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장 (27/35)

제2장

대검찰청 앞.

“방산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수철 국방부 장관이 사임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수많은 기자들.

“검찰에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김수철 전 장관이 오늘 검찰로 출두할 예정인데요…….”

“이번 사건을 맡은 대검찰청 중수부 한치우 검사와의 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각기 카메라 앞에 서서 기삿거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오랜만이네.”

대검찰청 10층 중수부 한치우 연구관실.

중수부 위상에 걸맞게 검찰총장실 다음으로 전망이 좋은 방이었다.

그런 전망을 가진 연구관실에서 창문 밖으로 기자들을 보고 있는 나와 정일현 부장이었다.

“올라오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

“그러게요.”

“기다리지 말고 커피나 한잔해 오랜만에 자기 방에서 느껴보는 여유인데.”

“네. 한잔 드릴까요?”

“좋지∼”

커피 머신을 통해 은은한 커피향이 연구관실로 퍼졌다.

하지만 좋은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정일현 부장뿐이었다.

“걱정 마. 검사가 세 명이나 붙었는데 녀석들도 쉽게 못 움직일 거야.”

다리를 떨고 있는 나를 토닥이는 정일현 부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정원에서 들은 통화 내용 때문이다.

클럽은 김수철의 출두를 필사적으로 막고 싶어 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가 어떻게 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채이와 조정식, 그리고 이석 검사까지 모두 세 명의 검사와 1개 중대의 경찰 병력, 그리고 열 명의 무장된 수사관.

모두가 그의 검찰 출두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김수철이 타고 있는 차량을 뺑 둘러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한 대 피고 올게.”

“네, 부장님.”

커피를 홀짝거린 정일현 부장은 옥상으로 향했고, 나는 다시 창문 앞으로 향했다.

삐용—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리는 사이렌.

“다 왔나 보네.”

그 소리가 김수철 장관이 대검찰청에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역시나.

경찰 승합차 뒤로 보이는 김수철의 차량.

차량이 보이자 수많은 기자들이 그의 차량을 둘러쌌다.

“아이고… 많다 많아.”

경호를 받으며 내린 김수철 장관은 곧 포토라인에 섰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또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있는 10층까지 소리가 전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고 있을지 알고 있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과 멘트. 김수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슬슬 마중 나가 볼까.”

김수철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대검 입구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도착했나 보네?”

“네.”

“어쩐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라.”

띵—

때마침 옥상에서 내려온 정일현 부장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고, 그와의 짧은 대화사이에 김수철이 탄 엘리베이터는 10층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자 보이는 김수철의 모습.

그의 양팔을 끼고 있는 정대필과 지성한 수사관이었다.

“검사님들은 언론 브리핑 준비하시고, 나머지 수사관님들은 부띠크 호텔과 백숙집 추가 조사를 위해 나가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방으로 가시죠.”

“네.”

나는 짧은 인사와 함께 내 방으로 앞장섰다.

“편히 걷게 해 주시죠.”

“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김수철의 양팔을 끼고 있던 수사관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입니다. 잠시라도 편하게 해 주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김수철은 곧 기소되어 수의를 입고 구치소로 향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아량을 베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가 검찰로 자진 출두한 사실에 대한 보상이었다.

“고맙네요.”

마치 연행되듯 끌려오던 김수철 장관의 양팔이 자유를 찾았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에 도착했다.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주시면 마시겠습니다.”

나는 자연스레 커피 머신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사이 김수철은 연구관실 중앙 테이블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사실에 계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정 수사관님, 김수철 씨 조사실로 안내해 주세요.”

“여기서 마시겠습니다.”

“아니요. 거기는 제 손님들이 앉는 자리입니다. 김수철 씨는 제 손님이 아니잖아요?”

“…….”

조금이지만 가벼워진 분위기는 내 말로 인하여 다시 무거워졌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수철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대접해 줄 마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쪽으로.”

“네…….”

내 말에 정대필 수사관이 조심스레 김수철의 의자를 빼며 조사실로 안내했다.

그는 파렴치한 범죄자다.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협조를 하든 자진출두를 하든 말이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방부 장관.

그 자리에서 그가 한 범죄는 주먹이 불끈 쥐어질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이미 마음 굳힌 것 같은데.”

“검찰에 협조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김수철이라서요?”

“그렇지.”

“아니요. 그는 자신의 잘못을 혼자 깨달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어렵던 가정환경과 자신을 뒷바라지 하던 부모를 위한 보상은 오직 공부라 생각한 김수철.

그가 대학생이 되던 시절 육군사관학교는 출세의 보증수표와도 같았고, 그 역시 육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군인이 되고 싶던 것은 아니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육사에 들어간 게 잘못된 선택이란 소리가 아니다.

화가 났겠지.

죽기 살기로 노력해 결국 이루어 냈지만, 자신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부모님이 쓰러진 게.

또한 억울했을 테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이제 갓 임관한 소대장 월급으로는 감당조차 되지 않는 병원비가 말이다.

결국 그는 악마에게 자신에 영혼을 팔았고, 그 대가로 부와 권력을 손에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을 떠나 이해하지도, 이해할 마음도 없다.

그런 상황을 겪은 사람은 김수철 장관 혼자만은 아니었고, 비슷한 상황의 모두가 김수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심판해 달라는 선택을 했다.

그런 선택이 과연 옳다고 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다.

이미 그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다. 당연히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내가 없었다면 그는 멈추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지금 김수철의 선택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내가 한 조사와 들이민 증거, 그리고 돌아선 여론이 없었다면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걸 확신한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김수철을 안내한 정대필이 조사관실 문을 열며 말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짧은 대답과 함께 김수철이 조사실 안으로 향했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일현 부장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밀어붙일 거야, 아니면 타이를 거야?”

두 팔을 테이블에 기댄 채 묻는 정일현 부장.

“그건 김수철의 선택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면 진심으로 대할 것이고, 머리를 굴리면 저 역시 머리를 굴러야겠죠.”

“하하, 내가 쥐 잡으러 가는 호랑이 걱정을 했네.”

내가 커피를 휘저으며 대답하자, 헛웃음을 보이는 정일현 부장이었다.

“2차 공판은 나랑 들어갈 거지?”

“네.”

“그럼 한 검사가 조사할 동안 나는 보자기나 쌓아야겠네.”

