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13/35)

제3장

[DFC로 와.]

통화가 끝나고 서윤호에게 문자가 오기까지는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휴… 여기만 오면 그때 생각이…….”

대검 앞 신호등.

법복을 입고 반포대로를 활보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DFC.

디지털포렌식센터.

사람들은 지문 혹은 DNA를 생각하면 연관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일명 국과수.

범죄 수사로 획득한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감정해 주는 기관.

하나 그런 기관은 국과수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과학수사부로 바뀌기 전이네.”

대검찰청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디지털포렌식센터.

대검 소속이자 부장검사급인 과학수사 기획관 주도 아래 검찰의 첨단 수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어∼ 왔어? DFC는 처음 와 보지?”

“응… 그렇지.”

신호를 건너는 내 모습을 지켜봤는지 입구에 도착하자 서윤호가 마중을 나왔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면 국과수랑 비슷한데…….”

맞는 말이다.

부검을 제외한다면 국과수와 DFC가 하는 일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DFC의 규모는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다.

훗날 과학수사부를 신설하고 DFC에 책임자이자 부장검사급인 과학수사기획관을 검사장급인 과학수사부장으로 바꾸어버리니 말이다.

거기에 단순히 감정만 하는 국과수와 달리 검찰 소속에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DFC이니 증거를 토대로 곧바로 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충 알고 있으니 설명 안 해도 돼, 형.”

“그래도 알고 있어서 나쁠건 없어.”

또 방문은 처음이었지만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DFC의 과거부터 서윤호가 모르는 미래까지 알고 있었다.

“1968년 대검 중앙 수사국 산하 과학수사에 관한 연구단이 발족되고…….”

그나저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할 작정이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하긴.

검찰 내 유일한 친구이던 내가 5개월이나 누워 있었고 업무적인 대화 말고는 사담을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 하고 싶던 말이 많겠지.

“그렇게 1991년 과학수사 지도과가 신설되고… 2003년에는 DSAC라는 마약지문감정센터가 운영을 시작했어… 하하, 대단하지?”

“그리고 앞으로 DFC는 NDFC로 명칭을 바꾸지. 맞지?”

“어! 어떻게 알았어? 대검 내부에서만 떠도는 소리인데.”

어떻게 알긴.

‘형 머릿속에는 이제 2년밖에 안 된 기관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10년도 넘은 건물이라고.’

입에 침까지 튀어가며 설명하던 서윤호를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더 이상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NDFC는 디지털포렌식센터 명칭 앞에 국가라는 명칭을 붙여 네셔널의 N이 추가된 거야. 이건…….”

“형! 약간 박찬호 닮은 거 같아.”

가만히 놔두다가는 해가 뜰 때까지 얘기를 이어 나갈 것 같아 말을 끊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박찬호라니. 그리고 내가 어디를 봐서 박찬호랑 닮아. 하긴 내가 좋아하긴 했지. 어렸을 때 LA 다저스…….”

물론 소용은 없었지만.

“아니 성격이 닮은 것 같다고.”

돌려 말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서윤호였다.

하긴 그분의 별명은 앞으로 몇 년 후에나 생길 테니.

“그래? 니가 우리 찬호 형 성격을 어떻게 알아? 아, 맞다! 박찬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만! 제발 그만해!”

늦은 저녁.

텅 빈 DFC 내부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메아리가 칠 정도로 말이다.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일부터 하자고, 형.”

화가 나서는 아니었다.

서윤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또 귀에 피가 난다 해도 얘기를 들어줄 수 있을 만큼 고마운 사람인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그만!

복도 끝 벽에 튕겨 다시 돌아온 내 목소리가 더 급하니까.

“아 맞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서윤호는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입구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는 것과 내 슈트에 자신의 침이 잔뜩 묻어 있다는 걸.

“미안. 요즘 자꾸 이러네. 뭐에 홀린 것처럼 말을 못 끊겠어.”

“그분의 영혼이 깃든 건 아닐 텐데…….”

아직 멀쩡히 살아계시고 미국에서 국위선양 중이니까 말이다.

“누구 영혼?”

“아니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됐어?”

“다행히 DFC에 연구원 동창이 있어서 지금 시간에 부탁할 수 있었어.”

톡톡.

“일단 올라가면서 얘기하자고.”

내 몸을 치며 얘기하는 서윤호.

침을 털어 주는 건지, 한 시간 동안 굳어 버린 내 몸을 움직이게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

“뭐 해 가자니까?”

“아! 올라가자고?”

그런데… 한쪽 귀가 잘 안 들리는 건 내 착각이겠지?

“동창 말이 유통되는 지폐는 지문 보존이 힘들 수 있어서 DNA 감식까지 해 준다고 하거든. 그런데 치우 네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면 더 쉽겠지?”

“남양주 공장은 역시 함정이었고, 나를 죽이려 하던 녀석은 또다시 나를 죽이려 했어.”

“진짜?! 그런데 어떻게 멀쩡히 나온 거야?”

“든든한 수사관이랑 함께 갔잖아.”

대신 녀석들이 멀쩡하지가 않다는 말은 삼켰다.

물론 조금은 폭주한 내 행동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눈감아 줄 서윤호일 것이다.

다만,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오른손에는 기소권을, 다른 한 손에는 피 묻은 주먹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체포한 거야?”

“자수했을 거야.”

“자수? 검사를 죽이려 함정을 파 놓은 녀석들이 그렇게 쉽게 자수를 했다고?”

“내 개인 수사관 설득력이 아주 좋아…….”

싸움도 좀 잘하고 설득에 칼이 필요했다는 말 역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튼 자수했으니 됐고, 지금 중요한 건 나를 죽이라고 지시한 놈이 누구냐는 거야.”

끄덕끄덕.

조금은 서툰 내 말이 완벽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서윤호의 고개는 끄덕여졌다.

서윤호 역시 당장의 이해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말이다.

“하긴, 함정을 파 놓은 녀석들보다 파 놓으라고 시킨 놈이 더 중요하지.”

“맞아. 그리고 저 돈은 그놈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답안지가 될 거야.”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재학이라는 내 확신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물건일 것이다.

“주인이 사냥개 만나러 직접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주인의 흔적은 돈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과는 상관없는 말을 길게 풀던 서윤호였지만, 정작 일에 관련된 얘기는 길게 할 필요가 없었다.

“전해 준 녀석도 존재를 철저히 숨겼을 테고…….”

긴 얘기를 노련함이 대신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돈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의 흔적 중 너와 연관된 사람만 추려내면 되는 거네.”

“이야∼ 우리 윤호 형 진짜 많이 컸네. 언제 이렇게 똑똑해진 거야?”

“또 까분다, 우리 치우. 그리고 똑똑한 건 너지. 나는 노련한 거고.”

“5개월 앞서갔다고 유세는.”

남들보다 뒤쳐진 시작에 산송장처럼 지낸 연수원 생활.

덕분에 듬성듬성 나 있는 흰머리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다크서클.

2년 동안 젊음과 달콤한 잠을 빼앗아 갔지만, 검사 생활 5개월 동안 누구보다 많은 노련함을 선물해 주었다.

“그래도 깜짝 놀란 건 인정할게. 얼마나 노련한지 능구렁이 같아 아주.”

“능구렁이한테 쪼여 볼래?”

꽈악.

개개인이 단독 관청이자 고위 공무원인 검사.

그렇기에 품위 유지를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뭐 하는 거야!”

하나, 헤드락을 걸며 장난치는 서윤호와 나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같았다.

“사람들 본다, 형. 우리 검사야.”

