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하하하하!”
내 말에 박광식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배까지 움켜잡으면서 말이다.
“젊어 보이는데 배포가 크군요.”
“아닙니다.”
“그런데 그 배포가 마음에 드네요.”
내가 박광식 의원을 찾은 이유는 그가 깨끗해서만은 아니다.
그가 속한 상임위가 훗날 이름을 바꿀 행정안전위원회이자 국회운영위원회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돕고 싶긴 하지만 제가 딱히 도울 게 있나요? 저는 법사위 위원이 아닙니다.”
그밖에도 국회에는 여러 상임위원회가 있다.
상임위의 가장 큰 목적은 입법권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전문성 없이 법안을 발의하는 걸 방지하는 것이다.
즉, 본회의에서 의결과 토론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이 모여 법안을 한 번 필터링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상임위에서 법안이 가결되면 모든 법안은 법사위로 넘어가 법안의 법적 검토와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조금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나 복잡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개발세발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국회의 수많은 상임위 중에서 가장 파워가 센 곳은 어딜까?
아마 모든 의원들이 똑같이 말할 것이다.
바로 법사위.
상하원이 나누어져 있지 않은 단원제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각기 다른 상임위에서 법안 심사가 통과됐다 하더라도, 결국 법사위에서 법안을 계류시키거나 법적 충돌을 문제로 본회의에 넘기지 않으면 공을 들여 만든 법안이 그저 두꺼운 서류뭉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게 필요한 의원님은 법사위 의원님이 아닙니다.”
“그럼요?”
또 법사위는 법무부와 감사원, 헌법재판소의 대법원까지 소관하는 위원회이다.
또한 국가 중요 기관의 장들을 뽑는 인사청문회까지 담당한다.
물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자리도 있겠지만, 공직 후보자를 탈탈 털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법안에 계류를 풀어 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지역구에 예산을 빵빵하게 챙겨 민심을 얻거나 인사 청문회 통과를 대가로 자신의 사람을 원하는 자리에 앉혀 놓기도 한다.
“그럼 검사님의 수사에 힘을 실어 달라는 얘기는 아니네요?”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법안의 법적 검토를 소관하는 상임위기 때문에 법사위 의원들은 거진 법조계 출신이다.
법조계 선배에 법사위 국회의원.
그들이 내뱉는 한마디가 법조계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답이 딱 나올 것이다.
만약 6선 국회의원인 박광식이 법사위원장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가 내 이름을 말하며 수사를 밀어 달라 하는 순간.
강철호 검찰총장의 한마디보다 더 막강한 힘이 실릴지도 모른다.
하나 내가 필요한 건 수사에 힘을 실어 주는 게 아니다.
“운영위와 행안위 의원님이 필요합니다.”
“흠…….”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하기 전에 검사실 책상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소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이제 남은 건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잡아넣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 방해가 될 인물들이 누군지까지…….
아마 채현우 서울 지방경찰청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일 것이다.
나를 자신들의 적대 세력을 벨 칼로 이용하고 있으니까.
아니, 내가 그렇게 움직여 줄 거라 착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심복이자 나와 연결 고리가 된 남영훈 광역수사대 대장은 이미 나에게 구워삶아져 있다. 이제 남영훈 대장은 그들이 아닌 내 꼭두각시가 되었고, 이제 남은 건 그들을 견제할 수단이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민정수석과 경찰청장을 움직여 주십시오.”
박광식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을 소관하는 국회운영위와 경찰청을 소관하는 행정안전위원회를 겸하고 있는 국회의원이자, 깨끗한 정치인인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귀를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게…….”
모든 걸 설명했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거짓 또한 없이.
박광식에게는 숨김없이 말해도 될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혀끝을 차기도 하던 박광식은 내 말을 단 한 번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 주었다.
“자료들은 제가 전부 모아 오겠습니다. 의원님은 전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령 귀로 유대명 지검장의 죄를 고하고, 행안위를 통해 채현우 총장의 잘못을 밝혀 공천권을 못 받게 해라?”
“네, 정확하십니다.”
“하하, 그런데 아무리 젊고 패기 있는 검사라지만 소속 지검의 검사장과 서울 지방경찰청 청장에 대한 혐의 자료를 모아 오실 수 있겠습니까?”
“네, 자신 있습니다.”
견제를 목적으로 할 테지만 운이 좋으면 두 사람을 끌어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자료가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언론이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수사는 불법 도박 사이트가 될 것입니다.”
“하긴 두 사람이 대비를 한다면 자료를 모을 기회조차 사라지겠죠.”
“아니요. 대비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요?”
“언론에 힘을 빌리려 합니다.”
비자금을 받은 국회의원들을 수사하다 보면 반드시 유대명과 채현우 총장의 이름이 적힌 문서들이 나올 거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을 목표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애초에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 자체가 적대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당연히 증거와 혐의가 남을 수밖에.
또 작은 혐의점이 나온다 해도 달궈진 언론에 오른다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제가 알기론 의원들을 수사하려면 상관의 결재가 떨어져야 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네. 그렇긴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겉모습은 도박 사이트 수사이며, 그 과정에서 확실한 혐의점이 나올 거라 생각됩니다.”
“혐의점이 나온 다음에 수사 결재를 받겠다는 겁니까?”
“아니요. 혐의점이 나온다면 의원님에게 넘길 겁니다.”
그렇게 박광식 의원에게 전달된 혐의점들은 민정수석과 대통령, 그리고 행안위를 통해 경찰청장에게 흘러들어 갈 것이다.
채현우의 공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가 되겠지.
“하하! 지금 6선 의원을 수사관으로 쓰겠다는 말씀입니까?”
넉넉한 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박광식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지금 내 행동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누가 제 수사망에 걸려들지는 모릅니다. 다만, 걸려든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어떠한 외압과 유혹 속에 서도요.”
“하하하하!”
박광식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긴 대화는 끝이 났다.
“그래요. 도와드리죠.”
그 말과 함께 박광식 의원의 명함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국회가 적혀 있지 않을 걸 보니 민원용 전화가 아니라 개인 휴대폰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든든한 우군이 생겼다.
검찰이 아닌, 대한민국을 움직일 만큼 강력한 권한이 있는 엄청난 우군이 말이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원님.”
“아! 내가 입구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요.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 * *
합수부 회의실.
