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적인 산책
‘……이럴 리가 없는데?’
임세희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발목을 붙잡았던 나무 덩굴이 어느새 그녀의 허벅지까지 에워싸고 있는 상태였다.
머지않아 녀석이 온몸을 집어삼킬 거고,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될 터.
‘도, 도와줘요! 제발 좀!’
그녀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눈앞의 용병들을 응시했다.
자신을 믿고 보스 숲지기까지 있는 곳까지 따라온 그들이었다.
“으, 으윽! 어, 어떻게 좀 해 봐! 저러다 세희 씨 죽겠어!”
“세희 씨도 상대가 안 되는 걸, 우리가 뭘 어째?”
“……미, 미안해, 세희 씨!”
용병들이 임세희의 시선을 외면했다.
‘나, 날 버리고 가겠다고?’
자신만 믿겠다며 아부를 떨어 댈 때는 언제고, 이렇게 쉽게 돌아서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음 앞에서 그보다 두려운 게 없는 것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물론, 입조차 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숲지기의 나뭇잎에서 쏟아져 나온 ‘마비 가루’.
그것이 임세희의 온몸을 지배해 버린 탓이다.
마비가 아니었어도, 이미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보스이긴 했지만.
‘숲지기는 마법 공격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단장 오빠가 분명히 그랬었는데…….’
단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가 있고, 지금처럼 변수가 작용하는 경우도 존재했을 뿐.
‘그, 그런데 왜 저 사람들은 멀쩡한 거야? 왜 나만 마비에 걸린 거지……?’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눈앞에서 멀어져 가는 용병들.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 마법 저항에 특화된 갑옷이었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귀띔도 안 해 주고, 지들끼리 살겠다고 그새 바꿔 입은 거야?’
사실, 귀띔은 해 줬다.
던전에 진입했을 당시 준우가 분명히 말했었다.
변수가 작용할지도 모르니, 갑옷을 바꿔 입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었다.
목을 졸라 죽이려는 듯, 나무 덩굴이 어느새 쇄골 언저리까지 닿아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다른 용병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했다.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도.
또한, 자신을 도와줄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게 제가 뭐랬습니까.”
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용병들이 달아났던 방향에서 주방 칼을 든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비만 걸리지 않았어도, 어찌어찌 도망은 칠 수 있었을 텐데.”
마력이 주입된 주방 칼이 임세희의 몸을 에워싸고 있던 나무 덩굴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이, 이 사람 여태 던전 안에 있었던 거야……?’
마비가 풀리기까진 아직 2분여 정도의 시간이 남은 상황.
임세희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멍하니 준우를 응시했다.
“좀만 더 누워 있어요. 금방 끝날 테니까.”
숲지기랑 싸우겠다는 뜻일까.
순간,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마비에 걸리기 전, 자신의 총격으로도 데미지를 주지 못했던 숲지기다.
원인은 모르겠으나 그만큼 강해진 보스였고, 당연히 10등급 초짜 용병인 준우가 놈을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차라리 자신을 데리고 던전 밖으로 도망쳐 주길.
그렇게 바라는 임세희였지만, 이미 준우는 다가오는 숲지기를 향해 걸어 나가는 중이었다.
자신의 신체 일부라 할 수 있는 나무 덩굴이 끊어진 탓인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우거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식인 식물 보스 숲지기.
‘놈이 사용할 수 있는 마비 가루 횟수는 고작 한 번.’
임세희가 마비에 걸렸으니, 더 이상 마비 가루는 사용할 수 없다.
촤르르륵-!
숲지기가 포효함과 동시에 나무 덩굴이 쇄도했다.
하지만 준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익숙한 패턴, 그리고 익숙한 움직임.
게다가 준우에겐 이 모든 걸 쉽게 파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휘이이-!
준우의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 미심이가 당신에게 전용 스킬 은신을 사용합니다. ]
[ 은신 효과는 1분간 지속되며, 공격 시 해제됩니다. ]
숲지기의 나무 덩굴은 눈에 보이는 생명체를 공격한다.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공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 사라졌어? 설마, 은신 스킬은 아니겠지?’
차라리 귀환석을 써서 던전 밖으로 도망갔다는 말이 더 그럴듯했다.
