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화만사성
[ 해당 던전이 공략되었습니다. ]
[ 1시간 후, 던전이 리셋됩니다. ]
박 사장의 명령으로 2조가 보스를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1조는 준우를 죽이는 데 난항을 겪는 중이었다.
푸슉-
남자의 허벅지에 꽂힌 칼이 뽑혀 나왔다.
울컥 피가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크, 크아아악!”
팔과 다리를 비롯한 몸 곳곳은 이미 공격을 당한 상황.
치명상은 입은 듯했지만, 딱 죽지 않을 정도였다.
‘저, 저 새끼, 저거… F급 아니야, 절대.’
박 사장이 눈앞의 준우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쓰러진 남자를 비롯해 부하들을 순식간에 처리한 준우였다.
기세 좋게 먼저 덤벼들었지만, 꼴 좋게 그 기세가 꺾이고야 말았다.
“너, 너, 뭐냐? 분명 등급 측정기엔 F급이라고…….”
“그거 싸구려 아냐?”
다가오는 준우의 손에 들린 푸른빛 주방 칼. 평범해 보이나, 절대 평범하지 않은 것이었다.
자그마치 방출된 마력이 주입된 ‘무기’였으니까.
‘츠, 측정기가 고장이라도 난 건가……!’
마력은 각성자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것을 느끼는 데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그걸 움직여 방출하기까지는 스스로 감을 익히고, 자신만의 ‘방법’을 구현해 내야 했다.
말 그대로 고급 테크닉.
대개 C급 수준의 마력 레벨을 보유하고 있어야 마력을 느끼는 게 가능했으며, 그렇기에 마력 방출을 위한 최소 기준을 C급이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량의 마나일지라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준우에겐 그것을 느끼는 데 충분했다.
비록 특성 중 하나인 성장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채앵-
박 사장이 자신을 향해 오는 준우의 칼을 막아 냈다.
‘어, 어라? 내가 막았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었다.
측정기가 고장 난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준우가 마력을 사용하는 헌터라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그런데.
‘잘하면… 할 만하겠는데, 이거?’
준우의 칼을 막아 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자그마치 마력이 주입된 무기를 막아 내지 않았는가.
‘역시 싸움은 템발이지! 비싸게 주고 산 보람이 있어!’
순간, 기세가 등등해진 박 사장.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는 준우의 칼을 걷어 냈다.
“꼴에 좋은 검 쓰네. 값 좀 나가겠어?”
“새끼, 방금 밀려 놓고 허세는! 이게 괜히 각성자 전용 아이템이겠냐?”
밀린 건 사실이었다.
전력으로 상대하질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마력을 좀 더 써야 하려나.’
진짜는 지금부터.
한낱 주방 칼로 각성자 전용 아이템을 부숴 버리는 광경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너도 저 뒤에 있는 몬스터 시체들하고 같이 묻어 주마!”
자신감이 붙은 박 사장이 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준우의 목을 노리며 빠르게 쇄도하는 검.
그러나 그의 검은 미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
눈앞의 상대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이, 이 자식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야?”
박 사장이 당황해했고.
준우도 갑작스런 이 상황이 황당했다.
[ 삼미호가 당신에게 전용 스킬 은신을 사용합니다. ]
[ 은신 효과는 1분간 지속 되며, 공격 시 해제됩니다. ]
‘은신이라고? 나한테?’
아무래도 근처에 삼미호가 숨어 있는 모양.
던전이 공략되었음에도 불구, 운 좋게 코마 상태로 살아남은 것 같았다.
‘설마, 날 도와준 건가.’
오브의 특성인 ‘돌연변이 친구’ 효과 때문이었다.
친구라고 인지한 준우가 박 사장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그냥 장난기가 많은 종족 특성일지도 모르겠지만.
“쫄아서 튀었나 본데, 이 새끼.”
박 사장은 그렇게 믿고 싶은 듯했다.
준우가 귀환석을 사용해 던전 밖으로 도망쳤기를.
하지만 희망 고문은 여기서 끝이었다.
푸욱-!
보이지 않던 칼이 박 사장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마력이 주입된 칼이었기에, 고통 역시 부하들이 겪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끄, 끄아아아악!”
“엄살은. 당신 진짜 E급 맞아? 예전에 내 밑에 있던 애들은 이것보단 나았던 것 같은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준우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전.
