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장 (22/35)

제2장

[군수계획처장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방문하셨네요.”

“좋은 타이밍이라니요?”

“사령관님이랑 참모장님이 총장님 만나러 육본에 가셨거든요.”

이기철 처장이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길래?

“한 검사님도 군 생활을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군대는 검찰만큼이나… 아니, 검찰보다 더 조직 문화가 심하고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곳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제가 알기론 검사는 상부의 허락 없이도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걸로 압니다.”

“네. 검사 개개인이 단독제 관청이니까요.”

“하지만 군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불복종시 군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건… 당연히 아시겠죠.”

검사의 명령 불복종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수사권이 없는 곳으로 쫓겨나는 정도. 심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지만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하나 군인의 명령 불복종은 정식재판을 받고 전과가 남는 범죄다.

만약 평시가 아닌 전시에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다면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범죄란 말이다.

“간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법적인 명령은 불복종할 수도 있지만, 무능하고 잘못된 상관에 맞서는 일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겁니다. 군대 조직 자체가 맞설 수 없는 절대복종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시스템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지휘 체계가 망가진다면 그건 군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휴전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에 지휘 체계가 망가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나 어쩌면 그런 시스템이 부조리와 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힐끔.

“아, 죄송합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기철 준장이 우리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마음속 한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서론이 긴 것이리라. 나와 박채이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바쁜 분들 불러 놓고 쓸데없는 얘기만 했네요.”

“아닙니다. 서론 없는 본론은 없으니까요.”

“어쨌든…….”

말끝을 흐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기철 처장.

자신의 사무실 구석 금고로 향하더니 꽁꽁 숨겨 놓은 서류들을 챙겨 다시 테이블에 앉는다.

“참모장님께 결재를 올리기 전에 따로 복사해 둔 자료들입니다.”

“흠… 처장님께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자료들이겠군요.”

“하하, 역시 예리하시네요.”

“제가 볼 수 있을까요?”

“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받아든 나와 박채이는 재빨리 읽어 내려갔다.

“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기보다는 모든 게 이상했다.

“침낭 하나가 50만 원이라…….”

“그러게요. 여기 보시면 두통약 납품 단가가 개당 만 원이 넘게 측정되어 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서류가 만들어지고 실제로 납품이 가능한 이유?

군부대 특성상 감시가 쉽지 않고 납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기철 처장처럼 이상함을 눈치챈… 아니, 누가 봐도 이상한 서류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겠지만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관의 결재가 떨어진 서류에 토를 다는 순간 항명으로 간주되니까 말이다.

참 웃기고 어이가 없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다.

향후 국방 개혁을 통해 이런 문제점들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방법 또한 없다.

그렇다고 외부에 알리기도 힘들다.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

현실에서는 글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경우는 현실에서 없다고 보면 된다.

배신자라 손가락질 받으며 군복을 벗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찾고 있는 것이 현실성 있는 일이지.

예비역 장교라는 이점을 살려 군 관련 업체에 취직하는 것 또한 힘들다.

관련 업체 역시 비리가 난무하니, 내부 고발을 한 예비역 장교를 누가 쓴단 말인가.

그나마 이기철 처장처럼 장군 출신은 이미 나이가 있고 빵빵한 연금이 나오지만, 아직 한창인 젊은 장교들은 내부 고발을 꿈도 못 꾸겠지.

“문제는… 이 서류들을 저희가 가져갈 수 없다는 겁니다, 처장님.”

내 말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박채이 검사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나는 무시하고서 말을 이었다.

“처장님은 잘 아실 겁니다. 이걸 저희가 가져가 터트리면 처장님은 군사기밀 유출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이기철 처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단순한 납품 단가는 군사기밀이 아닙니다, 한 검사님.”

“그건 법밖에 모르는 우리 생각이고요.”

“네? 그게 무슨…….”

그녀의 질문에 답을 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의 박채이였다.

“군대는 군대만의 법이 따로 있으니까요.”

군은 반드시 찾을 것이다.

자신들의 치부를 들추어 낸 사람을.

그리고 덮으려고도 할 것이다.

군은 문제가 커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조직이니까.

혹은 덮지 못한다고 해도 이기철 처장이 무사하지는 못할 확률이 높다.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반드시 군복을 벗기려 할 테니까 말이다.

군은 보수적인 조직이다. 사건이 잘 마무리된다고 해도 그때뿐이고 언제든 문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이기철 처장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건이 터지면 여론 때문에라도 몇 명의 군복이 벗겨질 겁니다. 계약된 업체들 역시 처벌을 받을 것이고요. 하지만…….”

“하지만?”

“처장님에 대한 보복성 수사도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검사와 달리 군은 명령을 거역할 수조차 없다.

물론 검사도 상부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수사가 쉽지 않겠지만, 어찌 저찌 진행할 수 있으며 훌륭한 성과를 낸다면 여론의 힘을 얻어 오히려 상부가 욕을 먹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보복할 수도 꼬투리를 잡을만한 것도 없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검사가 나쁜 놈 잡아넣었다는데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기철 처장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군사기밀 유출, 항명죄, 상관 모욕죄 등등.

잡힐만한 꼬투리가 수도 없이 많으며 그 말은 어떡해서든 이기철 처장의 군복을 벗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검사가 된 이유가 있지 않은가.

깨끗한 세상.

정의로운 사람이 상을 받고 나쁜 놈이 벌을 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니요. 각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끝까지 명예로운 군인으로 남으세요. 처장님의 대한 보복성 수사는 제가 막을 테니까요.”

명예로운 군인은 상을 받고, 그렇지 못한 군인은 벌을 받게 될 터이니 말이다.

피식.

내 말에 시큰둥하던 박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의연한 듯 보이지만 딱딱히 굳어 있던 이기철 처장의 표정 역시 조금은 여유롭게 바뀌었다.

“검사님 말씀이 참 든든하네요.”

“그게 당연한 건데요, 뭐. 검사는 신고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럼 저도 마음 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검사님이 보호해 주신다니 팩트에 제 추측까지 더해 보겠습니다.”

스윽.

이기철 처장이 두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일단 박 검사님도 계시니 쉽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네.”

“육군 군수사는 육군에 군수품을 조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저희는 연간 3,000만 원 이상의 품목이나 법으로 지정된 품목을 제외하고는 방위사업청을 거치지 않고 저희가 자체적으로 조달이 가능하고요.”

10조 원의 방위력 개선비에서 방위사업청이 군수사에 편성한 예산은 약 2조 원가량이다.

물론 2조원을 사령관 맘대로 쓸 수는 없다.