어떻게 보면 검사들의 가방과도 같은 보자기.

수백 수천 장의 사건 서류들은 모양이 제각기이고, 두께 또한 두껍기 때문에 검사들은 보자기를 애용했다.

“그럼 보자기에 채워 넣을 서류들은 제가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래.”

정일현이 연구관실로 나가고, 나는 조사실로 향했다.

길고 긴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인 김수철을 조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조사와도 같지만, 공관에서 한 우리에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

하지만 쉼 없이 달려온 끝에 사건의 끝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긴 한숨과 함께 잡은 이 조사실 문고리를 여는 순간, 그 끝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것이다.

“자! 커피는 여기 있고. 이제 조사 시작할까요?”

두 손을 조사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김수철.

그의 손 앞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올려놓았다.

“저, 검사님…….”

“네.”

“조사 시작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공관에서 한 약속 끝까지 지켜 주실 겁니까?”

“제가 약속이라 했나요? 기회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

모든 걸 털어놓는다면 클럽에게서 김수철 장관의 가족을 지켜 준다는 기회.

“그리고 당신은 파렴치한 범죄자입니다.”

“뭐요?!”

그 기회가 무너지려하자 선해진 김수철 눈빛에 다시 악마가 깃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의 가족은 죄가 없죠.”

“아…….”

혹시 몰라 김수철 장관의 가족을 조사했다.

계좌 기록과 통화 기록, 그리고 출입국 기록까지.

김수철을 도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숨겨 주지 않았는지 철저하게 알아보았다.

그리고 샅샅이 알아본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죄가 없다’였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을 위험에 빠트리고, 50만 국군의 사기를 저하시켰으며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한 김수철.

악마 같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가족 앞에서 만큼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이고 싶은 것이다.

어이없게도 말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저는 당신처럼 파렴치하지 않거든요.”

“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이제 국방부 장관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공관에 당신의 가족을 지켜줄 경호 인력도 없죠.”

한 명의 형사부 검사, 그리고 김수철의 대검 출두 길을 에스코트한 모든 인원은 차를 돌려 김수철의 저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는 다르죠. 저는 대한민국 검사이며 당신 가족들 몇 명쯤은 지켜줄 능력이 된다는 말이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만, 당신 집에 상주해 있는 경찰들과 한 명의 검사, 그리고 몇 명의 수사관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입니다. 즉, 저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금을 쓰고 있으며 그 만한 대가가 없다면 더 이상 세금을 쓸 수 없다는 말이죠.”

김수철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내 마음에 들까, 하는 불안감이 말이다.

내 손에 누구보다 지키고 싶은 가족들의 안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협박처럼 들리네요…….”

“그렇게 들리셨나요?”

물론 김수철 입에서 나온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경호 인력을 철수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남편과 아버지에 대해 무관심했을 뿐.

하지만 김수철이 철저하게 숨겼을 확률이 높다. 그럴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기도 하고.

“5,000만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방산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자기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하게 생각하셔야죠.”

김수철은 내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 말은 정답이었으니까.

“그럼 조사 시작할까요?”

* * *

“중령 진급을 앞둔 어느 날 조 선배님이 저를 부르시더군요…….”

총기 오발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예편한 조정식.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군복을 벗을 만큼 큰 사건도 아니었는데 예편한 이유가 클럽 때문인 것 같다.

아마 명예롭게, 아니, 명예로운 척하며 옷을 벗고 싶었겠지.

이미 그의 목표는 군인이 아니라 돈과 명예로 바뀐 후였으니까.

그렇게 군복을 벗은 조정식은 주한호 대통령에게 천거당해 국정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즉, 주한호 대통령의 천거 자체가 클럽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잠깐만요.”

“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정확히 짚고 넘어가지 못한 게 있었다.

“주한호 대통령…….”

“아닙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죠?”

“VIP께서 클럽과 연관이 있냐고 여쭈어보시려 한 거 아닙니까?”

“네, 뭐…….”

그렇단 말이지…….

만약 주한호가 클럽 소속이 아니라면 클럽은 어떤 식으로든 조정식을 주한호 눈에 띄게 했을 것이다.

그럼 주한호가 그저 평범한 국회의원 시절에 아무도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시절에 클럽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한호가 장차 청와대에 입성할 거란 걸.

도대체 어떤 조직이길래 미래를 훤히 내다보고 있는 걸까.

“대통령 하나 만드는 것쯤은 클럽에게 있어서 일도 아닙니다.”

“뭐라고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김수철이 입을 열었다.

“지금 하시는 고민을 반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반대로요?”

“조정식 선배를 국정원장으로 만들기 위해 주한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겁니다.”

“네?!”

김수철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한 범주 안에는 없던 답이니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클럽이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VIP께서는 클럽에 가입하지 않은 거죠?”

“국정원 직원은 영원하지만, 대통령은 5년짜리 계약직이죠.”

“국정원장도 정권이 바뀌면 바뀌는 자리인데요?”

“그건 국정원장일 때죠. 조정식 선배는 국정원에 들어가 요직을 두루두루 차지하다가 국정원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즉, 외부에 공개된 국정원장보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단 뜻입니다.”

“그럼 굳이 왜 국정원장으로 올린 거죠?”

“그건 클럽의 뜻이 아니었죠. 주한호 대통령이 임명한 거지.”

“계획에 없었단 소리입니까?”

“하하.”

옅은 웃음을 보이는 김수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는듯한 눈빛이었다.

“정치는 계획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검사님. 클럽이 아무리 대단한 곳이라지만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너트릴 수는 없죠. 하지만…….”

“하지만?”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하죠. 조정식 선배가 국정원장이 된 후 클럽은 미뤄왔던 모든 계획을 실행시키려 했을 겁니다. 마일즈 장비 사업뿐만 아니라 국정원장이 도울 수 있는 모든 계획을요.”

“하…….”

분노와 답답함이 섞인 한숨이 나왔다.

김수철의 말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주 꼴 보기 싫은 답이 말이다.

클럽의 초대를 받은 조정식은 총기 오발 사건이라는 꼬투리를 잡아 군복을 벗은 것이고, 클럽은 실직자가 된 그를 국정원에 집어넣은 것이다.

현역 중령이든 예비역 중령이든 자신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이니까.

하지만 조정식의 욕망은 꽤 마음에 들었고, 키울 가치는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눈여겨본 또 한사람.

