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18/35)

제3장

시장 규모 40조 원짜리 범죄.

거기에 정치인들까지 연루된 사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막막했다.

똑똑.

“…검사님?”

“잠시만요.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아∼ 그럼 커피라도 한 잔 갖다 드릴까요?”

“네, 좋죠.”

책상이 아니라 조사실 안.

혼자 앉아 있던 내가 이상한지 정대필 수사관이 조사실 문을 열고 넌지시 물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사실 안.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본다.

“바지 사장이 아니라. 진짜 대표를 잡아야 할 텐데.”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넨 진짜 대표를 말이다.

또한 경찰과의 공조 과정에서 서류를 흘려보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검사는 단독 관청이지만 남영훈은 단독 관청이 아니니까.

즉, 남영훈이 보는 서류는 채 청장이 언제든지 열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가지고 있는 첩보 자료의 수준부터 맞춰 볼까?”

그래야 남영훈 대장을 구워삶든 공조를 하든 동등한 위치에서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의 상태라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수사권이 있는 검사라 하여도 말이다.

쾅.

“자! 시작해 봅시다.”

“저희는 뭐부터 할까요? 검사님.”

큰 줄기는 내가 잡아야 한다.

수사관이 발로 뛰며 모아 온 자료들을 책상에 앉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자료들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

정대필 수사관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는 분명 한계점이 있을 테니까.

내가 큰 틀을 잡아 놔야 정대필 수사관 역시 휘둘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알다시피 특수부는 인지 수사가 대부분이다. 지금 사건 또한 경찰에서 올라오긴 했지만 인지 수사에 가깝다.

“일단 수사 지원 좀 해 주세요.”

“무슨 지원이요?”

즉, 사건 자료를 파헤치는 게 아니라 사건 자료 자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지검 안에서 대기해 주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검사님은요?”

“저는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아차.

재킷을 걸치고 검사실을 나서려는 순간.

말밑에 걸리는 무언 가를 보고 멈추었다.

[서울 지방경찰청 광수대]

남영훈 대장이 보내온 자료들.

중앙 지검이 아니라 내 이름이 적혀 있어서인지 실무관은 박스를 개봉하지 않은 듯했다.

“이거 좀 정리해 주세요.”

“아∼ 광수대에서 보내온 수사 자료예요?”

“네, 맞습니다.”

큰 의미가 없을 걸 알지만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광수대가 파악한 사이트 목록이랑 충전과 환전에 이용된 통장 목록일 겁니다. 아마 규모가 큰 사이트들만 집중적으로 조사했겠죠.”

“네. 정리해 놓겠습니다.”

“또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들 목록이 있을 겁니다. 첩보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근거를 찾아보세요. 자금이 흘러들어간 경로라던가.”

“네!”

채현호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

두 사람이 노리는 타깃들이 적혀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노린다고 해서 수사를 하지 않을 건 아니다.

뭐가 됐든 혐의가 나온다면 부패한 정치인인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영장 받아서 계좌 추적 확실히 하시고. 적혀 있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 차명 계좌까지 파악해서 정리해 보세요. 사소한 혐의라도 나오면 바로 알려 주시구요.”

“휴… 차라리 현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검사님.”

“하하하하!”

한숨을 쉬며 말하는 정대필 수사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알고 있다.

오랜 현장 경험에 사무실에서 서류를 만지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걸.

사실 내가 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사실까지.

하나 지금 내 몸은 두 개가 아니다.

“다녀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한다.

“아… 그리고 차량 요청 하나만 해 주세요.”

“검사님 차 있지 않으세요?”

“그건 차가 아니라 고물입니다. 제 것도 아니고요.”

육기통이라며 떵떵 거리던 서윤호는 폐차비가 아까운지 나에게 차를 버리다시피 주었고, 어쩔 수 없이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지검 주차장에서 비를 맞으며 녹슬어 가고 있었다.

“하여튼 입만 살아가지고.”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 아닙니다. 그런 동기가 한 명 있어서요.”

“서 검사님이요?”

아차.

깜빡했다.

중앙 지검 안에 내 동기라고는 서윤호밖에 없다는 걸.

“하하… 능력은 있지만 어디 내놓기 창피한 동기죠…….”

* * *

끼익―

“워, 이거 뭐야!”

2,000㏄짜리 중형차가 최고급 스포츠카처럼 느껴졌다.

부우우우웅.

서윤호의 차를 타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인지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았기 때문이다.

“살살 밟아야겠네.”

몇 번이나 사고가 날 뻔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이게 자동차구나…….”

그리고 적응해 갈수록 깨달았다.

내가 지금껏 탄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장난감이었다는 걸 말이다.

“오랜만에 보겠네.”

뭐가 됐든 나는 지금 복잡한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도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계.

그런 곳을 속 시원하게 알려줄 한 사람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온 사람.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된 사람.

민태호.

과거를 청산한다고 기억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민태호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조직폭력배들은 아직까지 벌벌 떨 정도였다.

워낙 대단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웬만한 소규모 조직은 말 한마디로 와해될 만큼 민태호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그가 회사의 대표가 된다는 소문이 돌자 꽤 많은 조직폭력배들이 SY를 찾았다고 한다.

민태호는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운동을 한 사람은 보안과 경호 인력으로.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은 잘 가리켜 회사 업무를 맡겼다.

물론 아무나 받아 주지는 않았다.

강서빈 이사 허락하에 직원을 채용했고, 조금이라도 과거가 보인다면 가차 없이 내쳤으니까.

민태호가, 아니, 내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꽤 많은 조폭들이 과거를 청산하고 전설과도 같은 민태호의 길을 따랐으니까 말이다.

“이쯤인데…….”

꽤 복잡한 서울 시내였지만, SY 본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앙 지검이 있는 서초에서 강남까지는 꽤 가까운 거리였으니까.

“와… 생각보다 꽤 크네.”

최근 SY는 코스닥에 상장을 했고, 무서울 기세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민태호의 능력보다는 강서빈 이사의 능력이 훨씬 더 컷을 것이다.

소명 그룹과 천재학 회장을 위해 쓰던 능력.

재계 순위를 몇 십 단계나 올려놓은 능력을 말이다.

끼익―

“오셨습니까, 검사님. 대표님 연락받고 모시러 나왔습니다.”

차가 멈추자 저 멀리 SY 직원이 뛰어나와 차문을 열며 말했다.

“유난 떨지 말라니까.”

“죄송합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하는 SY의 직원.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쪽한테 한 거 아닙니다. 그리고 제발 조용히…….”

“네… 죄송합니다, 검사님.”

검찰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차에서 내린 남자가 깡패 같은 외모의 남자에게 90도로 인사를 받는다?

수많은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는 광경이다.

“안내하겠습니다, 검사님.”

“아닙니다. 몇 층인지만 알려 주십시오.”

“그래도 제가…….”

힐끔.

“그냥 알려 주십시오.”