큰 금액이 필요한 품목은 방위사업청과 조달청을 통해서 구매해야 하니까 말이다.

다만, 그렇지 못한 품목의 경우 군수사, 즉 사령관 마음대로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약품 구매에 2,700만 원. 침낭 구매에 2,900만 원을 썼습니다. 말도 안 되는 납품 단가로 말이죠.”

“상부의 결재가 필요 없는 한도 내에서 구매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의약품을 구매한 업체 대표는 참모장의 고향 동창이고 침낭을 구매한 업체의 대표는 사령관의 처남입니다.”

“하. 너무 빤해서 조사해 볼 필요도 없겠네.”

“공개 입찰을 하기는 하지만 품목에 대한 기준점을 두 업체에 100프로 맞추다시피 하니까 당연히 두 업체가 선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입찰 금액은요?”

“두 업체보다 낮은 단가로 입찰한 업체들은 기준점 미달로 전부 탈락시켜 버리면 그만입니다.”

터무니없이 낮은 원가라고 해도 2,000만 원 정도 남았을 테고 업체와 나눠 가지면 고작 1,000만 원 떼기인데 겨우 그거 먹자고 입찰 비리를 했다는 건가?

물론 큰 금액이긴 하지만 별이 달려 있는 군복을 걸 정도의 금액은 아니다.

아니면 소소한 용돈 벌이라도 하려고 한 건가?

“상부의 결재를 받지 않기 위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장군들 치고는 배포가 작네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양심에 찔리지만 참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걸 보고서는 도저히…….”

스윽.

[MILES 다중통합레이저 훈련 장비 사업]

“사업 규모는 1,000억 원이며 기존에 있던 마일즈 장비들을 대대적으로 교체 정비하는 사업입니다.”

“흠…….”

사업을 위해 선정된 업체는 모두 두 곳.

신풍공영과 일신공업.

신생 회사이기는 하지만 기술 현황이나 재무제표를 보았을 때 이상한 건 없었다.

“혹시 이 회사도 사령관과 관련이 있나요?”

“아니요.”

“관련이 없다면 이상할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 동안 서류를 바라보던 중에 이상한 점을 내가 찾아내고 말았다.

[신풍공영 주주현황]

신풍공영의 주식 71프로를 가지고 있는 기업.

바로 신영개발이었다.

그리고…

[일신공업 주주현황]

.

.

.

일신공업의 지분을 50대 50으로 가지고 있는 두 기업은 군수사에 침낭과 의약품을 납품한 기업이었고, 그 말뜻은 사령관과 참모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다.

“하하…….”

모든 사실을 알고 나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전에 건 연습을 한 거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방산 비리죠.”

이기철 처장의 말을 끊고 통명하게 말했다.

그에게 분풀이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화가 나서 나온 말투였지.

“하하, 맞네요. 프로젝트가 아니라 방산 비리.”

이기철 처장 역시 멋쩍은 웃음으로 말을 바꿨다.

“하여튼… 이번 방산 비리에서 꼭 필요한 결재 라인이 있습니다. 저희 사령관님, 방위사업청의 사업 관리 본부장, 계약관리 본부장, 그리고 기재부의 국방지원예산과 과장까지. 이 사람들을 거쳐야 원래 기안대로 진행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한 명이라도 반대표를 던진다면 사업이 틀어지거나 부풀려진 원가가 수정된다는 말씀이네요?”

“네, 맞습니다. 그럼 그들이 원하지 않는 업체로 바뀌거나 매우 타당한 단가로 바뀌겠죠.”

“그들의 관계는…….”

지잉.

이기철 처장에게 하려던 질문이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끊겼다.

“네, 하준 씨.”

— 방금 김민식 사무관 만나고 나오는 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뭐 나온 거 있나요?”

— 민식 선배 역시 박 검사님께 보낸 자료가 다라고 말하네요.

“흠… 그럼 김민식 사무관에게 더 이상 알아낼 것은 없다는 말이네요.

— 그렇죠. 그리고 특별한 건 아닌데 국방지원예산과 과장이 군 관계자들과 예전부터 모임 하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모임이요? 멤버가 어떻게 되죠?”

— 잠시만요, 멤버가…….

수화기 너머로 박하준의 뒤적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나 역시 멤버들을 적으려 필기구를 찾았지만, 곧이어 들려온 답변으로 인해 소용이 없어졌다.

— 이성득 과장을 포함, 소태준 군수사 사령관, 박남용 군수사 참모장, 간용식 방사청 사업관리 본부장…….

한차례 이름이 불려지고.

딸깍.

전화를 끊은 나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이 서류들은 저희가 갖고 가겠습니다, 처장님.”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사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이 꽤 쉬워질 것 같거든요.”

박하준 사무관의 전화 한 통이 나에게 지름길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가시죠, 박 검사님.”

* * *

다시 모인 대전 지검.

수사 개시에 필요한 모든 자료들이 모였다.

이제 남은 건.

얼마나 화려하게 사건을 터트리느냐, 이다.

“박하준 사무관님.”

“네, 검사님.”

“아까 말씀한 모임을 더 자세히 알아봐 주세요.”

“네?”

별거 아닌 줄 알았던 모임.

그렇게 생각한 박하준 사무관과 달리 나는 그 모임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했다.

사건의 계획은 한 모임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꽤 신빙성 있는 얘기다.

마일즈 장비 사업의 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다?

과연 우연일까?

“그 모임이 언제부터 시작된 거죠?”

“아, 그건…….”

짐을 챙겨 검사실을 나가려던 박하준이 내 질문에 멈칫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 오래전부터 만나온 걸로 압니다.”

“박 검사님, 신영개발 방산 비리 첩보가 언제 들어왔죠?”

“1년 조금 안 됐어요.”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흠…….”

흩어져 있던 여러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고, 이윽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 입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성득 과장, 소태준 군수사 사령관, 박남용 군수사 참모장, 간용식 방사청 사업관리 본부장, 이철주 방사청 계약관리 본부장. 이 사람들은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방산 비리 사건을 계획한 사람들이도 합니다.”

“그 말씀은 신영개발 업체가 아니라…….”

내 말을 열심히 적고 있던 박하준 사무관이 고개를 들더니 물었다.

“네, 맞습니다. 신영개발 업체 회장이 아닌, 저 모임이 신영개발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만, 저들이 전부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저 모임의 주측일 뿐 또 다른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신영개발 쪽은 저랑 박 검사님이 맡을 테니 박하준 사무관님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모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주세요. 자주 만나는 장소나 모여 있는 사진 같은 걸 찍어 주시면 더 좋고요.”