바로 주한호 대통령이었다.

강직하고 젊은 나이에 정치계에 입문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입지가 탄탄해질 사람.

하지만 클럽은 그를 초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가는데요. 대통령이라면 클럽이 더욱 원할 만한 사람 아닌가요?”

“선택당하지 않았으니까요.”

“왜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저희와 달리.”

시의원을 시작으로 대통령까지 올라간 사람.

집안도 괜찮았고,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다.

“클럽은 인물을 선택할 때 아주 신중합니다. 거절하면 안 되니까요.”

“거절하면 안 된다는 게 무슨 소리죠?”

“제안 자체가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시키는 것이고, 거절한다면 정체를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입을 막아야 하니까요. 입을 막는 방법이 꽤 껄끄럽기도 하고요.”

국회의원 시절의 주한호.

클럽이 그에게 거절을 당한다면 그의 입을 막는 방법은 껄끄러움을 너머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현역 국회의원. 그것도 빵빵한 집안이 뒷받침되는 사람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클럽이 생각하기에 주한호 대통령은 적합한 인물이 아니란 소리죠.”

“그렇겠네요.”

하지만 주한호가 크게 될 인물이란 걸 미리 예견한 클럽은 조정식을 주한호 곁에 두려고 했을 것이다.

주한호 역시 권력의 달콤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클럽은 조정식의 프로필을 자연스럽게 주한호 의원실로 흘러들어 가게 했고, 예상대로 주한호는 조정식의 프로필을 눈여겨보았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클럽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말이네요.”

“네, 맞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 자체가 클럽에서 만들었다는 사실.

그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클럽의 예상대로 두 사람의 앞날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한 사람은 국정원장, 한 사람은 대통령에 올랐으니까.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른 것 자체가 클럽이 계획한 걸지도.

클럽에 힘이 없었다면 그저 한 명의 국정원 직원과 한 명의 국회의원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인 거죠?”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클럽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죠.”

“그 일부분이라도 말씀해 보시죠.”

김수철의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지금껏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국방부 장관이던 그조차 클럽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 되니까 말이다.

대통령도 결정하는 마당에.

“그럼 아까 하려고 한 말 이어 가겠습니다.”

긴 얘기를 시작하려는 듯 커피로 목을 축인 김수철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제가 소령 진급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조정식 선배님이 찾아오셨습니다.”

* * *

강원도 인제의 한 커피숍.

“충성!”

“충성은 무슨. 군복 벗은 지가 언제인데.”

칼 같이 다려 입은 군복을 입고 있는 김수철과 슈트를 입고 있는 조정식이었다.

김수철은 커피숍에 앉아 있던 조정식을 발견하고는 급히 다가가 거수경례를 했다.

“한 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고! FM인 건 여전하네, 김 대위. 아니지 이제 김 소령이라고 불러야 하나?”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대대장님!”

“대대장 아니라니까 그러네. 일단 앉지.”

“네!”

부동자세로 서 있는 김수철에게 조정식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꽤 깊었다.

같은 육사 출신에 김수철을 중대장으로 임명한 게 바로 조정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두 사람 다 클럽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저 사명감 넘치는 평범한 군인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어깨에 무궁화 달 텐데 아직도 야전물이 안 빠져서 어떡하려고 그러나.”

“군인에게 있어…….”

“아, 그만. 재미없는 것도 여전하네.”

자리에 앉은 김수철이었지만 두 팔이 꼿꼿한 건 여전했다.

그에 반해 다리를 꼬며 편히 앉아 있는 조정식.

같은 군인이었고 군복을 입고 벗고 차이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마음과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이지.

“편하게 해.”

“그래도…….”

“명령이다.”

“네, 알겠습니다!”

스윽.

그제야 꼿꼿하던 팔이 느슨해지고,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테이블에 고이 올려놓는 김수철이었다.

“요즘 어때?”

“좋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많이 편찮으셔?”

“네…….”

“쯧쯧, 괜찮아지셔야 할 텐데.”

흔들림 없던 김수철의 표정은 어머니란 단어에 미세하게 떨렸고, 조정식은 김수철의 마음을 공감이라도 해 주려는 듯 혀끝을 차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하지만 그의 공감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거짓 공감이었다.

고개를 숙이며 좌절하고 있는 김수철은 너무나도 좋은 먹잇감이었을 뿐.

“내가 너를 도와줄 사람을 알고 있는데.”

“도와줄 사람이요?”

“정확히 말하면 도와줄 수 있는 조직이라고나 할까.”

“저를 왜……?”

군인에 대한 사명감과 양심을 모두 이길 수 있는 달콤한 유혹.

잘못된 길이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또 유일한 희망 같았을 것이다.

지금 김수철이 처한 상황에 있어서는 말이다.

“어머니의 병원비, 그리고 공부 잘하는 동생들의 유학비, 거기에 자네의 앞날까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선택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한 조직을 위해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선택을.”

“…….”

클럽은 군 출신 조정식에게 물었다.

당신이 예편하기 전 눈여겨본 인물이 있었냐고.

그리고 조정식은 대답했다.

당신들이 찾는 인물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뛰어난 능력에 어려운 집안 형편.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사람이자, 날개를 달아 준다면 하늘을 훨훨 날아갈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김수철이었다.

물론 그가 노력으로 날개를 달 수 있는 확률은 희박했다.

더군다나 지금 그의 상황은 노력이 배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클럽과 조정식은 결국 김수철을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군에서 자신들을 위해 활약해 줄 인물을.

“어때 한 번 만나 볼래?”

그렇기에 조정식은 선택권을 주는 게 아니었다.

김수철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휴…….”

한숨과 함께 창밖 먼 곳을 바라보는 김수철.

깊은 한숨 속 고민은 짧았고, 결정을 한 그는 고개를 돌려 조정식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 만나 보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던 것만은 아니다.

김수철과 같은 상황에 있던 모두가 똑같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니까.

분명 그보다 나은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잘 생각했어.”

* * *

경기도 외곽.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여긴 어딥니까?”

익숙한 길인 듯 조정식은 익숙하게 차를 몰아 공터에 세웠고, 김수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피식.

“일단 내리지.”

김수철의 물음에 옅은 미소만을 보이는 조정식은 이내 앞장서 걸었다.

