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강철의 이름으로 (4/246)

◈ 강철의 이름으로

뒤늦게 벙커에 진입하려던 남자와 그를 쫓던 광견.

그로 인해 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실랑이는 내 발길질 한 번으로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자, 자세히 못 봐서 그런데, 방금 그쪽이 한 겁니까?”

“단 한 방에 아까 그놈 머리통을 부순 것 같았는데……?”

벙커 문이 완벽하게 닫히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그런 것 같네요.”

대답을 마치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자 다들 어안이 벙벙한 듯해 보였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 모두가 온 힘을 다해 간신히 버텨냈던 광견의 괴력이었다.

그런 녀석의 머리통을 한 방에 터뜨려 버렸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놀란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정작 나도 놀랐다.

< 각성자 정보 >

* 이름 : 전준우 / Lv.1

* 나이 : 28세

* 칭호 : 없음

* 전용 특성 : [ 가장(家長) Lv.1 ] [ 성장(成長) Lv.1 ]

* 전용 스킬 : [ 부화부순(夫和婦順) Lv.1 ]

* 능력치 : [ 민첩 Lv.1(+2) ], [ 체력 Lv.3(+2) ], [ 근력 Lv.3(+2) ], [ 마력 Lv.1(+2) ]

! [ 가장(家長) ] 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 레벨이 ‘1’ 상승한 상태입니다.

! [ 부화부순(夫和婦順) Lv.1 ] 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 레벨이 ‘1’ 상승한 상태입니다.

서둘러 벙커로 피신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상태창.

뒤늦게 확인한 나의 각성자 정보가 내 기억과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나 또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1회차 당시 내 전용 특성은 ‘성장(成長)’.

F급 헌터였던 나를 S급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특성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면 S급은 꿈도 못 꿨을 거다.

한데, 지금은 거기에 하나 더.

‘가장(家長)’ 이 추가되어 있었다.

< 전용 특성 : 가장(家長) Lv.1 >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가족에게 힘을 얻습니다.

반경 3m 내 ‘가족’이 인지될 시,

모든 능력치 레벨을 한 단계씩 상승시킵니다.

* 가족 구성원 목록 (1/2)

1. [ 수선화 / 27세, 배우자 ]

2. [ 슬롯 사용 불가 / 2레벨 달성 시 개방 ]

단순히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특성 효과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만약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목록’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나는 특성을 살핀 뒤, 바로 스킬을 확인했다.

특성과 마찬가지로 1회차와는 전혀 다른 스킬이 눈에 띈다.

< 전용 스킬 : 부화부순(夫和婦順) Lv.1 >

부부 사이가 화목함을 뜻합니다.

아내와 접촉했던 시간의 1/10만큼, 해당 스킬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 레벨을 한 단계씩 상승시킵니다.

* ‘공격 의사’를 표출할 시, 자동발동됩니다.

* 지속시간은 발동 시점부터 소모됩니다.

* 남은 지속시간 [ 00 : 02 : 02 ]

전용 특성과 스킬의 효과로 각각 1레벨, 도합 2레벨씩 능력치가 상승한 상황.

게다가 내가 공격한 부위는 마수들의 보편적 급소인 녀석의 머리였다.

아마 조금 전 광견의 머리가 한 방에 터져 나간 건,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듯했다.

근력에 비해 체력이 현저히 낮은 마수의 특성도 한몫했을 거고.

“오빠… 괜찮은 거야?”

어느새 아내가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아내는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괜찮아.”

나는 그리 말하며 다시금 스킬창을 확인했다.

내가 스킬 사용 중지를 속으로 원하자 지속 시간이 더 이상 줄지 않았다.

굳이 공격 의사를 표출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시점에 발동과 정지가 가능한 듯했다.

‘남은 시간도 그대로 세이브되는 것 같고.’

1회차보다 유용한 특성과 스킬들이 더해졌다는 사실이 상당히 든든하게 느껴졌다.

“다친 데는 없는 거지?”