넓은 테이블 한쪽에는 나와 서윤호, 그리고 맞은편에는 남영훈 대장과 정대필 수사관이 앉아 있다.
“도박 사이트 수사를 위한 합수부는 이제 없습니다.”
“네?!”
네 명의 사람들 중 놀라는 건 정대필 수사관 뿐이었다.
서윤호는 내가 뱉는 말 중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 반 이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남영훈은 알다시피…….
“물론 간판을 떼지는 않을 겁니다. 수사 방향만 바꿀 뿐이죠.”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갑니다, 검사님.”
“저희는 이제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잡기 위해 수사를 진행할 겁니다.”
틱.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누르자 회의실 스크린으로 하나의 문서가 나타난다.
남영훈의 비자금을 받은 야당 쪽 국회의원 리스트가.
“광수대가 파악한 리스트입니다. 물론 야당 쪽 의원들만 비자금을 받은 건 아닙니다.”
“여당 의원들도 비자금을 받았다는 말씀입니까?”
“네, 맞습니다. 다만 그 리스트가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그럼 누구한테 있다는 거죠?”
“이 일을 계획한 사람들에게 있겠죠.”
정확히 말하자면 성동일 서울 지방경찰청 차장에게 있다.
그 말뜻은 성동일 차장 역시 채현우 청장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현우가 정계로 떠나간 빈자리를 이어받기로 약속을 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저희는 이 리스트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네?!”
“잠시만요.”
왼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리모컨을 누르자 스크린이 아니라 벽면에 걸려 있는 TV의 전원이 켜진다.
— 최근 불법 도박 사이트에 대한 대규모 수사를 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 한치우 검사는 도박 사이트 대포 통장을 수사하던 중 정치권으로 비자금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원이 켜진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있었다.
— 흘러들어 간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고 밝혔으며 한치우 검사는 차후 수사를 통해…….
내가 만든 뉴스가 TV를 통해 전국민에게 방송되고 있다.
— 이상 차치홍 기자였습니다.
그리고 몇몇 국민들은 이 방송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질 것이다.
모든 언론이 자신들에게 칼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테니까.
“리스트는 공개하지 않을 테지만 언론을 달궈 저희가 앞으로 할 수사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겁니다.”
“검사님!”
“네, 수사관님.”
정대필 수사관이 볼펜을 들고 있던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리스트를 공개하면 수사가 더 쉬울 텐데 왜 공개하지 않으시는 거죠?”
“만약 야당 의원들만 적혀 있는 리스트를 공개한다면 언론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의 수사 범위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유대명과 채현우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야당 의원들 역시 잡아넣을 테지만, 여당 의원들 또한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사건의 시작과 끝은 바로 검사인 나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의 뿌리를 뽑겠다고 마음먹었다.
“자! 그렇게들 알아 두시고 이제부터 수사 지휘를 하겠습니다.”
“네!”
“정 대필 수사관님은 합수부 인원들과 함께 리스트에 적혀 있는 정치인들의 차명 계좌를 조사하시고, 어떤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얼마나 건넸는지를 파악해서 서류로 만들어 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고로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자신들에게 이득을 주는 누구에게나 비자금을 건넸을 겁니다. 그럼 리스트에 있는 의원들 차명 계좌를 조사하다 보면 여당 쪽 의원들의 흔적도 알 수 있겠죠?”
“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정대필 수사관이 나가고 서윤호와 남영훈은 내 말을 기다리는 듯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서 검사님은 잡혀 오는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판단하에 기소하시고 수사관들이 필요한 영장들을 청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한 검사님.”
서윤호가 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남영훈.
꼭두각시이자 내가 목줄을 쥐고 있는 사냥개인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을 시키려 한다.
“당신은 성동일 차장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리스트를 되찾아 오세요.”
“검사님, 그건…….”
물론 선택권은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리스트를 가져오든 아니면 광수대 식구들 전부 손잡고 감옥에 가시든.”
“하…….”
단순히 감옥만 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도박 사이트 수사에 있어 광수대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주도권은 완전히 검찰에게 넘어오고, 경찰은 언론에 뭇매를 맞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영훈에게 수사를 지시한 채현우 서울 지방경찰청장은 아마 공천권이 날아가겠지.
그리고 리스트를 가져온다고 해도 내가 말한 일은 벌어질 것이다.
“아마… 대장님이 잡아넣은 조폭들이 우글우글하겠죠?”
“가져와 보겠습니다…….”
사냥을 마친 사냥개는 버리면 그만이니까.
* * *
띵동—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
그럼에도 용산의 한 저택의 초인종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 누구세요.
“의원님 한치우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하지만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 들어와요.
단독주택이긴 하지만 텔레비전 속 국회의원이 사는 고급스러움은 없었다.
낡고 작으며, 마당은 있지만 고작 이불 정도를 널 수 있는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6선 의원과 재벌가 외동딸인 아내.
부창부수라 했던가.
부를 모르는 남편. 그는 30년 가까이 국회의원을 하면서 모은 재산이라고는 고작 용산의 주택 한 채와 10년이 넘은 세단 차량, 그리고 몇 천만 원인 예금뿐이었다.
또 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부인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매년 기부하고 있었다. 또한 남편의 정치 활동에 잡음이 생기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물려주신 회사를 본인이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
물론 본인에게 떨어진 엄청난 금액의 주식과 부동산들은 전부 사회에 환원했다.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낡고 좁은 주택이었지만 마음에서 느껴지는 크기는 그 어떤 호화 주택보다 넓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자 현관문을 열고 서 있는 박광식 의원이 보였다.
잠옷 차림의 박광식 의원에게 고개를 숙이며 전하는 인사.
이런 국회의원만 있다면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그에게 느끼는 내 존경심을 함께 담아서 건넨 인사였다.
“아니에요. 아직 초저녁인데요, 뭐. 그나저나 우리는 이미 저녁을 먹어서 밥이 없는데 저녁은 먹고 왔어요?”
“네, 먹고 왔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두 개의 종이가 들려 있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비자금을 받은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 리스트.
남영훈이 어떻게 자신의 상관에게서 리스트를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 다 죽어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리스트를 건넸다.
사실 리스트에 거짓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당 쪽이든 야당 쪽이든 이미 광수대에서 대대적인 첩보와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냥개가 건네준 리스트를 확인도 안 하고 터트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 눈이 충혈되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많은 검증을 했다.
