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빠앙!
꽉 막힌 반포대로.
답답함에 성을 내는 차량들.
그런 차량들을 바라보며 교차로 신호를 기다렸다.
“창피해 죽겠네. 보고 계실까 봐 벗을 수도 없고…….”
총장실 창문 밖으로는 중앙 지검까지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출근 시간.
도로와 거리에 꽉 찬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내 의상.
“그나마 서초동이라 다행이지…….”
재판장이 아닌 곳에서 법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검사는 흔치 않다.
아니… 법복을 입고 출근하는 검사는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벌이라니 달게 받아야겠지만… 쪽팔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끼익―
“워!”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고 나는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황 불에 급격히 멈추어 서는 차량 한 대.
파란불로 바뀌기 전 1분의 기다림.
그러한 운전자의 기다림은 상관에게 30분 넘게 깨질 수 있는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어이, 아저씨! 달려오는 차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고…….’
다만, 그 간절함이 나로 인하여 그리고 법복으로 인하여 막혀 버렸다.
꾸벅.
‘죄송합니다.’
또 운적석 창문 너머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휙.
권위적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손을 들어 괜찮다고 한 거고.
물론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삐익!
하지만 횡단보도에 반쯤 걸친 차량과 주저앉은 나를 본 사람들은 꽤 많았다.
바쁜 출근 시간 교통정리를 위해 나온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오고 있었으니까.
“괜찮으세요, 검사님?”
“네. 괜찮습니다.”
휙.
후들거리는 다리를 눈치챘는 지 교통경찰이 멀리 보이는 동료에게 손짓한다.
“위험하니까 먼저 건너세요.”
“네, 감사합니다.”
손짓에 신호제어기를 만지자 보행자 신호는 조금 길어졌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무사히 중앙 지검으로 건너왔다.
충성!
젊어 보이는 한 순경의 경례와 함께 말이다.
“차 옆으로 대시고 면허증 제시하세요!”
“죄송합니다…….”
“아무리 바쁘셔도 그렇지. 그러다가 사람들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러십니까.”
출근 길 모아졌던 시선은 다시 분산되고 사람들은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하루를 시작하러 떠났다.
“태호 삼촌 말대로 첫 출근부터 스팩타클 허네 진짜…”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다만, 내 눈빛 속에서는 첫 출근의 긴장과 설렘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이 달랐다.
“신분증 보여 주십시오, 검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특수 1부 한치우 검사입니다.”
또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의지까지.
“네, 들어가십시오!”
암행어사가 마패를 보여주듯 신분증을 들이밀며 힘차게 말하자, 덩달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청원경찰이었다.
“고생하십시오!”
로비를 지나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장검사실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한 검사를 직접 보네.”
새로운 특수 1부 부장.
검찰 시보 생활 때 본 민재홍과 이천웅은 더 이상 중앙 지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소명 그룹의 스폰을 받은 사실이 나로 인하여 까발려진 탓이다.
스스로 옷을 벗으려 했지만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았고, 법무부는 두 사람을 즉각 해임시켰다.
검찰청법 제37조.
검사는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기소권을 가진 단독관청인 검사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법이다.
소명 그룹이라는 대기업의 스캔들인 만큼 재판은 길어지고 형이 확정되지 않아 민재홍, 이천웅을 파면시킬 수는 없었지만, 결국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참지 못한 법무부였다.
“안녕하십니까! 한치우라고 합니다.”
“허허, 씩씩하네.”
검찰의 핵심부서 중앙 지검 특수부.
그리고 특수부의 검사들을 이끌어 가는 부장검사.
내 앞에 있는 부장검사는 아마 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일 것이다.
국민들과 국가기관 모두가 새로운 부장검사를 주시했을 테고 신중에 신중을 가해 발령을 했을 터였다.
“그래. 박현주 부장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박현주 부장의 첫 인상?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당장 헬스장을 차려도 될 만큼 우락부락했고, 키도 상당히 컸다.
얼굴 또한 남성미가 넘쳐흐르는데…….
“이름이 여자 같지? 웃어도 되네. 하하.”
외모에 비해 성격은 조금 가벼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여자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여성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아닙니다! 앞으로 특수 1부 검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워워∼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가서 방 식구들이랑 인사나 해. 특수부 식구들이랑은 이따 회식 때 정식으로 인사 나누고.”
“네, 알겠습니다.”
[특수 1부 검사 한치우]
내 방.
작지만 선명하게 적혀 있는 내 이름.
입구에 도착했지만 10분 이상 멈추어 있던 것 같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네.’
방문을 열기 전 왠지 모르게 손에 땀이 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 방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모든 걸 이겨 냈다.
그리고 나는 이 방의 주인이며 문을 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때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수사관님.”
“응?”
“새로 오시는 우리 영감님 대단한 사람이라면서요?”
“그렇지. 사법고시, 연수원 전부 수석에 시보 때 소명 그룹을 기소했으니… 이미 언론에도 몇 번 나왔잖아.”
“휴… 피곤한 스타일은 아니겠죠?”
그 목소리에 문고리를 돌리려는 손을 잠시 멈추었다.
“아직 젊으니까 뭐… 꼰데 스타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능력 있는 검사 모시면 우리도 좋잖아?”
“하긴… 영감님들 실적 잘 쌓아야지 우리도 승진하니까.”
“나는 FM만 아니면 좋을 것 같은데… 몸 피곤한 건 참아도 재미까지 없으면 지옥이야.”
“에이∼ 아직 젊은데.”
그래.
당신들한테 나의 유머러스함을 마음껏 보여 주지.
“생각해 봐, 한 실무관. 얼마나 FM이면 사법고시 수석도 모자라 연수원 수석까지 하겠냐고. 검사들이 기본적으로 공부 벌레에 유머라고는 일도 없는데. 우리 영감이 그런 사람들 다 재끼고 1등한 양반이라고…….”
“그래도 얼굴은 엄청 잘생기셨던데. 처음에 검사 나오는 영화 보는 줄 알았어요. 비주얼이 아주 그냥. 호호호.”
“하여튼 여자들이란… 그리고 한 실무관 다음 달에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네… 아쉽네요.”
“아쉽다니 뭐가? 이 여자가 큰일 날 소리하네.”
“하하! 농담이에요.”
빨리 얘기 좀 끝냈으면 좋겠는데.
이제 다리가 아프다고.
‘도저히 못 참겠다.’
스르륵.
“그건 그렇고 아무리 FM이여도 설마 첫날부터 법복 입고 출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틸 걸.
마지막 말을 들었다면 내가 지금 법복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텐데…….
어라?
생각해 보니 박현주 부장도 봤을 텐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아… 어쩐지 키득키득 웃고 있더라…….
“거, 검사님?”
인사를 건네자 검사실을 정리하고 있던 두 사람의 입이 벌어진다.
자신들이 농담 삼아 얘기한 FM에 더럽게 재미없는 검사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오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한치우라고 합니다.”
뭐, 천천히 풀어나가 보자.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수사관 정대필입니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실무관 한미래예요.”
“네. 모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검사실은 보통 검사, 수사관, 실무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으로 2년간 지낼 한 가족.
검사와 수사관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각종 보조 업무를 처리하는 엄마 같은 실무관.
또 범인을 조사하거나 현장으로 나가 체포하는 아빠 같은 수사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범법자들을 기소하고 재판장에서 싸우는 아들 같은 검사.