“11층 대회의실입니다.”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SY 직원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내 나이쯤 되어 보였나?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조폭 생활을 하며 형님들을 모시고 살았으니 회사에 들어온다고 하루아침에 버릇이 고쳐지지는 않겠지.

그래도 끝까지 버틴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뿌듯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 11층입니다.

“아따∼ 도대체 얼마만인겨!”

“삼촌은 그대로시네. 살 좀 빼요.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그러면 무서워서 미팅이라도 하겠어요?”

“이건 살이 아니라 근육이여.”

오랜만에 본 삼촌.

여전히 덩치가 컸고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제 얼굴에서조차 어둠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이다.

“회의실로 가자. 이사님도 기다리니께.”

민태호와의 만남.

강서빈 이사와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다.

하나 오히려 잘된 일이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재무 전문가에게 수사 조언도 들을 수 있으니까.

“이야∼ 한 검사. 이게 얼마만이야.”

꾸벅.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사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강서빈 이사가 건넨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요. 뉴스에서 봤어요. 아주 날아다니더구만.”

“하하… 아닙니다.”

강서빈 이사 역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예전보다 더 활력이 생겼다는 것 정도?

하긴.

더러운 곳에서 해방된 건 민태호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강서빈 이사 역시 소명 그룹과 천재학 회장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삼촌, 혹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좀 알아요?”

“흠… 내는 옛날 건달이라 인터넷 같은 건 몰러.”

피식.

내가 찾아온 이유를 벌써 눈치챘는지 강서빈 이사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근디 갑자기 도박 사이트는 왜 묻는 겨?”

“수사에 필요해서요. 알아봐 주실 수는 있죠?”

“전화 몇 통이면 와꾸는 짤 수 있제.”

찌릿.

강서빈 이사가 민태호를 노려본다.

“씁! 대표님, 말투!”

“지송혀라…….”

“하하하하!”

나는 박장대소했고, 민태호는 전화기를 들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전화를 해야 하는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예전 말버릇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강서빈 이사를 피하는 것이다.

“요즘 온라인 도박 사이트가 문제라더니 특수부가 움직이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더군다나…….”

“하긴 앞으로 총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역시.

강서빈 이사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할 말을 다 알고 있었다.

“도박 사이트는 피라미드 구조로 수많은 관계자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총책을 잡아야 하고 그래야 큰 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 대표님은 왜 찾으신 거예요?”

사이트 운영자들과 관리자들은 조폭이 아니다.

하나 불법적인 일에는 조폭들이 반드시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제일 빠른 경로라 판단했습니다.”

“해외에 있고 추적하기가 쉽지 않으니 공권력보다 낫다고 판단하신 거네요.”

“역시 이사님 앞에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네요.”

“칭찬인거죠? 하하하.”

물론 경찰도 수사가 어려울 때 형량이나 불체포를 대가로 조폭들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

다만,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뿐더러 대답만 할 뿐 공권력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태호의 전화는 다를 것이다.

전화 한 통으로 조폭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바쁘지 않으시면 수사에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자료들 가져오세요. 저도 인맥을 총동원해서 비자금 경로 알아볼 테니까.”

너무 좋았다.

지금 내 앞에 민태호와 강서빈 이사가 있다는 게 말이다.

“워메∼ 시대가 변해 부렀구먼. 조폭이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오고 말이여.”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통화를 마친 민태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뭐 좀 나왔어요?”

시계를 보니 10분쯤 흘러 있었다.

영장과 조사.

그리고 관련 기관의 협조 요청.

그런 과정은 필요 없었다.

또 국내 최대 도박 사이트의 관련자들을 알아내기에 10분이라는 시간은 충분했다.

“영등포 쪽 식구들 같은디 사무실 주소 알려줄 텐께 한 번 가 봐.”

“감사해요, 삼촌.”

“깡패 사무실인디 같이 갈 텨?”

나는 민태호의 정보가 필요한 거지 주먹이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니다.

삼촌이 주먹을 쓰는 걸 보고 싶지도 않았고.

“걱정 마요, 민 대표님. 치우 씨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아시잖아요.”

가만히 지켜보던 강서빈 이사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래도 워낙 무식한 놈들이니께 그러제요.”

사실 깡패 사무실을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별로 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대한민국 검사라서?

“저 그렇게 안 약해요, 삼촌.”

아니.

주먹으로 따져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정도는 자신 있으니까.

“나가 니 걱정하는 것 같어?”

“그럼요?”

민태호는 나를 잘 알고 있다.

분노를 주체 못하고 미쳐 날뛰는 과거의 한치우 모습을.

“고노마들 질질 짤까봐 그런 거지. 너 검사여. 이자 고노마들 몽뚱아리에 구멍 내면 안 된다. 알았제?”

* * *

북적거리는 영등포 시장.

그 중심에는 작은 주류 회사 사무실이 있었다.

사실 민태호가 편히 말하기 위해 조폭이라 설명했지만, 사무실의 규모로 보았을 때 녀석들은 식구를 제대로 갖춘 조직이 아니었다.

[영등포 주류]

유흥가에서 덩치와 문신을 무기로 주류 공급을 독점하는 양아치들.

건달이 아니라 양아치 쪽에 가까운 반달들이다.

하나 욕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결국 불법 도박 사이트에 손을 댄 것이다.

그래도 머리 돌아가는 거 하나는 인정해 주고 싶다.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인하여 불법 도박의 규모가 커진다는 선견지명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시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주류 사무실 입구에 다다르자, 앉아 있던 덩치 한 명이 나를 보며 말한다.

“여기 대표 좀 만나러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죠?”

스윽.

아무 말 없이 검사라 적혀 있는 공무원증을 보이자, 녀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민했다.

“저희가 검사님 뵐 짓은 한 게 없는데요.”

“그건 제가 판단할 테니 안내를 하시든가 길을 비키시든가 하시죠.”

“하…….”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정의로운 공무원이 조폭들의 사무실을 혼자서 위풍당당하게 찾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보통은 어떻게 되는가.

약점이 잡혀 있지 않는 이상 공무원의 몸을 밀치거나 쌍욕을 퍼붓는다.

그럼 힘을 숨기고 있던 공무원이 조폭들을 제압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왜?

그런 실랑이 자체가 벌어질 일이 없으니까.

“검사님, 죄송하지만 대표님한테 한 번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시간 없습니다. 어떻게, 영장 들고 수사관들 권총 채워서 다시 올까요?”

“아, 아닙니다. 따라오시죠.”

오랜된 건물이라 그런지 녀석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고, 벽면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들어가시죠.”

복합 상가 안, 작은 사무실.

미로 같은 길을 지나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누구시죠?”

힐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험상궂은 인상의 한 남자가 물었지만,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안내를 위해 앞장서 있던 덩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내 등 뒤에서 몸짓으로 설명하고 있겠지.

“아, 공무원이시구나.”

그 몸짓을 알아챈 남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대표 성지형]

“중앙 지검 특수부 한치우 검사입니다.”

“아이고, 형사님도 아니고, 검사님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가는 성지형.

슈트를 곱게 차려입고 점잔 떨고 있지만, 나는 안다.