“다 퇴근했거든.”

번쩍.

“거 누구요?”

비춰지는 플래시 불빛.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 출근을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소음이 나는 곳에 플래쉬를 비춰 볼 어떤 사람이 말이다.

“중앙 지검 서윤호 검사입니다. 자료 확인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서윤호가 플래시 불빛을 자신의 신분증으로 막으며 얘기했다.

“아∼ 검사 양반이셨고만. 난 또 어린 애들이 몰래 들어온 줄 알았네.”

“어린 애들은 못 본 것 같네요.”

장난기 가득하던 서윤호의 표정은 금세 굳어 버렸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저 굳은 표정이 연기라는 걸.

“크크.”

그래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먹으로 틀어막았다.

플래쉬가 닿지 않는 어둠속에 숨어서 말이다.

“휴…….”

불빛이 꺼지고 경비원이 사라지자 길게 한숨을 내쉬는 서윤호.

“하하하, 아수라 백작이야? 반은 초딩이고 반은 검사인?”

“됐고. 들어가서 기다리자. 너랑만 있으면 초딩이 된다니까.”

“내 탓하기는.”

단숨에 초등학생 서윤호는 빠져나왔고 DFC가 익숙한 검사가 되어 나를 안내했다.

“형 같은 친구 둬서 밤늦게까지 고생하네.”

“저 불빛이 켜진 대가로 내가 저놈한테 얼마짜리 술을 사 줘야 되는 줄은 알아?

“고마운 거 아니까 생색 좀 그만 내지.”

“하하, 고맙다는 말에 고마움이 하나도 안 느껴지네.”

몇 걸음 옮기자 어두컴컴한 복도 속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그 불빛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유전자 분석 장비.

얼마 지나지 않아 답안지를 뱉어 낼 것이다.

[생체감정관]

딩동―

“기가 막힌 타이밍에 왔네. 방금 결과 나왔는데.”

“고맙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밤늦게까지 고생하고. 내가 나중에…….”

“미안하긴 내일 저녁에 물망초 예약해 놨는데.”

입구에 있던 벨을 누르자 나온 한 남자.

하얀 연구복을 입었고, 꽤 스마트해 보였다.

무엇보다 서윤호의 입을 막는 화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영수증은 이쪽으로 청구해. 중앙 지검 특수부 한치우 검사야.”

“아! 반가워요. DFC 선임 연구원 한정우라고 해요.”

대한민국 과학수사를 이끄는 양대 산맥.

그중 한 산맥을 맡고 있는 DFC답게 화려한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한치우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같은 성이네요? 어디 한 씨예요? 저는 청주인데. 보통은 다 청주 한 씨니까… 혹시 곡선 한 씨예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한 씨가 되게 오래된…….”

도대체 오늘 나한테 왜들 이러는 거지?

기어이 멀쩡한 한쪽 귀마저 망가트릴 셈인가?

‘휴… 산 너머 산이네…….’

귀는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시력은 또렷해졌다.

빠르게 움직이는 감식 장비의 모니터 글씨들이 전부 보였으니까 말이다.

“청주! 한 씨입니다. 일단 결과부터 볼 수 있을까요?”

“아이고, 미안해요. 하루 종일 연구소에 처박혀 있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서요. 이쪽으로 오시죠.”

큰 소리로 잘라 말하는 내 말투를 눈치챘는지 한정우가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타닥타닥.

“일단 쪽지문이여도 감식되는 건 전부 뽑아 봤는데. 어떤 필터로 걸러야 될지 키워드 좀 알려 주시겠어요?”

능숙하게 타자를 두드리던 한정우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

“와우∼ 왜 난 그 생각을 못 했지. 제일 쉽고 빠른 키워드였는데 말이야.”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

학계, 재계, 법조계, 심지어 NGO 단체까지 사회에 명망 있는 인사들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국가 시스템이다.

탁.

경쾌한 엔터 소리와 함께 나타난 목록.

“됐습니다.”

필터에 걸러지자 한눈에 파악될 만큼 그 수가 적어졌다.

“어디 보자…….”

[소명 그룹 전무 김태민.]

“어? 이 사람!”

그렇기에 티가 날 수밖에 없던 이름 하나.

“역시… 천재학 회장이 사주한 게 맞았어…….”

단숨에 그 이름을 알아본 서윤호였다.

“정우야, 이거 증거로 쓰게 정식으로 소견서 보내 줘 특수부로.”

“어, 알겠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뜨려는 서윤호.

하나 찝찝함이 남았는지 내 발은 끈적거려 떨어지지 않았다.

“뭐 해? 가자 치우야.”

“어? 그래…….”

뭘까?

꽤 많은 과정을 통해 힘겹게 얻은 증거였다.

그렇기에 이런 찝찝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줄 알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 머릿속이 무언 갈 미친 듯이 원하고 있었을 뿐이지.

“형, 잠깐만. 목록 좀 다시 보자.”

“왜? 이미 충분한 것 같은데.”

“아니. 내 머리가 아직 덜 채워진 것 같아서.”

일단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한 번만 더 보자.”

톡톡.

서윤호의 어깨를 치며 문 쪽으로 향하던 몸을 다시 모니터 방향으로 돌렸다.

드르륵.

그렇게 자리에 앉아 마우스 휠을 굴렸고, 다시 돌아온 내 행동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뭐야 이거…?”

[서울 중앙 지검장 유대명.]

* * *

DFC를 나온 우리는 한참 동안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독 밤하늘이 어둡게 보이네.”

흔히들 얘기한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곧 있으면 아침이라 그런가?”

“아니.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야.”

하지만 돌고 도는 그 명언은 틀렸다.

아침은 서서히 밝아 오는 거지, 갑자기 해가 뜨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무슨 소리야. 그게?”

다만, 현실과는 다른 그 명언이 가슴속에 깊이 와닿았다.

“검사 눈에는 유독 어둠이 잘 보이거든.”

“오글거려 치우야…….”

달과 해를 가리고 있는 어둠을 걷어 내는 일.

또 서서히 밝아 올 아침을 지키는 것 또한 검사의 일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디까지 연관된 걸까.”

“알아봐야지. 저 밤하늘의 달빛을 가리고 있는 어둠이 누구인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하던 내 생각을 마음껏 표출했다.

왜?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아! 쫌!”

역시 반응이 오는 서윤호였다.

“하하하, 미안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었거든. 형이 듣기 싫은 소리 말이야.”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듣기 싫으니까 그만해.”

“알았어. 이제 장난 그만.”

또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고 복잡함에 쉬어가던 머리는 다시 돌아간다.

하나 머릿속에 들어온 유대명이라는 이름은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나를 죽이려는 거지?

부하 직원인 이천웅과 민재홍 두 사람의 옷을 벗겨서?

설마. 그런 일로 같은 검사를 죽일 리가 없잖아.

아무리 부하를 아낀다 해도 말이야.

오히려 나를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을 보좌하고 있던 두 사람이 썩었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아니면…….

“희박한 확률이지만 지폐는 돌고 도는 거고 그렇기에 유대명 검사장의 지문이 묻어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네 사건과 관계없이 그냥 둘이서 돈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고.”

“그것보다는 더 높은 확률의 가설이 있어.”

“뭔데?”

두 사람은 그저 꼬리였을지도 모른다.

몸통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그런 꼬리.

“형 특수부 이천웅 검사랑 민재홍 부장 소명 그룹한테 스폰받은 거 알지?”

“그럼 잘 알지. 덕분에 특수부가 아직도 감찰 중인데.”

