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 갖지 말랬는데
사고 지역에 파견된 구출대가 201동 벙커에 도착했다.
협회와 군경의 연합 작전팀이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좀 더 소요되긴 했지만, 다행히 벙커 안의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3팀은 시민들 통제해서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도록 하고, 1팀과 2팀은 나와 함께 바로 202동 쪽 진입을 시작한다.”
작전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팀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저, 저기요!”
막 202동 진입을 시작하려는 찰나.
등 뒤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안전 지역으로 이동하는 대열에서 벗어나, 어느새 작전팀장의 코앞까지 달려온 선화였다.
“단지 상가에 저희 남편이 있어요. 아까부터 문자 답장도 없고, 계속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아요!”
말순이를 구하러 가겠다는 조짐을 보였던 준우였다.
벙커를 나선 준우가 어딘가로 향했다면, 그곳은 당연히 말순이가 있는 상가밖에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선화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상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전팀장에겐 얘기를 들어 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상가 쪽 진입은 202동 벙커에 있는 시민들을 먼저 구출한 후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가능한 한 모든 시민들을 구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작전팀장이 단호하게 돌아섰다.
어쩔 수 없었다. 상가 쪽보단 202동 인근에 몸을 피하고 있는 시민들이 더 많았으니까.
병력이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둘 중 하나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지원 병력이 온다고는 하지만,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도 없고.’
선화가 불안하게 떨리는 손을 애써 움켜쥐었다.
조금 전, 군인들이 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상가 쪽 진입까지 걸리는 예상 소요 시간은 최대 1시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그 안에 오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F급의 광견쯤이야, 벙커 안에 있다면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벙커 안에 있을 때고, 지금처럼 준우가 외부에 있을 경우에는 말이 달라진다.
만약 다쳤어도 숨이 붙어 있다면 살릴 수는 있다.
비록 자신을 희생해야겠지만.
그러나 이미 죽었다면?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선화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것이다.
이게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도움받고 싶지는 않지만.’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게 남편의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 뭔 날이야? 우리 선화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네.
한 남자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감정이 북받친다.
“크, 큰오빠, 지금 당장 이쪽으로 좀 와 줄 수 있어?”
- 당장? 곤란할 것 같은데. 지금 던전 진입 직전이라.
“엄청 급하단 말야! 나 도와줄 사람 오빠밖에 없어!”
-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김 비서 보낼 테니까…….
자신도 모르게 선화는 울컥 눈물을 쏟아 냈다.
그리고는 애써 울음을 참아내며 소리쳤다.
“김 비서로는 안 돼. 꼭 오빠가 와야 돼.”
- 안 그러던 애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억지를 부려?
선화가 먹먹해진 숨을 힘겹게 들이켠 다음.
쌓인 걸 토해 내듯 말을 내뱉었다.
“……오빠가 오지 않으면, 나 죽을지도 몰라.”
어리광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거운 목소리.
당황한 듯 상대방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선화가 진정되기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 어디야, 지금?
흐느껴 우는 선화의 전화 한 통에.
길드 엑시스의 공격대가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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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연변이의 빛나는 오브 - 유니크 >
* 등급 : D+
* 속성 : 없음
* 효과 : [ + 마력 Lv.1 ]
* 특성 : [ 돌연변이 친구 Lv.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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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턴트 광견을 죽인 후, 나는 전리품을 수거했다.
일반 몬스터가 아닌 오직 ‘뮤턴트 마수’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는 아이템이었다.
‘돌연변이 친구?’
아이템 특성의 효과는 간단했다.
돌연변이와의 친밀감이 형성되는 효과.
정작,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그나저나, 왜 갑자기 추워진 느낌이 들지.’
아까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마지막 추위라도 오는 걸까.
“귀인분이 아니었다면 전 아마 여기서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제가 이 은혜는 살아 있는 동안, 아니, 죽어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중개사는 연신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중이었다.
내 목적은 말순이를 구하는 것뿐,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구, 구출대가 도착했어요!”
그때, 알바생이 소리쳤다.
‘구출대가 벌써?’
나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202동 쪽을 먼저 정리한 후에 이곳에 도착했어야 할 구출대였기 때문이다.
“오, 오빠!”
사람들과 몬스터 호텔 밖으로 나가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구출대와 함께 안전 지역으로 대피해야 했을 아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분명 오는 길에 마수들이 쫙 깔려있었을 텐데.
