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 소굴
공사가 진행되다 만 듯한 건축 현장.
옆 건물의 카페만큼이나 사람이 제법 북적거리고 있는 곳이었다.
“오늘부터 이분이 이곳 던전의 임대인이십니다!”
“……이 사람이? 임대를 받았다고?”
“여기 던전 주인하고 이미 계약서 다 썼습니다.”
살필 것도 없을 정도로 볼품없는 행색.
고작 크로스백 하나 멘 것 빼고는 이렇다 할 장비도 갖추지 않은 사람.
용병들이 봤을 때, 영락없는 일반인의 모습인 준우였다.
그런 사람이 던전의 임대인이라니.
“가,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하지!”
“갑자기라니요? 사장님하고 여기 던전 주인하고 임대 계약 끝난 지 일주일이나 지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
사실, 상습적으로 임대 기간을 초과해 사용하기도 했고.
“던전 공략이 코앞이라고! 다 끝나 가는 마당에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 우리가 며칠 동안 밤을 새워 가면서……개썅!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봐!”
박 사장이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던전의 주인이자, 이 땅의 주인.
그리고 이곳 상권에 다수의 건물을 보유한 건물주였다.
- 억울하긴 뭐가 억울합니까? 내가 자리 빼라고 말한 지가 언젠데. 게다가 저번에도, 그 저번에도 임대 기간 초과해서 던전 사용했잖아요. 말로 할 때 나가 주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이, 이보세요! 사, 사장님!”
- 거기 계신 중개사분, 제 은인과도 같은 선배님이십니다. 되도록 그분 기분 상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뚝-
전화가 끊겼다.
‘이런 시발! 지금 던전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아주 중요한 시점이었다.
절대 던전의 주권을 뺏겨서는 안 되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계약 연장하는 거였는데! 괜히 뒷돈 조금 챙기려다가…….’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건물주가 D급 헌터 겸 용병단을 이끄는 단장이기에, 난장판을 피우며 무력 행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박 사장의 시선이 준우를 향했다.
급박한 상황 때문인지, 인상이 한층 누그러졌다.
“저어, 사장님. 저희가 지금까지 던전 진행한 게 있는데, 이제 와서 이걸 가로채시겠다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요.”
“그, 그러니까 ‘여우 소굴’ 던전은 동급 던전에 비해 내부가 아주 넓어요. 미로처럼 길도 복잡해서, 저희처럼 던전 지도가 없으면 다른 용병단이 와도 공략이 거의 불가능에…….”
“용건만 간단히요.”
“……혹시 용병 아직 안 구했으면, 저희와 함께 가시는 거 어떻습니까? 임대료 일부도 저희가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준우가 의아해하며 박 사장에게 물었다.
“헌터 등급들은 어떻게 되죠?”
“저는 E급이고, 나머지는 F급입니다. F급 던전인 여우 소굴이라면, 이 정도로도 과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죠.”
이렇게 쉽게?
박 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려는 그때.
“중개사님께 반말하고, 욕하신 거 정중히 사과하면요.”
“……허! ”
강철의 가슴 속 감동의 쓰나미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 * *
강철이 자신의 후배에게 중개해 준 던전 중에 ‘여우 소굴’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덕분에 보다 쉽게 이미호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으니.
‘이래서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돼.’
게다가 임대 보증금, 월세, 그리고 중개료까지.
강철과 그 후배의 배려로 모두 공짜였다.
‘그래도 덥석 받아먹을 수는 없지.’
비록 일주일 단기 임대지만, 던전 임대 특성상 굳이 책정을 한다면 가격이 상당할 것이다.
아무리 준우가 생명의 은인이라지만, 좀 과하다 싶었다.
툭-
던전 안에 입장하자마자 박 사장이 준우에게 돈 봉투를 건넸다. 앞서 약속한 임대료의 일부였다.
“……정말 게이트 앞에 계속 있을 겁니까? 저희랑 같이 안 가고?”
“네, 편히 공략하세요. 저는 던전 공략에 관심 없으니까.”
“그럼 여긴 뭐 하러 임대받은 겁니까?”
“와이프 심부름?”
어깨를 으쓱인 준우의 시선이 박 사장 일행이 메고 있는 가방으로 향했다.
“근데, 그 가방엔 뭐 들었어요?”
“뭐가 들었겠습니까. 던전 공략하러 왔으니, 던전 공략하는 데 필요한 장비가 들었겠죠.”