옷 아래에는 화려한 문신이 있고, 그저 대표 직함이라는 껍데기를 쓴 양아치 우두머리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특수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수사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외마디 고민을 내뱉는 성지형.

내가 어떻게 알았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니 나오는 행동이다.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검사님?”

“네.”

“제가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어디서 들으신 거죠?”

“민태호. SY 대표님이요.”

성지형의 입이 벌어지고, 그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반달과 건달을 떠나 민태호라는 이름 세 글자가 가진 힘이었다.

“민 대표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까지 설명을 드려야 됩니까?”

“아, 아닙니다.”

“알고 계신 거, 혹은 잘못하신 게 있으면 전부 말씀하세요. 아시죠? 자수와 검거의 형량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아마 그래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걸 전부 실토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세상에 어떤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자백하겠는가.

뚜렷한 증거도, 자수를 할 마음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다만, 입을 다물지는 않을 것이다.

민태호의 이름을 말하는 특수부 검사의 방문.

성지형에게는 상대 조직원이 칼을 들고 달려오는 것보다 무서울 터였다.

“여쭈어보시면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하하.”

나도 모르게 나온 웃음.

검사의 조사가 꽤 익숙한지 요리조리 피해 가는 성지형의 모습 때문에 절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래요. 좋습니다.”

“살살해 주십시오, 검사님. 제가 특수부 검사님을 영접한 건 처음이라.”

“처세는 하지 마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성지형은 착각하고 있다.

지금 분위기가 좋다고, 혹은 내가 만만한 검사일 거라고 말이다.

하긴.

외모 때문에 이제 갓 임관한 어린 검사로 보았을 것이고, 처세를 잘 한다면 어떻게 구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만도 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불법 도박 사이트 구조에 대해서 말씀해 보세요.”

하나 성지형이 모르고 있는 게 있다.

나는 녀석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았고, 녀석들의 생태계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점.

내가 휘두를 수 있는 게 머릿속에 가득 찬 법 조항뿐만 아니라 주먹도 있다는 점.

그렇기에 내가 결코 만만한 검사가 아니라는 점까지.

“일단… 본사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서버는 전부 해외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조사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좋다.

녀석은 분명한 범법자이다.

피의자와 피해자에 경계선에 있는 참고인과는 다르단 소리다.

살살 달래고 타이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지금 녀석의 목줄은 내가 쥐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목을 조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사이트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서버와 사이트를 관리하는 프로그래머와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 그리고 모든 자금을 대는 실질적인 운영자. 이 정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은 뭐죠?”

“저희가 하는 일이야 빤하죠. 이권 개입해서 콩고물이나 받아먹는…….”

녀석들이 이권 개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빤했다.

불법적인 일은 신고를 하지 못하니까.

무슨 말이냐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운영자들은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을 테고, 조폭들은 불법적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 운영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돈을 주며 달래거나, 모든 걸 내려놓고 경찰에 신고해 같이 감옥에 들어가든가, 둘 중 하나이다.

아마 후자를 택하는 사람은 없겠지.

지금이야 규모가 작은 성지형 같은 놈들이 이권 개입을 하지만, 향후 불법 도박 사이트의 시장이 커지면 전국 조폭들의 훌륭한 돈벌이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뿌리를 뽑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검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지금 불법 도박 사이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웬만한 중소기업의 매출을 올리는 곳도 있고요. 제가 아는 사이트는 대포 통장으로 한 달에 입출금 되는 돈만 해도 조 단위가 넘습니다.”

“메모장이랑 볼펜 좀 가져다주세요.”

“네!”

성지형이 어지럽혀진 자신의 책상에서 다급하게 필기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저한테 주실 필요 없고, 거기에 성지형 씨가 알고 있는 사이트랑 운영자들 주소와 연락처, 그밖에 제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적으세요.”

“아…….”

“잘 적으세요. 그 메모장이 성지형씨의 형량을 결정할지도 모르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성지형 씨도 처벌 받으셔야죠.”

놈의 표정이 굳어진다.

또 다른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순순히 말하면 자신은 무사할 거라는 착각을 말이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수사에 협조하시고, 알아서 자수하세요. 그럼 집행유예로 빼 드린다고 약속하죠. 하나 그러지 않고 제가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지형씨의 범죄 혐의가 들어난다면, 앞으로 한동안은 징역살이하셔야 될 겁니다.”

“뭔가 착각하시나 본데요, 검사님. 제가 입을 열지 않으면 검사님께서는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나오시면 안 되죠.”

“하하, 그런 식이라…….”

맞다.

성지형의 말이 틀리다고는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영장이 있으시건, 협박을 하시건 제가 입 안 열면 처벌 받을 일 없지 않습니까? 제가 굳이 팔 아프게 이걸 적어야 합니까?”

“그래서 안 적겠다는 말씀이세요?”

“적어 드릴 테니, 언행을 조심해 달라는 말입니다. 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슥—

“좋습니다. 그럼 적지 마시죠.”

놈 앞에 있던 메모지를 빼앗아 내 앞으로 가져왔다.

“사실 당신말대로 그쪽이 입을 안 열면 방법이 없죠.”

“하하.”

내 말에 웃는 성지형.

자신이 칼자루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죠, 성지형 씨.”

“말씀하시죠.”

“제가 여기서 아무런 소득 없이 나가면 다음번엔 이 사무실에 누가 찾아올 것 같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영장도 뚜렷한 증거도 없이 당신 입을 열게 할 한 남자가 있죠.”

당연히 신사적이지도, 법을 지키지도 않을 것이다.

“설마…….”

“네. 민태호 씨가 올지도 모릅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조폭이 아닌, 한 기업의 대표이니. 다만, 그분은 당신 같은 양아치들을 아주 싫어하시죠. 그리고 전화 몇 통이면 서울에 있는 현역 조폭들이 움직일 수도 있고요.”

탁!

앉아 있는 의자에 팔걸이를 치며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그럼 고생하세요.”

터벅터벅.

문으로 향하는 길.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아무것도 얻지 못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바짓가랑이를 누가 잡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거였다.

“죄송합니다… 다 적겠습니다.”

“늦었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고 있는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적겠습니다. 혹시 제가 적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어떠한 처벌도 받을 테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휴…….”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성지형을 옆으로 지나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세요. 절 그만하고. 저는 검사지 그쪽 형님이 아닙니다.”

“네!”

하지만 녀석은 나를 더 이상 검사로 보지 않았다.

“검사님 귀찮게 갈 필요 없이 제가 그냥 녀석들을 이쪽으로 부를까요?”

“아니요. 영장 받아서 구속할 거니까 그냥 주소만 적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마치 신을 영접한 이가 계시를 받아 적듯 성지형은 빠른 속도로 필기를 해 나갔다.

“휴… 대충 다 적은 것 같습니다, 검사님.”

“줘 보세요.”

빼곡히 채워져 있는 메모지.

물론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는 모든 사람들이 적혀 있지는 않았다.