“저 검사님… 잘못하면 검찰이 군을 사찰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안 들키게 잘해야겠죠?”

“아…….”

수사를 개시하고 참고인으로 소환해 모임에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방법.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확률이 높다.

강제성 없는 소환에 나올 인물들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체포 영장을 발부받자니 청구서에 적을 만한 내용이 부족하다.

“사무관님.”

“네, 검사님.”

불법 행위를 하라는 내 수사 지시에 머리를 쥐어 잡고 고민하는 박하준 사무관을 불렀다.

겉모습은 나와 비슷한 나잇대지만 살아온 인생의 무게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꼰대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박하준보다 더 많이 경험한 자로서 알려 주고 싶은 게 있는 거지.

“저희는 공무원이며 국가를 위해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희의 목적은 사회의 불의를 바로잡고 나쁜 놈들을 잡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나쁜 놈들은 법을 지키지 않은 채 국민들이 살고 있는 울타리 안을 어지럽히는 존재입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지…….”

“하지만 저희는 국가가 위임한 법의 한도 내에서만 나쁜 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참 억울하죠.”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먹도, 편법도 모두 써야 되니까.

“사무관님, 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학교와 연수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악을 잡을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언론과 국회의원, 그리고 편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껏 대형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흠…….”

내 말을 듣고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만 아직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누군가의 말로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수사관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깊이 이해하는 정대필과 지성한처럼.

“제가 지금 박 사무관님께 내리는 지시는 부당합니다. 올바른 지시가 아니니까요. 거부하셔도 어떠한 불이익도 드리지 않을 겁니다. 물론 수사에서 제외시키지도 않을 거구요.”

피식.

내 말에 옅은 미소를 짓던 박하준이 바닥에 있는 자신의 짐들을 다시 챙긴다.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좀 해 주세요.”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쾅.

그렇게 박하준이 나가고 회의실 안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직 내가 입을 열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가야할까.

우선 박하준을 믿어볼 것이다.

방산 비리 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촬영해 온다면 언론에 흘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선 박 검사님과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신영개발 쪽으로 가시죠.”

“네, 한 검사님.”

신영개발 관계자들을 만나보는 게 옳은 판단이다.

“수사관님들은 국세청 좀 다녀오세요.”

“국세청이요?”

“네. 마일즈 장비를 납품하는 신풍공영과 일신공업은 신영개발과 군수사와 납품 비리 혐의가 있는 두 업체가 출자한 기업들입니다. 출자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혹은 차명 주식이 없는지 파악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자!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죠.”

* * *

[신영개발]

대전 지검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한 이곳.

신영개발의 본사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어떻게 오셨죠?”

“대검찰청 중수부 연구관 한치우 검사입니다. 혹시 회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아… 잠시만요!”

기업에 검사가 방문하는 일은 흔치 않을 터이고, 그렇기에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검사님들께서 찾아 오셨는데…….”

아마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몇 번의 통화를 거치고 나서야 우리의 방문이 회장실로 전해질 테니까.

“미팅을 거부하거나 부재중이면 어떡하죠?”

경비원의 통화를 기다리는 사이에 옆에 서 있던 박채이가 넌지시 물었다.

“그럴 일 없습니다.”

부재중이면 몰라도 우리를 매몰차게 내쫓지는 않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이 궁금할 터이니 말이다.

특히나 그 사람이 검사라면 더더욱 궁금하겠지.

“저… 검사님들.”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던 경비원이 수화기를 손으로 막은 채 우리에게 묻는다.

“네?”

“혹시 무슨 용건 때문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여쭈어 볼 게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저… 여쭈어 볼 게 뭐냐고…….”

“하∼ 제가 말할 테니까 바꿔 주세요.”

머뭇거리며 당황하는 경비원에 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내가 말하는 게 훨씬 더 빠를뿐더러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한치우 검사입니다.”

— 네. 죄송하지만 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누구시죠?”

— 회장님 비서실장입니다.

“들어가서 말씀 드리면 안 될까요?”

— 스케줄이 있으셔서 급한 일이 아니면 미팅이 어렵습니다.

“급한 일입니다.”

— 그러니까 용무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면 영장을 들고 오시던가요.

“하하, 뭐라고요?”

되풀이되는 말에 비서실장도 화가 났는지 말투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건방졌다.

감히 검사에게라는 생각 때문은 결코 아니다.

대뜸 영장을 찾는 이유 때문이지.

또 영장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찔리는 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기요, 비서실장님. 영장이 있으면 제가 이렇게 친절히 여쭙겠습니까?”

검사 생활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임의동행 요구도 아니고 단순히 면담을 요청하는 것마저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장님한테 말씀은 전하셨습니까?”

— 제가 들어 보고 전하겠습니다. 그게 제 업무이니까요.

그런데 이 새끼 뭐야.

뭔가 찝찝하다. 검사의 면담 요청을 비서실장 선에서 커트한다?

그래 커트는 말이 된다 치지만,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잘 들으세요, 비서실장님. 회장님의 얘기를 들어 보려 친절히 여기까지 방문했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무슨 의심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 결정하세요. 여기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검찰로 돌아가면 저는 소환장이 아닌 신영개발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과 국세청에 세무조사 협조 요청을 할 겁니다.”

— 하…….

그의 한숨 소리만 듣고 다시 경비원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지잉—

[산업통상자원부 지정 방위산업체.]

[보안 시설 관계자외 출입 금지]

빨간 글씨가 선명한 문구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엄청 넓네요.”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하는 박채이 검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이 열리고 눈앞에 드러난 공장 내부는 작은 산업 단지를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박 검사님.”

“네?”

“신영개발 회장 프로필 알고 계세요?”

“네. 파악해 놓은 게 있는데 검사실에 있습니다.”

“수사관님께 전화해서 메일로 보내 달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장 프로필은 왜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리고 비서실장 프로필도요.”

수사에 있어 찝찝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한다.

그냥 넘겨 버리면 나중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느낀 찝찝함은 바로 비서실장이다.

“왔네요. 한 번 보시겠어요?”

“네.”

박채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나에게 건넸다.

[신현우 회장]

가장 먼저 보이는 신현우 신영개발 회장의 프로필.

눈에 보이는 특이점이 몇 가지 있었다.

자수성가형 재벌 회장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그렇기에 자신의 회사를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나이라는 점.

“최근 몇 년간 대외 활동이 전혀 없네요?”

