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많을수록 강해져
글 김원두
소개
< 전용 특성 : 가장(家長) Lv.1 >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가족에게 힘을 얻습니다.
“내가 가족이 많을수록 강해진대, 여보.”
“그럼, 가족을 늘리면 되잖아?”
회귀 전, 가족을 잃었던 나에게.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 성공해야 하는 이유
부부가 일 년 만에 함께 하는 아침 식사였다.
야근, 출장, 그리고 훈련.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매번 아침을 거르던 준우가 모처럼 휴가를 낸 덕분이었다.
휴가 하나 내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겐 심히 버거운 일이었다.
대한민국 대기업이자, 최고의 길드인 ‘엑시스(Axis)’.
그는 길드의 부마스터로서,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쁜 헌터 중 한 명이었으니까.
“아침 먹고 뭐 하고 싶어? 커피 한잔하고, 오랜만에 같이 공원에서 좀 걸을까?”
“뭐든 좋아.”
“산책하고, 쇼핑 어때? 점심도 나가서 먹고.”
“쇼핑? 오빠, 쇼핑하는 거 싫어하잖아? 웬일이래.”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
“좋아.”
선화는 진심이 담긴 미소로 화답했다.
생일이나 선물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17년.
약 2년의 신혼 기간을 제외하고, 15년 동안 오늘처럼 남편과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손에 꼽는다. 그만큼 바쁜 사람이었기에.
단 하루지만, 그런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선화였다.
“해피도 데려갈까?”
선화의 시선이 소파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불편해 보이는 오른쪽 다리를 품에 안은 채.
“해피?”
E급 몬스터로 ‘반려몬’ 허가를 받은 녀석이었다.
태생이 온순하여, 가정집에서 많이 키우는 종이기도 했다.
“괜찮겠지? 데리고 나가도?”
안타깝게도 해피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따로 병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너무 든 탓이다.
병원에서도 딱히 손 쓸 방도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 해피도 데리고 나가자. 혼자 두는 것보단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네.”
15년 전.
소중한 가족이자, 반려몬이었던 ‘말순이’ 가 ‘던전 쇼크’ 라는 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필이면 그때가 선화가 유산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던 선화는 얼마 후, 오랜만에 밝은 표정으로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왔다.
당시 유기몬이었던 그 고양이가 바로 해피였다.
해피를 입양하길 원하는 선화였지만, 준우는 섣불리 동의할 수가 없었다.
‘오드 아이.’
서로 다른 색깔의 두 눈동자.
겉모습만으로 해피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했던 건 사실이었다.
- 고양이는 영물이라는 말도 있잖아, 오빠. 이 아이는 특별하게 생긴 만큼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해피의 입양을 결정한 뒤, 선화의 우울증이 호전된 건 정말이지 다행인 일이었다.
과거의 좋지 않은 일들로 유독 해피에 대한 애착이 강하긴 했지만.
“그럼, 반려몬 동반 쇼핑몰 알아볼까? 일산 쪽에 새로 생긴 곳 있다던데.”
선화도 오늘 하루는 회사에 휴가를 낸 상황.
해피를 포함해 온 가족이 다 함께 외출을 하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다소 들뜬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오늘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준비하고 나가자. 일단 밥부터 마저 먹고.”
준우가 막 젓가락을 들어 올린 그때였다.
식탁 위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반찬을 집으려던 그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시선이 전화가 걸려 온 핸드폰으로 옮겨졌다.
‘박 부장?’
경기권 지휘 통제부 책임자로, 해당 지역 내 길드가 독점하고 있는 던전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자였다.
‘던전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박 부장이 개인 핸드폰을 통해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이 휴가를 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난 준우가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살며시 방문을 닫고, 전화를 받았다.
- 부마스터님. 모처럼 휴가 중이신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괜찮아. 말해.”
- 길드 내 저희 경기권이 보유하고 있는 A급 던전에서 ‘업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업턴(Upturn).
던전의 등급이 상승하는 현상이다. 보기 드물게 이와 같은 현상 혹은 반대 경우의 다운턴(Downturn)이 일어나곤 했었다.
“A급 던전에서의 업턴이라면, 당연히 현재 던전 등급은 S급일 거고?”
- 예, 그렇습니다.
희귀한 A급 던전인 만큼, 업턴 현상으로 등장한 S급 던전은 준우에게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공략을 해 낸다면 길드는 막대한 이윤을 취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곧 그에게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서울권 공격대에 지원 요청을 한다면, 타 길드의 협조를 받지 않아도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내가 투입되면, 서울권 지원까지는 받을 필요가 없지 않나?”
길드 마스터를 제외하고, 길드 내 유일한 S급 헌터는 준우뿐이었다. 또한, S급 헌터 한 명은 서울권 공격대 전체의 전력과 대등했다.
- 예? 그, 그렇긴 합니다만, 부마스터께서 번거로우시지 않겠습니까? 사모님과 중요한 기념일로 휴가를 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박 부장의 말에 준우의 표정이 어두웠다.