40조 원이나 되는 시장에서 성지형이 모든 걸 알고 있지는 않으니까.

“좋습니다. 그리고 연락드리면 자수하세요. 이 메모지가 정확하다면 감형 사유로는 충분하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처벌 달게 받겠습니다, 검사님.”

“하하…….”

씁쓸한 웃음을 보이며 사무실을 나왔다.

분명 녀석은 양아치이며 범법자인데.

법보다 주먹을 더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일단… 영장부터 받아 볼까.”

이번 수사는 거대한 그물과 같을 것이다.

엮고 엮어 최대한 많은 범죄자들을 잡는 방법이다.

띠리링—

— 네, 검사님!

“수사관님, 제가 휴대폰으로 사진 하나 보냈거든요.”

— 네, 봤습니다.

그리고 그 그물의 처음으로 걸려들 놈은 메모지에 적힌 놈들이다.

“압수수색영장 하나만 받아서 청담동으로 오세요.”

* * *

“검사님!”

“금방 오셨네요.”

청담동의 한 고급 오피스텔.

주차되어 있는 차량만 봐도 상당히 비싼 오피스텔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자…….”

꽤 많은 사람들이 압수수색 박스와 영장을 들고 오피스텔 앞에 모여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에 있는 식기까지 전부 수거하는 겁니다.”

“네!”

“그럼 집행하시죠.”

우다닥.

수많은 수사관들의 구두 소리가 오피스텔 복도를 가득 채웠다.

똑똑.

“서울 중앙 지검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자택 압수수색을 집행하겠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집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문 안 여시면 강제로 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 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정대필 수사관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휙.

“걸쇠 부시자.”

“네!”

내 고갯짓에 정대필 수사관은 옆에 있던 수사관에게 말했고, 이내 미리 준비해 온 망치는 곧 도어락으로 향했다.

쾅! 쾅! 쾅!

“들어가!”

“네!”

아무리 비싼 오피스텔의 도어락이라지만 망치질을 견뎌낼 수 없었다. 금세 부서져 힘없이 덜렁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집안.

“움직이지 마세요! 압수품을 훼손하시면 가중 처벌받습니다.”

“빨리 포박하세요!”

“네!”

종이를 찢어 변기통에 버리고 현찰을 가방에 담아 창문 밖으로 던지는 사람들.

민소매에 팬티만 입은 세 명의 남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씨발!”

그런 행동 덕분에 결국 수갑을 차게 된 그들은 양손이 뒤로 포박된 채 바닥에 엎드려 소리를 지르고 있다.

“휴… 밖으로 나가서 현금 회수해 오시고 변기통에 있는 서류들은 조심스럽게 꺼내서 모아 놓으세요.”

“네, 검사님.”

분주히 움직이는 수사관들.

우다닥.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또 다른 구두 소리가 분주히 들려왔다.

“대장님! 문이 파손되어있는데요?”

“뭔 소리야 그게…….”

집 안으로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남영훈 광수대 대장이었다.

“어? 검사님…….”

“미리 연락을 드릴 걸 그랬네요. 여기는 제가 압수수색 먼저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희한테 수사 지휘를 하시지 그러셨어요. 뭐 하러 검사님께서 직접 체포를 하십니까.”

“체포가 아니라 압수수색입니다. 어차피 제가 관여했어야 하고요.”

대한민국에 어떤 영장이든 청구를 요청할 수 있는 건 검사뿐이다.

하나 말했다시피 검사는 형사의 요청을 받아 영장을 청구할 뿐 직접 집행 현장에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됐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남영훈을 믿지 못하는 상태.

정확히 말하자면 남영훈과 채현우 경찰청장 두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이놈들은 청으로 데려가 조사하겠습니다.”

“아니요. 청이 아니라 검찰로 가서 제가 직접 조사하겠습니다. 그게 더 빠를 테니까요.”

“그래도…….”

휙.

“자! 다 수거했으면 우리는 그만 검찰로 돌아갑시다.”

“네, 수사관님.”

“저 사람들도 데려오고.”

정대필 수사관에게 고갯짓을 하자 내 생각을 읽은 듯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검사님, 저희 경찰도 이번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저희와 공조도 안 하시면 곤란합니다.”

아니.

일단 큰 울타리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내 손에 있는 그런 울타리를 말이다.

그리고 광수대는 그 울타리 안에서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 손아귀에서 사건이 흘러갈 테니까.

“광수대가 필요하면 수사 협조 요청할 테니 걱정 마시죠, 대장님.”

“휴…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 * *

치우가 오피스텔을 떠나고 남영훈과 광수대 형사들은 허탈한 듯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씨발, 우리가 저 검사 새끼 꼬봉입니까?”

“쉿! 조용히 해 아직 엘리베이터 안 탔으니까.”

“이번 사건 잘 해결해서 승진하려고 우리 애들 뺑이 치고 있는데 저 검사 새끼가 홀랑 털어 가면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닙니까!”

쾅!

“씨발!”

아무 말없이 담배만 피우는 남영훈이 답답했는지 형사 중 한 명이 애꿎은 쓰레기통에 분풀이를 했다.

“대장님은 왜 자료들을 넘겨주신 겁니까. 우리가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돌아다녀서 얻어온 자료들입니다.”

“김 형사, 적당히 하지. 나 니 상관이야.”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청장님이 직접 명령했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아니면 지금 특수부 검사한테 가서 총 들이밀고 자료 뺏어 오기라도 할까?”

“그건…….”

김 형사는 억울한 것이다.

자신이 뼈 빠지게 수사한 사건이 검찰의 공으로 넘어가는 게 말이다.

그 공 덕분에 승진과 인상될 연봉. 그로 인해 집에 있는 가족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터였다.

아마 이대로 흘러간다면 뉴스 기사에는 특수부와 한치우의 얘기로 도배될 터.

광수대의 이름은 단 한 줄도 안 나올 것이 빤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 나도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을 거니까.”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세요, 대장님?”

“휴…….”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남영훈이 연기를 내뱉으며 광수대 형사들을 바라봤다.

마치 깊은 고민을 끝내고 정답을 말해 줄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영등포 주류 대표 털어 보자.”

물론 치우가 한 발 빨랐지만…….

이미 치우와 남영훈의 공조는 어긋나 버렸다.

시작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치우가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남영훈.

언젠가 만나겠지만 한 사람은 양손이 무거울 것이고, 한 사람은 양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가자.”

* * *

착.

얇은 서류철 하나를 던지며 조사실 의자에 앉았다.

나를 마주보고 앉아 있는 세 사람.

오피스텔에서 수갑을 찬 채로 결국 중앙 지검까지 끌려온 것이다.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구속영장은 없었다.

하지만 수색품을 훼손, 또는 집행 중인 공무원을 위계에 의해 방해한다면 공무집행방해로 현행범 체포의 대상이 된다.

“경찰 조사를 많이 받아 봐서 알겠지만,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변호사를 선임해 같이 조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저와 나눈 모든 대화 내용은 녹취와 녹화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셋 다 이미 많은 별을 보유하고 있으니 검사와의 조사는 익숙할 것이었다.

