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3/35)

제3장

쿵쾅쿵쾅.

“워메, 지랄 발광을 하네. 아야∼ 차 좀 험하게 몰아 봐라.”

“네, 형님!”

민태호를 따라 뒷자리에 앉은 탓인지 트렁크에 있는 오양호의 간절함이 절로 느껴졌다.

“근디 이놈은 어따 버려 줄까?”

“장철호 검사장 집 앞이요.”

끼익―

“죄송합니다, 형님.”

“아녀, 니도 놀랐겄제.”

S자를 그리며 달리던 차량이 내 말 한마디에 스키드 마크를 남겼다.

“시방 저놈 몸에 칼 구멍 난 건 알고 있제?”

“당연히 알죠. 저도 같이 봤잖습니까.”

“근디 그 칼 구멍을 낸 우리가 평검사도, 부장 검사도 아닌 검사장한테 갖다 주겠다는 것도 맞고?”

“네, 맞습니다.”

“나가 말이여 깡으로 먹고사는 깡패이지만서도 후달릴 때가 있는 겨.”

강철호 검사장.

검찰의 엘리트 라인인 특수부와 공안부가 아닌 강력부 출신으로는 드물게 검사장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몸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민태호가 이리 겁을 먹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990년.

건달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막내 생활을 시작한 20대 민태호에게 충격을 안겨 준 사건.

10.13 특별 선언.

끓어오르는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덩치를 앞세워 으스대던 철없는 20대 민태호의 생각은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아무도 건들 수 없을 거라 생각하던 자신의 형님들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검사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고, 조롱당하며 뺨을 맞으면서도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나가 강철호 그 양반만 보면 아직도 오줌을 지리는디…….”

범죄와의 전쟁 당시에 서울 지역의 지휘봉을 잡던 게 서부 지검 강력부 부장인 강철호였고, 그에 의해 서울의 조직들은 단번에 공중분해 돼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뿔뿔이 흩어진 건달들을 모아 민태호가 만든 조직이 바로 서울연합파였다.

“걱정 마세요. 벌이 아닌 상을 내릴 거니까.”

“시방 뭔 소리여 그게.”

“저놈이 유린한 아이가 강철호 검사장의 딸입니다.”

“뭣이여? 아이고…….”

휙.

민태호가 트렁크 쪽을 돌아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차라리 내가 죽여뿔 걸… 그게 저놈한테는 더 나을지도 모르는디.”

조금 전 급정거를 한 탓에 정신을 잃은 건지, 아니면 우리의 대화가 트렁크 속으로 흘러들어 간 건지 어느새 오양호의 발광이 멈춰 있었다.

“아야∼ 이제 조용히 가자.”

“네, 형님!”

차선을 넘나들던 차량은 안정을 되찾았고, 흔들거리던 가로등 불빛들은 차량의 길잡이가 되어 줬다.

새벽의 한적한 고속도로.

고요한 차 안과 창밖에 비추는 공허한 도로는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강철호 서울 서부 지검장.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조폭들의 저승사자라는 타이틀에 올라타 탄탄대로를 달려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거기에 딸의 사건 이후 여론의 동정까지 받게 되어 기수가 높은 중앙 지검장을 제치고 차기 검찰총장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인물로 꼽혔다.

그런 엄청난 사람이자, 곧 2,000에 달하는 검사들을 거느리게 될 강철호의 집 대문을 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누가?

바로 오양호가.

“다 왔습니다, 형님.”

고위 공무원이라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넓은 저택과 높은 담벼락은 강철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워메∼ 집이 완전 궁궐이구만.”

“검사 사위를 얻고 싶은 사람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죠.”

순간적으로 죽기 전 담당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이내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 버렸다.

그들은 이제 나의 인연이 아닌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트렁크의 문을 열었다.

탁―

“아따, 이놈 뒤진 건 아니것제?”

짐짝 마냥 트렁크에서 쏟아진 오양호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형님.”

지금껏 기사 노릇한 덩치가 오양호의 목에 손을 갖다 대더니 대답했다.

“그려. 아무리 지 딸을 죽인 놈이라 해도 시체로 갖다주면 우리한테 허탈함을 풀 수도 있으니께 칼 구멍에 반창꼬라도 붙여 놔라.”

민태호의 말에 덩치가 오양호의 출혈 부위에 청 테이프를 칭칭 감는다.

“워메, 얼마나 지랄 발광을 했으면 트렁크가 피바다여. 아야∼ 이따 세차해야것다.”

탁.

트렁크를 바라보던 민태호가 담배를 물며 말하자, 오양호를 칭칭 감아놓은 덩치가 고개를 한차례 숙이고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꼬마 클라이언트, 우린 할일 다했으니 이제 간다잉.”

“잠깐만요, 삼촌.”

뒤돌아 차에 올라타는 민태호의 팔을 붙잡았다.

“이참에 사면권 하나 만들어 놓으시지 그래요.”

“워메∼ 이거 진짜 학생 맞는 겨?”

비록 민태호는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이정표를 향해 가는 배에 올라타 있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배를 움직일 노 정도는 쥐어 주는 것이 좋을 터였다.

“내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디, 내는 강철호 면상만 봐도 살이 떨린다.”

“강철호는 삼촌한테도 저한테도 든든한 뒷배가 돼 줄 사람입니다.”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여. 강 지검장 매수하려고 돈 건네다 잡혀간 건달들이 수십이여.”

“걱정 마세요. 저희한테는 강철호를 매수할 훌륭한 뇌물이 있으니까.”

곁눈질로 오양호를 살피고 궁궐 같은 저택의 높은 대문으로 향했다.

내 시선을 따라가던 민태호가 고개를 흔들더니 창문이 열려 있는 차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형님. 시키실 일 있으십니꺼?”

“그런 건 아니고… 아야, 니가 보기엔 저놈이 고등학생 맞는 거 같어?”

“지는 모르겠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똑똑해 보이는 놈들은 관심이 없어서…….”

“근께, 분명 애나 어른이나 대가리 쓰는 놈들은 우리랑 안 섞이는 법인디, 저놈은 어린 것은 둘째 치고 우리보다 우리 세계를 더 잘 아는 것 같단 말이여.”

띵동∼

덩치와 민태호의 꿍얼댐을 뒤로 한 채 초인종을 눌렀다.

― 누구세요?

“강철호 검사장님을 뵈러 온 한치우라고 합니다.”

연륜이 느껴지는 여자 목소리에 답을 하자, 초인종 너머로 집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윽고.

― 누구라고? 한치우?

“네, 검사장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우리 회사 사람인가? 어려 보이는데…….

“아직은 아닙니다.”

― 아직은?

얼마 안 있어 나도 당신처럼 법복을 입게 될 테니 ‘아직은’이 맞는 말이었다.

― 어쨌든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 여기는 잡상인이 함부로 초인종을 누를 곳이 아닌데 이만 가 보…….

“보시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 내가 요즘 기분이 썩 좋지 않으니 괜히 건드려서 낭패 보지 말고 인내해 줄 때 그냥 가지 그래?

초인종 너머의 목소리였지만, 분노와 슬픔 등 그리 좋지 않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제가 보여드릴 게 바로 그와 관련된 겁니다. 검사장님을 지옥으로 빠트린 놈이요.”

― 뭐?!

탁탁탁!

마당의 돌계단을 밟으며 내려오는 강철호의 모습이 대문의 빗살 사이로 보였다.