혹시나 하는 마음인지, 아내는 내 다리 쪽을 살폈다.

광견의 머리가 터지며 튀었던 피가 그곳에 잔뜩 묻어 있었다.

“걱정 마. 나 진짜 괜찮으니까. 오히려 나는 당신 발이 더 걱정인데.”

“살짝 접질린 것뿐이야. 며칠 지나면 금방… 어?”

“왜 그래?”

“가, 가방이 없어. 분명 아까 전까지 메고 있었는데.”

아마 내게 업혀 오는 와중에 어디에 흘린 모양이었다.

기억에 의하면 엄청 아끼던 명품 가방 중 하나였다.

처남에게 선물 받았다고 했었나.

“내가 하나 새로 사 줄게.”

“돈 아깝게. 괜찮아. 우리 둘 다 무사하게 해 준 대가라고 생각하지, 뭐.”

나는 애써 미소짓는 아내의 손을 더욱 움켜쥐었다.

얼마 만에 잡아 보는 손이던가.

일에 치여, 아내의 손을 잡아줄 시간조차 없었던 나였다.

‘옛날에 연애할 때 기분이 드네.’

문득 드는 생각에 나는 잠시나마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내게 왜 1회차와는 다른 능력이 생긴 것인지, 그에 대한 고민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은혜를 갚겠다던 해피의 말처럼, 일단은 녀석이 날 도와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여보, 말순이 걱정되지?”

아내는 내 질문에 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닌 척하지만, 속은 이미 불안함으로 가득 찼을 거다.

지금은 아이를 유산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거기에 말순이의 죽음까지 겹쳐 우울증이 극심해졌던 아내였으니까.

그렇기에 말순이만은 꼭 구해 내야만 했다.

가족을 잃는 고통과 슬픔.

그것들을 아내에게 또다시 안겨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한테는 오빠 목숨이 더 소중해.”

마치 내가 말순이를 구하러 갈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는 듯한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나도 내 목숨은 소중해.”

농담처럼 한 얘기였지만 진담도 제법 섞여 있었다.

내가 죽으면, 아내 또한 그렇게 될지 모르니.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스킬의 지속 시간도 조금씩 늘어 가고 있었다.

* * *

내 기억에 의하면, 협회와 군경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금부터 약 삼십 분 후.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후문 쪽부터 작전 수행을 시작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기억 속, 말순이의 사망 추정 시간은 그들이 도착하기 전이었으니까.

“다행이야. 여기에 의사분이 계실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의사 선생님께서 아내의 다친 발목을 봐주기로 했다.

제대로 된 치료는 어렵겠지만, 급한 대로 응급 처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료받고 있어.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볼일? 무슨 볼일?”

아내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신 가방 좀 찾아보려고.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아내를 벙커 구석에 눕힌 뒤, 문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가장 늦게 벙커에 진입했던, 광견 한 마리를 끌고 왔던 바로 그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경비원 유니폼을 입은 그는 벙커에 들어온 직후부터 계속 오른쪽 팔을 지혈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쫓아오던 광견에게 팔을 물린 모양.

나는 경비원의 상태가 진정되길 기다렸고.

지금이 도움을 요청하기 딱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갖고 계신 통신기로 아파트 보안 시스템 접속 가능하십니까?”

아까부터 경비원이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통신기.

내겐 그게 필요했다.

“가능은 합니다만, 아파트 보안 시스템은 왜……?”

“단지 내 CCTV를 확인하고 싶어서요. 상가 쪽 상황도 볼 수 있습니까? 몬스터 호텔 내부를 볼 수 있으면 더 좋구요.”

경비원은 잠시 머뭇거렸다.

민간인에게 함부로 보여주어선 안 되기 때문이겠지.

“여, 여기 몬스터 호텔 내부 CCTV 화면이요.”

조금 전 광견의 머리통을 터트려 버린 덕분일까.

그는 쭈뼛거리면서도 내게 통신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 속, 말순이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통신기 좀 빌립시다.”