나와 서윤호, 그리고 정대필 수사관은 며칠 밤을 새 가며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을 심문했다.
또 그들에게서 나온 차명 계좌들을 조사해 비자금이 흘러들어 간 곳을 샅샅이 찾아내 리스트의 검증을 끝냈다.
검증을 하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야당 쪽 리스트에 있던 인물들은 자신이 비자금을 받았는지조차 모르는 의원도 있다는 사실.
작전을 쓰려고 한 것인지 야당 의원 가족들이 잘 쓰지 않는 계좌에 무작정 돈을 송금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작전이라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조사를 조금 더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뭐가 됐든.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모든 검증이 끝낸 리스트 두 장.
나는 이제 이 리스트들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차명 계좌 목록과 돈이 오고간 흔적, 거기에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의 증언까지.
모든 증거들을 함께 말이다.
“집이 좀 누추하니까 이해 좀 해요.”
“아닙니다! 제가 방문한 어떤 집보다 편합니다.”
“하하하, 그동안 좋은 집을 안 다니셨나 보네.”
내가 한 말 뜻을 정확히 아는 듯 슬며시 웃으며 말하는 박광식 의원이었다.
오랜 정치 생활 동안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박광식 의원과 낡은 집.
화려한 집에 사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러 가지 않는 나.
우리 둘 사이의 짧은 대화 속에 담겨 있는 뜻이었다.
“그래도 우리 아내가 커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타니까 기다려 봐요.”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는 무슨. 좋은 일 하는 검사님인데 국민의 대표로서 이 정도도 못해 줄까.”
피식.
박광식 의원의 말에 주방에 있던 부인이 고개를 슬며시 돌려 입꼬리를 올린다.
“그나저나… 자녀분들은 안계신가 봐요?”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데 둘 다 대학생이라 기숙사 생활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커피가 오기 전.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담이 오고 갔다.
“자, 마셔 봐요.”
“고맙습니다, 사모님.”
“그럼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저는 들어가 있을게요.”
그렇게 얘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테이블 위로 커피가 놓여졌다. 이내 박광식 의원의 부인이 방으로 들어가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자 커피도 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들어 볼까요?”
“네!”
스윽.
긴 얘기를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했지만, 막상 무슨 말로 시작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탓에 잠시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는 말을 대신해 테이블 위로 리스트 두 장을 무작정 올려놓았다.
“검증을 확실히 끝낸 자료입니다.”
그래.
어쩌면 긴 말보다 이 리스트를 먼저 보여 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스트를 보고 있는 박광식 의원의 표정을 보니 내가 가진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휴… 이게 진짜라는 겁니까?”
“대가를 주고 비자금을 받은 자들이 대다수입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가족 명의의 통장으로 비자금이 들어온 헷갈리는 몇 명이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경우라도 일단 차명 계좌가 전부 파악돼 돈이 오고간 흔적 또한 확실합니다.”
“심지어 이 사람은…….”
“네. 청렴한 국회의원으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시죠.”
“같은 국회의원으로서 창피할 정도군요.”
“그리고 이건…….”
두 장의 리스트를 세상에 공개하기 위한 증거들.
두꺼운 서류 뭉치를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특수부에서 파악한 차명 계좌 목록과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의 자술서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리스트에 대한 증거 자료로는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이걸 저한테 주시는 이유가 뭐죠? 저는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도 기소권이 있는 검사도 아닙니다.”
“이걸 제가 의원님께 건네는 이유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의원님이 국민에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박광식 의원이 무소속 의원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가 정당에 속한 국회의원이라 하여도 이 리스트들을 빼돌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정당에 속해 있다면 국민들에게 오해를 살지도 모를 일이었다.
리스트가 여당 야당 구분 없이 되어 있다고는 해도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을 배신한다는 시선과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선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정치 집단 응집력이라면 잘못된 행동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여당 야당 합해서 열세 명의 국회의원들의 배지를 날려 버려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 엄청난 일을 저 혼자 감당하기엔 아직 부족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건 민정수석과 경찰청장의 귀를 여는 것 아니였습니까? 의원들을 수사함에 있어 유대명 지검장과 채현우 청장의 수사 방해를 막기 위해서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리스트를 검증하는 동안 유대명 지검장과 채현우 청장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인 두 사람이니 어설프게 일을 진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두 사람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비자금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오로지 적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특수부와 경찰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럼 두 사람을 옥죌 혐의가 없다는 것인데…….’
그렇게 오랜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린 것이 있었다.
바로 박광식 의원의 힘을 빌리자는 거.
“표적 수사를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꾸벅.
혐의를 확실히 찾아오겠다고 자신한 지난 말에 대한 사과를 하려 박광식 의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약 이 리스트들이 언론에 공개된다 하더라도 제가 수사를 이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유대명과 채현우 청장은 여론에 눈치를 보며 외부적으로는 아무런 손을 쓰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있나?
분명 나를 담당 검사에서 제외시킬 게 빤했다.
규모를 키워 경력 있는 부장검사들을 합수부에 투입시키지 못한다면 특검이나 새로운 수사단을 만들어서 사건을 빼앗아 갈 확률이 높았다.
왜?
자신들의 칼로 쓰려고 한 내가 모든 걸 알아 버렸고 미쳐 날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담당 검사로 바뀌어야 터져 버린 사건을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 쪽은 가볍게 야당 쪽은 무겁게 수사를 진행하면서 말이다.
아마 지금껏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조사한 모든 자료를 변질시키겠지.
“그래서 의원님이 필요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곧 있으면 행안위 국정감사가 있는 걸로 압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언론이 아닌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이 리스트들을 공개한다.
박광식 의원을 통해서 말이다.
“일단 표적 수사를 위한 리스트를 먼저 밝히시고, 채현우 청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 묻는 겁니다.”
“순순히 불지 않을 텐데요.”
“걱정 마세요. 증거… 아니, 증인이 함께 갈 테니까요.”
“증인이요?”
“네. 채현우 청장에게 표적 수사를 직접 지시 받은 남영훈 광역수사대 대장이 증인으로 나갈 겁니다.”
그럼 모든 혐의가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채현우 청장의 지시로 도박 사이트를 수사했고, 첩보 과정에서 들어온 비자금을 받은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 리스트가 들어왔다는 걸 말이다.