“네. 나이도 그렇고 최근 건강이 안 좋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주가를 신경 쓰느라 발표는 안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실무진들이 경영을 분담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실무진이라면?”

“여려 명 있죠. 이사들이나 부장급 인원들이요. 소문으로는 전문 경영인을 차기 회장 자리에 임명한다고 알고 있어요.”

“흠…….”

하긴 물려줄 핏줄이 없으니 전문 경영인을 앉혀야겠지.

“내부 승진은요?”

“저도 신영개발 부사장이 내부 승진을 통해 차기 회장 자리에 앉을 줄 알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스카우트한다고 하더라고요.”

“신현우 회장 뜻이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김현철 신영개발 비서실장]

박채이와 얘기를 나누며 걸는 와중에도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게 서류를 넘기며 김현철 비서실장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비서실장은 특별한 게 없네요.”

“네. 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운전기사 출신으로 20년 넘게 신현우 회장을 보필한 것 말고는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박 검사님…….”

지금 신현우 회장은 경영을 손에 놓을 정도로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다.

또 박채이 말대로라면 실무진들이 경영을 분담하고 있다.

그럼 분담된 업무들이 어느 곳으로 모일까?

바로 20년 넘게 신회장을 보필한 김현철 비서실장에게 모일 것이다.

회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도장은 김현철 손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저는 왜 신현우 회장이 김현철 비서실장의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 * *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이 사건은 김현철 비서실장이 계획한 것이리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신현우가 재벌 회장이기 때문이다.

신현우의 건강 문제는 수천 수만 주주들의 돈이 걸려 있는 문제이고, 그렇기에 보안 유지를 철저히 했을 것이다.

또 가족이 없는 신현우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것은 김현철 비서실장, 그러니 신현우 회장의 모든 권한을 자신이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물론 내 추측이긴 하지만…….

앞으로 비서실장을 만나 보면 더 정확해질 테지만, 나는 내 추측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넓디넓은 공장 건물을 지나자 신영개발의 사무동 건물이 보였고, 프로필상으로 얼굴을 먼저 익힌 김현철 비서실장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반갑습니다, 한치우 검사입니다. 이쪽은 박채이 검사입니다.”

“네.”

내 추측이 아직 확실한 상황은 아니기에 정중히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행동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싸가지가 없네.”

“다 들려요, 치우 씨…….”

“상관없어요.”

나 역시 그리 천사표 인간은 아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끝까지 예의를 갖출 만큼 착한 놈은 아니란 말이다.

“안내판을 보니 회장실은 꼭대기 층인 것 같던데요?”

11층짜리 사무동 건물.

앞장서 걷던 김현철 비서실장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 대회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지금 검사님과 미팅이 어렵습니다.”

“아까는 스케줄이 바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최소한의 스케줄만 소화하고 계십니다. 웬만한 스케줄은 제가 대신하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김현철 씨한테 저희의 용건을 대신 말하라는 겁니까?”

“네.”

김현철 비서실장 뒤를 따라 자연스럽게 대회의실에 도착했고 내 등 뒤로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당신 변호사예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김현철에게 말했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비서실장이고, 제게 말씀하시면 회장님께 여쭈어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형법 제126조에 의거, 검사와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 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마치 회장님이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마냥 말씀하시네요.”

“또! 형사소송법 제198조 2항에 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리 그밖에 직무상 수사 관계자에 있는 사람은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엄수해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가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씀하시냐고요.”

우리?

분명 녀석에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라뇨?”

“그건…….”

다시 되물었고 김현철은 당황해했다.

“김현철 씨야 말로 마치 회장님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거야 회장님의 비서실장으로서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으니 당연하죠.”

내가 지금 신영개발을 찾은 목적은 마일즈 장비 도입을 통한 방산 비리에 대하여 신영개발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신현우 회장이 주도한 건지 아니면 박하준 사무관이 말한 모임, 일명 으뜸회에서 주도한 건지 정확히 파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아니면…….

“그럼 이번 마일즈 장비 사업도 잘 알고 계시겠네요?”

김현철 비서실장과 으뜸회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일단은 피의 사실을 숨긴 채 김현철 비서실장을 떠보기로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신영개발은 마일즈 장비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실장님. 저희가 밥 먹듯 보는 게 재무제표입니다.”

특수부 검사인 박채이는 물론이고, 나 역시 특수부 출신이다. 당연히 몸에 문신이 있는 조폭이나 살인범보다는 넥타이를 곱게 맨 피의자들을 상대한다.

그리고 시체, 흉기 등의 사진보다는 기업의 회계자료, 혹은 정치인들의 더러운 사생활이 담긴 사진을 더 많이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에 방위사업청과 군수사는 1,000억 원 규모의 마일즈 장비 사업을 시행했고, 공개 입찰을 통해 낙찰된 기업은 신풍공영과 일신공업입니다.”

“그래서요?”

“이렇게 나오면 서로 피곤합니다.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신풍공영 주식의 71프로를 신영개발이 가지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그게 무슨 문제가 되죠? 저희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닙니다. 방산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죠. 그러니 미래가 촉망한 중소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래요. 이상한 건 없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는 있죠. 마일즈 장비 사업의 공개 입찰 한 달 전. 신영개발은 연 매출 10억도 되지 않는 신풍공영의 지분 71%를 매입합니다. 사실 지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죠. 작은 법인 대표에게 용돈 쥐어 준 게 전부이니.”

“사업은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하는 거지 현재를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요. 순이익 오천도 되지 않는 나사 만드는 공장에 무슨 가능성을 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치고.”

나사 만드는 공장이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신영개발 안에 있는 공장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였지.

아니, 오히려 신풍공영보다 품질 좋고 대량생산이 가능한데 굳이 비싼 돈을 줘 가며 지분을 매입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00억 원짜리 마일즈 장비 사업을 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케파를 가진 신풍공영입니다. 그런데 신영개발이 지분을 투자한 순간 떡하니 방위산업체에서 낙찰을 해 버렸네요? 그리고 제2업체 일신공업은 군수사 사령관과 참모장 측근이 지분을 반반씩 갖고 있는 업체이고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보통 피의자를 심문하다 보면 두 가지 유형을 볼 수 있다.

잡아떼거나 아니면 침묵하거나.

하지만 김현철 비서실장 같은 특이한 케이스도 있다.

잡아떼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유형.

물론 침묵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쉬운 유형도 아니었다.

“네. 지금 당장이야 문제가 될 만한 건 없죠. 다만, 나중에 어떤 혐의가 드러난다면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가 되는 법이죠.”

“하하, 검사가 팩트를 가지고 말씀하셔야지 추측으로 말씀하시면 되겠습니까?”

