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대한민국 법무부.
“이야! 한치우 아니야.”
언젠가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서윤호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쪽팔리게.”
“하하! 싸가지 없는 것도 그대로네.”
“잘 지냈어, 형?”
“전화기는 국 끓여 먹었냐? 전화로 물어보면 되지 아무 소식 없다가 1년 만에 나타나냐.”
“알잖아 바빴던 거. 형도 연락 안 했으면서 무슨.”
나 역시 오랜만에 본 서윤호가 반가웠고, 심지어 그립기까지 했다.
하지만 성격이 지랄 맞아서인지 서윤호와 달리 표현을 하지 못했다.
“형, 시간되지?”
“시간 없어도 만들어야지 대! 중수부 연구관 한치우가 나를 보러왔는데.”
“쫌! 오바 좀 그만해.”
“하하! 가자 맛있는데 알아.”
어느덧 3년차 검사가 된 우리.
중앙 지검에서의 2년을 끝으로 나는 대검찰청으로, 서윤호는 법무부로 임지를 옮겼다.
서윤호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원을 졸업했고, 중앙 지검 특수부에서의 실적을 인정받아 법무부 감찰국 검사가 되었다.
검찰의 4대 기관 중 하나.
현 시점으로 중앙 지검 특수부와 대검 중수부, 대검 공안부, 마지막으로 법무부 감찰국까지.
이 네 개의 부서가 검찰 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연 소속 검사의 지휘 역시 다른 검사들과는 다르다.
맡는 사건들과 상대하는 피의자들에 위치가 다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와 서윤호가 속해 있는 부서이기도 했다.
“정부청사 앞에 맛집이 많아.”
“형 입맛 싸구려인거 다 아는데.”
“하여튼 형한테 말버릇하고는.”
1년 만에 만난 사이였지만 서윤호와 나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어색함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투덜거리기도 했다.
“여기야. 일명 법무부 국밥이라 칭하는 곳이지.”
“법무부 국밥은 개뿔. 그냥 순대 국밥집이구만 뭘. 그리고 사람 없는 곳으로 가면 좋겠는데. 할 얘기도 있고.”
“당연히 알고 있지. 네가 여기까지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건 아닐 테니까. 그리고 걱정 마. 이모한테 방 하나 빼달라고 하면 되니까.”
“하하…….”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서윤호를 따라 국밥집 안으로 향했다.
서운하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서윤호의 말투에 서운함이 묻어 나오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바쁘단 핑계로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술 한잔 기울일 짬은 있었다.
하나 피곤한 몸을 탓하며 집으로 향했고, 서윤호가 바쁠 거라 핑계 대며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웃기는. 괜찮아 인마. 나도 안 했는데 뭐.”
서윤호는 내가 방산 비리라는 큰 사건을 맡은 사실을 당연히 알았을 거다. 그래서 나를 배려해 연락을 하지 않았을 테고.
“미안∼ 앞으로 자주할게.”
“됐어. 나도 검사인데 다 이해하지. 알잖아, 우리 밥 먹는 시간도 빠듯한 거.”
“밥은 내가 살게.”
“어디! 국밥으로 때우려고 이건 내가 살 테니까 너는 비싼 거 사.”
국밥집 안은 꼬릿꼬릿한 냄새가 풍겨 왔고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한적했다.
“할매∼ 방에서 먹을게요. 할 얘기가 있어서.”
“저 노마도 검사인 겨?”
“하하, 네.”
“어라? TV에서 본 양반 같은디.”
“우리 한 검사 유명하죠.”
70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욕쟁이 할머니처럼 다짜고짜 이놈 저놈을 남발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거대한 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뽀얀 국물을 보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려. 들어가 있어. 금방 내갈 테니.”
“네∼”
낡은 한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시골집 안방 같은 모습이 보였다.
구석에는 방석이 쌓여 있었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앉아. 이런 집이 진짜 맛집인 거 알지?”
“오래된 것 같긴 하네.”
“오래 됐지. 과천 청사가 생기고 나서 이 집 순댓국 안 먹은 공무원이 없을 걸?”
“김치가 맛있네.”
뜨근한 바닥에 앉아 테이블에 차려진 김치를 맛보며 서윤호와 짧은 얘기를 했다.
드르륵.
“자, 받아.”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은색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뚝배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윤호는 반쯤 걸터앉은 할머니를 도와 뚝배기를 테이블로 옮겼다.
“수육은 서비스여.”
“어! 할매 평소에는 서비스 안 주더니…….”
“저노마 봐서 주는 겨.”
“한 검사 때문에요? 왜요?”
할머니는 몸을 일으켜 세웠고, 슬며시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를 위해 좋은 일 하는 놈이잖어.”
드르륵.
“할매! 나도 좋은 일 하거든요! 나도 검사인데…….”
“하하하하!”
뒤늦게 소리쳐 보는 서윤호였지만, 이미 문은 닫힌 상태였다.
“뉴스 많이 보시나 보네… 이래서 유명해져야 된다니까.”
“형도 특수부 시절에 몇 번 나왔잖아. 내 조연이었지만.”
“조연이라니! 우리는 엄연한 파트너였어. 투톱이었단 말이지.”
서윤호가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고, 우리는 자연스레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네.”
“어쩌냐. 대검 근처에는 이런 식당이 없을 텐데.”
“형, 서초동 밥이 왜 맛있는지 알아?”
“왜 맛있는데.”
“근처에 중앙 지검이랑 대검이 있어서 맛있는 거야.”
“너 지금 나 놀리냐? 감히 법무부 감찰국 검사를? 네 다음 임지는 영월로 해 달라고 국장님께 졸라 볼까? 이래 봬도 꽤 이쁨받고 있거든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내가 찾아온 이유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맛있는 순댓국을 더 이상 먹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어이쿠! 무서워라.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겨우 중수부 연구관이 감히 대! 검찰국 검사님한테 말입니다.”
“그래. 앞으로 그런 자세 유지하라고.”
“하하하하!”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짧은 회포를 풀었다.
비록 술은 아니었지만 뜨끈한 국밥 한 그릇과 함께.
“후∼ 잘 먹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났고,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오며 나는 슬며시 찾아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형.”
“그래. 이제 말해 봐.”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하하, 우리 잘나가는 한 검사님께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방산 비리 사건 알지?”
“잘 알지. 치우 네가 맡은 사건이라 눈여겨보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도 하니까.”
“그 사건 때문에 형 도움이 좀 필요해.”
“선고 끝났잖아. 무기징역 나왔는데 항소하려고?”