나는 아내가 치료받고 있는 틈을 타 벙커를 빠져나왔다.

* * *

벙커에서 몬스터 호텔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10분 거리.

지금의 내 신체 능력을 이용해 더욱 속도를 낸다면, 1분 안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놈들!’

가는 길목 곳곳에서 공격해 오는 광견들.

통신기의 CCTV 화면을 통해 광견들이 가장 적은 길목을 선택했지만, 그것 역시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열 마리쯤 되는 광견들과 마주쳐야 했으며, 일일이 상대를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특성 효과만 받았어도 더 빨리 올 수 있었을 텐데.’

처음 벙커 안에서 광견의 머리를 터뜨렸을 땐, 특성과 스킬의 중복 효과로 능력치 레벨이 2단계씩 상승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가 없어서 특성 효과를 못 받는 상황.

능력치가 전보다 고작 1단계 하락했음에도 불구, 체감한 차이는 눈에 띄게 컸다.

발길질 한 방에 나가떨어지던 놈들에게, 이제는 ‘세 번씩’ 급소 공격을 가해야 했으니까.

만약 부화부순 스킬의 효과로 능력치가 상승하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본래 이맘때쯤의 나라면, 광견 한 마리 상대하는 것조차 버거웠을 테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해피가 준 인생 2회차 맞이 기념 선물.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가 선물 받은 이 능력이 행운이라는 사실엔 틀림이 없었으니 말이다.

‘무기로 쓸 만한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2층 몬스터 호텔과 인접한 부동산 사무실이 보였고, 잠시 몸을 숨길 겸 그곳으로 향했다.

이미 광견들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듯, 문과 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는 장소였다.

‘다행히도 아직 호텔 내부는 안전한 것 같고.’

통신기 속 CCTV 화면엔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말순이와 사람들, 그리고 다른 반려몬들도, 나름 평온한 상태였다. 저들이 모두 사망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마, 저 녀석들 짓이겠지.’

상가 앞쪽을 배회하는 광견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건 보고서에 의하면, 저놈들이 바로 몬스터 호텔을 지옥으로 만든 원인이었다.

‘음?’

바닥을 보며 어슬렁거리던 광견 한 마리가 대뜸 고개를 쳐드는 게 보였다. 녀석의 시선이 2층에 있는 몬스터 호텔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왜 저쪽을……?’

사람들과 다른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광견들에겐 식량 창고나 마찬가지.

사실,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법도 했다.

하나둘 상가 계단 입구로 모여드는 녀석들.

확신을 갖진 못했는지 의아한 듯해 보였으나, 이제 슬슬 호텔 쪽을 향해 움직일 것 같았다.

‘부화부순 스킬의 남은 지속 시간은 약 1분.’

벙커를 나서기 전.

아내와 좀 더 붙어 있었던 덕분에 스킬 지속 시간이 더 늘기는 했지만, 오는 길에 광견들을 상대하며 1분가량을 소비했다.

이제 1분 안에 눈앞의 놈들을 무조건 제거해야만 했다.

지속 시간이 모두 소모되면, 지금보단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버거울 수도 있을 테니까.

크르르릉!

사냥 시작을 알리듯 광견 한 놈이 울부짖었다.

몇 마리가 먼저 계단 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 또한 마음이 더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드륵-

서둘러 몸을 움직이던 그때.

발끝에 뭔가가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쓸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야 좀 괜찮은 걸 발견한 것 같았다.

< 공인중개사 ⼁ 강 철 >

단단함이 느껴지는 이름의 명패였다.

나는 조심스레 명패를 손에 쥔 다음.

스르륵 -

내가 가진 ‘Lv.1(+1)’의 마력을 방출시켰다.

그리고 방출된 마력을 명패에 주입시켰다.

명패 주위로 푸른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사이.

‘이 정도면…….’

저만치 광견 한 놈은 문득 나를 발견하곤 으르렁거렸고.

‘다시 한 방에 보낼 수 있겠는데?’

내겐 강철보다 단단한 무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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