덥수룩한 수염과 하얗게 변해 버린 머리.

분노와 슬픔이 공존하는 눈빛.

딸을 잃은 슬픔과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분노.

그리고 매일 저녁 꿈속에서 듣게 될 딸의 원망이 검사장의 외모에 묻어나는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한치우라고 합니다.”

“워메, 결국 일을 내는구만…….”

한달음에 뛰쳐나온 강철호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윽고 상황 파악이 된 그는 눈을 날카롭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 뭐야?”

“이놈입니다. 검사장님을 지옥에 빠트린 놈이.”

이미 정신을 잃고 청 테이프에 칭칭 감겨 쓰러져 있는 오양호를 가리켰다.

“이놈이라고? 내 딸을 죽인 놈이?”

“네, 맞습니다.”

강철호는 피 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는 오양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꼬라지를 보니까 힘들게 잡아온 것 같은데 유통 과정 좀 설명해 보지? 아니면 원산지를 설명해 보던가.”

톡.

강철호가 쓰러져 있던 오양호를 발로 톡하고 밀자 녀석에 배가 하늘로 향했다.

피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큼지막한 문신이 드러났다.

문신을 보자 강철호는 멀리 떨어져 가만히 있던 민태호에게 시선을 돌린다.

“잠깐만 저거 민태호 아니야? 서울연합파 깡패 새끼.”

“어… 인사드리겄습니다, 검사님. 옛날에∼ 한 번 인사드렸는디…….”

온몸을 비꼬며 말을 더듬는 민태호.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강철호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금 깡패 새끼 한 놈 작업하고 나한테 던지기 하는 거냐? 너는 민태호 꼬봉이고?”

콕콕.

검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찌르며 강철호가 말했다.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감히 나를 가지고 장난을 쳐? 나한테 내 딸 죽인 범인이라고 던져 놓으면 내가 덥석 물 줄 알았어?”

“원산지는 조선족 건달이고, 유통 과정이 순탄치 않은 건 반항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정체가 뭐냐고! 좋아. 백 번 양보해서 이놈이 내 딸을 죽인 놈이라 치자.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내 앞에 가져온 저의가 뭐야?!”

“나중에 제게 딸이 생기고, 제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범인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기 싫을 겁니다. 왜냐면 제 손으로 직접 벌하고 싶을 테니까요. 특히나 검사장님처럼 그럴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성을 내던 강철호가 내 말에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검사장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이, 민태호!”

아무리 떠들어 봤자 강철호의 시선은 민태호에게 향하고 있었다.

“어린애 시켜서 말 전하게 하지 말고 이리 오지?”

“저… 검사님… 지가 시킨 게 아니라 꼬맹이가 지를 시킨 겁니더.”

“이것들이 진짜 장난하나.”

위이이잉―

멀리서 터지는 경광등이 가까워졌다.

성북동 고급 주택 단지인 탓에 잠깐의 소란에도 경찰차가 몰려왔다.

“당신들 뭐야!”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권총을 꺼내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나 서부지검장 강철호입니다. 내가 정리할 테니 그냥 가시죠.”

“신분증 보여주시죠.”

“그냥 가라고 한밤중에 윤 서장한테 전화하기 싫으니까.”

서로의 눈치를 보던 경찰관들이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고, 강철호가 이어 말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 뒤쪽으로 가 있어요.”

그의 말에 주변이 다시 고요해졌다.

뜨득!

그제야 나는 쓰러져 있던 오양호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 강철호에게 건넸다.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실 텐데, 잘 됐네요.”

“하… 각오는 돼 있겠지?”

“물론입니다.”

휙휙.

강철호의 손짓에 멀리 있던 경찰관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이 머리카락이랑 쓰러져 있는 요놈 지문 채취해서 국과수에 가져다주세요.”

“네, 검사장님!”

경찰관이 다시금 뒤돌아가자 강철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 윤박사. 밤에 미안해. 아직 퇴근 안 했으면 내가 보낸 거 내 딸 몸에서 나왔다는 용의자 DNA랑 비교해 봐.”

딸각.

전화를 끊은 강철호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잘 들어. 이게 장난이면 앞으로 꽤 오랫동안 빛 보기가 힘들 거야.”

“장난이 아니면요?”

“그 반대겠지. 앞으로 빛만 보면서 살게 해 줄게.”

강철호가 나와 민태호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깡패 새끼든, 정체 모를 어린아이든 간에.”

휙.

강철호의 손짓에 남은 경찰관이 빠르게 달려왔다.

“네, 검사장님!”

“지구대에 전화해서 몇 명만 이쪽으로 보내라하고 내 지시 있기 전까지 이 사람들 여기 잡아 놔요.”

“네, 알겠습니다!”

강철호는 휙 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경찰관들과 우리는 어색한 대치를 이어 갔다.

“앉아도 되죠? 다리가 아파서.”

“대신 자리에서 이동하지 마세요.”

기다림이 긴장되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민태호일 뿐.

“아이고야, 괜히 이상한 꼬맹이랑 얽혀서 핵교 가게 생겼네.”

“‘핵’교 갈 나이는 지났죠.”

웃으며 민태호에게 농담을 건넸다.

“후달려 죽것는디 장난치지 말어라잉.”

“후달리긴. 건달 두목이라는 사람이.”

강철호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오양호가 차기 검찰총장의 집 대문을 열어 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들어오지.”

그 말에 민태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뭣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겨…….”

대문을 연 강철호가 경찰관들에게 눈빛을 보내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들이 길을 터 줬다.

그때,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이 나서 오양호를 가리켰다.

“검사장님, 이 사람은 병원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복귀하세요. 저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도…….”

“하… 자꾸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강철호의 표정이 굳은 걸 눈치챈 경찰관들이 서둘러 경찰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모두 떠난 걸 확인하고서야 오양호라는 열쇠를 민태호와 나누어 들고 넓은 강철호의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들어가요, 삼촌.”

* * *

“후∼ 그런 짓을 해 놓고도 살겠다고…….”

강철호가 창문 밖 마당에서 청 테이프에 묶인 채 꿈틀거리고 있는 오양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원하는 게 뭡니까? 제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뭐든 들어드리죠.”

저택 밖과 안의 온도 차이는 꽤 컸다.

말끝이 잘리지도 않았고, 향이 좋은 차가 앞에 놓여 있으며, 조폭를 벌레 보듯 하던 강철호는 민태호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지는 뭐… 앞으로 검사장님께서 지와 저희 식구들을 좋게 봐주시기만 해도 좋습니더.”

스윽.

검찰 마크가 새겨져 있지 않은 강철호의 명함이 민태호 앞에 놓였다.

마크가 새겨진 명함이든 그렇지 않은 명함이든, 결국엔 강철호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는 건 같았다.

하지만 한 전화는 공명하고 사명감이 깃들어 있는 검사장으로 받을 것이며, 다른 전화는 그와 정반대일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왜 민태호 씨를 안 잡아넣은 줄 알아요?”

“…지는 잘 모르겄습니다.”

“서울연합파가 다른 조직을 다 집어 삼키면 그때 한 번에 잡는 게 편하니까요.”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장인이 중견 기업 회장인 것 말고는 검찰 내부에 라인 없이 검사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니까.

그것뿐인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디 그럴 수가 있나요. 내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 줬는데… 대신 내가 정해 준 울티리 안에서만 움직이세요. 울타리를 꽤 크게 쳐 줄 테니까 걱정은 말고요. 그리고 울타리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기면 그 명함 속 번호로 전화하세요.”

