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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가족의 힘은 위대했다 (5/246)

◈ 가족의 힘은 위대했다

- 평생에 재앙이 보이지 않는 사주네요. 이름을 빛내 줄 귀인이 나타나, 죽음에 이르러서도 살길을 열어 줄 팔자입니다.

공인중개사 강철은 얼마 전에 거금을 들여 보았던 사주팔자 풀이를 떠올렸다.

‘재앙이 없기는 개뿔! 곧 뒤지게 생겼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 강철은 할머니 신을 모신다는 무당의 말이 모두 허풍이라고 확신했다.

단지 내에 펼쳐진 상황은 재앙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쾅! 쾅! 쾅! 쾅!

몬스터 호텔 문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광견들이 머리로 문을 들이받는 소리였다.

“서, 설마 저게 부서지진 않겠죠……?”

“저 문이 조금만 더 버텨 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구출대가 올 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버텨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혀, 협회나 군경은? 출동했다는 말 아직 없어요?”

“방금 재난 안내 문자 왔어요. 후문 쪽부터 구출 작전 시작됐다고…….”

“그, 그럼 우리는? 거기 다 구출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소리잖습니까?”

강철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구출대가 도착하기 전에 광견에게 잡아먹힐 판이었다.

‘왜 하필 여기로 도망쳐 와 가지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벙커로 가는 길목엔 이미 광견들이 있었으니까.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곳을 선택한 게 여기였다.

‘망할 무당! 뭐? 귀인이 살길을 열어 줘?’

강철이 무당을 원망하던 그때.

창밖을 살피던 중년 여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구, 구출대가 온 것 같아요!”

“구출대가 벌써요?”

알바생이 기대에 찬 얼굴로 창가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내 다시 굳어지고야 말았다.

“아…….”

광견들에게 다가가는 한 남자가 보이기는 했지만, 절대 협회나 군경 소속의 헌터처럼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매체를 통해 혹은 자신이 직접 보았던 화려한 헌터들의 모습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달까.

“드디어 협회와 군경이……?”

강철이 알바생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나, 남자 한 명이에요. 우리처럼 일반인으로 보이구요. 게다가 비무장 상태이고…….”

“한 명? 당장 무장한 군대가 와도 모자랄 판에!”

희망이 절망이 되어 버린 순간.

강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

뒤늦게, 직접 창밖의 남자를 확인한 강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러세요? 아시는 분이에요?”

강철은 대답 없이 계속 창밖을 응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밖에 있는 남자의 손에 들린 명패였다.

“서, 설마……?”

희미하지만 푸른색의 빛이 나는 명패.

눈을 좀 더 크게 뜨자, 명패 속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귀, 귀인!”

명패 속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강철이 문득 소리쳤다.

“예? 귀인이요……?”

알바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밖의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귀인이라기보단, 곧 고인이 될 사람에 가까워 보였기에.

“귀인입니다, 귀인!”

계속해서 귀인이라고 소리치는 강철의 모습은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죽음이 임박하자, 사람이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어라?”

하지만 알바생의 그런 착각은 금세 사라졌다.

“뭐, 뭐야, 저 남자……?”

알바생의 시선이 향한 창밖.

남자가 휘두른 명패에 광견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 * *

몬스터 호텔로 진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입구 쪽 계단 앞에 모여 있던 광견 여덟 마리를 처리했고, 더 이상의 방해꾼은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성능이 좋네?’

나는 손에 쥔 명패를 힐끗 바라보았다.

비록 각성자 전용 아이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급한 대로 쓸 만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좀 아쉽긴 하네. 1회차와 같은 수준이었으면, 더 수월했을 텐데.’

습득과 학습 능력을 높여 주는 성장 특성 덕분에 미약하게나마 마력을 다룰 수 있었지만, 회귀 전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서 죽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알바생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와 중년 여자가 내게 연거푸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저어, 혹시 귀인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호텔 안에서 말순이를 찾고 있는데, 50대 중년 남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귀인이요? 저요?”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품 안에서 명함을 꺼냈다.

“존함을 알려 주시기 어렵다면, 제 이름이라도 기억해 주십사…….”

명함 속 이름은 강철.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명패에 박힌 이름과 똑같았다.

더군다나 가슴팍에 공인중개사 배지까지 달고 있었다.

“전준우라고 합니다. 의도치 않게 제가 중개사님 명패를 좀 망가뜨렸네요.”

광견들의 피가 잔뜩 묻었다.

날카롭던 명패 모서리는 어느새 무뎌져 있기도 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래도 명패에 박힌 제 이름을 빛내 주시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위험에서 저를 구해 주시기도 하셨구요! 명패야 얼마든지 다시 파면 되는 거고…….”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 꽤 많으신 분 같았다.

호텔 안쪽으로 향하는 내내 중개사는 계속 내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제가 얼마 전 무당을 통해 사주를 봤었습니다! 그때 무당이 하는 말이, 이름을 빛내 줄 귀인이 나타나 살길을 열어 준다고 하더군요!”

“아, 예…….”

“처음엔 긴가민가했었는데, 오늘 귀인께서 제 앞에 나타난 걸 보고 그 무당이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감격에 젖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난 그저 말순이를 데리러 왔을 뿐인데.

중개사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호텔 안쪽 울타리를 살폈다. 여러 반려몬들 사이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나를 반겼다.

컹컹컹-!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달려오는 말순이.

15년 만에 보는 녀석이었다.

“……오랜만이네.”

말순이가 죽었던 곳에서, 말순이를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묘하기도 하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이제 집에 가자. 엄마가 엄청 기다리고 있어.”

녀석이 내 손을 핥자, 바깥 공기에 차가워졌던 손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귀인께서도 이 호텔에 반려몬을 맡기셨었군요. 혹시 여기 아파트 예비 입주자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도 자주 만날 일이 생기겠군요!”

