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15/35)

제5장

“이게 누구야? 우리 지검 최고의 초임 검사네. 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검사장님. 한치우라고 합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유대명 검사장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식어 버린 커피.

입은 웃고 있지만 음흉한 눈빛.

“석 부장이랑 커피 한잔 하러 왔는데 자네를 보니까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우연을 가장한 유대명 검사장의 말은 거짓이었다.

왜?

커피가 다 식도록 입을 댄 흔적이 없었고, 나를 바라보는 음흉한 눈빛에 속마음이 훤히 보였으니까 말이다.

“하하, 한 프로 인물도 훤하네. 그렇지 않은가 석 부장?”

“아! 네, 맞습니다.”

유대명이 나를 죽이려 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만남이라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곳을 찾은 목적은 석찬영 부장이 아니라 나를 기다렸다는 걸.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부르려 했는데 잘 왔어. 궁금했거든 한 프로 자네가.”

“제가 말입니까?”

“그럼! 우리 지검 최고의 에이스가 될 검사인데 검사장으로서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는가?”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게 불안한가 보지?

“그런데 특수부 검사가 공안부장을 왜 찾아온 거지?”

“그게…….”

이미 머릿속에는 방문의 목적이 확고했다.

하나 유대명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수사에 있어 공안부장님에게 여쭈어 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요즘 특수부가 무슨 사건을 만지고 있더라… 아, 생각났네. 박현주 부장 말로는 한 프로 자네가 KH 그룹 우대현 회장 만지고 있다는 데 맞나?”

“네, 맞습니다.”

패를 들키고 싶지 않아 돌려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긴 모를 리가 없지. 특수부 수사는 검사장 승낙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으니까.

특수부 수사의 시작은 딱 두 가지이다.

검사장이 지시했거나, 혹은 검사장이 허락했거나.

그렇다는 말은…….

“하하, 역시 에이스는 달라. 첫 사건부터 큼지막한 걸 골랐네.”

유대명 역시 우대현 회장 수사를 허락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석 부장은 좋겠어. 잘나가는 초임 검사가 어드바이스를 다 구하러 오고 말이야.”

“하하! 과찬이십니다, 검사장님. 아무래도 그룹 사건이다 보니 저를 찾아온 거겠죠.”

물론 내 목적은 노동부에서 넘어온 자료를 받아 가려는 거였지만, 그렇다고 특수부 검사가 공안부를 찾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특수부의 대표적인 업무 중 하나인 기업 수사.

노동 사건을 담당하는 공안부를 찾아 조언을 구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럼 나는 이만 물러가 보지.”

“벌써 가시게요? 저보다는 검사장님 조언이 한 프로한테 더 득이 될 것 같은데. 특수부 전설 아니십니까.”

힐끔.

“하하, 수사도 트랜드가 있는 거야. 발로 뛰라는 거 알려 줘 봤자 무슨 조언이 되겠는가. 석 부장이 한 프로 어드바이스 좀 잘해 주게. 우리 지검 최고의 에이스가 될 터이니.”

두 손이 닳도록 아부를 떠는 석찬영과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말하는 유대명.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석찬영 부장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유대명 때문에 말이다.

톡톡.

“그럼 고생하게 한 프로. 좋은 보고가 올라오길 기대하고 있겠네.”

“네.”

내 어깨를 치며 밖으로 향하는 유대명.

옆모습으로 보이는 쫙 찢어진 눈에 소름이 끼쳤다.

‘기대하세요. 제가 곧 밝혀낼 테니. 우대현 회장도 당신도.’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쾅.

“일단 앉게.”

“네, 부장님.”

유대명 검사장이 나가고 석찬영의 아부용 미소는 사라졌다.

“그래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뭐지?”

“노동부에서 송치된 사건 하나를 받고 싶습니다.”

“사건 재배당을 해달라는 소리야?”

“네, 맞습니다.”

검사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을 배당받는다.

인지 수사를 하는 특수부는 조금 다르지만, 타부서들은 엄청난 양의 사건들이 배당된다는 소리이다.

중앙 지검을 예로 들면 고소, 경찰 송치, 행정부에서 넘어온 사건 등 수도 없이 많은 사건들이 차장 회의를 통해 나누어진다.

사건을 나누어 받은 세 명의 차장검사들은 알맞은 부서의 부장들에게 사건을 배당하고 부장검사들은 다시 평검사들에게 배당한다.

사회적 이슈가 큰 사건은 검사장이 직접 사건을 배당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조금 복잡해 보일지 모르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재판부가 형성되는 법원과 달리 검사는 사건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성향에 따라 수사 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나 이 점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변호사와 친한 검사 혹은 차장과 부장이 원하는 입맛대로 수사를 진행시켜 줄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 상명하복이 심한 검찰에서 배당권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겠지.

모두가 나 같은 검사는 아닐 테니.

“흠… 무슨 사건인데?”

뭐지?

저 말투.

물어보는 게 아니라 떠보는 쪽에 가까운 말투 같은데.

“리드 아웃소싱 불법 파견 사건입니다.”

일단은 대답했다.

공안부 부장이 거는 심리 싸움에 이길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지금 하는 짓이 엄청 건방진 건 알고 있지?”

석찬영 부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순서대로라면 여기가 아니라 같은 소속 부장실을 먼저 찾아갔어야 하니까 말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박 부장 건너뛰고 나한테 직접 찾아온 이유 정도는 물어봐도 되지?”

“아직 조심스러워서 그랬습니다.”

“한 프로, 내가 공안 검사만 15년째야.”

검찰의 양대 산맥.

특수부와 공안부.

시대에 따라 우선순위가 엎치락뒤치락 하지만, 모종의 라이벌 관계와도 같았다.

부정부패 척결과 국가 체제 수호라는 명목하에 두 부서 모두 정권과 관련된 사건을 맡다보니 부딪히거나, 혹은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하니까 말이다.

“내 앞에서 눈알 굴려 봤자 소용없다는 뜻이야. 특수부 사건의 보안이 중요하다지만, 소속 부장에게까지 숨겨서 어떻게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겠는가.”

석찬영에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검사실보다 조사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공안부 검사.

거친 정치 사범을 상대하며 15년을 공안부에서 구른 내공이 내 등골을 오싹하게 한 것이다.

“그럼 죄송하지만 하나 여쭙겠습니다.”

“말해.”

“왜 저를 떠보시는 겁니까?”

“뭐?”

하나 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거친 걸로 따지면 조직도 마찬가지이고, 그 험한 곳에서 몇 십 년을 굴렀으니.

“제가 리드 아웃소싱 사건 챙겨갈 거라는 거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공안부 부장의 심리 싸움에 말이다.

그의 눈빛을 보아하니 싸우지 않고서는 사건 기록을 받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쉽게 생각했다.

공안부는 관심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쉬울 거라 착각했다.

“이상해서요. 사이즈도 작고 지극히 평범한 사건인데 사건 기록이 아직 부장님 손에 있는 게 말입니다.”

“아직 사건을 배당할 마땅한 검사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네.”

“그럼 저희 부장님한테 넘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 프로, 당돌한 건 좋은데 건방진 건 못 참아. 어디 부장한테 사건을 넘기라 마라 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제가 도를 넘었습니다.”

꾸벅.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섣부르면 안 될 것이다.

내 앞에 석찬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이 사람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나도 차장님한테 건의를 하고 사건을 넘겨 줄 거 아닌가.”

