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30/35)

제5장

남영진은 이곳이 익숙해 보였고, 자연스레 자신의 커피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제가 뵀던 검사님들과는 이미지가 조금 다르군요.”

녀석이 나를 보는 눈빛은 마치 흥미로운 물건을 보는 듯했다.

유명한 연예인을 마주보고 있는 듯한 눈빛.

딱 그런 눈빛이었다.

“검사라는 직업의 이미지는 정형화된 게 아닐 텐데요.”

“하하, 역시 뿜어내는 기가 장난이 아니시네요.”

“무슨 기를 내뿜는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 오해는 안하셨으면 합니다. 검사님이 내뿜는 카리스마가 인상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니까요.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남영진이라고 합니다.”

남영진은 왼손을 오른쪽 가슴에 댄 채 오른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한참동안 녀석의 눈빛만을 바라볼 뿐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이거 무안하군요. 첫 만남부터 한 검사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내 눈빛을 이해한 남영진은 내민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남자들끼리의 흔한 기싸움.

술자리에서, 혹은 갓 입소한 훈련소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수컷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은 그런 상황들과 조금 다르다.

자기 과시나 자존심을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계약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였으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오해 마세요. 저는 검사님을 꽤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쪽을 처음 보는데. 그쪽은 저를 좋아한다는 게 이상하군요.”

“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검사님을 다 좋아하죠. 정의롭고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거악들을 물리치는 검사이니까요.”

얼핏 보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나를 존중해 주는 것 같지만, 나는 남영진의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봐 주신다는 건 참 기분이 좋은 일이지만 그쪽이 그렇게 봐 주는 건 별로 좋지가 않네요.”

녀석은 나를 존중하는 게 아니다.

그저 갖고 싶은 것일 뿐.

그리고 나를 자신에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자신의 말에 강직하던 백성원 원장이 돌아서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런 백성원 원장이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처럼 남영진은 정의롭고 스타성 있는 검사를 자신에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게 목적이리라.

물론 나 역시 결국엔 녀석의 뜻대로 클럽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백성원 원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은 그저 연기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높은 출연료가 적힌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하,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그건 남영진 씨 본인이 더 잘 알 텐데요.”

“검사님 눈에는 제가 선보다는 악 쪽으로 비춰지나 보군요.”

“아닌가요?”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죠. 어떤 사람 눈에는 악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선으로 보일 테니까요.”

“뭐… 착각이야 그쪽 자유지만 제 눈에는 영락없는 악으로 보이네요.”

피식.

커피 잔에 가려진 남영진의 입.

그러나 양쪽으로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러면 여기를 왜 오신 거죠? 백성원 원장님은 이제 저희를 악으로 보지 않으며 저희와 함께할 의사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장님이 저희를 선택하실 때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셔서 저희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쨍—

커피를 음미하던 남영진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 받침대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서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꼬아지는 남영진의 한쪽 다리.

너무도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다.

“그런 백성원 원장의 뜻에 검사님 역시 동의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기에 이곳에 오신 거고요.”

“아니요. 저는 백성원 원장님을 존경하기에 이곳에 온 겁니다.”

“흠… 저희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백성원 원장님 때문에 억지로 뜻을 따르겠다는 겁니까?”

“아니요. 뜻을 따르겠다는 게 아니라 궁금했을 뿐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의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로 당신들이 대단한 건지.”

“하하, 제 귀에는 과연 ‘나도 꼬실 수 있을까?’라고 들리는데요.”

남영진과의 팽팽한 대화가 이어졌다. 백성원 원장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나는 전혀 백성원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지만, 남영진은 백성원 원장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백성원 원장이 자신의 편에 서서 도와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백성원 차장은 바라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분이 어떻게 연이 되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리로만 보자면 국정원장님이 평검사를 설득 못 했다는 게 이상하군요.”

“무슨 뜻이죠?”

“한 검사님이 백성원 원장님의 위에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저는 그저 원장님을 존경하기에 이곳에 온 겁니다.”

“하하, 이거 점수를 따야 되는데 자꾸 깎아 먹는 느낌이 드는군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납득이 안 가서 그렇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녀석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녀석을 무시한 채 대놓고 이런 작전을 쓰는 건 아니었다.

계약에서의 유리함을 차지하기 위한 모습과 백성원 원장의 권위를 동시에 보여 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클럽은 스카우트를 할 때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업무를 맡는 것이 저이기에 짚고 넘어가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떤 걸 짚고 넘어간다는 말씀이시죠?”

“백성원 원장님이 당신과 함께 클럽에 들어가겠다는 조건을 거셨고, 저희 클럽은 한 검사님 역시 마음에 들어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 검사님이 여기에 계신다는 건 한 검사님 역시 백성원 원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걸로 보이고요.”

“자꾸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하는 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아니요.”

남영진이 내 말을 끊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건 검사님이 백성원 원장님을 존경해서 여길 찾아온 과정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이해가 안 간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백성원 원장님이 같이 가자 말했고, 한 검사님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들어가려는 조직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이곳을 찾아왔다?”

“네.”

“보통은 반대가 되야 맞죠. 검사님이 클럽에 들어가려 했고, 존경하는 분과 같이 가고 싶어 백성원 원장님을 찾아가 같이 가자고 말하며, ‘그래. 어떤 곳인지 한번 보기나 하자’ 이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녀석이 말하고 싶은 건 백성원 원장과 나에 위치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직위가 훨씬 높은 사람이 제안했는데, 제안을 한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직위가 낮은 사람이 찾아와 확인해 본다?

그것이 남영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내가 남영진과 같은 상황이라면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긴 하니까.

“아까 물으셨죠. 어떻게 인연이 됐냐고.”

“네. 제가 보기엔 공무적으로 만난 것 같지는 않네요.”

클럽에 들어가지 못하는 순간.

내가 세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번의 실패는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들어간다고 해도 녀석의 의심을 깔끔히 지우지 못하면 언더커버 수사를 원활히 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의심스러운 사람에게는 뭐든지 숨기려 할 테니까.

그렇기에 모든 것에 있어 확실해야 한다.