“저희 부대보다 더 외진 곳에 식당이 있네요.”

“평범한 식당이 아니야.”

“평범하지 않다뇨?”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허름한 식당.

합판으로 대충 막아 놓은 듯한 지붕은 비가 샐 것 같았고, 진흙 위에 지은 건물은 언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띵동—

“선배님, 식사하실 거면 제가 다른 곳에서 대접하겠습니다.”

톡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유리문 옆 초인종을 누른 조정식.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수철이 말했다.

“아까 여기가 어딘지 물었지?”

“백숙집 아닙니까? 평범하지 않은…….”

“맞아. 여기는 평범한 식당이 아니야.”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십니까? 맛은 있을지 몰라도 위생은 매우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 영업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하하하하!”

김수철의 투덜거림에 호탕하게 웃는 조정식이었다.

“아니, 여기는 식당이 아니야.”

그렇게 한참을 웃던 조정식이 뒤돌아 김수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인생을 바꿔줄 곳이지.”

* * *

— 네.

“조정식입니다.”

— 용무는요?

초인종으로 들려오는 음성.

남자인 건 확실했지만 기계음이 섞여 있어 신분을 감추는 듯했다.

“신입 멤버 인터뷰 때문에 왔습니다.”

— 정해진 배달원 있나요?

“미르 호텔에서 뵀습니다.”

—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초인종 속 남자 목소리가 멀어지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수철은 아직도 어리둥절한지 조정식을 말똥말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무슨…….”

“조금만 기다려 봐.”

뒤에 있던 김수철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손짓을 보이며 말하는 조정식.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 너머로 부산스러움이 들려왔다.

— 그때와 같은 미르 호텔로 2시간 뒤에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뚝.

초인종 목소리는 끊겼고, 조정식은 볼일을 끝마친 듯 김수철의 어깨를 치며 다시 차량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될 거야.”

“이제 말씀해 주시죠, 선배님.”

“나보다 더 쉽게 설명해 줄 사람 말을 듣는 게 좋을 것 같군.”

* * *

여의도 미르 호텔.

호텔 카운터는 두 사람의 방문을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레 스위트룸으로 안내했고, 조정식 역시 호텔 직원의 뒤를 따라 방으로 향했다.

어색하게 앉아 있는 김수철과 여유롭게 커피를 타고 있는 조정식.

“수철이 너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조직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행정부 아닐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삼권분립을 통해 서로를 견제하는 세 곳의 부처가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지.”

“아… 입법, 행정, 사법을 말씀하시는 거죠?”

톡.

“그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김수철 앞으로 놓으며 짧게 대답하는 조정식이었다.

“구성원들 역시 국민의 손으로 뽑아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꽤 평화롭다고 말할 수도 있지. 게다가 자네 같은 유능한 장교도 있잖나.”

“하하…….”

조정식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보이는 김수철이었다.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조정식과의 대화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니까 말이다.

클럽과 이상한 백숙집.

김수철이 궁금한 건 이 두 가지였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나?”

“아, 아닙니다.”

“하하, 하여튼 예전이나 지금이나, 표정을 참 못 숨긴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니야. 나는 자네의 그런 숨김없는 모습이 좋았어. 그런데 앞으로 달라져야 할 거야. 이제부터 자네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많은 걸 알게 될 테니.”

사실 김수철에게 있어서는 스위트룸조차 신비로웠다.

호텔이란 곳이 있는 건 알았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런 스위트룸은 그에게 있어 딴 세상 같은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대충 봐도 50평은 넘어 보였고 천장은 높았다.

또한 높은 천장에는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고, 바닥은 온통 대리석에 가구 하나하나가 모두 반짝거릴 만큼 깨끗했다.

“앞으로 이런 곳도 많이 오게 될 거야.”

“제가 말입니까? 여기 엄청 비싸 보이는데…….”

“물론 자네 돈으로 올 일은 없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꼭대기 층 스위트룸과 자네의 위치가 같아질 테니까 말이야.”

소위로 임관해 10여년 넘게 해 온 군 생활.

열심히 노력한 김수철은 월급이 제법 올랐다.

아픈 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질 정도가 아닐 뿐이었지.

또 소령 진급을 앞두고 있었으며 특별한 사고를 친 경험이 없기에 장성 진급은 몰라도 무궁화 세 개쯤은 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에 만족할 수 없는 김수철이었다.

그게 조정식의 손을 잡은 이유였고, 지금 이곳 스위트룸에 있는 이유다.

“나처럼 군복 안 벗을 거면 어깨에 별 달아야지.”

“아직 먼 얘기입니다.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아니. 네가 클럽에 들어오는 순간 어깨에 별 다는 건 일도 아니야.”

처음 카페에서 조정식의 제안을 받아들인 김수철의 생각은 이랬다.

높은 정치인 혹은 그에 걸맞는 사람의 자녀의 편한 군 생활을 대가로 용돈이나 받아볼까 한 생각.

나쁜 건 알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 스폰 하나 있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으로 조정식을 따라온 것이다.

하지만 조정식의 말은 자신이 생각한 스케일을 훌쩍 뛰어넘었다.

“아까 말했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조직.”

“네, 말씀하셨습니다. 입법…….”

“그건 표면적으로 그런 거지. 진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조직은 따로 있어.”

“하나회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나회.

과거 군인들의 사조직.

단순 사조직을 넘어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권까지 차지한 조직이다.

“아니. 우리의 힘은 총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또 이제 군인이 정치를 하는 시대는 끝났어.”

1993년.

32년 만에 나온 민간인 출신 대통령.

그는 취임 전부터 하나회를 염두해 두고 있었고, 비밀리에 그들을 숙청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곧 사라질 거야, 하나회는.”

“네?! 설마요. 지금도 군에서는 하나회 출신 장성들이 요직에 앉아 있습니다.”

“시대는 바뀌었어. 새로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이 칼을 갈고 있거든 그것도 아주 날카롭게.”

결과는 그야 말로 전멸이었다.

대통령은 군 지도부를 갈아엎다시피 했고, 주동자인 두 사람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우리 조직의 힘은 총이 아닌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와 그 정보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권력에서 나와.”

“제 동기 중에 기무사에서 근무하는 놈이 있습니다. 꽤 자주 술을 마시기도 하죠.”

“하하, 이미 잘 사용하고 있었구나. 총이 아닌 정보에서 나오는 힘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강력하지.”