물론 경력이 쌓이면 아들보다는 가장이 될 수도 있지만, 초임 검사에게 있어 수사관과 실무관은 업무 보조뿐만 아니라 꽤 많은 배움을 주기도 한다.
직급을 떠나 경력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갓 임관한 소위가 행보관을 무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었다.
“검사님 복장이…….”
“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서둘러 법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총장님을 뵙고 오는 길이라…….”
“총장님을 뵙느라고 법복을 입으셨다고요? 굳이 그렇게까지… 그리고 총장님을 왜?”
“아닙니다…….”
변명을 해 봤자 더 나아질 게 없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자, 알아가는 것은 천천히 하고 정리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새집을 보듯 어지럽혀져 있는 검사실 안.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무거운 서류들을 책상에 꽂아 넣고 있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검사님은 응접실부터 가시죠.”
“아니요! 저도 같은 식구인데 도와야죠.”
“그게 아니라… 응접실 안에 서 검사님이…….”
검사실 안에 마련되어 있는 응접실.
피고인이나 참고인과 대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지만, 검사가 머리가 복잡할 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서 검사요?”
“네 서윤호 검사님이요.”
고개를 돌려 응접실 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보다 더 낑낑거리며 응접실을 정리하고 있는 서윤호.
“그게… 저희가 한다고 해도 굳이 직접하신다고 해서요.”
“저 양반 저기서 뭐하는 거야.”
혼잣말을 하며 응접실 문 앞으로 향했다.
“천천히 하고 계세요.”
“네∼”
“아! 그리고…….”
“하실 말씀 있으세요, 검사님?”
응접실 문을 반쯤 열고 뒤돌아 두 사람을 응시했다.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어서 말이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 되게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아… 네…….”
말을 한 걸 금세 후회했지만…….
“형, 여기서 뭐 해?”
“어∼ 왔어? 몸은 괜찮아?”
“내 몸은 괜찮은데 형은 여기서 뭐 하냐니까.”
“뭘 뭐 해. 네 방 치우고 있지.”
나보다 빠른 서윤호의 시간.
5개월가량 앞서 간 그의 검사 생활은 꽤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러니까 형이 왜 내 방을 치우고 계시냐고요.”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고 눈 밑에 다크서클은 얼굴을 어둡게 가렸다.
거기에 턱선이 예리해질 만큼 빠진 살과 듬성듬성 보이는 흰머리.
검사의 살인적인 업무량에 대해 알고 있는가?
드라마와 현실은 조금 다르다.
대다수의 검사들은 순환 근무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며, 한 달에 약 300건 가량의 사건을 처리한다.
그것뿐인가?
정시 퇴근을 한 횟수가 열손가락도 채워지지 않으며, 주말에 출근해 사건 기록을 봐야 하는 일도 태반이다.
한 사건의 피고인과 참고인 조사만 해도 하루가 훌쩍 가 버리는 판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서윤호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또… 가장 친하던 동기에 대한 죄책감까지.
“형이 그러면 내 마음이 불편해져. 봐봐, 나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잖아.”
몸을 돌려가며 장난을 쳐 보지만 아직 서윤호의 마음을 풀기에는 모자를 것이다.
누워 있는 5개월 동안 나는 편했을지 몰라도 서윤호는 지옥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하. 그나저나 내가 한 5년을 누워 있었나? 형 얼굴이 왜 그래?”
“까불지 마라. 너도 앞으로 이렇게 될 걸?”
웃자.
서윤호 앞에서 만큼은 말이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한편으로는 서윤호가 내 방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검사실 정리가 끝나고 서윤호를 가장 먼저 찾으려고 한 수고를 덜어 주었으니까.
“그거 그만 치우고 형한테 할 얘기 있어.”
이미 자신의 방을 치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서윤호는 꽤 빠른 손놀림으로 응접실을 정리해 갔고, 내 물음에도 그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알아. 네가 무슨 얘기할지. 그 얘기에 대한 결과물도 많이 모아 놨고.”
이미 머릿속에서 내 질문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알고?”
서윤호는 죄책감만 가진 채 5개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더 녀석을 잡고 싶었을 테니까.
“총장님한테 들었어. 대포차 딜러들 모아 놨다면서.”
“맞아.”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일일이 만나보러 가려 했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한시도 녀석을 머릿속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내 병실을 찾아 누워 있는 나를 보며 다짐도 했을 것이다.
녀석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을 거라고.
‘그래서… 강철호 총장이 서윤호에게 맡기라 한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본 서윤호는 눈빛이 변해 있었다.
“안내해. 그놈들 있는 곳으로.”
* * *
“나는 첫날이라 괜찮지만 형은?”
“나? 포상 휴가 받았지”
“무슨 포상 휴가. 형이 군인이야?”
“금영호 의원이 엘시티 차명 주식 받은 걸 누가 알아냈더라. 흠······.”
SY 숙소로 향하는 길.
한결같이 밝은 내 표정에 서윤호 역시 죄책감을 묻어 두고 장난을 쳤다.
“아이고, 우리 서 검사님 잘나셨어요.”
“앞으로 3일 동안은 내 방에 사건 기록 올 일이 없다는 거지.”
검사의 포상 휴가는 배당되는 사건을 줄여 주는 것이다.
월차 혹은 병가 같은 법적으로 정해진 진짜 휴가가 있지만, 잘 쓰지도 않을뿐더러 쉰다 해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큰 사건을 해결한 대가로 받는 포상 휴가는 조금 다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출근해 검사실 안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특히 포상 휴가는 특수부 검사들이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게 경찰에서 넘어오는 사건을 처리하는 타부서와 달리 특수부는 검사가 처음부터 사건을 만들어 가는 인지 수사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왜?
건드는 사건의 규모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정재계의 높으신 분들. 그밖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몇몇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확실하지 않은 증거로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기 때문에 인지 수사를 통해 증거를 모아 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건이 어느 정도 만들어질 때쯤 검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묻을 것인지, 아니면 터트릴 것인지.
일종의 도박과 같다.
터트리는 쪽에 배팅해 이긴다면 엄청난 보상이 뒤따르니까.
대신 패배한다면 꽤 많은 걸 잃겠지만······.
묻으면 본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특수부 검사가 실적을 어떻게 쌓겠는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특수부가 안 좋게만 보일 테지만, 전혀 아니다.
도박도 기회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언론에 노출이 잦은 곳이며, 검사장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부서 또한 특수부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예비 검사가 특수부에 꿈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성적이 받쳐줘야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멋있지 않은가?
한 명의 특수부 검사가 수만 명을 거느린 재벌 총수를 잡아넣거나, 몇 십만 유권자의 표를 받은 국회의원 또한 감옥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불체포특권?
방탄 국회?
정재계에 뿌려 놓은 수많은 뇌물?
잘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 내 앞에서 통할지.
내가 만들어 나갈 것은 사건뿐만 아니라 썩은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는 무기까지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형은 왜 대포차 업자들을 찾아?”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범인을 찾으려고 그러는 거지.”
“참나. 난 또 엄청 비장한 눈빛으로 말하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네. 결국 나랑 다를 거 없잖아.”
피식.
장난식으로 비꼬는 내 말에 웃음을 보이는 서윤호였다.
“설마. 무식하게 운전석에 앉은 모두를 특정하려고 한 건 아니지? 우리 위대한 연수생 출신 한치우 검사님께서?”
“하하··· 검사 생활 조금 하시더니 날카로워지셨네. 그런데 다른 방법이 없잖아.”
“아이고··· 한치우 씨. 당신 검사야. 검사면 머리를 써야지. 아직도 열정 가득한 연수생인줄 알아?”