힐끔.

석찬영의 말에 식어 버린 커피를 바라보았다.

‘혹시?!’

그리고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합당한 이유를 듣고 싶은 건 석찬영이 아니라 유대명일지도 모른다고.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고.

“이유…….”

“그래 이유 말이야. KH 그룹 사건을 만지는 자네가 왜 리드 아웃소싱 노동 사건을 가져가려 하는지.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부장실 안은 나를 위해 만든 세트장일 것이다.

연출과 동시에 배우 역할까지 한 유대명과 석찬영.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어디까지 연관된 거야. KH 그룹도 유대명을 스폰한 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유를 들키지 않고 사건을 가져가려면.

“수사에 필요한 자료가 껴 있습니다.”

“그 자료가 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찬영의 검은 속을 조금 빨리 알았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특수부 사건이다 보니…….”

“말해 줄 수는 없다?”

“네.”

그만 떠보지.

당신 이미 나한테 들켰는데.

보이지 않는 칼이 입에서 나와 서로를 노렸고, 또 보이지 않는 방패가 필사적으로 칼을 막았다.

하나 석찬영은 내가 그 사실을 모를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유도 묻지 말고 넘기라는 소리인가? 한 프로 자네 눈에는 우리 공안부가 특수부 하위 부서쯤으로 보이나 보지?”

알고 있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건을 넘겨주지 않을 거란 걸.

다만, 쉽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장님.”

“참, 어이가 없네.”

조사를 밥 먹듯이 하는 공안부 검사.

그의 귀는 어렵게 들은 말일수록 더 신뢰할 것이다.

“그래… 무시할 만하지 검사장님은 특수부 출신이고, 총장님은 형사부 출신이니. 공안부가 동네북으로 보이겠지.”

“그런 거 아닙니다, 부장님. 수사상…….”

쾅!

석찬영의 손이 테이블을 내려친다.

“그러니까! 수사상 필요한 이유를 말하라고! 고집 부린다고 내가 넘겨줄 것 같나? 내가 동네북이라고 자존심도 없을 것 같아?”

진동에 흔들리는 커피 잔.

커피 잔처럼 내 마음도 흔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빤히 보이는 수사 기법.

내가 검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규모가 큰 조직은 형사부가 아니라 공안부에서 담당하기도 했고, 조사를 받아 보도했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검사가 된 지금은 확신한다.

책상을 내려치는 행동 또한 일종의 조사 방법이라는 걸.

“사실…….”

그럼 슬슬 흔들려 주는 척해 볼까.

“리드 아웃소싱 대표가 KH 그룹 우대현 회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흠… 무슨 연관?”

“도급과 파견 매출의 90% 이상이 KH 그룹에서 나오고 있으며 독점 계약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불법 파견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과 아웃소싱 업체에서 흔히 있는 일 아닌가? 임금 체불 문제만 없다면 약식기소만 하면 될 터인데.”

잘 포장된 이유를 넘겨주었다.

“혹시 몰라서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

물론 중요한 알맹이는 빼버렸지만.

“그것뿐인가?”

“네.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그랬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말씀드렸다시피 수사상…….”

“하하, 보기보다 고지식하구먼, 한 프로.”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내 눈알을 파악하려 하던 석찬영의 매서운 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 또한 가벼워졌고 그의 얼굴에 피어 있는 여유로운 미소까지.

석찬영의 그런 모습에 안심했다.

이 싸움에 승자는 나일 터이니.

“하하, 아니야. 나도 큰소리쳐서 미안하네. 그러길래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지 않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박 부장한테 말해서 자네 검사실로 사건 기록 넘겨주지.”

꾸벅.

“감사합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석찬영 부장실을 나왔다.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다.

뒤돌아 보인 내 미소를.

“눈알은 개뿔.”

문 앞에서 한 혼잣말까지도.

* * *

“검사님! 또 어디 다녀오시는 겁니까.”

“죄송해요. 사건 기록 넘어왔죠?”

“네. 그런데 이게 뭐예요?”

피해자 설득이 끝났는지 나민호 기자는 내게 점심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검사실.

발로 뛰는 검사 덕분에 현장을 나가지 못해서인지 정대필 수사관의 잔소리가 늘어 갔다.

“자, 잘 들으세요!”

그럼 이제 내보내 줘야지.

“리드 아웃소싱 사건 기록에 기사 파견 업무한 사람들 전부한테…….”

책상을 두 손으로 짚고 말하자, 수사관과 실무관 모두가 나에게 집중했다.

“고소장 받아 오세요.”

* * *

똑똑.

“휴…….”

긴장이 되는지 긴 한숨을 내뱉고 검사장실 문을 두드리는 석찬영.

“들어 와.”

이내 유대명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일단 앉지.”

유대명의 손짓에 석찬영은 자리를 찾아 앉았고, 꽤 여유로워 보였다.

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까.

“커피 한잔 마실 텐가?”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그래. 말해 보게.”

그 사실을 유대명 역시 알고 있는지 조용히 귀를 기울었다.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한테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으니 사건 기록을 넘겨 달라고.”

“하하하하!”

석찬영에 말에 검사장실이 떠나가도록 박장대소하는 유대명.

“…….”

하나 석찬영은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웃는 유대명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단하네, 진짜.”

“하하… 감사합니다.”

석찬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자네 말고.”

“네?”

척.

[고소장]

“이게 뭡니까…….”

유대명 검사장이 던진 서류가 석찬영 부장 앞에 놓였다.

“뭐긴 자네가 한치우한테 작업 당했다는 뜻이지.”

스르륵.

유대명 검사장의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재빨리 서류를 살펴보는 석찬영.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눈썹이 찡그려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씨…….”

“하하, 자네도 이제 감을 잃은 것 같네. 아무리 특수부라지만 공안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초임 검사한테 구워지고 말이야.”

털썩.

웃으며 얘기하는 유대명 앞에 석찬영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허, 왜 이러나. 이 사람아 농담일세.”

힐끔.

유대명의 말에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피는 석찬영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방심할 수 있네. 더군다나 자네는 한치우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는가.”

“죄송합니다. 그런데…….”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일어나던 석찬영은 어느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유대명의 위로가 진심이라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왜 초임 검사를 신경 쓰시는 겁니까?”

석찬영의 머릿속에는 몇 개의 물음표가 있었다.

리드 아웃소싱 사건을 홀딩 시키라는 검사장의 말에 대한 의문.

그리고 한치우가 올 테니 이유를 들어 보라는 의문.

마지막으로 한치우에게 향한 유대명의 지나친 관심에 대한 의문까지.

“그냥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검사라서 말이야.”

물론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유대명이 진실을 말할 리가 없을 테니까.

자신이 한치우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그런데 왜…….”

“사건을 홀딩시켜 놓고 이유를 들어 보라고 했냐고?”

“네, 맞습니다. 혹시 KH 그룹과…….”

“내가 스폰이라도 받고 있다는 소리인가?”

궁금증은 과했고 덕분에 웃고 있던 유대명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이거 자존심이 상하는데? 검사장이나 돼서 구멍가게 스폰이나 받을 것 같나?”

“네?”

“하하 농담일세.”

능구렁이처럼 석찬영의 몸을 휘감는 유대명.

얼마나 조이는지 석찬영은 숨조차 쉬기 힘들어 보였다.

