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14/35)

제4장

이남윤의 긴 얘기가 끝나고 서윤호와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검찰국장실에서 이남윤과 마주친 유대명.

뒷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이남윤은 더 이상 들려줄 게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동기와 사적인 얘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또 오해를 풀어 보려 했지만, 유대명은 귀를 닫은 채 분노가 가득한 눈빛을 보이며 영월로 떠났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4년 후 유대명이 돌아오기 전까지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영월로 찾아간 이남윤은 문전박대를 당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의 목적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관계만 끝났을 뿐.

한 사람은 부당함과 타협했고, 한 사람은 자신이 부당해지기로 했다.

높은 자리를 위해서.

이남윤은 국민을 위해, 유대명은 자신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남윤의 행동이 올바르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가 아름답다고 해도 과정 속에 더러움이 있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뿐이니까.

“그런데 치우야. 이남윤 차장님 말씀대로라면 진작에 검사장이 되셨어야 하는데 왜 안 되셨을까?”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대검과 법무부를 거친 이남윤은 당연히 특수부로 발령받을 줄 알았지만 형사부를 택했다.

오히려 특수부로 향한 것은 영월에서 올라온 유대명이었다.

대선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아주 중요한 상황에서 말이다.

열심히 키워 온 사냥개는 집을 나갔고, 시골에서 갓 상경한 출처 없는 강아지가 빈집을 차지한 격.

무슨 이유였을까?

다만… 과거를 되집어 보니 몇 가지 힌트가 보였다.

“형 혹시 기억나? 우리 어렸을때 대통령 뇌물 의혹 때문에 정권 바뀐 거.”

시간상으로는 20년 전. 내 머릿속으로는 30년도 더 된 사건이였다.

“아 맞다! 애기 때라 잘 기억은 안나는데. 대선 일주일 전에 터져가지고 지지율 70% 여당 후보가 일주일 만에 17%로 떨어져서 낙선했잖아.”

부당과 타협했기에 사라진 이남윤에 대한 존경심.

긴 이야기를 듣기 전과는 같지 않겠지만,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는 괴물이 되지 않았으니까.

“어렸을 땐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네. 익명의 제보자가 제보한거잖아, 그 사건.”

“그렇지.”

“그런데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자료였는데… 대통령은 가까스로 실형은 피했지만 대통령 예우가 박탈됐고, 뇌물을 준 장 회장은 구속까지 됐단 말이야. 그게 가능한 이유는 빼도 박도 못하는 자료 덕분이었고.”

끄덕끄덕.

서윤호 역시 내 말에 동의하는 듯 팔장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니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해서 검사장이 못 되셨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아니.”

[이남윤 변호사 사무실.]

강남대로를 향해 있던 몸을 돌려 이남윤 차장의 사무실 간판을 바라보았다.

“못 되신 게 아니라 안 되신 거야.”

씨익.

간판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왜 미소가 지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내 존경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지어진 미소일지도.

“뭔 소리야 그게?”

“부당과 타협한 자신을 되돌아보셨거든.”

“좀 알아듣게 설명하지?”

“하하, 그나저나 엄청 답답하셨겠네. 4년이나 칼을 가셨으니…….”

그리고 부당함과 엮이기조차 싫어하던 이남윤은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를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힌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힘을 키워 부당함을 바꾸어 보려 생각하셨겠지만 결국엔…….

“걱정 마세요. 차장님의 평생 한 제가 풀어드릴 테니까요.”

“치우야, 가끔 난 네가 미친 거 아니면 천재라고 생각해.”

나는 이남윤 사무실의 간판을 보며 혼잣말을 했고 서윤호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됐다, 됐어… 한치우 네 속을 누가 알리.”

또 서윤호 귀에는 내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묻는 걸 포기한 듯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지.”

사무실을 나오기 전 이남윤의 마지막 말.

‘충분히 의심이 된다만 섣불리 주먹을 날리지 마. 20년 가까이 괴물로 살아온 사람이야. 치우 네가 쉽게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장님 말씀 틀린 거 없어, 치우야. 현역 검사장이야 그것도 서울 중앙 지검장. 확실해도 모자랄 판에 합리적 의심만으로 덤빌 수는 없어. 우리가 가진 건 유대명 검사장 지문이 묻은 지폐 다발이 전부니까.”

“알고 있어 나도.”

서윤호도 나도 이남윤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래도 얻은 건 하나 있잖아.”

“얻은 거?”

“유대명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안 거.”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 알았고, 유대명이 남긴 발자국의 시작점 또한 알았으니 방법이 생긴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면 돼. 유대명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렇게 마지막 발자국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나를 왜 죽이려 했는지.”

“그래. 나도 내일 이면 포상 휴가가 끝나니까… 지검에서 다시 얘기하자. 피곤하다.”

휙휙.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은지 버스가 다니고 있었지만 택시를 잡는 서윤호였다.

“어? 아까 그 아저씨!”

“어? 그 게이 검사?”

“뭐요?!”

탁.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서윤호가 떠나고 나 역시 피곤했지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은 업무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머리가 무거워 걸을 수 없는 탓이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증거를 안 남겼다지만, 괴물이니까 더러운 피가 곳곳에 묻어 있겠지.”

천재학을 찾아가 흔들어 봤자 입을 열지 않을 것이 뻔하다.

피고인 신분에서는 평검사보다 중앙 지검장이 훨씬 더 두려울 테니까 말이다.

또 유대명을 흔들 수 있다면 어차피 따라서 흔들릴 천재학이니까 우선 순위는 분명 유대명이었다.

“발끝부터 천천히 흔들어 보자.”

나는 이제 병실에 누워 있는 한치우가 아니라 특수부 검사였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된다면 말이다.

그리고 중앙 지검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유대명의 발끝일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검사 업무를 하며 틈틈이 그의 발끝부터 노리는 수밖에.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야겠네.”

꾸벅.

얼마나 머리가 무거운 건지 고개가 내 의자와 상관없이 자꾸만 떨궈졌다.

“휴… 일단은 집에 가자.”

뭐가 됐건 일단은 집을 가야 될 것 같았다.

생각한단 핑계로 벽에 기대 졸고 있었으니까.

휙휙.

“택시!”

* * *

“좋은 아침입니다!”

“어? 왜 이렇게 일찍 오셧어요, 검사님?”

“하하, 공식적인 업무 첫날인데 늦으면 되나요. 두 분은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저희는 금요일에 정리를 다 못하고 가서요…….”

[검사 한치우]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햇빛에 비친 내 명패와 방 식구들이 나를 반겼다.

“같이 하시죠!”

“아닙니다. 첫날이라 보셔야 될 게 많을 텐데요.”

“그럼 빨리하고 보죠, 뭐. 하하하.”

24시간을 연이어 자는 바람에 기운이 넘친 건지, 혹은 돌고 돌아 시작한 검사로서의 첫날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둘 중 어느거든 간에 몸은 미친 듯이 에너지를 쓰고 싶어 했다.

“일단 책상부터 보시고 판단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팔을 걷어붙이고 화분을 들어 올리자 보이는 책상.