내가 가진 패가 확실하지 않다는 걸 안 것일까?

단 한 번도 경계를 풀지 않던 김현철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하하, 잘 모르시는군요. 모든 경제 사범 수사는 작은 실마리를 가지고 추측을 통해 시작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나타난 실마리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죠.”

“예∼ 뭐, 그러시던가요.”

김현철 비서실장이 하는 꼴을 보니 지금 당장 신현우 회장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굳게 닫힌 회장실 안에 신현우 회장이 있기는 할까?

김현철은 비서실장이며 회장실의 문지기와도 같다.

즉, 그가 문을 열지 않는 이상 회장실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업무가 많이 밀려서요.”

“그래요. 어차피 처음부터 그쪽을 만나려고 온 게 아니니까요.”

“말씀드렸을 텐데요. 회장님은 건강 문제로 검사님들을 만나 뵙기 힘들 거라고.”

“그럼 정식으로 참고인 조사 소환장 보내겠습니다. 건강 문제라면 불출석 사유서 보내 주십시오.”

“예예. 나가시는 길은 아시죠? 배웅은 못 해드리겠네요.”

쾅.

김현철이 신경질 적으로 문을 닫으며 회의실을 나갔다.

“어떡하려고 그러세요?”

“불출석 사유서 받고 주치의 찾아가 봐야죠.”

“네?”

“여기서 저놈이랑 길게 얘기해 봤자 시간 낭비입니다.”

말로는 그랬지만, 칼을 들고 찾아왔는데 아무 것도 못 들고 돌아간다면 검사로서 자존심이 너무 상할 것 같았다.

“대신 덫 하나 놓고 가죠.”

“덫이요?”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신현우 회장인지, 김현철 비서실장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현우 회장과 김현철 비서실장 두 사람 모두인지 알아보려는 덫.

걸려들기만 한다면 찾아온 목적을 달성할지도 모른다.

힐끔.

시선을 구석 CCTV를 가리키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뭐하시는 거예요?”

“소리는 녹음이 안 되지만 영상은 선명하게 나오는 CCTV죠.”

“그래서요?”

“이기철 처장이 준 자료 나가면서 흘리는 척하세요.”

“네? 굳이 왜…….”

“제가 예전에 한 번 써먹어 본 방법인데 아주 괜찮거든요.”

“…….”

“저 믿고 연기 한 번 해 주시죠, 박검사님.”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박채이에게 말했고,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박채이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 *

“정 수사관님과 지 수사관님은 김현철 비서실장과 신현우 신영개발 회장 미행 좀 부탁드립니다.”

두 수사관에게 전화를 끝으로 나는 신영개발을 나왔다.

내가 검찰 시보 생활을 하며 써먹은 방법.

고작 종이 쪼가리 하나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

우리가 신영개발에서 흘린 서류는 발이 달려 움직일 것이다.

김현철 비서실장이라는 발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수사 개시하시고, 영장 청구합시다.”

수사를 개시하기 전.

가장 큰 문제는 핵심적인 내부 고발자인 김민식 국방 예산 지원과 사무관과 이기철 처장의 안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문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잉.

“네.”

— 검사님, 김현철 비서실장이 군수사 사령관과 접촉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군수사 사령관을 군 기밀 자료 유출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세요.”

— 네?!

“제가 책임질 테니 체포하세요!”

확률이 매우 높은 도박.

실패하면 수사가 수포로 돌아갈 것이고, 성공한다면 기밀자료 유출 혐의를 핑계로 이기철 처장을 보호할 수 있다.

기밀자료를 유출한 건 이기철이지만, 어쨌든 자료는 군수사 사령관 손에 있으니까.

그것도 신영개발의 비서실장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물론 목적은 기밀자료 유출에 대한 사령관의 처벌이 아니었다.

그가 지은 범죄는 방산 비리 혐의이지 기밀자료 유출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 기밀자료를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물론 군이 거부한다면 자세히는 못 밝힐 것이다. 하지만 군수사 납품 단가가 적혀 있는 서류 제목 자체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할 게 분명했다.

— 네, 알겠습니다.

딸깍.

지잉.

정 수사관과 전화를 끊자 곧바로 울리는 휴대폰.

— 검사님, 박하준입니다.

다급한 박하준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울렸다.

“네.”

— 낌새를 눈치챘는지 요즘 으뜸회의 모임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사진은요?”

—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술잔 기울이고, 트렁크에 박스 싣는 것까지 완벽히 찍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무관님.”

—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는 군수사 사령관이 안 나온 것 같습니다.

“사령관은 이제 모임에 못 나갈 겁니다. 체포될 테니까요.”

딸깍.

이 사건을 터트리는 순간. 그리고 이 사건의 시작이 김민준이라고 밝혀지는 순간.

김민준 사무관의 보복 인사는 앞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군인인 이기철과 달리 김민준 사무관은 여론의 방패가 생길 테니까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박채이와 함께 브리핑실로 향했다.

팟팟팟—

문이 열리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준비가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기소에도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중수부장에게 이 사건을 터트려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수부장도 꽤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사건 개시를 수락하였다.

물론 야망 가득한 중수부장은 어떤 사건을 들이민다 해도 거부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마련된 기자회견 겸 브리핑 자리.

이제 나는 방산 비리 사건을 세상에 공표하고 척결하려 한다.

“대검 중수부 연구관 한치우입니다. 저희 중수부는…….”

* * *

“내부 수사를 통해 신영개발과 군수사의 방산 비리 연관성을 밝혀냈고, 이 자리를 빌어 저희가 밝혀낸 혐의를 국민 여러분께 알리려합니다…….”

검사 생활이 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떨리는 순간을 말하라고 하면, 기자들 앞에 서서 사건을 알리는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뜨거운 플래시 세례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감 때문인지, 얼굴에서는 땀이 흐르고 다리와 손은 떨려왔다.

티를 내지 않으려 목소리에는 힘을 준 채 떨리는 몸을 간신히 붙잡았다.

“사건의 시작은 기재부 사무관의 용기 있는 내부 고발 때문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

그의 정의가 1,000억이라는 세금을 아낄 수 있게 하였고, 대한민국을 위해 온몸 바쳐 고생하는 50만 병사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게 하였다.

물론 단순히 훈련용 장비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수사 납품 예정이었던 마일즈 장비는 센서 감지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레이더의 유효 거리도 공인 시험 성적서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짧았다.

한마디로 시험 성적서까지 위·변조를 했다는 얘기다.