단 일말의 의심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될 것이며, 연기 또한 완벽해야 할 것이다.

“네, 맞습니다. 공무가 아니라 제가 아는 부장검사님을 통해 사석에서 만났고, 꽤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습니다.”

“아하∼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말씀은?”

“서로에게 필요한 걸 주고받았다는 말이죠.”

“흠… 인연은 사석에서 만들고 주고받은 건 공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백프로 공무라고는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남영진에 눈초리를 돌리기 위하여 은근슬쩍 미끼를 던져 보았다.

“하하하하!”

그 미끼를 본 남영진은 박장대소했다.

정의롭지만은 않다.

당신과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있는 검사 한치우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는 미끼를 말이다.

“결국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파트너 관계라는 말씀이군요.”

“…쉽게 생각하면 그렇죠.”

“아∼ 이제야 이해가 좀 되는 것 같군요.”

다행히도 남영진은 그 미끼를 문 것 같았다.

“그리고 완벽해 보이는 검사님도 저희와 똑같다는 걸 방금 인정하셨습니다.”

“무슨 소리죠?”

“방금 우리는 악으로 보지만 백성원 원장님은 검사님에게 있어 선이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두 분이 주고받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무가 아니라면 결코 세상에 밝힐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

당황해하며 녀석의 페이스에 말린 듯한 표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 한 방울.

이 모든 것을 연기할 수 있다니 배우를 했어도 꽤 괜찮은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야 검사님과 편히 대화를 할 수 있겠군요.”

녀석은 연기란 걸 눈치채지 못하고, 아까완 다른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를 휘감으려는 능구렁이 같은 표정이 아니라 이미 잡은 먹이를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 미소로 말이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합니다. 선과 악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며,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건 검사님처럼 능력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는 거죠. 대부분 평범한 국민들은 가진 사람들을 악이라 판단합니다. 가진 사람은 소수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다수이기에 결국 우리 같은 사람이 악이 되는 거죠.”

“저는 그 대부분의 평범한 국민의 편이 되어 당신 같은 악을 처단하는 일을 하는 검사입니다. 그런 저에게 악에 편이 되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그저 검사님을 깨우쳐 드리고 싶은 겁니다. 검사님은 우리 편에 서실 능력이 되고, 그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요.”

꽈악.

테이블 밑으로 모아진 주먹을 꽉 지었다.

녀석의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분노가 모아진 양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게 되는 순간, 검사님에게 있어 선은 우리가 되는 것이고 악은 대다수의 국민이 될 겁니다.”

“하… 도저히 못 들어주겠군.”

주먹은 진심이었고, 입에서 나오는 말 역시 진심이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보여 줄 연기가 웃음이 아니라 분노였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녀석에게 웃음을 보여 줄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검사님은 연기를 하겠죠. 검사님 말대로 대다수의 선인인 국민들의 편에 서는 게 바로 검사이니까요.”

쾅.

책상을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이 행동이 내 연기의 클라이맥스가 될 장면일지도 모른다.

꾸벅.

“죄송합니다, 원장님. 도저히 견딜 수가 없네요.”

백성원 원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원장님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문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

남영진이 나를 붙잡을지 말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판다는 건 계약에 있어 너무도 중요한 말이었다.

“잠깐만요, 검사님.”

* * *

“아직 커피가 식지도 않았는데 제 얘기는 마저 듣고 가시죠.”

역시나 들려오는 남영진의 목소리.

“커피 향은 참 좋은데 그쪽에서 나는 악취를 견딜 수가 없네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설득될까 두려운 건 아니고요?”

남영진의 말은 다시 천천히 문쪽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뭐?”

“제 말에 설득돼 지금껏 정의롭게만 사시던 검사님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지금껏 누리지 못한 모든 걸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냐고 여쭙는 겁니다.”

몸을 돌려 다시 남영진에게 향했다.

마음 같아선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고작 감정에 일을 그르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의 도발에 넘어가 주는 게 앞으로 이루어질 대화를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꾸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죠. 지금 당장에라도 당신을 검찰로 끌고 갈지 모르니.”

“하하, 무슨 죄로요? 법을 지키셔야 할 검사님이 감정에 못 이겨 저를 불법 체포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거야 당신을 구금할 48시간 동안 알아보면 되는 거고. 없으면 하나 만들지 뭐. 당신이 무언가 착각하는 게 있나 본데. 나는 법을 비웃고 틈이 많은 법망을 피해가는 놈들을 법적으로 잡지 않아. 잡을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가끔은 편법 쓰고, 혹은 주먹도 쓰고, 정 안되면 불법을 저지르기도 하지.”

일단은 녀석의 뜻대로 분노를 표출했다.

도발에 넘어간 사람에게 나올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을 말이다.

“하하, 이래서 마스터가 당신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마스터?”

“저희 클럽의 정신적 지주이자 모든 사안을 결정하시는 분이죠.”

“기분이 더럽군. 나쁜 짓하는 놈들 우두머리한테 인정받는 기분이.”

“한 검사님이 마음에 들어 모든 걸 참아드릴 수 있지만, 마스터님을 모욕하는 건 참아드릴 수 없습니다.”

녀석의 표정이 너무나도 차갑게 식어 버렸다.

아니 소름끼치도록 변해 버렸다.

아까 보인 남영진의 표정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더욱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아이고∼ 무서워라. 마스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보죠?”

“그 누구도 모욕할 수 없는 분이죠. 그리고 그런 분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고요.”

“왜죠?”

“여쭈어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보아하니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 내는 당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요.”

“그래요. 그럼 전해 주시죠. 이번에도 반드시 악의 무리인 당신들을 처단하겠다고.”

“휴… 좋습니다. 그냥 톡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나도 확고한 모습에 녀석은 한발자국 물러서려는 듯 꼬아진 다리를 풀었다.

그러고는 상체를 기울인 후 두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채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실 백성원 원장님을 클럽으로 모시기 이전부터 클럽은 한 검사님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분히 얘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본래 말씀드려서는 안 되는 얘기이지만, 저희는 한 검사님을 원하고 있으며 특히 마스터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별로 없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들어나 봅시다.”