거기에 여당 쪽 의원들 리스트는 빼돌려 성동일 차장에게 건넸다는 사실, 또 야당 쪽 의원들 리스트는 특수부 검사인 나를 이용해 표적 수사를 하려 했다는 사실 역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역시 증인으로 나갈 생각입니다. 특수부에서는 유대명 검사장이 광역수사대가 말한 사건을 맡으라고 지시한 사실을 증언하러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세상에 밝혀질 겁니다. 두 사람이 같은 지역 출신에 같은 대학 동문이라는 사실, 그리고 꽤 자주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까지요.”
“그럼 법사위와 국정감사 일정을 조율해 봐야겠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님.”
“좋아요. 한 번 해 볼게요. 그건 그렇고 소속 검사장을 평검사가 대 놓고 까내리겠다는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이미 또라이라고 소문이 나 있어서요.”
“하하하하!”
만약 내 시나리오가 현실로 일어난다고 해도 두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을 일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시 되고 있는 유대명의 꼬리표가 사라지며,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채현우 청장의 계획 역시 무산될 것이다.
“만약 치우 씨가 나와서 증언을 한다면 담당 검사 역시 쉽게 바꾸지 못하겠네요. 여론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나를 수사에서 제외시키라 명령을 한 사람은 여론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늦은 시간에 죄송했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왕 오신 김에 야식이나 들고 가시지.”
“아닙니다. 해야 될 일이 있어서요. 사건 다 끝나면 그때 제가 근사한 야식을 대접하겠습니다, 의원님.
“하하, 그래요.”
꾸벅.
“그럼 국정감사 때 뵙겠습니다.”
공손한 인사와 함께 박광식 의원의 집에서 나왔다.
부르르릉.
그리고 걸리는 차량의 시동.
이제 나는 길고 긴 사건의 피날레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려고 한다.
“미쳐 날뛰러 가 볼까나!”
* * *
대한민국 헌법 제61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매년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국회의사당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바로 국정감사 기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훗날 한 개의 상임위가 추가되겠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16개의 상임위가 600개 이상의 피감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600명이 아니라 600개의 기관.
피감기관에 대한 자료 요구와 증인 출석 요구.
한 명의 국회의원을 아홉 명이 보좌한다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손발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국정감사 일정이 발표되면 고위 공무원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찾아가 온갖 아부를 떨고, 공무원들은 국회에서 요구하는 자료들을 만들고 제출하느라 한동안 집에 가지 못할 때도 있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은 이 기간만 되면 실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사실 국정감사의 고유 목적은 정부를 감시하고 잘못된 운영을 비판하는 제도이다.
하나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국정감사는 본래 목적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정감사 기간만 되면 서울의 고급 술집들은 예약으로 꽉 차 있고, 또 술집 밖에 주차되어 있는 의원들의 차량 트렁크는 무거워질 테니 말이다.
물론 의원들이 피감기관의 관련자들을 재판에 세울 권한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권한을 갖고 있다.
감사 대상 기관의 자료 제출권과 증인 출석 요구권.
어떤 국가기관이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국회의원이 요구한 자료를 반드시 제출하여야 하며 증인 출석 요구 역시 응해야 한다.
출석과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
아마 상상도 못할 대가가 따를 것이다.
엄청난 금액의 벌금과 함께 해당 의원이 국민의 대표를 무시한다며 발언하는 순간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테니까.
영장이 없다면 필요 자료를 못 보는 검사와 달리 요구만 하면 국가기관의 어떤 자료라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국정감사 기간만 되면 행정기관들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모든 행정기관에는 의원실에서 보낸 자료 제출 요구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말이다.
국회법 제128조.
국정감사를 위한 서류 등의 제출을 정부나 행정기관에 요구하는 경우, 상임위나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하나 실질적으로는 이 국회법이 지켜지지 않는다.
상임위가 여당과 야당이 섞여 있어 한 가지 의견으로 통일을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 한 명의 국회의원 이름으로 자료 제출 요구서가 전달되는 게 대부분이다.
국회의원이 법을 어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법의 위에 있는 헌법에서 명시한 걸 보면 알 수 있듯 국회는 국정감사에 필요한 자료와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고 헌법 61조에 적혀 있단 말이다.
법은 넓게 해석될 수도 좁게 해석될 수도 있기에 국회의원들은 헌법을 근거로 국정감사 기간에 폭탄적인 자료 요구를 하는 것이다.
또 국정감사를 보다 보면 국가기관도 아닌 기업의 회장이나 대표들이 불려와 국회의원의 호통을 듣는 모습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회의원이 원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도 국감장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국회의원의 권한이 센 것이다.
일단 털고 보자는 식으로 아무 말이나 해대도 결국 해명을 해야 되는 건 증인이지 국회의원이 아니니까 말이다.
왜?
면책특권이 있으니까!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한 발언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특권이.
즉, 국정감사장 안에서 만큼은 대한민국의 어떠한 사람이라도 국회의원의 물음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
꽤 무거운 처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찌 되었건.
나는 지금 그런 국정감사장으로 향하려 한다.
“잘 들어요, 남영훈 씨.”
“네…….”
“국정감사장에 가서 박광식 의원님의 질의에 사실만 대답하시면 됩니다.”
내가 만든 꼭두각시와 함께 말이다.
“검사님, 제가 청장님에게 위협이 되는 발언을 하면 제 남은 경찰 생활은…….”
“그런 짓을 하고도 경찰을 계속하려고 했어요?”
빨간불에 멈춘 차.
손은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시선은 남영훈에게로 돌려 말했다.
“그리고 걱정 마세요. 이번 사건이 끝나면 채현우 청장은 경찰도, 그렇다고 당신의 상관도 아니게 될 테니까요.”
“아… 네.”
물론 당신도 감옥에 가겠지.
이번 사건이 끝나고, 당신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면 말이야.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이이제이.
오랑캐를 오랑캐로 잡는다.
나는 지금 남영훈을 이용해 채현우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채현우를 잡고 나면 필요 없어진 남영훈이라는 오랑캐는 가차 없이 버릴 생각이고.
“검사님, 그런데 언론에 리스트를 발표하고 국정감사장에 자료를 제출하셨으면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걱정이 많으시네요. 검사는 접니다. 제가 형사님보다 법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피의사실공표죄.