“군인이 만든 조직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피식.

“총 못 쓰는 군인이 무슨 힘이 있다고.”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말하는 조정식.

“그리고 클럽은 하나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 사실 하나회는 클럽에게 있어 작은 지부와도 같지.”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정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김수철에게 있어 충격적이었다.

입이 벌어질 만큼 말이다.

“그럼 이번 하나회 척살도 클럽에서 계획한 겁니까? 아니지. 새로운 대통령 역시 클럽에서 만든 겁니까?”

“아니. 클럽은 무언가를 조정하지 않아. 흘러가는 역사를 바꾸려 하지 않거든.”

“그럼 대한민국을 움직인다는 뜻은…….”

“마음만 먹으면 움직일 수 있지. 국민의 손에서 나오는 힘으로 나라가 움직이는 민주주의에서는 정보가 힘이 되거든. 그게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이.”

“저는 선배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너는 기득권 세력.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기득권 세력에 들어왔다는 것만 알아두면 되.”

민주주의의 가장 큰 핵심은 선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선거권.

이는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선거를 공약 보고 하는 것 같나?”

“네. 아무래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아니. 선거는 좋은 놈이 아니라 덜 나쁜 놈을 뽑는 거야.”

자금과 네거티브.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클럽은 누구를 당선시키고 누구를 떨어트릴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시종일관 비릿한 미소를 보이던 조정식이 눈을 부릅뜬 채 김수철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즉!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판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클럽에게는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지금 너는 그 클럽의 일원이 될 기회를 가지게 된 거고.”

“자, 잠깐만요, 선배님.”

시종일관 입을 벌리며 듣고 있던 김수철은 머리를 흔들며 조정식의 말을 끊었다.

“그럼 지금 선출직 공무원들 전부 클럽 소속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들은 우리가 당선시킨 것일 뿐. 자신들이 클럽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선배님 말씀대로라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결국 선출직 공무원들이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클럽이 힘을 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선출직 공무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무엇인줄 알고 있나?”

“그거야…….”

표.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시기는 선거이며, 가장 무서운 종이는 투표권이다.

달콤한 권력과 강한 무기인 기득권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려면 결국 당선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보통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15만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하지만 15만 유권자 중 몇 백 명의 사람과는 술잔을 기울이고, 또 몇 십 명의 사람들의 민원을 개인적으로 들어주기도 해. 그리고 몇 명에 사람들에게는…….”

꼴깍.

긴장한 듯 침을 삼키는 김수철.

“개가 되지.”

“하…….”

곧이어 나온 깊은 한숨.

오로지 군밖에 몰랐던 김수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조정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군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한 군인이어도 결국 누군가의 손놀림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몇몇 사람들이 바로 클럽의 일원이야.”

“결국… 그들은 허수아비란 소리네요.”

“맞아. 그리고 클럽이 도와줬다는 사실은 모르지만, 클럽원의 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해 봐. 당선이 희박한 사람에게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자신에게 국회의원 뱃지를 달아 주었다고. 그럼 그 사람의 개가 되지 않겠어?”

“이미 권력을 잡은 상태에서 변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가슴팍에 달려 있는 국회의원 뱃지를 떼버리면 되지.”

“그게 가능한 건가요?”

“클럽이 당선시킨 국회의원들은 전부 엄청난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스캔들이든 위장 전입이든 혹은 비자금이든. 전부 약점이 있단 말이지. 터진다면 의원직을 잃을 만큼 큰 약점이. 정 없으면 만들기도 하고.”

물론 몇몇 의원들은 허수아비가 아닌 클럽의 일원일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본인 힘으로도 충분히 당선이 가능하고, 오랜 정치 생활에 이미 세력을 만들어 버린 의원들.

그들은 허수아비로 쓰기에는 부담스럽고 자신들의 편으로 만든다면 많은 힘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굳이 허수아비를 세우는 거죠? 직접 영입을 해도 되지 않습니까?”

“자네 말대로 사람은 변하거든. 또 입이 간지러울 수도 있고. 아무리 허수아비라지만 선출직 공무원이 떠들어 댄다면 꽤 귀찮아지거든. 일종의 안전장치이지.”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조직이군요…….”

“클럽의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선출직 공무원이 있기도 할 거야. 아마 꽤 오래 정치를 한 사람이겠지.”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 모르다니요?”

“클럽원들은 서로의 신분을 몰라. 마스터란 사람만 알고 있어.”

“마스터요?”

“이 클럽을 만든 사람이자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 그 사람이 마스터지.”

“휴…….”

김수철은 머리가 복잡한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들과의 소통은 백숙 집을 통해 이루어지며, 지시 역시 배달원들을 통해 들을 수 있지.”

“서로를 모르는 조직이라…….”

“그게 클럽의 절대적인 규칙이거든. 그리고 사실 상관없어.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기만 하면 되니까.”

띵동—

두 사람의 대화 속 울리는 초인종.

문을 향해 걷는 조정식을 바라보는 김수철에게 한마디를 건네는 조정식이었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배달원에게 물어보라고.”

* * *

— 배달 왔습니다.

“네.”

문이 서서히 열리고 김수철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다.

자신의 선택이 단순히 스폰을 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들어오시죠.”

“네.”

헬멧을 쓴 채 한 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있는 배달원이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왔다.

“이쪽이 제가 말씀드린 김수철입니다.”

“네.”

배달원의 대답은 짧았고, 가벼운 인사조차 없었다.

“반갑습니다, 김수철입니다.”

“네.”

마치 입력되어 있는 말만 뱉어 내는 로봇 같았다.

김수철이 내민 손은 무안해졌고, 배달원은 스위트룸 구조가 익숙한 듯 커피 잔이 놓인 테이블로 향했다.

“앉으시죠.”

멀리서 들려오는 배달원의 목소리.

김수철이 기분이 상할 거란 걸 잘 알고 있는 조정식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예상이 틀리지 않는 듯 김수철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배달원을 노려봤다.

“나도 처음엔 당황했어. 친분을 기대하지는 마.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만 요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선배님.”

“일단 가서 앉지.”

“네.”

그렇게 두 사람은 배달원과 마주 앉았고, 그의 입이 열리기 기다렸다.

스윽.

“일단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헬멧을 벗으며 말하는 배달원.