덕분에 아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영진은 도발까지 해 가며 나를 자리에 다시 앉혔고, 갑의 행세를 해보려 했지만 어느새 을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이 대화는 내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 테다.

“저희는 그동안 한 검사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모시고 싶었지만 도저히 기회가 없었죠. 잠깐 사이에 검사님이 너무나도 유명해지셨고, 한 검사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는 남영진.

녀석에게 나올 말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이 가지만 갸우뚱거리며 시치미를 뗐다.

“검사님이 얼마 전 기소하셔서 구속된 김수철 국방부 장관이 저희 클럽 소속이었습니다. 클럽원 입장에서는 검사님을 반대할 이유가 충분한 거죠. 하지만 마스터와 클럽 관리자들은 검사님을 더욱 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죠?”

“대한민국에서는 도저히 건들 수 없는 존재인 클럽원들을 기소해 구속까지 한 검사님을 적으로 두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는 일도 아니잖아요.”

“하하, 살인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죠.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한 검사님은 버리기에 너무도 아까운 카드입니다. 즉, 저희 클럽은 한 검사님을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단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자신의 패를 전부 오픈해 내 흥미를 이끌어낸 남영진.

하지만 패를 오픈한 순간부터 결정권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 전까지 남영진은 계속해서 새로운 패를 오픈해야 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저는 클럽이란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검사님에게는 특별한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무슨 제안이요?”

“클럽에는 마스터를 기준으로 네 명의 관리자들이 있습니다. 마스터와 독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자, 마스터와 같이 중대 사안을 결정하며 사안을 만들기도 하죠.”

고개를 여러 번 저었고, 분노와 거절을 보인 끝에 드디어 내가 원하던 패를 오픈하기 시작하는 남영진이었다.

“그리고 마스터는 네 명의 관리자 중 한 명이 한 검사님이 되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낙하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리자들과 마스터를 제외한 모든 클럽원은 서로의 신원을 알지 못하며, 현재 네 명의 관리자 자리 중 한 분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탓에 비워져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사실을 알고 계신 백성원 원장님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남영진이 백성원 원장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한 검사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와 뜻을 함께해 준다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백성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이 뜻을 전달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 물론 원장님도 저희에게 있어 꼭 필요한 인재입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원장님에 대한 대우 역시 남부럽지 않게 해 드릴 테니까요.”

당연히 필요하겠지.

녀석은 숨기고 있지만 조정식 전 국정원장 역시 클럽 소속이었다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가 간절히 원한 인물을 추천해 주셨으니 마스터가 원장님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계실 겁니다. 아마 다음번에 관리자 자리가 나게 된다면 그 자리는 원장님이 차지하게 되시겠죠.”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그렇게 되실 겁니다. 두 분 다 그럴 능력이 충분하시니까요.”

백성원 원장을 향해 말했지만, 남영진의 눈빛은 나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물었다.

내 의중이 어떤지.

“하… 원장님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하신 겁니까.”

“자네도 내 입장이 되어 보게. 대통령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내 자리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세. 그리고 나는 아직 은퇴하기엔 책임져야 될 게 너무나도 많네.”

“국정원장 자리에서 내려온다고 해도 원장님을 못 데려가서 안달인 곳이 많을 겁니다.”

“정계? 그거야 커리어가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지. 혹은 연줄이 있거나. 참으로 어리석게 나는 그런 연줄을 만들지 않았네. 의심스러운 술자리를 전부 거절했으니… 내가 만든 유일한 연줄은 자네일세.”

“그럼 제가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나를 책임져 주겠다는 건가? 검사 연봉 6,000만 원으로 내 자식들 유학비 대 주고, 평생 내 뒷바라지만 한 마누라 호강시켜 줄 수 있나?”

“그건…….”

피식.

나와 백성원의 연기는 너무나 뛰어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남영진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의로 똘똘 뭉친 자네가 뒷돈을 받을 일도 없지 않은가. 툭 터놓고 나와 만든 연줄도 결국 김수철을 잡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우리가 뇌물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말일세.

“꽤 많은 연금을 받지 않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하지 말게나. 이미 은퇴한 내 동기들은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쓰며 호화스럽게 사는데 그게 연금으로 가능한 것 같나? 나는 절대 아니라고 확신하네. 현직에 있을 때 자신의 자리를 대가로 많은 일을 해 주고 많은 걸 받았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후회되네. 나는 왜 정의로웠을까.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인데 말이야. 그래서 지금이라도 옳은 선택을 하려고 하는 걸세.”

“휴…….”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비록 백성원 원장의 말이 연기라고는 하나. 그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와 백성원 원장은 정의롭지 못한 자가 웃는 대한민국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야 웃을 수 있는 걸세. 처음 국정원에 들어왔을 때 나도 자네와 다르지 않았어.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꽤 능력 있었고, 많은 일을 해냈지. 그렇기에 인정을 받아 승진도 빨랐어. 지금의 자네처럼 말이야. 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네…….”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백성원.

그가 미처 하지 못한 뒷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백성원 같은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어쩌면 결국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게 될 거란 걸 말이다.

“나는 지금에서야 옳은 선택을 하지만, 자네는 지금 옳은 선택을 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부디 나와 뜻을 함께 해 주길 바라네.”

“…….”

나는 백성원 원장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 보았고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살피는 남영진이었다.

도저히 연기라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백성원 원장이 표현하고 있는 감정과 대사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며 백 프로 연기라고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내가 느낀 감정도 마찬가지이고.

하나, 그렇기에 더욱더 연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연기가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정의롭다 못해 위선적으로 보이는 자네의 그 가치관. 앞으로 평생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나? 그렇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아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여도 말일세.”

“그건…….”

그리고 우리의 연기는 이제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자! 이제 결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 검사님.”

남영진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와 백성원 원장과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모든 걸 가지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모든 걸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와 맞서실지.”

이제 우리의 연기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여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푹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뭐부터 하면 됩니까?”

* * *

‘내일 모레, 오후 7시에 여기 적힌 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남영진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우리는 부띠끄 호텔을 나왔다.

비록 연기는 끝났지만 아직 감정 정리가 안 됐는지 나와 백성원이 있는 차량 안의 공기는 어색했다.