“다들 가방이 너무 크지 않나? 고작 F급 던전 하나 공략하는데, 그렇게 많은 장비가 필요해요?”
박 사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뭘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지껄여 대는 걸까.
짜증을 억누른 그가 애써 좋게 말했다.
“던전 공략에 관심 없다고 했잖아요? 정당하게 임대료까지 내고 던전 사용하는데, 그런 것까지 저희가 보고를 해야 합니까?”
보고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가방 안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서 그랬을 뿐.
반응을 보아하니, 꽤 중요한 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급발진하고 그러시네.”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박 사장은 그 말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내심 다행이다 싶으나, 혹시라도 따라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면, 그때 죽여 버려도 늦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자칫 게이트 초입에서 소란을 일으켰다간, 근처에 있는 건물주의 용병단이 눈치를 채고 움직일지도 몰랐다.
자신들보다 상위급인 평균 D급 헌터들이 아니던가.
‘재수 없는 자식. 갓 F급 수준에 돈 좀 있다고 허세는.’
등급 측정기를 사용해 본 결과 준우의 등급은 F였다.
부하들과 등급은 동급이라지만, 레벨은 현저히 낮아 보이는 꼬락서니였다. 다년간의 경험상 대충 훑어만 봐도 예측이 가능했다.
‘별것도 아닌 새끼 때문에 아까 마음 졸인 것만 생각하면!’
자그마치 VIP 고객의 의뢰.
당장은 괜한 긁어 부스럼 없이 일을 완벽하게 끝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커다란 가방’을 하나씩 들쳐 멘 부하들이 박 사장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저 앞의 갈림길부터가 진짜 던전의 시작이었다.
“1조는 나와 함께 ‘일’을 마무리 짓고, 2조는 내가 신호를 줄 때까지 보스 방 앞에서 대기한다. 다들 긴장해. 괜히 일 그르치지 말고.”
박 사장이 낮은 어조로 명령했다.
열 명의 인원들이 갈림길에서 반으로 나뉘었고.
준우는 그 모습을 저 멀리 던전 초입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던전 지도가 있다면서, 왜 나눠서 움직이는 거지?’
모든 던전의 지도가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값어치가 충분한 물건이었다.
그만큼 상세하며, 정확했으니 말이다.
‘바로 보스가 있는 곳으로 직행하면 되지 않나?’
준우가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초입에 남아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공략에 참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보스가 죽으면 던전이 공략되고.
해당 던전이 공략된 횟수에 따라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던전이 리셋 또는 소멸되는 동안 던전 내 대부분의 몬스터 역시 소멸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는 몬스터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하여 명명된 ‘코마(Coma)’ 상태에 빠져, 특성과 스킬을 잃은 채 남게 되는데.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되겠지.’
보통은 헌터 연구소에서 실험과 연구 재료로 쓰거나.
던전 내외의 다른 헌터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몬스터를 마냥 살려 둘 수는 없었으니.
하지만 협회에서 ‘반려몬 허가’를 받은 일부 품종에 한해서는 준우처럼 입양이라는 예외도 존재하긴 했다.
‘어쨌거나, 굳이 지금은 내 힘을 들일 필요는 없을 테니.’
여우 소굴에 온 목적은 오직 이미호의 입양.
임대료도 받았고, 공략도 알아서 해 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누워서 떡이나 받아먹으면 될 일이다.
사실상, 이미 공략이 거의 다 끝나 가는 던전인지라 준우가 나서서 사냥할 몬스터들이 별로 없기도 했다.
‘일단, 이 돈은 중개사 아저씨한테 드리도록 하고.’
공짜는 싫었다.
나중에 또 부탁할 일이 있기도 하고.
돈을 챙기기 위해 가방을 열자 반짝이는 오브가 보였다.
뮤턴트 광견을 처리하고 얻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 온 아이템이었다.
“어……?”
가방에서 오브의 빛이 새어 나온 순간.
준우가 눈을 치켜뜨며 전방을 응시했다.
‘뭐지? 분명히 방금 뭔가가 지나간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시금 준우의 앞을 지나치는 무언가.
터억-
이번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착지했다.
흰색 털을 가진 작은 생명체.
‘이, 이미호?’
준우가 눈을 좀 더 크게 떴다.
눈코입, 털 색깔은 분명히 이미호와 같았다.