항소는 피고인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사 역시 양형 부당의 사유로 항소를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누가 항소를 하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만약 피고만이 항소를 할 경우 형사소송법 제368조, 불이익 변경 금지의 원칙에 의하여 원심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하지만, 검사와 피고인 양쪽이 항소를 하게 되면 더 중한 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선고가 끝나고 다섯 명의 변호사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다.
항소를 준비하는지 안 하는지 말이다.
하나 자신들도 소용없단 걸 깨달은 건지, 아니면 나 역시 항소로 맞받아칠 걸 알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다섯 명은 항소를 하지 않고 원심을 받아들였다.
“하긴… 니 성격상 무기징역으로는 만족 못 하겠지.”
사실 만족하지 못한 건 맞다.
무기징역과 사형의 차이는 꽤 크니까 말이다.
사실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무기징역과 사형의 차이는 가석방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차이다.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정도 형기를 채우면 죄질에 따라 가석방 심사를 하기도 하지만, 사형의 경우는 가석방 심사의 대상자에 법적으로 포함될 수가 없다.
왜?
사형수는 미결수이기 때문이다.
사형이라는 형벌에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섯 명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가석방이 된다고 해도 딱 죽기 직전의 나이일 것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순간 그들의 인생은 끝이 났다고 볼 수 있다.
“항소 때문이 아니야. 그리고 항소 준비할 거면 지금 수사팀이랑 하지 형을 굳이 찾아올 필요도 없고.”
“유능한 검사의 도움이 필요한 거 아니었어?”
“저기요… 저희 수사팀에 정일현 부장님이 계셨거든요.”
“아, 맞다. 정 부장님이 있었지. 하긴 그분이 방산 비리 사건 전문가이시니까.”
“내가 형을 찾아온 이유는…….”
서윤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길고 긴 얘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있던 일과 클럽에 관한 정보, 그리고 내가 클럽에 들어가 언더커버 수사를 하겠다는 계획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흠…….”
어느덧 작은 창문 틈 사이로는 햇빛이 아니라 달빛이 스며들었다.
내 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서윤호는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러니까 퇴근 후 맥주 한잔 마실 시간을 너를 위해 쓰란 말이지?”
“하하하.”
서윤호의 농담에 웃음을 보였다.
나를 도와준다는 답변이 담겨 있는 농담이었기 때문이다.
“형 도움이 꼭 필요해. 내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검사는 형밖에 없거든.”
“어이∼ 검사라니. 사람이라고 해야지. 우리 비즈니스적 관계인 거니?”
“아! 쫌 장난 그만치고.”
“그래, 알겠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번 수사는 보안이 가장 중요해. 일단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기다려. 내가 수사팀 다 모으면 다시 찾아올게.”
내게 필요한 사람들과 이번 수사에 도움을 줄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바로 서윤호였다.
가장 믿을만한 검사여서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아는 서윤호는 꽤 능력 있는 검사였다.
지난 2년간 특수부 생활을 통해 큰 사건에 익숙한 검사였으니까 말이다.
“휴… 얘기 끝난 거지?”
“응.”
“잠깐만…….”
드르륵.
서윤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문을 열고 두리번거렸다.
“할매∼ 소주 한 병만 주세요.”
“회사 안 돌아가나?”
“퇴근 시간 지난 거 같은데요, 뭐.”
그렇게 소주를 시킨 서윤호는 잔을 채웠다.
“갑자기 무슨 술이야.”
“한동안 못 마실 거 아니야.”
“아…….”
서윤호는 애주가였다.
물론 그의 몸은 술을 거부했지만.
언젠가 물은 적이 있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서윤호의 대답은 꽤 재미있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담배와 술 두 가지 중에 그나마 더 나은 게 술이 아니겠냐고.
참 웃긴 건 평소에 안 피우던 담배를 술을 마실 때마다 피우는 서윤호가 하는 말이라는 거다.
“그래. 오늘은 한 잔 마시자. 나도 오랜만에 땡기네.”
“그럼 파견 공문은 안 보내겠네?”
“응. 클럽을 수사한다는 사실은 중수부장도 모르거든.”
“뭐?! 그럼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무슨 소리야. 중수부장 몰래 소속 연구관 출근표를 대신 체크해 줄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어.”
꼴깍.
채워져 있는 잔을 털어 넣었고 서윤호 역시 잔을 들었다
하지만…….
“주한호 대통령.”
“풉!”
내 말에 놀라 입에 있던 소주를 뿜을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만! 주한호 대통령이 너를 도와주고 있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수사의 총책임자지. 수사 개시를 허락해 줬으니까.”
“하… 미친놈… 나는 손 떨려서 수사 못 할 것 같은데.”
“좋게 생각해, 형. 대통령이 직접 재가한 사건이고, 완벽히 해결하면 역사상 최연소 부장검사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하하.”
서윤호는 뱉어낸 술잔을 다시 채우고 슬며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여튼 사람 구슬리는 재주 하나는 최고라니까.”
* *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천만 원짜리 중형차가 공시 지가만 100억이 넘는 고급 빌라 앞에 멈춰 섰다.
물론, 이 고급 빌라는 내 소유가 아니었다.
하지만 천만 원짜리 중고차 하나 정도야 언제든지 살 수 있었다.
나도 이제 엄연한 3년 차 검사이니까.
호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초임 검사는 3급 공무원에 준하는 연봉을 받는다.
물가 상승률에 따라 점점 오르겠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013년을 기준으로 한 달에 270만 원쯤 받는다.
물론, 270만 원이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공무원들이 그렇듯, 나라에서 정한 기본 봉급 외에 각종 수당이 더해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검사는 월급과 함께 나오는 수당이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많았다.
정근 수당과 정액 급식비는 물론, 수사 지도 수당에 관리 업무 수당까지.
심지어 직급 보조비에 직무 성과금까지 붙어, 세금을 떼고 대략 6,000만 원이 넘게 통장에 들어온다.
즉, 천만 원짜리 중고차 하나 굴리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이게 집이야 궁전이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 연봉이 1년 전기세 정도겠지만.
하지만 내 연수원 동기들과 몇몇 검사들은 이곳에 살았다.
또한 회사에는 중형 세단을 몰고 출근하지만 휴일에는 몇 억짜리 스포츠카를 끌기도 했다.
검사라는 직업이 만나게 해 준 빵빵한 장인어른이 있으니까.
물론, 그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검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장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사건을 덮어 준다거나, 혹은 처가 식구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떻게 오셨죠?”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차량이 정문을 통과하려 하자,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이 다급하게 다가와 물었다.