단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나 아내였다.
‘하필이면 또 선화 생일날에.’
오늘 하루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을 한 상황.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아내의 생일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 던전으로 향한다면, 아내의 실망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빨리 결정을 내렸다.
“괜찮아, 지금 바로 갈게. 공격대 대기시켜.”
통화를 마친 준우는 방 안에 있던 아공간 아티팩트를 챙겼다. 그가 사용하는 각종 장비가 담겨 있는 가죽 가방 모습의 아이템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선화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가야 되는 거야?”
가죽 가방을 메고 있는 준우의 모습은 익숙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갑자기 일을 하러 가는 것 또한 익숙했고.
“……또 가야 되는 거구나.”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주 겪는 일임에도 매번 낯설고 먹먹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미안해.”
이런 상황에 준우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 * *
경기도 파주시.
길드 엑시스 관리하에 있는 옛 주택 단지.
보고 받은 던전이 위치한 장소였다.
“최 대리! 기자들이 현장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 거야?”
“그, 그게, 업턴 현상 때문에 던전 밖으로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서쪽 결계 일부를 파손시키는 바람에…….”
“결계 뚫렸으면 바로 보수했어야지!”
“현장 결계 담당자 말로는 몬스터들부터 처리하느라, 시간이 지연됐다고… 죄,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건 없고. 가서 결계 담당자 불러와. 박 주임 너는 빨리 기자들 밖으로 내보내고. 저 인간들은 목숨이 여러 갠가? 몬스터가 무섭지도 않나 봐?”
새벽에 발생한 문제로 현장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안전을 위해선 결계 보수와 민간인 통제를 완벽하게 해야 하기에, 당장은 던전 진입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닌지라, 박 부장 선에서 해결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말이다.
준우는 상황이 정리될 때를 기다리며, 관리부 사무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면서.
⌜몸조심해. 다치지 말고.⌟
선화에게서 온 문자를 다시금 확인한 그의 표정이 착잡하게 굳어졌다.
차라리 서운하다며 화를 내면 좋으련만. 아내는 지금껏 그 흔한 잔소리 한번 없었다.
“간만에 휴가 내셨다면서요?”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을 집어넣은 준우가 문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새삼스럽게 존대는. 여기 우리 둘밖에 없어요. 평소 하던 대로 해요.”
“어쩌면 차기 길드 마스터가 되실지도 모르는 분인데, 이제 슬슬 존칭을 사용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경기권 공격대장, 이건형.
준우와는 친형제처럼 우애가 두터운 자였다.
“존칭하기 싫어하는 거 티 납니다. 저도 어색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냥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하세요.”
“크흠! 그렇게 많이 티 나냐?”
이건형이 머쓱하게 웃으며 준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의 표정을 빤히 살피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휴가 냈다며?”
“네, 와이프 생일이라.”
“근데 왜 여기 있냐? 집이든, 어디든 간에 제수씨랑 생일 파티라도 해야 될 거 아냐? 설마, 여기서 생일 파티 하려는 건 아닐 거고.”
사실, 앞뒤 맥락이야 안 봐도 뻔했다.
준우가 현장에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였다. 아주 혹시나 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대답은 역시나였다.
대충, 이번에도 와이프 생일 쌩깠다는 뜻.
이건형의 해석대로라면 그러했다.
“그렇게 되긴 무슨. 내가 대충 기억하는 것만 해도, 제수씨 생일에 뛰쳐나온 게 이번이 열 번 가까이 될 거다. 결혼기념일까지 포함하면 열 번은 당연히 넘을 테고. 그렇게 태연하게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부마스터님?”
“…….”
“집에 들어가긴 하냐? 요즘도 길드 숙직실에서 지내지?”
“…….”
“통화는 자주 해? 아님, 뭐 문자라든가?”
“…….”
“제수씨가 부처지. 나라면 벌써 이혼했다.”
아내도 하지 않는 잔소리가 이건형에게서 쏟아졌다.
“지금껏 기다려 준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에요.”
이건형의 잔소리가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사실상,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아내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기도 했다. 정말로 가족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너 제수씨 생일 선물 챙겨 준 적은 있냐?”
“선물이야 매번 챙겨 줬었죠. 이번에는 같이 쇼핑하면서 사 주려고 했었는데…….”
“늦지 않았어, 인마.”
“늦지 않다니요?”
“쇼핑 가라고. 가서 제수씨 선물도 사 주고…….”
준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처음 던전과 몬스터가 등장하고, 역대 다섯 번째로 출현한 S급 던전이에요. 그만큼 희귀하고, 또 위험하죠.”
때문에, S급 헌터인 본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너 없어도 돼. 지금이라도 서울권 애들 지원받으면 충분히…….”
“서울권 지원을 받게 되면, 실적을 그쪽하고 나누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적 좀 나누면 어때? 차기 길드 마스터로 이미 네가 내정된 거 아니었어?”