조금 오버하자면 두 줄로 쌓여 있는 서류가 천장에 닿을 것 같았다.

“저게 화분보다 더 무겁겠네요.”

“네, 아마도요. 그러니까 저희한테 맡기시고 저것부터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괘, 괜찮습니다.”

“하하하! 검사님 표정이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앞으로 적어도 2년 동안은 함께 지낼 식구들.

수사관 정대필과 실무관 한미래.

아직은 어색하지만 조금 당황한 내 말투가 그들에게 웃음을 보이게 했다.

“수사관님은 저보다 어려 보이시네요.”

“하하, 기분은 좋지만 비행기 태워 주시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젊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하하, 티 났어요? 그래도 잘 부탁드릴게요, 수사관님.”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검사님.”

그럼에도 입 발린 소리를 하는 이유?

검사들끼리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마누라보다 수사관을 더 잘 만나야 한다고.

더군다나 초임 검사실에 배치된 6급 수사관.

보통 8급부터 검사실에 배치되지만, 특수부임을 고려해도 경력이 상당한 수사관이 배치된 건 사실이다.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던 수사관들.

검사의 호통에 고개를 숙이고 현장에 나가 조폭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나, 그건 드라마고 현실은 조금 다르다.

수사관들 역시 공무원 시험을 합격한 엘리트이며 검사의 수사를 보조하는 중요한 사람이니까.

또 검사는 수사관의 협조 없이는 어떤 사건도 진행하기 힘들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행을 시킬 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저 같은 수사관한테 검사님이 배울 게 있나요. 저도 앞으로 열심히 수사해서 검사님을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검사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상관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부하 직원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뭐랄까…….

같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파트너 정도?

딱 그 정도로 표현하는 게 알맞을 것이다.

“그리고 저희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한 검사님 유명해요.”

“제가요? 왜요?”

“검찰 시보 때 소명 그룹 기소하고, 법원 시보 때는 연수생 최초로 국선변호에서 검사를 이겼으니까요.”

“하하, 다행이네요. 수사관님들이 좋게 봐 주셔서.”

그렇기에 검찰을 이원화 조직이라 부른다.

검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조직.

2,000명인 검사에 비해 6,000명이 넘는 수사관 수.

내 검사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6,000명의 수사관들에 귀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마 기소권과 더불어 검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수사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그건 곧 실적이 전부인 공무원에게 있어 치명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말이다.

“워∼ 우리 실무관님은 연예인 하셔도 될 미모네요.”

“호호, 우리 검사님 첫날부터 왜 이러실까. 저 다음 달이면 유부녀 되는 여자예요∼”

수사관이 파트너라면 실무관은 우리를 보조해 주는 역할이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장의 서류가 드나드는 검사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또 나르고 가끔은 작성까지 해 주는 그런 역할.

그렇게 세 사람의 역할이 모여 대한민국에 범법자를 잡고 재판장에 세운다.

“모두 잘 부탁드리고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으니 정식적으로 업무 시작하겠습니다.”

“네, 검사님!”

삐걱―

처음 앉아 보는 내 의자.

약간 삐걱거렸지만 불편함은 없었고, 높이 쌓여 있는 서류의 끝에서 한 뭉치를 집어 앞으로 가져왔다.

[검사 한치우]

뒷면에도 선명히 보이는 명패의 내 이름.

명패 앞에 놓인 서류를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 봤다.

검사로서의 첫 사건을 열어 보는 마음이니 오죽하겠는가.

“자! 시작해 볼까?”

* * *

검찰은 전국의 수십 개의 지검과 지청이 있다.

중앙 지검으로 예를 들어 보자.

검찰의 칼날이라 불리는 중앙 지검은 전국 최대 규모의 검찰청으로 서울의 중심인 종로와 중구 기업들이 모여 있는 서초구와 강남구를 관할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정계와 재계의 굵직한 사건들은 담당한다는 것이다.

1∼3차장이 검사장 밑에서 검사들을 통솔하며, 가장 날카로운 칼날인 특수부는 3차장 산하에 있다.

그렇기에 3차장은 차기 지검장이 가장 유력시 되는 핵심 요직이기도 하다.

지검 내 검사 수만 200명이 넘는 중앙 지검의 지검장은 다른 지검과 달리 검사장급이 아닌 고검장급 대우를 받으며 1차장은 차장검사급이 아닌 검사장급 대우를 받는다.

물론 나중에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한 단계씩 격하되긴 하지만 중앙 지검이 검찰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내용이었다.

또 중앙 지검장이 고검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격하된다고 해도 중앙 지검의 파워가 약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대우가 그렇다는 거지 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격하됨과 동시에 4차장 자리가 신설되며 앞으로 중앙 지검의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검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특수부는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 기록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이 인지 사건이거나 검사장이 직접 사건을 지정해 주기 때문이었다.

즉, 유대명이 정해 주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권력에 비위를 맞추기 위한 그런 사건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그런 사건들.

하나 나한테는 맡기지 않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죽이려한 나를 믿을 리가 없을 테니까.

“잘 알고 있죠. 이미 경험도 해 봤고요.”

“아∼ 맞다. 검사님 시보 생활도 특수부에서 하셨지.”

구조야 익숙했지만 쌓여 있는 서류들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서류가 죄다 제보들밖에 없네요.”

눈여겨 볼만한 것들은 몇 개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죠. 의원 실에서 보냈거나 기자들이 보낸 게 대부분일 겁니다.”

다른 부서들의 검사가 국민들의 실생활에 관한 사건을 맡는다면 특수부 검사들은 대한민국 전체의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을 맡는다.

그렇기에 쌓여 있는 서류들은 대부분 사건기록이 아닌 명망 있는 인사들의 제보가 대부분이다.

“제가 대충 훑어 봤는데 특수부가 만질만한 사이즈의 사건이 없던데요.”

짐을 정리하던 정대필이 박스를 들고 나르며 나에게 말한다.

“그러게요… 저희가 안 만지면 이 제보들의 검증은 어떤 부서가 하나요?”

“일단 수사 지원과로 넘어가서 5급 이상 수사관님들이 제보의 사실 검증을 하십니다. 만약 사건이 될 것 같다면 알맞은 부서로 다시 올라가고요.”

인지 수사의 대부분은 특수부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다른 부서들이 인지 수사를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지 수사 자체가 특수부뿐만 아니라 검사의 수사권에서 나오는 고유 권한이니까 말이다.

“아니면 첫 사건이시니까 가벼운 제보 하나 사건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열심히 도우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더 살펴볼게요.”

“아! 물론 부장님 결재가 떨어져야 되는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스르륵.

대화는 정대필 수사관이랑 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채득 의원, 혼외 자식 증거]

정치적 라이벌 혹은 상대 진영의 의원들을 흠집 내기 위한 의원실에서 보내온 자료들이거나.

[민성 그룹 예정우 회장, 갑질 논란 증거]

‘이 양반은 몇 년 후에 자식들에게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전 재산을 기부하는 양반인데.’

기자들이 보내온 확인되지 않은 증거들이었다.