“지인 좀 만나려고 왔는데요.”
“몇 호시죠?”
“펜트하우스라고 하던데.”
“펜트하우스면…….”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는 경비원.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원은 내가 누굴 찾아온 건지 알겠는지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요리조리 살폈다.
“SY 그룹 회장님이 거주하시는 곳인데…….”
“네, 맞습니다. 강서빈 이사님, 아니, 강서빈 회장님 만나 뵈러 왔습니다.”
“약속하셨나요?”
“초대를 받았으니까 찾아왔겠죠?”
경비원에 말투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역할이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천만 원짜리 중고차와 20만 원짜리 양복을 걸친 나 같은 존재로부터 이곳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기에 경비원을 이해시키기에는 지금 내 모습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강서빈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이고! 한 검사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베란다에서 한 대 피우다가 혹시나 하고 내려왔는데, 잘 됐네.”
“회장님!”
“제 손님 맞는데,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들어가십시오. 여기 방문증…….”
“방문증 말고 입주자 차량으로 등록해 주십시오. 언제든지 오실 수 있게.”
“아!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 계시면 제가 알아서 등록해 놓겠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차량은 제가 회장님 주차 공간에 주차해 놓겠습니다.”
강서빈 이사에 한 마디에 젊은 경비원에 태도가 180도 변했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그런지 경비원의 모습이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경비원은 흔한 경비원들과는 달리 키도 크고 덩치도 상당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몇 명의 보안요원들까지 있었다.
즉, 50세대 남짓한 고급 빌라의 입구를 특수부대 출신과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인원들이 지키고 있던 것이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비원이 내 차량에 올라타려 했다.
나는 그를 막아서려 했지만, 강서빈이 옆으로 와 눈을 힐끔거렸다.
“내버려두세요. 검사님이 대우받은 만큼 대우해 주시면 됩니다.”
강서빈 이사의 귓속말에 나는 차마 더 막아서지 못했다.
부우우웅―
“제 손님에게 무례하게 굴고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으니, 이 정도 갑질은 해도 되겠죠, 검사님?”
“하하……”
강서빈에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비원을 막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멋쩍은 내 웃음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그나저나 죄송해요, 한 검사님. 제가 미리 나와서 모시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불쾌하셨죠? 이해하세요. 아무래도 방문 판매를 하시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다 보니 신원 확인을 빡빡하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져 있는 빌라.
높고 거대한 입구를 지나 왼쪽에 있는 A동으로 향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빌라는 처음 와 보네요.”
인테리어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로비의 대리석은 고급스러운 것 같았고 벽면에는 유명 화가들에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감탄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을 본 강서빈 이사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네? 뭐를요?”
“검사님이 필요하시면 이 집도, SY도 전부 넘겨드릴 테니까요.”
“회사 경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SY를 만들고 민태호와 강서빈 이사를 만나게 한 이유는 꽤 많았다.
조폭으로 살다가 총에 맞고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나.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어머니께 대한 효도와 썩은 세상을 정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사가 가지고 있는 기소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거악과 맞서기 위해 나 역시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위해서 SY에 자본을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필요도 없었고.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를 찾아온 것은 강서빈 이사와 SY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클럽이라는 거대한 악과 조직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군다나 언더커버 수사는 검찰 조직에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국정원을 제외한 기관들에 예산은 사용처와 사용 금액이 반드시 공개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면 판공비로 둔갑한다 해도 나한테 과하게 측정되는 예산이 분명 의심을 살게 빤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국정원을 통해 세탁된 예산을 받아 쓸 수도 없었다.
조정식 국정원장이 클럽 소속이지 않은가.
“태호 삼촌은요?”
“아, 부회장님 식구 한 명이 많이 아픈가 봐요. 그래서 거기에 문병을 가셨어요.”
“여기에 오기는 하세요?”
“아니요. 아무래도 옛날 집이 편하신지 거기서만 지내세요.”
“하하! 하긴, 이런 빌라가 어울릴 만한 분이 아니지.”
또한 눈을 떴을 때, 세 번째로 든 생각은 바로 민태호였다.
내게는 은인과도 같은 민태호를 살리기 위해 매달 그를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 건강검진을 받게 했고, 암 덩어리를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수술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돌아다니신데.”
“하하, 어찌나 회복력이 좋으신지, 의사가 부회장님 같은 분 처음 봤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하여튼 괴물이야.”
민태호의 수술은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았다.
몸 상태를 보면 몇 년은 된 것 같았지만.
민태호의 수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건강검진을 챙긴 대가였다.
“회사 생활은 어떠세요?”
“이제 제법 테가 나십니다. 서울연합파 식구들도 완벽한 회사원이 된 것 같고요. 또 민태호 부회장님께서 어찌나 교육을 잘 시켰는지, 작은 사고도 없었습니다. 업무 능력도 꽤 출중하고요.”
“잘됐네요.”
또 SY그룹은 음지에 있던 민태호를 양지로 완벽히 끌고 나와 주었다.
하지만 아직 그룹을 맡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자신의 과거가 회사에 폐를 끼칠 것 같았는지, 주주총회를 열어 재무이사인 강서빈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자신은 부회장 자리에 앉았다.
그만큼 SY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상장 후에 강서빈 이사의 활약으로 SY의 주가는 미친 듯이 올랐고, 코스피로 이전 후에 SY는 대기업으로 인정받기 직전까지 왔다.
얼마나 급속도로 성장했는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저도 이 집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습니다.”
강서빈과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눈 것 같았는데도 넓디넓은 로비에서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하하, 엘리베이터까지 걷는 게 힘들어서요?”
“하하, 그럴 리가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보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타니까요. 그리고 차에서 내리면 펜트하우스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바로 눈앞에 있기도 하고요.”
거대한 펜트하우스와 민태호가 사는 밑의 층은 두 사람의 소유가 아니었다.
세계 굴지에 기업들이 SY에 투자를 하려 했고, SY는 그들을 맞이할 마땅한 공간을 찾다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즉, 회사 소유였고 매일매일 미팅이 이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강서빈에 집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신변에 위협을 받고 있기도 했고, 나름 중견 기업의 회장이 거처하는 공간으로는 어색하지 않았다.
태호 삼촌이 거주하는 공간 역시 그런 목적으로 구입했지만, 실무자 미팅은 강서빈이 다했기에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그런 것보다는 그저 10평짜리 모텔 방이 더 편한 게 이유일 것이었다.
