생일인 오늘, 분명히 방송에 그 녀석이 나올 거야.’
내가 모든 걸 완벽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맘때쯤 아내가 엄청나게 좋아했던 멍크라는 아이돌.
당시에도 아내와 함께 방송을 봤었기에, 생일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 생일을 맞이해서 어제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어요. 오늘 여러분께 제 새로운 가족인 ‘까망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멍크의 음성이 들려왔고.
화면 안에 까맣고, 작은 생명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칩멍크?”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적인 칩멍크는 털 색깔이 하얗지만, 까망이는 이름 그대로 검은색 털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뮤턴트니까.’
눈을 반짝거리며 화면에 집중하는 아내.
작고 귀여운 까망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우리 미심이랑 같이 있으면 엄청 귀여울 것 같지 않아? 미심이는 하얗고, 이 아이는 까맣고. 뭔가 둘이 닮은 듯, 아닌 듯하면서도…….”
“이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일 것 같네.”
“상상만으로도 너무 잘 어울리는데?”
나와 아내 모두 방송을 보고 있는 사이.
가게 문이 살며시 열렸다.
“여기가 멍크 오빠가 인스타 팔로우하는 그 가게 맞죠?”
“내부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사진이랑 똑같아!”
여자 손님 두 명이 가게에 들어왔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른 것 같은데…….
두 사람 모두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슬쩍 화면을 보아하니, 아마 우리랑 마찬가지로 멍크의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었던 모양.
“혹시 칩멍크 사료도 팔아요? 고단백 위주의 사료를 주로 먹는다던데…….”
“칩멍크가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장식 같은 것도 있을까요? 되도록 좀 작은 사이즈로.”
세계적인 아이돌이라 그런가.
반응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죄송하지만, 그런 건 없…….”
없다고 말하려던 아내.
분명히 평소엔 없던 것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아내의 시선이 가게 한편에 놓여 있는 박스들로 향했다. 내가 미리 발주를 넣어 놨던, 아까 도착한 물류 상자들이었다.
“……있어요! 엄청 많아요!”
신기하다는 듯, 아내가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마치 이걸 어떻게 예상하고 있었냐는 것처럼.
“이거 멍크 오빠한테 선물해 주면 엄청 좋아하겠지?”
“까망이한테는 흰색으로 포인트 줄 수 있는 장식이 있으면 좋을 거 같지 않아? 이 모자 어때?”
손님들은 물류 상자 안의 내용물을 살펴보다가, 사료와 치장 용품 여러 개를 구입해 갔다.
아내는 손님들이 가게를 나서기 무섭게 내게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설마, 이걸 다 예상하고 발주 넣은 거야?”
“내가 뭐, 생각 없이 발주 넣었겠어.”
“그게 아니라,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 멍크가 칩멍크를 입양했다는 사실 말이야.”
“아, 그거…….”
그럴듯하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성심성의껏 나름 조리 있게.
하지만 아내의 눈빛은 여전히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계속 꼬치꼬치 캐묻는 게, 한 며칠 갈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인생 2회차라는 것까진 알아낼 수 없겠지만.
“일단, 물류 상자 안의 물건들 진열부터 해 놓자.”
곧 더 많은 멍크의 팬들이 들이닥칠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