“내 연기 괜찮았나?”

“하하… 원장님이 배우를 하셨으면 아카데미를 휩쓸었을 것 같은데요?”

먼저 입을 연 건 백성원 원장이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하는 백성원 원장의 모습에 나 역시 잘 나오지 않는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사실 실감 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자신에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 지어낸 건 아니라고.

수십 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말이다.

“그래. 그건 그렇고 자네에게 말 못한 게 있네.”

“어떤 말씀이요?”

“남영진을 술집에서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네. 녀석의 방법이 옳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한 말이 마냥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 들었거든…….”

“달콤한 향기에 코를 가져다 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원장님은 그 향기가 몸에 해롭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가가지 않으신 겁니다.”

“아니. 해롭다는 걸 알기에 다가가지 않은 게 아니야… 그곳에 다가가는 순간 내가 20년 넘게 지켜온 가치관과 임관 때 한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선서가 깨지기 때문이지.”

피식.

“저 역시 전부 연기는 아니었습니다.”

백성원 원장을 향해 말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뭐가?”

“원장님을 존경한다는 말은 사실이었거든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다.

비록 누군가에는 박봉이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니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같은 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에 따르면 국민이 곧 국가이고, 그렇기에 공무원들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진다.

법에서도 나와 있듯 말이다.

문제는 헌법에도 적시되어 있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도 당연한 백성원 원장의 가치관과 선서가 당연시되지 않고, 마치 대단하다는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한 검사가 나를 존경한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네만.”

“네?!”

“하하하하! 농담일세.”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일에 표하는 내 존경이 거짓은 아니었다.

나 역시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었고, 당연한 일을 하는 것과 가치관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그 주소 거기 아닌가?”

“네, 맞습니다. 클럽이 소유하고 있는 백숙집입니다.”

“흠… 드디어 거길 가 보는군.”

“정확히 말하면 수사관분들이 가 보지 못한 곳을 갈 수 있게 된 거죠.”

김수철의 협조 아래 우리는 그동안 부띠끄 호텔과 백숙집을 조사해 왔었다.

하지만 두 곳의 소유주는 모두 달랐고,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부띠끄 호텔은 50대 중반의 펀드매니저였고, 백숙집은 3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평범한 음식점이었다.

압수 수색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영장 청구서에 적어낼 이유가 없었다.

또한 소유주들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평범했다.

— 펀드매니저로 꽤 큰돈을 벌었고,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호텔을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 장사는 안 되지만 3대째 이어온 가업이다. 주변에 있던 등산로가 재개발로 인하여 사라져 유동 인구가 없어도 가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게 돌아온 대답에 수사관들은 더 이상 협조를 구할 수 없었다.

클럽과 연관이 있느냐 물었지만, 그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두 건물의 소유주가 클럽원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엄청난 돈을 받으며 바지 건물주로 있는 건지, 아니면 클럽원으로서 건물을 관리하고 있는지는 말이다.

“부띠끄 호텔은 그렇다 치고, 클럽은 왜 백숙집을 접선 장소로 선택한 걸까?”

“건축 대장을 확인해 본 결과 특별한 공간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40평짜리 평범한 식당 건물일 뿐이죠.”

“그걸 믿을 수는 없지.”

“네, 맞습니다. 분명 숨겨진 공간이 있겠죠. 고려 전단처럼.”

“아! 그럼 백숙집을 설계한 건축사를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아니요. 그 건물은 세워진 지 70년이 넘은 건물입니다. 그 뒤로 리모델링 공사를 한 적은 없었고요. 즉, 처음부터 비밀 공간을 만들었든, 아니면 평범한 백숙집이었다가 클럽이 매입한 후 자신들이 필요한 공간을 만들었든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사실 이번 수사에 있어 건물이 누구 소유이며 건물주가 누구인지는 그리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도 집고 넘어갈 만큼 신중해야 할 수사는 분명하고, 그 작은 것이 단서가 되어 큰 것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려 전단을 보고 나니 백숙집 안도 기대가 되네요.”

“고려 전단이야 국정원이 만든 것이고, 소유주 역시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야. 국가에서 가상으로 만든 인물이니 문제될 것도 없고. 그런데 백숙집은…….”

“오래전에 만든 건물이니 건축 감리나 도면 승인 절차 역시 지금과 달랐을 겁니다. 그리고 백숙집 주변 1키로 근방은 공터이며 대지 소유주 역시 백숙집 건물주와 동일합니다. 고로 40평짜리 백숙집 지하에 어떤 게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흠… 그러면 클럽이 직접 공사를 했다는 소리인가?”

“규모를 보고 나서 판단해야겠지만, 아마 클럽원들이 직접 하지는 않았겠죠. 평생 돈 아니면 펜만 만져왔을 사람들이 삽질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불법 건축이야 클럽에 있어서는 일도 아닐 거고, 그렇기에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었을 터다.

그게 우리가 입수한 건축 대장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와 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제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말해 보게.”

“유명 건축사 한 명과 수천 명의 근로자를 통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었겠죠. 그리고 전부 입막음을 한 겁니다.”

“설마… 모조리 죽였다는 건가?”

“하하! 아니요. 아무리 클럽이여도 그건 말이 안 되죠. 다만…….”

“다만?”

“수천 명의 근로자의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면 가능합니다.”

“아! 그렇겠구먼.”

어차피 보게 될 비밀의 공간을 이토록 자세히 파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근로자들을 추적하다 보면 그들이 만든 공간에 대해 알 수 있고, 그 끝에는 누가 지시했는지가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출입국 기록 중 정확한 동선 파악이 안 되는 다수의 외국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입국한 사람들로 범위를 좁혀 나가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그건 내가 직원들에게 지시를 하겠네.”

“그리고…….”

“알아. 철저히 보안 유지를 해야 되는 거. 단순히 기록만 파악해 보라고 할 테니 걱정 말게.”

“네, 감사합니다.”

특히 언제 지어졌고, 무슨 용도를 위해 만들었는지 알 수만 있다면 수사에 있어 중요한 정보가 될지도 모른다.