“관심 있는 검사가 어떤 식으로 수사를 하나 몰래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네. 콕 집어 말하면 자존심 상하지 않겠는가. 자신감 넘치는 초임 검사한테 말이야.”

“아… 역시!”

석찬영이 느슨한 게 아니다.

공안부 짬밥을 15년이나 먹었는데 그럴 리도 없고.

다만, 검사장이 초임 검사를 건들 일이 없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한치우 검사 내가 잘 키워 볼 생각일세. 곱게 키우려고 건들지 않는 것이고.”

“혹시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십니까?”

“그런 건 없네. 지검장으로서 능력 있고 정의로운 검사를 고른 것뿐이지.”

“네, 알겠습니다. 저도 한치우 검사한테 최대한 협조해 보겠습니다.”

어찌 알겠는가.

눈알을 아무리 잘 본다지만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하는 유대명인데.

“그래. 그나저나 요즘 어떤가?”

“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지금도 충분하네. 내가 우리 석 부장한테 많이 의지하는 거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앞으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끄덕끄덕.

아무 말도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대명.

쾅!

그 모습을 본 석찬영은 뭔지 모를 의지를 불태우며 검사장실을 나갔다.

다만, 유대명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싸늘해졌다.

삐익―

― 네, 검사장님.

“검찰 국장 연결해.

― 네, 알겠습니다.

표정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싸늘해진 유대명이 인터폰을 통해 비서에게 말했다.

띠리릭―

“아이고! 선배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의 목소리가 검찰국장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오랜만이네, 심 국장.”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되는데.”

“법무부가 얼마나 좋으면 이제 라운딩도 안 나오네. 검사랑은 상종 안하겠다는 건가?”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저도 검사인데 어찌 선배님을 등지겠습니까.”

“말은 청산유수야 하여튼.”

톡톡.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대도 유대명의 검지와 눈은 고소장을 향해 있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세요, 선배님.”

“혹시 바닷가 근처에 부장 자리 남는 데 있나?”

“서초동 근처가 아니라 바닷가 근처면 얼마든지 있죠. 그런데 왜요?”

그런 유대명의 행동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럼 똘똘한 놈 하나 중앙 지검으로 올려 보내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앙 지검에 빈자리가 있었나? 공안부나 특수부는 당연히 아닐 것이고. 요번에 사고 친 형사부 정 부장 내려 보내시게요?”

고소장 속에서 쓸모없는 부하의 모습이 비추어졌으니까 말이다.

“아니. 이빨 빠진 공안 부장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 * *

턱!

책상에 놓이는 서류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우대현에게 폭행을 당했을 것이다.

“금방 오셨네요, 수사관님.”

“적혀 있는 주소로 가니까 대부분이 고소장 작성 해 놓으셨던데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뭐. 배달만 한 것뿐인데. 그나저나 고소장을 막 가져와도 되는지 걱정이네요.”

고소장이 접수가 되고 수사를 진행하려면 검사실로 배당이 되어야 한다.

전에 말했듯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말이다.

다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거악을 척결하는 특수부의 사건 사이즈는 어마어마하니까.

당연히 한 사건의 연계 사건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다.

“KH 그룹 수사하는 건 이미 허락을 받았고, 연관 사건의 고소장이니 제가 가져와도 상관없을 겁니다.”

“아∼ 그렇네요.”

리드 아웃소싱 사건이야 KH 그룹과 우대현의 혐의를 밝혀낼 명백한 사건이 아니었으니 명분이 없었지만, 고소장은 너무도 확실한 명분이 되어 줄 것이다.

“실무관님은 고소장 제가 가져왔다고 부장님한테 서류 올려 주세요.”

“네, 검사님.”

또한 아무도 내가 고소장을 가져온 것에 대해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왜?

토를 다는 순간 KH 그룹과의 관계를 의심받을 테니까 말이다.

“자, 그럼 피고소인 출석요구해 볼까요?”

형사소송법 제200조.

검사는 수사에 필요한 때에는 피의자 혹은 피고소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서류 보내 봤자, 법무 팀이 볼 테니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로 하죠.”

“네? 검사님… 아무리 그래도 중견 기업 회장입니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출석요구서 3회 이상 발부해도 찢어버릴 테고, 또 임의동행 요구해 봤자 변호사가 영장 핑계 대며 막을 게 빤하니까 말입니다.”

고소 사건이 들어오면 피고소인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다.

3회 이상 보냈음에도 거부할 시 소재 파악을 하게 되며, 소재가 확인되면 임의동행을 요구한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2제 1항.

임의동행을 불응할 경우 객관적 증거가 있으면 검사는 법원에 체포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을 수 있다.

복잡하지만 보통은 검사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즉, 임의동행까지 가지도 않을뿐더러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수배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단 말이다.

하나 높은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계의 높은 사람들이거나, 변호사가 모든 걸 대신해 주는 재계의 높은 사람들은 마지막 단계까지 간다고 해도 영장이 나올 확률이 희박하니까 말이다.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화려한 언변과 해박한 법 지식, 거기에 전관예우 게이지가 가득한 유명 로펌 변호사들이 얼마든지 상황을 바꾸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동영상 증거가 있다 해도 조작이라 우길 정도이니 뭐.

또 높은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어 주는 판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금 과장되어 말했지만, 증거가 완벽하지 않고서는 체포 영장을 발부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을 상대하는 특수부 검사들은 흔히 겪는 고초에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범죄자를 소환하는 게 아니라 모셔온다고.

“다행인 건 고소 사건이라 증거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이 곧 증거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고소했으니 무시하기도 힘들고요.”

“보통 이렇게 빼도 박도 못 하면 휠체어를 타곤 하시죠.”

“하하, 그럼 조서 들고 병원으로 찾아가죠, 뭐.”

“진짜 못 말리겠다니까, 우리 검사님.”

스윽.

철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정대필 수사관에게 출석요구서를 건넸다.

“그래요. 형식적이지만 수사관님이 걱정하시니 일단 보내시죠.”

“잘 생각하셨어요.”

“대신 어차피 보내야 될 거 세 개 한꺼번에 보냅시다.”

“아! 제발 검사님!”

꾹꾹꾹.

소리치는 정대필 수사관을 뒤로 한 채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힘차게 눌렀다.

“우대현 회장 비서실 번호가 이게 맞나……?”

띡―

― KH 그룹 비서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네, 수고하십니다. 서울 중앙 지검 특수부 한치우 검사라고 하는데 회장님 계신가요?”

― 어, 어디시라고요?

친절했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서.울. 중.앙. 지.검. 한치우 검사입니다. 회장님 좀 연결해 주시겠어요?”

― 잠시만요…….

인터넷에 전화번호가 나와 있기에 수도 없이 많은 장난 전화를 받아 봤지만 자신이 대응할 수 없는 듯 수화기 너머로 주변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 죄송하지만 회장님 연결은 불가능하고요. 법무팀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잠깐만요!”

띠리링∼

다급하게 불러봤지만 들려오는 것은 연결음 뿐이었다.

― 네 KH 그룹 법무팀 차정민 팀장입니다.

“휴… 중앙 지검 한치우 검사입…….”

― 장난 전화하시면 고소합니다.

“장난 전화 아니고요. 연수원 39기에 2010년 임관한 서울 중앙 지검 특수부 한치우 검사입니다.

이 정도면 장난 전화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 혹시 내가 아는 한치우 검사인가? 대법원장상 받은.