“다친 데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내는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괜히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나는 아내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그, 그런데 저거 엑시스 공격대 깃발 아냐?”
“엑시스? 진짜네! 엑시스가 여길 왜 왔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상황은 얼추 다 정리된 것 같고. 굳이 내가 올 필요까진 없었을 것 같은데.”
그저 걸음을 옮기는 것임에도 불구, 위압감과 분위기만으로도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는. 얼굴 곳곳의 흉터들 때문에 인상조차도 차가워 보이는 자였다.
‘저,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어쩐지.
아까부터 좀 추운 느낌이 들더라니.
“자네는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지.”
아내의 오빠이자, 5남매 중 첫째.
길드 엑시스의 부마스터 수재혁이었다.
“……예, 형님.”
회귀 전까지만 해도 나랑 길드 마스터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사람이었다.
부전자전.
내가 노력으로 S급 헌터가 되었다면.
그는 날 때부터 재능을 타고난 천재였다.
‘엑시스의 공격대가 고작 광견 사냥하자고 여기 왔을 리는 없고.’
형님의 뒤를 따라 상가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가를 중심으로 사방이 얼어붙어 있었고, 인근을 배회하던 광견 놈들은 이렇다 할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 동상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가 이끄는 서울권 공격대 ‘백호(白虎)’는 상가 안에서 구출된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중이었다.
A급 이상의 몬스터들만 상대한다는 공격대가 헌터 말단직이나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
지금 상황은 뭐랄까.
쥐새끼 한 마리 잡자고 핵미사일을 날린 격이다.
‘장인어른께서 날 구하자고 공격대를 보냈을 리는 없고.’
장인어른은 우리 결혼을 반대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이 나라 최고 길드 오너의 눈에 내가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을 테니.
아마 세상 모든 남자들을 데려다 놓아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표현은 서툴러도, 딸은 어느 누구보다 아끼셨으니까.’
하지만 반대를 무릅쓴 결혼 이후, 장인어른은 아내를 집안에서 내쫓듯 몰아냈다.
결혼 2년 차인 지금에도 나와 아내는 없는 사람 취급하고 계시는 중이셨다.
- 평생 내 도움 받을 생각 말거라.
경고인지, 협박인지 모를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채로.
그럼에도 불구 엑시스 공격대가 여기 와 있었다.
그것도 날 구하기 위해서.
“자네, 내가 지금 뭐 하다가 여기 왔는지 알아?”
형님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내 얼굴에 꽂혔다.
뭔진 모르지만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 때문에 급한 일을 제쳐 두고 왔을 테니.
“……죄송합니다.”
“자그마치 ‘수룡(水龍)의 호수’ 진입 직전이었어. 덕분에 던전 공략은 경기권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고.”
수룡의 호수.
A급 던전서도 이윤으로 따지자면, 최상위권을 다투는 곳들 중 하나였다.
“자넨 모르겠지. 수룡의 호수가 가진 의미가 얼마나 큰지 말이야.”
압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최소 스무 번 이상은 공략해 본 던전이니까요.
“수룡의 눈은 자그마치 10억. 모든 뿔과 비늘은 각 1억. 타 몬스터들과 달리, 수룡의 내장기관 역시 고가에 판매가 되지. 잠재적 가치를 모두 더한다면 족히 200억에 달하는 던전인데…….”
내가 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러시는지.
뭐,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원인은 나인 듯했으니.
“내가 그걸 제쳐 두고, 자네를 구하러 여기 왔어. 고작 광견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엑시스의 서울권 공격대가 움직였다고.”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말은 똑바로 해.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예?”
“자네 때문이 아니야. 선화 때문에 온 거지.”
아무튼.
자칫 장인어른의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의 부탁에 곧장 여기로 달려온 건 정말이지 대단하긴 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사람이어도.
하나뿐인 여동생에겐 유독 자상한 사람.
수룡의 호수를 제쳐 두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만 봐도 얼마나 동생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현실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남매의 모습이랄까.’
하지만.
세상에 없을 법한 비현실적인 ‘오빠’라는 존재가 지금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선화가 그러더군. 내가 오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툭툭-
형님이 내 어깨를 다독였다.