하나 특수부는 처음이겠지.

“그리고 당신들이 얼마나 수사에 협조하느냐에 따라 조사가 짧아질 수도, 하품 찍찍하며 밤새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물불 안 가리는 검사도 처음 볼 테고.

“대충 보니까 공소 금액만 4조 원이 넘을 것 같은데 머리 굴려 보면 알죠? 내가 판사님께 구형할 형량과 선고될 형량이 어떻게 될지. 빠삭하잖아요, 세 사람 다.”

다리를 떠는 녀석과 먼 곳을 보며 미소를 짓는 녀석, 그리고 아무런 표정이 없는 녀석까지.

녀석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걸.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많아 봐야 2년, 보통은 1년 살다 나와서 숨겨 놓은 현찰로 떵떵거리며 살 겁니다. 맞죠?”

“하하, 잘 아시네요.”

“그런데 그런 일은 이제 없습니다.”

“그게 검사님 마음대로 되나요. 판사님 마음이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나보다 법 잘 알아요?”

“뭐요?”

전에 말했을 것이다.

법은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라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변호사를 찾는 거라고 말이다.

“특가법 제8조, 조세 포탈의 가중처벌. 쉽게 말해 1년에 세금을 10억 이상 빼돌리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들한테 얼마든지 적용시킬 수 있는 법조항이죠.”

“저희가 얻은 수익은 합법적인 게 아닌데 무슨 조세 포탈 혐의를 들이미십니까.”

“또! 포탈한 세금의 두 배 이상, 다섯 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참, 검사님이 법을 모르시네.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무슨 세금을 운운합니까.”

“거참. 나보다 법 잘 아냐니까.”

지금의 사건은 분명 이슈가 될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손을 잡고 대대적인 단속을 한다고 언론에 발표했으니까 말이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사이트의 운영자들.

수십 개의 대포 통장에 입금된 금액만 4조 원이 넘는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대해서도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증세할 수 있단 판결이 나왔습니다. 즉 4조 원의 입금액 중 당신들이 벌어들인 6,000억 원의 수입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단 1원의 세금도 내지 않은 게 되죠.”

“그게 무슨 소리…….”

“그리고 뭐?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나는 이 사건을 언론에 터트릴 겁니다. 아직 모르는 게 있나 본데 친애하는 판사님들의 판결에는 여론이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조세 포탈 혐의가 인정된다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과연 조세포탈 혐의가 인정이 될 것 같습니까, 안 될 것 같습니까? 거기에 공무집행방해까지…….”

또한 곧 있으면 총선이 다가오며 몇몇 고위 판사들은 옷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어떤 재판부에 배정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휘하 아래에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졌다는 커리어가 생기는 걸 좋아할 판사는 없다.

“총선 앞두고 터질 가장 큰 사건. 일벌백계 케이스로는 딱이죠.”

톡톡.

서류철의 모서리를 책상에 치며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나는 당신들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할 겁니다. 조금 오버인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검사인 저의 고유 권한이죠.”

그 말까지 끝나자 녀석들에게서 여유롭던 아까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럼 판사는 최소 20년을 선고할 겁니다. 거기에 엄청난 액수의 벌금까지. 돈을 어디에 묻어 놓고, 어디에 숨겨 놓던 중앙 지검의 모든 수사관들이 끝까지 추적할 테죠.”

“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검사님!”

“내가 용서를 구할 방법을 알려 줄까요?”

“네! 뭐든지 하겠습니다!”

빳빳하던 고개를 꺾어 놓고 녀석들을 내 발밑에 두었으니 이제 거래를 하려한다.

“당신들 밑에 있는 회원 모집책과 대포 통장 모집책, 그리고 해외에 있는 사이트 관리자와 자금 세탁책까지 전부 모아 놓으세요.”

“저희도 연락이…….”

쾅!

“개소리하지 말고. 당신들이 운영자인데 관리자들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아요? 그래요. 혹여 안 된다고 해도 그건 당신들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닙니다.”

“…모아 놓겠습니다.”

“그럼 딱 30년만 구형하겠습니다.”

“네?”

내가 원하는 것은 녀석들의 처벌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형량을 대가로 얻을 건…….

“보통 도박 사이트는 큰 줄기가 되는 사이트 하나에서 여러 갈래로 퍼져 나오죠?”

“네, 맞습니다.”

“그럼 당신이 알고 있는 작은 가지들과 큰 줄기의 운영자들 신상을 말하세요. 해외든 국내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말했듯 이번 수사는 그물과 같다.

녀석들을 엮고, 녀석들을 미끼로 또 다른 녀석들을 엮는다.

“당신들의 제보로 한 개의 사이트를 검거할 때마다 구형을 2년씩 줄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불구속 기소를 해 자유롭게 밖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죠.”

“아… 네…….”

“혹여 딴 마음을 품지는 마십시오. 출국 금지에 당신들을 24시간 쫓아다닐 수사관들이 있으니까.”

이제 미끼가 잡아 오는 다른 미끼들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검사실에 여유롭게 앉아서 말이다.

“그러면 다시 뵙죠.”

* * *

왁자지껄.

매일매일 야근에, 자정이 다 돼서야 집으로 갈 수 있는 검사들.

“휴…….”

나는 지금 그런 검사들이 부럽다.

이틀 째 집에도 못 가고 조사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섯 분으로도 부족하네요.”

“지원과에다가 추가 지원 요청해 볼게요.”

다섯 명의 수사관이 밤낮으로 조사를 하고, 서윤호와 나도 밤새도록 결정문을 작성하고 있지만 부족했다.

똑똑.

“네.”

“검사님, 저희 강남 좀 다녀올게요.”

“제보 들어왔나요?”

“네. 캔디라는 사이트인데 꽤 규모가 되는 사이트인가 봐요.”

“알겠습니다. 연행해 오세요.”

도박 사이트의 구조는 생각보다 많이 복잡했다.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잠깐만요, 수사관님.”

“네.”

“캔디라는 사이트가 어디 계열이죠?”

“음… 청춘이라는 사이트 계열 같은데요.”

대기업이 하청으로 수요를 충족시키듯 거대한 사이트 한 개가 수천 수백 개의 사이트를 거느리고 있었다.

프랜차이즈를 생각하면 쉽다.

가맹비를 주며 영업을 하는 프랜차이즈 말이다.

작은 사이트 하나도 입출금 금액이 몇 천 억이 되니 계열의 중심이 되는 본사 사이트의 규모는 엄청날 것이었다.

“가실 필요 없겠네요.”

“네?”

“청춘 사이트 운영자 지금 검찰로 연행 중입니다.”

“그럼…….”

“네. 수사관 보충해서 한 번에 잡아들이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 수사의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너무도 거대한 규모 때문에 인력이 부족할 뿐이지.

“형, 우리끼리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러게. 그런데 우리밖에 없어. 지금 특수 2부는 나주 그룹 수사 중이야.”