“방위산업체는 군수물자 계약을 통해 방위사업청에 납품을 하며, 납품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노무비와 연구비를 추상해 이윤율을 계산합니다.”

후하게 쳐준다고 해도 400억도 되지 않는 마일즈 장비의 납품 단가.

말도 안 되는 이윤율을 붙인다고 해도 600억이 넘지 못한다는 얘기다.

원가 측정, 이윤율, 거기에 마일즈 장비의 품질까지 전부 조작되었다는 뜻이고, 그 사실은 누가 봐도 이상한 예산 편성이었다.

다만, 군 관계자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상관의 명령에 묵인해야 했고, 기재부는 이성득 과장이 주도하는 탓에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는 국방예산지원과의 과장.

상부 결재를 받아야 하긴 하지만, 기안서는 본인이 직접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저희가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이번 마일즈 장비 사업은 500억 규모면 충분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덧붙여 지금 군이 사용하는 마일즈 장비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풀려진 500억.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돈이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저 부러워하며 돈지랄한다고 욕하면 그만인데.

하지만 그들이 부풀린 500억은 국민들이 낸 혈세이다.

나라에서 월급을 받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자들이 빼돌린 세금이란 말이다.

으뜸회의 탐욕스러운 입들이 아닌, 당장 한 끼가 걱정인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터였다.

“저, 검사님. 죄송하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이 어디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브리핑을 이어 가던 중.

맨 앞줄에 있던 기자 한 명이 내 말을 끊고 물었다.

“질문 시간은 이따…….”

스윽.

그의 질문을 막으려 정대필 수사관이 앞으로 나왔지만, 내 팔에 의해 막혔다.

“공신력 있는 기관은 국방기술품질원이며 자문을 구한 사람은 이기철 군수계회처장입니다.”

“아…….”

내 말을 받아 적는 기자.

그의 질문을 받아 주면 또 다른 질문들이 쏟아질 걸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굳이 답변한 이유는 일방적인 브리핑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패는 많다. 그러니 어떤 질문에도 답하는 당당한 모습이 여론에 비춰지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인지 사건에 내부 고발자를 굳이 밝히는 이유가 뭔가요?”

“그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물론 기자님 말씀이 틀린 건 아닙니다. 수사 검사로서 내부 고발자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요. 하지만 신변을 숨기는 게 과연 그들을 보호하는 게 맞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부 고발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게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누군지 알아야 국민들이 주시할 테니까.

그래야 그들을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이런 내 생각을 담아 물었지만, 기자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만약 첩보 자료가 상관을 흠집 내거나 사실과 다르다면 처벌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부 고발자는 여론에 노출되어 신변에 위협이 생길 수도 있으며 용기 있는 내부 고발은 더 이상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내부 고발이 악용될 수도 있다.

저 기자의 말처럼 상관을 흠집 내거나 거짓 고발을 해 조직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내부 고발자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거짓 고발을 한 사람이라면 피의자가 되며, 피의자의 신변을 노출하는 건 엄연한 불법행위니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은 범법자도 신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첩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검증을 통해 사실 확인이 끝났으며 기소할 자신 또한 있습니다.”

내부 고발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김민식 사무관님과 이기철 처장님은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이며 어떠한 불이익도 받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상을 받아야죠.”

이번 사건을 만들어 준 두 사람.

용기 있다.

멋있다.

무슨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하여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검사님이 말씀하신 으뜸회와 신영개발이 이번 마일즈 장비 방산 비리를 계획한 사람들인가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신영개발 김현철 비서실장과 으뜸회가 계획했습니다.”

“네?! 비서실장이요?”

“저희도 처음엔 당연히 신현우 신영개발 회장이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했지만, 신 회장님의 건강 상태는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결재권을 김현철 비서실장이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네, 맞습니다. 신영개발 쪽은 신현우 회장님을 허수아비 삼아 김현철 비서실장이 주도한 걸로 보입니다.”

신현우 회장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당연히 불출석 사유서였다.

고열과 근육통.

당연히 믿지 않았고 주치의를 찾은 우리는 결국 사실을 듣고야 말았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내 손에 진료비 허위 청구 자료가 들려 있기에 가능했지.

그렇게 주치의가 말한 정확한 진단명은 PVS(Persistent vegetative state).

즉 식물인간이었다.

그것도 1년 넘게 말이다.

한마디로 애초에 마일즈 장비 사업에 신현우 회장은 개입할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또한 군수사 사령관과 참모장은 이번 사건 이전부터 자신들의 측근이 대표로 있는 업체를 군수사 납품 업체로 지정해 예산을 편취했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더니.

몇 천만 원씩 해 먹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지금 수사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마일즈 장비 납품 업체로 지정된 신풍공영과 일신공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고, 두 업체 대표를 방위사업법 제62조, 형법 제355조 혐의로 기소한 상태입니다.”

“사건 관계자들은 두 업체 대표가 끝이 아닌 걸로 아는데요.”

“네, 맞습니다. 군·검찰과 협조하에 군수사 사령관과 참모장을 소환 조사를 통해 기소할 예정이며, 이성득 국방지원예산과 과장, 간용식 방서청 사업관리 본부장, 이철주 계약관리 본부장 역시 기소 예정입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브리핑.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나는 성실히 답변했다.

“그들 역시 같은 항목으로 기소하실 건가요?”

“그건 제가 아니라 또 다른 담당 검사이신 박채이 검사님이 답변해 주실 겁니다.”

그렇게 브리핑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나는 브리핑의 피날레를 박채이에게 넘겨주었다.

“질문에 답변 드리자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자세한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간용식 사업관리 본부장과 이철주 계약관리 본부장은 일반 이적죄로…….”

팟팟팟.

그녀의 말에 갑자기 터지는 플래시 세례.

어쩌면 이번 브리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지도 모르는 발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의 주범인 김현철 비서실장, 이성득 과장, 소태준 사령관과 박남용 참모장은…….”

팟팟팟.

그녀의 다음 말은 기자뿐만 아니라 여론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논란거리와 정계를 뒤흔들 만큼 말이다.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할 예정입니다.”

* * *

“하하… 형법 제96조라…….”

브리핑이 끝나고 대전 지검에서 철수한 우리는 중수부장실로 모였다.

입에서 폭탄을 내뱉었으니 모이기보다는 불려온 것에 가까웠지만.

“한 검사, 자네 생각인가?”

힐끔.

곁눈질로 보는 그녀의 눈치.

처음 보는 중수부장의 위압감에 기가 눌렸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긴… 검사에게 있어 중수부장은 검찰총장만큼이나 높은 사람이니까.