“형, 나 오늘 아침에 검사됐어.”
지난 5개월간 변한 것은 서윤호뿐이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흘려보냈어야 하는 시간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버려져 있던 대포차 찾은 것도 경찰이 아니라 시민이었다며. 그렇게 머리 잘 쓰는 사람이 대포차는 왜 못 찾았어?”
갑자기 날카롭게 내 눈을 보는 서윤호.
그 눈빛이 따가워 몸을 요리조리 피해 봤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생각의 확신을 갖는 서윤호였다.
민태호와 함께 야산으로 찾아가 확인한 대포차에는 건질만한 증거도 흔적도 없었으며, 검찰에게 넘겨 정확한 조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내린 결론.
“너였구나? 신고한 게. 어쩐지 이상하더라. 야산 앞에 세워둔 지 하루도 안 된 차가 신고가 들어온 것도, 뺑소니 차량 같다는 말도 말이야. 거기에 신고만 떡하니 하고 사라진 제보자까지. 우리 치우가 형을 너무 얕봤구나.”
노련해진 서윤호로 인해 내 결론은 전부 간파되었다.
“하하하, 미안. 우리 형님 도대체 5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노련해진 거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머리 좋은 피의자들과 더 좋은 변호사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긴.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특수부가 잡아와 조사를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단순히 배움이 많다고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빼도 박도 못 할 증거를 찾는 능력과 그들이 뿜는 기에 눌리지 않을 만큼의 노련함이 필요할 터였다.
서윤호 역시 자연스레 그런 것들이 쌓여 가는 중이고.
“내 신고가 도움이 좀 됐어?”
“고생은 했다만, 내가 필요한 건 차량이 아니었어. 차량 안에서 녀석의 자백 편지가 나온다면 또 모를까.”
또다시 민태호와 서울연합파의 조직력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경찰들이 CCTV와 검문을 통해 대포차를 찾고 있을 때 모든 조직원들이 발로 뛰며 녀석이 새벽에 버려둔 차량을 오후에 찾았으니 말이다.
물론 신고 과정이 어설프긴 했지만······.
“그건 그렇고 진짜 대단하십니다. 죽다 살아나자마자 대포차부터 찾은 거야? 아니지··· 살아나기 전부터 찾았을 텐데. 도대체 누구야? 한 검사 개인 수사관이.”
“지금 말고 나중에 소개시켜 줄게. 그분도 형도 준비가 되면 말이야.”
민태호가 완벽한 기업인이 되고 서윤호가 더 노련해져 악을 위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때쯤이면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형이 원하는 게 뭔데?”
“내가··· 아니, 우리가 특정한 용의자가 범인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해.”
“뭐야? 그 눈빛은? 범인이 누군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네. 그리고 우리라니?”
“치우 네가 누워 있는 5개월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이 움직였는지 알아?”
나에게는 사라진 시간과도 같은 지난 5개월.
나는 멈추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다.
다만, 나와 시간을 공유한 몇몇 사람들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밤마다 아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고 죄책감에 범인을 잡으려 밤낮으로 뛰어다니던 서윤호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으니까 말이다.
“대충은 알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범인을 찾으려 했다는 걸.”
“그리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범인을 찾기 위해 썼으니까 고마워해 둬.”
나와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어머니와 서윤호뿐만이 아니었다.
강철호 총장, 민태호, 방성훈, 그밖에 몇몇 사람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게······.”
* * *
사고 후 매일 같이 치우 병실을 찾던 윤호.
평소와 같이 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실에 누워 있던 치우.
그런 모습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게 서윤호의 일상이었다.
띠리링.
“여보세요.”
― 나 강철호일세. 시간 되면 대검으로 좀 오게.
강철호 총장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똑똑.
“들어오게.”
윤호에게 있어 강철호 총장은 초면이 아니었다.
연수원에서 치우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고, 병실에서도 마주쳤으니 말이다.
또한 강철호 총장 역시 서윤호를 알고 있었다.
거기에 치우의 사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과 꽤 친하다는 사실까지도.
“안녕하십니까. 특수 1부 서윤호 검사입니다.”
“그래, 서 프로. 일단 앉게.”
강철호 총장이 부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서윤호는 갸우뚱거리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긴장감에 손에서는 땀이 흐르고 총장과의 대면에 불편한 몸은 떨려 왔다.
윤호는 치우와 강철호 총장이 꽤 가까운 사이인 걸 알았고,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화가 꽤 많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장하지 말게. 누워 있는 치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자네 탓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니. 자네 때문이 아니야. 다만, 자네가 느끼는 죄책감을 조금 덜어 주고 싶은데 괜찮겠나?”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하하, 벌 받는다고 죄책감이 사라지나.”
스윽.
[한치우 뺑소니 사건 기록]
윤호 앞에 놓이는 한 서류.
“형사소송법 제196조, 경무관 밑 사법경찰들은 모든 수사에 있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알고 있겠지.”
“네, 물론입니다.”
“검찰청법 제6조, 검사의 직급은 검사와 검찰총장으로 구분한다. 또! 검찰청법 제7조 1항, 검사는 검찰 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른다.”
검사 동일체의 원칙.
대한민국의 어떤 기관도 검찰만큼 유기적인 조직체는 없을 것이다.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곳이니까.
강철호 총장이 검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법조항을 읊어 대는 이유?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왜 하는 것 같나?”
“잘··· 모르겠습니다, 총장님.”
윤호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을 지휘할 수 있는 수사권. 그리고 범법자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소권. 그 모든 것의 정점에 있는 이 검찰총장이 자네를 도울 것이네.”
힐끔.
강철호 총장이 서윤호에게 건넨 사건 기록을 힐끔 쳐다보자 윤호 역시 강철호 총장의 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죄책감을 덜어 주기 위해서 말이야.”
“설마··· 지금 저보고 치우 사건을 맡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네. 아까 말했지. 검찰청법 제7조 1항, 자네는 검사로서 내 명령을 반드시 따라야 하니까.”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저 같은 초임 검사한테 이런 사건을 맡기시는 게······.”
“그 사건 기록은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이용해 만든 것이야. 검찰 내에서도 차장급 이상들만 움직여서 작성한 기록이기도 하고.”
강철호 총장이 서윤호에게 사건을 맡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동기를 위해 범인을 잡겠다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 그런 것들을 속에 품고 있는 검사는 다른 어떤 검사보다 범인을 빨리 잡을 확률이 높아. 왜냐? 실적과 기소 실패라는 방해물이 없거든.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야.”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이제 갓 발령받은 초임검사가 총장님의 직보 사건을 맡는 게 어려울 거라 판단됩니다. 부장님의 결제도 그렇고······.”
“아니. 이건 대외비야. 정식적으로는 특수 3부가 맡을 걸세. 자네는 자네 사건을 처리하면서 이 사건을 수사하는 걸세. 몰론 보고는 나에게만 하는 것이고.”
강철호 총장 역시 치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단순한 뺑소니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얽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또 그 여러 사람들 중에 분명 검찰 내부 관계자가 있을 거라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일종의 암행어사라고나 할까? 내 전화번호가 마패가 되어 줄 테니 걱정은 하지 말고.”
“······.”
복잡한 여러 생각이 많은 듯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서윤호였다.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치우가 어떤 아이인지. 자네가 모든 걸 해결한다면 좋겠지만 준비 정도만 해도 치우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걸세. 치우가 멋지게 사건을 밝혀낸다면 자네의 죄책감도 사라질 테고 말이야. 물론 직적 범인을 기소할 순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더욱 필요한 걸세.”