만약 자신이 보내온 사건을 우리가 만지기 시작한다면 모든 기사를 선독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샘플을 주고 검사의 마음을 떠본다고나 할까?

정치인들은 빤하지 뭐.

뭐가 됐건.

특수부에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첩보가 흘러들어 오고 있으며 검사는 공공이익의 심각한 해를 끼친다 생각하면 사건을 보다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뒤따라올 수천 장의 서류들과 함께 말이다.

그럼에도 검사들은 특수부를 원하고, 또 특수부에 들어오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다 쓴다.

일이 편하기 때문에?

아니.

형사부 검사들이 한 달에 300건 가까운 사건과 1톤 트럭에 가득 담길 분량의 서류들을 들여다본다.

물론 일의 강도로 따지다면 특수부 검사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달에 한 사건만을 처리한다고 해도 들여다보는 서류의 양은 형사부 검사들과 비교해 결코 적지는 않으니까.

다만, 사건의 질이 다르다.

형사부 검사들이 처리하는 사건들은 개인 간의 이해 다툼에서 생기는 사건들이 대부분이고 속된 말로 잡범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말이다.

반면 특수부는?

공판부, 형사부 검사들이 경찰에서 송치 받은 사건들을 처리할 때 특수부는 검찰 내에서 거악을 처리하기 위한 사건을 기획하고 첩보로 들어온 사건을 수사한다.

권력형 범죄.

규모가 크고 언론의 이목을 받기 충분한 사건.

이런 사건들을 말이다.

물론… 사건의 질을 따지는 게 조금 우습기는 하다.

사건의 규모가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며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 또한 검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 말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건들이 없네요.”

“우리 검사님 눈이 너무 높으시네. 하긴 시보 때 소명 그룹을 기소하셨으니.”

“그런 건 아니고 공익을 위한 제보가 아니라 죄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첩보 같아서요.”

“하하! 역시 보통이 아니셔. 그래도 한 번 골라 보세요. 아시죠? 특수부 검사의 첫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앞으로 펼쳐질 검사 생활의 시작.

분명 다른 검사들보다는 유리할 것이다.

내가 특수부 소속 검사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 검색 창에 이름 석 자를 친다면 프로필이 나오는 인물들이 내 검사실 안에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검사님이 처리하신 사건 하나하나가 역사에 기록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처리하는 모든 사건의 영향력 덕분에 해결한다면 언론의 주목과 찬사를 받게 될 것이다.

공명심을 채울 수 있고 한치우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도 있다.

그렇다는 것은 출세와 동시에 검찰 수뇌부로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부담스러운데요.하하”

스르륵.

사사로운 대화 속에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고, 쌓여 있던 서류는 어느새 바닥에 다다랐다.

“어?”

[KH 우대현 회장, 갑질 의혹]

책상에 쌓여 있던 서류는 얼마 남지 않았고, 지루한 반복 끝에 드디어 눈에 들어오는 제목 하나.

KH 그룹.

국내 최대의 외식 프랜차이즈 그룹이다.

빵집과 커피숍.

그 외에도 햄버거 치킨 등 수많은 업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출 규모 또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중견 기업이다.

“그 사건은 안 들여다보시는 게…….”

빠르게 움직이던 내 손이 멈춰 있는 걸 눈치챈 정대필 수사관이 말끝을 흐리며 말한다.

“왜요? 드디어 관심이 가는 사건을 발견한 것 같은데.”

“그게… 우대현 회장 사위들이 이쪽 일을 하고 있거든요.”

여타 재벌들이 그렇듯 우대현 회장 역시 법조인 사위를 들였다.

두 명의 딸 모두 말이다.

“작은 사위가 서부 지검 차장 검사이고, 큰 사위는…….”

“큰 사위는요?”

“서울 고법 부장판사입니다.”

“오케이.”

정대필 수사관의 말이 마음을 설레게 했고 나는 재빨리 서류를 펼쳐보았다.

“저… 검사님?”

물론 그런 행동을 예상한 건 나밖에 없었지만.

“그러니까 제 말뜻은…….”

“이 사건이 제 첫 사건으로 딱 맞는다는 말씀이시잖아요?”

법조계 고위직에 있는 사위들.

유명 프랜차이즈 그룹의 회장.

나에게는 물론이고, 특수부 검사에게 있어서도 꽤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들이었다.

“어디서 들어온 첩보죠?”

“KH의 한 가맹점주가 송암 일보 기자에게 제보한 것 같고, 그 기자가 특수부로 보내온 것입니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는 정대필 수사관.

“걱정하지 마세요, 수사관님. 사실이 아니면 덮으면 되고 사실이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테니까요.”

그의 걱정을 조금 덜어 주기로 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가 힘드니까 그렇습니다, 검사님.”

“수사관님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네?”

“시보 때 소명 그룹 기소한 검사가 저입니다.”

씨익.

짧은 내 한마디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고, 수사관 역시 그 뜻을 알기에 미소를 보였다.

“일단 회의부터 다녀오겠습니다.”

“네! 저희는 마저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회의 다녀올 동안 사건 브리핑 좀 준비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검사는 매일 아침 회의를 한다.

보통 소속 부장검사의 주도 아래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을 배정받거나 진행 중인 사건의 결제를 받는다.

다만, 특수부 검사들의 회의는 조금 다르다.

정해진 회의가 아니라 무언가를 정하기 위한 회의이니까 말이다.

똑똑.

“들어와.”

“죄송합니다. 정리 좀 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아니야. 일단 앉아.”

특수 1부의 회의.

이미 회의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

상석에 박현주 부장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여섯 명의 검사들이 앉아 있다.

힐끔.

“아, 맞다. 한 검사 서 검사랑은 동기라며?”

“네, 맞습니다.”

나와 서윤호의 눈인사를 눈치챈 박현주 부장이 말했다.

“호호, 39기에 인재가 많나 봐. 중앙 지검 특수부에 두 명이나 들어오고 말이야.”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레슬링 선수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 몸매에 당장에라도 전쟁에 나가도 될 것 같은 장수의 얼굴을 한 사람의 이름이 박현주라는 것과 시상식에서나 볼법한 여배우의 말투를 가졌다는 것이 말이다.

“굳이 소개 안 해도 알지? 오늘부터 우리 부서에서 일하게 될 한치우 검사야.”

“네! 알고 있습니다. 검사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해서요.”

“그럼 인사는 사적으로 알아서들 하고 회의 시작할게요.”

모든 회의가 그렇듯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형식적일 뿐이다.

“만질만한 제보들 좀 들어온 거 있나?”

하지만 이 회의는 곧 특별하게 바뀔 것이다.

특별한 이슈를 내 머릿속에 담아 왔으니까.

“있습니다, 부장님.”

“오∼ 첫 날부터? 소문대로 패기가 넘치네, 한 검사. 그래 말해 봐.”

“KH 그룹 우대현 회장 갑질 의혹 사건입니다.”

내 한마디는 가볍던 회의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한 검사 지금 뭐라고 그런 거야?”

이철민 부부장검사.

서열 2위이자 특수부에서만 10년을 구른 베테랑이다.

“우대현 회장 갑질 의혹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사건이 만질만하다 판단했습니다.”