근접 계열에게 있어서 S급이라 칭송받는 스킬을 10등급 용병이 사용할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쇄도하던 나무 덩굴은 타깃이 사라지자, 허공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준우와 말순이, 그리고 미심이까지 시야에서 사라진 상황.
그러나 단 하나의 타겟은 아직 남아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는 임세희였다.
‘미안, 미심이의 은신은 아직 하루 세 번이 한계라.’
준우가 나뭇가지를 꺼내 들었다.
숲지기의 약점,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나뭇가지를 손에 쥔 그는 재빠르게 숲지기를 향해 내달렸다.
촤르르륵-
그가 나무 덩굴 사이를 헤집으며 숲지기에게 달려가는 사이, 방황을 마친 또 다른 나무 덩굴 역시 임세희를 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나무 덩굴이 임세희에게 닿기 직전.
스윽-
준우가 손에 쥔 나뭇가지를 숲지기의 갈라진 몸통 사이로 집어넣었다.
[ ‘숲지기의 약점’이 보스 숲지기에 닿았습니다. ]
[ 조건부 특성 ‘발화’가 발동됩니다. ]
은신이 풀림과 동시에 숲지기가 준우를 발견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화르르르륵!
나뭇가지의 붉은 기운이 숲지기의 전신을 뒤덮었고, 순식간에 그것들은 강력한 불꽃이 되어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저, 저게… 10등급 용병이라고?’
마비가 풀린 임세희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저한테서 시선 좀 거둬 주시겠어요?”
“…….”
“매우 불쾌해서.”
재가 되어 버린 숲지기의 흔적을 뒤지는 준우.
그가 그 속에서 공략 보상을 독식하고 있었지만, 기세에 눌린 임세희는 그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 * *
임세희와 함께 공략을 나섰던 용병들에게서 연락을 받은 용병단장은 서둘러 해당 던전으로 향했다.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사무실에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 한참 걸렸을 것이다.
“다, 단장님!”
낯이 익은 용병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떻게 된 겁니까? 세희가 위험하다니요!”
“그, 그게 보스가 마비 마법을 사용하는 바람에…….”
“마비 마법이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숲지기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도 못했는데.”
“진짭니다! 보스도 저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세희 씨 공격이 하나도 먹히질 않고, 몸집도 좀 더 큰 것 같고…….”
용병은 횡설수설했다.
조금 전, 막 던전에서 도망쳐 나온 터라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붉은 하늘의 숲이라면, 임세희 혼자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수준의 던전이었다.
이제 막 7등급 용병 승급을 앞두고 있는 그녀가 아니던가.
‘제길! 우리 세희를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임세희의 상관이자, 그녀를 짝사랑하는 단장으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잘 보이겠답시고 공략 정보를 알려 준 건데, 결국 그게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지 않은가.
“어, 어? 던전이 공략된 것 같습니다!”
그때, 협회 공무원이 소리쳤다.
막 던전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하려 진입하려던 찰나, 던전 게이트 주변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는 게 보였다.
던전이 공략되었다는 증거.
그제서야 단장의 얼굴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사람이 나옵니다!”
공무원이 또 한 번 소리쳤다.
게이트 밖으로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임세희였다.
‘역시, 내 정보는 틀리지 않았어. 세희가 던전을 공략한 거야.’
함께 공략을 나선 용병들이 보기엔 위험해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녀가 공략을 하는 데 성공을 한 것임이 분명했다.
공략을 나선 용병들 중에 그녀보다 높은 등급을 가진 용병은 없지 않았던가.
“세, 세희야!”
그가 이름을 외친 순간.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시발! 저 묘한 분위기는?’
단장의 눈매가 휘어졌다.
임세희가 함께 나온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준우는 흙이 묻은 말순이의 털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저어…….”
쭈뼛거리며 준우에게 다가가는 임세희.
준우는 말순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만 움직였다.
“뭡니까.”
“저,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생명의 은인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다소 민망한지, 그녀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준우가 신고 있는 ‘숲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여자 친구 있어요?”
“없는데요.”
“그럼, 혹시 핸드폰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을까요?”
준우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
뻔뻔하기도 하지.
사람 무시할 땐 언제고 이제 와 이러는 꼴이라니.
“그래도 되겠어요? 저기 씩씩거리면서 다가오시는 분, 남자 친구 같은데.”
자신에게 얹혀 가려는 속셈이라는 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뒤에 있는 저 남자와 갈라서고, 준우에게 붙어먹으려는 거다.