스윽.
강철호 총장의 말에 결심이 선 듯 사건 기록을 품속에 넣는 서윤호였다.
“단순히 사건 경위가 담긴 기록입니까 총장님?”
“아니. 사건 경위에 나를 포함한 유능한 검사들의 코멘트가 기록되어 있네.”
꾸벅.
“감사합니다. 저한테 기회를 주셔서. 그리고 반드시 만들어 놓겠습니다.”
“만들다니 뭘?”
자리에서 일어난 서윤호가 고개를 숙이며 강철호 총장에게 말한다.
피식.
그런 서윤호의 모습에 미소를 짓는 강철호.
“치우가 일어나서 범인에게 향할 멋진 레드카펫을요.”
* * *
“자자∼ 모여들 보랑께. 검사님덜 오신다니께 묻는 말씀 대답들 잘 허고.”
“네, 형님!”
“내는 말이여. 대포차 파는 양아치 동생들 둔 적 없으니께 걍 민태호 씨라고 혀.”
SY 숙소에 도착하자 민태호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피 안 섞인 삼촌이자, 아까 말한 내 개인 수사관.”
“나중에 소개시켜 준다며?”
“정식적인 소개는 나중에 한다는 얘기였지. 오늘은 일부터 하자, 형.”
조심스럽게 스위트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서윤호에게 향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포차 업자들.
듬성듬성 새겨진 문신과 지방으로 두른 몸으로 사람들을 위협해 대포차를 터무니 없는 가격에 강매하는 녀석들이다.
그래.
물론 대포차를 구입하려 녀석들을 찾아간 사람들도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닐 것이었다.
다만, 녀석들이 조금 더 악할 뿐이지.
심지어 이 중에 어떤 녀석들은 차량에 몰래 위치 추적기를 부착해 대포차를 다시 훔쳐 오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구매자가 대포차량을 도난당해도 신고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누가 더 나쁘다는 것을 비교하는 것도 웃기지만······.
“자, 대답들 잘혀라.”
“네! 형··· 아니, 민태호 씨!”
하지만 악한 녀석들은 민태호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버렸다.
힐끔.
“구라 치거나. 똑바로 대답을 안 허면 니들 가지고 있는 대포차 다 박살 내 버릴 테니께. 알았지?”
“네······.”
나와 서윤호의 눈치를 보며 녀석들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민태호.
속삭이는 그의 말에 녀석들이 오줌을 지릴 것처럼 벌벌 떠는 이유?
몇 천만 원의 벌금 혹은 단기 징역이 녀석들에게는 솜방망이로 느껴질 것이다.
공권력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민태호는 다르다.
대포차를 훔쳐 와도 신고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대포차가 전부 박살 나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반항?
과연 민태호에게 큰소리나 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루 오셔서 편하게 물어보셔라. 검사님덜.”
서윤호의 등을 살포시 밀며 앞장 세웠다.
지금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질문의 농도 또한 나보다는 진할 테니까 말이다.
조금은 어리버리하던 서윤호가 5개월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한 것도 조금은 있었다.
“삼촌 죄송하지만 잠시만 나가 주세요.”
“그려. 근디 괜찮겄어? 내 없으면 녀석들 삐뚤어질 텐디.”
“궁금해서요. 제 동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하여튼 정상은 아니랑께······.”
쾅.
민태호가 혼잣말을 하며 스위트룸을 나갔다.
단순히 서윤호가 녀석들을 어떻게 휘어잡나 궁금해서 무대를 만든 것은 아니였다.
민태호가 없어야 녀석들의 본심이 나올 테고 그래야 그 속에서 실수를 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서울 중앙 지검 특수 1부 서윤호 검사입니다. 몇 가지 물어볼 테니 신중하게 대답하세요.”
두려움 때문에 꾸며진 대답을 원하는 건 서윤호도 나도 아닐 것이다.
피식.
역시나 민태호라는 두려움이 사라지자 비웃음을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그러시던가.”
힐끔.
녀석들의 비아냥에 서윤호의 눈치를 살폈다.
어라?
지금껏 봐 온 어리바리한 서윤호는 없었다.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휴··· 존대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니까. 어이∼ 당신들 잘 들어.”
“검사라는 양반이 반말해도 되는 거? 우리는 당신들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러온 시민이라고, 시민.”
“하하, 시민? 당신들이 시민인지 아닌지 검찰로 끌고가서 확인시켜 줄까?”
흠칫.
놀라는 녀석들을 보며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검사가 좆으로 보이나 본데. 대한민국에서 죄를 지었다면 너희에게 1차 생사 결정권은 내 손에 있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직 감이 안 와?”
특수부 검사 서윤호가 5개월 동안 상대해 온 거물들.
그런 거물들을 봐온 서윤호에게 녀석들은 한낱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징역 1년? 벌금 천만 원? 그래 별로 안 무섭겠지. 그런데 말이야··· 너희 죽자고 달려드는 검사한테 털려 본 적 없지?”
녀석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자동차 관리법 위반, 사기, 절도, 강매, 이자제한법 위반. 너희들 공소장에 어떤 걸로 적어 줄까? 아니면 범단으로 엮어서 한 10년 살게 해 줘?”
범죄를 저질러 신상이 검사에게 넘어가는 순간 자신의 생사 또한 넘어간다는 걸.
“저희는 조폭이 아닌데요···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있고······.”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야. 너희가 처음 본 사람인지 아닌지는. 또 조폭인지 아닌지도.”
반항조차 소용없다는 것도.
“우리는 인권도 없는 겁니까! 검사가 협박해도 되는 거요?!”
“하나 묻고 싶네. 너희는 다른 사람 인권 생각해 주면서 자기 인권 운운하는 거냐? 당신들한테 당한 피해자들은?”
서윤호의 행동이 무조건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다.
검사 손에 들려 있는 기소권에 감정을 섞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녀석들이 겁을 먹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녀석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으니까.
민태호에게 있는 주먹뿐만 아니라 검사가 가진 법 또한 꽤 무섭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포차 사는 놈이나 파는 놈이나 똑같지 뭐.”
“너희가 대포차만 팔았어? 어떻게 당신들 계좌부터 집안까지 탈탈 털어 줄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먼지 속에서 살며 불법을 일삼는 녀석들인데.
또 먼지를 터는 게 누구보다 익숙한 검사의 분노까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녀석들이 두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편하게 물어보세요, 검사님. 성실히 대답하겠습니다.”
또 녀석들의 표정이 변했다.
민태호가 스위트룸을 나가기 전의 그 표정으로 말이다.
“잘 들어요. 범법자 선생님들. 여기서 딱 두 사람만 집행유예로 빼 드릴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는 검사님들을 도와드리러 모인 건데······.”
“그러니까 나한테 도움이 되는 두 사람만 빼 드리겠다고.”
휙.
서윤호가 녀석들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영장 받아왔지?’
‘당연하지.’
눈빛으로 대화가 오가고 서윤호는 다시 녀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이거! 불법 아닙니까?”
형사소송법 제200조 2항.
영장에 의한 체포.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가 관할 지방법원 판사에게 청구하여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녀석들의 범죄는 의심할 가치도 없었고, 대포차를 팔았다는 증거자료를 모으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뒤쪽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민태호가 파악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호텔에 도착하기 전부터 녀석들의 자유는 내가 가진 몇 장의 종이로 인하여 박탈되었다.