“일단 올라가시죠.”
“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PH 버튼에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강서빈.
“펜트하우스는 현관문이 없더군요. 직원들은 카드키로 올라오고요.”
― PH층입니다.
또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는 전혀 다른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대저택이 15층 높이에 있었다.
높은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고, 거실에는 우리 집만한 테이블이 보였다.
또한 비닐도 뜯지 않은 주방 기구가 있는 넓은 주방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집안 곳곳에는 펼쳐진 서류철들이 있었다.
“어제 밤새 회의를 해서 좀 지저분합니다. 저기 앉으세요.”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물병들과 이면지들을 지나 강서빈이 가리킨 소파로 향했다.
“요즘 사업 이슈들이 많아서 거의 매일 임원들과 회의를 합니다. 사실 SY 사옥 회장실보다 여기서 회의를 더 많이 하죠.”
“회장님께서 이곳이 불편한 이유가 있었네요.”
“하하!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요.”
크기가 제법 되는 냉장고를 열며 말하는 강서빈.
그 속에는 각종 커피들과 각성 효과를 불러오는 음료수들밖에 없었다.
“보시다시피 이런 것밖에 없는데, 괜찮으세요?”
“네. 마침 잘됐네요. 저도 피곤했는데.”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넓은 거실에 마주앉은 두 사람.
메인테이블이 아닌, 작은 유리 테이블에는 커피와 음료수가 놓여 있었고, 강서빈은 내가 찾아온 이유를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였다.
“근황은 올라오면서 다 말한 것 같고, 피곤해 보이시니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회장님.”
“하하, 네 그러세요.”
“SY가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SY를 움직일 수 있는 회장님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슬며시 미소를 보이는 강서빈.
그는 어떠한 토를 달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이유를 묻지도 않으시네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한 검사님이 하시는 일은 무조건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SY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유 역시 한 검사님 덕분이니까요.”
그에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클럽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강서빈을 너무도 쉽게 설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설득을 했다고 볼 수도 없었지만.
하지만 강서빈이 내 수사팀에 들어올 마지막 인원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태호 삼촌은 어디 있어요?”
* * *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지나자, 낡은 호텔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법복을 입고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호텔 건물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검사 한치우가 아니라 서울연합파 한치우가 매일 드나든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SY 그룹이 있지만, 과거에도 SY가 세워졌다.
민태호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호텔을 떠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천재학 사건을 맡았을 때, 강서빈 이사를 보호하기 위해 잠시 괜찮은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하지만 사건이 끝나자마자 민태호는 어김없이 이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100평이 넘는 고급빌라를 뒤로한 채 말이다.
[제일호텔]
내기 알기로는 한 40년쯤 됐을 것이다.
이 호텔이 영업을 시작한 지는.
리모델링을 통해 요즘 호텔처럼 구색을 갖추기는 했지만, 그것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외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하얗게 칠한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옥상에 보이는 커다란 간판은 낡아서 녹이 슬었다.
“옛날 생각나네.”
검사가 된 27살의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산 27살의 나를 추억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 여기서.”
민태호가 몇 명의 식구들과 함께 서울연합파를 조직하고 서울을 접수해 나갈 때, 처음으로 잡은 숙소가 바로 여기였다.
40년 전, 이 호텔이 세워졌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 당시의 강북은 지금의 강북과 달랐으니까.
강남이 개발되기 전이였으니까 말이다.
당시만 해도 매일 방이 가득 찰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호텔이었다.
대기업의 자본으로 빵빵한 투자를 받으며 세워진 호텔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고, 그보다 더 좋은 시설의 호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동인구 역시 줄었기에 제일호텔을 소유하고 있던 기업은 헐값에 매각을 진행했고, 제일호텔을 인수한 사람이 바로 안정찬이라는 의사였다.
그는 규모가 꽤 큰 병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민태호와 서울연합파 식구들에 배에 뚫린 칼 구멍을 매워 주던 의사였다.
참 이상한 인연이었지만, 민태호는 그를 좋아했고, 또 존경했다.
재산이 제법 되는 안정찬은 호텔 운영 목적이 아닌 제일호텔을 부수고 새로운 상가를 지으려고 했지만, 민태호에 의해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건물을 철거하기 전까지 잠시 머물겠다던 민태호의 서울연합파는 조직의 규모가 나날이 커져 갔기 때문이다.
200개가 넘는 객실 전체를 숙소로 사용해도 될 만큼 말이다.
안정찬 역시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다 죽어 가는 호텔 건물에서 억 소리가 나는 돈이 다달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끔 일반 손님이 제일호텔을 찾기도 했지만, 전신에 그림을 그린 사내들이 사우나를 돌아다니고, 로비에는 호텔 직원이 아닌 조폭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기겁을 하고 도망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 검사님”
“네. 태호 삼촌, 안에 있어요?”
호텔 앞.
다 지워져 희미한 주차선이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자, 덩치 한 명이 뛰어나와 차량 문을 열어 주며 나를 맞이했다.
“네! 부회장님께서는 사우나에 계십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아니요. 제가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안내판이 없어서 찾기 힘드실 겁니다.”
덩치는 산만했고, 덕지덕지 붙은 살에 슈트가 꽉 끼어 움직이기 불편해 보였지만, 녀석은 웃고 있었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 듯이 말이다.
녀석은 회사원처럼 차려입고 머리에 젤을 발랐지만, 앳되어 보이는 얼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많아 봐야 스물다섯.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시기에 조직폭력배 숙소가 아닌, SY 그룹 직원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이곳을 조직폭력배 숙소에서 SY 직원들의 숙소로 바꾼 게 바로 나였으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에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결과, 내 눈앞에 있는 덩치의 앞날은 바뀌었다.
“걱정 마세요. 이곳은 제가 그쪽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네?”
“하하,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이제 주말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톡톡.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손으로 치며 말했다.
일요일 오후.
조폭이면 몰라도 직장인에게는 일 분, 일 초가 아까울 것이었다.
“내일 출근하려면 푹 쉬셔야죠. 아니면 친구들이라도 만나고 오시든가.”
“아, 그게… 오늘 한 검사님께서 오신다고 해서 제가 자진해서 나온 겁니다.”
“태호 삼촌, 완전 나쁜 상사네. 주말에 직원들 일 시키고 말이야.”
“아, 아닙니다! 저는 부회장님을 누구보다 존경합니다. 양아치처럼 살던 저에게 반성과 후회할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부회장님이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자진해서 나온 겁니다! 한 검사님 뵙고 싶었거든요.”