‘그런데……꼬리가 세 개네?’
희귀종, 뮤턴트였다.
아마 준우가 갖고 있는 오브 때문에, 이곳으로 이끌려 온 것 같았다. 뮤턴트와 친밀감을 형성시키는 특성을 가진 아이템이었으니까.
벌떡-
준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시 그를 응시하던 ‘삼미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발을 굴렀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것처럼.
‘아내가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꼬리가 둘 달린 여우가 귀엽다고 하지 않았던가.
귀여움에 귀여움을 하나 더했으니, 당연히 더 귀여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준우는 곧장 삼미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던전 초입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그때.
“……어딜 가려고?”
“설마, 날 감시하고 있었습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박 사장의 인원들 중 한 명이었다.
-만약 여기까지 따라붙으면, 그냥 죽여 버려.
남자는 박 사장이 당부한 말을 떠올리며.
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굳이 나한테 감시까지 붙여 놓은 이유가…….”
말을 잇던 준우의 시야에서 삼미호가 사라졌다.
놓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마음이 급해진다.
“……그딴 건 모르겠고, 일단 비켜요. 나 바쁘니까.”
“형님께서 이 이상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다.”
“뭔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이거 내가 임대받은 건데.”
“원래 던전 안에선 강자가 주인 아닌가?”
피식 웃은 남자가 허리춤의 검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이라고.”
그리고 준우 역시 곱게 지나갈 생각은 없었다.
* * *
“하나, 둘, 셋, 넷…….”
던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은 동굴.
그 안에서 박 사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스물일곱.”
숫자를 세어 나가던 그가 말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며 숫자가 맞는지 재차 확인하는 박 사장.
“가방에 든 것까지 포함하면…….”
부하들이 가방 안에 있는 것을 털어 냈다.
겹겹이 쌓여 있는 투명한 봉투 안에서 많은 양의 흙이 쏟아졌다.
“총 서른. 이상 없습니다!”
가방 속에서 쏟아진 흙,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
죽은 반려몬들의 유골과 사체들이었다.
앞서 박 사장이 숫자를 세던 것들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반려몬들의 유골과 사체들을 예전부터 차곡차곡 옮겨 둔 것들이었다.
“후우! 드디어 다 끝났네.”
의뢰인에게서 넘겨받은 유골과 사체를 흔적도 남지 않게 없애 버리는 것. 그게 VIP의 의뢰내용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묻지 않는 게 이 바닥 룰이며, 돈만 받으면 그만이었기에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2조. 보스 찾았나?”
- 예, 현재 대기 중에 있습니다.
“죽여도 돼. 이쪽은 전부 마무리됐다.”
박 사장이 무전기로 명령했다.
이제 던전이 공략되면, 사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
“시발, 그 새끼 때문에 막판에 일 조지는 줄 알았네.”
다 끝내 가는 마당에 갑자기 F급이 임대인이라고 나타났지만, 다행히 일은 잘 마무리된 셈이었다.
“……뭔진 몰라도, 불법적인 일이라는 건 딱 알겠네.”
그 임대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박 사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어떻게 여길?”
“이 오브가 근처에 여우가 있으면 반응하거든. 그걸 따라서 쭉 오다 보니까…….”
준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반려몬들의 유골과 사체가 모여 있는 곳.
말순이랑 같은 레드 독 품종의 아이가 눈에 밟혀서였다.
개중엔 미처 인식표를 떼지 못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와이프랑 같이 안 오길 잘한 것 같아. 이 광경을 봤으면, 바로 기절했을 거거든.”
박 사장과 부하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붙여 놓은 감시는 운 좋게 따돌린 것 같다만, 여기서 일어난 일을 목격한 이상 살려 둘 수는 없었다.
“시발, 의뢰 다 끝나가는 마당에 귀찮게시리. 네가 아주 죽고 싶어서 용을 쓰는구나, 용을 써.”
사람 죽이는 일 따윈 그들에게 별 것 아니었다.
그런 의뢰들도 다수 맡아 본 적이 있었으니까.
“네 와이프도 너하고 같이 죽여 주랴? 얌전히 입구에 있었으면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뭐 하러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선!”
“가방에서 냄새가 났거든. 역한 냄새가. 그런데…….”
준우가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손에 쥔 ‘주방 칼’에 푸른빛 마력이 깃든다.
“……알고 보니, 그게 너한테 나는 냄새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