검찰과 경찰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하기 전에 공표하는 죄이다.
“저는 피의사실을 공표한 게 아니고 박광식 의원님의 요구로 자료를 제출한 것뿐입니다.”
사실상 몇 백 건의 신고 중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지만 유대명과 채현우 쪽에서 물고 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박광식이라는 국민의 대표가 공익을 위해 여론에 발표한다는 명분을 이길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내릴 준비하시죠.”
불편한 공기로 가득한 차는 어느새 국회 정문에 다다랐다.
“국정감사 증인 출석하러 왔습니다.”
“네, 들어가시죠.”
수많은 기자들과 피감기관의 공무원들로 가득 찬 국회.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어깨를 좁히면서 다녀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 안 모든 사람들은 국정감사가 열리는 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세상을 들썩이게 할 테니까.
“한 검사님,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의원님.”
“그나저나 옆에 분은 누구십니까?”
“아, 이 사람이 제가 말한 증인입니다.”
“아∼ 그 광수대 대장이신분?”
“네, 맞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국정감사장으로 들어가자 채현우 청장을 비롯한 다른 경찰청장 등 경찰의 고위 관계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국정감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행안위에 속해 있는 모든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 이미 경찰청에서 업무 현황과 실태에 대해 보고를 받은 상태이고, 국정감사에서의 질의를 위한 대본을 미리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국정감사가 진행되니까.
그리고 그 준비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채현우 청장과 다른 경찰청장들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박광식 의원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부터 행안위 국정감사를 시작하겠습니다.”
* * *
길고 긴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
내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빈틈없이 매우고 있었다.
국정감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지금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였다.
“박광식 의원님의 말이 사실인가요?!”
“채현우 총장과 유대명 중앙 지검장이 서로 짜고 야당 의원들을 표적 수사했다는 증언을 입증할 수 있는 겁니까?!”
“리스트 속 의원들은 어떻게 수사할 예정이십니까?!”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침묵을 유지한 채 옅은 미소만을 보였다.
아직은 입을 열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으니까 말이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리스트 속 의원님들을 소환 조사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브리핑은 사건이 끝나고 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진행하겠습니다.”
“진행 상황에 대해서 한 말씀만 해 주시죠, 검사님!”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박광식 의원님이 밝힌 리스트는 단순히 누군가를 음해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계좌 조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채현우 청장님과 유대명 지검장님이 한쪽 진영에 대한 표적 수사를 검찰과 경찰에 지시한 것은 맞으며, 리스트가 거짓은 아닙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차에 올라타자 수많은 기자들이 내 차를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검사님! 조금만 더 얘기해 주시죠.”
“휴…….”
국회 경찰들의 안내로 간신히 국회를 빠져나왔고, 더 이상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르지 않았다.
내 옆에는 남영훈 대장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미 짜여 있는 대본이었기에 남영훈은 국감장에서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박광식 의원의 질의에 순순히 답했다.
그리고 박광식 의원의 질의가 끝나는 순간.
리스트에 적혀 있는 행안위 의원 한 명과 채현우 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지르며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이내 박광식 의원의 침착함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지검으로 돌아가면 뺨이라도 한 대 맞는 거 아닌가 몰라…….”
유대명 지검장은 자리에 없었지만 감사에서 이름이 거론되었다.
박광식 의원은 개인적인 조사를 진행했는지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과 문자 내용 등을 스크린에 띄워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 화면을 본 채현우 청장은 너무나도 완벽한 증거에 아무런 말없이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번 사건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준비를 말이다.
유대명 지검장의 차기 검찰총장 행보를 막고, 채현우 청장의 국회의원 출마 또한 무산시킨다.
또 열세 명의 국회의원들을 조사해 감옥에 보낼 것이며 남영훈 대장 역시 차가운 교도소로 향하게 될 터였다.
마지막으로 불법 도박 사이트의 완벽한 소탕을 끝으로 이번 사건은 마무리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올림픽대로를 지나 도착한 중앙 지검.
입구에는 역시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어떻게 나보다 빨리 왔지?’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몰려 있는 기자들을 뚫고 어떻게 지검 안으로 들어가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소속 지검의 검사장을 국정감사에서 고발한 내가 어떤 꼴을 당할 것인가가 문제지…….
“저, 검사님… 부장님이 들어오면 바로 자기 방으로 오시라고…….”
“네, 알겠습니다.”
역시나 검사실 문을 열자마자 나를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정대필 수사관이었다.
똑똑.
“한치우입니다.”
— 들어와!
벽에 걸린 TV에는 국회방송이 송출되고 있었고, 박현주 부장검사실 안에는 매캐한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한 프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사실을 고한 것뿐입니다.”
“내가 도박 사이트 수사하라고 그랬지 청장님이랑 검사장님을 수사하라 그랬나?!”
“도박 사이트 수사 과정에서 두 분의 표적 수사 지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는 사실대로 발표한 것뿐입니다.”
박현주 부장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그 걱정에 대한 분풀이를 나에게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약속을 받았다.
“그때 저랑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부장님.”
“무슨 소리야?”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하던 박현주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썹을 찡긋거린다.
생각난 것이다.
처음 광수대 미팅이 끝나고 박현주 부장실을 찾았을 때 나랑 한 약속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혐의만 있다면 수사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요.”
* * *
박현주 부장은 내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멈추지 않을 거란 것과 자신이 한 약속을 말이다. 그렇게 더는 말이 없는 박현주 부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이번엔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곳으로.
똑똑똑.
“들어와.”
방문을 열고 들어가 유대명 검사장과 마주 앉았다.
“그래. 네가 비범한 놈인 줄은 알았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표적 수사를 했다고 그런 건가?”
나는 알고 있다.
유대명이 나를 죽이려 했단 걸.
하나,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유대명 지검장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이자 같은 지검의 검사장한테 말이다.
이미 일은 저질러 버렸다.
국정감사장에서 중앙 지검 검사가 중앙 지검장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으니까.
다만, 표적 수사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유대명을 완전히 끌어내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된다.
지금 이 대화에서 꽤 많은 것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이 사건을 제가 맡길 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감정적으로 다가가지는 말자.
당신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패를 까지도 말자.
“광수대에서 돌아와 박 부장님에게 사건을 배당받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영훈이 적어 준 리스트에는 왜 야당 의원만이 적혀 있을까 하는 생각을요.”