“네 맞는데 혹시 변호사세요?”

― 어. 나는 33기야.

“기수 빨로 말은 놓지 마시죠. 그쪽은 회사원이고 저는 공무원입니다.”

― 크흠, 죄송해요. 제가 좀 무례했네요.

목소리만 들렸지만 차정민의 불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 그런데 무례한 건 그쪽도 마찬가지인 거 같네요.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면 되지 다짜고짜 비서실에 전화해서 회장님을 찾으시면 어떡합니까.

하나 앞으로 있을 불편함을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나도 그렇고 우대현을 변호할 차정민도 그렇고 말이다.

“절차대로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 예. 공무원이 절차를 무시해서 되겠어요?

존댓말만 할뿐 말투는 여전히 보이지도 않는 후배를 대하는 듯했다.

“어차피 무시하실 거 같아서 종이랑 송달료 아낄 겸 전화로 출석요구하려 한 겁니다. 그런데 마침 잘됐네요. 팀장님한테 말하나 회장님한테 말하나 똑같을 테니.”

― 무슨 출석이요?

“우대현 회장님 운전기사 하던 분들이 단체로 고소를 하셨어요. 폭행으로 말입니다.

― …….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머리를 굴리느라 차정민의 입이 닫혀 버린 거지.

― 일단 공문 보내세요.

한참 지나서야 들려온 차정민의 목소리.

“예, 그러죠 뭐. 그런데 회장님 위치도 있고 하니 수사관 시켜 보내겠습니다.”

― 그냥 우편으로 보내시죠. 말장난 하지 마시고.

“우편으로는 방금 세 개나 보냈고, 지금 보내려는 건 우편으로 못 보냅니다.

―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또.

그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보려 한다.

“곧 체포 영장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우편으로 보낼 수는 없잖아요.”

* * *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차정민 팀장의 전화가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띠리링―

검사실 전화기는 쉬지 않고 울려 댔다.

“여보세요.”

― 어∼ 나 형사 2부장인데 내 방에서 커피나 한잔하지.

“지금 업무가 밀려서요.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연락하겠다는 차정민 팀장 대신 걸려온 전화들.

띠리링―

― 왕성진 의원실입니다. 저희 의원님이 식사 한번하자고 하시는데 시간 되세요, 검사님?

“죄송합니다. 나중에 연락 주시죠. 지금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요.”

전화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식사를 핑계로 한 만남.

웃으며 밥을 먹을 사이도, 밥이 목적도 아닌 그런 만남 말이다.

“갑자기 잘나가는 연애인이 된 기분이네.”

물론 그런 만남이 나에게는 필요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압력으로 찍어 누른다고 겁먹지 않겠다는 소리이고.

“저 검사님··· 차근차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급하게 하시면······.”

어느 정도 전화가 잦아들자 그제야 정대필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수많은 검사를 보필해 왔지만 나 같은 부류는 처음 봤기에 걱정이 앞선 것이었다.

“차근차근 하는 겁니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법에 있어서는 특히나 절차를 무시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수사관님.”

“네?”

“과연 저들이 차근차근 한다고 잘 따를까요?”

“그건······.”

“어차피 절차를 따르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절차를 간소화해서 진행하는 것뿐입니다.”

하나, 특수부 검사로서 절차를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금만 해도 그렇다.

출석요구 한 번에 수많은 고위층 인사가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만 봐도 내가 정도를 걷기란 힘들 수밖에.

그래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상대하는 피의자들은 거악이라는 걸 말이다.

“저쪽이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절차를 따라야 할 공무원들입니다, 검사님.”

“알고 있습니다. 절차를 간소화한 것뿐이지 따르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출석요구는 무시할 것이고, 임의동행은 거부할 게 빤하다.

결국 체포 영장 같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차피, 절차대로 해서는 절대로 소환할 수 없습니다.”

“그걸 잘 아시면서 건들면 어떡합니까······.”

그런 모습을 본 적 있는가?

답답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주먹을 뻗을 수 없는 상대에 울컥하는 모습.

정대필 수사관의 모습이 딱 그렇다.

“이런 식으로 건드려 봤자 체포 영장 발부받는 데만 불리해질 뿐입니다, 검사님.”

“일부러 약을 올리는 겁니다.”

“약을 올리다니요?”

“그래야 KH 그룹 법무팀이 움직일 거 아닙니까.”

내가 약을 올리는 이유는 법무팀의 신경을 한쪽으로 모으는 것이다.

한쪽으로 신경이 쏠린다면 반드시 빈틈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당연하죠. 그렇기에 대응을 할 것이고 영장을 받기가 힘들어질 거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제가 받을 영장의 혐의는 폭행이 아니니까.”

미끼.

폭행 사건은 우대현 회장에게 던지는 미끼이다.

“네?!”

하나 그 미끼를 문다고 해도 낚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거대해 낚싯대가 부러질 확률이 높으니까.

“어차피 폭행으로는 영장이 나올 확률도 매우 적고요.”

단체로 고소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체포 영장이 안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사위를 둔 덕도 있겠지만, 사회적 위치가 있으며 도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에 말이다.

“도저히 기각할 수 없는 죄목을 적어 영장을 신청해야 할 겁니다.”

“그런 죄목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입증해야죠.”

거기에 ‘폭행이라는 범죄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라는 기각 사유서가 돌아올 게 빤하다.

“횡령과 탈세, 그리고 영업 방해 등등······.”

그렇기에 거대한 그물을 만들 것이다.

너무도 촘촘해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런 그물을 말이다.

“폭행 사건에 정신이 팔려 있는 법무팀의 허를 찌르는 겁니다.”

미끼에 정신이 팔려 낚시꾼이 촘촘한 그물을 만들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와······.”

울컥하던 정대필 수사관의 입이 벌어졌다.

“나민호 기자의 제보에 의하면 말씀드렸던 죄목에 충분한 혐의가 있고, 저는 그걸 입증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특수부 검사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걸.

“그리고 법무팀은 오로지 폭행 사건만을 대비하고 있을 거고요.”

“그럼 저는 뭐부터 할까요?”

그렇기에 정대필 수사관은 더 이상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일단······.”

그리고 특수부 검사의 자질을 인정받은 나는 수사관을 지휘하려 한다.

톡톡.

[FS 식품]

“여기부터 다녀오시죠.”

FS 식품

그물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여기··· 식자재 납품하는 업체 아니에요?”

“네. KH가 만든 스무 개가 넘는 외식 브랜드에 거의 모든 식자재를 독점으로 납품하는 업체입니다.”

“아! 그때 말씀하신 우대현 회장 연관 업체?”

“네, 맞습니다.”

리베이트를 받고 FS 식품에게 납품권을 준 것인지, 아니면 차명으로 회사를 설립해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과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일감을 몰아준 것일 수도 있다.

“일감을 주고 리베이트를 받았다면 배임이고, 자신의 이득이나 지인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업체를 선정한 거라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네요.”

“흠··· 나민호 기자가 다시 보내 준 자료 있죠?”

“잠시만요.”

정대필 수사관이 빼곡한 책상의 서류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여기 있네요.”

그리고 이내 꺼내 든 서류 하나.

나민호 기자는 식당에서 말한 대로 조금 더 다듬어진 서류를 검사실로 보내왔다.

“보시면 FS 식품에 관해서 조사한 게 있을 겁니다.”

“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죠?”

피식.