“저를요? 왜요?”
“제가 한 검사님 팬입니다! 나쁜 놈들 때려잡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멋있는 검사! 예전에는 검사라면 치가 떨렸는데, 회사원이 되고 나니 이렇게 검사님과 마주해도 하나도 떨리지가 않네요.”
“당연하죠. 조폭이 아니라면 당신 역시 제가 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이니까요.”
“와… 역시…….”
녀석은 마치 새로운 종교를 발견한 듯이 눈을 빛냈다.
“그럼 고생해요.”
나는 벙쪄 있는 녀석에게 그렇게 말하며 익숙한 호텔 로비를 지나 사우나로 향했다.
피식.
“귀엽다, 귀여워.”
나를 위인처럼 떠받드는 모습이 귀엽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녀석의 모습이 귀여운 거지.
앞으로 녀석에 앞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조폭 생활보다는 분명 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이었었다.
앞으로 더 이상 후회할 일과 반성할 일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사우나가 3층이니 걸어 올라가자.”
눈앞의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
아마 이곳에 사는 서울연합파 식구들 대부분이 계단을 이용할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이 엘리베이터를 타 봤다면 얼마나 느려 터졌는지 잘 알 것이었다.
“아무도 없네.”
낡은 호텔이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전부 있었다.
사우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을 접수하려 치고받고 흙바닥에 뒹구는 일이 많던 탓에 매일같이 사우나에 오곤 했다.
그렇기에 이곳에 쑥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
“하긴… 이제 다 같이 모여서 씻을 일은 많지 않으려나.”
빈 보관함을 열어 슈트를 벗어 넣었다.
민태호는 사우나 안에 있을 테고, 나 역시 오랜만에 사우나를 즐기고 싶었다.
끼익―
“아따, 황금 같은 주말에 사우나 오는 낭만적인 녀석이 아직도 있는겨?”
낡은 문이 열리자, 두꺼운 민태호의 목소리가 사우나에 울려 퍼졌다.
“전세라도 냈어요?”
“뭣이여?”
탕에서 나는 수증기 때문에 작은 목욕탕 안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민태호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다.
“다 같이 쓰라고 만든 건데, 혼자만 즐기면 안 되지.”
“하하하하! 싸가지 없는 거 보니꼐 누군지 딱 알겠고만. 밖에서 기다릴 것이지, 뭣 한다고 여까지 왔데.”
“오랜만에 삼촌이랑 몸이나 지지려고요.”
“내가 니랑 사우나 온 적이 없는 걸로 아는디…….”
“삼촌만 모르는 시간이 있읍죠.”
“헛소리하는 것도 변함이 없고만.”
스윽.
나는 녹차를 풀어 녹색으로 변한 탕에 들어갔고, 두 팔을 벌린 채 반신욕을 즐기고 있던 민태호와 마주앉았다.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에 한 문신과 거대한 덩치 때문에 마치 흑곰 하나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
“밥 좀 팍팍 무거라. 사내 녀석 몸이 그게 뭐꼬.”
“저는 근육질에 이상적인 몸매고, 삼촌 같은 몸을 근돼라고 하는 겁니다.”
“근돼가 뭣이여?”
“근육돼지의 줄임말이지요.”
“워매! 이제 아주 맞먹으려고 드는구마잉.”
“하하하하!”
민태호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 우리는 꽤 자주 이 녹차탕에 몸을 담그곤 했다.
서로의 몸에 난 칼자국을 보며 철없는 자랑을 하기도 했고, 일곱 살 어린아이처럼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몸싸움을 했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지만.
나는 그때의 추억을 회상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운 그때를 말이다.
“와?”
“뭐가 와야.”
“와 보자고 했냐고.”
“아, 삼촌한테 할 말이…….”
오랜만에 내 귀에 울리는 민태호의 사투리.
하지만 그 사투리로 인해 궁금증이 생겨 버렸다.
“아니, 근데. 명색이 SY 그룹 부회장이 아직도 사투리를 쓰면 어떡합니까?”
“나가 니 앞에서도 간지럽게 표준말을 써야 되는겨? 걱정 말어. 남들 앞에서는 표준말 잘하니꼐.”
“잘할 수밖에. 삼촌, 서울에서 태어났잖아요. 생각해 보니까 진짜 웃기네. 서울에서 태어났고, 조직 생활도 서울에서 했는데, 도대체 사투리를 왜 쓰는 거야?”
“전국구 조폭이…….”
“지역감정을 섞어서 되겟는감?”
“하하하하! 뭐여? 이제 독심술도 하는겨?”
과거로 돌아오기 전.
그때도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민태호에 대답 역시 그때와 똑같았기에 그의 대답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래요, 한 검사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왜 황금 같은 제 주말을 방해하시냐고 여쭙는 겁니다.”
장난스런 표정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민태호.
생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뭐랄까, 드라마 속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결재서류를 보는 회장 같다고나 할까.
그런 표정이 민태호에게서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와, 소름 돋으니까 그만하세요, 삼촌.”
정말이었다.
정말로 몸에서 닭살이 돋았다.
“도대체 어쩌라는겨.”
“하하, 삼촌은 그 말투가 어울립니다.”
“그려, 나도 이게 편한디. 니 앞에서 밖에 못하는 게 슬프네.”
둘만의 공간을 벗어나면, 우리는 서로 존대를 해야 했다.
서로의 위치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검사고, 삼촌은 SY 그룹의 부회장이니까.
우리의 위치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과 또 우리에 어깨에 달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위치인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꼐, 회장님도 만나고 온 것 같은디…….”
“네, 맞습니다.”
“뭔 일이 있긴 있나 보네.”
“아주 큰일이죠.”
“아이고야… 어째 한동안 잠잠하다 혔어.”
클럽을 수사하는 데 있어 수사팀에 꼭 필요한 사람 중 한 명.
그것은 바로 민태호였다.
강서빈이 SY 그룹을 움직일 수 있다면, 민태호는 서울에 모든 조직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양지가 아닌 음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클럽이 양아치 집단이 아니고 잡범들이 모여 있는 조직 역시 아니지만,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불법적인 일을 한다면 민태호를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불법적인 일은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음지에 사람들을 통할 수밖에 없으니까.
꼭 불법과 음지를 따지지 않아도 민태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뭔 일인지 말부터 혀 봐.”
“삼촌이 제 개인 수사관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야, 내가 이래 뵈도 SY 그룹 부회장인디, 내를 수사관으로 쓰겠다는 것이여, 시방?”