현재, 길드 마스터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건형의 말대로 이미 길드 마스터는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인 준우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길드 마스터이자, 엑시스 그룹의 회장인 수태광은 그 무엇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고, 준우에게 길드를 이끌어 갈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물며, 길드 마스터의 유일한 사위가 너잖아? 굳이 여기서 더 발악할 필요가……?”
“……있어요. 경쟁자가 길드 마스터인 장인어른의 장남이니까.”
준우에겐 형님이자, 아내의 친오빠.
그가 서울 본사 본부장이며, 부마스터이기도 했다.
경기권은 준우가 지사장으로 있었고, 지역 내 발생한 모든 것의 우선순위는 관리자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경기 지역 내 발생한 업턴 현상의 던전도 준우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타 지역 혹은 타 길드의 지원을 받는 것 역시 준우의 선택에 달린 문제였다.
“이사회에선 저를 반대하는 분위기예요. 형님이 장인어른의 핏줄이니,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그쪽과 연이 깊었던 탓이겠죠.”
“이번 건 성공하면? 이사회 분위기를 네 쪽으로 바꿀 수는 있고?”
“최소 절반 이상은요.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보려구요.”
짧게 한숨을 내쉰 이건형이 준우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준우가 이토록 일에 대한 강박 관념이 강한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너 엑시스의 부마스터야. 이제 옛날처럼 열등감이나 자격지심 같은 거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요. 저는 아직도 한참 부족해요.”
준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습관처럼 옛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 후 2년쯤 됐을까.
운영하던 가게가 망해, 경제적으로 허덕이고 있었을 때.
형님의 배려로 타 길드에 사무직으로 취직을 하게 됐었다.
당시에도 헌터였던 준우였지만, 만인에게 우대받는 현장직으로 배정되기엔 많이 부족한 등급이었다. 그땐, F급이었으니까.
- 이번에 들어온 신입 완전 빡통이던데?
- 일도 제대로 못 해. 헌터 등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 낙하산이래. 엑시스 길드 마스터 사위라는데?
회사 생활 한 번도 안 해 본 준우가 일을 잘할 리는 만무했다.
준우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멸시와 경멸이 숱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를 자극했다.
참을 만한 자극이었다.
폭탄을 쌓아 가고는 있으나, 터지지는 않을 정도.
딱 그 정도. 적어도 거기까진 그랬다.
- 여자 하나 잘 꼬셔서, 인생 존나 쉽게 사는구나?
- 인물 훤칠하잖아. 시발, 일단 생기고 봐야 된다니까.
폭탄이 터져 버린 것은 그때부터였다.
자격지심이라는 폭탄에 열등감이 불을 지폈다.
대기업 오너에 버금가는.
엑시스 길드 마스터의 하나뿐인 딸.
그런 아내의 유일한 흠이라면.
‘바로, 나.’
장인어른의 반대를 무릅쓴 결혼.
그 결혼 이후에, 한없이 작아 보이는 자신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F급 헌터로 각성했던 자신을 S급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미친 듯이 발악했다.
많은 시간을 쏟았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퍼부었다.
아내에게 어울리는 남편이 되기 위해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만들어 낸 목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너 병원은 가 봤냐? 내가 전에 정신과 진료 한번 받아 보라고 했었잖아.”
준우는 이건형의 목소리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병원 갈 시간이 어디 있어요. 일해야지.”
“됐다, 말을 말자.”
이건형이 혀를 내둘렀다.
계속 대화를 이어 가다간, 자신마저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워커홀릭. 그거 정신과적인 병명은 아니라는데, 그래도 꼭 한번 가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죽어라고 출셋길만 좇다 보니, 내 가정 박살 난 건 한참 후에나 보이더라.”
“……?”
“내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방식이 잘못됐다고.”
“경험담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제수씨한테 잘해. 나처럼 일만 좇다가 이혼당하지 말고, 새꺄.”
“이혼 안 당하려면, 오늘 생일 선물은 꼭 사 줘야겠네요.”
“에휴…….”
준우의 농담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침묵을 유지할 틈도 없이, 어느새 고요한 바깥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던전 진입 준비가 다 끝난 모양.
“결계 보수 완료됐습니다.”
박 부장의 보고에 준우도 슬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아공간 아티팩트인 가죽 가방을 열어, 날카로운 장검을 꺼내 쥐었다. 검 손잡이가 익숙하게 그의 손에 감긴다.
“기자들은?”
“전부 결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준우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미 대열을 갖춘 공격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여 명에 달하는 공격대원들.
대열 앞에 선 준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찍 끝내고 집에 갑시다.”
선두에 선 준우의 뒤를 따라 공격대가 던전 안으로 움직였고, 그 모습을 결계 밖의 기자들이 찍어 댔다.
순식간에,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대 다섯 번째 S등급 던전의 등장부터.
엑시스 차기 길드 마스터의 행보에 관한 것들까지.
⟪길드 엑시스, 경기권 공격대 전원 사망⟫
그리고 그 많은 기사들은.
단 하나의 기사에 모두 묻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