아닐 거라는 믿음은 내가 보인 미소에 의해 깨져버렸다.

꽈악.

“저는 수사관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꽉 잡으며 말하는 나로 인하여 눈빛이 떨려 온다.

“수사관님이 증거자료들을 모아 올 거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검사님······.”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FS 식품을 도와줄 KH 그룹은 폭행 사건에 온 신경이 쏠려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부담을 덜어 줄 거란 기대감에 내 입에 흔들리던 눈빛을 고정하는 정대필 수사관.

“FS 본사 입구에서 기다리시면 알아서 자료들을 가지고 나올 겁니다.”

“수사관도 검사 칠 수 있어요.”

기대감이 다시 한번 무너지자 주먹을 꽉 쥐며 나를 노려본다.

“하하, 장난치는 게 아니라 정말 힌트를 드리는 겁니다.”

“근데 왜 제 귀에는 힌트로 안 들리는 거죠?”

“저는 지금 FS 식품의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하러 법원으로 갈 겁니다.”

영장을 청구하는 순간 우리가 FS 식품을 노리고 있다는 걸 KH 그룹이 알게 될 것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이자 우대현 회장의 사위가 중앙 지법 법원장과 연수원 동기이니까 말이다.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일단 수사관님 먼저 출발하시죠.”

“그럼 저는 지금 영장도 없이 FS 식품을 찾아가 권총 들이밀고 관련 서류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면 되겠네요.”

“하하, 그럼 그러실래요?”

“뭐요?”

그렇게 영장 청구서는 결재 라인을 통해 우대현 회장 귀에 들어갈 것이다.

“자! 장난은 그만.”

그럼 어떤 식으로 나오겠는가?

“영장이 청구된 사실은 안 FS 식품과 우대현 회장은 제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겠죠.”

“그래서요?”

“그래서라뇨. 그렇게 되면 당연히 제가 봐서는 안 될 서류들을 처분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끄덕끄덕.

정대필 수사관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보통 기밀 자료 패기는 신중하게 하겠지만, FS 식품은 그렇게 큰 기업이 아닙니다. 즉 내부에 법무팀이 없다는 소리죠.”

“도와줄 KH 그룹 법무팀은 폭행 사건에 매달려 있으니 우왕좌왕하며 자료들을 일단 옮겨 놓을 거라는 거죠?”

“하하, 드디어 제 힌트를 알아채셨네요.”

“어떤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서류를 옮기는 장면을 봐도 저는 압수를 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영장 없이 개인 자산을······.”

“상관없습니다. 수사관님은 앞에 계시다가 연락만 주시면 됩니다.”

“연락이요? 누구한테 말입니까.”

나는 대답대신 와이셔츠 포켓에 한 장의 명함을 넣었다.

“나민호 기자한테요.”

“혹시?”

“네. 압수는 영장이 필요하지만, 취재는 영장이 필요 없죠.”

지휘 라인으로 영장을 기각하고, 또 수사 중인 검사를 찍어 누를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게 부장판사건 중견 기업 회장이건 말이다.

“어디 보자.”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며 말했고, 정대필 수사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FS 식품과 KH 그룹의 의혹 기사가 나왔을 텐데.”

피식.

그리고 나는 웃으며 검사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이제부터 쇼 타임.”

* * *

서울 중앙 지법.

영장이 청구된 지 2시간쯤 흐른 시간.

법원에는 영장 전담 판사들이 따로 있다.

법원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체포와 구속영장을 담당하는 판사와 압수수색영장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하루에도 수백 건의 영장을 처리한다.

“휴··· 이제 슬슬 입질이 올 텐데.”

물론 양이 많다고 대충 처리하지는 않는다.

영장은 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할 수도 있고, 사유재산을 압수, 혹은 수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 그만큼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기도 한다.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한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빼돌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영장 전담 판사들의 주말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보안은 개뿔.”

다만, 보안이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잘 안 지켜질 거라 확신하고 배팅을 한 것이다.

“의혹 기사 내보냈으니 뭐.”

나민호 기자가 속한 송암 일보는 FS 식품과 KH 그룹의 연관성을 인터넷 뉴스로 내보냈고, 법원과 우대현 회장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 지금 폭행 사건을 기소하겠다는 내 으름장에 머리가 혼란스럽겠지.

어디를 막아야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또 우대현의 사위이자 고법 부장판사는 특수부 한치우 검사가 청구할 영장이 언제 들어올지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을 것이다.

동기인 중앙 지법 법원장을 통해.

그리고 조금 당황할 테다.

내가 청구한 건 체포 영장이 아니라 압수수색영장이었으니까.

“슬슬 가 볼까.”

왼손을 흔들며 확인한 시계는 곧 전화가 울릴 것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지잉―

“여보세요.”

― 지금 FS 본사 앞에서 사람들이 박스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검사님.

“나 기자님은요?

― 오고 계신답니다.

“알겠습니다. 앵글 잘 나오도록 위치나 선정해 놓으세요. 하하.”

딸깍.

늦은 밤.

서초동은 한산해졌지만, 법원과 지검에 불은 아직 환했다.

그리고 그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는 한 장의 종이를 받아 올 것이다.

똑똑.

[영장 전담 재판부]

문을 열고 들어온 판사실.

세 명의 판사들이 수도 없이 쌓여 있는 영장을 검토하고 있었다.

“한 검사? 왜 또 왔어요?”

“영장 받으러왔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검토한 다음에 발부할지 기각할지 결정하겠습니다.”

아니.

허락을 받은 다음이겠지.

이미 검토가 끝난 듯 내가 청구한 영장은 저 멀리 치워져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결정해 주셔야 될 것 같은데.”

“뭔 소리야?!”

“뭔 소리인지는 이걸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띡.

아무런 말없이 켠 TV.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세 사람이 영장을 발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송암 일보 나민호 기자입니다. 지금 저는 KH 그룹과 불공정 거래 의혹이 있는 FS 식품 본사 앞에 나와 있는데요······.

바쁘게 박스를 들고 나오는 브라운관 속 FS 식품 직원들.

자신들을 찍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나민호가 타고 있는 차량의 선팅이 꽤 잘돼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알고 있다.

입을 벌리며 보고 있는 세 판사들을 포함해서.

“이제 영장 발부해 주시죠.”

* * *

내가 모는 낡은 차가 굉음을 내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탓에 나도 모르게 엑셀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고, 덕분에 순찰을 돌던 차량이 뒤에 따라붙었다.

삐용삐용―

“충성, 신호 위반에 과속하셨습니다. 면허증 보여 주시죠.”

스윽.

[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 한치우]

“충성!”

“죄송합니다. 급한 일 때문에······.”

창문을 내리고 경례를 하는 순경에게 조수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압수수색영장]

“아닙니다! 얼른 가시죠, 검사님. 신호 통제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범칙금 통지서는 제 검사실로 보내 주십시오.”

“공무 중이신 거 아닙니까?”

“공무 중이긴 한데··· 긴급차량이 아닌 차량으로 신호위반을 했으면 벌금을 내야죠. 보내세요, 정하늘 순경님.”

명찰을 보며 순경의 이름을 불렀다.

법을 가장 먼저 수호해야 하는 검사.

그런 위치에서 특혜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법은 법이니까.

어떤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니까 말이다.

아, 물론 나쁜 새끼들은 빼고.