“감사합니다. 근디 지는 그저 저 꼬맹이한테 돈만 받고 한 일인지라…….”

“어색한 연기 그만하시고. 장인어른 회사 스폰으로 붙여드릴 테니 시키는 일 꼼꼼히 잘 하세요.”

강철호는 주입식 교육에 능한 뇌를 가졌고, 많은 인풋을 통해 그 어렵다는 사법 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을 나 같은 어린애가 했다는 건 강철호에 뇌에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비상식이 주입된 적이 없는 뇌이니까.

“연기 아입니다.”

민태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강철호는 눈빛 속에 거짓이 없음을 느끼고는 민태호의 떨거지쯤으로 생각하던 나에게 드디어 시선을 돌렸다.

“몇 살이지?”

“열여덟입니다.”

어려 보이긴 했지만, 열여덟이라는 비상식이 강철호의 뇌에 주입되자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모든 일의 감독이 너란 말이지? 주연도 너고?”

“네, 맞습니다.”

“하… 기가 막히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감독과 주연이 누구면 어떻겠습니까. 흥행만 하면 되는 거죠.”

나는 창밖에 있는 오양호를 바라보았다.

아마 강철호는 자신의 말을 능숙하게 받아치는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저 꼬맹이 보통내기가 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라본다 해도 열여덟 고등학생의 생김새는 바뀌지 않는다.

다시 민태호를 힐끔 보지만, 그 역시도 내가 만든 영화 속의 배우일뿐이었다.

“그러니까 깡패 새끼, 아니지… 민태호 씨가 나랑 연줄을 만들려고 저놈을 잡아온 게 아니란 말이지?”

“둘 다 연줄을 만들려는 건 맞습니다. 다만, 검사장님이 내려 준 줄을 제가 처음 잡으려는 것일 뿐이죠.”

강철호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하, 그러니까 왜? 민태호가 아닌, 열여덟 고등학생이 왜 내 줄을 잡고 싶어 하냐는 거다.”

“제가 곧 검사장님의 회사로 들어갈 거여서요.”

“검사가 되고 싶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그럼 공부를 해야지. 나한테 이런다고 검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닌 걸 알고 있을 텐데.”

당연히 알고 있지.

근데 내가 필요한 건 법복을 입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내 법복을 다려주느냐다.

“걱정 마십시오. 입사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똘똘한 녀석 같긴 한데, 사법 고시는 네가 지금껏 봐오던 학교 시험과는 많이 다르단다.”

“제가 설마 검사장님의 동아줄 받을 능력도 안 되면서 내려 달라하겠습니까?”

“하하하, 네가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 주는 것도 모자라 웃음까지 짓게 만들어 주는구나.”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강철호의 눈빛이 변했다.

분노와 슬픔이 가득하던 눈동자 속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 속에는 내가 비춰져 있었다.

“그래. 꿈은 크게 가지면 좋지만, 먼 훗날 얘기구나. 그때까지 내가 법복을 입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입고 있다면 너에게 아주 튼튼한 줄을 내려 주마.”

“먼 훗날 얘기였다면 검사장님을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해는 뜨고 진다.

강철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뜨다가 서서히 지게 되겠지.

그리고 내 계산이 맞다면 내가 법복을 입게 되는 그 순간이 강철호가 가장 높고 뜨겁게 떠 있을 때이다.

“내가 옷을 벗게 될 곳은 대검이다. 그 위에 자리는 관심이 없어. 그리고 대검 꼭대기로 이사할 날은 얼마 안 남았고. 설마 검찰총장의 임기를 모르는 건 아니지?”

언론에서는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강철호를 꼽고 있지만, 강철호가 대검 꼭대기로 이사하는 날은 앞으로 5년 정도는 족히 걸릴 터였다.

“2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네가 지금 당장 법복을 입지 않는 이상 내 줄을 잡을 수 없을 텐데.”

“넉넉잡아 5년은 걸릴 겁니다.”

“계산을 잘 못하는구나.”

“저도, 검사장님도 말이죠.”

“뭐?”

언론의 동정을 받는 서부 지검장과 기수가 높은 중앙 지검장.

두 개의 이력서를 놓고 고민하던 VIP는 결국 중앙 지검장의 이력서를 채택한다.

강철호가 대검 꼭대기에 앉게 될 경우, 강철호 기수 위에 검사들은 관례상 옷을 전부 벗어야 했다.

한데 현재 수사권을 쥐고 있는 VIP는 손에서 손가락들이 잘려 나가는 게 불안했을 것이다.

애초에 강철호는 라인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실적과 여론을 등에 업고 올라왔으니 VIP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인사의 입김을 불어넣는 민정 수석이 중앙 지검과 같은 학교 선후배사이라는 게 컸다.

“빨리 가시다 넘어집니다. 중앙 지검 거치고 대검으로 건너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이제 네가 내 거취까지 정하는구나.”

“정한다기보다… 검사장님도 청와대의 주인이 어떻게 나올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강철호는 내 말에 긴 한숨을 내쉬고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소파에 몸을 붙였다.

“그냥 똘똘한 아이인줄 알았는데.”

휙.

강철호가 민태호를 슬쩍 쳐다봤다.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근데 네 말이 맞다고 해도 나와 넌 다르지 않겠냐? 5년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 말이지. 대학 4년에 아무리 똘똘해도 고시 공부라면 몇 년은 더 해야 할 것이고.”

“저에겐 전부 생략이 가능한 시간입니다.”

내가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어린 나이 때문이지 부족한 머리 때문이 아니다.

“대학은 가야지. 대학에서 만들어진 인연이 검찰로 넘어가면 라인으로 바뀌거든.”

“꼭대기에서 내려 주는 줄을 잡을 텐데 다른 라인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허, 내가 고등학생 붙잡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우스운데 심지어 한마디도 이기지를 못하겠구나.”

스윽.

내 앞으로도 하나의 명함이 놓여졌다.

검찰의 마크가 새겨져 있지도, 그렇다고 민태호에게 건넨 명함도 아니었다.

“사무용 전화도, 민원 받는 전화도 아닌, 진짜 내 개인 전화번호다.”

“감사합니다.”

딸랑 번호만 적혀 있는 강철호의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왜냐고 묻지도 않고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네.”

“검사장님의 사람이 될 기회를 주신 거 알고 있습니다.”

“휴… 졌다, 졌어. 네가 나를 살살 녹이는구나.”

강철호의 마음이 녹아 명함이 되었고, 그 명함은 내 속주머니로 들어왔다.

“이름이 뭐라 그랬지?

“한치우라고 합니다, 검사장님.”

“하하하, 그래. 기다려 보마. 내가 줄을 던질 곳에 네가 서 있을 때까지.”

김이 모락모락 나던 커피가 차가워질 때가 되어서야 머리를 거치지 않고 가슴에서 나오는 강철호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오양호라는 조건이 없어도 내가 꽤 마음에 들었고, 그렇기에 강철호는 근처에 보이는 아무 줄이 아닌 질겨서 잘 끊어지지 않을 줄을 골라 나에게 내릴 것이다.

“자! 그럼 각자 명함도 받았으니 나머지는 유선상으로 얘기합시다. 보다시피 시간도 늦었고 따로 해야 할 일도 조금 있어서.”

창밖의 오양호를 바라보며 강철호가 소름 돋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 나에게 보이던 미소 같은데 소름이 끼치도록 다르게 느껴졌다.