촥.
“불법 아니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세요.”
[체포 영장]
모여 있는 녀석들에게 영장을 보이며 말했다.
피식.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보이는 서윤호였다.
형사소송법 제200조 2의 5항.
체포한 피의자를 구속하고자 할 때에는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신청하여야 하고 시간이 지날 경우 즉시 석방하여야 한다.
“딱 두 사람만 조사실 찍고 집에 가는 겁니다. 나머지 분들 영장은 구속영장으로 바뀔 것이고요.”
“씨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야! 협박을 하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난 갈 테니까.”
욕을 하며 문으로 향하던 한 녀석.
“씨발, 뭐야!”
쿵! 쿵! 쿵!
녀석은 문을 열어 보려 발악을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야∼ 가만히 있그레이. 거서 나오면 내랑 밤새 데이트할 건디 괜찮겄냐?”
거대한 스위트룸 문 크기와 맞먹는 민태호의 덩치.
문을 부순다고 해도 밖으로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덕분에 녀석의 행동에 동요하려 하던 몇몇 녀석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죄를 왜 집니까. 독 안에 들어도 살려 달라 말도 못하지 않습니까.”
독 안에 든 쥐들을 보며 말했다.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
서윤호의 양손을 잡을 수 있는 두 사람뿐일 것이다.
“말씀하시죠, 서 검사님.”
일의 능률이 가장 많이 오를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목표를 두고 여러 사람이 경쟁하여야 할 때이다.
“3321 마히티 트럭, 재작년 3월 21일 날에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 누구야?”
“저희는 트럭 취급 안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저에게 도움이 되는 두 사람만 살려 드린다고.”
서윤호의 말을 눈치챈 녀석들이 전화기를 들고 경쟁을 시작했다.
대포차 업계라는 정해진 경기장 안에서 누구의 전화기가 가장 잘 터지는지 경쟁을 하게 되겠지.
“재작년 3월 21일?”
“내 눈밑에 다크서클 보이냐?”
치열한 경쟁 덕분에 시끄러워진 스위트룸.
주최자인 서윤호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보이네. 그건 그렇고 그날로 특정한 이유가 뭐야?”
“너 하루에 사람이 CCTV에 몇 번이나 찍히는 줄 알아?”
“전 세계 3,000만 대. 대한민국에만 300만 대가 있고 하루에 80번 쯤 찍히지.”
“꼭 그렇게 재수 없게 말해야 돼? 아주 지만 잘났어.”
모르는 척 서윤호의 유식함을 들어 주며 웃고 싶었지만, 내 궁금증은 시간을 잡아먹기 싫어했다.
“하여튼. 너를 친 트럭이 나온 전국의 CCTV를 전부 뒤졌고 추적해 본 결과 3월 21일 날부터 행방을 찾을 수 없었어. 그리고 네가 사고가 난 날 갑자기 톡 하고 과천에서 튀어나온 거야.”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몰라?”
“그게 의문이야. 마치 투명 망토라도 쓰고 이동한 것처럼 과천 청사 앞에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말이야.”
“트럭에 트럭을 실었겠지.”
“뭐?”
트럭이 하늘을 날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대형 츄레라 컨테이너에다가 싣고 과천 청사 앞에서 내렸을 거야.”
“흠··· 그러게 그러면 말이 되네.”
“뭐가 됐든 재작년 3월 21일에 행방이 사라졌으니 그때쯤 용의자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구매를 했건 훔쳤건.”
고이 묵혀 놨다가 사고가 난 날 컨테이너에 실어 청사 앞에 떨군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3월 21일에 소유하고 있던 주인을 찾아봤자 소용이 없을 텐데······.
왜?
트럭에 트럭을 실을 생각을 할 정도로 치밀한 녀석들이 흔적을 남겼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형, 마지막 주인을 찾아봤자 그놈이 범인이 아닐 확률이······.”
번쩍.
“찾았습니다, 검사님.”
그럴 리가.
“누굽니까?”
“김백호라고 재작년 3월 21일 날 3321 마히트 트럭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잠깐만, 형······.”
한 녀석과 대화하는 서윤호를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 사실을 알려 준 사람은 누구죠?”
“저희 세계에 정보통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또 김백호라는 사람이 불법적인 일로 사용한다고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턱을 만지작거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이겼다는 생각에 기대감을 잔뜩 부풀고 있는 녀석을 말이다.
“지금 남양주 쪽 공장에서 노숙한다고 하니 찾아가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녀석의 말에 서둘러 짐을 챙기는 서윤호였다.
“오케이! 가자, 치우야.”
“아니. 형, 기다려 봐. 뭔가 이상해. 나랑 삼촌이랑 갈 테니까 형은 이 녀석들 좀 맡아 줘.”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너무 쉽잖아.
그렇게 치밀한 녀석이 이렇게 쉽게 덜미를 잡힌다고?
어떤 정보통인지 몰라도 고작 대포차 업자 녀석 전화 한 통에 소재 파악까지?
갸우뚱거리는 고개를 멈출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이 도움을 주는 건지 우리를 함정에 빠트린 건지 모르겠어서. 혹은 저 녀석을 이용해 딴 녀석이 함정을 파 놓은 걸 수도 있고.”
다만,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보아하니 녀석은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또 의문이 가득한 머리에 어떤 의심이 생겨난다.
서윤호가 아닌 민태호가 필요할 거라는 그런 생각이.
“그럼 경찰들한테 협조 요청할게.”
“아니. 경찰들에게 전화 들어가면 녀석들도 알 거야. 그렇게 되면 그 자리에 없을 확률이 높고.”
이게 함정이라면 녀석들과 경찰들이 같은 무전기를 사용할지도 모르니까.
“일단 녀석들 다 잡아넣어. 도움 될 녀석들이 없을 것 같으니까.”
“······.”
“아! 저 사람은 풀어 주고. 뭐가 됐든 도움이 된 건 사실이잖아.”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 서윤호를 뒤로한 채 문 쪽으로 향했다.
물불 안 가리는 성격에 무작정 달려들 거라 생각하겠지.
아, 물론 실제로 피할 생각은 없었어.
나 역시 당신들의 정체가 궁금하니까.
그런데 하나 모르는 게 있네.
똑똑.
“그려.”
“삼촌, 식구들 좀 불러 주세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 * *
남양주의 한 폐공장.
한참 떨어진 곳에 몇 대의 차량이 멈추어 섰다.
“고놈 하나 잡자고 이렇게 많은 식구들을 대동할 필요가 있는 겨?”
다섯 대의 승합차와 한 대의 승용차.
서른 명이 넘는 서울연합파 식구들.
넓어 보이던 공터를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살인을 업으로 삼는 녀석들이 파 놓은 함정에 제 발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라믄 우리가 아니라 특수부대원들 정도는 불러야 되는 거 아니여? 아니면 경찰특공대라도 대동해 뿔던가. 검사 정도면 부를 수 있잖어.”
“가능이야 하죠. 그런데 문제는······.”
그래.
그게 가장 맞는 방법이며 쉬운 방법일 것이다.
다만, 공권력에 쉽게 잡힐 녀석들도 아닐뿐더러 어떤 클라이언트가 녀석들의 뒤에 있는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렇다는 것은 공권력이 온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녀석들의 귀에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아주 선명히 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가 잡아야 녀석들의 입을 열게 하기가 쉬워요.”
“무슨 소리여?”
“녀석들이 입을 안 연다고 경찰이나 특수부대원들이 허벅지에 칼을 꼽지는 않잖아요.”