“네 그럼 보내겠습니다, 검사님. 충성!”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끼익―

잠깐의 브레이크를 떼고 차량을 다시 출발시켰다.

FS 본사가 있는 남양주.

서울 근교이지만 막히는 차량 덕분에 꽤 시간이 걸렸다.

“휴··· 바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보면 검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현장에 나가 경찰들을 지휘하며 조폭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하나 실제로 검사가 현장에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관들이나 관할구역 경찰들이 검사의 수사권 아래에서 움직이며 검사는 사무실에서 상황을 보고 받고, 필요한 영장을 청구해 주거나 피의자들을 기소할지에 대한 결정문 등을 쓴다.

귀찮거나 권위적이어서가 아니다.

검사실에 앉아만 있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업무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그래서 수사관을 마누라보다 더 잘 만나야 된다는 소리가 검사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수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검사의 재량이 달라지니까.

띠리링―

― 검사님 어디쯤이세요?!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상황 어때요?”

― 서류들 트럭에 거진 다 옮겨 실은 거 같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오셔야 하는데······.

“조금만 시간 좀 끌어 주세요.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다만, 모든 검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 달에 수백 개의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들과 달리, 특수부 검사는 수백 개의 사건들과 맞먹는 한두 개의 사건을 처리하니까 말이다.

즉, 기록 하나하나를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하고 미심쩍은 면이 있으면 직접 현장에 나가기도 한다.

또 인지 수사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 검사 특성상 경찰들과 정보 공유가 되지 않는 사건이 대부분이고, 보안 유지를 위해 같은 검사실 소속 수사관이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

그게 내가 직접 영장을 들고 FS 본사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끼익―

차량은 FS 식품 주차장에 들어서고 내 시야에는 꽤 많은 승합차들이 보였다.

작동되지 않는 기계처럼 빈 파란 박스를 들고 멈추어 있는 여려 수사관들.

곧이어 수사관들에게 영장이라는 배터리가 들어갈 것이다.

“검사님!”

그중 내 차량을 가장 먼저 알아본 정대필 수사관이 차가 멈추기도 전에 나를 부르며 달려온다.

얼마나 초초했는지 바짝 말라 있는 입술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얼른 가시죠.”

하지만 정대필 수사관의 마른 입술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어 줄 한 장의 서류.

[압수수색 영장]

그 서류가 내 손안에 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빨리 영장을 받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칭찬은 나중에 천천히 듣을 테니 일단 일부터 하시죠.”

“네!”

영장을 건네받은 정대필 수사관과 함께 서둘러 FS 본사를 향해 뛰었다.

“카메라 안 치워?!”

“이 서류들은 뭐죠? 한 말씀만 해 주시죠!”

“당신이 뭔 상관인데!”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는지 나민호 기자는 상자를 들고 나오는 FS 직원들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덩치가 제법 돼 보이는 직원들.

아마 사무직 직원들이 아닌 보안 요원들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밀리지 않는 나민호 기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뛰는 기자의 사명감과 함께 개인적인 원한까지 더해진 나민호 기자를 뚫기란 쉽지 않겠지.

“송암 일보 나민호 기자입니다. 오늘 아침 KH 그룹과 의혹 기사가 난 후 갑자기 대량의 내부 자료를 옮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치우라고!”

빠악!

“아!”

FS 직원들에 의해 바닥을 나뒹구는 나민호 기자.

“기자님··· 그만하세요. 이러다 다치겠어요.”

그를 말리는 카메라 감독이었다.

수도 없이 취재를 했고 수도 없이 보도를 하려 했을 것이다.

하나 광고로 먹고 사는 언론사가 꽤 많은 광고료를 내는 KH 그룹을 건드리기란 쉽지 않았다.

“저를 믿으세요, 감독님. 이거 특종입니다.”

다만, 광고료를 포기해도 될 구독료와 시청률이 나올 수 있다면?

그런 엄청난 특종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 보도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송암 일보의 높은 분들의 뒤통수를 친 두 사람이 있다.

나민호 기자와 송암 일보의 사회부 부장.

TV 송출은 몰라도 인터넷 뉴스 정도는 통과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부 부장은, 나민호 기자의 원한을 알고 있는 꽤 좋은 선배였기에 이 일을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잠깐 스탑!”

또한 내가 개입되는 순간 아무도 보도를 막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서로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 경쟁을 하려 들 테지.

수만 명이 보는 인터넷 뉴스는 수천만 명이 볼지도 모르는 9시 뉴스로 바뀌게 될 테니까.

힐끔.

“기자님,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와 수사관님한테 맡기시죠.”

초라하게 바닥에 나뒹굴던 나민호 기자의 눈은 안정을 되찾았고, 당당하게 서 있던 FS 직원들은 불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스윽.

“서울 중앙 지검 특수 1부 한치우 검사입니다.”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을 보이며 말하자 그 불안감은 더욱 심해져 간다.

“무슨 일이시죠······.”

까딱.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수많은 수사관들 앞에 있던 정대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FS 식품 본사와 회사 소유 모든 물건에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더 이상 바짝 말라 버린 입술도 초조함에 갈 곳 잃은 눈빛도 보이지 않는 정대필 수사관.

그의 손에는 영장이, 뒤에는 든든한 수사관들이 있었다.

부르릉.

“시동 끄세요!”

“문서 파쇄 업체 차량입니다. 저희랑은 상관없는······.”

“차량은 타 업체 소유일지도 모르지만, 실려 있는 서류들은 FS 식품의 소유 재산입니다. 즉 압수수색영장 범위 안에 들어가는 물건이지요.”

그렇기에 꼼수를 부려 보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법치주의 아래에서는 어떤 것보다 법이 우선이니까 말이다.

“지금 하던 거 전부 멈추시고 서류들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이 수사관은 가서 화물차 시동부터 꺼.”

“네! 장 수사관님.”

그렇게 영장 집행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지만, 몇몇 보안 요원들은 반항이라도 해 보려는 듯 서류가 든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내려놓으세요. 얼른!”

“이건 회사 소유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물건입니다.”

“그건 제가 판단합니다. 지금 당장······.”

톡톡.

수사관과 보안 요원들 간의 실랑이.

정리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정대필 수사관의 어깨를 치며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잘 들어요. 저희는 형사소송법 제215조의 의한 정당한 영장 집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136조에 의거하여 영장 집행을 방해하거나 위력을 행사할 시 현행범으로 체포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엄포를 하는 나와 빨간 불이 켜져 있는 카메라를 번갈아 보는 FS 식품의 직원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FS 직원들의 행동은 전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영장 집행하세요! 방해하는 모든 인원에 대해서 현행범 체포를 허가합니다. 위계나 폭력을 행사할 시 공권력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허가하며 책임은 제가 집니다.”

“네, 검사님!”

현장에 직접 나온 검사가 내린 명령.

덕분에 수사관들의 행동은 더욱 빨라졌다.

“여성 수사관들은 여성 직원을, 남성 수사관들은 남자 직원의 몸을 수색하세요.”

“네!”

파란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일제히 움직이는 수많은 수사관들.

털썩.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 박스들처럼 카메라를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는 누군가의 마음도 내려앉을 것이다.

끼익―

“당신들 뭐야?!”

누군가의 떨어지는 마음이 자신의 목과 연관되어 있던 한 사람.

급하게 FS 식품으로 도착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낯이 익다.

“누구십니까?”

“FS 식품의 법무팀······.”

흠칫.