준우가 허벅지의 칼을 뽑아, 반대쪽 허벅지를 비롯한 몸 곳곳을 향해 빠르게 칼을 움직였다.
“……컥!”
“다행인 줄 알아. 예전 같았으면, 스치기만 해도 죽었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박 사장이 혼절했다.
급소는 피해 찔렀으니 죽지는 않을 거다. 헌터 병원의 힐러에게 치료받으면, 며칠 새에 나을 정도랄까.
캬앙-?
그때,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준우가 뒤를 돌아봤다.
손에 쥔 오브는 전보다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몇 걸음 앞에.
오브의 빛이 밝히는 곳에는 작은 여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삼미호.’
준우가 오브를 바닥에 내려 두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삼미호가 가까이 다가온다.
“아깐 도와줘서 고마웠어.”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덕분에 힘을 별로 들이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나랑 같이 갈래? 그럼 그거 너 줄게.”
캬앙-!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는 녀석일까.
삼미호는 오브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세 개의 꼬리를 흔들어 댔다.
* * *
준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건물주의 용병단이 던전 안에 쓰러져 있던 박 사장과 부하들을 끌어냈고.
또한, 준우를 감시했던 놈과 나머지 일행들 역시 깔끔하게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던전 리셋까지 시간이 촉박한 듯했으나, 준우가 박 사장의 품 안에서 던전 지도를 찾아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썩을 놈의 새끼들! 감히 내 사업장에서 이런 짓을 해? 나가랄 때 안 나가고 뻐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건물주가 공사장 한편에 묶어 놓은 박 사장 패거리를 향해 욕을 토해 냈다. 준우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열이 잔뜩 오른 그였다.
“덕분에 큰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귀인분이 아니었다면, 던전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귀인이라니요……?”
“제 선배님의 귀인이시면, 제게도 귀인이십니다! 마땅히 떠오르는 호칭이 없기도 하고, 하하하!”
준우는 멋쩍은 마음에 볼을 긁적였다.
선후배가 무척이나 닮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일단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건물주가 놈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의뢰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준우가 녀석들에게 들었다.
때문에, 그 배후가 누구인지 조사하기 위해 반려몬의 유골과 사체까지 가지고 나왔다만.
“몬스터의 유골과 사체만으로 증거가 충분할까요? 이놈들이 지들이 자체적으로 한 일이라고 잡아떼면, 이대로 사건 종결될 것 같은데.”
“헌터 협회 수사과에 ‘이건형’이라는 사람 있을 거예요. 이왕이면 그 사람한테 직접 신고 접수하세요. 아마, 깔끔하게 마무리해 줄 겁니다.”
“증거가 부족해도요?”
“부족한 증거 채워 넣는데 도가 튼 사람이거든요. 워낙 그쪽으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준우가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목적도 이뤘겠다, 이젠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대로 가시게요? 귀인분께서 유일한 목격자인데…….”
목격자가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건형이라면, 기억을 읽어 내는 특성을 사용해 던전 안에서의 일을 모두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의뢰를 요청한 배후까지도.
헌터 특별법상 준우의 경우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지만.
만약, 문제가 있대도 알아서 찾아올 터.
“목격자가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오겠죠, 뭐.”
찾아올 거라 믿었다. 아니, 분명 찾아올 거다.
박 사장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말이다.
‘건형이 형님이 좀 도와주면, 던전을 찾는 데 협회 레이더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준우가 가방을 어루만졌다.
그의 온기를 느낀 삼미호가 가방 속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품 안의 오브를 꽉 안은 채로.
“우린 이만 집에 가자.”
아내가 행복해할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준우였다.
* * *
이미호 입양엔 찬성한 아내지만.
아내는 내가 혼자서 던전에 가는 것은 반대했다.
고작 F급 던전인 여우 소굴이었었지만, 던전은 항상 위험과 변수가 많은 곳이기에.
때문에.
아내에겐 용병들과 함께 던전에 간다고 말해뒀다.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강철 아저씨에게 던전을 임대받고, 건물주의 D급 용병단과 함께 공략을 진행하는 게 처음 계획이긴 했으니까.
“다친 데는?”
현관으로 들어서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아직 낫지 않은 발목을 절뚝이며 내 앞에 섰다.
“당연히 없지. 나 C급 각성자라니까? 게다가 F급 던전을 D급 용병들하고 같이 공략하는데, 다칠 리가…….”