“그럼 나머지는 전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사장님.”

“그래.”

강철호가 마당까지 따라나온 것은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지도 가 보것습니다.”

마당 구석 창고로 향하는 강철호의 등 뒤에 인사를 건넸다.

“아, 그래요. 전화 주세요.”

쾅.

대문이 닫히기 전 오양호의 눈빛을 보았다.

실핏줄이 터져 흘러내리는 피눈물.

살려달라고.

고통스럽다고.

그 모든 것을 눈빛으로 표현해 보지만, 청 테이프로 꽁꽁 감긴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드르르륵.

문이 닫히고 대문의 빗살 사이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쇳덩어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놈은 납치한 어린 여자아이의 눈빛 속에서 지금 자신과 같은 눈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때 그 눈빛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듣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워메, 저 노마가 이제 불쌍해질라 한다.”

민태호 역시 그 소리를 들은 탓에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법복을 입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니는 이 소리가 안 들리나?”

들린다. 아주 잘.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대신 오양호가 죽여 달라고 애원하겠죠.”

* * *

꽤 바쁜 주말이 지나고 평일이 되자, 나이에 묶여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학교가 나에게 무의미한 시간인 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힘.

그것이 육체든 정신이든 간에 말이다.

예전에는 괴롭힘에 공부를 하지 못해 집에 돌아와 멍 자국을 감추며 교과서를 들여다보아야 했는데, 지금은 그런 엿 같은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채 달라진 위상을 강제로 만끽하며 앉아 있었다.

“치우야, 뭐 봐?”

“그냥 이것저것.”

자리에 앉자마자 성훈이 반가운 듯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등교 후 책상에 앉아 영자 신문과 국내 일간지들을 읽는 아침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고, 아직 수업 종이 울리기 전이지만 신문을 읽기에는 거슬림이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반 아이들이 고3을 앞두고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서?

아니다.

복도에서 소란스러움이 들려왔지만, 내가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모두가 자리에 돌아가 입을 다물었다.

사람의 본성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명선호는 이제 타깃을 바꿔 다른 아이를 괴롭혔는데, 그런 명선호마저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전의 기억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 속에서 번번히 기회를 노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보다 두꺼워진 내 팔뚝을 보고는 이내 자리를 찾아가 앉아 슬그머니 고개를 책 안으로 박아 넣었다.

나는 그 모습을 슬쩍 쳐다보고는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볼 만한 게 없네.”

신문을 읽어 내려가며 혹시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건 하등 무의미한 일일 뿐이었다.

[황희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

[성훈산업 동현 바이오에 100억 투자!]

[서부 지검장 딸 납치 살인 사건 범인 검거!]

다만, 그런 무의미한 기사들 중 내가 만들어 낸 몇 개의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한 야산에서 신고 받은 경찰이 검거했다. 정신착란 증상으로 자해한 듯 보이며,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이다. 범인은 몇 달 전 서부 지검장인 강철호의 딸을…….]

자해?

훗.

자해라고 쓰인 단어의 진실을 알기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 이 사람 잡혔네? 정신병자였구나. 어쩐지… 그러니까 그런 끔찍한 짓을 하지.”

성훈이가 오양호의 기사를 보며 말했다.

“정신병이 생길 수밖에 없지.”

“응?”

내가 강철호의 집에서 들은 소름끼치는 그 소리를 누군가 들었다면 다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다른 사람들과 개수가 맞지 않을 것이며, 모두가 갖고 있는 신체 일부분이 온전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것뿐인가?

인간이길 포기한 오양호는 이제 정신병이 걸려 성인 남자만 보면 오줌을 지리게 될 터.

그렇지 않아도 미래에 이와 비슷한 사건의 범죄자들은 정신병과 술을 핑계로 감형을 받으려고 해 왔다.

이 사건을 통해 더욱더 많은 이들이 그러한 시도를 할 것이 눈에 선했다.

하나 내가 있는 한 그런 사건은 최대한 막을 것일 뿐더러,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거짓이 아닌 오양호와 같이 진짜 정신병에 걸리게 될 테다.

아주 끔찍한 정신병이.

딩동댕동―

이후로도 미래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몇 번의 수업 종이 울렸다.

교과서에 낙서가 늘어날 때쯤 학교에 묶여 있던 내 몸을 풀어 줄 마지막 종이 울렸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책가방을 메고 교실을 떠나려 할 때, 내 발걸음을 멈추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싸가지 없는 꼬맹이!”

커다랗고 거친 그 목소리에 아이들이 하나둘 창문으로 모여들었다.

그 탓에 나는 교실 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야 저것봐봐 조폭 아니야?”

“와… 진짜 무섭게 생겼다. 문신 봐봐.”

“근데 누굴 부르는 거지? 우리 반 보고 말하는 거 같은데.”

누구긴…….

불행하게도 나지.

“뭐여 없는 거여!”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동물원 곰처럼 남산만한 덩치를 자랑하며,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 대는 민태호를 모든 학생들이 빼꼼 하고 바라보았다.

이대로는 민태호가 계속해서 소리 지를 것 같아, 빠르게 창가로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여! 거 있었네!”

“후∼ 기다려요!”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돌려졌다.

전신에 문신을 하고 누가 봐도 조폭인 민태호보다 그런 조폭이 애타게 찾고 있는 내가 더 신기하기 때문이었다.

“야.”

“응?”

“체육복 좀 빌리자.”

주변을 둘러보다가 민태호와 비슷한 덩치의 한 녀석을 찾아 부탁을 하자, 헐레벌떡 뛰어가 체육복을 가져왔다.

‘표정 풀어 인마. 부탁이야 부탁.’

내 생각은 그랬지만, 뒤에 민태호가 서 있는 것만으로 부탁이 아닌 협박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그걸 트집 잡을 수도 없기에 나는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고맙다. 세탁해서 돌려줄게.”

“아니야! 그냥 가져도 돼!”

젠장, 부드럽게 말하는 데 진짜…….

나는 벌벌 떠는 녀석의 체육복을 받아 들고 교실을 나왔다.

“선호야…….”

의도한 건 아니였지만 내가 몸을 돌리자 모두의 시선이 명선호에게로 몰렸고, 예전과 달리 반 아이들은 내가 아닌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개 거품을 물고 있는 명선호를 걱정했다.

“언제 나올겨! 아따 기다리다가 날 새겄다!”

“왔어요, 왔어. 거 되게 보채네.”

휙.

“이게 뭔디야.”

“창피하니까 제발 그 문신 좀 가려요.”

인사도 건네지 않은 채 체육복을 민태호에게 던졌다.

“아이고, 내가 자라나는 꿈나무들한테 못 볼 걸 보여줬구마잉.”

민태호가 내가 던진 체육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멋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이제 됐냐?”

“…아니요. 문신을 가려도 조폭같이 보이는 건 똑같네.”

“이런 싸가지…….”

분명 가장 큰 체육복을 가지고 나왔는데도 민태호의 덩치를 다 담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체육복에 끼여 뒤뚱거리는 민태호를 끌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워메, 무슨 옷이 이렇게 작은겨… 힘드니께 저기 앉아서 얘기허자.”

민태호는 얼마 걷지 못하고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교육환경보호의 관한 법률 제9조.”

“뭐래는 겨.”

“학교의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200미터 범위 안에는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 및 시설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뭣이여? 지금 내가 움직이는 룸싸롱이라도 된다는 소리여?!”