그의 얼굴이 궁금한 김수철이었지만, 헬멧을 벗은 배달원은 복면으로 가려져 있어 눈만 드러내고 있었다.

“우선…….”

“잠시만요.”

“말씀하시죠.”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김수철 씨와 통성명을 할 수 있으면 얼굴을 가리지 않았을 겁니다.”

“참,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대화를 해야 하다니…….”

“걱정 마시죠. 제가 누군지 아실 필요는 없으니까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겁니까?”

콕콕.

김수철 옆구리에 느껴져 오는 감촉.

두 사람의 기 싸움에 당황해 나온 조정식의 행동이었다.

“수철이 너 왜 그래 갑자기.”

“그냥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조정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김수철은 온순했으며, 자신 앞에서 나쁜 기분을 티 내지 않던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네.”

찌릿.

조정식이 말하자 그를 째려보는 배달원.

그 눈빛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사람을 데려와서가 아니다.

자신이 데려온 사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군인이 강직한 면도 있어야지…….”

그 눈빛에 당황한 조정식이 말끝을 흐렸고, 존경하던 선배의 나약함에 김수철은 실망했다.

“앞으로 클럽과의 소통은 저랑 하게 될 테니 편하게 3번 배달원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아직 클럽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하, 뭔가 착각하고 계시나 봅니다. 백숙 집 위치를 알았고, 스위트룸에 와서 저를 만난 건 클럽에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게 하시죠, 그럼.”

배달원은 문 쪽으로 손짓하며 김수철에게 말했다.

좋지 않은 상황. 그럴수록 조정식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져 갔다.

“잠깐 둘이 대화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던가요. 다만, 빨리 해 주십시오. 시간이 없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는지 조정식은 김수철을 끌고 방으로 향했다.

쾅.

“수철아. 왜 그러는 건데.”

“처음엔 단순히 용돈 주는 스폰이나 구하고자 왔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얘기를 들어보니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네가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보복이라도 한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너뿐만 아니라 너를 추천한 나한테까지.”

“휴…….”

한숨과 함께 자신의 선배를 바라보는 김수철.

와이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겁을 먹은 듯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클럽을 당당히 설명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선배님의 이런 모습 처음 봅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우신 겁니까?”

“잃을까 봐.”

“잃는다니요?”

“클럽에 들어온 후 가지게 된 힘은 너무도 달콤했거든. 그리고 나는 이제 그 힘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조정식은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지금껏 후배 앞에서 지켜온 자존심을 무너트리면서까지.

“자네 마약해 봤나?”

“아니요.”

“권력은 마약과 같아. 손에 넣기가 어렵지 한 번 손에 넣으면 자신의 손으로는 절대 버릴 수 없거든.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다 떨어지는 게 무서워 벌벌 떨 수밖에 없지.”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선배님…….”

“아니. 너는 이미 마약을 집기 위해 손을 벌린 것과 같아.”

김수철이 조정식을 따라온 그 순간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네는 마약을 하기로 이미 결정한 거야. 온갖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진 자네 주먹이 펴진 순간부터 말이야.”

“…….”

김수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성식에게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 한심하네. 자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말이야.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 저 사람은 내 손에 마약을 쥐어 주는 사람이고, 나는 그 마약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제가 어쩌시길 바랍니까, 선배님.”

“내 손잡고 따라와. 후회하지 않을 거야.”

“후회한다면요?”

“아까 배달원이 말했잖아. 이미 너는 마약에 손을 댄 거라고. 여기서 나가면 어떤 보복이 있을 것 같아? 너는 누명 쓰고 강제 예편되서 평생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럼…….”

김수철의 약점.

어떻게 보면 이곳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자네 어머니는 물론이고, 공부 잘하는 동생들의 삶까지 불행해지겠지.”

조정식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잊고 있던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니 네가 여길 오지 않아서 하게 될 후회보다는 덜 아프지 않겠어?”

“하하,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요.”

김수철이 웃었다.

그때부터였다.

김수철의 웃음에서 조정식의 웃음이 보인 것은.

물론 지금은 허탈함에 다른 선택이 없어 억지로 웃은 거겠지만, 그 웃음은 익숙해져 갈 테다.

한 번 맛본 마약 같은 권력은 손에서 놓기 힘들 게 당연하니까.

“알겠습니다, 선배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죠. 보상은 확실한 거죠?”

“클럽이라는 곳은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이상의 보상을 해 주지.”

방문이 열리고 김수철은 배달원을 보며 다시 한번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어쩔 수 없잖아… 씨발.”

* * *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는지 씁씁한 미소를 보이는 김수철이었다.

“결국 이렇게 후회하게 됐네요…….”

“배달원과는 무슨 얘기를 나누었죠?”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클럽원이 지켜야 할 규칙과 해야 할 일. 그리고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큰 틀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언제 진급을 하고, 언제 육군참모총장이 되며, 또 합참의장에 언제 발탁되고, 국방부 장관에 언제 임명되는지까지 전부 말해 줬습니다.”

“그럼 당신의 인사가 모든 계획된 거라는 겁니까?”

“네. 그것뿐만 아니라 일자 또한 단 하루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클럽이 말한 날짜에 정확히 임명장을 받았거든요.”

김수철의 거처는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클럽이 원하는 용도에 맞게 쓰이는 기계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무리 대단한 조직이라고 하여도.”

“네, 맞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바뀌면 클럽 역시 그에 맞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죠. 하지만 어떤 변수도 클럽의 새로운 계획까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반대로 만약 클럽원이 지시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면요?”

“그럼 약속한 대가도 못 받겠죠. 그게 합참의장 자리든 국방부 장관 자리든 말입니다. 하지만 클럽은 그 사람의 능력을 철저히 계산해 할 수 있는 일만 시킵니다. 서포트 또한 확실하고요. 그런데 클럽의 새로운 계획으로도 막지 못한 한 사람이 툭 하고 튀어나왔죠.”

김수철이 말끝을 흐리며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그게 저라는 말씀입니까?”

“네.”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하는 김수철.

칭찬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클럽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클럽이 주는 보상은 자리인 겁니까?”

“보통은 권력이죠. 그리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리이고요.”

“당신 얘기대로라면 권력보다 돈이 더 급했을 텐데요.”

아픈 어머니와 공부 잘하는 동생들.