“그래도 오빠 혼자 보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알아? 내가 발목만 멀쩡했어도 따라가는 건데!”
굳이 같이 가겠다는 걸 발목을 핑계로 겨우 만류했었다.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참 다행이지 싶다.
“근데, 이거 무슨 냄새야?”
현관에 들어온 순간부터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것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의 냄새였다.
“장어구이! 내가 아까 장 보면서 사 왔지!”
“나한테 시키지. 당신 다리도 불편한데…….”
“우리 오빠 나가서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것까지 시켜? 반신욕 하라고 목욕물도 받아놨어. 씻고 나와서 밥 먹자.”
“바, 반신욕?”
“혹시 몰라서 오빠 알레르기 약도 좀 고급진 걸로 사다 놨거든. 이따 내가 발라 줄게.”
오늘따라 유난히도 뭔가 과하다.
평소에 비싸다며 사 주지도 않는 장어도 사 주고.
반신욕에다가, ‘혹시 몰라서’ 산 고급 알레르기 약이라니.
“너무 피곤하면 내가 안마해 줄까? 그리고 나서 씻을래?”
아내는 연신 나를 위한 말을 쏟아 냈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는 내 몸 곳곳을 살피는 중이었다.
“……근데, 혼자 왔어?”
내 몸을 몇 번씩 훑고 난 후에야 본론을 꺼내는 아내.
역시나 원하는 건 저거였다.
“섭섭하네. 나 기다린 줄 알았더니.”
“다, 당연히 오빠 기다린 거 맞지! 나, 나는 기대도 안 했어! 이미호가 코마 상태로 던전에 남는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도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했으니까…….”
“…….”
“왜 그런 눈으로 봐? 나 진짜 기대 하나도 안 했……?”
아내가 말을 이르려던 찰나.
가방 지퍼를 열자, 작은 머리가 빼꼼 튀어나왔다.
“꺄아아아아!”
순간, 아내의 기분 좋은 비명이 터져 나왔고.
가방 속에서 튀어 오른 삼미호가 아내에게 안겼다.
다행히도 아내의 첫인상이 꽤 좋았던 모양이다.
“너무 귀엽잖아! 얘 천사 아니야? 막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데?”
손바닥 두 개를 합쳐 놓은 작은 몸집을 가진 삼미호였으니, 당연히 예쁘고 귀여울 수밖에.
“에헴, 걔 꼬리도 좀 봐 봐.”
“꼬리? 꼬리는 왜? 어머머! 얘 꼬리가 세 개야!”
아내의 놀란 모습과 미소를 보고 있자니, 절로 어깨가 으쓱거린다. 아주 뜻깊은 일을 한 기분이랄까.
“이 아이, 이름은 뭐가 좋을까나……?”
삼미호와 아내가 인사를 나누며 적응하고 있는 사이.
나는 가족 구성원 추가 대상으로 삼미호를 선택해 봤다.
[ 대상이 당신에게 가진 친밀도가 부족합니다. ]
[ 대상이 당신을 가족으로 인지하지 않습니다. ]
[ 대상과 가족이 되기까지의 예측 시간, 3개월. ]
‘3개월은 생각보다 너무 긴데.’
아까 나한테 은신 스킬까지 사용해 줄 땐 언제고.
그건 그거고, 가족까진 아직 아닌 것 같았다.
장인어른이나 형님에 비해선 확실히 적은 기간이었다.
어쩌면, 오브의 특성인 돌연변이 친구 효과로 인해 친밀도가 상승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건, 3개월이라는 시간은 내게 너무나 길다는 것이었다.
‘각 능력치를 1레벨씩 올리자고 이 시간을 투자하기엔, 너무 비효율적인데.’
물론, 아내가 행복해하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런 아내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선, 나아가 내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선 보다 빨리 강해져야 했다.
시간이야 그냥 두면 알아서 흐르겠지만.
나를 죽였던 놈을 떠올리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그때였다.
쪽-
아내가 대뜸 다가와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여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 오빠. 사랑해.”
나는 머쓱함에 볼을 긁적였다.
회귀 후, 아내에게 받은 첫 입맞춤이라 그런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에에? 뭐야, 귀는 왜 빨개져?”
아내가 놀리듯 나를 보며 웃고 있었고.
웃고 있는 아내와 나 사이에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 새로운 스킬 습득 조건을 만족합니다. ]
[ 스킬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을 습득하였습니다. ]
삼미호와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 3개월.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