“아니요. 저와 박채이 검사의 생각입니다.”

처음 시설파괴이적죄를 말한 사람은 박채이였다.

하지만 당시 나 역시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박채이 입에서 나온 폭탄을 그녀 혼자 떠안게 할 수는 없었다.

“돌연변이가 중수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전에도 있었네.”

“죄송합니다…….”

“아닐세. 죄송은 무슨. 여론 반응도 좋고 청와대 쪽에서도 수사를 밀어준다니까 한 번 잘해 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박채이.

그런 박채이를 토닥이며 말하는 중수부장이었다.

“하지만 이건 알아 둬. 검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하네. 그리고 무리한 기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지. 지금이야 여론의 반응이 좋다지만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어.”

“걱정 마십시오, 부장님. 혐의 확실하고 받쳐 줄 증거 역시 충분합니다.”

“그래?”

“네.”

자신감과 의지 역시 충분했다.

“그나저나 박 검사는 서울로 올라와야겠네?”

“일단은 그럴 거 같습니다.”

“검사실은 한 검사랑 같이 쓰면 되고, 독신자 숙소 하나 비워 줄 테니까 거기서 지내.”

“네, 알겠습니다.”

박채이와 그녀의 식구인 수사관 두 명.

거기에 정대필, 지성한, 박하준 수사관, 그리고 나까지. 그렇게 일곱 명이 중수부에 모이게 되었다.

앞으로 조사는 중수부에서 이루어질 확률이 높으며, 이 사건은 중수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있는 힘껏 해 봐. 위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나가 봐.”

지잉.

중수부장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때,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아이고…….”

그 진동에 중수부장 역시 한숨을 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자네들 덕분에 민정 수석 전화를 매일 받네.”

휙휙.

넋두리를 하며 손짓으로 우리를 내보내는 중수부장.

하긴, 청와대 역시 애가 탈 것이다.

우리가 뱉은 폭탄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터지면 안 될 터이니 말이다.

“누구부터 소환할까요?”

내 방에 모인 일곱.

넓어 보이던 내 방이 좁아졌다.

“흠… 복잡하게 한 명씩 부르지 말고 한 번에 부르죠.”

“네?”

“사람이 일곱이나 되는데 한 명씩 부르면 인력 낭비죠.”

소환해야 할 사람은 일곱 명.

한 번에 소환해도 조사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일곱 명 중 신풍공영과 일신공업 대표 두 명은 그저 꼭두각시일 확률이 높으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군수사 사령관은 이미 체포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한 번에 부르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조사는 피의자를 파악하는 일이지만, 피의자 역시 우리를 파악하려 할 것이다.

특히나 경제사범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담당 검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법정 싸움에 있어 그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한 번에 불러 조사를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니다. 가셔서 데려오세요. 신변 정리할 시간도 주시고요.”

“네?!”

이미 혐의와 증거가 충분했기에 사건은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명목상 소환 조사이지만 그들은 대검을 무사히 나가지 못할 것이다.

조사실에서 그대로 구속될 테니까.

물론 출석요구에 응한다면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여 구속 사유가 성립되지 않지만, 검찰은 긴급체포권을 남발해 영장 없이 피의자를 구치소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

오랜 관행이자 문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점을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거부하면…….”

내 말에 수사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진다.

“그 자리에서 체포 영장 청구하세요.”

오히려 거부하는 게 나에게 있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구속의 이유가 생기니까.

“어떻게 해서든 데려오라는 말입니다.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 *

“반갑습니다.”

“참…….”

중수부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못마땅한 표정의 김현철 비서실장이었다.

“안녕하세요. 김현철 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오앤정, 오나라 변호사입니다.”

“예, 앉으시죠.”

그리고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

김현철 비서실장의 변호인단과 군수사 사령관 그리고 참모장이었다.

조사 계획은 이렇다.

나는 김현철 비서실장, 박채이 검사는 군수사 사령관, 박하준 사무관은 참모장을 맡기로 했으며, 나머지 이성득 국방예산지원과 과장과 방위사업청의 두 본부장은 수사관들이 조사를 할 것이다.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에서도 이루어진다.

보통 잡범들의 경우에는 경찰에서 넘어온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김현철 비서실장 같은 경제 사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성명 김현철. 주민번호…….”

일단 대형 사건의 경우 초동수사부터 검찰이 시작하기 때문에 경찰을 거쳐 오지 않는다. 경찰 조사에서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법정에서 뒤집어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또 대한민국의 형사사건 절차상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나 변호사가 인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 채택이 되지 않지만, 검찰에서 작성한 조서는 피의자나 변호사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정에서 인정이 된다.

참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경찰의 강압 수사나 고문에 의한 자백이 법정에서 인정된다면 억울한 피의자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검사가 피해자의 진술을 적은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기재되었고, 피고인의 진술 내용과 일치한다는 신빙성이 있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조 2항.

피의자가 조서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상 녹화물이나 그 밖의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증명된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또 검사 외에 수사 기관이 작성한 조서는 피의자나 변호인이 인정할 때에만 증거로 채택된다.

물론 이렇게 법으로도 명시되었다.

어떻게 보면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종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법 조항이기도 하다.

경찰의 조서와 수사를 검찰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고, 수사의 종결은 결국 검사의 판단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마치 경찰의 상급기관인 것처럼 비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검사의 강압 수사는 어떻게 막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땅한 방법이 없다.

특히나 힘없는 평범한 국민이라면 더더욱 더.

그래서 검사가 무소불위에 권력을 휘두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검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깨끗한 조직이라 하여도 티끌만한 더러운 점이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

“인정신문 끝났으니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검사의 무소불위 권력을 전부 써 보려고 한다.

김현철 비서실장은 흔히 말하는 범털이다.

어떤 검사는 자신이 행할 수 있는 권력을 전부 써서 상대하고, 어떤 검사는 고개를 숙이며 부족한 물욕을 채우기도 하는 존재란 말이다.

“잘 아시다시피 김현철 씨는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 혐의로…….”

“잠시만요, 검사님!”

큰 소리로 내 말을 끊는 김현철의 변호사.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변호사였다.

경력은 얼마 안 되지만 30명의 변호사가 속해 있는 오앤정의 대표변호사이며 굵직한 경제 사건을 담당했고, 꽤 높은 승소율을 기록하는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그녀의 집안 때문이었다.

대법관 출신 아버지와 판사인 남편.

구청장 이모에 국회의원 어머니.

21세기 로열패밀리 같은 그녀의 집안이 그녀를 최고의 변호사로 만든 것이다.