“그걸 밝혀낸 게 나고.”

“그렇지. 한치우가 위대한 연수생 시절에 밝혀낸 거지. 잠깐…….”

말끝을 흐리는 서윤호가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설마 지금 이 상황에 자랑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나를 죽이려는 게 그것 때문이라면?”

“무슨 소리야? 유대명 검사장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었잖아.”

“같은 특수부였잖아.”

검찰 내부에서는 소명 그룹 비자금 사건보다 두 사람의 스폰 사건이 더 크게 이슈가 되었다.

검찰 내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특수부.

정재계의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고 거악(巨岳)을 잡는, 검찰 내에서도 위상이 가장 높은 부서이다.

그렇기에 국민들 또한 다른 부서는 몰라도 특수부에 대한 시선은 고울 것이다.

답답한 고구마 같은 사건들을 시원하게 처리해 주니까.

그런데 그런 특수부에서 스폰 사건이 터져 버렸으니…….

대검은 물론 청와대까지 나서 일벌백계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고, 특수부 소속 검사들은 업무보다 감찰을 받는 시간이 더 많게 되었다.

계좌에 찍힌 출처 없는 몇 만원까지 소명서를 적어 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형도 알다시피 이천웅, 민재홍의 스폰 사건 당시에 유대명 검사장이 특수부를 관리하는 3차장이었어.”

한데, 그런 상황에서 유대명이 검사장 승진을 했다?

청와대와 대검이 나선 빽빽한 감찰을 통과하고 말이다.

“물론 나도 알지. 그런데 유대명 차장 스폰 사건 터지고 난 후에 검사장으로 승진했어.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그렇기에 나 또한 상상도 못했다.

저 돈에서 유대명의 지문이 나올 줄은.

“맞아.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나도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

뭘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치우야. 혹시 꼬리를 자른 게 아닐까?”

만약 유대명 역시 소명 그룹의 스폰을 받았다면 꼬리를 확실하게 자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사장으로 승진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천웅, 민재홍은 몸통이 유대명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고.

“그런데 형 말에는 오류가 하나 있어.”

“오류?”

“꼬리를 확실히 잘랐고 검사장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는데 굳이 왜 나를 죽이려 해?”

“천재학과 유재명이 스폰 관계였다면 현찰이 오갔을 것이고, 그러면 유재명 지문이 나올 수도 있지. 또 지문이 나왔다고 유재명 검사장이 너를 죽이려 했다는 건 억지일 수도 있잖아.”

아니.

그것 또한 오류가 있다.

“형 말대로라면 감찰이 무서워 유재명이 스폰으로 받은 현찰을 구치소에 있는 천재학에게 건넸다는 거잖아.”

“구치소에 있었으니까… 김태민 전무가 대신 받았을 수도 있지.”

“그래. 그건 오케이. 그런데 구치소에 있는 천재학이 살해 지시를 해서 김태민 전무가 그 현찰을 그대로 청부업자에게 건넸다는 거는?”

“흠…….”

서윤호도 자신의 말에 오류가 생각났는지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확률적으로 희박하지… 돌고 도는 현찰이 그렇게 전해진다는 게.”

“맞아. 그것도 그렇고 거의 대부분의 현찰에서 유대명 지문이 나왔어.”

서윤호 방으로 건넨 1억.

쇼핑백 가방에 담긴 100만 원짜리 다발 백 개였다.

그리고 거의 모든 다발에서 나온 유대명과 김태민의 지문.

“그럼 청부업자에게 돈을 건넬 때, 혹은 담을 때 유대명도 있었다는 거네.”

“아니면…….”

그 과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오류가 없는 단 한 가지 상황이 있다.

“김태민이 돈을 마련했고, 유대명이 담아 건넸다. 어때?”

“…….”

자신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윤호 역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직접 돈을 건네? 너를 죽이려 사주한 게 천재학과 유대명 두 사람이라면 굳이 돈을 직접 건넬 필요가 없지. 김태민 전무라는 운송 수단이 있는데.”

구치소에 있는 천재학은 당연히 건넬 수 없었을 것이고 유대명이 돈을 직접 건넨 이유는…….

“김태민 전무도 모르는 게 아닐까? 유대명의 존재를.”

“뭐?!”

“형, 유대명도 결국 검사야. 흔적을 남길 리 없다는 말이지.”

처음 뺑소니 사건에도 유대명이 연관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그때도 그렇고 남양주 폐공장 사건에서도 천재학 말고는 유대명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왜?

“형, 검사들 특징이 뭔 줄 알지.”

“확실한 게 아니면 안 믿는다는 거지.”

“맞아.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확실하지 않아. 언제든지 변할 수 있거든.”

그러니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유대명 검사장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거야.”

“치우 네 말대로라면 천재학이 부하 직원인 김태민 전무에게 현찰을 마련하라고 시켰고 유대명 검사장은 그 현찰을 건네받아 청부업자에게 건넸다는 거야?”

“아마도. 그리고 변장을 했거나 혹은 보관함을 이용해 돈을 건네받았을 거야. 청부업자에게 건널 때에는 차 안에서 창문만 살짝 열고 건넸을 것이고.”

가로등 없는 산속에서 청부업자들이 유대명을 알아보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알아볼 필요도 없겠지.

상대가 누구든 자신한테 돈만 주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천재학 말고는 이 사건에서 아무도 유대명의 존재를 알 수가 없어.”

“흠…….”

끄덕끄덕.

자신의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윤호.

“맞네. 더군다나 존재를 알고 있는 천재학은 구치소에 있으니 유대명을 옭아맬 수도 없을 테고…….”

“아니. 목줄을 쥐고 있는 건 오히려 유대명일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소명 그룹 비자금 사건은 중앙 지검 소관이고, 천재학의 형량을 주무를 수 있는 건 중앙 지검장인 유대명이니까.”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맞추어져 갔다.

그리고 퍼즐이 맞추어져 갈수록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스톱 쳐서 검사장 자리에 앉은 건 아닌 것 같네.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사건을 꾸민 거야.”

“나는… 니가 더 대단한 것 같다, 치우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검사장이 몇 수 앞을 내다본 걸 지금 전부 파악하고 있잖아. 으… 소름 돋아.”

서윤호 역시 소름이 돋는 듯 두 손으로 팔을 비비고 있었다.

나와 같은 이유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걸 떠나서 확실한 건. 이번 사건에서 분명히 유대명도 연관이 있다는 거야.”

“네 말을 부정할 수가 없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왜 유대명 검사장이 너를 죽이려 했냐는 거야.”

“그러게 그건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네.”

이 사건이 한편의 시나리오라고 치자.

모든 상황은 맞추어졌고 오류 또한 완벽히 잡아냈다.

그리고 큐 사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악역을 찾으면 될 터.

“형, 일단 유대명 프로필부터 자세히 알아보자.”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데 뭐.”

“인터넷에서는 알 수 없는 프로필을 알아보자는 거야.”

문제는 악역이 어떻게 캐스팅됐고, 왜 악해졌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악역을 찾아가 정의 구현을 할 수도 없다.

이유 없는 악행은 잘 짜여진 시나리오의 재미를 반감시키니까.

더군다나 이 사나리오를 나에게 대입한다면 반드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지금 중앙 지검 소속 검사들이 중앙 지검 검사장 뒤를 캐자는 거야?”

“응.”

나에게 있어 악역은 천재학과 유대명이니까.

천재학이야 모든 힘을 잃고 감옥에 있어 주무르기 쉽지만, 유대명은 다르다.