“광수대가 파악한 게 그것뿐이거나 혹은 채현우 청장의 지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나?”
“채현우 청장님과 지검장님은 꽤 각별한 사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추측으로 나를 모함했다?”
“단순히 추측만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럼?”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두 분의 문자 내용이 추측이 아니라 확신을 가져다준다는 걸요.”
국회에서 박광식이 공개한 문자 내용은 대충 이랬다.
채현우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이 리스트에 관한 얘기를 하며 수사 담당검사를 지정하고, 또 수사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묻거나 대답하는 내용.
그런 내용이 박광식 의원의 침착하면서도 차분한 말투와 섞이니 국감장에 있던 채현우 청장은 말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뜨겁게 달구어진 채 야당은 모두가 힘을 합쳐 채현우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을 까 내렸다.
물론 리스트에 적혀 있는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야당과 여당의 당 윤리위원회들은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윤리위원회 회의 일정을 잡았으니까.
회의에 사안은 리스트에 적혀 있는 의원들의 재명 여부였다.
비자금을 받은 의원들이 자신의 당에 속해 있다면 당 전체 이미지와 지지율이 떨어지기에 재빠른 결정을 한 것이다.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 겉으로 깨끗해 보이니까 말이다.
속은 여전히 썩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 그대로 국정감사는 신의 한 수였다.
서글서글한 줄 알았던 박광식 의원은 국감장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고위 공무원들을 휘어잡았고, 그가 채현우에게 한 질의 내용은 너무도 훌륭했다.
단 한마디의 반박도 못할 만큼.
또 수사 역시 편해질 것이다.
헌법 제44조.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에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구금되어 있는 경우 현행범이 아니라면 국회에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한다.
흔히 말하는 방탄 국회에 관련한 법 조항이다.
이른바 불체포특권.
국회의원이 명백한 살인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현행범이 아니면 회기 중에는 국회에 동의 없이 절대로 체포를 하지 못한다는 엄청난 특권이다.
하지만 리스트 속 인물들은 그 특권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들을 보호해 줄 당은 없어질 것이며, 비자금이란 단어가 붙는 순간 정치 인생은 끝났다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국회는 회기 중이다. 그러니 리스트 속 인물들은 현행범이 아니기에 체포를 하려면 당연히 국회에 동의가 필요하다.
물론 형식상으로 진행될 테지만.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다?
아마 재선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지지율이 떨어지겠지.
“참, 대담한 거 하나는 알아줘야겠구나. 일개 평검사가 감히 지검장을 까? 그것도 소속 지검장을?!”
“검사동일체의 원칙…….”
“어이! 내가 그걸 몰라?”
검사동일체의 원칙.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창과 검사로 나뉜다.
즉 대한민국 2,000명의 검사는 검찰총장이라는 CPU가 내리는 명령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런 얘기를 하려 했지만, 유대명은 내 말을 끊었다.
“자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지는 알기나 해?”
“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검사 신분인 제게 내려진 수사 명령이 표적 수사인 걸 확신하기에 말한 것뿐입니다.”
“올곧은 건지 꽉 막힌 건지 모르겠네.”
원래라면 나 하나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유대명이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제1야당과 비교섭단체 야당을 포함 160명의 국회의원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유대명이 나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한다면 여론과 여론의 지지율로 자리를 보전하는 국회의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의 당 의석수를 열세 개나 날려 먹은 검사라 하여도 울며 겨자 먹기로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사 계속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자네도 그걸 원하고 그런 짓을 한 거 아닌가.”
“그럼 끝까지 제가 진행해도 되는 걸로 알고 나가 보겠습니다.”
쾅!
내가 닫은 문 소리가 아니었다.
슬며시 닫히는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소리였지.
하긴.
유대명 지검장의 저런 행동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일개 평검사가 한 짓이 너무도 괘씸하고 화가 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차기 검찰총장이자 서울 중앙 지검장인 유대명.
엄청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권력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다.
“끝까지 가 보자고 당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이미 승부는 내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지만.
* * *
짝!
유대명 지검장의 손이 채현우 청장 뺨으로 향했다.
“씨발, 너 뭐하는 새끼야?”
“우리 친구잖아, 대명아…….”
“나는 너 같이 모자란 놈 친구로 둔 적 없어.”
치우의 수사는 거침없었고 두 사람은 막을 수 없었다.
채현우는 이미 힘이 빠진 상태였고, 유대명은 아무런 대책도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홉 명의 의원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치우의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아무리 특수부지만 일개 평검사가 혐의가 없는 두 명을 제외한 남은 일곱 명의 국회의원을 동시에 기소하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끝까지 출석을 거부한 네 명의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체포 영장을 청구했고, 당연히 여론을 의식한 법원은 체포영장 발부가 필요하다 판단했다.
법원에서 정부로 보낸 체포 동의 요구서는 정부를 거쳐 국회의장에게 전달될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불법 도박 사이트 사건은 완벽한 준비를 통해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뜻이다.
한치우라는 한 명의 검사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채현우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이 맞게 될 여파이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면…….”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고 병신처럼 굴래?”
“미안하다…….”
“국회의원 일곱 명을 기소하고 네 명을 체포한 놈이야. 그리고 소속 지검장을 국감장에서 까 내린 놈이고.”
국민들이 열광하기에 얼마나 좋은 상황인가.
꽉 막힌 목을 한치우라는 사이다가 뚫어 줬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치우를 국회로 보내자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여당과 야당 가리지 않고 치우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고.
그야말로 현 시점에서는 치우는 아무도 건들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한치우가 손짓만 해도 다 잡혀갈 판인데 아직도 공천권을 생각하고 있어?”
“그럼…….”
“조용히 사표 쓰고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
“대명아!”
“괜히 설치다가 시골도 못 가고 한치우한테 찍혀서 징역살이 하지 말고.”
“…….”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유대명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숙이는 채현우였다.
“잘 들어. 친구로서 노파심에 하는 얘기이니까.”
그런 채현우를 바라보며 말하는 유대명.
“지금 한치우는 언터쳐블이야. 내 모가지 감싸는 것도 벅찬데 자네 모가지까지 감싸 줄 수 없다는 걸 알아 둬. 그러니 욕심 버리고 흔적 안 남게 정리해서 시골로 내려가. 괜히 똥물 튀겨서 이곳저곳에 피해 주지 말고.”