“일단은 저희가 직접 보고 지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장님.”

“아니. 나도 자네 생각이랑 같아. 분명 건축 대장에 나와 있지 않은 공간이 있을 걸세. 미리 파악해 놓으면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 지금 지시하겠네.”

“흠… 그럼 그래 주시죠.”

너무도 비밀스런 조직이기에 사소한 정보라도 일단 수집하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아직도 막히네. 자네는 어디로 가나?”

“저는 집으로 가야죠.”

“자네 집이 대림동이라 그랬나?”

“아니요. 원래 그랬는데 지금은 종로입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있었고, 나와 백성원 차장의 하루도 끝이 났다.

올림픽대로는 여전히 막히고 있었고, 차량은 백성원 원장의 집이 있는 강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림동에 산다고 들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이사를 간 건가? 종로면 여기 세워 주게. 택시타고 갈 테니.”

“아닙니다. 올림픽대로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택시를 잡으시려고요.”

“택시 없으면 비서실에 전화하면 되네. 아직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량의 뒷자리에 타는 게 어색하지만.”

“하하, 앞으로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수장 아니십니까.”

“익숙해지기에는 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네. 주 대통령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으니.”

장관급 대우를 받는 국가정보원장은 헌법상 정해진 임기가 없었다.

하지만 임기가 없다고 해도 정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그러니 한 정부에도 몇 번이나 교체되는 흔한 자리이기도 했다.

“뭐가 됐건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존경하니까요.”

“하하하하! 영광이구만 그래.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가 날 존경하는 게 말이야.”

막히는 올림픽대로가 끝나고 강남에 다다랐을 때쯤 더 이상 차량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사는 언제 간 건가?”

“그게 이사는 아니고… 강철호 총장님 댁에서 지냅니다.”

“아! 총장님 정계 진출 준비하신다고 서울에 댁 구하신 게 종로인가?”

“네, 맞습니다.”

“총장님이 양아들을 들이셨군그래.”

“하하하, 양아들이라뇨.”

“잘 모시게나. 자네 때문에 앞으로 고생할 일이 많으실 테니.”

예정에 없던 정계 진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도 한사코 거부한 그 일을 나 때문에 하게 될 강철호 총장이었다.

사람들에 수많은 관심을 받으며 옳은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욕을 먹어야 되는 정치.

그런 순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강철호 총장은 정치라면 학을 떼곤 했다.

‘정치는 결국 한쪽 편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다른 편을 설득하는 일이야. 그걸 잘하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고. 결국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욕을 먹는단 말이지.’

강철호 총장이 했던 말.

자신이 정치에 몸을 담지 않는 이유였다.

정치보다는 정의.

자신이 어울리는 쪽은 정의라 말한 강철호 총장이었다.

“네, 그래야죠.”

“이 안으로는 못 들어가네. 여기 세워 주게나. 비서한테 문자해 놨으니 곧 데리러 나올 걸세.”

“네, 알겠습니다.”

시시콜콜한 대화 속 차량은 어느새 내곡동 백성원 원장의 관저에 도착했다.

물론 완전히 도착한 건 아니다.

내 차량으로 갈 수 있는 한계는 국정원이 보이지 않는 산속 입구 주차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내일 보게나.”

“네.”

조수석에 있던 백성원 원장이 차량에서 내렸지만, 무언가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문을 닫지 않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원장님?”

“그게…….”

머뭇거리는 백성원 원장.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역시 붉어지는 듯했다.

“고맙네.”

“하하하, 당연히 제가 모셔다 드려야죠.”

“아니 데려다줘서가 아니라.”

“그럼요?”

나는 되물었고 백성원 원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20년간 국민이 아닌 정권을 위해 일해 온 나에게 국민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맙네.”

* * *

남영진이 적어 준 주소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가만히 건물을 바라봤다.

“진짜 뜬금없네.”

“그러게 말입니다.”

백숙집이라는 것도 알았고, 외진 곳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숙집을 처음 본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아는 사람 말고는 찾아올 수도 없겠어.”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한참동안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 들어왔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해도 보이는 것은 넓은 공터 중앙에 세워진 허름한 건물 하나뿐이었다.

[모란백숙]

백숙집 간판은 떨어질듯 덜렁거리고 있었고, 사람이 드나든 지 꽤 된 듯 입구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일단 가 보죠.”

“그래.”

멀찌감치 차량을 주차한 우리는 거미줄을 헤치고 입구로 향했다. 깊숙이 자리한 입구 옆에는 초인종이 달려 있었다.

띵동—

문을 흔들어 봤자 소용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자연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 너머로 부산스러움이 느껴졌다.

— 반갑습니다. 백성원 원장님, 한치우 검사님.

“네. 남영진 씨가 이쪽으로 오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 잠시만요. 절차상 필요한 거니 당황하지 마십시오.

“무슨 당황…….”

초인종을 향해 물었지만 우리는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문 속에서 갑자기 희미한 빨간빛이 보였다. 그 빛은 마치 우리를 스캔하는 듯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 신원 확인과 비무장 상태 확인되었습니다. 10초 후 문이 열리니 열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거참.”

어이가 없는 듯 말하는 백성원 원장.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허름하다 못해 무너질 것 같은 식당에서 마치 최첨단 보안시설에 들어가는 듯한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 말이다.

“돌멩이 갖다가 깨면 들어가겠고만 유난은.”

톡톡.

“평범한 유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강화유리 아니면 특별한 소재로 만들었겠네.”

중지를 오므려 문을 쳐 보며 말하자 백성원 차장도 내 말에 동의하는 듯 끄덕거렸다

입구를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단 하나.

검은색 테이프로 테이핑을 했는지 유리로 된 문은 속이 보이지 않았고, 빨간 색 글씨로 모란백숙이라 적혀 있었다.

[배달전문]

또한 초인종 옆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기도 했다.

띡—

10초.

초인종 너머 남자의 말대로 정확히 10초 후에 짧은 전자음과 함께 유리문에 틈이 생겼다.

“가 보자.”

“네.”

우리가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었다.

콘크리트 계단 가운데에는 야광 스티커를 붙여 놓은 듯 화살표로 지하를 가리키고 있었다.