차기 검찰총장 1순위이자 서울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간섭할 수 있는 중앙 지검장.

그런 인물이 나를 죽이려 했다.

그렇기에 쉽게 대응할 수가 없다.

대응할 무기라고는 유대명의 지문이 묻어 있는 지폐 다발밖에 없으니까.

조금 더 확실한 무기가 필요하다.

“뒤를 캐다 보면 나오겠지. 나를 죽이려 했던 이유가.”

“잘 알고 있겠지? 실패하면 하극상이 될 수도 있는 거. 그럼 총장님도 너를 보호해 주기 힘들 거야.”

“실패 안 해.”

검찰은 군대만큼 상명하복이 심한 조직이다.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단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고 검사는 개개인이 단독 관청이라는 법을 모순시킬 만큼 말이다.

검찰청법 제7조.

검사는 검찰 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른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상급자의 결제를 받아야 하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검사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개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독임제 관청이며, 상급자의 결재가 떨어지지 않더라도 기소권과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왜?

개개인이 단독 관청이라 하여도 검사는 검찰이라는 조직의 일부이니까.

생각해 보아라.

사명감과 정의로움이 가득한 사람이 조직에 대응해서 변화를 일으킨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걱정되면 형은 안 해도 돼. 지금까지도 충분히 고마웠으니까.”

깊은 고민에 빠진 듯 하염없이 땅만 바라보고 있는 서윤호에게 말했다.

“됐어. 약속한 게 있거든.”

“무슨 약속?”

“네가 범인을 잡으러 가는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 주겠다고.”

탁탁.

한참을 앉아 있던 DFC 정문 계단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서윤호.

“누구랑 그런 약속을 해?”

그런 서윤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어차피 검사는 자기 사건 기소 못하는 거 알잖아. 내가 필요할 거야.”

“하하하, 누구랑 약속했는지는 몰라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우리는 대검을 빠져나가려 정문으로 향했다.

“뭐부터 할까, 한 검사님?”

“일단 유대명 검사장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보자.”

그래야 유대명의 구린 뒤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형은 본인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라 생각해?”

“우리 엄마?”

“휴… 그럼 유대명 검사장 부모님 찾아가서 돌잡이 때 뭐 잡았냐고 물어보기라도 할까?”

“…말 좀 예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냐?”

휙휙.

씩씩거리는 서윤호를 뒤로한 채 도로에 나가 손을 흔들자 택시 한 대가 멈추었다.

“유대명이 검사가 됐을 때부터 본 사람이 하나 있어.”

택시 문고리를 잡은 채 뒤돌아 서윤호에게 말했다.

“누구?”

“생각해 봐. 형이 검사가 됐을 때… 아니 될 거라 마음먹었을 때부터 본 사람이 누군지.”

“흠… 한치우?”

“맞아. 유대명 또한 연수원 동기이자 같은 지검에서 구르던 친구가 있었지. 지금은 검사가 아니지만 말이야.”

탁.

“어디로 모실까요?”

우리는 택시에 올라탔고 내 입에서 나올 말이 궁금한 건 택시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서윤호 역시 내 목적지가 궁금했으니까 말이다.

“이남윤 변호사 사무실이요.”

* * *

이남윤.

전 서울 중앙 지검 1차장.

“이남윤 변호사 사무실이면… 중앙 지검 1차장이시던 분?”

“응. 그리고 유대명 검사장의 연수원 동기야.”

검찰에는 용퇴(勇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해 정년이 오기 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는 일.

뜻은 그렇지만 보통은 용기 있는 퇴진이라 말한다.

“지금은 퇴진하시고 변호사 개업하셨고.”

“어쩔 수 없었다지만, 솔직히 유대명보다 이남윤 차장님이 훨씬 더 능력 있는 분이셨는데…….”

나와는 연이 깊었고 서윤호 역시 이남윤을 알고 있었다.

사고로 누워 있던 지난 5개월.

3차장이던 유대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1차장이던 이남윤은 동기의 승진에 용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중앙 지검 특수부 소속 서윤호 검사는 가장 가까이서 이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형도 알잖아. 3차장이 차기 검사장 1순위인 걸.”

“설마 했지. 이남윤 차장이 강철호 총장님 라인이었잖아. 대검으로 넘어가실 때 자신의 빈자리를 이남윤 차장한테 물려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총장이 의견을 낸다고 해도 결국에 검사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하는 거니까.”

나중에야 대검에 중수부가 있고 특수부의 파워를 뛰어넘는다지만, 중앙 지검 안에서 만큼은 가장 많은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부서이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중수부가 사라지고 모든 권한이 특수부로 넘어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특수부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의 파워 또한 더 막강해지겠지.

하나 지금도 약한 것은 아니다.

특수부를 포함 모든 인지수사 부서를 관리 감독하는 것이 3차장 검사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총장님이랑 법무부 장관님이랑 동향인데 사이가 안 좋은가? 분명히 총장님은 이남윤 차장님을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려 하셨을 텐데.”

“모르지. 아니면 강철호와 법무부 장관 사이보다 유대명과 법무부 장관 사이가 더 끈끈할 수도 있고. 그게 우정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의 욕심을 채워 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뭐가 됐건.

유대명의 검사장 승진이 이상한 건 결코 아니었다.

보통 3차장이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1차장은 서울 고검장으로 승진하는 게 관례였으니까.

문제는 1차장과 3차장이 동기였고, 이남윤이 고검장으로 승진하게 된다면 중앙 지검장과 서울 고검장이 동기가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하긴… 고검장 승진이 안 되셨으니 옷 벗으실 수밖에.”

물론 고검장이 항고 사건의 수사와 공소 유지만 하는 실권 없는 자리이긴 하지만, 중앙 지검의 상급 기관인 건 분명하다.

그러니 법무부도 중앙 지검장의 동기를 고검장 자리에 앉힐 수는 없을 노릇이었겠지.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치우 너는 이남윤 차장님을 어떻게 알아? 한 번도 뵌 적이 없잖아.”

“검찰 시보 때 뵌 적 있어.”

“아∼ 맞다. 너 검찰 실무도 중앙 지검에서 했었지… 대단한 놈.”

강철호 다음으로 검찰에서 존경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물론 지금은 떠나셨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마주칠 것이다.

아직 법조계를 떠나지 않은 변호사니까.

“아무리 안면이 있어도 불쑥 찾아가도 되는 거야?”

“안면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소명 그룹 사건 때 많이 도와주셨거든.”

또 이천웅과 민재홍의 감찰을 도와주기도 했다.

선배인 대검의 감찰국장을 통해서 말이다.

“몇 번 술자리 가진 적도 있고 하니 내치시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봐도 넌 전생에 구미호였을 거야.”

“뭔 소리야 또.”

힐끔.

나와 서윤호의 목소리가 커지자 룸미러로 우리의 눈치를 보는 택시 기사.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어…….”

룸미러를 통해 비친 택시 기사 눈빛을 봤는지 서윤호가 조용히 속삭였다.

“형도 홀렸잖아 내가.”

“하하하, 생각해 보니 그러네. 얼마나 잘 홀렸는지 지난 5개월 동안 머릿속에서 네 생각만 나더라.”

“뭐야, 오글거리게. 그래도 고마웠어, 형. 매일 찾아온 거 알고 있어.”

“연수원에서 2년 동안 한 이불 덮고 잤는데. 병실에서 한 이불 덮으려니까 좁더라.”

그리고 택시 기사의 눈빛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저… 응원합니다.”

“네? 뭘 응원해요?”

또 왠지 모르게 눈빛이 슬퍼 보이기도 했다.