그의 신원을 조사하다 확인한 결과 어머니는 VIP 병실에서 눈을 감았다.

두 명의 동생 중 한 명은 아이비리그에 진학해 유망한 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한 명은 의사가 되었다.

빠듯한 중대장의 월급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클럽에 들어간 순간 가능해졌다는 소리이다.

“하하,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권력이 생기니 돈이 궁해지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누구보다 검사님이 잘 아실 텐데요. 특히 한 검사님처럼 능력 있는 검사라면요.”

“아…….”

그의 말을 단숨에 이해했다.

나에게도 수많은 기회가 있었으니까.

주머니에 엄청난 돈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말이다.

“뇌물을 받았단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현물로 받은 건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게 뇌물인 겁니다.”

“아니요. 저는 어떠한 대가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국내 1등 병원 이사장이 VIP 병실을 주었고, 어느 날 갑자기 대기업 장학 재단이 제 동생들의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왜요?”

“그들은 지금 당장 대가를 바란 게 아닙니다. 소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알고 있었겠죠. 제가 곧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이 되고, 국방부 장관이 될 거란 걸요.”

클럽은 그런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정재계 모두한테 말이다.

“저를 도와준 모두는 저와 인맥을 쌓기 위해 돈을 지불한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도움이 될 만한, 그럴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라 판단한 거죠.”

“참…….”

“그때쯤 되니 조 선배의 말이 이해가 되더군요. 너무나 달콤해 잃을까봐 두려웠다는 선배의 말이…….”

체념한 듯 넋두리를 하는 김수철.

그 뒤로도 그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결국 당신이 알고 있는 건 백숙 집과 호텔뿐이라는 거네요?”

“네… 그때 배달원의 말처럼 배달원이 누군지, 클럽원이 누군지 따위는 알 필요가 없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니 궁금하지도 않았고요.”

명령을 수행한다면 완벽한 보상을 해 주니 굳이 궁금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클럽의 규칙을 위반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달콤한 권력을 잃게 되니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만, 조정식 국정원장이 클럽원이라는 건 알고 있었네요? 당신을 추천했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누군가의 추천으로 들어오니까요.”

이제 그에게서 나올 정보는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찾아가야 한다고.

“그럼 저도 누군가의 추천이 있으면 클럽원이 될 수 있는 거네요?”

“네?!”

* * *

“가지, 한 검사.”

“네, 부장님.”

마일즈 장비 사업의 1심 최종 선고 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한 사건을 위해 달려왔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김수철이라는 피고인이 추가되었고, 공소장은 너무나 두꺼워져 혼자 들기 힘들 정도가 됐다.

“휴… 고생했어, 지금까지.”

“아닙니다. 부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들도요.”

정일현 부장과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공안 검사.

중수부에 파견되어 무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를 도와주었다.

이 중에 프락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검사들이 고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건이 잘 해결됐으니 프락치야 차근히 찾으면 되는 거고…….’

김수철은 클럽과 관련된 모든 걸 내게 말했다. 하지만 프락치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진짜 모르는 거일 수도 있지.

뭐, 어쨌거나 지금은 그 모든 걸 잊고 서로의 감사함만 전할 때였다.

꾸벅.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하하하! 재판 끝나고 비싼 술 산다는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그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정일현 부장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김수철과의 마지막 조사.

나는 클럽을 잡으려 클럽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 * *

국정원 안가.

“클럽에 들어가겠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가는 척할 겁니다.”

“흠… 위험한 선택 같네만.”

한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진 안주와 술이 있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

나와 주한호 대통령이었다.

나는 내 계획을 주한호 대통령에게 전부 고했다.

적어도 주한호 대통령만큼은 클럽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수철이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또한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며 클럽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나를 도와줄 힘이 충분한 사람이다.

“그래. 그런데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대통령님의 명으로 만들어진 국정원 비밀 본부를 저에게 주십시오.”

“고려전단 얘기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클럽과의 정보력 싸움에서 꼭 필요한 곳.

검사가, 검찰이, 또 중수부가 움직여도 불가능한 고급 정보를 클릭 몇 번으로 취득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필요했다.

“하하, 지금 국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달라는 얘기인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좋아. 그래도 하나를 내어 주면 하나를 받아야 되는 게 도리 아닌가?”

“대한민국을 조종하며 국민들을 위협에 빠트리는 클럽을 확실히 처단해 대통령님께 받치겠습니다.”

“흠…….”

외마디 고민과 함께 자신의 술잔을 채우는 주한호 대통령.

그는 흔들거리는 술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거 좋지. 그런데 문제는 자네 혼자 하기엔 상대의 사이즈가 너무 크단 말이지…….”

“저 혼자 상대하지 않을 겁니다.”

“아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 혼자 상대하지 않는다는 건 무슨 말인가?”

“저는 클럽에 공식적인 루트로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도 없겠죠. 아주 비밀스러운 조직이니. 그래서 저 역시 공식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상대하지 않을 겁니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검사와 수사관들이 움직인다면 그게 바로 공식적인 수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그들을 잡을 수는 없다.

내가 속해 있는 기관이나 또 다른 국가기관에 클럽이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가 비밀리에 꾸리겠습니다.”

“공무원들을 파견하려면 소속 기관에 협조 공문을 보내야 하네. 자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일세.”

“공무원들로 구성할 게 아닙니다. 제가 필요한 수사팀 중 공무원은 백성원 차장님과 제 동기 검사 한명일 뿐입니다. 물론 그들도 협조 공문을 통한 정식 파견이 아니라 퇴근 후 비밀리에 수사를 할 겁니다.”

“하하, 자네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인물이 아닐 텐데 백 차장은.”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면…….”

조정식 국정원장 역시 클럽원이니까 말이다.

“왜냐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꼭 해야 될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님.”

머릿속에 있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입을 막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꼭 해야 할 말이다.

“조정식 국정원장 역시 클럽 소속입니다.”

“뭐?!”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확실합니다. 김수철을 클럽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조정식 원장이니까요.”

덜덜덜.

술잔 속 술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한호 대통령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그게 분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조정식 국정원장이 클럽 소속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자네 말을 어떻게 믿지?”

“원하신다면 김수철과의 조사 영상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휴…….”

주한호의 고개가 푹 떨궈졌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려전단은 국정원의 핵심적인 곳이야. 조 원장 몰래 가동시킬 수가 없을 텐데?”