피식.
민태호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가 말이여 살면서 겁을 먹은 적이 얼마 없는디. 가끔 니한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겁을 먹는다니께.”
녀석들이 파 놓은 함정에 당해 주는 이유는 녀석들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뒤에 있는 누군가. 혹은 누군가를 알아내기 위해서지.
“가요, 삼촌.”
“그려. 야들아∼ 오랜만에 연장 좀 차 보자잉. 준비 단단히 허고. 전쟁한다 생각혀.”
“네, 형님!”
터벅터벅.
“오랜만이네요, 이런 기분.”
“니가 이런 기분을 어찌 안다구 그런 말을 해쌌냐.”
나와 민태호를 필두로 서른 명의 서울연합파 조직원들과 함께 창고를 향한 힘찬 걸음이 시작되었다.
휙.
뒤돌아본 서울연합파의 식구들.
오랜만에 품속에 넣은 칼이 차가울 법도 한데 표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냥 긴장감이요. 누군가와 싸워야 하기 전에 느끼는 그런 긴장감.”
“아∼ 근디 말이여. 예전부터 느낀 건디 어찌 겁을 하나도 안 먹을 수가 있는 겨? 검사가 된 지금이면 몰러도 꼬맹이 때부터 칼로 사람을 쑤셔도 눈 하나 깜짝 안 혔잖어.”
민태호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 맨 앞에 서서 걷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 역시 민태호와 같은 조직의 두목이었잖은가.
그게 내 죽음의 이유였지만 말이다.
“삼촌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좀 스펙타클한 거.”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인생이 그렇다는 거겠지.
“그라지··· 니 덕분에 나까지 스펙타클 해져 뿔고··· 꿈에도 몰랐제. 나가 기업을 운영할 줄은 말이여.”
“오늘 만큼은 사업가 민태호가 아니라 서울연합파 민태호가 되어 주시길 바랄게요, 삼촌. 녀석들에게 뻗는 주먹은 악보다는 정의에 가까울 테니까요.”
피식.
내 말에 미소를 보이는 민태호였다.
자신도 알고 있겠지.
지금만큼은 부끄럽던 자신의 과거를 꺼내 놓아도 된다는 걸.
“잠깐만요.”
탁탁탁.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폐공장.
내 손짓과 말에 서울연합파 식구들이 구두 굽을 모아 멈추었다.
“모두 잘 들어주세요.”
분명 목소리는 나에게서 흘러나왔지만, 식구들의 시선은 민태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야들아∼ 이제부터 요 검사님 말씀을 내 명령처럼 따러라잉.”
서울연합파가 거대한 서울을 통합할 수 있던 이유?
민태호라는 거물과 그에게서 내려진 명령을 법처럼 따르는 조직원들.
서울연합파가 만들어지고 민태호가 내뿜는 카리스마에 반기를 든 조직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항과 배신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알겄제? 조폭이 검사 말 듣는다고 자존심 상해 뿔지 말고. 우리는 이제 회사원이자 정의를 위해서만 주먹을 날릴 테니께. 요게 마음에 안 들면 시방 회사를 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여.”
내뿜는 카리스마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그런 것이다.
“단! 식구들을 책임지는 큰 형으로서 말이여. 우리가 깡패짓거리 그만해서 굶어 죽는다 캐도 남아 있는 아그들 만큼은 내 장기를 팔아서라도 먹고 살게 해 줄 테니께 걱정 말고들 있어.”
적어도 서울연합파에서 만큼은 두려움에 복종하는 조직원들은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민태호가 병에 걸렸을 적에도 조직원들 중 민태호의 자리를 넘보거나 민태호의 뜻을 이어받은 내 말을 거역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가족을 인질로 잡힌 조직원과 조폭이 아닌 이사들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안 가구만. 후∼ 내도 나이가 들어 뿟나. 쓸데없이 걱정이 많았어야.”
민태호 앞에 도열한 식구들을 보며 민태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마운 건 앞으로 천천히 갚을 테니께 오늘은 일부터 허자.”
민태호 단 한 사람.
두목이라는 위치와 험악한 외모를 떠나 민태호라는 사람 자체에 끌려 모인 조직원들의 단결력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내 생각엔 말이여. 우리가 사람답게 살고 떳떳하게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 것이 요 검사님이란 말이여. 너희들 생각은 어뗘?”
“맞습니다, 형님!”
“그라믄 검사를 떠나서 보답은 해야것제?”
“네, 형님!”
톡톡.
큰 전쟁터에 나가기 전 왕의 감동적인 연설이 사기를 북돋아 주듯 민태호 말은 조직원들의 사기를 잔뜩 끌어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치우 이제 니 차례여.”
내 어깨를 치며 옆으로 빠지는 민태호.
그 행동으로 인하여 서울연합파 식구들의 지휘권은 나에게로 넘어왔다.
“녀석들이 흉기를 들기 전까지 먼저 칼을 뽑으시면 안 됩니다.
“네!”
“저 안에 몇 명이 있을지, 또 어떤 녀석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안에 있는 녀석들이 서울연합파 식구들보다 칼을 더 능숙하게 다룰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식구들을 대동해 온 것이고.
“또 칼 놀림이 꽤 익숙한 녀석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한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헌란한 칼 놀림을 무시할 수 있는 민태호라는 존재가.
“부디 다치지 말길 바랍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을 본 조직원들 또한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갑시다!”
꽈악.
“뭣 하는 거여?”
“식구들만 사지로 내몰 수는 없죠.”
주머니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끼는 내 모습을 본 민태호가 놀라며 말했다.
“허지 말어. 그러다 또 다쳐 뿔면 이번엔 강철호 검사장님이 내부터 잡아넣을 지도 몰러.”
피식.
“걱정하지 마세요.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니까.”
여유롭기 때문에 나온 미소가 아니다.
민태호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보인 미소지.
“아따! 고놈 허벌나게 말 안 듣는······.”
쾅!
나를 말리려던 민태호의 말은 철문 소리에 묻혀 버렸다.
“휴··· 그려 말려도 들을 놈이 아니지.”
녹쓴 철문이었지만 있는 힘껏 찬 내 발길질은 버티지 못했다.
“어이∼ 나 알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열댓 명 남짓한 인원들이 버려진 가구에 모여 앉아 있었다.
각자 손에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고 말이다.
“한치우?”
“뭘 놀라고 그래. 이미 한 번 봤잖아.”
저 눈빛.
운전석 너머로 본 그 눈빛이다.
톡톡.
“삼촌 저 녀석입니다. 저를 향해 돌진한 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던 놈이.”
“저 녀석 입을 열어야 된다는 소린겨?”
“네.”
민태호의 어깨를 치며 귓속말을 건넸다.
오고 가는 귓속말에 정해진 목표.
그 목표의 머릿속에는 나를 죽이려 사주한 놈의 신상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 맞아. 그런데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이승에서 말이야.”
“그래. 요단강 앞에서 돌아왔어. 이제 보여 줄게. 너희한테도 그 강이 얼마나 넓은지.”
“하하하, 겁이 없네. 옆에는 보디가드야? 덩치 하나는 크네. 그런데 말이야 덩치 크다고 몸에 칼 안 들어가는 건 아닐 텐데.”
스윽.
기분이 나빴는지 앞으로 나오는 민태호.
“아그들아. 나가 인생의 반 이상을 깡패짓 하며 살아왔는디 말이여. 단 한 놈도 내 몸에 칼 쑤신 놈이 없어 부렸어. 나가 이래 보여도 허벌나게 빠르거든.”