젠장.

생각해 보니 우리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들으면 충분히 오해할 만한 말이었다.

하나 아직 눈치를 못챘는지 기사에게 되묻는 서윤호.

“검사님들 같은데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현실이 얼마나 슬프시겠어요.”

그런 서윤호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또 놀려 주고 싶었다.

“공부만 하지 말고 세상도 좀 배우시지… 세상은 음과 양이 있고…….”

“기사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아닙니다. 모르는 척 해드리는 게 오히려 두 분을 위한 걸 수도 있겠네요.”

이 형 진짜 바보인가.

“큭큭.”

“넌 또 왜 그래?”

“흡… 아니야. 아! 배 아파 죽겠네. 큭큭.”

탁.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배가 아팠고, 서윤호는 기사님이 파이팅을 외치며 떠날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꽤 먼 거리였는데도 요금을 받지 않은 이유와 택시 기사가 슬픔과 안타까움이 섞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 이유를 말이다.

“저 기사님 왜 저래?”

“그러게. 크큭.”

“그래도 착하시네. 우리가 공무원이라고 택시비도 안 받으시는 것 같은데.”

“공무… 하하하하하!”

결국 터져버린 웃음.

쌓아놓은 탓인지 큰 웃음소리가 강남 대로를 걷던 사람들의 시선을 전부 모을 수 있었다.

“아니 왜 그러냐고 쪽팔리게! 허파에 바람 들어갔냐?”

“하하하하, 형 기사님이 왜 그런 건지 진짜 몰라?”

“왜 그런 건데?”

“우리가 게이라고 오해한 거잖아.”

정말 좋아하는 형이고 검사로서 완벽한 사람이지만, 단 한가지 부족한 게 있었다.

눈치가 더럽게 없다는 거.

그래도 나쁜 사람만 아니면 됐지 뭐…….

“뭐?! 나를 뭐로 보고!”

택시가 떠나간 도로를 바라보며 소리치는 서윤호.

“너는 알고 있었으면 아니라고 말했어야지!”

이미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닌 게 아니거든.”

그리고 나는 이 장난을 멈출 생각이 없다.

“왜… 왜 이래?”

“사실… 그동안 숨겨 왔었어. 내가 형한테 느끼는 감정을…….”

“치우야… 형은 지극히 정상이고 아직 야동으로밖에 못 봤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몸이 궁금한 사람이야.”

“내 몸도 충분히 아름다워 보여 줄까?”

쿵.

뒷걸음질 치던 서윤호가 엘리베이터에 부딪혔고,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 제발 치우야!”

소리를 지르며 눈을 찔끔 감는 서윤호.

띵―

― 1층입니다.

그 모습에 장난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그것도 검사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하하! 장난이야. 검사가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되겠어?”

“치우야 사실 나도…….”

“재미없으니까 그만하고 올라가자.”

“젠장…….”

* * *

“이야∼ 이게 누구야. 한치우 아니야?”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반기는 이남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웃는 얼굴에 주름이 늘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차장님.”

“차장은 무슨. 그냥 변호사라 불러.”

[변호사 이남윤]

이남윤 뒤로 선명히 보이는 명패.

이제 그는 검사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저한테는 아직 차장님이십니다.”

“애늙은이 같은 건 여전하네, 한 검사. 일단 앉지.”

다만, 명패에 뭐라 적혀 있던 또 그 명패가 어디 있던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남윤은 누구보다 괜찮은 검사니까 말이다.

“이쪽은 중앙 지검 특수부 서윤호 검사입니다, 차장님.”

“아∼ 퇴직 전에 몇 번 본 거 같네. 반가워요, 서 검사.”

서윤호에게 악수를 건네는 이남윤.

쓱쓱.

아까 일로 손에 땀이 났는지 옷에 손을 비비고 악수를 받는 서윤호였다.

“반습니다, 차장님. 서윤호라고 합니다. 말씀 편히 하시지요!”

“그래.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자리에 모여 앉은 세 사람은 꽤 오래 시간 동안 얘기를 이어 나갔다.

사무실 창문 밖으로 높게 뜬 해가 다시 질 때까지 말이다.

“휴… 사무장님 커피 한 잔씩 더 주시겠어요?”

“네, 변호사님.”

쌓여 가는 빈 종이컵.

그 속에 얘기를 채워 넣기라도 하려는 듯 지금까지 있던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남윤에게 고했다.

“현직 검사장의 뒤를 캘 방법이 도저히 없어 이렇게 차장님을 찾아온 겁니다.”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얘기를 들어주던 이남윤.

“일단… 치우 네 얘기는 합리적 의심이자 오류가 없어. 그렇기에 나 또한 유대명 검사장이 너를 죽이려 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할 말이 없고.”

내 이야기가 끝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한참 후에야 이남윤의 입이 열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치우 네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내 동기가 그런 괴물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거든. 아니지… 이미 잊고 지낸 기억을 꺼내기 싫다는 게 더 맞겠지.”

“어떤 사람입니까?”

“대명이? 연수원 때는 둘도 없는 동기였지. 같은 기숙사였으니까.”

“그렇게 가까운 사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중앙 지검이 아무리 넓다지만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거나 혹은 가벼운 눈인사조차 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보 기간 때문에 보지 못해서?

아니면 각자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

아니.

지검장과 차장검사들의 회의를 끝마치고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도 볼 수 없었다.

“흠… 지금은 가깝다고 말할 수 없지.”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그렇기에 이남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명이는 연수원을 10위로, 나는 차석으로 졸업했고… 하하, 너무 자랑 같나?”

“아닙니다, 차장님.”

“그래. 치우 자네 앞에서는 자랑이 아니라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거겠지.”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해 보려는 듯 농담을 던지는 이남윤이었다.

“하여튼 운이 좋게 두 사람 다 첫 발령지를 중앙 지검으로 받았고, 같은 곳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네. 후…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대명이가 변한 이유인 것 같아.”

하나 가벼워진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초임 검사 시절에 얼마나 패기 넘쳤겠어. 대명이와 나는 세상에 모든 범법자를 잡을 기세로 밤낮으로 일했네. 피의자 조사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었으니…….”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이었나 보네요.”

“치우 너도 알잖아. 처음부터 더러운 법복을 입는 검사는 없어. 더러운 놈들을 잡는 과정에서 법복에 때를 뭍이냐 마느냐는 자신이 결정하는 거지.”

힐끔.

잘 다려진 이남윤의 하얀 셔츠를 바라보았다.

목이 늘어나고 세탁으로는 지워지지 않은 누리끼리한 때가 좀 보였지만 그가 검찰에 벗어 놓고 온 법복은 깨끗할 것이다.

“뭐가 됐든 우리는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을 중앙 지검에서 보내고, 두 번째 발령을 받게 되었지… 그게 대명이를 바꿔 놓은 계기가 됐을 거 같네.”

“왜요?”

“둘 다 기소 실적도 같았고, 승소률은 오히려 대명이가 더 높았네. 나도 인정해. 나보다 대명이가 더 노력했다는 걸.”

순환 보직의 원칙에 의해 검사는 2년마다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을 받는다.

그게 수도권이 될지 아니면 바닷가 근처가 될지는 검사의 뒷배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나는 대검으로 대명이는 영월 지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네.”

“왜요?”

“학벌과 연수원 성적… 그리고 라인.”

당시에 검찰과 법무부는 한국대가 장악하고 있었고, 라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검찰 조직은 연수원 차석이자 VIP와의 동향, 그리고 한국대 출신 이남윤을 키워 보려고 했는지 대검으로 파견시켰다.