“백 차장님께 부탁해 공식적으로 폐쇄했고, 이전했다 보고할 겁니다.”

“그래… 그리고 동기 검사는 누구를 말하는 거지? 그 여검사를 말하는 건가?”

“아니요. 박채이 검사는 대전지검 사람이니 복귀해야 괜한 의심을 사지 않을 겁니다.”

“그럼 누구를 말하는 거지?”

한동안 보지 못한 내 동기.

연수원 생활 2년 동안 같은 방을 썼고, 누구보다 능력 있는 검사인 동기.

“서윤호 검사입니다.”

“그래도 부장급 이상 검사가 있는 게 좋지 않겠나?”

“물론 경험 많은 검사님이 있는 게 좋지만, 지금은 저와 마음이 잘 맞는 검사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변수가 많은 수사가 될 테니까요.”

내가 클럽에 들어간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등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다.

“대통령님, 클럽이란 존재를 알면서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1,000억 원대 방산 비리는 더 큰 비리를 위한 준비 단계일 뿐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짓을 벌일지도 모르고 대통령님께 어떤 위협이 가해질지도 모릅니다.”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있던 주한호 대통령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중수부 검사라지만 내 말만 믿고 모든 걸 움직일 수 없기에 그런 고민이 행동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건 자네 말이 맞네만…….”

하지만 내 의지 역시 강했고, 주한호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수사는 최대한 비밀리에 움직여야 합니다. 김수철 역시 입막음을 완벽히했고요.”

김수철은 나에게 여러 사실을 말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재판에서도 역시 클럽이란 곳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 자네를 한 번 믿어 보지.”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스윽.

주한호 대통령이 속주머니에서 낡은 휴대폰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나랑만 연결되는 전화일세. 어떤 기관도 어떤 기술로도 도청할 수 없으니 보고는 이 폰으로 하면 될 걸세.”

“네, 알겠습니다.”

“자네를 어느 정도 믿어서 수사를 허락해 주긴 하지만, 아직 완벽히 믿는 건 아닐세. 자네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고. 또 조 원장은 내가 직접 천거한 사람일세. 자네 말이 맞다면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

배신감과 분노가 적절히 섞여 있는 말투.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까지 느껴졌다.

“조 원장만큼은 내가 일벌백계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꼴깍.

말을 끝마친 그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안 마실 거면 가 봐. 나는 오늘 취해야 될 것 같으니.”

* * *

서울 중앙 지방법원 지하통로.

선고 공판을 앞둔 우리는 법원을 향해 걷고 있다.

법복을 입은 다섯 명의 검사.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다섯 명의 피고인들.

사실상 선고 전 공판 단계에서 재판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시시비비는 공판에서 전부 따지니까 말이다.

“분명 항소하겠지?”

“할 겁니다. 하지만 소용없겠죠.”

“하하! 맞아. 항소심 재판부도 재정신이라면 감형하지는 않겠지.”

이미 예상된 선고 결과에 우리의 표정은 밝았다.

여론은 그들의 일벌백계를 원하고 있었고, 증거 역시 완벽했다.

며칠 전 면담한 김수철 역시 모든 걸 포기한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저 자신의 가족이 잘 지내고 있냐고 물을 뿐.

공소장에 기소 내용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김수철과의 약속을 지키려 최선을 다했다.

경찰 병력을 상주시켰고, 딸의 생일에 인형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김수철의 아내는 눈물을 보이며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검사. 김수철 집에 있는 병력들 이제 철수시키지. 오늘이면 재판도 끝나는데 말이야.”

“아니요. 당분간은…….”

그의 가족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내가 한 약속을 모르고 있는 정일현 부장이다.

그리고 나와 정일현 부장의 대화를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는 박채이 검사.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정일현 부장의 가족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을 한 사실을.

“자네가 앞장서지.”

“아닙니다.”

검사 대기실에 도착한 우리.

재판장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을 향해 나를 앞장세우는 정일현 부장이었다.

1년간의 긴 싸움의 끝.

그 결과가 궁금한 건 우리보다 국민들 쪽이었다.

— 에라이 나쁜 새끼들아!

재판장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걸 보니 피고인들이 재판장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자, 우리도 서둘러 들어가지.”

“네.”

문이 열리자 눈앞에 들어오는 재판장의 모습.

예상대로 방청석은 수많은 기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부족한 자리 탓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대한민국 헌법 제109조.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다만,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법원조직법 제 57조.

모든 재판은 공개적으로 한다.

성폭력범죄나 국가의 안전을 위해 공개되면 안 되는 재판의 경우 법원의 결정으로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는 비공개로 진행할지 몰라도 선고 재판의 경우 비공개 재판을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10여 차례의 공판 기간 동안 비공개 재판을 한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사건이 군 기밀과 관련되어 있고, 민감한 문제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선고 공판이고, 국민들의 세금과 안전을 위협한 다섯 사람의 판결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들의 형량이 결정되는 순간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판사가 입장하고 소란스럽던 재판장은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검사 측, 구형해 주세요.”

“네.”

선고 공판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모든 심리는 끝났고, 검사의 구형과 피고인의 최후 변론, 그리고 판사의 선고만이 남았으니까 말이다.

“피고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탈루했으며,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는 50만 장병들에게…….”

다섯 명의 검사 중 대표로 일어나 구형장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자들과 판사들, 그리고 방청을 온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섯 명의 피고인들은 울먹거렸다.

“이에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에 죄를 물어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피고인 측 최후 변론해 주세요.”

김현철 비서실장, 소태준 군수사 사령관, 박남용 참모장, 이성득 기획재정부 국방예산지원과 과장, 마지막으로 김수철 전 국방부장관.

그들의 변론은 짧았다.

“모든 걸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를 바랍니다.”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미 늦었다.

“그럼 선고하겠습니다…….”

그들의 변론이 끝나고 판사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이에 본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그렇게 재판은 끝났다.

— 와!

방청석과 검사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함께.

“고생하셨어요, 부장님.”

“그래 박 검사도 고생했어! 나중에 대전에서 한 번 보자고.”

서로 악수를 건네며 즐거워하는 네 명의 검사들을 바라보았지만, 그 기분이 공감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게 마지막이겠지만, 나는 새로운 시작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큰 산을 넘기 위해 작은 산을 넘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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