“우대현 회장 프로필은 알고 말하는 거야?”

“어떤 프로필이요? 작은 사위가 차장검사이고 큰 사위가 고법 부장판사인 프로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걸 알고 덤비겠다는 거야 지금?”

자칫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내 말투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이철민이었다.

건방짐보다는 걱정.

꽤 괜찮은 검사이자 선배인걸까?

“워워∼ 그만들 하고. 한 검사 자신 있나?”

“네. 자신 있습니다.”

“결재는 해 주겠다만 커버는 못해 줄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고?”

“네.”

검찰의 꽃, 특수부.

강력한 위세를 떨칠 수 있는 만큼 뒤따르는 책임감 또한 엄청나다.

우리의 상대이자 내 상대는 거악(巨岳)이다.

잡지 못하면 잡아먹히고 그렇게 된다면 특수부 검사로서의 출셋길은 막혀 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악을 잡는다면?

다른 검사들은 상상도 못할 실적을 단 한 사건으로 쌓게 되는 거다.

“패기 하나는 좋네…….”

박현주 부장이 건넨 제안에 조용히 속삭이는 이철민.

그도 아는 것이다. 박현주 부장의 성격상 내 패기를 허락해 줄 거라는 걸.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현주 부장이 입이 열렸다.

“그래. 한 번 해봐.”

* * *

[KH 그룹 우대현 회장, 갑질 의혹]

누구나 알만한 기업 회장의 갑질 사건.

과거로 돌아온 내가 모르고 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으니까.

하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는 조금 다를 것이다.

어떤 힘에 의해 묻힐 뻔한 사건이 나로 인하여 세상에 공개될 테니까 말이다.

“자! 회의 준비 다 되셨으면 시작하시죠.”

부장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검사실 문을 열자마자 곧장 말을 했다.

“조사실에서 브리핑하겠습니다, 검사님.”

“네, 들어가시죠.”

특수부 검사실 안에는 조그만 별실이 따로 있다.

일개 평검사 방이 이렇게 큰 이유?

드나드는 참고인 혹은 피의자들의 신분 때문이었다.

정재계에서 방귀 좀 뀐다는 유명인들을 수사관 컴퓨터 앞 낡은 의자에 앉혀 놓고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검사실로 불려 온다고 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유명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첩보는 우대현 회장의 운전기사가 송암 일보 나민호 기자에게 귓속말을 전한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내용은요?”

“자신에 대한 폭언, 폭행, 그리고 여직원들에 대한 성추행 등입니다.”

우대현.

KH 그룹의 창업주.

주식과 부동산 등 개인 재산은 2,000억이 넘으며 전국에 수십 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외식업계의 대부이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네요.”

“그러게요. 저도 나민호 기자에게 서류 건네받을 때 우대현 회장을 흠집 내기 위한 음모라 생각했습니다.”

열 평짜리 작은 식당을, 연 매출 5,000억 규모의 외식 기업으로 성장시킨 우대현.

그의 자서전은 자영업자라면 모두가 읽어야 되는 필독서 같았고, 전국 수십 개의 보육원에 무료 급식을 지원하는 등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귀족 그 자체였다.

“첩보를 뒷받침해 줄만한 증거가 있나요?”

“네. 귓속말을 들은 나민호 기자가 직원들을 찾아가 엠바고 인터뷰를 진행했고, 운전기사의 말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가맹점주에게 한 새로운 갑질 사건도 밝혀냈고요.”

“새로운 갑질 사건이요?”

“본사 운영 정책에 불만을 품은 가맹점주들에게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하였고, 또 탈퇴한 점주들 옆 가게에 직영점을 오픈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영업을 방해했다고 합니다.”

우대현 회장의 횡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가맹점들에게 중요 식재료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연관된 업체를 선정해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납품해 시세 차익을 챙겼다는 혐의와 브랜드 광고비 대부분을 가맹점주들에게 떠넘긴 점.

“영업 방해에 결국 가게를 폐업한 한 점주는 자살까지 했다고 합니다.”

까면 깔수록 매워지는 양파 같았다.

“그런데… 좋은 기삿거리인데 나민호 기자는 왜 엠바고를 한 거죠? 특수부에 첩보를 하는 것보다 언론에 터트리는 게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죠.”

언론이 뜨거워진다면 당연히 특수부가 나설 것이고 궁지에 몰린 우대현이라는 쥐를 잡기가 더 쉬울 것이었다.

“보도 라인이 막혔거나 뒷받침해 줄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기자 역시 언론사 소속이고 윗선의 결재가 없다면 보도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직원들에 인터뷰는 법정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증거이고, 업체 선정건 또한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까.

“그러게요… 죄다 정황일뿐 협의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네요.”

그렇기에 나민호 기자는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일단 내보내기 식으로 기사를 공개했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대현 회장이 꽤 존경받는 인물로 포장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제 검사실로 첩보를 한 거죠? 저보다 경력 높고 능력 있는 다른 검사들도 많은데 말이죠.”

“아마, 검사님 이력 중에 소명 그룹 사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대현 회장의 숨겨진 민낯을 밝히고 싶어 하는 사명감 넘치는 기자.

거악을 쓰러트릴 검을 쥐고 있는 공명심 높은 검사.

둘이서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일단 저를 선택해 주었으니 노력해야겠네요.”

두 사람은 우대현이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고, 내 예상이 맞다면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았다.

“음… 일단은 나민호 기자부터 만나 봐야겠습니다.”

힘을 합치려면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봐야하니까 말이다.

“지검으로 들어오라고 말씀드려 볼까요?”

아니.

지검보다는 조금 더 사적인 공간.

마음속 말이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의 만남이 더 좋을 터였다.

나는 지금 적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동료를 만들러 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괜찮습니다. 명함만 주세요. 아! 그리고…….”

“말씀하세요, 검사님.”

그 한 가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 사건 첩보한 게 나민호 기자라는 거 누가 알고 있습니까?”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어제 들어온 첩보라서요.”

“그럼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십시오.”

내 추론이 맞다면 알려지지 말아야 하니까 말이다.

“네… 뭐, 그건 그렇고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어쩌긴요. 목마른 놈이 직접 가야죠.”

* * *

그리워하던 전 연인의 전화를 받은 듯한 목소리.

―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검사님.

나민호의 목소리가 딱 그랬다.

아마 검사가 직접 전화해 약속을 잡을 줄은 몰랐겠지.

사실 전화가 올 거란 기대조차 안 하고 있었을 것이다.

―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론 고시 합격 전화 받았을 때보다 더 기쁜 것 같네요.

― 하하, 아닙니다. 저도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불과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지검을 떠나 상암동으로 향했다.

물론 이 만남에 있어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나민호만이 아니다.

나 역시 이번 사건에 거는 기대감이 컸으니까 말이다.

특수부 검사로서의 첫 사건이자 사이즈가 제법 큰 사건.

해결하는 데 있어 나민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일행 있으신가요?”

“나민호 기자님 만나러 왔습니다.”

“아! 혹시 한치우 검사님?”

“네.”