결국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따라오던 민태호가 앉을 수 있던 곳은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편의점 앞이었다.

“워메, 괜히 왔구만.”

“그러니까 왜 연락도 없이 왔어요?”

민태호가 반갑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민태호나 지금의 나나, 학교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 뿐.

“방 회장님한테 돈 받으러 왔다가 꼬맹이 니가 여 있다길래 함 들려본 거여.”

“이제 서울 올라가시는 거예요?”

“그려. 일도 마무리 짓고, 애기들 짐도 다 쌌으니 가야제. 게다가 꼬맹이 니 덕에 강철호 그 양반 명함도 생겼으니 고맙다고 인사나 하려고 왔으야.”

남산만한 덩치를 움츠리며 쑥쓰러워 하는 민태호였다.

“하하하. 삼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뭐긴 뭐여 감사 인사지. 뭐 고맙다고 얼라 데리고 룸방을 갈 수도 없는 기고… 어떻게 떡볶이라도 먹을 텨?”

“떡볶이는 됐고 국밥이나 한 그릇 먹어요.”

* * *

건달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자신을 따르는 동생들 국밥 한 그릇 사 줄 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민태호의 말이 생각났다.

“한 이사 국밥이나 한 그릇 하러 가자고.”

“지겹지도 않아요?”

사업이 커지고 고급 레스토랑 정도는 갈 수 있을 만한 돈이 주머니에 생겨도 민태호는 서울의 한 작은 국밥집을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중 절반을 나와 함께 말이다.

비록 그때의 추억이 서린 서울의 작은 국밥집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도 꽤 괜찮은 국밥집이 있었다.

“그니까! 돈을 주면 험한 꼴 안 봐도 될 거 아니야!”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곳이 지금 조금 시끄럽다는 것 정도?

“워메, 시골에는 아직도 저런 양아치들이 있는 겨?”

“그러게요.”

[가문국밥]

어머니가 자주 가시던 국밥집.

맛도 맛이지만 나를 키우며 힘들게 사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 주어 어머니에게 따듯한 국밥을 무료로 베풀어 주던 사장님이었다.

아름답던 어머니를 마음에 두고 있는 탓도 있지만, 혹 어머니에게 부담이 될까봐 마음을 티 내지 않느라 묵묵히 국밥만 주곤 했다.

“원금 다 갚았는데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

“원금만 갚으면 다야? 이자를 갚아야지. 우리가 무슨 은행인 줄 알아?”

그런 가게가 양아치들에게 박살 나 있고, 사장님의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톡.

“저기예요.”

민태호의 팔을 톡 치며 가리켰다.

“저긴 국밥 내 줄 상황이 안 되는 것 같은디.”

“저기서 사 주세요. 맛집이거든요.”

“그라믄 밥 먹기 전에 쓰레기부터 치워야겠고만.”

“다시는 못 기어 나오게 분리수거도 확실히 하죠.”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시장 상인들을 뚫고 국밥집 앞으로 향했다.

“어이∼ 야들아. 우리 국밥 한 그릇 할라니께 비켜 보지?”

“뭐야? 이 고삐리는.”

“워메∼ 얼라랑 다닌다고 나까지 얼라로 보는 거여? 아니면 내가 그렇게 동안인겨?”

書院高(서원고)

민태호가 입고 있는 체육복에 선명히 보이는 한자였다.

물론 민태호나 양아치들이나 이 한자가 꼬부랑 글씨로 보이는 건 마찬가지일 테다.

다만, 민태호는 내가 어디서 주어 온 운동복쯤으로 생각할 것이고, 양아치들은 시골에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의 체육복으로 보이는 것이다.

“멍청아 저 얼굴이 고삐리 같냐? 체육 선생이겠지.”

“그런가? 그세 체육 쌤이 바뀌었나 보네.”

“아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만 가라니께.”

양아치 원투가 서로 얘기를 나누는 걸 듣던 민태호가 꽉 끼는 체육복이 불편한지 몸을 이리저리 꼬며 말했다.

“워메, 불편해 죽겄네.”

“불편하면 벗으세요.”

“됐고만, 쪼매난 애들 쓰다듬는 건디 뭐.”

민태호가 두 명의 양아치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에게 비추던 햇빛이 사라진다.

“워… 진짜 크네…….”

덩치로는 상대가 안 되자 색도 안 입혀진 문신을 어필하려는 듯 팔을 걷어 부치고, 민태호에게 보여 주지만 민태호의 시선에서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갑자기 팔은 왜 걷어붙이고 그려? 색칠할 돈 없어서 상인들 삥 뜯는 겨?”

“그게 아니라…….”

민태호의 정체를 알든 모르든.

양아치들은 이미 민태호의 겉모습 자체를 이길 수가 없어 보였다.

“어지럽힌 거 싹∼ 청소허고, 조용히 안 꺼지면 나가 직접 여서 칠해 줄텐께 어서 결정혀.”

민태호가 새빨간 선지가 담겨 있는 뚝배기를 만지작거리며 얘기했고, 양아치들은 겁에 질려 국밥집에서 멀어졌다.

“드, 등치 믿고 까부나 본데, 너 여기 꼬, 꼼짝 말고 있어!”

“그려. 많이 데꼬 와라. 둘이서 청소하려면 힘들 것인디.”

양아치들 특성 아닌가.

힘으로 안 되면 쪽수로 밀어붙이는 게.

그마저도 안 되면 무기를 쓸 것이고.

또 그마저도 안 되면 뒤를 노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앞에 있는 민태호는 그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고, 아재요. 지금 국밥 팔 수 있겄소? 요 얼라가 여기 맛집이라카던데.”

얼떨떨한 상황이 끝나고, 드디어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 국밥집 사장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 치우 아니냐?”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이쪽은 촌수가 쫌 되는 삼촌이에요.”

“아… 그렇구나. 정말 감사합니다.”

건달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게 얼떨떨한지 몸을 배배 꼬는 민태호였다.

“아녀라. 대신 국밥이나 많이 주소.”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대충 치우고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짝짝짝.

“워메, 뭔 일이여 이게. 저 총각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만.”

민태호를 향해 박수를 치는 시장 상인들이 놀라워하며 칭찬했다.

이제 삼촌도 슬슬 느껴봐야지.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는 느낌을.

그리고 익숙해져야지 자신의 힘을 좋은 쪽으로 쓴다면 박수와 동경을 받는다는 것을.

그렇게 서서히 조폭 민태호는 변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당분간 집에서 쉬시기로 했어요.”

“다행이네. 요즘 많이 피곤해 보였거든.”

“하하.”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피곤함의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좀 쉬시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찌질한 한치우는 없으니까.

“냄새는 허벌나게 좋네잉.”

낡은 테이블에 앉은 민태호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어딨어! 그 개새끼!”

“국밥집에 있다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

그리고 다시 모여드는 시장 상인들.

“워메, 동네가 좁아서 그런겨? 빨리도 왔네잉. 아야, 수저 셋팅이나 해놔라잉. 내는 밖에 나가서 저놈들 쓰다듬어 주고 올 건게.”

훗.

은근슬쩍 밖을 바라보자 낯이 익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하.”

“뭐여, 왜 웃는 겨.”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끼익―

낡은 의자를 뒤로 뺴고 밖으로 향했다.

“어?”

* * *

양아치 패거리들이 국밥집 앞을 둘러싸고 있었다.