“남자 친구라니요. 저 그런 거 없어요! 아무튼 여자 친구 없으시다는 거죠?”
여자친구가 없다는 말에, 임세희의 표정이 희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희망을 만끽하는 것도 아주 찰나였을 뿐.
“제가 감사의 의미로 밥 한번 사고 싶은데…….”
“여자친구는 없는데, 와이프가 있어서.”
“에……?”
유부남한테 들이댔다는 사실 때문일까.
임세희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하아, 오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돌아서며 낮게 중얼거리는 임세희.
준우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냐. 앞으로도 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순이의 털을 마저 정돈하는 준우의 등 뒤로, 따가운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너 뭐 하는 거야? 나는 네 걱정에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놈이랑 노닥거리고 있어?”
“뭔 상관이야!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 그렇긴 한데…….”
“그리고 넌 내가 아주 죽었으면 좋겠지?”
“뭔 소리야, 그게?”
“오빠가 알려 준 공략 정보 죄다 틀렸어. 하마터면, 저 안에서 죽을 뻔했다고!”
“다 틀렸다고? 그런데, 네가 어떻게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거야? 내가 알려 준 정보가 틀렸다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
“됐어. 오빠랑 말도 섞고 싶지 않아. 당분간 나한테 연락하지 마.”
“연락하지 말라니? 오늘 공략 끝나고 나랑 밥 먹기로 한 거 잊었…….”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던전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임세희.
단장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자신의 정보를 이용해 던전 공략을 한 것 같은데,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걸까.
“야, 너 설마… 숲의 신발을 얻은 거야? 그거 때문에 연락하지 말라는 거고?”
“뭐?”
임세희가 기가 찬다는 듯 단장을 노려보았다.
숲의 신발은 해당 던전에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유니크급의 아이템이었다.
고가의 아이템이었으며, 용병단에 속해 있는 임세희가 그걸 얻었다면 단장인 자신과 함께 공략을 진행한 용병들과 수익 또한 나눠야만 했다.
“내가 수익 배분하기 싫어서,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아,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라…….”
“꺼져.”
단장이 돌아서려는 임세희를 붙잡으려는 그때.
그의 시야에 준우가 신고 있는 숲의 신발이 보였다.
“이야, 임세희 대단하네. 시발, 저 새끼랑 붙어 먹으려고 숲의 신발을 내준 거야?”
“미, 미쳤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눈을 매섭게 치켜뜬 단장이 준우를 향해 다가갔다.
무력 행사를 해서라도 당장 신발을 뺏어 올 기세였다.
“이봐요.”
“……?”
“나랑 얘기 좀 하죠? 아무래도 숲의 신발이 주인을 잘못 찾아간 것 같은데.”
“으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쪽한테 볼일이 없어서.”
“뭐, 뭐요?”
“오히려 저쪽이 그쪽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준우가 단장의 어깨너머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느닷없이 나타난 차량 한 대가 그곳에 멈춰 섰다.
“형님, 아, 아니, 팀장님! 여깁니다.”
차에서 내린 이건형이 준우를 발견하곤 헐레벌떡 달려갔다.
“다행히 제때 맞춰 온 것 같군요.”
“생각보다 엄청 빨리 오셨는데요?”
“여기로 오던 중이었거든요. 던전 관리하는 친구가 제 친한 후배인데, 갑자기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구요. 하필이면, 제가 준우 씨한테 소개시켜 준 던전인지라, 걱정이 되기도 했고…….”
이건형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임세희가 그의 목에 걸린 공무원증을 보고 흠칫 놀란다.
켕기는 게 있는지, 단장도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 있는 분들 전부인가요?”
“예, 확인해 보시죠.”
공무원증을 내민 이건형이 임세희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헌터와 용병, 모든 각성자들은 던전 공략 진행과 관련하여 법적으로 뇌물 공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 인지하고 계십니까?”
“아…….”
“그, 그게…….”
임세희를 비롯하여 당황한 용병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빠르게 변명을 늘어놓는 그들이었지만, 그게 결국 시간 낭비라는 걸 준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변명해도 소용없을걸? 이 사람, 기억을 읽거든.’
준우가 여유롭게 던전에서 얻은 보상들을 살폈다.
오늘 그의 산책이 매우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