“하하하, 깡패? 검사가 깡패를 데려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어 주는 척이라도 하지.”
“워메∼ 깡패가 시민이라 카는 것도 아니고, 깡패가 깡패라는디도 못 믿는 거여?”
“어이, 덩치 큰 아저씨. 죽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도망가. 우리는 한치우 목만 따면 되니까.”
“안 되겄네······.”
스윽.
오랜만이었다.
민태호가 슈트를 벗는 모습을 본 것은 말이다.
“시방 한치우 모가지를 딴다고 한 겨? 그라믄 너희 모가지는 무사할 것 같고?”
하얀 와이셔츠 속으로 비치는 문신들.
민태호의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해 주었다.
“당신 진짜 조폭이야? 조폭이 왜 검사랑 있는 거야?”
“그건 당신들이 알 거 없고. 당신한테 나 죽이라고 사주한 놈만 불어. 그러면 몸 성하게 감옥으로 보내 줄 테니까.”
“그래. 나도 알 필요 없어. 한 놈 묻으나 두 놈 묻으나 삽질하는 건 별로 차이 안 나니까.”
녀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다가온다.
“휴······.”
그 모습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걸음이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는 답답함에 말이다.
다다다.
“···뭐야?”
“나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칼 들고 있는 무리한테 둘이 찾아올 만큼 무식하지는 않아.”
뒤이어 들어온 식구들을 보며 놀라는 무리들.
“경찰들은 아닌 것 같은데.”
“경찰들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야. 너희가 총 맞을 일은 없잖아.”
“하하하, 그래? 그럼 우리도 마음 편히 죽여도 되겠네?”
“대신 너희도 칼을 맞을 수 있다는 소리지.”
“뭐?”
휙!
“야들아∼ 조사 뿌려라!”
“네, 형님!”
민태호의 손짓으로 시작된 싸움.
대치 상황은 길지 않았다.
두 진영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몸에 칼 구멍이 덜 난 진영이 이길 거라는 사실을.
“되도록이면 나서지 말어!”
민태호의 걱정스러운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씩 조금씩 녀석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내밀수록 보이는 식구들과 녀석들.
다만, 그 누구도 내 옆으로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퍽—
“야들아! 검사님 뒤에 새끼들 못 붙게 혀라!”
“네, 형님!”
민태호라는 존재가 있는 한 말이다.
“워메∼ 허벌나게 사나워 뿌네.”
물론 녀석들도 쉽게 제압당하지는 않았다.
흥건한 피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식구들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다만, 그 누구도 민태호를 넘을 수는 없었다.
퍽—
여유롭던 아까와는 달리 칼을 든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한 녀석.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퍽.
그렇기에 내 주먹이 녀석에 얼굴에 꽂힐 수 있던 거고.
“자! 한 번 물을 때마다 몸에 칼 구멍이 하나씩 날 거야. 잘 생각하고 대답해.”
“씨발······.”
푹.
내 뒤를 호위하던 식구 한 명이 녀석의 허벅지에 칼을 쑤셔 넣었다.
“아아아악!”
“나를 죽이라고 시킨 놈이 누구야?”
“몰라. 씨발 새끼야!”
푹.
다시 한번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칼.
그럴수록 커지는 녀석의 비명.
“불구가 된 상태로 징역 살고 싶지 않으면 말해.”
“윽··· 검사가 이래도 되는 거냐?”
푹.
“너희 같은 새끼들한테는 그래도 돼.”
분노로 가득 찬 눈동자에 핏물이 고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분노는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말이다.
“누구냐고!!!”
* * *
뚝뚝.
허벅지에 꽂힌 칼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이 녀석들 어떻게 할까요, 검사님?”
혹시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자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빼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묶어 두세요. 다친 식구들은 병원으로 모시고 가고요.”
“네!”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의 승자는 이미 정해진 듯 보였으니까 말이다.
“살려줘··· 무슨 이런 괴물 같은 게······.”
“걱정 말어∼ 괴물이라 캐도 사람은 안 잡아 먹으니께.”
털썩.
민태호의 손에 붙들려 두 발이 공중에 떠 있는 한 녀석.
그 녀석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걸 끝으로 말이다.
“아따 간만에 힘썼더니 배가 다 고프다야.”
“고생하셨어요, 삼촌.”
“고놈도 참 독하데이. 많이 쑤실텐디······.”
고통을 이겨 보려 꽉 다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고, 그런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는 민태호였다.
“휴··· 대충 정리된 거 같응께. 천천히 혀. 더 쑤시면 입 열겄제.”
그리고 톡하고 던진 한마디.
그 한마디가 독기를 잔뜩 품고 있는 녀석의 몸에 힘이 빠지게 했다.
“검사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럼 검사 모가지 따려 한 너희는 무사할 것 같아?”
“······.”
대답하지 못하는 녀석.
모든 상황은 나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려 달라 큰 소리를 쳐봤자 아무도 듣지 못하는 깊은 산속의 폐공장.
당연히 CCTV가 있을 리는 없고 경찰에 전화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검사를 죽이려 함정을 파 놓았다가 오히려 당해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어?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 줘?”
“방법···?”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보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전화기 빌려줄 테니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이라도 구해 봐. 네 뒤에서 나 죽이라고 사주한 놈한테 말이야.”
다시 고개를 떨구는 녀석.
“병신, 그럼 나가는 길 알려 주며 친절하게 에스코트라도 해 줄줄 알았어?”
“죽어도 말 못해··· 해도 안 해도 죽는 건 똑같으니까 말이야.”
“그래. 하지 마. 나도 조금 더 즐기고 싶거든.”
힐끔.
고개를 숙인 탓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보내는 신호를 말이다.
그 신호가 어떤 고통을 안겨 줄지 모르고 있겠지.
푸슉!
“아!”
내 신호를 받은 서울연합파 식구 한 명이 녀석에 허벅지에 꽂혀 있던 칼을 빼 들었다.
뿜어져 나오는 것은 피 뿐만이 아니었다.
폐공장 전체를 울릴 만큼 큰 비명 소리가 함께였으니 말이다.
“아파? 지금껏 모르고 살았을 거야. 너희가 사람들에게 준 고통을 되돌려 받을 거라고는.”
그래.
그 고통 속에는 내가 당한 고통도 포함되어 있겠지.
“뭐부터 돌려줄까?”
허나.
내가 이렇게 분노하는 건 단순히 고통 때문이 아니야.
“돈보다 소중한 5개월이라는 내 시간!”
퍽!
검은 가죽 장갑에 빨간 빛이 물든다.
“우리 어머니와 내 친구들이 흘렸던 눈물!”
퍽!
“누워 있는 나를 위해 내 사람들이 쓴 시간과 노력!”
퍽!
가죽장갑이 핏빛으로 물들 때쯤 녀석의 정신 또한 혼미해졌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네 손에 죽은 사람들! 그들의 가족들은 지금도 지옥에 살고 있을 거다!”
우리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퍽!
그렇게 정신을 잃어 갈 때쯤 주먹질을 멈췄다.
내 말을 듣고, 또 대답해야 되니까.
“골라 봐.”
볼에 큰 사탕이라도 머금은 듯 한쪽 뺨은 부풀어 올라 있고, 눈두덩이는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미안함도 그렇다고 내가 잔인한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워··· 아그들아··· 저거 검사 맞는 겨? 우리보다 더 잔인한 거 같은디야······.”