내 등장에 선봉에 서 있던 녀석이 뒤로 물러나지만, 자신보다 뒤에 있던 다른 녀석에 의해 막힌다.

톡.

“왜 그러세요, 형님?”

“으, 응? 아, 아니야…….”

그리고 깨닫겠지.

지금 자신의 뒤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양아치들이 있다고.

“수금 방해한 게 너였어?”

그러니 그때와는 다르게 말이 짧아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녀석도 나도 구면이다.

이 녀석이 바로 오양호를 찾아 준 흥신소의 사장이니까.

“수금이 아니라 협박이지.”

“어린놈의 새끼가 민태호 형님 이름 앞세워서 협박이나 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시골 고삐리가 서울에 그런 대단한 조폭을 알 리가 없잖아? 그리고 뭐? 검사장한테 말을 해? 번호는 알고? 까는 소리하고 있네.”

자신의 뒤를 지켜 주는 패거리들과 손에 들고 있는 야구 배트가 돌아가지 않던 머리를 돌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머리가 돌아봤자 무엇하리.

이제 내 협박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 되어 버렸는데.

끼익―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걸 들은 민태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워, 진짜 크긴 크네.”

민태호를 본 녀석의 첫마디였다.

그 말은 즉, 녀석도 민태호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내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이 덩치가 큰 체육 선생님 정도로만 보일뿐.

“아야∼ 니 내 아나?”

“내가 널 어떻게 알아?!”

“분명 들었는디야. 니가 내 이름을 말허는 것을.”

“……?”

민태호의 말에 흥신소 사장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급하게 머리를 돌리다 보면.

“아…….”

언젠가 뉴스에서 본 민태호의 실루엣이 생각날 것이다.

땡그랑.

그렇게 머릿속 실루엣과 눈앞에 실루엣이 겹쳐지자, 손에 들고 있던 야구 배트가 맥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혼자 한겨울인 것처럼 흥신소 사장이 벌벌 떨어 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옆에 있던 직원이 흥신소 사장을 불러 보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민태호로 가득 차 있는데 다른 말이 들어올 턱이 있나.

“괜찮으세요, 형님?”

휙휙!

아무리 불러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장을 직원이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형니이이임!”

그러자 이번엔 직원들이 뭔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당사자인 민태호도 어처구니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동상인디… 치우야 니가 아는 사람이냐?”

“아∼ 이 사람이 삼촌을…….”

꽈악.

흥신소 사장이 무릎으로 바닥을 기며 다가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제발… 제발…….’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보기 거북할 정도였다.

아아, 마음 약해지게 이 아저씨 왜이래.

“하하, 아니에요”

그래.

굳이 민태호에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려. 밥이나 먹자고. 요놈 보니께 이미 무릎으로 청소하고 있는 것 같은디.”

우리는 그대로 다시 가게로 들어갔지만, 흥신소 사장은 민태호의 마지막 말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들어가며 슬쩍 보니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참, 사장님.”

“…….”

“도망치려면 한국을 뜨는 게 나을 거예요. 알겠죠?”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씩 웃어주며 민태호를 따라 가게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탁.

익숙한 맛을 담고 있는 뚝배기가 상에 올려지고, 모락모락 김을 피웠다.

“고마워요. 치우 삼촌 분.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뜨거워도 잘 먹으니께 걱정 마셔라.”

민태호는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국밥에 넣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하하,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응? 못 들었는디 뭐라 했노?”

“아무 것도 아니에요. 삼촌 잘 드신다고요.”

“거, 내가 국밥 하나는 진짜 맛있게 먹제. 고건 고렇고, 사내 자슥이 목소리가 그게 뭐여. 크게 좀 말해라, 자슥아.”

다시금 뚝배기에 코를 박고 국밥을 퍼먹는 민태호를 보며 나는 국밥집 밖에서 어질러진 집기들을 정리하고 있는 패거리를 보았다.

‘그냥 문득 옛날 생각이 났어요.’

마주 앉아 밥 먹기 전에는 꼭 한바탕할 일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국밥에 깍두기를 넣어 먹는 습관이 말이다.

“아야∼ 먼지 안 들어오게 살살해라잉.”

“네, 형님!”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바쁘게 청소하는 흥신소 사장은 크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들이 왜 청소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궁시렁거리는 직원들을 본 흥신소 사장이 얼굴을 구겼다.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다들 집합!”

굼뜬 직원들을 불러 모은 흥신소 사장이 복화술로 덩치 큰 체육 선생의 정체를 알려주자.

“흐익!”

그제야 모두가 일심동체로 어질러진 국밥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으∼ 워메, 서울 가서도 생각나겠구마잉.”

“서울에도 맛있는 국밥집 많은데요, 뭘.”

“여서 있던 일이 이 뚝배기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이여. 그라고 싸가지는 없어도 꼬맹이 니랑도 꽤 정이 들어 부렷고.”

“걱정 마세요. 얼마 안 있어 저도 서울로 올라갈 테니까.”

“아, 맞다. 니 검사 될 거라 켔지?”

“네.”

“그라믄 나랑은 엮일 일 없을 것 같은디. 꼬맹이 니가 검사가 된 다음에는 마주앉아 국밥 먹을 일이 조사실밖에 더 있겄냐.”

아니.

그렇지 않다.

이미 세상을 한 번 겪어 보지 않았는가.

가슴엔 정의라는 갑옷, 손에는 기소권이라는 무기.

그런 것들로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도, 내 분노를 삭여 줄 복수도 불가능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뭣이?”

“삼촌과 조사실이 아닌 평범한 국밥집에서 마주앉아 국밥을 먹는 일이요.”

“검사랑 조폭은 섞이면 안 되는 것이여, 인마.”

“그런데 대한민국은 섞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섞여 있잖아요.”

정치와 경제.

정의와 비리.

돈과 권력.

“그래서 섞이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쩝… 이 얼라 또 이상한 말 해대 싸네.”

이쑤시개로 이를 후벼 파고 있던 민태호가 행동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시방 니가 검사가 되면 나를 꼬봉처럼 부려 먹겠다는 거여?”

“아니요. 동료가 돼 같이 싸우자는 거죠.”

긁적긁적.

“검사가 뭔 싸움을 혀?”

이해가 안 되는 듯 민태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민태호도 곧 깨닫게 될 거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에는 법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이상에는 주먹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같은 배에 올라탔고, 같은 이정표를 향해 노를 젓고 있다는 것까지.

그리고 내가 검사가 되어 마주 앉아 국밥을 먹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법으로, 삼촌은 주먹으로.’

* * *

내 손에 체육복을 남긴 민태호는 서울로 향했다.

“금방 볼 텐데 뭐.”

민태호의 땀이 묻어 있는 체육복을 보며 혼자 속삭였고, 나는 다시 시장으로 향했다.

“쌀쌀하네.”

민태호가 입었던 체육복을 걸치고 시장 속을 걸어가자 상인들의 눈빛이 나와 체육복으로 모였다.

“이야∼ 아까 그 삼촌 덕분에 고놈들 당분간 시장 상인들 못 괴롭히겠네.”

당분간?

아니.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못할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온 이유니까.

“치우야∼ 이리 와서 떡볶이 좀 먹고 가.”

“하하하, 아니에요. 가 봐야 될 곳이 있어서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훗날을 생각해 동네 시장 상인들의 민심을 얻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건드려 놓는 바람에 화풀이가 시장 상인들한테로 돌아간다면, 민심은커녕 나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뿌리를 확실히 뽑아놔야지.