남자의 소개는 내 신분증을 보자 멈추었다.

왜?

이름을 말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테니까.

“법무팀이요? 제가 알기로는 FS 식품에는 법무팀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아니, FS 식품의 법무팀이 아니라 FS 식품 대표님의 변호사입니다.”

하나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상하네요. KH 그룹의 법무팀장님이 왜 FS 식품 대표님의 변호사를 하고 계시는지······.”

“······.”

잊어버리기에는 조금 특이한 목소리였다.

KH 그룹에서 내 전화를 받던 차정민의 목소리가 말이다.

“KH 그룹과 FS 식품의 법무가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후······.”

자신의 이름과 신분이 탄로 나자 긴 한숨을 쉬는 차정민.

하나 당황하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저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납품 업체입니다. KH 그룹의 법무팀장으로서 FS 식품 대표님의 법무를 지원하는 게 이상한가요?”

힐끔.

카메라를 의식한 차정민이 대답을 하며 조금씩 나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적당히 하시죠. 회장님과 자리 마련할 테니.”

그리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진짜 대답.

“무슨 자리요?”

“원하는 거 편히 말씀하실 수 있는 자리요.”

“하하, 지금 수사 중인 그룹의 변호사가 담당 검사를 회유하는 겁니까?”

“그쪽 다칠까 봐 그래요. 폭행 사건 피해자들과 정식으로 합의하고 대국민 사과할 테니까 이쯤하시라는 겁니다. 그 정도 건수면 충분하잖아요.”

힐끔.

다시 곁눈질로 카메라를 힐끔거리던 차정민이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정당한 영장 집행이니 협조해 주시죠, 팀장님.”

“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그리고 취재도 이쯤하시죠. 라이브인 것 같은데 협조한다 말했으니 앞으로 촬영하는 모든 영상은 정식적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스윽.

꼬투리를 잡힐 걸 빤히 알기에 나민호 기자에게 손짓했고, 카메라는 바닥으로 향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팀장님들은 서류 하나도 빠짐없이 검찰에 넘기셔도 됩니다.”

상황을 정리하는 차정민의 행동은 노련했다.

“그럼 이만.”

부우웅.

금세 자리를 떠난 차정민의 빈자리에는 매연만이 남았다.

뭘까.

저 자신감 넘치는 행동의 의미는.

“검사님!”

차정민의 행동에 벙쩌 있던 나를 깨우는 정대필 수사관의 목소리.

그 목소리 덕에 자신감 넘치던 차정민 변호사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KH 그룹 부사장이 검찰에 자수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에요?”

“그게······.”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건 차정민 변호사뿐만이 아니라는 걸.

또 차정민 변호사가 꽤 유능한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걸.

“FS 식품 리베이트건으로요.”

* * *

― 어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KH 그룹과 FS 식품의 불공정 거래 의혹에 KH 그룹 권창민 부회장이 검찰에 자수했습니다. 권 부회장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가 귀와 머리를 콕콕 찔러 댔다.

압수수색 소식을 들은 KH 그룹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권창민을 검찰로 던져 버렸다.

“이런 씨…….”

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탓에 지검으로 돌아왔지만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검사님?”

“아니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높이 쌓여 있는 압수수색 박스들로 가득한 검사실.

힐끔.

“휴…….”

박스를 보자 자연스레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대현 회장을 치기 위해 힘겹게 모아 온 자료들.

그리고 그 자료들을 떠안기 위해 검찰로 자수한 권창민 부사장.

― 또 폭행으로 피소된 우대현 회장은 피해자들과 완만한 합의를 했다 전했으며,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KH 그룹 회장직에서 사퇴하기로…….

우대현 회장과 차정민은 내가 찌른 검을 완벽하게 방어했고, 동시에 꼬리까지 잘라 버린 것이다.

“하아…….”

담배를 태우지 않는 탓에 지검 옥상에 올라온 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탁 트인 전경을 보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검사실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 댔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톡톡.

“소리라도 한 번 지르지 그래, 한 프로.”

“부장님…….”

서초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 뒷모습에서 모든 걸 읽은 박현주 부장이 어깨를 치며 말했다.

“통수를 치려다 통수를 당했더구나.”

“면목 없습니다…….”

“나한테 면목 없을 게 뭐가 있어. 차정민이 고놈 능력 있는 특수부 검사였어. 지금은 그 능력을 돈으로 바꾼 것이고.”

박현주 부장의 말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됐다.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차정민이 쌓아 온 관록이 조금 더 많았다는 위로.

그렇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제가 너무 얕본 것 같습니다. 증거자료만 확보하면 기소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형사부 검사들이 조폭 수사할 때 형님 대신 들어온 대타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줄 알고 있나?”

잘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응? 의외인데.”

누구보다 내가 가까이서 지켜봤으니까 말이다.

“회유와 협박, 넘어가냐 안 넘어가냐는 대타의 마음이죠.”

“그래 맞아. 그런데 경제 사건에서는 조금 달라.”

“다르다니요?”

“형사부 검사들은 대타와 직접 싸우지만, 특수부 검사들은 대타를 보낸 사람과 싸워야 되거든.”

처음 KH 그룹 사건을 맡을 때 박현주 부장이 못 박아 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건을 맡기지만 자신이 커버해 줄 수는 없다고.

“강력 사건에서 대타가 인정하면 형님을 잡아넣을 수 있지만, 경제 사건의 대타는 인정한다고 해도 회장님을 잡아넣을 수가 없어. 왜 그런 줄 알아?”

분명 그렇게 말했음에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지 넉담을 가장은 힌트가 길어진다.

“일개 조폭의 꼬리와 대형 경제 사범의 꼬리는 몸통이 다르거든.”

조폭 두목의 꼬리는 같다가 붙이면 그만이지만, 회장님의 꼬리는 어디다가 붙여야 할지 모를 것이다.

너무나 비대한 몸뚱어리에 붙어 있는 꼬리가 많고, 또 떨어져 나간 꼬리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검사로서는 맥 빠지는 사실이네요.”

“그렇지.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래. 그리고 KH 그룹 부사장이면 우대현 회장 처남이야.”

“대타인 걸 빤히 알지만 인정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하하, 귀신같이 알아듣는구나. 맞아. 나도 아픈 손가락 대타로 보냈으니 검찰 너희도 어느 정도 인정해라 그 뜻이겠지.”

후∼

박현주 부장이 내뿜은 담배 연기에 깊은 한숨이 섞여 나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관행이 대한민국에서 번번이 일어나지.”

“저는 그런 관행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힌트를 주지 않았나.”

“어?!”

피식.

머릿속에서 박현주 부장의 힌트가 맞추어지고 나도 모르게 입으로 외마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박현주 부장의 입꼬리는 자연스레 올라갔다.

“혹시…….”

“그래, 맞아. 자네 머릿속에 있는 게 내 힌트에 대한 정답일 거야.”

꾸벅.

“감사합니다, 부장님!”

고개를 숙이며 큰 소리로 전한 감사 인사.

박현주 부장의 몇 마디가 처진 내 어깨를 다시 올려 주었다.

“저… 죄송하지만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허허, 알겠네.”

치우는 서둘러 옥상 문을 박차고 내려갔고, 혼자 남은 박현주 부장은 담배를 비벼 껐다.

치익―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곧 현실을 깨닫겠지만…….”

* * *

무시.

내가 생각한 답은 무시였다.