“오 변호사님. 조서는 문을 건네면 답을 하는 겁니다. 검사의 질문은 끊지 마시죠.”

“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니까 그렇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적 없습니다.”

“시설파괴이적이라뇨? 사법고시 수석에 연수원 수석 하셨다는 분이 법 조항도 제대로 모르세요?”

싸가지 하고는.

그래. 그녀는 분명 연수원 선배이며 나이는 어리지만 법조계 생활 역시 나보다 길었다.

그리고 그녀는 변호사이며 자신의 의뢰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역시 맞다.

하지만 이 조사실 안에서는 그녀와 나의 관계는 검사와 변호사이며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이다.

“말씀이 심하시네요. 인신공격을 하셔서 좋을 게 없으실 텐데요.”

“제가 언제 인신공격을 했다고 그러세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싸움.

그녀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녀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그녀 뒤에 붙는 연수원 선배, 법조계 선배라는 꼬리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이 판은 개싸움이 될 테니까.

“변호인이시면 쓸데없이 언성 높이지 마시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러니까. 검사님 물음에 오류가 있으니까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까. 시설파괴이적범이라니요.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범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잘 알고 있죠. 적국을 위하여 전조에 기재한 군용 시설 또는 기타 물건을 파괴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도대체 저희 피고인이 적국을 위해 어떤 시설을 파괴하고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까? 마치 김현철 씨를 간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간첩이라고는 안 했습니다만.”

“적국을 위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피의자에 혐의에 대해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혐의가 잘못됐다는 말씀입니다.”

“휴… 변호사라는 분이 말씀이 안 통하네.”

“참… 누가 말이 안 통하는지 모르겠네.”

조사실 안에서 나와 오나라의 언성은 높아졌다.

중간에 있는 김현철은 팔짱을 끼며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오나라 역시 자신의 의뢰인을 위하여 한 발자국도 물러섬이 없어 보였다.

“김현철 씨는 신풍공영의 지분을 신영개발 명의로 사들여 마일즈 장비 입찰에 개입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죠? 신영개발은 사기업이며 투자 유치는 오로지 회사의 뜻으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지분이 있는 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것 역시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이는데요?”

“이상한 점이라…….”

검사는 한 피의자에 생사를 결정짓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말자고.

대한민국 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형사사건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 진행되니까 말이다.

스윽.

[신영개발 명의신탁 재산 목록]

그렇기에 한 사건이 끝나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것이다.

혐의점 하나에 뒤따르는 수십 개의 증거들을 수사를 통해 찾아야 하며, 그 증거들을 입증하기 위한 과정 역시 필요하다.

또 모든 과정이 완료되었다 하더라도 재판을 통해 피고인과 싸우며 법원에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이상한 점입니다.”

나와 박채이를 포함 일곱 명의 사람.

더 나아가 우리의 수사를 지원해 준 수십 명의 수사관들과 관련 부처 직원들.

이들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수사 과정을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줄여 주었다.

“이게 뭐죠?”

“신영개발으로 명의 신탁해 구입한 자산 목록입니다.”

수사 시간이 짧다고 준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관계 부처를 뛰어 다니며 증거자료를 모았고 언론을 이용해 세간의 이목 또한 집중시켰다.

대한민국 형사 재판이 1프로도 되지 않는 무죄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

검사는 범죄 사실이 확실하지 않으면 기소를 하지 않는다.

잘못된 기소를 통해 무죄가 나온다면 앞으로 쌓아 갈 검사 커리어에 가장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테니.

특히나 김현철 같은 범털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그런데 나는 이 조사실 안으로 김현철을 부르고, 오나라 변호사에게 큰 소리를 치고 있다.

한마디로 범죄 사실을 입증할 자신감과 준비가 완벽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조사가 끝나면 김현철은 구치소로 향하겠지.

“이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어라?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오나라 변호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되물었다.

하나 팔짱을 끼고 있던 김현철은 당황한 듯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김현철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변호사에게 신영개발 명의를 빌려 신풍공영 지분을 사들였다는 걸.

“일단 살펴보시죠.”

“흠…….”

서류를 살펴보는 오나라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물론 이 서류가 히든카드는 아니다.

앞으로 내가 꺼낼 카드 중 일부일 뿐.

그녀의 찌푸려진 미간은 다시 펴질 일이 없다는 소리다.

“잠깐 의뢰인과 둘이 얘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그 서류가 끝이 아닌데 더 들어 보시고 하시죠.”

“휴… 간 그만 보시고 한 번에 꺼내시죠.”

“그래요.”

박하준이 건네준 몇 장의 사진.

우리가 신영개발 회의실에 흘리고 간 납품 단가를 김현철이 군수사 사령관에게 전해주는 사진과 으뜸회 모임 사진, 트렁크에 돈다발이 가득 들어간 박스를 싣는 사진까지.

또 말도 안 되는 원가 책정을 입증해 줄 이기철 처장의 진술서와 김민식 사무관의 진술서.

책상 밑에 있던 수많은 서류들을 조사실 테이블 위로 하나씩 올려놓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서류가 쌓여 갈수록 오나라 변호사의 한숨 또한 깊어졌다.

“하… 다하셨습니까?”

“서류는 이쯤이면 된 것 같네요.”

“살펴보고 의뢰인과 상의할 시간 좀 주시죠.”

“그러시죠.”

김현철과 오나라를 뒤로한 채 조사실을 나왔다.

변호사와의 면담은 피의자의 권리이며 어차피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밖을 나와야 할 이유가 있기도 했고 말이다.

“어떠세요?”

“빤하죠, 뭐.”

“여우같은 변호사가 붙었네요.”

“하하, 여우는 무슨.”

“오나라 변호사 업계에서 유명해요. 법조인 집안이라 실력으로 안 되면 집안 백으로 압력도 넣거든요. 승소를 위해 물불 안 가리죠.”

“걱정 마세요. 일이 쉬워진 것 같거든요.”

“왜요?”

“피의자가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대본도 엉망인 것 같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듣고 재판을 준비하며 검사에 대응한다.

하지만 김현철은 자신이 의뢰한 오나라를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지금 조사실 안에서 오나라에게 된통 깨지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잘됐다.

최후의 히든카드를 꺼낼 지금.

엉망인 대본을 고치려는 오나라와 말을 할지 말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김현철에게 보여 주기 딱 좋은 타이밍이니까.

덜컥.

정대필 수사관과 얘기를 나누던 중.

박채이 검사가 다른 조사실에서 나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 끝났어요, 한 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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