“따라오십시오. 안내하겠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상암동의 한 선술집.

가게 중앙에 흐르는 물소리가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지며 여러 방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막아 준다.

드르륵.

“이 방입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문이 열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차려진 술상보다 나민호의 모습과 그가 준비해 온 서류들이었다.

꾸벅.

“반갑습니다, 검사님.”

“안녕하세요. 한치우라고 합니다.”

“송암 일보 나민호 기자입니다.”

정중히 인사를 하는 나민호.

키가 조금 작고 나이는 젊어 보였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가도 되는데.”

“아닙니다. 제가 만나자 청했는데 제가 오는 게 맞죠.”

“하하! 제가 아는 검사님들은 보통 부르시거든요. 기자인 저는 밥 벌어 먹으려면 가야 하고요.”

아마 서초동 근처 식당들 매출의 반 이상은 기자들이 올린다고 봐도 될 것이다.

중앙 지검과 대법원, 그리고 서울 지법에 대검까지 사회부 기자들이 언론사 다음으로 많이 찾는 곳이니까 말이다.

“일단 한잔 받으시죠.”

“네, 영광입니다.”

“부담스럽게 왜 그러세요, 기자님.”

“하하, 제가 검사님이 따라 주시는 술잔을 처음 받아 봐서요.”

찾아온 목적보다 술잔을 먼저 채우는 이유?

“마시기 전에 제가 준비해 온 것부터 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검사님.”

“아니요. 마시고 나서 보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듣지 못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우대현 회장에 갑질에 당한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

그리고 나민호 기자가 발로 뛰며 확보한 작은 증거들.

이런 것들보다 나민호 기자가 숨기고 있는 마음속 말을 듣고 싶으니까 말이다.

내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기도 하고.

“크으∼ 오랜만에 먹으니까 좋네요.”

“이번엔 기자님이 한잔 주시죠.”

“아, 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꽉 조여 있던 넥타이들이 조금씩 느슨해질 때.

그때쯤이면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힐끔.

“기자님.”

잔에 코를 박고 슬며시 훔쳐본 나민호.

어느 정도 어색한 공기가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나민호 기자를 지긋이 불렀다.

“네?”

“처음 제보를 우대현 회장 운전기사한테 받은 게 확실합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순식간에 변하는 표정에 확신했다.

내 마음속에 걸리는 한 가지가 사실이라고.

“저한테 말씀하셔도 됩니다. 기자님과 동맹을 맺으러 이 자리에 온 것이니까요.”

“…….”

분명 수사관은 이 사건이 운전기사의 귓속말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수행 비서이자 운전기사인 그가 단지 귓속말로 한 얘기를 믿었고, 직접 발로 뛰며 술상 높이만큼 쌓여 있는 서류들을 만들었다는 게.

더군다나 매일 같이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는 운전기사였다.

“기자한테 제보할 생각을 한 운전기사가 녹음 파일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거야… 그럴 경황이 없었거나, 우대현 회장이 못하게 막았겠죠. 몰래 취득한 녹음 파일은 증거로써 효력도 없고요.”

“하하, 기자한테 제보하는 데 증거로써의 효력을 생각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상암동으로 향하는 길.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브리핑부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첩보의 시작은 운전기사가 아니라 나민호 기자에서 부터였다고.

“자! 기자님이시니까 팩트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우대현 회장의 갑질 횡포 때문에 가게를 폐업하고 자살까지 한 점주.”

“정옥분 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리고…….”

아마 맞을 것이다.

내 추론을 팩트로 바꾸어 줄 너무나 확실한 서류 하나를 보고 왔으니까.

형사부 김지훈 검사에게 한 전화 한 통에 자살한 점주의 가족 관계 증명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기자님의 어머니죠.”

“…….”

“기자님이 첩보한 자료에 나민호라는 이름 세 글자를 지우고 오는 길입니다. 제 말뜻 아시겠어요?”

개인적인 원한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동시에 나민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수천 명의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일단 하나 여쭙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다 들킨 마당에 뭐…….”

“기자님의 개인적인 원한을 제외시키더라도 제가 만져볼 만한 사건입니까?”

그래야 합당한 명분이 생길 테니까.

힐끔.

내 질문에 자신의 옆에 쌓여 있는 자료들을 쳐다보는 나민호.

나 역시 그 자료들이 궁금했다.

“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양은 마음에 드네요. 질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기자입니다. 영장을 받을 수도 검사님처럼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죠. 하나 그 어떤 사람보다 우대현 회장과 KH 그룹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부보님의 원수인데 오죽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제2의 정옥분 씨 같은 사람이 안 나온다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저입니까? 소명 그룹 사건 때문에?”

“아니요.”

“그럼 왜?”

“검사님이 소명 그룹 사건 탓에 TV에 나오실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거든요.”

나민호 기자의 대답에 나는 마음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치우 씨 같은 검사만 있다면 세상이 참 아름다울 거라고.”

참.

이러면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잖아.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고인에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거든요.”

“가, 감사합니다…….”

내 말에 울먹거리는 나민호였다.

일단 한 사람의 억울함은 풀어 준 것 같네.

“그럼 자료들부터 보죠.”

* * *

간절한 나민호 기자의 마음을 알기에 모든 서류들을 꼼꼼히 보았고, 또 한마디 한마디를 집중해서 들었다.

“많이 준비하셨네요. 본업도 있으실 텐데.”

“사회부 부장님이 좋으신 분이라 많이 이해해 주셨어요.”

“사실 관계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터트리면 꽤 떠들썩하겠네요.”

몇몇 서류에는 나민호의 개인적인 감정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걸 제외한다 하더라도 우대현 회장의 죄는 분명했다.

“문제는… 우대현 회장을 보호하고 있는 방패가 너무 튼튼하다는 겁니다.”

서류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던 나에게 말하는 나민호.

“그래서 저를 선택하신 거 아닙니까?”

그의 걱정이 뭔지 나도 알고 있었다.

하나 지검 차장검사와 고법의 부장판사 같은 방패가 두렵다고 뽑은 칼을 다시 넣지는 않을 것이다.

“네. 그건 맞지만… 아까는 검사님이 옷을 벗더라도 사건만 터지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거든요.”

“하하, 솔직해서 좋네요.”

그렇다.

나민호 기자는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사건을 제보한 것이다.

내가 어떤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도 자신과는 상관없었으니까.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심정을 이해해 준 내 모습에 마음이 바뀐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파트너 관계가 된 것이기도 하고.

“걱정 마세요. 수사 과정에서 죄가 확실하고 받쳐 줄 증거 또한 완벽하다면 아무리 높은 사람도 검사를 쉽게 건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방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해에도 멈추지 않을 뿐이지.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라…….”

“네, 맞습니다.”

말끝을 흐리며 한 혼잣말에 대답하는 나민호였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보통 수행 비서가 아닌 단순한 출퇴근 운전기사는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는데 매번 한 달도 못 넘기고 바뀌는 것이 이상해 아웃소싱 업체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래서요?”

“취재 내용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어떡해서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나민호 기자의 행동에 얻어 걸린 취재 내용.