“해 주실거죠, 민 수사관님?”
능청스럽게 말하자, 민태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가 나에게 진 빚이 꽤 많다고 생각했다.
* * *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목적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울을 벗어난 지는 한참이나 됐고, 새벽에 뻥 뚫린 고속도로가 차량의 속도를 올렸다.
“미안하네. 새벽에 운전을 시켜서.”
“아닙니다. 제가 만나 뵙자고 한 건데요, 뭐.”
목적 없는 운전의 이유는 백성원 차장과의 대화를 위해서였다.
어쩌면 수사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 수도 있는 백성원 차장을 영입하기 위해 연락을 했고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그를 태웠다.
사실 나나 백성원 차장이나 강남대로는 만나기 위한 장소로 딱 좋았다.
대검이 있는 서초동과 국정원이 있는 내곡동과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원도까지 대충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안에 끝날 얘기인가?”
“네, 충분합니다.”
“그럼 조금만 더 고생해 주게나.”
처음 차에 백성원 차장을 태웠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얘기인가’였다.
나는 그렇다 대답했고, 그는 차를 멈추지 말고 운전대를 강원도 쪽으로 돌리라 명했다.
그렇게 카페도 음식점도 아닌, 달리는 차량 안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몰라 캔 커피라도 사 왔는데, 먹을 텐가?”
“하하,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차장님.”
“자네가 갑자기 만나자고 했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거라는 걸.”
클럽은 나와 백성원 차장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얼마 전.
방산비리 수사를 위해 고련전단에 모인 우리는 클럽과 김수철의 통화 내용을 들었고, 그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즉, 김수철에게 우리의 작전을 전달하던 스파이 역시 있었다는 소리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김수철에게만 정보를 전달하는 스파이는 아닐 것이었다.
구치소에 이감되기 전에 김수철에게 마지막으로 물은 적이 있었다.
수사팀의 작전을 알려 준 사람이 누구냐고.
하지만 김수철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마일즈 장비 수사에서 차장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아, 우리 중에 프락치가 있다는 거?”
“정일현 부장님이 말씀하셨나 보군요.”
“하하, 자네랑 대화하면 참 편해.”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는 말일세.”
사실 내 머리가 좋아서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만한 사람이 정일현 부장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백성원 차장이 스파이란 소리인데,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리가 없지 않은가.
“누구인지는 알아냈나?”
“김수철 장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럼 자네 계획을 어떻게 알았다는 건가?”
“김수철 역시 클럽에서 전해 줬다고 합니다.”
“그 말은…….”
“네 맞습니다. 우리 수사팀에 클럽의 스파이가 있던 겁니다. 그게 클럽원일지, 단순 심부름꾼일지는 모르지만, 아마 클럽원일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속이 아닌 사람에게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 존재를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용하려 했다.
김수철과 클럽 간의 통화 내용에서 조정식 국정원장에 이름이 거론되었고, 그렇다는 것은 클럽 역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정식 국정원장에 신분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그래도 다행인 점은 조정식 원장이 곧 제거될 거라는 겁니다.”
“뭐? 클럽이 죽이기라도 한다는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정체를 노출된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는 않겠죠.”
자리를 뺏은 다음,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 아주 먼 나라로 유배를 보낼 확률이 높을 것이었다.
그를 감시할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차장님이 배우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영화의 배우가 되어 달라는 말인가?”
“일단 조정식 국정원장을 찾아가 고려전단을 폐쇄했고, 그 잘못을 덮어 주겠다고 말씀하십시오.”
“흐음, 회유를 하라는 건가?”
“아니요. 그냥 연기일 뿐입니다. 아무리 회유해 봤자 조정식 원장은 입을 열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분명 그도 모든 걸 내려놓고 해외로 도피할 계획을 잡고 있을 겁니다.”
“그럼 왜 그를 위해 연기를 하라는 건가? 해외 도피를 막고 조 원장을 잡아 놔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그를 기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표면적으로 범죄를 입증할 증거도, 혐의점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클럽이라는 범죄 조직 소속이니 처벌해 달라고 기소장에 적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일단은 놓아주자.
아니, 그를 미끼로 더 큰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
“다음 국정원장은 바로 차장님이 될 테니까요.”
“뭐?!”
“VIP께서 재가하셨습니다. 그리고 클럽을 수사하기 위해 임시로 자리를 드리는 것 또한 아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국정원장의 빈자리를 채울 마땅한 외부 인사는 현재 없고, 내부 승진자 중에서 1순위는 단연 1차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한 얘기였다.
즉, 그의 국정원장 승진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럼 클럽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새로운 국정원장한테 말입니다.”
아마 두 가지 선택 중에서 고민을 할 것이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총 동원해 국정원장 자리에 못 오르게 막거나, 백성원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거나.
“내가 클럽에 협조적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라는 얘기군.”
“네, 맞습니다. 조정식 원장은 절대로 클럽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저를 찾아와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을 겁니다. 왜냐? 아쉬울 게 없거든요. 제가 자신을 기소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죠.”
즉, 그의 선택은 클럽에 순응하며 남은 인생을 편히 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클럽 역시 껄끄럽게 문제를 만들기보다는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의 돈을 쥐어 주며 그를 멀리 보내려 하겠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저는 클럽에 들어가 언더커버 수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 수사를 도와줄 본부를 고려전단에 설치할 거고요.”
그리고 백성원 차장은 나를 클럽에 들어가게 해 줄 열쇠가 될 것이었다.
“아마 조정식은 끝까지 클럽에 협조할 거고,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하고 비행기를 타겠죠.”
“마지막 한마디라니?”
“‘잘만 하면 넘어올 것 같습니다’라고 말이죠.”
“누가 넘어간다는 소리인가?”
“차장님이요.”
“하하, 이중 스파이가 되라는 말이군.”
“차장님 역시 길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아도 백성원 차장은 내 계획을 전부 간파하고 있었다.
클럽은 새로운 국정원장이 된 백성원 차장에게 접근을 할 것이었다.
조정식 원장에게 호의적이며 그의 말로 인하여 어떤 가능성을 볼 테니까.
물론 의심을 아예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백성원 차장은 꽤나 영리하고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의심을 한다 해도 결국 더 나은 답안지를 채택할 확률이 높았다.
백성원이 자신들의 적보다는 아군인 게 훨씬 더 나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가 클럽에 들어간 다음에는?”
“저를 추천하시는 겁니다.”