벽면 역시 콘크리트로 모서리에서는 은은한 노란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원장님.”

“그래.”

지하로 안내하는 불빛이 꽤 밝았다.

계단마다 화살표도 붙어 있기에 어둡지는 않았지만, 꽤 가파른 경사였기에 백성원 원장의 손을 잡은 채 앞장섰다.

“한 검사 이래 봬도 내가 대한민국 특전사 출신에 블랙요원까지 한 국정원장일세.”

손을 놓지는 않았지만 투덜거리는 백성원.

내 행동에 기분이 좋았지만, 어색함을 달래 보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잡으시죠. 세월엔 장사 없습니다.”

“하하하, 뒷방 노인네 취급하는 건가?”

“큰일 하실 몸 걱정하는 겁니다.”

“하여튼 말은.”

지하의 끝은 생각보다 길었다.

계단을 한 100개 쯤 내려가서야 화살표의 끝이 보였고, 높고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 10초 후 열립니다.

“뭐야. 우리 다 지켜보고 있던 건가?”

“저 위에 보십시오.”

“어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훑어보는 백성원.

어두워 정확한 형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빨간 점들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적외선 CCTV일 겁니다.”

— 네, 맞습니다. 보안 때문에 그러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녀석들은 우리의 행동만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대화도 듣고 있었고 내 말에 대답은 백성원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마지막 계단을 딛고 내려오자 보이는 검은색 철문.

사실 어두워 검은색이라 말한 것일 뿐 어떤 색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두꺼운 문일 뿐.

띡—

아까와 마찬가지로 짧은 전자음과 함께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틈이 생겼고, 우리는 무거운 문을 당겨 안으로 향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고급스러워 보이는 슈트를 입고 허리를 숙인 채 우리를 맞이하는 남영진이였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남영진이 우리를 맞이한 공간은 더 고급스러웠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에서 이런 공간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말이다.

“여기는 처음 백숙집을 방문하신 클럽원들의 신원을 등록하는 곳입니다.”

원형으로 된 로비.

벽에는 몇 개의 문들이 보였고, 정중앙에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조각상 같은 게 보였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천장의 샹들리에는 비싸 보였다.

곳곳에 배치된 소파 역시 마찬가지.

“비까뻔쩍하네.”

“그러게요.”

남영진을 뒤따라가던 백성원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잠시만요.”

로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검은색과 하얀색을 곳곳에 잘 섞어 놓은 듯했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급 대리석 바닥을 지나 멈추어선 곳.

그곳 역시 검은색 문이었고, 남영진은 문 옆에 보이는 테블릿 PC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들어오시죠.”

남영진이 열어 준 방의 풍경은 조금 의외였다.

고려 전단처럼 온갖 최첨단 시설이 집약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략 스무 평 정도의 방 안에 보이는 거라고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이 전부였다.

“일단 원장님 먼저 앉으시죠.”

정중앙에 놓인 의자를 빼 주며 말하는 남영진.

백성원은 어물쩍거렸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남영진이 빼 준 의자에 앉았다.

“백성원 원장님의 지문과 신원을 클럽 서버에 등록할 겁니다.”

“신분증이라도 주나 보죠?”

자리에 앉은 백성원 원장이 남영진을 올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좋지 못한 단체에 자신의 신원을 등록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물론 그의 비아냥을 눈치챈 건 나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연기라는 걸 알고 있는 건 나와 백성원 원장뿐이었으니까.

“흠… 일단 클럽이 운영하는 모든 건물은 지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백성원 원장님의 지문이 묻은 모든 곳은 저희가 관리합니다.”

“운영하는 건물은 그렇다 치고 지문이 묻은 곳을 관리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원장님이 클럽을 위한 일을 하실 때 원장님의 지문이 나와서는 안 될 곳을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지우고 혹은 숨기고, 그것도 안 되면 매수를 통해 흔적을 지운다는 뜻이죠.”

“일종의 사면권이라는 건가?”

“네. 대한민국 안에서 원장님이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을 일은 없다는 소리죠. 물론…….”

말끝을 흐리며 나를 힐끔 쳐다보는 남영진이었다.

“한 검사님처럼 능력 있는 분이 있다면 또 모르지만요.”

슬며시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이제 한 검사님 역시 저희 소속이 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하하, 칭찬이죠?”

백성원의 뒤에 서서 팔짱을 끼며 남영진에게 말했다.

미소를 보이지도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이미 연기를 통해 얻을 건 전부 얻은 상태였기에 이제는 녀석과 가까워지는 편이 더 나을 거라 판단했다.

“그럼요! 가장 무서운 적이 우리 편이 되는 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죠. 하하하. 그리고 원장님은 이쪽에 엄지손가락을 올려놓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방심하지 않았고 눈을 떼지도 않았다.

[지문 등록]

특히 노트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원형 그래픽 안에 백성원 원장의 지문이 등록되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의 제조사와 품명, 그리고 지문 등록 기계가 검찰에서 쓰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 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알아보는 것까지.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노력했다.

“자! 이제 원장님은 등록이 완료되었고, 정식으로 클럽원이 되셨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밖에 나가 계시면 다른 분이 해 주실 겁니다.”

“한 검사랑 같이 듣는 게…….”

“아니요. 해야 될 일이 많아서 순차적으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남영진의 말에 백성원 원장은 나에게 시선을 돌렸고, 나는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쾅.

그렇게 백성원이 나가고 나 역시 자연스레 의자에 앉으려 했지만 남영진은 의자를 빼 주지 않고 벽 쪽으로 향했다.

“아, 한 검사님은 조금 다른 절차가 필요해서요.”

“다른 절차라뇨?”

“한 검사님은 앞으로 마스터와 함께 클럽을 이끌어 갈 4인의 관리자가 될 분이기에 간단한 신원 등록이 아닌 관리자 등록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건 질색인데.”

“하하, 그리 복잡하진 않을 겁니다.”

지잉—

남영진이 자연스레 벽을 만지작거렸고, 방안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워∼”

넓은 방안에 테이블과 노트북.

역시나 내가 보고 있던 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방안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 또한 기분 탓은 아니었다.