출근 시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사를 폭행했고, 퇴근 시간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폭행했다.

그밖에도 운전기사를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쯤으로 생각했는지 어떤 기사는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웃소싱 업체는 KH 그룹에 인력을 계속 공급했다는 소리네요.”

“해당 아웃소싱 업체는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KH 그룹에 많은 인력을 공급했고, 매출의 90% 이상이 KH 그룹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웃소싱 업체 사장이 입막음 시켰다는 말이군요.”

“그것도 그렇고 때릴 때마다 돈을 줬다고 합니다.”

한 대에 백만 원.

온몸에 멍이 들고 갈비뼈에 금이 난 대가로 받은 몇 천만 원의 돈.

심지어 아웃소싱 업체는 그 돈에 대한 수수료까지 챙겼다고 한다.

마치 기사가 아닌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을 공급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걸 아웃소싱 업체 사장이 말해 줬다는 건가요?”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우대현 회장에게 기생해 같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친절히 말해 줬다는 게 말이다.

“아니요. 그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KH 관련 서류들을 모조리 찍었습니다.”

“…법적 증거로는 사용할 수 없겠네요.”

간절하던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법을 무시하면서 사건을 만들 수는 없다.

만든다고 해도 우대현 회장의 변호사에 의해 철저히 막힐 것이 분명했고, 어쩌면 이 일로 인해 재판이 불리하게 작용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돈을 주었다고 해도 피해자들의 신고를 막을 수는 없었을 텐데요.”

“신고할 수 없는 인력을 골라 공급했습니다.”

“신고할 수 없는 인력이라뇨?”

“빚에 쫓기고 있거나, 집안 사정이 있는 사람. 혹은 신고하지 못하는 불법체류자 등, 고통과 수치심에 눈물을 흘려도 손에 쥐어진 돈을 놓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퇴사 후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어떤 사람은 퇴원 후 다시 아웃소싱 업체를 찾아가 부탁하기도 했다.

다시 우대현 회장의 기사가 되게 해 달라고.

고통과 수치심 따위는 잃어버린 지 오래됐으니까.

“그래서 검사님을 찾은 겁니다. 그 사람들은 차라리 돈을 받으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다고 우대현 회장의 폭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피해자들은 이미 돈을 받았습니다. 아웃소싱 업체 대표는 합의서 명목으로 퇴사자들에게 비밀 유지 서약서를 받았고요.”

“아니요. 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반의사불벌죄.

형사소송법 제327호 6항.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할 경우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거나 이미 공소가 제기되어 있다면 기각한다.

“단순 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지만, 피해자들의 상태를 보았을 때 이건 명백한 상해죄입니다. 그리고 폭행 과정에 있어 위험한 물건을 사용했다면 특수폭행이 되기도 하죠. 즉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기소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합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죄를 물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법은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라는 걸.

법조문은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만 해석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즉, 판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죄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뜻.

“기자님이 모르시는 게 있는데 형사사건에서 합의라는 제도는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손해배상과 불처벌의사, 이 독립된 두 가지 법이 맞물려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 주는 관행일뿐입니다. 그리고 비밀 유지 서약서를 쓰게 한 아웃소싱 업체는…….”

형법 제324조 강요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처벌을 받는다.

“강요죄로 기소할 수 있어 보이네요.”

“와…….”

내 말에 놀라는 나민호.

모르고 있던 것이다.

검사가 법을 어떻게 주무를 수 있는지.

검사.

TV나 영화를 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직업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으며 범법자들을 무릎 꿇리고, 때로는 비리의 온상으로 악을 위해 충성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 실제 검사들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공무원과 별다를 게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범법자들에게는?

저승사자처럼 보이겠지.

판사라는 염라대왕 앞으로 자신을 끌고 갈 테니까.

“법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그게 검사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왜?

머릿속에 해석할 법들이 전부 들어 있으니까.

변호사와 판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형사사건의 시작은 오로지 검사만이 할 수 있다.

기소권은 검사가 가진 고유 권한이니 말이다.

즉, 내가 어떤 해석을 통해 사건을 만드느냐에 따라 변호사와 판사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도의적으로 그리고 검사로서의 공명심을 저버린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죠.”

“악용이 아니죠. 지금은요…….”

“또 명목상 합의금이라 불리는 피해자들이 받은 돈들. 그게 재판에서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기소를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참고 있었을 것이다.

대가를 챙겼으니까 말이다.

우대현 회장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멈추지 않았다.

돈으로 뭐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이제 알려 줘야지.

죗값을 돈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일단 이 사건으로 꼬리부터 잡죠.”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우대현 회장의 잘못이 이게 끝은 아니잖아요.”

이 사건을 잘 만들어 기소한다고 해도 형량이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뭐가 됐건 피해자들은 돈을 받았고, 변호사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판사 또한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거기에 전관예우라는 말도 안 되는 관행이 들어간다면 더 가벼워질 수도 있고.

“일단 폭행 사건으로 꼬리를 묶어 둔 다음에 천천히 터는 겁니다.”

“…….”

꼴깍.

몸을 바르르 떨며 술잔을 들이키는 나민호였다.

“소름 끼치네요. 검사님이 이렇게 냉정하고 무서운 분이실 줄 몰랐거든요.”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것뿐입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네요. 검사님 같은 분이 이 사건을 맡아 주신다고 하니.”

거악을 상대하는 특수부 검사로써의 첫 싸움.

“저한테는 사건이 아니라 싸움과도 같습니다. 한 번 싸우자고 마음을 먹었으면 멈출 수가 없죠. 이기면 올라가는 것이고 지면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되니까요. 만약 그게 무서워 멈춘다면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첫 싸움 치고는 상대가 좀 강해 보이긴 하다만…….

“저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기자라는 든든한 파트너도 있고.

“준비하신 자료들은 검사실로 따로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검사실에는 믿을 만한 식구들도 있었다.

“네, 정리해서 다시 보내겠습니다.”

“일단 기자님은 피해자들을 다시 만나서 설득을 좀 해 주세요. 숨지 말고 나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모두 정해졌다.

우대현이 재판장에 설지, 아니면 내가 바다 근처 지청으로 쫓겨날지는 오로지 내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저는 아웃소싱 업체부터 털어 보겠습니다.”

* * *

덜덜덜…

언제 멈출지 모르는 차량의 엑셀을 있는 힘껏 밟는다.

그래봤자 오토바이도 못 따라가는 속도지만.

아웃소싱 업체로 향하는 길.

두 사람과의 실랑이가 있었다.

-기름 만땅 넣고 새차해서 돌려 주길 바란다. 이래 뵈도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니까.

차량을 빌려준 서윤호.

-제가 가겠습니다. 검사님 영장도 없이 가셔서 뭐 어쩌시려고…

자신이 가겠다 말했던 정대필 수사관.

두 사람과 말이다.

성격상 우대현 회장의 자택을 방문해 썰전을 벌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검사이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를 테니까 말이다.

‘상대하기 쉬운 놈부터 만나보자.’

확신없이 우대현 회장을 치는 것보다 확신을 쌓으며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차가 참 엔틱하네요. 검사님.”