“하하, 도저히 자네 생각을 따라갈 수가 없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오랜 고민 끝에 찾은 방법입니다.”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봤자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아니, 다른 방법 따위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전단의 존재 역시 철저히 숨겨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말게나. 폐쇄했다고 보고할 테니.”
“그 정도로는…….”
“하하, 고려전단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하나밖에 없을 것 같나? 수사팀이 보지 못한 또 다른 입구가 있으니, 그것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우리가 수사를 한다는 사실은 물론,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사실 역시 클럽이 알아서는 안 된다.
“이 정도면 대화는 끝난 것 같네요. 차 돌릴까요?”
“아니, 조금만 더 가면 동해바다인데, 보고 가는 게 어떻겠나?”
대화가 꽤 짧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바다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운 것인지, 아니면 답답한 마음을 바다를 통해 풀고 싶은 것인지는 몰라도 백성원은 슬며시 웃으며 제안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백성원이 느낀 감정은 내가 느낀 감정과 같았다.
부우우웅―
아까보다는 조금 더 발에 힘을 주었고, 차량의 속도는 조금 빨라졌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휴가일지도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수사팀 구성은 다 했나? 나를 찾아온 것을 보니 직접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직접 하고 있습니다.”
“잠, 잠깐만… 잠깐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는 게 무슨 소리야?”
스윽.
나는 속주머니에 있던 휴대 전화를 꺼내 백성원 차장에게 보였다.
주한호 대통령이 준 휴대 전화를 말이다.
“이번 수사의 총책임자는 대통령이시거든요. 이게 보고 수단이구요.”
“설마 핫라인인가?”
“네, 맞습니다.”
“하, 하하… 자네 제안을 거절했으면 큰일이 날 뻔했군.”
“그런 건 아닙니다. 수사팀 인원 편성은 전적으로 저한테 맡기셨으니까요.”
“그래서 수사팀에 누가 있지?”
“다 구성된 다음에 한 자리에서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백성원 차장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아직 한 사람이 더 필요했으니까.
통화로만 지휘하는 주한호 대통령보다 실질적으로 수사팀을 지휘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겠네.”
“네? 무슨 계획이요?”
“바다만 보고 오려 했는데, 회에다가 소주도 한잔 마셔야겠네. 볼일이 있으면 자네는 먼저 가게나. 나는 택시를 타고 올라갈 테니.”
머리가 아픈지 백성원 차장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한잔 따라 드리고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차장님을 영입하는 계약금으로는 부족하겠지만요.”
“하하, 아닐세. 그 정도면 계약금으로 충분하네.”
* * *
이른 아침, 서둘러 집을 나왔다.
백성원 차장에 집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웠을 때는 4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동이 켜진 내 차량의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고, 멀기도 하다.”
목저지 안내 버튼을 누르자 나타나는 거리.
400㎞가 조금 안 됐다.
나는 서둘러 차량을 출발시켰다.
수사팀에 영입할 마지막 인물이자 실질적인 지휘관이 될 인물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말이다.
“진짜 오랜만에 가 보네, 부산은.”
이전 생에서는 두 번, 지금 생에서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도시였다.
“댁에 계시겠지…….”
찾아간다고 미리 연락하지는 않았다.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않은 죄송함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한 문안인사가 아닌, 목적이 있는 방문이었지만…….
“도착하면 11시쯤 되겠네. 사람들은 없겠지?”
지금 그의 집을 찾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영입하려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는 뜻이었다.
나는 수사팀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세력으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고 있었다.
지금 정치계에서 그는 흥행이 보증된 수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가야겠네.”
* * *
부우우우웅―
한 네 시간쯤 달렸나.
드디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후우, 밤바다랑은 또 다르네.”
어젯밤.
백성원 차장과의 대화를 위해 어제 강원도로 향했고 밤바다를 보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성원 차장의 술 수발을 든 것이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어제와 기분이 조금 달랐다.
낮에 본 부산 바다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다 냄새는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였다.
“기장군이라 그랬는데…….”
퇴임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강철호 총장.
30년의 타지 생활 동안 그의 고향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산과 들, 깊은 산속 옹달샘이 흐르던 곳은 어느새 높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강철호는 인구 300만이 넘는 부산에서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자신의 쉼터를 직접 만들었다.
“진짜 좁네.”
덕분에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을 통해 한참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하, 저기 계시네.”
길고 긴 울렁거림 끝에 보이는 작은 저택 하나.
차량의 엔진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곳인데도 화단을 가꾸고 있던 강철호 총장의 시선은 그대로였다.
아마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왔을 테고, 기자들 역시 그의 행보가 궁금해 이곳을 찾았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런 깊은 산속과 어울리지 않는 엔진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대충 세워도 되겠네.”
흙바닥이었지만 넓은 공터가 있었기에 따로 주차장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없겠지?”
차를 주차하고 내린 나는 기자들과 정치인들, 혹은 그들의 보좌관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긴 1년이나 지났으니 잠잠해질 때도 됐지.”
꽤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강철호를 영입하기 위해 수도 없이 찾아오던 사람들에게 있어 1년이라는 시간은 꽤 길었다.
그 긴 시간동안 강철호 총장은 어떠한 조건에도 한사코 거부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강철호를 영입하려는 사람들이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주에 한 번쯤 강철호 총장의 이름이 사회면에 거론되고 있었다.
“이상하네, 기분이.”
그렇게 주변을 확인한 나는 멀리 보이는 강철호 총장을 향해 걸었다.
근데 이상한 점은 그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끝이 찡해진 다는 것이었다.
마치 철없던 시절의 나를 인도해 준 옛 스승님을 만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가 처음 그를 만난 때는 학창시절이긴 했지만, 껍데기만 그럴 뿐이지 속에는 40대 한치우가 들어 있었다.
즉, 철이 없던 시절도 아니었고, 실질적으로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눈은 강철호 총장을 우러러 본다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어느새 가까워진 내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본 강철호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총장님.”
“미치겠구만, 진짜. 여기는 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가?”
일부러 허리를 더 많이 굽혔다.
울먹거려 빨개진 눈과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고생했겠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 탓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철호 총장의 목소리 역시 떨렸고 울먹거림이 느껴졌다.
“일단 들어가지. 자네 온 거 알면 마누라도 좋아할 텐데.”
“네, 알겠습니다.”
화분에 물을 주던 호스를 정리하며 은근슬쩍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강철호 총장이었고, 나 역시 그 틈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집이 아늑하네요.”
“하하, 조금 좁지? 나랑 마누라랑 둘이 살기에는 딱 좋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총장님.”