스윽.
슬며시 고개를 드는 채현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놈 여기서 안 끝내. 내 모가지에 목줄을 채우거나, 내 모가지가 잘리기 전까지는.”
“아무리 그래도… 일개 평검사가 자네 목에 어떻게 목줄을 채울 수 있겠어.”
“검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노는 놈이 아니야.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놀고 있단 말일세.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미쳐 날뛰고 있는 한치우를 막을 수 있는 놈은 없어.”
유대명은 힌치우와에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다고 백기를 들거나 패배 선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걸음 앞서가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난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일단 시골 가서 농사짓고 있어. 잠잠해지면 다시 부를 테니까.”
“알았어…….”
“이만 돌아가. 지금 자네랑 술잔 기울일 기분이 아니니까.”
유대명의 말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채현우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경찰 정복을 입는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으로 정복을 입는 날일지도 모르지만.
드르륵.
“수석님?”
“내가 조금 일찍 왔나 보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밖으로 나가려 미닫이문을 연 채현우 청장과 반대편에서 역시 문을 연 정무수석.
오고 가는 두 사람의 눈빛이 그리 살갑지는 않았다.
“나가는 길 같은데 얼른 나가시죠.”
“수석님…….”
“애처럼 징징대지 말고. 당신 어른이고 서울 지방경찰청의 수장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죠?”
꾸벅.
“가 보겠습니다.”
정무수석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나가는 채현우.
“휴… 덜떨어진 새끼.”
그런 그에 뒷모습에 욕을 퍼붓는 정무수석이었다.
마치 채현우 청장의 귀에 들리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실망이 큽니다, 유 지검장님.”
“죄송합니다, 수석님…….”
“VIP께서도 이번 사건 때문에 고민이 많으십니다. 당신을 어떻게 할지.”
“애걸복걸할 생각 없습니다. 잠시 물러나 있겠습니다.”
“휴… 그래요. 법무부 쪽에 당신 유배지 알아볼 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쪼르륵.
두 사람이 실패의 잔을 채우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치우에게 있어서는 아직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올해의 검사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수상자는 서울 중앙 지검…….”
패자는 실패의 잔을 채우지만 승자는 전리품을 챙겨야 하니 말이다.
* * *
다사다난한 2011년의 마지막 밤.
그동안 나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대명 지검장… 아니, 이제 유대명 뒤에는 지검장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법무 연수원장으로 좌천성 영전을 하게 되어있으니까.
그리고 비어 버린 중앙 지검장 자리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3차장이 앉게 되었다.
또 3차장이 지검장이 되고 비어 버린 3차장 자리는 박현주 부장이 차지함으로서 중앙 지검 내 소규모 인사이동은 끝이 났다.
사실 자리가 바뀐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지만, 소규모라 말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가장 높은 자리가 갑작스레 바뀐 것이니까.
그것도 일개 평검사로 인해서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특수부를 총괄하는 3차장 자리에 박현주 부장이 앉게 됐다는 것이다.
공명심이 높고 능력 있는 검사한테는 어울리는 자리일 테니.
가장 중요한 건 차기 중앙 지검장 자리에 누가 오느냐다.
임시로 앉아 있는 3차장은 곧 검사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재벌 회장인 장인이 돌아가셨고, 새롭게 회장으로 취임한 자신의 부인을 보좌해야 되기 때문이다.
중앙 지검장의 아내가 재벌 회장이다?
파란 집에 계신 임명권자는 3차장이 임시로 앉아 있는 것도 불안해하고 있겠지.
뭐… 누가 오던 내가 막을수도 없으니 일단은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짜 큰 인사이동은 바로 차기 검찰총장의 인사였다.
한 달도 남지 않은 강철호의 임기.
언론에서는 가장 아름답게 퇴임하는 검찰총장이라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2년이라는 임기를 다 채우고 퇴임하는 얼마 안 되는 검찰총장이었으니까.
거기에 2년간 역대 가장 높은 기소율과 청렴도로 여론의 찬사를 받고 있기까지 했다.
그런 엄청난 업적에도 VIP는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이천 검사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그렇기에 검사동일체라는 법칙을 가장 뜻 깊게 이용할 수 있었던 강철호.
그가 떠난 빈자리를 누구로 채워야 될지 걱정이 될 터.
마땅한 인물이 없을까 수도 없이 생각을 해 보겠지만, 쉽사리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올해의 검사상]
그리고 퇴임 전 강철호 총장의 마지막 행사는 나와 함께였다.
“서울 중앙 지검 특수 1부 한치우 검사를 올해의 검사로 선정하며…….”
2010년 대검찰청이 만든 올해의 검사상.
영광스럽게도 나는 그 상을 두 번째로 받는 검사가 되었다.
“하…….”
“뭐야, 형 울어?”
물론 혼자는 아니다.
수상을 위해 강철호 앞에 서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서윤호도 함께였다.
“위 한치우 검사는 KH 그룹의…….”
강철호 총장은 내가 해결한 사건들을 읽어 내려갔고, 작년에 상을 받은 검사들은 단상에 앉은 채 나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보냈다.
“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하였고, 단순히 기소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피해 복구까지 신경 쓴 점…….”
특수부로 발령받고 정식적인 내 첫 사건.
KH 그룹 사건이었다.
우대현 회장은 감옥에 가게 되었고 가맹점주들은 웃음을 되찾았다.
폭행을 당한 기사들은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 사업을 하거나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빚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자신의 몸을 누군가의 샌드백으로 팔지 않아도 됐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KH 그룹 사건을 해결하며 가장 좋은 걸 얻었다.
내게 너무도 큰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도 될 두 명의 인연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민호 기자와 엄치용 재무팀장.
차치홍 기자와 더불어 내 검사 생활에 있어 언론플레이를 도와줄 나민호 기자.
SY에서 너무도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는 엄치용 재무팀장, 이 두 사람 말이다.
“또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완벽히 수사해 소탕하였으며…….”
어쩌면 내가 올해의 검사상을 받을 수 있던 가장 큰 사건.
바로 불법 도박 사이트 사건이었다.
그물식 수사를 통행 큰 줄기들을 잡아들이면서 수많은 도박 사이트를 폐쇄하고 운영자들을 검거했다.
총 기소 금액만 20조가 넘었으니 말 다했다.