“저는 검사가 왜 무서운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형님.”
“아녀. 모든 검사가 저런 건 아닐 것이여··· 검사 양반들 우리도 숱하게 봐왔잖어.”
“저런 사람이··· 공권력까지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습니다, 형님······.”
“그려 그게 진짜 무서분 거지. 그나저나 저놈도 참 독허네. 저런대도 입 안 여는 거 보면.”
뒤에서 들려오는 민태호와 식구들의 대화.
그 대화 속에 빠진 것이 하나 있었다.
한 손에는 주먹, 또 한 손에는 공권력을 갖기 위해 피땀 흘린 내 노력을 모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두 가지를 얻고 나서야 깨달은 점?
“정신 차려. 아직 멀었으니까.”
눈앞에 보이는 개새끼를 실컷 패 주고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힘이 생겼다는 거.
또 그런 일이 피땀 흘린 내 노력에 대한 보상 같았다.
“이놈 얼굴에 물 좀 뿌려 주세요.”
“네, 검사님.”
촤륵!
구석 양동이에 담겨 있던 구정물을 얼굴에 뿌리자 녀석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다.
“다시 물어 볼게.”
검찰이 아닌 폐공장에서 하는 조사.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허벅지에 쑤실 때 없으면 그 다음은 어디에 칼이 들어갈지 모르니까.”
조금은 잔인한 이 조사를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휴··· 구정물로는 정신을 못 차리나 보네.”
휙.
내 손짓에 칼을 들고 있던 식구의 손이 높이 올라갔다.
“잠깐만!”
“말해.”
시퍼런 칼날에 크게 놀라는 녀석.
“누군지는 진짜 몰라! 자신이 필요할 때만 전화하니까! 다시 전화 할 수도 없는 번호이고.”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 텐데.”
스윽.
내가 들고 있던 손을 내리자 녀석의 눈이 부릅떠졌다.
“잠깐! 우리한테 돈을 건네준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 흔적이 남을까 봐 현찰로 갖다줬어!”
“누군데?”
“기, 김태욱 실장이라고 하긴 했는데··· 본명인지는······.”
“얼굴은 기억해?”
“그게··· 항상 반쯤 열린 창문으로 돈만 받아서······.”
김태욱?
내가 알기로는 천재학 회장과 연관된 사람은 아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
녀석들에게 강제로 자백을 시켜봤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천재학 쪽 변호사가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에 맞설 증거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녀석의 몸에 난 칼 구멍의 대한 이유를 나한테 돌릴 수도 있을 것이고.
“휴··· 도움이 전혀 안 되네.”
“아! 그리고 타고 온 차 넘버도 알아.”
내려가는 내 손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는 녀석이었다.
“아무 의미 없어. 너희가 본 것 중에 진짜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는 것은 녀석들에 입에서 나올 말 역시 모두 진실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키가 큰 것 같았고. 항상 예봉산 근처에서 봤어.”
물론 녀석은 진실이라 믿고 싶을 테지만.
“휴······.”
“잠깐만 더 있어!”
그럼 나는 왜 녀석이 판 함정을 찾아 왔을까?
살인 청부업자인 녀석들을 혼내 주기 위해서?
그래.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아니. 필요 없어.”
이곳에 찾아온다면 나를 죽이려 사주한 녀석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 나의 연결 고리는 이 녀석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천재학이라 정해 놓고 증거를 찾으러 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흠······.”
그래서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모든 걸 숨겼다고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증거이자 진실을 말이다.
“잠깐만··· 돈은 어디 있어?”
“돈? 무슨 돈?”
“너희가 받은 돈 어디 있냐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떠올랐다.
숨길 수 없는 증거를 말이다.
“저기······.”
손짓으로 가리키는 작은 창고.
“녀석이 말한 곳에 가서 돈 좀 수거해 오세요.”
나 역시 그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씨발!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신 진짜 검사 맞아?!”
녀석에게 있어 돈은 고통과 두려움을 잊게 해 주는 물건이었다.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가며 얻은 돈이었으니까······.
“여기 가져왔습니다, 검사님.”
“서윤호 검사실로 갖다 주세요. 아무도 모르게.”
“네, 알겠습니다!”
뒤쪽으로 전한 내 명령.
“형님··· 이건 좀··· 저희가 양아치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닐 거여. 검사님 생각이 있을 테니께 시키는 대로 혀.”
터벅터벅.
잘 전달되었는지 굳이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이제 녀석들은 필요 없습니다.”
“그려? 그라믄 묶어 두고 통나무 하는 아들한테 연락할까?”
민태호에 말에 흔들리는 녀석의 눈동자.
그런 녀석을 보며 나에게 눈치를 보내는 민태호.
민태호도 나도 알고 있다.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다는 걸.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살려 주세요!”
다만, 자신의 돈을 빼앗긴 분노에 노발대발하던 녀석을 진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한 부탁은 들어준 적이 있었나?”
아마 무시했겠지.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안 죽여. 살려는 줄게.”
“고, 고맙습니다······.”
“대신 살아 있는 게 더 고통스럽다는 걸 느끼게 해 줄게.”
달그락.
녀석 앞으로 휴대전화를 던졌다.
곧 해지될 낡아 보이는 선불 폰 하나를 말이다.
“그 전화로 경찰에 자수해.”
“뭐?”
“아니면 쓸데없는 네 목숨 희생해서 여러 생명 살리던가.”
“···”
고개를 숙인 채 허벅지를 보며 말이 없는 녀석.
구멍이 뚫린 허벅지가 내 협박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게 해 줄 것이다.
“잘 생각해. 자수하면 내가 최대한 안전하게 감옥으로 보내 줄게.”
“그게 무슨 소리야?”
어느새 다시 반말로 바뀌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가리를 좀 써. 아무리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나한테 작업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어···?”
녀석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질 것이다.
“그래서 자수하면 안전하다는 거야?”
“아니. 검사도 죽이려 한 사람이 네가 경찰서에 있다고 못 건드릴까?”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내가 주입하는 말을 해석할 능력이 부족하니까 말이다.
“네가 지금까지 한 짓거리를 전부 자백해. 그럼 내가 바로 네 신변 특수부로 인도해줄 테니까.”
“감옥에서 평생 썩으라는 거야?”
“선택은 너가 하는 거고. 통나무가 되든 주인한테 죽임을 당하든, 혹은 개똥같아도 감옥에서 구르든 말이야. 물론 네가 무슨 선택을 하던 나야 상관은 없지만.”
탈탈.
쪼그려 앉아 녀석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 구급차도 같이 불러야 될 거야. 너는 일어나지 못할 테니까.”
“······.”
“아, 그리고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말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인간쓰레기여도 내가 보호해 줄 마음이 생길 테니까. 물론 말해 봤자 경찰이 믿지도 않겠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었으니까.
“가요, 삼촌.”
더듬더듬 전화기를 줍는 녀석을 뒤로 한 채 폐공장을 나왔다.
“나가 말이여···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디······.”
“왜 돈을 수거했고, 녀석이 필요 없어졌는지요?”
“그려. 내 대굴빡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말이여.”
“잠깐만요.”
갸우뚱거리는 민태호를 뒤로한 채 품속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윤호 형?”
― 어! 어떻게 됐어?
“내가 형 방으로 돈 보냈거든.”
그리고 이 전화 한 통이 민태호의 궁금증과 내 궁금증을 동시에 해결해 줄 것이다.
“그 돈에 묻어 있는 지문 좀 파악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