“우리 부서 있잖아.”

“초임 검사 둘이 수사하고 있는데 어떤 선배가 와서 지원하겠냐.”

“하긴…….”

간단한 이치이다.

아무리 업적이 큰 사건이라 하여도 후배 검사의 공을 뺏지 않으려는 선배의 배려이자,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다.

“검사님, 플라워 계열 사이트 자료입니다.”

턱.

정대필 수사관이 내려놓은 서류.

얼마나 무거운지 책상이 내려앉을 정도였다.

“휴…….”

“내가 할게, 형.”

내 검사실은 마치 도박 사이트를 잡고 기소하는 공장 같았다.

이틀 전 거대한 사이트 운영자를 잡아들여 형량을 대가로 그물을 펼쳤고 수도 없이 많은 운영자들이 그 그물에 걸렸다.

그렇게 걸린 또 다른 운영자는 새로운 그물을 펼치게 도와주었고, 다른 운영자들을 잡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핵심 관련자들 스무 명만 구속기소하고 나머지는 불구속수사하면 되겠지?”

“잠깐 줘 봐.”

두꺼운 서류의 첫 장을 펼치며 말하자 서윤호가 몸을 내 쪽으로 향했다.

“구치소 미어터지니까 좀 줄이고 일단 법무부에 출국 금지만 신청해 놔.”

“그러다 밀항하면?”

“하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그렇게 불안하면 해양경찰에다가 공문 보내 놓던가.”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는 되어갔다.

“그리고 형, 구치소 미어터져도 전부 잡아넣어야 돼.”

“그게 무슨 소리야?”

“한 번 잡아 온 애들 밖으로 내보내면 이리저리 말 옮기는 비둘기 될 거야.”

“아이고… 우리 때문에 교정 본부 직원들까지 야근하겠네.”

시장 규모 50조.

거대한 금액이 전부 불법으로 형성되는 자금이었다.

모든 게 불법인 그런 거대한 시장을 두 명의 검사와 다섯 명의 수사관이 소탕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오후에 수사관 열 명 지원해 준다고 하니까 조금만 고생해 주세요.”

“네!”

정대필 수사관이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던 다른 수사관들에게 격려를 한다.

“검사도 지원 좀 해 주지…….”

“아! 사무관님들도 몇 분 지원 오신다고 합니다, 검사님.”

서윤호의 쭝얼거림을 들었는지 정대필 수사관이 눈치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야∼ 이렇게 훌륭한 수사관님이 치우를 보좌하다니 부럽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서 검사님.”

검사직무대리.

시보 생활을 하는 사법연수생을 칭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검사직무대리는 조금 다르다.

검사직무대리 운영규정 제3조.

검찰 사무직렬에 대하여 실시하는 행정고시에서 합격한 후 5년 이상 근무하고 3년 이상의 수사 경력을 가진 사람은 검사의 직무를 대리할 수 있다.

물론 훗날 행정고시라는 명칭은 5급 공개채용시험이라 바뀌지만 그 기능과 자격은 바뀌지 않는다.

“사무관님들 오시면 조금 낫겠네.”

“그러게.”

또 직무대리가 검사의 모든 권한을 법적으로 대신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가능했다.

특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사무관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일단 잔챙이들은 사무관님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월척을 낚으러 가자.”

“뭔 소리야 그건 또?”

“이번 수사의 목적은 도박 사이트를 소탕하는 것도 있지만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과 정계에 높으신 분들을 잡는 거였어.”

“그럼 그렇지… 한치우가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지.”

잔챙이들은 시간과 인력으로 해결될 문제였지만 월척은 나와 서윤호가 직접 나서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잔챙이 중에 크기가 꽤 되는 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입에 낚시 바늘을 걸어 놓고 질문을 던져야 대답할 확률이 높겠지.

“가자.”

“어디로?”

월척을 낚을 수 있는 튼튼한 낚싯대가 있는 곳.

아니면 내가 가진 낚싯대를 튼튼하게 만들어 줄 곳.

그런 능력자가 있는 곳이 하나 있다.

“SY로.”

* * *

영등포 주류.

남영훈과 광수대 식구들은 시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성 사장 안에 있지?”

“남 형사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 다 오셨습니까.”

“그건 알 거 없고 있는지 없는지나 얘기해. 양아치 새끼랑 말 섞을 만큼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남영훈은 영등포 주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덩치에게 짜증스럽게 얘기했다.

“안에 계십니다.”

톡!

덩치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짜증스럽게 치고서는 계단으로 향하는 남영훈. 그리고 기분 나뿐 미소로 덩치를 한 번씩 번갈아보며 뒤따르는 광수대 식구들.

그들은 지금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폭탄과도 같았다.

쾅!

“얼굴 좋아 보이네, 성 사장.”

“남 형사님……?”

“코 흘리면서 형들 빤스나 빨던 녀석이 이제 사장이랍시고 삐딱하게 앉아서 인사도 안 하네.”

“아…….”

꾸벅.

다리를 꼬고 있던 성지형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영훈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도 없는 인사하지 말고 앉아.”

“네.”

남영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성지형이 도박 사이트 관계자라는 걸.

하나 그를 지금보다 일찍 찾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너 지금 당장 나가서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잡아 와.”

“하하, 제가 형사입니까? 아니면 남 형사님 쫄따구라도 되는 겁니까?”

담배를 입에 문 채 다시 다리를 꼬며 말하는 성지형.

그 모습을 본 남영훈과 광수대 식구들은 표정이 굳었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건방을 떨고 있어.”

“제가 형수님 가방 사 드리고, 애들 유학비 내고, 또 광수대 식구들 회식 값에 용돈까지 드리는데 건방이라뇨?”

남영훈이 성지형을 찾지 않은 이유.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 건방 어디까지 떨 수 있나 보자.”

힐끔.

남영훈이 뒤에 서 있던 광수대 식구들에게 눈치를 주자 식구들이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성지형에게 다가간다.

“이러면 광수대한테도 좋을 게 없을 텐데요.”

“우리도 이판사판이야. 한 형사는 이 새끼 체포하고 나머지는 여기 사무실에 장부 좀 찾아봐. 우리한테 뇌물 준 거 기록해 놓은 장부가 있을 테니.”

이미 남영훈에게 있어 도박 사이트는 뒷전이었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와 더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 버렸으니까 말이다.

“하하! 형사라는 것들이… 당신들과 나랑 다른 게 뭡니까?”

“닥쳐 개새끼야.”

바쁘게 장부를 찾는 형사들과 달리 너무도 여유로워 보이는 성지형.

광수대 식구들의 행동이 성지형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수갑 안 차도 됩니다. 어차피 자수할 생각이었으니까.”

“뭐?”

“잘못을 저질렀으면 죗값을 받아야죠.”

이미 치우에게 한 번 세탁을 당한 상태인 탓이었다.

“무슨 개수작이야 또.”

“그리고 장부 찾아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미 스캔해서 예약 메일로 걸어 놨으니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지형.

그의 목적지는 경찰서가 아니었다.