“이게 뭐죠?”

“쉽게 생각하시면 이 방 자체가 큰 엘리베이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 이 방이 움직이고… 아니,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는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

현실적으로 이해는 갔던 고려 전단과 달리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는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 안 전체가 지하로 내려가는 게 아니고, 내가 서 있는 바닥만 밑으로 내려가는 듯했다.

이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하얀 벽이 검게 변했다.

얼마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지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러다 석유라도 나올 것 같습니다.”

“하하, 농담도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제 이미지를 어떻게 보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놀랄 일 많으실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랄 일은 당신 앞에서 웃고 있는 내 미소가 거짓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 미소로 인하여 남영진의 눈에서는 반드시 피눈물이 흐를 것이다.

아니,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다.

덜컥—

방 안 전체가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이 났고, 더 이상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분명 들어온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갔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가꾸어지지 않은 통로.

동굴 같은 길을 따라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이쪽은 스카우트 담장자인 저와 네 명의 관리자들, 그리고 마스터 외에는 올 수 없는 공간입니다. 즉 클럽원 중 단 여섯 명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는 거죠.”

“그게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선택받은 소수인지 아닌지를 모르니까요. 클럽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피식.

은근슬쩍 남영진에게 물었지만, 그는 미소를 보일뿐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유도심문에 걸릴 만큼 머리가 나쁜 녀석이 아니니까.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한 검사님이 클럽에서 특별한 분이라는 건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관리자라면서 클럽원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는 건가요?”

“아니요. 곧 다른 클럽원들보다 많은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관리자 등록이 끝나면요.”

“무슨 혈서라도 쓰는 건 아니겠죠?”

“하하! 그럴 리가요.”

한 3분쯤 걸었나?

또다시 눈앞에 뜬금없는 문이 보였다.

동굴 같은 통로 끝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유리문이 말이다.

“이제…….”

앞장서서 걷던 남영진이 유리문에 손바닥을 올려놓자 불투명하던 유리문이 투명해졌다.

그리고 남영진은 뒤돌아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 검사님의 인생을 클럽과 동기화시킬 겁니다.”

* * *

인생을 동기화한다고?

갸우뚱거리는 고개를 보이며 남영진이 열어 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와…….”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온 나는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이게 무슨…….”

[행정부 종합 관리 시스템.]

[사법부 종합 관리 시스템.]

[입법부 종합 관리 시스템.]

세 개의 커다란 스크린이 가장 먼저 보였고, 그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전자기기들이 보였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건 바로 저희 클럽이며,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야말로 놀랄 노 자였다.

철저하게 나뉘어져 서로를 견제하는 삼권분립.

그 위에 있는 것이 바로 클럽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건 종합 관리 시스템이라 적혀 있는 각 스크린에는 앞으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시행할 중요한 프로젝트들과 입법 예정인 법안, 그리고 중요한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될지까지 적혀 있었다.

아직 뉴스에 발표되지 않은 내용이 말이다.

물론 이 내용이 실제로 이루어질지 말지는 아직 모른다.

하나 지금껏 내가 조사해 온 클럽이라면 스크린에 적혀 있는 모든 내용은 사실이며,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저 자신들이 할 청탁을 적어 놓은 게 아니란 말이다.

“여기는 뭐죠?”

“여기는 제너럴 룸이라 불리는 곳이며, 저희 클럽이 원하는 법안과 행정 정책, 그리고 사법부의 판결, 거기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사면권과 입법 거부권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까 내 인생을 동기화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맞습니다. 앞으로 한 검사님이 살아갈 인생은 철저히 이 제너럴 룸에서 결정되게 될 겁니다.”

“결국 클럽 뜻대로 움직이란 말씀이군요.”

“하하!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한 검사님은 관리자이므로 본인이 인생을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을 것이며, 손가락질 몇 번으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죠. 한 검사님의 재산, 권력, 명예까지요.”

“도통 이해가 안 되는군요. 입법권과 사법부 판결은 클럽원이 있다 쳐도 사면권은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 권한입니다. 그걸 클럽이 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청와대의 뜻은 대통령의 의견이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여러 수석 비서관들과 여론의 방향을 보고 결정하죠.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누군가 강하게 푸쉬한다면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는 말이죠.”

도대체 영향력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남영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 말할 수 있다.

국민이 아닌 클럽의 결정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게 어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속에서는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하지만 지금 남영진 앞에서 그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 방만 있다면 주식으로 떼돈을 벌 수 있겠네요.”

“하하, 그렇죠. 모든 걸 미리 알고 있으니까요. 아니, 모든 걸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 맞겠군요.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원하는 그룹 주식을 사고, 그 그룹에 특혜를 주면 되는 겁니다. 엔터 한 번으로 말이죠.”

탁!

남영진이 미소를 보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청평읍 그린벨트 해제건 통과바람.]

그리고 그의 엔터 한 번으로 의해 단문의 메시지가 어디론가 전송되는 것 같았다.

“방금 선영 그룹이 매수한 토지에 그린벨트 해제건을 국토부와 관련부서들에게 전송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 내일 뉴스에 나오겠죠. 선영 그룹이 매수한 토지의 그린벨트가 해제되었고 신도시를 짓겠다고요.”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고작 엔터 한 번에 모든 공무원들이 움직이다니.

어쩔 수 없는 공무원 계급과 수직 구조로 인하여 높은 직위를 가진 클럽원 한 명의 뜻대로 수천 명이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니 주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푼돈이니까요. 저희 기준으로는 상한가 한 번에 조 단위는 움직여 줘야 주식이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 물량은 매수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은 작죠.”

“그럼 도대체 클럽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거죠?”

“최종 목표는 없습니다. 그저 이 상태를 쭉 유지하는 것일 뿐이죠.”

“결국 클럽원들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거군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한 탓에 남영진은 내 비아냥을 알아채지 못했다.

“네. 쉽게 말하면 그렇죠.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류는 계속해서 태어나기에 모두가 잘살 수는 없습니다.”

아니, 남영진의 생각은 틀렸다.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클럽이 존재하는 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갈 것이다.