“아…죄송합니다 감독관님.”

“아닙니다. 저도 똑 같은 공무원이고 월급이 얼마인줄도 뻔히 아는데요 뭐. 그래도 검사님이 저보다는 많이 받으실텐데…”

조수석에서 말하는 한 남자.

낡은 차에 아무도 태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하…아직 임관한지 얼마 안되서요.”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제가 지검으로 모시러 갔을텐데.”

“아닙니다. 공안부 검사도 아닌 제가 개인적으로 부탁한건데요.”

“특사경이 검사 지휘 받는데 부서가 따로 있나요 뭐. 그리고 검사님 말씀대로라면 제가 나서야 하는 것도 맞고요.”

낡은 차량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근로감독관이다.

노동부에 직접 찾아가 만났고 모든 상황을 설명해 차에 태울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102조 1항.

근로감독관은 사업장을 조사할 수 있고 장부와 서류의 제출을 요구 할 수 있으며 사용자를 심문할 수 있다.

“그나저나 보통의 검사님들은…”

말하기 껄끄러운지 끝을 흐리는 근로감독관.

“사측 편을 드는데 왜 KH 그룹 아웃소싱 업체를 터냐는거죠?”

“아…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공안부 검사가 아니라 특수부 검사인 걸”

그를 대신해 내가 대답했다.

“혹시…특수부에서 KH 그룹 만지고 있는 겁니까?”

“아니요 정확히 말하자면 우대현 회장을 만지고 있는 것이고 그가 저지른 폭행사건의 증거가 아웃소싱 업체에 있습니다.”

인력을 파견했다는 장부와 합의금에 대한 수수료를 기록한 장부.

이 두가지가 말이다.

“일단 장부 압수하시면 노동부로 가져가셔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해 주세요.”

특별사법경찰인 근로감독관은 경찰과 마찬가지로 수사권이 있다.

물론 직무범위가 제한이 없는 일반사법경찰과는 다르지만.

그렇기에 근로감독관은 노동사건을 수사하고 관련 혐의를 입증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한다.

기소할지 불기소할지 의견을 적어서 말이다.

물론 최종판단은 검사에게 달려있다.

“대단하시네요. 노동사건을 가장해 우대현 회장을 옭가매시겠다는 거잖아요 지금.”

“네. 맞습니다.”

내 목적은 노동사건을 만드려는 게 아니다.

노동사건에 딸려올 증거자료들이 필요한거지.

“검사님 뜻 알겠고 저는 제 할 일 열심히 하겠습니다.”

끼익---

듣기 싫은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도착한 이 곳.

우대현 회장 꼬리 잡기의 첫 시발점이 될 것이다.

“올라가시죠.”

* * *

“어서오세요.”

영업용 미소는 목에 걸려 있는 근로감독관 명패를 보자 사라졌다.

“안녕하십니까. 리드아웃소싱 권상호 대표님 맞으시죠?”

“예. 그런데 공문도 없이 나오셨네요?”

침만 안 뱉었을 뿐이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근로감독관을 바라보는 권상호의 눈빛은 동네 양아치와 별다를 게 없었다.

“근로감독관 허강수입니다. 지금부터…….”

“그러니까 공문도 없이 왜 나오셨냐고.”

“리드아웃소싱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겠습니다.”

“뭔 개소리야.”

양아치답게 내뱉는 막말.

“개소리 아니고요.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 제12조 3항에 의해 실시하는 특별 근로감독입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나와 달리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허강수였다.

“말귀를 못 알아듣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특별 근로감독이 나오냐고.”

“불법 파견과 근로자의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신고가 들어왔고, 그에 따른 특별 감독이니 여기 적혀 있는 제출 서류들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긴, 공무원 생활만 20년 가까이 되는 허강수 눈에는 권상호가 얌전해 보일 수도 있겠지.

“불법 파견은 개뿔. 이거 공권력 남용 아니야?!”

“저기 권상호 씨, 말 잘라먹지는 말지?”

하나 내 눈에는 권상호가 얌전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허강수처럼 무시할 성격도 못 되고.

“안 그래도 많이 나올 벌금 근로감독관 자극한다고 줄어드는 거 아니니까.”

“씨발 요즘 철밥통들은 사업자를 개 호구로 아네.”

“돈 뜯기기 싫으면 불법을 저지르지 말든가.”

“뭐라고?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권상호의 욕설은 점점 수위가 높아졌고 오고 가는 유치한 말투.

그 사이에 낀 허강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감독관 양반. 뭐 저런 쫄따구를 달고 왔어? 요즘은 개나 소나 다 공무원 되나보네.”

“이 분은 쫄따구가 아니라…….”

“계속하시죠, 감독관님. 쫄따구는 빠져 있겠습니다. 하하.”

검사라는 단어는 내 말에 의해 끊겨 버렸다.

“아… 네.”

찡긋.

내 윙크에 뜻을 알아 차림과 동시에 말이다.

나이로 보나 허강수 뒤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보나 나를 부하 직원쯤으로 생각하겠지.

하나 그런 오해에 나는 웃음만 나올 뿐이였다.

“감독관 당신도 참 피곤하겠소. 나사 빠진 놈이 부하 직원으로 들어와서. 딱 보니 공무원 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얼마 안 되긴 했지. 감독관님에 비하면.”

“그럼 좀 닥치지? 미친놈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 정체를 숨기고 권상호를 자극하는 이유?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배가 되는 법이니까.

“감독관님 마저 고지하시죠. 미친놈이랑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데.”

“네, 알겠습니다.”

지시하듯 말하는 나와 존댓말로 답하는 감독관.

이쯤되면 이상하다 눈치챌 만도 한대 머리가 나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바라만 보고 있는 권상호였다.

“서류 제출해 주시고, 거부하거나 거짓으로 제출할 시 과태료 부과와 함께 사법 처리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하긴, 꿈에도 모르겠지.

이곳에 검사가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준비가 안 됐네∼ 나중에 전화하면 팩스로 보내 줄 수는 있는데.”

다시 권상호에게 말을 이어가는 허강수.

표정과 행동을 보아하니 쉽게 따르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바로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사업장에 근로계약서를 비치하지 않은 것 또한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아∼ 몰라. 벌금을 때리든가 말든가. 그까짓 거 내고 말지.”

“그럼, 절차에 따라…….”

톡톡.

뒤에서 허강수의 어깨를 살포시 쳤다.

내가 앞으로 나가겠다는 신호.

그리고 근로감독관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과태료 통지서를 작성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쫄따구가 얘기 좀 해도 될까요, 감독관님?”

“네! 말씀하시죠.”

힐끔.

“참, 공무원은 위계질서도 없나? 완전 콩가루 집안이네.”

앞으로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말하는 권상호.

“닥치고.”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반말을 짓거리고 있어?”

그에게 알려 주려 한다.

“왜? 너도 하는데. 나는 공무원이라고 존대해야 되는 거야?”

“니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 처먹으면 국민을 존중해야지.”

“그래서 지금 밥값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국민이 검사에게 바라고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당신 같은 사람 잡아 넣는 게 내 일이거든.”

“뭔 개소리…….”