“그래도 집 안까지 사람을 들인 건 자네가 처음일세.”
“영광입니다.”
“영관은 무슨…….”
평범하지만 모자라지 않은 집.
넓지는 않지만 따뜻한 집.
강철호 총장이 보여 준 집의 모습이었다.
“아이고! 우리 한 검사님,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시래.”
주방에서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한 사람.
강철호 총장의 부인이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반겼다.
만난 적은 별로 없지만, 그녀는 나를 마치 영웅처럼 떠받들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강철호의 인연이 된 사건 때문이었다.
서부 지검장의 딸이 성폭행 후 살해당한 사건.
나는 범인을 잡아 강철호 총장에게 바쳤고, 미제가 될 뻔한 사건을 해결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말이다.
“총장님 뵈러 왔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사니 잘 지낼 수밖에요. 거기에 우리 한 검사님 얼굴까지 보니 날아갈 것같이 좋네요.”
그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강철호 총장의 부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내 손을 붙잡고 울며 말했다.
고맙다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이다.
“누가 보면 아들내미라도 온 줄 알겠어.”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검사의 어머니가 참 부럽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있으니.”
“아들보다는 사윗감으로는 한 검사가 최고지. 우리 하나가 살아있으면 어떻게 해 보련만.”
“그러게요…….”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그리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하나뿐인 딸을 잃은 상처.
아마 평생 치유되지 않을 것이었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큰 것은 없을 터였다.
“자네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네, 나나 집사람이나.”
“아닙니다, 총장님.”
“딸을 잃은 슬픔을 자네가 위로해 주고, 분노를 삭여 주었지. 그리고 이렇게 딸의 빈자리도 가끔씩 채워 주고 있으니 늘 고마울 따름이네.”
“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총장님, 그리고 사모님.”
“됐네. 우리는 자주 찾아오는 것보다 자네가 훌륭한 검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네. TV에서 자네를 보는 게 자랑스럽네.”
“다 총장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은 무슨… 이제 그냥 시골 아저씨일 뿐인데.”
딸의 빈자리.
그 자리를 내가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그래서 두 사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된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강철호 총장은 나를 자식처럼 생각했고, 많은 것을 내주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는 어쩐 일인가?”
“그게…….”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방문에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왠지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하, 편하게 말하게. 무슨 이유든 직접 찾아와 말하는 걸로 자네의 도리는 다한 것이니.”
꾸벅.
“죄송합니다. 사모님, 총장님과 잠시 둘이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요. 화단으로 커피를 내갈 테니, 편이들 말씀 나눠요.”
활짝 웃으며 주방으로 향하는 그녀.
강철호 총장은 자연스럽게 나를 다시 현관문 밖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내가 목적을 가지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한 것인지, 두 사람의 표정에는 어떠한 섭섭함도 보이지 않았다.
톡톡.
“마누라가 키운 꽃들이 꽤 향기롭네. 거기에 커피향이 더해지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지.”
물을 뿌린 지 얼마 안 돼서인지 화단의 꽃들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나와 강철호는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 둘은 마당에 마련된 하얀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인물이 찾아와서 그런지, 기분이 참 좋네.”
“그동안 자주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대검에서 첫 사건을 아주 멋지게 해결했더구나.”
자신을 시골 아저씨라 표현했지만, 강철호는 얼마 전까지 검찰의 수장이었다.
즉, TV를 통해 접한 소식 말고도 검찰 내부의 찌라시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소리였다.
원하지 않아도 굳이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수도 없이 찾아오는 기자들과 정치인들이 외부의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 것이었다.
나와 강철호 총장의 인연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의 퇴임식을 끝까지 지킨 평검사’.
사람들의 가십거리로는 충분했다.
“저 때문에 피곤하셨겠습니다.”
“하하, 피곤하긴 했지. 자네의 수사를 왜 나한테 묻는지, 거참…….”
이미 언론은 한치우라는 검사를 강철호 총장이 발굴하고 키웠다는 식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한 것일지도 몰랐다.
내 실수는 곧 강철호 총장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도 같으니.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멋지게 사건을 해결했더구나.”
“네…….”
내가 말끝을 흐리는 이유.
표면적으로 사건이 끝났을지는 몰라도, 방산비리 사건의 끝은 새로운 사건의 시작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방산비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사건의 시작이…….
“끝난 게 아닌가 보군.”
역시.
강철호 총장의 날카로움은 무뎌지지 않았다.
아직도 내 속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모든 것을 앞서 생각하는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이제 내 도움이 필요 없을 텐데…….”
“그럴 리가요.”
“가리킬 게 없다는 소리일세. 이미 완벽하다 못해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 버린 검사한테 무슨 조언을 하겠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스승이 필요한 법이죠. 제 능력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벽하다고 해도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이 필요하듯 말입니다.”
“하하, 사람을 휘어잡는 그 말투도 하나도 안 변했구먼, 그래.”
커피 잔을 입에 가져다 댄 강철호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렇기에 지금 저는 총장님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만, 나는 이제 검찰총장도, 공무원도 아닐세. 보다시피 화단에 물이나 주는 아저씨지.”
“이번 사건에 필요한 건 검찰총장도, 공무원도 아닙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혜안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아 정신적 지주가 돼 주실 분입니다.”
“하하, 퇴임한 검찰총장 데리고 수사팀이라도 꾸리려고 그러는 건가?”
“네, 맞습니다.”
내가 만들 수사팀에 마지막 인물은 경찰에서 넘어온 조서만 보고도 머릿속으로 기소장을 만들 수 있는 사람, 2,000의 검사를 지휘하던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 자네 부탁이니 들어주고 싶네만… 특검도 아니고, 전직 검찰총장이 자네 수사팀에 들어가는 건 많은 문제가 따르네. 자네도 잘 알 거 아닌가.”
물론 공식적인 수사팀이라면 그렇다.
전직 검찰총장이 수사팀에 있는 것은 후배인 현직 검찰총장에게도, 중수부장에게도 부담스러울 뿐더러, 언론 역시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올 게 빤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강철호 총장은 정치계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뜻은 나를 돕는 거겠지만, 비취지는 것은 정치를 위한 전략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즉, 수도 없이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만드는 수사팀은 평범한 수사팀과 달랐다.
“상관없습니다, 총장님.”
“상관이 없다니?”
직급과 직업, 정치적 문제, 그리고 과거의 문제까지.
내가 만든 수사팀에서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오직 클럽을 수사하겠다는 목적,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배제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제가 만들 수사팀은 조금 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