“저희는 자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검사님은 두꺼운 법전을 외우려 노력하셨고, 능력 있는 검사로서 거악들을 감옥에 보내셨죠. 그게 바로 검사님이 클럽에 들어온 이유이며 앞으로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게 노력하신 삶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요.”

“영업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사람을 참 잘 꼬시네요.”

“하하, 그래서 제가 클럽원들을 영입하는 스카우트 담당자가 된 거죠.”

녀석의 말은 참 달콤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덥석 녀석이 내민 사탕을 물어 버릴 만큼 말이다.

하지만 달콤하게 포장한 것일 뿐 속이 썩어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단 관리자 등록은 나중에 하고 제너럴 룸 시스템을 이해하시기 쉽게 직접 보여드리죠.”

“네, 그러시죠.”

“이번에 성 접대 파문으로 재판 중인 김희준 의원님 판결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그거야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하하, 아니요. 그건 재판부가 아니라 저희 클럽이 정할 수 있습니다.”

“사건을 맡은 법원에도 클럽원이 있는 건가요?”

“아니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클럽원이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클럽원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법원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자, 좋습니다. 이제 한 검사님도 엄연한 클럽의 관리자이시니 이 재판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끼익—

남영진은 사법부 종합 관리 시스템이라 적혀 있는 스크린 앞으로 나를 안내했고 의자를 빼 주었다.

[Club 의견]

스크린 속 네모난 박스 칸에 커서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검사님이 직접 판결을 내려 보시죠.”

“제가 여기에 판결을 내리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까?”

“하하, 일단 적어 보시죠.”

[징역 9년.]

나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가 적은 형량은 사실 사법부의 판단을 흐리기에 충분했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 접대의 경우, 접대성이라 하여도 과한 형량이기 때문이다.

9년이라는 형량이 과하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만, 판례를 보았을 때 과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하, 9년이라… 평소에 김희준 의원님에게 악감정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아니요. 얼굴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이 재판의 담당 검사라면 분명 9년을 구형했을 것이다.

재판부가 내가 구형한 형량을 선고할 확률은 낮을 테지만 말이다.

“흠… 너무 과한 형량이라 안 되나요? 일부로 선고하기 힘든 형량으로 정한 건데요.”

“하하! 아니요. 그냥 개인적인 감정이 있나 여쭈어본 것일 뿐입니다.”

탁!

남영진이 아까와 같이 내 옆에 서서 키보드에 엔터를 쳐 버렸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가 정한 짧은 형량이 사법부 종합 관리 시스템에 의해 어디론가 전송되고 있었다.

“김희준 의원은 저희 클럽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한 검사님 마음대로 형량을 정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해관계가 있다면?”

“물론 관리자인 검사님 뜻이 우선시되겠지만, 마스터의 뜻이 절대적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상관없다 하시면 다른 세 명의 관리자님들과 의견을 조율해 결정하게 됩니다.”

“휴… 다행이군. 지금은 그런 조율을 할 필요가 없어서.”

“네, 맞습니다. 내일 모레 재판에서 김희준 의원은 징역 9년이 선고될 것이며, 항소심 역시 기각될 겁니다.”

“확실한 겁니까?”

“내일 모레 뉴스를 보시죠. 검사님이 만드신 뉴스니까요.”

내가 만든 뉴스라…….

수많은 수사 과정과 증거 수집.

김희준 의원들을 보호하려는 같은 당 국회의원들을 상대하는 과정.

혹은 재판부가 뇌물을 받지 않았나 파악해야 하며, 터무니없는 형량이 나올 경우 항소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들인다고 해도 9년이란 형량이 나올까 의문인데 남영진은 지금 엔터 한 번으로 내가 원하는 형량이 김희준에게 선고된다 말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이제 제너럴 룸 시스템은 대충 설명 드린 것 같으니 관리자 등록으로 넘어가 볼까요?”

“그러죠.”

* * *

관리자 등록이라 거창하게 말했지만 실상은 별거 없었다.

백성원 원장과 같이 지문을 등록했으며, 몇 가지 쓸데없는 설명을 들은 게 전부였으니까.

그저 제너럴 룸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고 보는 게 더 맞았다.

“복잡하기도 해라.”

“그러게 말입니다.”

다시 백성원 원장을 만난 건 세 시간이 흐른 뒤 백숙집 입구였다.

“그만 돌아가지.”

“네.”

“그래도 큰 결정한 걸세. 이제 우리 앞에는 탄탄대로가 열릴 터이니.”

“그러겠죠.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요. 어쨌든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를 추천해 주신 원장님께 큰 신세를 진 게 되겠네요. 하하.”

짧은 인사를 한 후 우리는 차량으로 향하는 동안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말을 떠들어 댔다.

‘차에 감지기 있네.’

‘네, 알겠습니다’

진짜 대화는 눈으로 하면서 말이다.

백숙집에 들어오기 전.

백성원이 나에게 해 준 말이 있었다.

여기를 나오고 난 뒤에는 말을 아끼라고.

몸에 도청기, 혹은 위치 추적기를 붙여 놨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삑—

“자네한테는 없는 것 같네. 나한테도 없는 것 같고.”

백성원이 차량에서 감지기를 꺼내 온몸을 스캔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아 우리는 눈빛으로 나누던 대화를 입으로 전할 수 있었다.

“의외네. 나는 분명히 도청 장치를 달아놨을 거라 생각했는데. 스마트폰에도 스파이 웨어가 없는 것 같고.”

“아마 모든 검증을 끝냈으니 그럴 필요가 없던 거겠죠.”

클럽원으로 초대하기 전.

클럽은 이미 나와 백성원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파악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영진과의 미팅에서 우리의 사상을 검증했겠지.

또한 진심 섞인 백성원의 완벽한 연기와 나의 튕김은 의심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그런가? 그래도 조심하게. 언제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

“네. 일단 차량 멀리 세워 놓고 원룸 경로를 통해 고려 전단으로 가시죠.”

이제 나와 백성원은 완벽한 클럽원이 되었고,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려 전단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팀들과 함께 말이다.

“그래. 서둘러 가지.”

깡으로 싸우는 검사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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