“대명이가 지방대 출신이었네. 검찰 내부에 라인도 하나 없었고.”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군요.”

“하지만 대명이는 믿고 있었어. 노력을 통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검사가 된다면 배경을 떠나서 자신을 인정해 줄 거라고.”

하지만 유대명의 신념은 무너져 버렸다.

“나는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아. 영월로 떠나던 날 대명이의 마지막 눈빛을.”

그렇게 영월로 떠난 유대명은 불과 4년도 되지 않아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보통 한 번 지방으로 파견되면 실적을 쌓으면서 서서히 서울로 올라오는데 대명이는 영월에서 서울로 오기까지 4년밖에 걸리지 않았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대명이는…….”

홀짝.

목이 타는 듯 커피를 들이키는 이남윤.

머릿속에 떠오른 한 기억이 갈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괴물이 돼 있었네.”

* * *

4년간 유대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다시 서울로 돌아온 유대명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상에 모든 범법자를 잡아넣겠다는 패기도.

배경을 떠나 정의롭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인정받는다는 생각도.

모두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4년 만에 본 대명이는 다른 사람 같았네.”

또 유대명의 사라진 패기와 생각에 새롭게 채워진 게 있었다.

여러 가지는 아니다.

모든 걸 통틀어 말할 수 있는 한가지 단어였으니까.

욕망.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것, 또는 그런 마음.

“영월로 떠나기 전 대명이와 분명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영월로 떠나던 날 느낀 억울함.

그렇기에 돌아본 자신의 부족함.

그리고 긴 생각 끝에 얻은 깨달음까지.

억울함에 괴물이 되었고, 부족함을 채워 나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유대명.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괴물이 되었다는 건 무슨 말씀이시죠?”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같은 대명이의 목적지가 바뀌어 있었네.”

검사 선서 앞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에 쓰레기들을 전부 치워 깨끗해진 세상.

그곳이 두 사람의 목적지였다.

물론 유대명의 목적지는 바뀌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괴물이 되어 있었지.”

“유대명의 목적지는 어디였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줄 자리였네.”

“어떤 자리요?”

“그건 나야 모르지. 검사장이라는 자리도 아직 부족하다 느끼고 있을 수도 있고.”

아마 나를 죽이려 한 게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면 서울 중앙 지검장이라는 자리도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욕망이 커져갈수록 느끼는 부족함도 커지는 법이니까.”

두 마음 모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괴물이 되기까지가 어려운 것이지 한 번 괴물이 됐다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유대명 검사장이 서울로 돌아온 다음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까?”

“다시 서울로 돌아온 대명이는…….”

영월로 떠난 유대명.

4년 후 다시 돌아온 이후의 상황이 어떤 실마리가 되어줄 것 같았다.

“대검으로 갔던 나는 다시 2년 후 법무부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나 중앙 지검 형사부로 발령받았고 4년 후에 돌아온 대명이는 특수부에 자신의 방이 하나 생겼네.”

그리고 다시 중앙 지검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검찰의 순환 보직 원칙을 철저히 무시한 채 중앙 지검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검찰 내에서도 꽤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검사라면 모두가 알고 있었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시 형사부 부장이던 강철호 총장님 밑에서 대한민국 조폭들을 쓸어 담았고. 대명이는 특수부에서 거악(巨岳)들을 때려눕혔네.”

또 두 사람 때문에 옷을 벗은 선배 검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던 두 사람이 얼마나 빠르던지 선배 기수들을 제치고 몇 번이나 이른 승진을 했으니까 말이다.

상관이 되어 버린 후배 기수.

선배들은 당연히 용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명이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까지 괴물이 되었는지 하루에 두 시간도 자지 않고 일을 했어.”

자리에 대한 욕망 때문이겠지만, 두 사람의 레이스에 고민이 깊어지는 건 법무부였다.

왜?

조폭들을 싹쓸이하는 이남윤과 거악을 때려눕히는 유대명.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사회면에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렇기에 법무부는 순환 보직 원칙 무시라는 특혜까지 주었지만, 두 사람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고, 여론은 두 사람의 레이스를 응원했다.

그럼 뭐 어쩌겠는가.

호환마마보다 여론이 무서운 파란 지붕의 주인은 법무부 장관을 탓할 수밖에.

그리고 여론보다 임명권자가 무서운 법무부 장관은 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수건 인사 정체건, 모든 걸 무시한 채 두 사람을 밀어주라는 명령을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네요.”

“아니.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목적지가 바뀌었다고. 나는 검사로서 달렸고, 대명이는 자리를 얻기 위해 달렸네. 검사가 아닌 괴물인 상태로.”

“왜 그렇게 생각하신 거죠?”

“알잖아. 조폭은 잡으면 끝이지만 정재계를 담당하는 특수부는 수도 없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걸.”

“특수부는 대다수가 인지 사건이니 정보만 들어오면 조사가 가능하고, 그걸 대가를 받고 표적 수사를 했다는 말씀이시군요. 유대명은 자리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괴물이었으니까요.”

“역시 한치우, 하나를 말하면 머릿속에 열을 입력하는구나.”

그렇게 달려가던 어느 날 유대명에게 브레이크 같은 존재가 하나 나타난 것이다.

한치우라는 브레이크가.

“그런데 왜 동기를 말리지 않으신 거죠?”

“왜 안 말렸다고 생각하나?”

소용없었을 것이다.

이미 괴물이 되어 버린 후였으니까.

“말려도 소용없으셨군요.”

“맞아. 그리고 사실… 대명이에게 변한 이유에는 내 잘못도 있네…….”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차장님.”

“휴…….”

긴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남윤.

“그때 생각을 하니 속이 허하구나.”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두리번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다시 찾을 걸 알면서 매번 버린다니까. 미련 맞게 말이야.”

톡톡.

이남윤의 말에 서윤호의 옆구리를 찔렀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눈치챘고, 나는 없지만 서윤호의 주머니 속에는 있기 때문이다.

하나 두리번거리는 이남윤을 바라만 보고 있던 서윤호.

“왜……?”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형, 차장님 담배 찾고 계신 거 같으니까 한 까치 드려.”

“아∼ 담배 찾고 계신거구나. 난 허하다길래 배달 전단지 찾고 계신 줄 알았는데.”

“제발… 형. 머릿속에 법조문만 넣지 말고 눈치도 좀 키워…….”

그래도 행동은 빠릿빠릿한 서윤호가 재빨리 담배를 꺼내 이남윤 앞에 놓았다.

“허허 고맙네. 서 검사 선배들한테 예쁨 많이 받겠는데?”

서윤호의 행동에 두리번거림을 멈춘 이남윤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닙니다. 제가 드린 게 아니라서요.”

“자네가 준 게 아니라니?”

힐끔.

“허허, 서 검사 참 좋은 동기를 두었구나. 나와는 다르게 말이야.”

서윤호에 말에 내 눈치를 보는 이남윤.

알아챈 것이다.

서윤호와 나의 속삭임을 말이다.

“네…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지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하, 서 검사 그거 알고 있나?”

“어떤 겁니까?”

“좋은 동기를 만나는 건 운이 아니라. 자네의 능력이야.”

맞는 말이다.

서윤호와 나는 같은 기숙사를 썼다고 만들어진 단순한 관계가 아니었다.

눈치는 없지만 서윤호는 분명 사람을 끌어당기게 하는 매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검사로서의 사명감.

대포차 업자들을 상대하던 카리스마.

나를 위해 흘려주던 눈물.