손이 어깨에 닿을 때마다, 차가운 얼음 바늘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저 손만 몇 번 가져다 댔을 뿐인데.
“……선화가 또 나한테 그런 말 하게 만들진 마.”
평소엔 냉철한 사람이 동생 문제엔 유난이란 말이지.
지금만 봐도, 흥분한 탓에 자신의 특성이 발휘되는 걸 모르고 있었다. 이맘때쯤엔 능력을 제어하는 게 그리 원활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만약. 오늘과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그땐 아버지께서 직접 자넬 만나러 오실지도 몰라.”
훗날이라면 모를까.
지금 장인어른을 만나 뵙는 건 최악 중의 최악이 상황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길드가 손해 본 책임에 대해 죽음으로 갚으라고 하실지도.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을 겁니다.”
나는 살며시 마력을 방출시켰다.
어깨의 통증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다.
또, 형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내게 이롭게 작용하게 될 테니까.
“퍽이나.”
형님이 내 어깨에 놓여 있던 손을 털어냈다.
내가 방출한 마력을 느끼기는 했을까.
“항상 엄마 품을 그리워하던 아이야. 자네가 잘 보살펴 줘.”
마력 양이 조금 부족했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가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의 얼음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 * *
포탈 시스템을 통해 서울권 지사로 복귀한 수재혁이 조금 전 봤던 준우의 눈빛을 떠올렸다.
-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을 겁니다.
자신에게 동생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다짐할 때도 그와 비슷했었다. 결혼에 찬성을 할 만큼, 나름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으로 내 동생을 채 간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마치 도둑놈 같은 느낌이랄까.
“아버지가 한 소리 하시겠군.”
공격대를 움직이는 것은 그의 권한이나, 아버지께 알려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사고 현장의 사람들을 통해 퍼져 나갔을 테니 말이다.
은밀하게 움직였으면 좋으련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다급했던 동생의 전화에 반쯤 정신이 나갔었으니.
똑똑-
그때,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와.”
김 비서였다.
아마 복귀하면서 부탁한 일을 벌써 다 끝낸 모양이다.
그녀가 태블릿을 책상 위에 올려 두며 말했다.
“요청하신 자료 전부 수집했습니다.”
“수고했어.”
태블릿 속, 자료를 살펴보던 수재혁이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해당 자료로 돌렸다.
“김 비서.”
“예, 말씀하십시오.”
“김 비서, 처음 각성했을 때 헌터 등급이 어떻게 됐었지?”
“E급이었습니다. 현재는 B+급이구요. 왜 그러십니까?”
수재혁이 괜히 자신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전, 준우의 어깨를 다독였던 그 손이다.
비록 많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방출된 마력을 느꼈던.
“혹시, 그 당시에 마력 방출하는 법 알았어?”
“마력 방출은 훈련이 필요한 고급 테크닉입니다. 처음 입문하는 C급 헌터들도 어려워하는데, 제가 당시에 어찌 그걸…….”
“그렇지? C급들도 버벅이는 게 정상이란 말이야.”
D급 이하와 C급 이상 헌터들의 격차는 천지 차이다.
마력 방출이 가능한 C급부터는 헌터 본인이 가진 힘의 최소 2배, 최대 10배 이상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투욱-
수재혁이 태블릿을 살짝 앞으로 밀었다.
김 비서에게 한번 봐 보라는 신호였다.
“내가 알기론 그자가 F급 정도의 각성자거든.”
“그런데요?”
“김 비서 눈에도 F급 정도로 보이나 해서.”
태블릿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김 비서.
그 안에는 조금 전 자신이 구해 온 자료가 들어있었다.
던전 쇼크가 발생한 사고 지역 내.
상가 쪽 CCTV 화면이었다.
“어때, 김 비서가 보기에?”
다수의 광견들을 단일로 상대하고 있는 남자.
그것도 고작 명패 하나만 들고, 능숙하게 전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숙련된 헌터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최소 C급으로 보입니다만…….”
그렇다는 건, 성장 잠재력이 최소 B급.
최대 A급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흐음, 그럼 곤란한데.”
여동생이 출가할 당시.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며 강조했다.
동생 부부에게 일절 관심 갖지 말라고.
‘이러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거.’
홧김이었겠지만, 장례 치를 날이 아니면 앞으로 볼 날은 없을 거라고까지 하셨는데.
아무래도 그 말을 어기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