“그럼 저는 자수하러 가겠습니다.”

“무슨 개소리냐고!”

“당신들 오기 전에 이미 검사가 왔다 갔습니다.”

성지형은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 깊은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뇌물을 준 장부와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의 신상을 넘기는 조건으로 치우에게 무릎을 꿇는 것.

그게 바로 성지형이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 무서운 건 형사들보다 형량을 결정할 수 있는 치우였고, 남영훈보다 민태호가 더 두려웠으니까 말이다.

다만, 한치우를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그로서는 딜을 걸만한 걸 남겨 놓아야 했다.

그게 바로 조금 전 걸어 놓은 예약 메일.

“곧 있으면 한 검사에게 당신들한테 뿌린 뇌물 장부가 메일로 갈 겁니다. 그리고 저는 한 검사한테 가서 무릎을 꿇을 거고요.”

또 한 발 늦었다.

그리고 더 이상 성지형을 구슬릴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남영훈의 머릿속은 그런 생각들로 인하여 꽉 막혀 버렸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어차피 검찰로 송치될 거 제가 바로 검찰로 출두하겠습니다.”

“하… 저 새끼 잡아.”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가 검찰로 가겠다고.”

“저 새끼 잡으라고!”

꽉.

눈치를 보고 있던 광수대 식구들이 결국 성지형을 포박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네가 경찰이야? 누구 마음대로 검찰로 가겠다고 지랄이야.”

“그래요? 일단 놓으시죠. 한 검사한테 전화할 테니.”

쾅!

성지형이 속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남영훈은 재빨리 뺏어 바닥에 던져 버렸다.

“미친 새끼네 이거.”

이미 남영훈은 재정신이 아니었고 정상이 아닌 남영훈의 행동을 본 성지형이 말했다.

“말했지. 우리도 이판사판이라고.”

“그래서 지금 영장도 없이 불법체포라도 하겠다는 거야?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 잘 아네.”

“거기에 공무원이 국민의 사유재산을 갈취해서 파손해?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거야 현행범일 때는 다르지. 또 체포과정에서 반항하는 범죄자의 사유재산은 얼마든지 파손될 수 있고.”

남영훈의 시선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빈병으로 향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제 알려줄게.”

쨍그랑.

남영훈은 있는 힘껏 빈병을 내려쳐 깨뜨렸고, 그의 머릿속에 있던 정상적인 생각마저 같이 깨졌다.

푹!

“윽…….”

“대장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남영훈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물론 성지형이 한 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런 것이니까.

“깡패가 형사를 찌르면 되나.”

“이런 미친 새끼가!”

다만, 이대로 경찰서로 간다면 찌른 사람은 당연히 성지형이 될 터이다.

“성지형 씨 당신을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가공무원 살인미수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허벅지에서 흐른 피가 발목까지 흘러 하얀 양말을 빨갛게 물들였다.

하나 남영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성지형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광수대 식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해? 빨리 연행해.”

“아… 네!”

“이런 개새끼가!”

오히려 흥분한 쪽은 성지형이었다.

남영훈의 미친 짓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오로지 한 명뿐이라고.

그리고 남영훈이 놓친 게 하나 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몸에는 휴대폰이 여럿 있을 거라는 걸.

광수대 식구들에게 끌려 차에 올라탄 성지형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속주머니 속으로 재빨리 손가락을 움직였다.

[도와주십시오, 한 검사님.]

* * *

“대장님 어쩌시려고…….”

성지형이 탄 차량이 떠나자 남영훈은 널브러져 있는 수건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지혈했다.

“잘 들어, 한 형사.”

“네.”

“일단 수사본부 유치장에 가둬 놓고 아무도 못 만나게 해.”

“한 검사는 어쩌시려고요? 예약 메일 가면 저희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영등포 주류 사무실에 남은 두 사람.

남영훈 대장과 광수대 형사 한지훈이었다.

“우리는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에 핵심적인 인물을 조사하러 여길 방문한 거라고 수사 기록지에 써.”

“네. 그 다음은요?”

“영장 없이 단순 임의동행을 요구했고, 흥분한 성지형이 나를 죽이려했다. 너희들이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보고하고.”

“네.”

남영훈은 성지형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경찰이, 그것도 광수대 대장이 범인의 칼에 찔렸다는 건 언론에 크게 회자될 것이고 검찰이 쉽게 성지형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묻어 버림과 동시에 공권력을 향해 흉기를 날린 성지형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트리려 하는 것이다.

“또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해서 인터넷에 성지형 명의로 되어 있는 모든 메일 계정 알아봐.”

“인계받은 후 장부만 지우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알겠습니다…….”

한지훈은 남영훈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하나 그의 눈빛을 읽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까?

단순히 승진을 목적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대장님…….”

“어.”

“혹시 제가 모르는 게 있습니까?”

“모르는 거라니?”

한지훈은 은근슬쩍 물어봤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식구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소탕하고자 계획된 수사팀.

서울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베테랑 형사들이 모여 만들어졌기에 한지훈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남영훈 대장과는 이별을 고하겠지만, 자신이 데리고 온 식구들과는 남은 형사 생활을 같이 할 터이니 말이다.

“그냥… 단순히 사건 해결이 목적이라면 한치우 검사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한치우를 네가 알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초임 검사가 벌써 두 대기업을 박살냈으니…….”

“그래서 우리가 죽 쒀서 한치우 입에 갖다 바치자는 얘기야?”

“그건 아니지만…….”

“한 형사 식구들 종로서에서 비주류 아니야? 그래서 이번 수사에 적극적으로 지원한 거고.”

남영훈에 말에 한지훈은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특진을 하고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식구들까지 말이다.

“내가 왜 종로서 지능팀을 뽑았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너희가 비주류라 뽑은 거야. 나 같은 비주류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같이 주류가 되어 보자고. 한 형사처럼 이리재고 저리재면 언제 주류가 되나.”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성지형에게 뇌물을 받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남영훈과 한지훈을 포함한 광수대의 모든 형사들이 말이다.

그렇기에 성지형을 마지막까지 찾지 않았던 것이고.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야? 형사의 자존심? 그럼 애초에 성지형의 돈을 받지 말았어야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검사 귀에 들어간다면 광수대가 아니라 경찰 자체가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은 이번 수사에서 제외되는 것뿐만 아니라 옷을 벗어야 할 게 빤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너희들이랑 나는 형사 옷 벗었어야 돼. 내가 허벅지까지 찔러가며 총대 메는데 뭐가 문제야?”

“죄송합니다… 대장님.”

“한 번 시작했으면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가는 거야. 그래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지금 그만두면 다시 돌아가지도 못해.”

그래.

죄책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남영훈 대장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한지훈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왔고, 이제 와서 시작점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대장님, 성지형이 이미 한 검사한테 털린 거면 저희는 계속 한 검사 그림자만 따라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한 검사가 도착할 도착지 앞에 먼저 가 있을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불법 도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결국 끝은 정치권에 흘러들어 간 비자금 사건으로 마무리될 거야.”