“고위 공무원들과 국회의원에 비리를 밝혀냈으며…….”
하나 도박 사이트 사건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남영훈 광수대 대장의 뇌물 수수, 채현우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의 표적 수사, 거기에 엄청난 금액의 비자금을 받은 국회의원들까지.
어찌 보면 도박 사이트 사건 안에 속해 있던 다른 사건들이 더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공명심 높은 검사로서 사회의 거악들을 척결했습니다.”
사건이 끝날 때쯤 서윤호는 남영훈 대장의 모든 혐의를 기소했고, 결국 중형이 떨어졌다.
채현우 청장은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으며 직권남용죄로 기소당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유대명은…….
검찰총장으로 영전하지는 못했지만, 법무 연수원장으로 좌천됨으로서 그가 행한 표적 수사라는 죄를 대신 물은 것 같았다.
물론 언젠간 뿌리를 뽑아야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언론이 잠잠해지면 언제든 다시 검찰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 상장과 감사패를 수여합니다. 검찰총장 강철호!”
리스트 속 열세 명의 국회의원들 중 무혐의로 풀려난 두 명의 국회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판을 받고 있다. 그중 몇 명은 구속되었고, 몇 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아마 몇 달 뒤 재보궐선거에서 꽤 많은 후보들이 필요할 터이다.
짝짝짝.
나와 서윤호가 상장과 감사패를 수여받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모두가 우리를 축하해 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개 평검사로 인하여 중앙 지검장이 좌천됐고 조직과 서열 문화가 강한 검찰에서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니까.
특히 유대명 라인이라 불리는 검사들이 보내는 레이저 같은 눈빛은 나를 뚫어 버릴 것 같았다.
하긴.
유대명이 검찰총장이 될 것을 확신하고 온갖 아부와 접대를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능력보다는 유대명을 따르는 일이 승진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검사들. 그들은 만약 제2의 강철호 같은 검찰총장이 새롭게 임명된다면 옷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우선… 올해의 검사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 손에는 트로피, 다른 한 손에는 상장을 든 채 조심히 입을 열었다.
객석에는 검사장급 고위 간부들과 수도권 내 검사들이 앉아 있었다.
물론 화려한 객석인원들 앞에서 상을 받는다고 특별한 보상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해결한 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고 앞으로 내가 할 수사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제가 지금껏 해결한 사건들은 저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를 열심히 보좌해 주신 정대필 수사관님과 한미래 실무관님.”
객석 내 오른쪽 구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또 합수부에서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 주신 서윤호 검사님.”
옆에 서 있던 서윤호에게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빛을 보냈고.
“그리고 제게 좋은 사건을 배당해 주시고 인력을 지원해 주신 박현주 부장님과 강철호 총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박현주 부장과 강철호 총장에게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가 검사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사는 이 세상이 아직 깨끗하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내 목표는 세상을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들이다.
거악을 상대하고 무찔러야 세상이 깨끗해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특수부 검사로서 최선을 다해 거악을 처단할 것이며 세상이 깨끗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제 겨우 한 걸음.
이제 겨우 일부분이 깨끗해진 것일 뿐.
내가 가야 할 길과 청소해야 될 거악들은 수도 없이 많고, 또 수도 없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며 제가 그런 거악을 쓰러트릴 기소권이라는 검을 쥐어 준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 제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수상 소감은 계속 되어 갔다. 자리에 앉아 있는 많은 검사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들을 보인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속마음까지 파악이 되었다.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흐뭇해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겨운지 귀를 후비고 있는 사람들.
물론 단순히 그걸 보고 나쁘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존경스러운 선배님들 앞에서 다짐하겠습니다. 저는 옷을 벗는 그날까지 법복에 때를 묻히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이미 때를 묻힌 사람들도 혹은 아닌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긴 수상 소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마이크를 서윤호 검사에게 넘기겠습니다.”
스윽.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나오자 서윤호가 벌벌 떨며 마이크 앞으로 다가간다.
‘휴… 또 아무 말도 못하고 떨고만 있겠군.’
역시나.
품속에서 열심히 준비해 온 대본을 꺼내 놓았지만 서윤호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일단…….”
톡톡.
떨고 있는 그의 어깨를 친다.
“형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검사야. 떨지 마 내가 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귓속말을 건넸다.
“존경하는 검사님들 안녕하십니까. 중앙 지검 특수 1부 서윤호 검사입니다.”
그러자 서윤호의 떨림은 거짓말같이 줄어들었다. 그는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하더니 조금은 안정된 톤으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지났나?
예열을 끝마쳤는지 세 번째 종이를 넘기며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후… 언제까지 말 하려고…….”
한숨이 나오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만, 객석에서 나온 한숨보다는 내 한숨이 더 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끝나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웬만한 사건 서류보다 두꺼운 수상 소감 대본이 보이는 나였으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길고 긴 수상 소감이 끝나고 행사 역시 끝이 났다.
2011년의 마지막 밤.
모든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조폭들과 어울려 탁한 공기가 가득한 룸살롱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한치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괜히 마음 한구석에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고생했다, 치우야.”
“아닙니다, 총장님.”
“서윤호 자네도 고생했고.”
“감사합니다, 총장님!”
행사가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 강철호 총장이 나와 서윤호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총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사실 진짜 고생했다는 인사를 받아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강철호 총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 해를 마무리한 것일 뿐이지만, 그는 몇 십 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자리였으니까 말이다.
“다른 분들도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총장님.”
“알았네. 나중에 연락하게.”
우리에 뒤에 서 있는 수많은 검사들.
얼마 남지 않은 강철호 총장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형.”
“그래.”
2011년의 마지막 밤.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기로 했다.
“짠!”
이렇게 서윤호와 달콤한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한다.
악은 달콤한 술잔을, 선은 쓴 술잔을 들이키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말이다.
2012년.
모두가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고 있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하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 2012년이 아닌, 사람들의 기대가 가득한 2012년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사건이 지워진 2012년을 말이다.
“파이팅 한 번 할까?”
“파이팅은 무슨.”
서윤호의 제안에 뾰로통하게 답했지만, 그가 건넨 손 위로 내 손을 포갰다.
“하하, 미친놈.”
“사실 나도 하고 싶었어.”
검사 한치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기대하시라.
“파이팅!”
깡으로 싸우는 검사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