여전히 중개사는 내 옆에서 혼자 떠드는 중이었다.

과장을 좀 섞자면, 귀에서 피가 날 정도다.

“나중에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이신 만큼, 제가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중개사가 말을 이어 가려던 그때.

“꺄아아아악!”

호텔 입구 쪽에서 중년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말순이의 털이 곤두섰고, 나는 안쪽에서 나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입구 쪽에 몸을 떨고 있는 중년 여자와 알바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는 두 마리의 광견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쩐지, 몇 놈이 비더라니.’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몬스터 호텔을 습격한 광견의 수는 총 열 마리였다. 개중 내가 이곳에 오면서 여덟 마리를 처리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뒤늦게 두 마리가 더 나타난 것이었다.

‘아까 그놈들보다 몸집이 좀 크다.’

한 놈은 이전 녀석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나머지 한 놈은 달랐다.

약 1.5배가량 몸집이 컸고,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이마 한가운데에 작은 뿔이 나 있었다.

‘뮤턴트인가?’

간혹 동족에 비해 능력이 뛰어난 녀석들이 출현하고는 하는데, 그런 녀석들을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한 등급 정도 위인 것 같은데.’

나는 말순이의 머리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다소 흥분한 모습이었기에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서였다.

갑자기 광견들에게 달려들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아무래도 제가 명패 하나 새로 파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다시금 명패에 마력을 주입시킨 순간.

크르르릉!

광견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직감적으로 내가 살의를 보였다고 생각한 듯했다.

둘 중 몸집이 큰 녀석이었고, 예상했던 대로 놈은 한 방에 나가떨어지진 않았다.

퍼억-!

놈이 살짝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뿐, 머리를 털어 내며 재차 으르렁거렸다.

‘충격이 전혀 없나?’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어쩌면 한 등급이 아닌, 두 등급 위의 녀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르르릉!

이번엔 두 놈이 동시에 몸을 날린다.

먼저 정면에서 달려든 큰놈에게 명패를 휘둘렀다.

퍼억-

동시에 측면을 파고든 작은 놈은 급한 대로 발을 사용해 밀쳐 냈다.

저만치 떨어져 가소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

큰 놈은 마치 내가 자신의 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 아저씨. 저분이 아저씨가 말한 귀인 맞아요? 어째 좀 불안해서…….”

“맞을 겁니다! 분명히 내 사주팔자에 이름을 빛낼 귀인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나를 구한다고…….”

“그 무당, 용한 거 맞죠?”

광견들이 기회를 엿보며 배회하고 있는 사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떨려 오는 게 들려왔다.

“그, 그럴 겁니다.”

중개사가 말을 더듬었다.

조금 전까진 귀인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조금 쫄리긴 하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아무렴 이전보다 몸집이 더 큰 녀석이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도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 예상대로라면 10분 뒤, 구출대가 도착할 거다.

따라서 10분만 버티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요. 방해되니까.”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광견들의 타깃이 그쪽으로 바뀌기라도 하면,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부화부순 스킬의 남은 지속 시간은 25초.’

진짜 문제는 스킬 지속 시간인데.

이것마저 모두 소모하게 되면, 자칫 상황이 아주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일단 작은 놈부터.’

방해꾼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나마 작은 놈이라면 몇 초 안에 끝낼 수 있을 테니까.

“힘내십시오! 내가 진짜 여기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귀인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 아니, 좋은 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보, 복비도 안 받겠습니다!”

중개사의 간절한 응원이 들려옴과 동시에.

탐색을 마친 광견들이 다시금 울부짖기 시작했다.

크르르릉!

고맙게도 이번엔 작은놈이 먼저 달려들어 주었다.

난 명패에 온 힘을 실어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과 마찬가지로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갔고, 재차 명패의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큰놈의 이빨 사이에 처박았다.

크르릉!

녀석이 저항하며 이빨로 명패를 부수려 들었고.

내 눈앞엔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가족 구성원 슬롯이 추가 개방됩니다. ]

아마도 조금 전 작은 놈을 처리하면서 레벨이 오른 모양.

레벨이 올랐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홀로그램이었다.

[ ‘말순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할 수 있습니다. ]

[ ‘말순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하시겠습니까? ]

‘이, 이게 가능하다고?’

특성 가장의 능력치 상승 효과는 주변에 가족이 있을 경우에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난 목록에 추가할 수 있는 대상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말순이를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고.

그런 말순이 또한 당연히 우리 가족이었는데.

[ ‘말순이’가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됩니다. ]

덕분에, 다소 버거울 것 같던 상황 속.

예상치 못한 여유가 생겨버렸다.

“중개사님. 아까 분명 복비 안 받는다고 했습니다?”

부화부순의 남은 지속시간은 고작 10초.

하지만, 특성 효과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씩 더 상승하게 된 지금. 놈을 처리하는 데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찌직-

명패를 쥔 손에 더 힘을 주자, 녀석의 입이 찢어진다.

찢어진 범위가 점점 더 넓혀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크허허허헝!

놈이 격하게 반응하며 울부짖어댔다.

그리고 난 재빨리 놈의 입에서 명패를 빼낸 뒤, 그대로 녀석의 목을 걷어찼다.

커헝-

지금까지와는 달리, 꽤 충격이 컸는지 녀석이 비틀거리는 게 보였다. 녀석을 처리할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향해 명패를 내던졌다.

콰직-!

마력을 머금은 명패가 놈의 머리를 관통하고 벽에 박혔다.

부화부순의 남아 있던 10초가 지났고, 녀석은 죽었다.

새삼 느끼는 건데.

가족의 힘은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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