그렇기에 남영훈은 생각했다.

치우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소탕하고 있을 때 자신은 한 발 앞서 정치권 쪽에 가 있겠다고 말이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백 명 천 명 잡아봤자 국회의원 한두 명 잡는 것만 못해. 잔챙이는 한 검사에게 던져 주고 우리 경찰은, 아니, 광수대는 국회의원들을 잡는다.”

“그런데… 검사도 힘든데 경찰이 국회의원을 잡아넣을 수 있을까요, 대장님?”

“결국 기소는 검사가 하겠지만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잡아 광수대가 찾았다고 언론에 먼저 터뜨릴 거야. 검찰이 뺏어가지 못하게.”

무서운 사람이다.

수많은 상관을 봤지만 남영훈의 시커먼 속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

“알았으면 빨리 가서 메일부터 지워. 한치우한테 발송되기 전에.”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성지형의 사무실을 나가는 한지훈과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는 남영훈이었다.

“다리 하나쯤이야 뭐…….”

* * *

SY를 향해 달리고 있는 차.

서윤호의 운전 실력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무사히 도착할 줄 알았다.

한 통의 문자가 오기 전에는…….

“뭐야 이게.”

[도와주십시오, 한 검사님.]

“뭐가?”

“스탑.”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자 한 통.

결국 잠시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

“형, 목적지를 바꿔야 될 것 같은데.”

“뭔 소리야 갑자기.”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서윤호.

“그게…….”

영등포 주류 대표 성지형과의 인연을 꽤 긴 시간 동안 설명했다.

“흠… 오늘 검찰에 자수하기로 한 녀석이 도와주십시오, 라는 문자를 남겼다라.”

긴 얘기를 듣는 동안 몇 개비의 담배를 피운 서윤호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소재지 파악할까?”

“응.”

지잉.

방법을 말하는 서윤호와 수긍하는 나.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단 한 통의 문자로 인하여 그 방법은 필요 없어졌다.

스윽.

“뭐야 이게. 검찰로 자수한다며?”

“그러게 뭘까 이게.”

서윤호와 나는 문자메시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검사님, 영등포 주류 성지형 사장이 경찰관 살인미수 혐의로 광수대에 체포됐습니다.]

[피해자가 누구죠?]

[서울 지방청 광역수사대 대장 남영훈입니다.]

남영훈 대장에게 빨래질을 당하다가 분에 못 이겨 흉기를 휘둘렀다?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다.

내가 본 성지형은 쉽게 당할 부류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나에게 이미 털렸다는 걸 알았다면 굳이 실랑이를 벌일 이유가 없는데…….

“형, 뭔가 이상하지 않아?”

“맞아. 검찰에 자수하기로 한 녀석이 갑자기 경찰을 죽이려다가 체포당했다는 게 이치가 안 맞지.”

“그렇지. 그것도 광수대 대장을 변두리 조폭 두목이 찔렀다? 말이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날 생각해 봤자 여기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아, 형.”

“그래. 운전대 틀자.”

다시 차에 올라타 우리는 서울 청으로 향했고, 혹시 몰라 주파수를 맞추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우리가 꼭 들어야 할 뉴스가 흘러나왔다.

— 최근 정부는 검경 합동 수사를 통해 불법 도박 사이트 소탕을 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대목.

뒤이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인해 중요 쟁점은 바뀌어 버렸고.

— 경찰에서 수사팀을 이끌고 있던 남영훈 광역수사대 대장이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흐름이 넘어가 버렸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한 번에 잡으려 언론에 흘리지 않았건만.

결국 사건의 포커스는 검찰과 한치우가 아닌 경찰과 광역수사대, 그리고 남영훈에게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자수한다는 놈이 경찰 손에 잡혀 버렸네. 그것도 남영훈 대장을 찌르고 말이야.”

“그러게.”

“결국 여론은 경찰에 일벌백계를 원할 거야. 우리 검찰이 아닌.”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멈추었다.

“형, 혹시…….”

“뭐가?”

“아니야…….”

자작극.

남영훈이 자신을 찌르고 모든 혐의를 성지형에게 덥혀 씌운 거라면?

그렇게 해서 사건의 포커스를 경찰에 돌린 거라면?

그런 생각과 상황을 대입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딱 맞아떨어진다.

어떠한 오류도 없이 말이다.

“남영훈 대장이 자신의 허벅지를…….”

“아이고, 한치우 검사님. 영화 좀 그만 보세요. 말이 되는 상상을 해야지.”

“하긴… 답답하니까 별 생각이 다 드네.”

그래.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내가 만나 본 남영훈은 그래도… 경찰이었다.

공을 뺏길까 두려워 했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를 수사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또한 약간의 협박이 있긴 했어도 자신들이 첩보한 모든 자료를 넘긴 경찰이었다.

나는 그를 믿고 싶었다.

“일단 빨리 가 보자.”

* * *

서울 지방경찰청.

서울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청답게 큰 규모를 자랑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검찰과 비슷하니까.

검찰에 중앙 지검이 있다면 경찰에는 서울 지청이 있다.

또 검찰에 대검찰청이 있다면 경찰에는 경찰청이 있기도 하고.

다만 소속 기관은 다르다.

경찰은 행안부 소속이고, 검찰은 법무부 소속이니까 말이다.

“중앙 지검 특수 1부 한치우, 서윤호 검사입니다. 광수대 찾아왔습니다.”

“네, 들어가시죠.”

우리의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서울 지방경찰청을 찾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 도와 달라고 말한 성지형을 만나 보는 일.

“광수대는 처음 와 보네.”

“나도 두 번째야.”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워… 기자들 많이 몰려왔네. 뒷문 없나? 나는 몰라도 네 얼굴은 기자들이 알잖아.”

“뒷문에도 있을 거야.”

수도 없이 많은 기자들을 뚫고 경찰청 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말이다.

“어! 특수부 한치우 검사다.”

역시나.

나와 서윤호를 발견한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영훈 대장이 도박 사이트 관련 조폭이 휘두른 칼에 찔렸다는 데 사실입니까?”

“한 검사님은 왜 경찰청을 직접 방문하신 거죠?”

“일각에서는 칼 맞는 건 경찰이고, 상 받는 건 검찰이라고 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쉬지 않고 날아오는 질문.

기자들과의 대면이 처음인 서윤호는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정하시고. 일단 경찰청에서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 기자님들의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상태이다.

또한 기자들 앞에서 한 번 흘린 말은 다시 주울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 여론의 동정은 경찰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

“그럼 이만.”

무슨 말을 하든 곱게 보이지 않을 터.

“워∼ 식은땀 나 죽을 뻔했네.”

“형도 익숙해져야지. 특수부에 있을 2년 동안 반드시 한 번은 기자들 앞에 설 텐데.”

“몇 층이야?”

“3층.”

의문을 품고 경찰청에 온 두 명의 검사.

매우 불편한 사이의 지인 집을 찾아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3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객식구를 맞이하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오셨어요, 한 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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