스윽.

속주머니에 숨겨 놓은 내 명패.

명패를 본 권상호는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서울 중앙 지검 특수부 검사 한치우입니다. 반가워요, 국민 권상호 씨.”

“…….”

“아, 그리고 이제 권상호 씨도 국민을 존중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밥 드실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연스레 모아진 두 손은 배꼽을 향했고,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감옥 밥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지거든요.”

“그게 아니라… 자료가 창고에 있어서요……. 금방 가져 오겠습니다.”

말꼬리 역시 길어졌고 앞으로 짧아질 일도 없을 것이다.

“자료는 됐고, 당신 감옥 가면 세금 안 내고, 그럼 내 월급 권상호 씨가 주는 거 아니니까 반말해도 될까요?”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검사님을 못 알아 뵙고…….”

“검사한테만 죄송합니까? 감독관이든 검사든 모두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밥을 먹는 공무원.

밥값을 못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밥값보다 많은 희생을 한다면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꾸벅.

“죄송했습니다, 감독관님.”

뒤에 있던 허강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권상호.

“아… 네…….”

처음 겪어 보는 일에 당황했지만, 뭔지 모를 시원함이 묻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일단 앉으시죠.”

“네!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됐습니다. 아직까지는 국민이시고, 세금도 내주시는데 차까지 바라면 욕심이죠.”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허강수 감독관에게 인사할 때부터 굽어진 권상호의 허리.

앞으로 펴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검사라서?

맞다.

권상호에게 나는 저승사자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은 죽었고, 곧 염라대왕의 판결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염라대왕 앞에서 무슨 죄목을 읊어 댈지는 내 손에 달려 있으니 허리가 펴지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잘 들어요, 국민 권상호 씨.”

“네… 검사님.”

꽤 편해 보이는 소파에 앉았지만, 권상호는 불편해 보였다.

“KH 그룹 우대현 회장이 여기서 파견한 기사들 폭행한 거 알죠?”

“잘 모릅니다. 저는 그저 인력만 파견하는 사람이라.”

모르쇠.

피의자 조사를 하다 보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묵비권보다는 낫다.

“그럼 KH 그룹에는 운전기사만 파견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미화원이랑 제조 공장 생산직도 파견합니다.”

“그런데… KH 그룹과 리드아웃소싱이 작성한 벤더 계약서에는 운전기사 항목은 없네요.”

“그거야 당연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을 하다가 보면 반드시 실수가 나오니까 말이다.

두 회사가 작성한 벤더 계약서를 본 적도 없고 운전기사 항목이 없는지도 몰랐다.

확률이 매우 높은 미끼를 던진 것이고 권상호는 미끼를 문 것뿐이지.

“아니! 그게… 하루에 네 시간도 근무하지 않고, 파견 인원도 고정적인 게 아니라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불법 파견에 대한 벌금은 낼 테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검사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더 큰 잘못을 틀기지 않으려 실토하는 척하지만 소용도 없을 것이고.

“벌금을 내실 건데 왜 저한테 용서를 구하는 거죠?”

“그건…….”

“혹시 불법 파견 말고도 잘못을 하신 게 있나요?”

머릿속을 헤집는 검사의 질문에 복잡해진 권상호의 머리.

“선택 잘하세요, 국민 권상호 씨. 속 시원히 말하고 선처를 구할 것인지 꽁꽁 숨기다가 징벌을 받을 것인지.”

“아…….”

혼란스러울 것이고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머릿속은 나에게 지배되었으니까 말이다.

“검사로서 약속 하나 드리죠. 협조하면 벌금 내는 국민으로 남을 것이고, 숨기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밥 먹는 죄수가 될 거라는 걸.”

“휴…….”

긴 한숨을 쉬며 구석 금고로 향하는 권상호.

“잠시만요.”

결정을 했는지 이윽고 숨겨 둔 장부 하나를 가져왔다.

탁.

“이걸 드리면 감옥은 안 가겠지만, 저는 평생 노숙을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책상에 올려놓았지만 쉽게 뗄 수 없는 손.

“대신 그 손을 뗀다면 더 이상 손이 더러워지지는 않겠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깨끗한 손으로 다시 시작하세요. 4∼5년 징역살다 오는 것보다는 돈 버시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하하…….”

권상호의 웃음은 씁쓸했다.

“다시 시작하세요.”

스윽.

그리고 이내 손을 떼는 권상호였고, 가만히 지켜보던 허강수는 장부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먼 지난 과거를 후회하며 미래를 바꿔 보세요.”

“네?”

“당신은 살아온 과거보다 살아갈 미래가 더 많은 사람이잖아요. 과거 때문에 미래까지 망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린 검사가 하는 충고라 흘려들을지도 모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해 주십시오.”

조폭 한치우.

그런 과거를 얼마나 후회했는가.

때문에 미래를 바꿔보려 하다가 결국 죽음을 당했지만.

‘으… 그런데 손발이 오그라드네…….’

너무 오버했나?

그런 생각에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나와 달리 무언가를 깨달은 듯 권상호의 눈은 빛났다.

“아닙니다! 수사 협조 열심히 하겠습니다, 검사님.”

“그럼 모든 서류를 감독관님한테 넘겨주십시오. 몇몇 자료는 폭행 사건 증거로 써야 될지도 모르니 오셔서 입증해 주시고요.”

“네, 걱정 마십시오.”

그래도 뭐.

오그라드는 내 말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던 한 사람의 진로를 바꾸었으니 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럼 마무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관님.”

톡톡.

자리에서 일어나 감독관의 팔뚝을 치며 바톤은 교체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 또한 없으니까 말이다.

“일단 근로계약서랑….”

* * *

[공안 1부 석찬영]

검찰로 사건을 송치했다는 허강수에 연락을 받은 나는 곧장 공안부로 향했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노동 사건은 공안부 소관이며 그렇기에 사건은 공안부로 배정되었다.

“이상하네…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사건인데 왜 부장검사한테 배당이 된 거지?”

지극히 평범한 노동 사건이 말이다.

KH 그룹과의 연관성 때문에?

아니.

검찰로 송치하기 전 허강수는 나에게 준비된 서류를 보여 줬고, 송치 의견에 적혀 있던 문구에는 KH 그룹과 어떠한 연관성도 적혀 있지 않았다.

[불법 파견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인한 기소 의견]

특수부는 인지 수사 부서로 대부분의 사건을 기소하기 전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한다.

같은 지검이라 하여도 말이다.

인지 수사가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좋을 게 없으니까.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를 하는데 피의자가 그 사실을 알아 버린다면 대응을 할 게 뻔했다.

“KH 그룹과 연관성이 있는 걸 아는 사람은 허강수밖에 없는데…….”

똑똑.

“들어와.”

갸우뚱거리는 고개를 바로잡고 두드린 부장검사실 문.

“처음 보네, 한 프로.”

방 안으로 들어서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명패의 주인과 달랐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볼 기회가 있었지만 보지 못한 사람.

아니.

나는 보지 못했지만,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

내 눈 앞에 이 사람이 간신히 멈춘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리게 했다.

“검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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