사실 도움을 받은 쪽은 서윤호가 아니라 나이다.

“치우 같은 완벽한 검사를 자네 편으로 만들었다는 건 자네의 능력도 그만큼 된다는 말일세.”

“하하하하! 하긴 치우도 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서윤호는 왠지 모르게 어깨가 올라갔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담배 한 개비의 감사 인사.

그 인사로 인하여 두 사람의 마음이 요동쳤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고 앞으로 이남윤에게 배워야 할 게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꽤 긴 얘기가 될 것 같은데 담배 하나 피워도 되겠는가?”

“편히 태우십시오, 차장님.”

드르륵!

부싯돌 소리와 함께 방 안에 퍼지는 담배 연기.

이남윤의 몸속에서 나온 그 담배 연기가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 주었다.

* * *

유대명과 이남윤.

두 사람의 발령지가 확정되던 날.

분노가 섞여 거친 숨을 몰아쉬던 이남윤이 법무부를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중앙 지검 이남윤 검사입니다. 국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약속하셨나요?”

“아니요.”

법무부 검찰국장실.

자글자글한 주름도 하얗게 센 흰머리도 보이지 않는 이남윤.

“잠시만요…….”

그런 이남윤을 바라보던 검찰국장 비서가 조용히 인터폰을 들었다.

“국장님, 중앙 지검 이남윤 검사가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실까요?”

힐끔.

아마 부정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인터폰을 들고 있던 비서의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이 이남윤에게 향했으니까 말이다.

“죄송하지만,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시라고…….”

“점심시간 내내 국장실 앞에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분들은 하나도 없었고요.”

“그게…….”

똑똑.

“중앙 지검 특수부 이남윤 검사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저기요!”

앉아 있던 비서가 일어나 이남윤을 붙잡으려 했지만, 국장실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조금 빨랐다 하더라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남윤을 말로는 막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검사를 청원 경찰들이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또 가녀린 여자인 비서가 질주하는 거친 남자를 막을 수도 없었을 테고.

“죄송합니다, 국장님…….”

그러니 그녀로서는 이남윤을 뒤 따라 들어와 죄송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휙휙.

“됐네. 자네도 어쩔 수 없었겠지.”

검찰국장의 손짓으로 문이 닫히고 국장실 안 공기는 무거워졌다.

“잘한다. 칭찬 좀 해 주었거니 위아래도 없는 건가? 어디 감히 일개 평검사가 검찰국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검찰국장 박모현]

명패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던 박모현.

그가 이남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노크했고, 들어온다 말씀도 드렸습니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내가 동의했나? 아니면 지금 나한테 통보했다고 말하는 건가?”

검찰국장.

검찰의 빅4.

대검 중수부장과 공안 부장 그리고 서울 중앙 지검장과 함께 검찰 내부의 핵심 요직 중 하나.

법무부 안에서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계획하고, 핵심 부서들에게 수사를 지휘 감독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리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어느 조직이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권력이 막강할 것이다.

목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만나 달라고 수도 없이 연락드렸습니다. 안 받으셔서 이렇게 찾아왔고요. 저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걸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패기 때문인지 아니면 분노에 이성을 상실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최종 결정은 법무부 장관이 제청해 청와대에서 하겠지만, 검찰국장이 인사와 예산의 뼈대를 만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또 굳이 트집을 잡을 이유가 없다면 법무부와 청와대의 감리는 대부분 통과할 것이다.

“왜 저는 대검이고, 유대명 검사는 영월 지청으로 가는 겁니까? 기소 실적만 따지면 저보다 유대명 검사가 훨씬 좋지 않습니까!”

그게 이남윤이 검찰국장을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 미쳐 날뛰는 놈 상대하고 싶지는 않네만 그만 개기지? 나도 인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쿵.

“말씀해 주십시오, 국장님!”

“아이고… 미치겠네…….”

이남윤은 여전히 큰소리를 침에도 검찰국장이 유해진 이유?

동기의 마음이 얼마나 억울한지 알고 있는 이남윤.

그리고 그런 동기를 생각하는 마음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나도 자네랑 유대명 검사 둘 다 대검으로 올리고 싶었네. 그런데 청와대에서 유대명 검사 이름을 빼 버리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왜 대명이 이름이 빠진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따질 거면 청와대 가서 따지든가. 아니면…….”

무언가 대책을 말해 줄 것 같이 말끝을 흐리는 검찰국장.

이남윤 역시 기대에 찬 눈빛으로 검찰국장을 바라보았다.

하나, 감찰국장의 다음 말은 이남윤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는 말이었다.

“자네가 영월 지청으로 가든지.”

* * *

무릎을 꿇은 이남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두 사람 다 대검으로는 못 보내도 자네 이름을 유대명으로 바꿀 힘은 있네.”

“그건…….”

“휴… 일단 앉지. 내 앞에서 석고대죄한다고 자네가 원하는 걸 이루어 줄 수는 없으니까.”

집무 테이블에서 꼼짝 않고 말하던 검찰국장이 손님용 소파로 향했고 이남윤 역시 무릎을 꿇고 있던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나도 안타깝네. 자네와 유대명 검사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이거든.”

이남윤과 유대명 두 초임 검사가 이루어 낸 실적은 검찰 역사를 뒤바꿀 만큼 대단했다.

검사의 실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기소를 얼마만큼 했냐는 것이다.

그게 곧 얼마나 많은 범법자를 재판장에 세웠냐는 증거가 되니까.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기소한 형사사건이 무죄가 나올 확률?

0.5프로가 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검사는 혐의 입증을 확실히 할 수 없는 사건에는 기소를 하지 않는다.

실적을 쌓으려다 불안한 기소를 해 무죄가 나온다면 오히려 독이 되니까.

또 억울한 사람을 기소했다가는 몇 십 년간 피땀 흘려 입은 법복을 벗어야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위축만 되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범법자를 재판장에 세운 실적이 없다면 곧 승진도 없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은 너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소수의 검사가 썩은 거지 대다수의 검사는 국민을 위해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게 본인의 승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검사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검사가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72%… 내 20년 검사 생활 동안 처음 듣는 기소율일세. 자네들이 기록한 기소율이 말이야.”

모든 형사사건에서 검사의 기소율 약 40%.

두 사람이 높은 기소율을 기록할 수 있던 것은 별 다른 능력 때문이 아니다.

노력.

발령 2년 차 미만 초임 검사들 중 기소율 1, 2위를 차지한 유대명과 이남윤.

거기에 기소 건 수는 전체 검사들 중 1, 2위를 다투었다.

입증이 안 되는 사건은 발로 뛰며 증거를 찾았고, 경찰에서 넘어와 높이 쌓여 있던 사건 기록들은 빠르게 낮아졌다.

또 두 사람의 검사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된 사건 기록.

그것이 두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2년간 자네들을 지켜봤고 어느 한쪽이 부족하다 판단할 수 없었네.”

검찰국장뿐만 아니라 주인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청와대 역시 그런 두 사람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투 탑으로 갈지.

아니면 원 탑으로 갈지.

두 사람 모두 키워볼만한 가치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장관님은 한 사람을 선택하라 지시했네.”

고심 끝에 내린 청와대의 결정은 원 탑이었다.

“수정 테이프를 들고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했지. 하지만 두 사람 이름 모두 빛나고 있는 걸 어쩌겠는가.”

검찰국장 역시 청와대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지 못했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관님을 거치지 않고 두 사람의 이름이 담긴 쪽지를 민정 수석실로 보냈지.”