모든 걸 떠안으려 자수한 권창민 부사장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하면서 말이다.

“저, 검사님. 권창민 부사장 조사할까요? 아까부터 조사실에서 있었는데…….”

“아니요. 형식적인 조사 후에 귀가시키세요.”

“네?”

꼬리와는 상대하지 않는다.

모든 걸 떠안으러 온 꼬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즉, 우대현 회장의 아픈 손가락을 검찰이, 아니, 내가 인정하지 않을 거란 소리다.

“이미… 여론에 보도가 나가서 그냥 귀가시키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래서 대타인 걸 빤히 아는데 조사하자는 겁니까?”

“검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KH 그룹 부사장이자 우대현 회장의 처남입니다. 국민들이 납득하기에 충분한 대타입니다.”

왜?

회사 내에서 권창민의 위치와 우대현 회장과의 관계.

모든 걸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쇼.

매형 대신 실형을 살 각오를 하고 있는 권창민의 굳은 의지.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끓어오른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말이다.

“제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던 게 있습니다.”

“착각이요?”

“KH 그룹은 꽤 괜찮은 브랜드를 소유한 그룹입니다.”

그게 여론이 덜 끓어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KH 그룹의 외식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과 훌륭한 맛 덕분에 국민들에게 꽤 인기 있는 기업이었고, FS 식품과의 불공정 거래는 누군가가 책임만 진다면 쉽게 잊힐 것이었다.

자신이 KH 그룹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점주가 아니라면 말이다.

거기에 기업 초창기부터 시행해 온 무료 급식까지.

좋게 쌓아 온 이미지가 여론의 방패가 되었다.

“그게 왜요?”

“이번 사건이 뉴스에 나오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느 정도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말입니다.”

폭행 사건은 우대현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무마했고, FS 식품과의 불공정 거래는 보다시피 대타가 와 있다.

힐끔.

창문 너머 조사실에 보이는 권창민 부사장의 모습.

휴∼

그는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떠안아야 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여론의 민감한 특수부 사건을 수도 없이 경험해 본 차정민 팀장이 그 사실을 이용한 겁니다.”

그런 권창민의 모습을 보며 말했고, 정대필 수사관 역시 내 시선을 따라 조사실을 바라보았다.

끄덕끄덕.

“차정민 변호사가 그 나이에 KH 그룹 법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가 있었네요.”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정대필 수사관.

“그러게요. 상대하기 벅차네요. KH 그룹이 아니라 차정민 팀장이 말입니다.”

나 역시 그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통수를 치려다 통수에 당했으니 이제는 정공법으로 가야죠.”

내가 아무리 대타라 떠들어 봤자 국민들의 뇌리에 박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미 재빠른 대처로 여론을 휘어잡은 차정민 덕분에 말이다.

“정공법이요?”

“네. 눈에는 눈 여론에는 여론으로요.”

폭행 사건이라는 미끼.

나민호 기자와 여론을 이용한 꼼수.

모든 것은 차정민 팀장에 의해 간파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정면 싸움을 해보려 한다.

특수부 수사를 빤히 알고 있으며 꼼수가 통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말이다.

“일단 조사실 안에 들어가서 전해 주세요. 한숨 그만 쉬라고 당신은 대타로써 충분하지 않다고.”

또 우대현에게는 아쉽지만 국민들은 대타로써 권창민 부사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차정민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테니까.

또 그럴 자신이 있으니까 말이다.

“어디 가세요!”

“여론부터 바꿔 보려고요.”

* * *

[KH 피자]

KH 그룹의 수많은 외식 브랜드 중 단연 1등인 브랜드.

외국계 기업이 장악한 피자 브랜드들 중에서 유일하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국내 브랜드였다.

[민호 피자]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작은 피자집 간판.

입구부터 바글바글한 KH 피자와 대비되게 테이블을 채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테이블에서 먹어도 될까요?”

“네, 가능합니다. 혼자 오셨나요?”

“네. 콤비네이션 피자 작은 걸로 하나 주시죠.”

나이가 제법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의 응대.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응대부터 피자 조리, 그리고 서빙까지 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었지.

“맛있게 드세요.”

“저…….”

“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서울 중앙 지검 한치우 검사라고 합니다.”

[나백호]

제법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내 시선은 중년 남성의 명찰로 향해 있었다.

“나민호 기자 아버님이시죠?”

“우리 아들내미를 아시나요?”

“나민호 기자와 친구이니 말씀 편히 하시죠, 아버님.”

“친구라고 하기엔 나이가…….”

“하하, 사회에서 만나 마음 통하면 친구죠.”

“아, 그래요? 우리 아들놈이 훌륭한 친구를 두었네.”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나민호 기자의 아버지.

하나 나는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아내를 땅속에 묻은 슬픔을 말이다.

“그런데 피자를 좋아하나 보네. 검사나 되는 양반이 혼자 피자집에 다 오고 말이야.”

“종종 먹습니다.”

사실 피자를 좋아하지도, 그의 슬픔을 위로하러 온 것도 아니다.

“어머님 문제로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누라?”

“네.”

“요즘 KH 그룹 뉴스에서 떠들어 대던데 그것 때문에 온 거요?”

“네, 맞습니다.”

굳어지는 표정.

손님을 응대하는 사장의 얼굴은 잡상인을 보는 차가운 시선으로 변해 있었다.

“어머님 사건을 언론에 발표하고 싶습니다.”

“돈 안 받을 테니까 나가요.”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죠, 아버님.”

“뭔 생각? 우대현 회장 못 잡아넣을 것 같으니까 우리 마누라 이용해서 여론의 표라도 얻어 볼 생각인 거요?”

나백호의 말은 내 머릿속과 정확히 일치했다.

“네, 맞습니다. 다만…….”

“내가 못 배웠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쇼? 우리 마누라 죽게 만든 KH 그룹과 우대현 회장. 검찰이, 아니, 당신이 잡아넣을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소.”

“그래서 아버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남편이 무능력해서… 대한민국이 썩어 빠져서… 힘없이 마누라 죽는 것만 지켜봤소. 그 심정을 검사 양반이 알기나 해?”

“…….”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

“그냥 가슴에 묻는 게 낫소. 불쌍한 우리 마누라가 남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털썩.

“죄송합니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부탁 때문이 아니라 검사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말이다.

흠칫.

“지금 뭐하는 거요! 얼른 일어나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을 대신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당황한 나백호가 나를 일으켜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한테 기회를 한 번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참… 이상한 검사 양반이네…….”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건 나백호의 당황스러움이 아닌 용서였으니까 말이다.

“당신이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무릎을 꿇고 그러는 거요?”

“검사니까요. 법을 수호하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을 책임져야 할 그런 검사 말입니다.”

“그런 검사가 당신 하나 밖에 없는 거요?”

“그건 잘 모릅니다만…….”

내가 나백호의 부인을 죽게 만든 게 아니라고?

아니.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고 수도 없이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참 웃기다.

자신들을 위해서면 검사동일체를 수도 없이 외쳐 대는 검찰이 누군가의 잘못을 물어야 될 때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게 말이다.

“지금 제가 사모님의 억울함과 아버님의 죄책감을 풀어드릴 검사라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

한숨이 섞인 옅은 미소.

스윽.

그런 미소와 함께 나백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요. 속는 셈 치고 다시 한번 믿어 보지 뭐.”

깡으로 싸우는 검사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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