때마침 어머니의 채소 가게 점포도 생각났고.

[오케이 흥신소] [오케이 일수]

비어져 있는 1층 점포를 바라보며 흥신소 계단을 올랐다.

끼익―

낡은 철문이 열리자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있는 흥신소 직원들과 사장이 보였다.

“그거 했다고 유난은. 그니까 멀쩡한 가게를 왜 때려 부셔요.”

삐걱.

“아이고∼ 우리 민태호 형님 조카 분 오셨습니까?”

내 등장에 의자에 앉아 있던 사장이 재빨리 일어나 옷을 주어 입었다.

“그냥 한치우라고 부르시죠.”

“아… 네, 치우님. 그나저나 여까진 또 어쩐 일로?”

“성함이?”

“저는 오케이 흥신소 사장, 박철호라고 합니다.”

박철호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요. 뭐 하나 물어보려고요.”

“네, 뭐든 말씀하세요.”

“이 건물 당신 거죠?”

“네… 조그맣긴 해도 열심히 모아 산 겁니다.”

“열심히 모은 건 아니지. 상인들한테 사채 뿌려 고리 챙기고, 흥신소 간판 달고서 온갖 불법적인 짓은 다해서 번 돈이지.”

시골 시장이 그렇듯 높고 깨끗한 건물은 아니지만, 1층에 채소 가게 정도는 할 수 있어 보였다.

“1층 점포 나한테 세 좀 놓죠. 어머니 채소 가게 좀 차려드리게.”

“거기가 2,000에 200인데…….”

나는 그 말에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1,500에 150…….”

“잠깐만요.”

스윽―

주머니에 고이 모셔 놓은 강철호 검사장의 명함을 꺼내 잘 보이도록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그때 말한 검사장님 직통 번호요.”

“…아, 그럼 1300에 130으로…….”

곧장 휴대폰을 꺼낸 나는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한치우 군,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 그랬는데 먼저 전화를 했군그래.

“네, 검사장님. 안녕하셨습니까?”

― 그래. 요즘은 지검도 나가고, 안녕도 하네. 덕분에 말이야. 그런데 먼저 연락을 한 이유는 뭔가?

“다름이 아니고 제가 현상금을 받고 싶습니다.”

― 현상금? 아∼ 물론 줘야지. 얼마면 되겠나?

“많이는 필요 없고 경찰이 건 현상금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 그래. 내가 준비해 주지. 받으러 올 텐가?

“아니요. 여기가…….”

톡톡.

스피커폰으로 함께 통화를 듣고 있던 박철호를 발로 톡톡 건드렸다.

“당신 계좌 번호 좀 불러 봐. 세가 얼마라고?”

“…300에 20만 주시면 됩니다…….”

힘없이 답한 박철호가 무릎을 꿇은 채 메모지에 계좌 번호를 적었다.

― 계좌 번호는 문자로 보내면 되네. 그런데 그때 말하는 거 보니까 돈에는 욕심이 없어 보이던데 무슨 일이 있는가?

“노점하시는 어머니에게 점포 하나 차려드리려고요.”

― 하하하, 효자네. 그래 나도 언제 한 번 들리게 주소도 같이 보내게.

“시장에 오케이 흥신소 일층입니다.”

― 흥신소? 흐음, 흥신소라…….

말을 끄는 걸 들어보니, 실적 킬러가 먹이를 문 거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든, 당분간 보류해 주십시오.”

― 허허허, 나는 아무 말도 안했네만. 뭐 어쨌든 치우 군 어머니가 장사하는데, 손 좀 쓰지 뭐. 그래도 또 신고가 들어오면 나도 봐줄 수가 없네. 대신 다른 곳에 내 직접 가게를 내 줄 테니 걱정 말고. 그럼 다음에 또 전화하지.

“네, 알겠습니다.”

딸깍.

무릎을 꿇고 있던 박철호는 어느새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150에 15만원만 주세요… 그 밑으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그리고 삼촌이랑 검사장님한테도 좀 좋게 말해 주시면…….”

시장 상인들을 괴롭히고 온갖 불법을 다 저지르면서도 시골 경찰들에게 뒷돈을 찔러주며 호위호식하던 박철호.

그가 이렇게 비굴해진 적이 있었을까?

“잘 들어요. 상인들을 괴롭히면 태호 삼촌이 찾아 올 거고, 불법을 저지르면 검사장님이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제 어머니가 1층에서 지켜볼 것이고요.”

법과 주먹을 동시에 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잘 좀 봐주십시요…….”

“그러니까 앞으로 잘 하세요.”

* * *

오늘 어머니에게는 몇 가지 놀라운 일이 있었다.

생전 시장을 찾아오지 않던 아들이 웃으며 자신을 찾아왔고, 시장 상인들이 나만 보면 미소를 건네는 모습을 보았다.

“치우야, 내가 모르는 네 삼촌이 있어?”

“친한 친구 삼촌인데. 저도 자주 봐서 삼촌이라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건물 1층 점포가 비어 있어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 찾아왔습니다.”

“네? 저한테 왜…….”

상인들을 괴롭히던 흥신소 사장이 어머니의 노점에 웃으며 다가와 말도 안 되는 조건에 임대차 계약서를 내민다는 것이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가 10만원?!”

나와 박철호 사이에는 어머니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고, 그렇기에 보증금은 이미 박철호에게 건넸다는 비밀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표정을 굳히며 다시금 임대차 계약서를 든 손을 내밀었다.

“…안 할래요.”

그래.

어머니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철없는 아들 탓에 조건 없는 행복을 받아본 적이 없으셨으니까.

또 그게 익숙하지 않으시니까.

더군다나 어머니의 머릿속에 있는 박철호는 시장 상인들을 괴롭히고 선행을 베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보셨기도 했고.

“아, 너무 조건이 좋아서 그러시구나! 그게 사실은 아드님이 보증금을…….”

꽈악.

박철호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네?”

“아, 아닙니다! 아드님도 계시고 힘들게 노점에서 일하시는데 저희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어차피 놀고 있는 점포라 보증금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고요.”

박철호가 내 주먹을 보고는 최대한 착한 눈으로 어머니에게 다시 말해 봤지만, 어머니 머릿속 박철호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엄마 가문 국밥 사장님이 그러시는데 이 사람들 이제 상인들도 안 괴롭히고 불법으로 챙긴 이자도 다 돌려줬데요.”

“진짜?”

녀석들은 몰라도 아들의 말이라면 그게 어떤 말이라도 믿으시던 어머니.

“음…….”

그제야 어머니는 다시금 손을 거둬들여 임대차 계약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셨다.

사실…….

아무리 시골 시장의 작은 점포라지만, 정상적인 임대차 계약서는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내 상황과 그런 상황으로 만들 수 있던 계약서였으니까.

“엄마, 이 사람들이 착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줘 보세요.”

안 그러면 나한테 개 박살이 날 거니까.

내가 박철호를 바라보며 찡긋 한쪽 눈을 감자, 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네, 네! 저희 이제 상인들한테 행패 못… 아니 안 부릴 겁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게 악한 본성이건 착한 본성이건, 그 본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

다만, 어떤 강한 힘 때문에 그 본성이 숨게 된다면 깊은 곳에 갇혀 나오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게 사실이면 너무 고맙긴 한데… 저는 그런 점포를 운영할 만한 야채 거래처도 없고…….”

“하하! 그거 역시 아드님이…….”