검찰국장 역시 검사였고, 정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고 푸시를 해 준다면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검사가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볼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이야 사법연수생 1,000명 시대를 맞이했지만, 이남윤의 연수원 동기는 불과 3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 검사가 된 인원은 겨우 37명.

그렇기에 검사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이남윤과 유대명처럼 능력이 출중한 검사는 청와대에서 관리할 정도로 아꼈을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답변은 번복되지 않았네. 그리고 나는 청와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말이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우리는 행정부 소속이고, 행정부의 수장이 내린 결정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다만, 필요한 검사는 한 명뿐이었을 것이다.

한 명만 선택한다고 다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원망은 하지 말게. 또 나한테 때 쓴다고 바꿀 수 있는 건 유대명 검사 대신 자네가 영월 지청으로 가는 것밖에 없으니 그것도 알아두고.”

“둘 중에 제가 대검으로 가게 된 이유는 뭡니까?”

“딱히 이유는 없어. 한국대 출신에 VIP와 동향인 자네가 더 낫다고 판단한 거지.”

“그런데 왜 하필 영월 지청입니까. 저와 대명이 모두 훌륭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굳이 뛰어난 한 명을 뽑아 대검으로 보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한 명을 바닷가로 보내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선과 차선을 다투는 두 사람을 굳이 극과 극으로 떨어트려 놓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둘 중 한 명이 맡게 될 역할 때문이지.”

“무슨 역할이요?”

“레임덕을 막고 무사히 정권 이양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역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권에 필요한 패기 있고 능력 있는 단 한 명의 검사.

그게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아야 할 이유였다.

“대검 한 번 찍고 법무부 거쳐서 다시 중앙 지검으로 돌아오면 딱 4년이야. 그 말은 지금 입주한 청와대 주인의 5년짜리 전세가 끝나간다는 말이고.”

“설마… 지금 저를 키워서 선거 전에 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레임덕을 막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사냥개로 쓰겠다는 말일세.”

사냥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 청와대 입장은 조금 달랐다.

두 개의 입보다는 하나의 입이 더 가벼울 거라는 것과, 두 개의 목줄보다는 하나의 목줄이 더 잡고 있기 쉽다는 것.

그리고 내가 쥐고 있는 목줄이 아니라면 서울에 없는 게 후환이 덜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남윤보다 더 능력 있는 검사가 상대 진영에게 흡수된다면 골치가 많이 아플 테니까 말이다.

“정권의 사냥개가 되려고 검사가 된 게 아닙니다. 저도 그냥 지방으로 보내 주십시오.”

“잘 들어, 이남윤 검사. 검사에게 있어 정권의 사냥개가 되는 건 기회야.”

때 쓰는 아이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듯 말하는 검찰국장이었다.

“자네 연수원 22기지?”

“네…….”

“임관한 37명 중에 검사장이 될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나?”

검사의 꽃.

검사라면 누구나 검사장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한 지검의 장이자, 그 지역의 모든 사건과 검사들을 지휘 감독하는 자리.

앉아 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

얼마나 강력한 권한을 손에 쥐고 있는지.

“저는 누군가의 사냥개가 되어서 자리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검찰국장이 내지른 고함이 한동안 침묵을 흐르게 했다.

“어떻게 자리를 얻을 텐가. 실력과 노력? 아니면 때 묻지 않은 사명감? 자네 아직도 낭만 속에 살고 있을 정도로 멍청한가? 조직에 있어 자리는 누군가가 정해 주는 거야.”

“…….”

“지금이야 모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연수원 성적으로 2년 동안 중앙 지검을 경험했으니. 그런데 말이야. 청와대 명 거절하고 시골 내려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침묵이 끝나고 검찰국장의 입은 열렸지만, 이남윤은 아직 입을 열지 못했다.

검찰국장의 말에 현실적으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수박 서리한 좀도둑놈들이나 상대하는 거야. 기업 수사? 전국구 조폭? 뇌물을 받아먹은 정치인? 수사는커녕 볼 수도 없겠지.”

“제 힘으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하하, 자네 전화번호 수첩에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나? 아니면 법무부 장관이라도 괜찮고.”

“없습니다…….”

“그럼 영월에서 1개 중대쯤 되는 간첩단을 잡아야 될 텐데… 그 확률에 기댈 바에는 열네 살짜리 VIP 딸을 꼬셔서 결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네만.”

꼿꼿하던 이남윤의 머리가 점점 숙여졌다.

“현실을 직시하게. 부당함이 아니라 기회야. 물론 자네한테만 주어졌지만. 그리고 혹시 아나? 정권이 재창출되고 자네가 부장쯤 됐을 때 내쳐진 동기 끌어올려 줄 힘이 생길지.”

숙여진 이남윤의 고개가 조금씩 올라왔다.

흔들리고 있고, 또 설득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 진영의 결정적인 약점을 잡거나 혹은 임기 말 바닥을 치는 지지율을 끌어올릴 만한 사건을 하나 만든다면 내 동기 끌어 줄 힘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잖아?’

선거는 어차피 진흙탕 싸움이고, 어느 쪽이든 한쪽에 서야 하니까.

‘이기는 쪽에서야 기회가 생기겠지. 어차피 중립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또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아니면. 자네가 영월로 가고 유대명이 자네를 끌어올려 주기를 기다리던가.”

“그건…….”

“왜? 동기를 못 믿겠나? 하긴 VIP 직계 라인과 일개 평검사들과 달리 황금 방석이 깔려 있는 자리가 생기면 옛 동기가 생각날 리가 없지.”

부당함을 따지러 온 이남윤.

“잘 생각해.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권이야.”

그에게서 더 이상 부당함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다.

“동기를 믿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어 보든지.”

“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한 차례 저었다.

어떤 답을 내릴지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이남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지금 그의 고민은 답에 대한 게 아니라 신념을 져 버리고 동기를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대한 변병거리였다.

“속된 말로 아주 엿같지?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이, 지금 우리 검찰의 현실이 그런 걸. 나 역시 능력 있는 후배 검사 하나 내 손으로 보내고. 자네한테 이런 얘기하는 게 아주 엿같아.”

“네. 엿같습니다. 아주 많이요.”

“하하하, 고상한척 않는 건 마음에 드는구나. 지금은 그래도 참아. 날개 펴 보지도 못하고 추락할 셈인가? 더러워도 일단 펴고 날아야지. 혹시 모르지. 날고 날다가 자네가 청와대의 주인이 될지.”

“네. 제가 주인이 된다면 썩은 검찰부터 바꿀 겁니다.”

아니.

그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보기 전까지는 누구나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거란 확신에 차 있으니까.

“그럼 국장님 같은 사람이 검찰국장 자리에 앉을 수도 없겠죠.”

“자네 마음을 아니 개기는 건 이해하겠네. 다만, 나도 처음엔 자네 같았어.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 살다보니 이렇게 변한 거지.”

마지막 분노를 마음껏 표출한 이남윤은 고민을 끝냈다.

“대검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말을 전한 이남윤은 서둘러 검찰국장실을 나가려 했다.

“알았네. 다시 한번 위쪽에 뜻을 전하지. 그리고 유대명 검사는 바로 서울로는 못 오겠지만 광역시 지검으로 갈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해 보겠네.”

“아니요. 계속 영월에 남게 해 주십시오.”

“뭐?”

쾅.

‘제힘으로 끌어올려 줄 겁니다. 반드시!’

분명 이남윤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냈어야 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저… 아까부터 손님이 있다고 했는데 안 가고 계셔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검찰국장 비서와 주먹을 꽉 쥔 채 이남윤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

“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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