이 아저씨 원래 이렇게 눈치가 없는 캐릭터였나?

민태호 앞에선 짱구를 잘 굴리더니 내 앞에서는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꽈악.

해맑게 웃으며 말하던 박철호가 내 주먹을 슬쩍 보더니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네?”

“그거 역시 아드님을 봐서 제가 공급해 드리죠. 물론 첫 달 만이지만요.”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얘기하는 박철호였다.

감정이 뒤죽박죽이니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 역시 뒤죽박죽이다.

그렇다고 조울증 환자처럼 왔다 갔다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한 번 해 봐요, 엄마. 시장 사람들도 엄마 야채 좋아하잖아요.”

물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편인 것도 있지만, 홀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에 대한 시장 사람들의 마음이 야채로 전해진 것도 있었다.

“그럼… 한 번 해 볼까? 월세도 싸고.”

“네. 저도 이제 곧 방학이니까 도와드릴게요.”

“됐어! 넌 공부해야지. 엄마가 왜 열심히 돈을 버는 건데.”

“엄마…….”

잊고 있었다.

어머니를 위하여 해 온 모든 일은 결국 다시 나한테 돌아올 거라는 걸…….

아직 돌려주기에는 현재의 내 나이가 어리다는 것 또한.

“네.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돌려드릴게요.”

“응? 뭘 돌려줘?”

“엄마가 희생한 거 모두요.”

“호호호, 나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 크고 공부도 잘하는 것만 봐도 모든 걸 돌려받는 기분이야.”

아니요.

제가 첫 번째 삶에서 어머니한테 지은 빗이 너무 많아서요.

“워…….”

훌쩍.

근데 박철호 당신이 왜 훌쩍거리는 건데?

“참… 보기 좋습니다…….”

어느새 모든 시장 상인들이 우리를 응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노점의 부산함에 옆 가게인 가문 국밥 사장님이 입구로 나와 우리를 바라보았다.

끄덕.

그리고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왠지 모르게 사장님의 끄덕거림을 읽을 수 있었다.

‘걱정 마. 아저씨가 있으니까.’

* * *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점포는 무사히 문을 열 수 있었는데, 시장 상인들이 발 벗고 어머니의 가게 오픈을 도운 탓이었다.

게다가 가문 국밥의 사장님은 어머니와 조금 가까워진 듯했다.

그리고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철호는 야채 공급뿐만 아니라 시키지도 않은 점포의 청소를 발 벗고 나서서 했다.

[사법 시험일 안내.]

갑자기 열게 된 가게 때문에 힘들 법도 한데,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나에게 조금 더 좋은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오는 웃음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 덕에 조금이나마 힘든 가게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것도 있을 터였다.

그 덕분에 내 미래를 바꿀 시간이 생겼다.

엿 같던 내 미래를 바꿔야만 어머니에 웃음을 지킬 수 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고, 안경을 벗기 위해 라식 수술을 했다.

“와∼ 우리 아들 진짜 잘생겼네.”

“수술비는…….”

“걱정 마. 엄마 요즘 돈 잘 벌어!”

넉넉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빠르게 흘러갔다.

학생이라는 신분 탓에 미래를 바꾸기보다는 미래를 바꿀 준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거울을 보면 꽤 많이 바뀐 외모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고, 불과 몇 달 전에 입던 교복의 팔다리가 한 뼘이나 남을 만큼 작아져 있는 탓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어려서 그런가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커지네.”

쭈그리지 않고 다녀서인지 아니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닫혀 있던 성장판이 열린 것 같았다.

“개학 전에 교복 다시 맞춰야겠네.”

원래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조금 더 큰다고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한 해가 바뀌었고, 나 역시 조금씩 변해 갔다.

그리고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아침.

어머니는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셨고, 나 역시 주머니에 사인펜 하나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이제 가 볼까.”

* * *

[2005년 제47회 1차 사법 시험장]

“너무 대충 입고 나왔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부터 혈기왕성한 대학생들까지.

고시장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두꺼운 책가방을 메고 손에는 책을 든 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머릿속에 채워 넣으려 노력을 하고 있었다.

“……?”

반면 껄렁껄렁한 추리닝 복장에 가방도 없이 손에는 딸랑 사인펜 하나만 들고 있는 내 모습.

“고시생이에요?”

“네.”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한지 옆에 있던 고시생이 물었다.

“아… 시험 구경 오셨나보다.”

“아니요. 합격하러 왔습니다.”

“에이∼ 설마요.”

설마라니?

당신 머릿속과 내 머릿속은 사이즈부터가 달라.

“합격하면 꼭 연락하세요! 괜찮은 아가씨 소개시켜 줄게!”

시험장 입구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여자가 고시생들에게 명함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마담뚜.

사법 시험에 합격한 예비 법조인들과 재력가의 딸들을 이어 주며 수수료를 챙기는 여자들.

“고시생…이세요?”

“네. 죄송하지만 명함은 필요 없어요.”

“아, 네… 저도 뭐 딱히 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휙.

그녀를 지나쳐 고시장 안으로 향했다.

몇 달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최연소 합격자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단 것을.

“후… 괜히 긴장되네.”

손에 들려 있는 사인펜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작은 사인펜 하나로 정의라는 갑옷과 기소권이라는 무기를 그릴 것이다.

물론 그린 무기를 사용하려면 사법연수원에서 도장을 받아야 하지만 말이다.

[32500014 한치우]

내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고시장 밖에서 받던 시선은 고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구경 왔나 봐.”

절대평가 시험지로 상대평가를 하는 1차 시험.

성적에 따라 커트라인이 생기고, 최종 선발인원의 2.5배를 합격시킨다.

“자! 그럼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지가 나누어지자 고시생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비비며 시험을 준비했다.

슥슥.

1차 시험은 객관식이니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들어 있는 답안지를 OMR 카드에 옮겨 적으면 될 뿐.

금세 답안지를 다 채운 나는 그대로 엎드려 눈을 감았다.

톡톡.

“포기하실 거면 퇴실하셔도 됩니다.”

엎드려 있는 나를 감독관이 톡톡 치며 조용히 속삭였다.

“포기한 거 아닙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조용히 웃으며 다시 교탁으로 돌아가는 감독관.

‘그래, 못 믿을 만도 하지.’

사실 졸린 것은 아니었다.

기막힌 성적에 혹시 모를 오해를 살까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일 뿐.

그렇게 1, 2교시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 교시에 OMR 카드 마킹을 끝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제 포기…….”

탁.

OMR 카드를 교탁 앞에 내려놓으며 감독관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 다 푼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유유히 시험실 문을 열었다.

모두 열심히 시험에 임하는 탓에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나는 느긋이 걸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여전히 고시장 입구에 서 있는 마담뚜가 보였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명함을 받아 들고 시험장으로 들어간 고시생들의 시험 후 표정을 보고 싶은 것이다.

“역시…….”

공허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시험장 출구를 나오자, 그녀가 내 귀에 한마디를 흘려보내듯 전했다.

‘쯧쯧, 컨택 능력이 없는데 열정은 뛰어나시네.’

여유로운 미소로 그녀를 지나쳤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주머니 속 휴대폰이 급하게 울렸다.

“응? 성훈이가 웬일이지?”

[도와줘 치우야!]

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성훈이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어떠한 일에도 이리 급한 목소리를 내던 친구가 아니다.

나는 걸던 전화를 끊고, 다급한 손길로 문자를 보냈다.

―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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